이광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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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광택 (李光澤, Lee Kwang-taek )

덕유 (德裕)
출생
1948년 11월 16일 (75세)
충청남도 대전부
(현 대전광역시 동구 인동)
본적
경상남도 부산부
(현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
학력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법학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박사과정 수료
브레멘 대학교 법학박사
소속 정당
무소속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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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학교 교수
한국일보(The Korea Times) 기자
크리스찬 아카데미 간사
산업사회연구소 소장
국제노동사회법학회( ISLSSL) 부회장
(사)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장
다솜이재단 이사장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사)71동지회 회장
(사)한국ILO협회 회장
(사)언론인권센터 이사장
최종길 교수 고문치사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추진위원회 실행위원장



1. 개요
2. 활동
2.1. 노동운동
2.2. 연구활동
2.3. 봉사활동
3. 여담



1. 개요[편집]


국민대학교교수. 대한민국 노동법 체계 상당 부분이 이광택 교수의 손을 거쳤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재학 시절, 전태일의 죽음을 목도하며 노동운동에 뛰어들었고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일평생 노동법 연구에 몰두하며[1] 수 많은 제자와 업적을 남겼다.

2. 활동[편집]



2.1. 노동운동[편집]


대전에서 태어나 진주사범부속국민학교, 통영 충렬국민학교, 거창국민학교를 거쳐 부산 동광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서울로 와서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중학생 시절 국어 담당 신용연 선생님을 따라 함석헌 선생을 찾아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2]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진학한 후 법과대학생회와 사회법학회 간부로 활동하면서 사회운동을 하였다.[3]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지켜라!"고 외치며 산화하자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민주시민으로서의 부채의식과 지식인으로서의 사명감을 느껴 노동운동에 투신하였다.[4][5] 장기표, 조영래, 김문수 등과 함께 마석 모란공원묘지에서 전태일의 장례를 치룬 후 본격적으로 투사로서 활동하였다.[6]

1970년 11월 13일 분신 산화한 전태일을 보러 22살의 동갑 청년 이광택이 서울 성모병원 영안실을 찾아갔을 때,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그가 목사인 줄 알고 아들을 위해 말 한마디 해주길 청하였고, 당시 대학생 이광택은 요한복음 제12장 제24절[7] 을 주제로 스피치를 하였다는 일화가 있다.[8]

이후 1971년 조영래, 이신범, 심재권 등과 함께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으로 체포되어 중앙정보부에서 고문 조사를 받고 퇴학에 이어 강제 징집되었다.[9] 당시에는 독재 정권에 의해 강제로 입대하는 것이 비일비재하였다고 한다. 참고로 그가 속한 "71동지회"는 1971년 교련반대시위로 선포된 위수령에 의해 제적 강제 입영했던 학생운동 리더 그룹 180여명의 모임이라는 사실을 소개한다[10].

군 전역 후, 은사 김치선 교수의 도움으로 재입학을 하여 한 학기 후 졸업을 하였으나, 한국 사회에서의 취업에 큰 제약이 걸렸다. 석사과정 진학 후에는 한국일보(The Korea Times) 기자로 활동하다가, "크리스찬 아카데미"의 간사를 맡아 노동계를 위해 교육활동을 하며 노조 등에 출강하기도 하고 거리투쟁에도 나섰다. 이후 학자로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였고 "크리스찬 아카데미''의 강원용 목사의 주선으로 독일 유학을 가게 된다. 독일에서는 브레멘대학교에서 Jürgen A. E. Meyer교수와 Wolfgang Däubler교수의 지도 하에 본격적으로 노동법을 전공하였다.[11]

파일:20160904_093724 (1) Daubler1.jpg
2016년 9월 3일 Däubler 선생과 Tübingen 역에서 해후하여 근교의 Russlingen에 있는 선생의 자택에서 하루밤을 지새며 추억을 나누었다. Däubler 선생의 집 전체가 서재이다. 부인 Herta Däubler-Gmelin 여사는 이 지역 다선 국회의원으로 독일 사회민주당(SPD) 부총재와 연방법무부장관을 역임하였다.

해방 직후부터 민주노동운동가로서 평생을 헌신한 김말룡 선생과의 인연도 특별하다. 선생은 민주당 김대중 총재 추천 직능대표로 제14대 국회의원이 되었는데, 1993년 노조화해를 목적으로 부당노동행위를 하여 물의를 빚은 "한국자동차보험"의 이른바 국회 노동위원회 돈봉투 매수사건을 폭로하여[12] [13]정경유착의 고리를 차단하기 위해 큰 활약을 한 분이다.[14] 김말룡 선생과는 21년의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친분이 두터워 선생은 서초동 소재 이광택 교수의 산업사회연구소[15]를 수시로 방문하여 노동법에 관한 자문을 구하기도 하였다. 1996년 10월 3일 김말룡 선생이 등산길에 실족사하자 장례집행위원장을 맡아 마석 모란공원묘지에 모셨다. 당시 함께 하였던 이용득, 박석운, 이형진 선생 그리고 이창훈 작가 등과 함께 "김말룡평전편찬위원회"를 구성하여 선생의 24주기에 김말룡 평전.[16] 을 간행하였다.[17]

1996년 12월 26일 노동관계법, 안기부법 날치기 통과로 촉발된 범국민적인 저항에 참여연대 노동관계위원장으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함께 "총파업의 적법성과 개정노동법의 무효 여부”에 관한 시민헌법재판을 개최하는 등[18]으로 주도적으로 참가하여 1997년 3월 13일 노동법의 재개정으로 날치기법의 사실상 무효화를 쟁취하는 데 함께 하였다.

2005년~2009년 (사) 전태일기념사업회[19] 이사장을 맡았는데 취임 첫해에 오마이뉴스의 협조를 받아 시민모금을 통해 버들다리[20]에 전태일 동상을 건립하고 주변 청계천변(전태일거리)에 4천여 기부자의 이름과 격문을 새긴 동판을 설치하였다.[21][22]. 전태일과의 인연은 계속되어 2012년 4월 여동생 전순옥이 민주당 비례대표 1번으로 제19대 국회에 진출하자 그의 후원회장을 맡기도 했다.

2006년 이래 노동인권회관 이사를 맡아 주로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 보호와 처우 개선 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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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안츠생명노조 장기파업 시민대책위원회의 출범(오른쪽 4번째 이광택 교수)
2008년에는 노조와의 협의없이 일방적으로 임금체계를 변경한 알리안츠생명에서 발생한 파업사태 해결을 위한 시민대책회의 공동의장의 자격으로 활약[23][24]하여 법원에서 파업의 정당성을 인정받는 등[25] 도움을 받은 알리안츠생명 노동조합이 감사의 표현으로 대책회의의 활동상황을 담은 사진 패널을 제작해 수업시간에 학생들 앞에서 전달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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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안츠생명노동조합이 제작하여 수업시간에 이광택 교수에게 증정한 감사 패널


2.2. 연구활동[편집]


1988년 독일에서 돌아온 후 한국노동연구원 설립멤버로 참여, 노사관계고위지도자과정을 설치하였다.[26] 1991년 산업사회연구소를 설립하였고, 이를 전후하여 연세대, 고려대, 서울시립대, 숭실대, 경희대, 중앙대, 성균관대, 인천대, 명지대, 경기대, 국제대 등에서 강의를 하였으며, 1994년부터 국민대학교 법과대학 노동법 교수로 재직하게 된다.

활발한 학문적 활동을 하여 한국노동법학회 회장,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회장, 한국사회법학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사법시험위원, 행정고등고시 시험위원, 입법고등고시 시험위원, 군법무관임용시험위원, 5급 공무원 승진 시험위원, 공인노무사 시험위원, 직업상담사 시험위원 등도 역임하였다.

국제적으로는 1994년 서울에서 개최된 제14차 국제노동사회법학회(ISLSSL) 세계대회의 조직위원회[27] 사무총장의 역할을 수행하였고, 2012년~2015년 ISLSSL 부회장을 역임하고[28] 이후에도 집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13차 세계대회(1991 아테네)에서부터 제23차 세계대회(2021, 리마)에 이르기까지 한국대표로 참가하여 주제발표를 하였다. 세계대회 중간에 열리는 대륙별 지역대회에도 대체로 참가하며, 자매학회인국제노동고용관계학회(ILERA) 의 제17차 세계대회(2015, 케이프타운), 제18차 세계대회(2018. 서울)[29]에서도 주제발표를 하였다.

비교적 최근의 저역서로는 다음의 것들이 있다

* 『성차별 사례연구』, 국민대학교 출판부, 2007. 9.

* 『노동법강의』, 국민대학교 출판부, 2007. 9.

* 『전환기의 노동법』,국민대학교 출판부, 2007. 10.

* 『사회적기업, 새로운 세계』 (공저), 실업극복국민재단 <함께 일하는 사회> 2007. 10.

* 『서울법대 학생운동사: 정의의 함성 1964〜1979』, 서울법대 학생운동사 편찬위원회 刊 (공동집필), 도서출판 블루프린트, 2008. 11.

* 『조선 질경이 이소선』, 이광택 편, (사)전태일기념사업회 刊, 노동자의 어머니 이소선 팔순기념 헌정문집, 2008. 12.

* 『경제사회 변동과 공동체 패러다임』(“사회적기업 법적형태의 진화 - 영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함께일하는재단 정책연구원 刊 <정책연구원 총서 03> (공저), 2011. 2.

* 『사회적기업 영역, 어디까지인가?』, 이광택 외(역), Antonella Noya(Ed), The Changing Boundaries of Social Enterprises (OECD, 2009). 함께일하는재단, 2011. 9.

* 『공동결정제도 도입을 위한 연구』,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총서 2012-02> (공동연구), 2012. 12.

* 『협동사회와 일자리 창출』(“노동통합형 사회적기업의 전망”) 함께일하는재단 刊 정책연구원 총서04, (공저), 2013. 9.

* 『노동법 제정 60년의 평가와 발전과제, 노사정의 역할』(공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2013. 12.

* 『계단을 오르니 바람이 새로웠다』(공저), 도서출판 자유미디어 , 2020. 10.(2판)

* 『변혁의 시대 1971~2021 한국사회 50년과 더불어』(사)71동지회 刊 <71동지회 50년 기념문집> (공저), 도서출판 동연, 2021. 10.


또 후학들이 뜻을 모아 2014년 정년기념 논문집 <德裕 李光澤 敎授 停年紀念論文集>『福祉社會를 위한 勞動社會法과 勞使關係』 德裕 李光澤 敎授 停年紀念 刊行委員會, (주)중앙경제, 2014. 4. 14. ISBN 978-89-7017-308-5(93300) 709면을 간행하였다.

그밖에도 國民大學校 法學硏究所 『法學論叢』(德裕 李光澤 敎授 停年紀念) 第26卷 第3號(通卷 第46號), ISSN 1225-9969, 2014年 2月, 2014. 2. 28. 479面, 한국사회법학회 『사회법연구』(德裕 李光澤 敎授 停年記念號) 제22호, ISSN 1738-1118, 2012년 4월. 261면, (사)한국채무자회생법학회 『回生法學』(德裕 李光澤 敎授 停年紀念論文集) 통권 제7-8호, ISSN 2093-6923, 2013. 12. 15. 182면등이 간행되었다.

이 무렵에는 Kluwer 출판사의 Kwang-Taek Lee, "The Right to Strike: South Korea," A Comparative View, Bernd Waas(ed.), Wolters Kluwer, Kluwer Law International BV, 2014, The Netherlands ISBN 978-90-411-5007-3[30]도 간행되었다.

최근에 국제학술회의에서 발표한 논문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ISLSSL 제23차 세계대회(2021. 9. 9., Lima, Peru) 주제발표[31]

* ISLSSL 제11차 아메리카지역대회(2019. 9. 6., Cordoba, Argentina) 주제발표[32]

* ISLSSL 제22차 세계대회(2018. 9. 5., Turin, Italy) 주제발표[33]

* 국제노동고용관계학회(ILERA) 제18차 세계대회(2018. 7. 24., 서울) 주제발표[34]

* ISLSSL 제12차 유럽지역대회(2017. 9. 20-22., Prague, Czech Republic) 주제발표[35]

* ISLSSL 제21차 세계대회(2015. 9. 17., Cape Town, South Africa) 주제발표[36]

* 국제노동고용관계학회(ILERA) 제17차 세계대회(2015. 9. 8., Cape Town, South Africa) 주제발표[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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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이래 (사)한국ILO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ILO협회는 1995년 설립된 이래 국제교류와 함께 저널 「국제노동」 (The International Labour)을 간행하고 있고 2023년 6월 기준 통권 제255호를 발행하였다.

노동법 관련 연구를 꾸준히 하였는데 흔히 공인노무사 시험에도 출제되는 고평법개정법이나 여성관련법 등 차별 철폐를 위해 등장한 입법, 혹은 경영참가제도로서 우리사주제[38], 근로자이사제 등은 이광택 교수가 30년 넘게 연구, 주장해 온 것들이 제도화된 케이스이다.

회사법과 관련되는 공동결정제도에 있어서는 독일의 기업공동결정제도를 참고하여 근로자이사의 참가를 주장하나[39] 재계에서 도입을 극심히 반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사공동결정제도에 관해 2023년 현재 실무상 논의는 꾸준히 전개되어 다수의 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가 실시되었고[40], 그밖에 금융기관에도 노동이사가 도입되고 있다.[41]

2001년도 레미콘 노동자와 같이 특수고용직 근로자의 근로자성 인정 성명을 발표한 학자이기도 하다.[42] 2019년 대법원도 근로자성 판단기준을 제시하며 특수고용직 근로자를, 임금이 고정급 형태라던지 근로소득세 원천징수 여부, 사회보장제도상 근로자로 인정받는지 여부를 떠나서 사용종속관계가 인정된다면 근로자로 볼 수 있다고 판시해 이광택 교수의 견해와 상동하다.

2.3. 봉사활동[편집]


독일에서 학업을 이어가던 중인 1983년 한독수교 100주년을 맞아 브레멘한국학교를 주말학교로 설립하여[43] 파일:temp_1691142957083.1597866584.jpeg 현지 교민 자녀와 독일인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한글과 한국 문화를 수학을 하게 하였는데[44] 2018년 9월에는 개교35주년 행사를 가졌다.[45]

사회봉사로는 참여연대 노동관계위원장,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노동위원장, 경실련 (사)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등을 역임하였고, 간병서비스 봉사단체인 다솜이재단 이사장도 역임하였다.

1998년 최종길 교수 고문치사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추진위원회 실행위원장을 맡아 1973년 중앙정보부에서 조사 도중 의문사한 은사 최종길 교수의 사인을 밝혀[46] 2006년 2월 14일 국가가 유족에게 18억 4800여만 원을 배상하라는 서울고등법원의 판결[47]을 이끌어냈다.[48][49]

대학에서 안식년을 얻어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의 후신인 함께일하는재단 상임이사로 일하며 일자리 창출과 사회적 기업 육성을 위해서도 진력하였다. 이때 미국, 캐나다, 독일, 호주, 뉴질랜드 등지에서 선진 사례를 연구하였고, 중국, 필리핀, 캄보디아, 라오스, 인도네시아, 남아공, 루완다, 남수단, 페루 등지의 사회적기업 육성을 지원하였다. 2010년에는 서울에서 아시아사회적기업활동가대회(ASES)를 주관하였고[50] 2014년에는 사회적기업월드포럼(SEWF)을 서울로 유치하였다.

국제노동기구(ILO) 창립 100주년을 맞은 2019년 한국이 ILO 협약 중 4개의 핵심 협약(Core Conventions)을 비준하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고 한국이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이들 협약을 비준할 것을 역설하였다.[51] 이러한 노력이 바탕이 되어 우리나라는 2021년 4월 20일 ILO의 강제노동 협약(제29호, 1930),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협약(제87호, 1948), 단체교섭권 협약(제98호, 1949) 등 기본협약 세 개를 비준하였다. 또한 노사간 교섭력의 증대가 한국의 노사 발전을 위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52] 아무래도 노사정 중 정경유착 구조하에서 정부와 기업이 정보를 독점하고 일방적인 회의진행 경향이 강하여 어떠한 협의체가 구성되어도 파국으로 치닫는 경향이 잦은데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근로자이사제 및 최저임금위원회 등 각 정부기구에서 당사자주의의 관철을 위하여 공익위원의 역할 절제 등의 방안을 제안한다.

1975-1976 한국일보(The Korea Times) 기자로 언론에 발을 들여놓았으나, 이후 사회운동과 학문활동에 전념하다가 1994년 이후 노동경제신문과 내일신문의 칼럼니스트로, 또 2001년 이후 YTN 미디어비평위원, CBS 객원해설위원 등을 역임한 경험이 작용하였는지 2020년 3월 (사)언론인권센터의 제8대 이사장에 선임되었다.[53]

기업, 노동계 혹은 관, 각종 법인 및 위원회의 위원직 러브콜을 받지만 교수라는 직업의 소임은 연구라고 말하며 일체 거부하고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항상 연구실에서 연구하는 모습으로 학생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3.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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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월 12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막된 프리모 깐딴떼 새해맞이 대음악회 포스터. 좌측 상단에 故 안정준 예술감독과 이광택 단장의 모습이 보인다. 좌측 하단에는 지휘자 최흥기 선생, 반주자 이영이 선생 그리고 변 훈 곡 '한강'으로 찬조 출연한 베이스 故 오현명 선생과 소프라노 故 김향란 교수도 있다.

한편 이 교수는 아마추어를 능가하는 실력을 갖춘 성악가로서 1999년에서 2005년까지 작곡가 故 안정준 선생[54]이 1997년 창단한 남성 성악가 70여명의 앙상블인 프리모깐딴떼의 부단장, 단장을 역임하며 국내외 공연활동을 전개하였으며[55], 2010년 명지대학교 콘서바토리에서 음악학사를 취득하고, 국제하이든콩쿠르에서 입상하기도 했다.


정년퇴임을 앞둔 2013년 11월 11일 국민대에서 "법학교수가 부르는 '청년의 노래' 바리톤 이광택 교수 독창회"를 개최하였다.[56] 이 날 행사를 통해 청중들이 정성을 모아 기탁한 쌀 454kg을 성북구의 이웃들에게 나누었다.[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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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부터 윤정국 국민대학교 노동조합 위원장, 이광택 교수, 김영배 의원(당시 성북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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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gsge.kookmin.ac.kr/kookmin/prof_library/6[2] 이광택, “긴 왕따의 시절”, 경기고등학교 63회 동창회 지음, 화동 이후 함께한 50년, 인생 70년 「우리가 빚어낸 무늬 1」, 도서출판 자유미디어, 2020. 2. 20. ISBN 978-89-97467-4 (03060), 76-89면. [3] https://www.archives.go.kr/next/search/1970년[4] https://archives.kdemo.or.kr/oral-archives/view/748[5] https://www.youtube.com/watch?app=desktop&v=c5KzNHbgD1s[6] https://blog.naver.com/les130/80003831641[7]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8] 이광택, “최종길 교수와 함께 한 억압과 저항의 대학 시절”, 최종길 교수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모임 엮음 「아직 끝나지 않은 죽음 - 아! 최종길 교수여」 도서출판 공동선, 2002. 10. 17. 298-312면.[9] https://www.archives.go.kr/next/search/popArchiveList.do?rfile_no=201104881770[10] https://n.news.naver.com/article/002/0002213951[11] 이광택, "노도(怒濤)에 휩싸였던 청년시절", 「계단을 오르니 바람이 새로웠다」 도서출판 자유미디어, 2020. 10. 10. 2판, 40-55면.[12] 김말룡, "국회 돈봉투사건 전말은 이렇다", 월간 「노사광장」 1994년 3월호(통권 제41호), 26-31면.[13] https://imnews.imbc.com/replay/1994/nwdesk/article/1921995_30690.html[14] http://demos-archives.or.kr/search/115461[15] 산업사회연구소는 1993년 서초동 우성쁘띠오피스텔에서 설립한 독립연구소인데 2019년 하남시 미사IS비즈타워로 이전하여 존속하고 있다.[16] 이창훈, 「노동자를 위해 살아온 한편생 김말룡 평전」 학민사, 2020년 12월, 336쪽[17] 이광택, “김말룡 선생 22주기 추모사 - 평전편찬위원회 활동보고,” 「국제노동」 2018년 겨울호(통권 237호), 2018. 12. 1. 1-5면 <여는글>[18] 이광택, “12. 26. 총파업의 적법성과 개정노동법의 무효 여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 공동주최 <노동관계법․안기부법 날치기 통과에 대한 시민헌법재판> 참고인 진술서 2, 1997. 1. 30. 17-63면.[19] 전태일기념사업회는 1984년 설립되었는데, 초대 이사장으로 공덕귀 여사, 2대 문익환 목사, 3대 김근수 선생, 4대 남상헌 선생, 5,6대 이광택 교수가 선임되었다. 7대 이사장 장기표 선생 당시인 2009년 전태일재단으로 전환하여 2010년 8,9대 조헌정 목사, 2015년 부터 10,11대 이수호 위원장을 거쳐 2022년 12대 이덕우 변호사로 연결되고 있다. http://www.chuntaeil.org/[20] 청계천 6가 소재, 2012.11.2. "전태일다리"로 명명"[21]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81873[22]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357595[23]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48406[24] 매일노동뉴스 기사[25] 이광택, "회사의 일방적 성과급제 도입에 반대해 벌인 쟁의 행위의 정당성," 월간 「노동법률」 2009. 4.(통권 제215호) <판례평석> 66~71면. https://cafe.naver.com/springandwinter/474[26] 노동조합 및 기업의 고위간부들을 중심으로 하고, 입법부, 정부, 정당 등 각계 전문가를 대상으로 1989년 개설하였는데 제1기에 노무현, 이인제노동위원회(現 환경노동위) 초선 의원들이 참여한 것을 필두로 현재까지 성황을 이루고 있다. 그사이 노사관계최고지도자과정으로 명칭을 바꾸었고 2023년 3월부터 9개월 과정의 제35기 과정이 운영된다.[27] 위원장은 고 김치선 교수였으며, 그는 이 대회에서 아세아 최초로 ISLSSL 회장으로 선출되었으나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1996. 11. 25. 별세하였다. 1997년 9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개최된 제15차 세계대회는 고인에 대한 묵념으로 시작하였다.[28]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2092701072930025004[29] http://www.ilera2018.org//[30] https://lrus.wolterskluwer.com/store/product/the-right-to-strike-a-comparative-view/[31] “Less-skilled and High-skilled Migration in South Korea,” Presented at the XXⅢ World Congress of the International Society for Labour and Social Security Law, in Lima, Peru, 9. September 2021. [32] “Collective Agreements, Extended Validity and the Erga Omnes Effect in Their Clauses”, Presented at the 11th American Congress of the International Society for Labour and Social Security Law, in Cordoba, Argentina, 6. September, 2019, Plenary Session. [33] “A Study on the Employment Permit System of South Korea in View of the International Standards,” Presented at the XXⅡ World Congress of the International Society for Labour and Social Security Law, in Turin, Italy, 5. September 2018. [34] “Paradigm Shift in Labor Market and New Dimension of Social Security in the Age of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Presented at the ILERA World Congress, COEX, Seoul, Korea, 2018, 2018. 7. 24.[35] “Social Security in the Age of the 4th Industrial Revolution,“ Presented at the XII European Regional Congress of the International Society for Labour and Social Security Law, 20-22 September 2017, Prague, Plenary Session 3: New forms of Social Security.[36] “A Comparative Study on the Age Discrimination in Retirement in South Korea in View of the International Standards - in Special Consideration of the Linkage Between Retirement Age and Pension Eligibility - Presented at The 21st World Congress of the International Society for Labour and Social Security Law for Theme 3: Equality and 'citizenship at work' as conceptual foundations for labour law, Cape Town, South Africa, Sept. 17, 2015. [37] "RECENT REFORM OF THE PUBLIC PENSION SYSTEM IN KOREA," Presented at Workshop: Innovation in Social Protection, 17th ILERA World Congress, Cape Town, South Africa, Sept. 8, 2015.[38] 이광택, “우리사주제도의 활성화 방안 모색,” <한국우리사주조합연합회> 기조발제, 2016. 9. 21.[39] 이광택, “독일의 공동결정제 내용이 한국사회에 미치는 법적인 함의,” 한독경상학회/한독법률학회/Friedrich Ebert Foundation/ 국회의원 민병두 주최 <제2회 경제민주화 관련 법경제 이슈 토론회> 2017. 11. 9. 1-38면.[40] https://www.yna.co.kr/view/AKR20220804098200002 [41] http://worknworld.kctu.org/news/articleView.html?idxno=501797 [42]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176[43] 최종고 저, 『韓獨交涉史』, 弘盛社 1983 화보에 게재. [44] http://sblog.i-scream.co.kr/ksbremen/3133?sso=ok[45] https://vimeo.com/288954322?[46] https://shindonga.donga.com/3/all/13/101707/1[47] https://glaw.scourt.go.kr/wsjo/panre/sjo100.do?contId=1982665[48] https://ko.wikipedia.org/wiki/%EC%B5%9C%EC%A2%85%EA%B8%B8[49] 법무부의 상고 포기로 이 판결은 확정되었다.[50] http://www.koreatimes.co.kr/www/nation/2010/11/113_77095.html http://www.koreatimes.co.kr/www/nation/2010/11/113_77226.html[51]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821786[52] http://www.eja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0517[53] http://www.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0336[54] https://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090819029017[55] 이광택, "음악 하는 법학도", 서울법대문우회 간 Fides, 제9호, 2020년 12월, 245-252면.[56] http://www.eja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9246[57] http://news.zum.com/articles/107187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