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 연쇄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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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범인에 대한 정보
3. 사건 전개
3.1. 첫 살인
3.2. 연쇄 살인의 시작
3.3. 시체 발견
3.4. 검거
4. 재판 과정


1. 개요[편집]


파일:37686_21962_3552.jpg

2007년 7월 15일부터 23일까지, 일용직 노동자 이기영(당시 47)[1]이 마약범죄로 벌금형을 선고 받자 이를 납부할 돈을 마련하기 위해 강도짓할 작정으로 피해자 A씨(22)의 집에 침입하여 성폭행하려다 살해하고 며칠 후 유서를 쓴 다음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차량으로 시비를 걸고 폭행해 2명을 추가로 살해하고 2명을 부상 입힌 사건.


2. 범인에 대한 정보[편집]


이기영은 결혼 후 아들을 얻게 되었지만 그로부터 몇 해 지나지 않아 강도 사건을 일으켜 징역을 살게 되고, 그 후론 노동일을 하며 가정에서 아들을 키우며 재범하지 않고 나름의 생계를 유지하여 살아가고 있었고 산악회에 가입하여 전국 각지의 사찰 등을 여행하면서 대외 사교활동도 하며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05년경, 이기영의 아들도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2살 연하의 여자친구를 임신시켜 이기영 집안이 졸지에 4대[2]가 된 것도 모자라 아들은 모종의 범죄를 저질러 수감되는 지경에 와버려 손자에 며느리의 생활까지 책임져야 했던 이기영은 일용직 노동으로 감당하기엔 큰 부담을 느껴 그로인한 스트레스 때문인지 죄행의 늦바람이 다시 들기 시작한다.

2007년 연초에 이기영은 단순절도 몇 건을 범한데 이어 마약에 까지 손을 대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제보를 받은 경찰에 의해 현장에서 붙잡혔고 소지한 마약이 있는지 수색하는 중 이기영은 "제가 잘못했습니다. 한번만 봐주십시오. 공범을 말하겠습니다."라며 적극적으로 용서를 구하고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간절한 요청을 하였다.

모든 잘못을 실토하며 수사에 협조적이던 이기영은 절도에 대해선 불구속 기소가 되어 재판에 넘어갔으나 마약은 약식명령으로 벌금 처분을 받고 풀려나는데 이후 자신을 검거했던 형사에게 시루떡을 선물하면서 새 삶을 살겠다고 약속하며 감사함을 표한다.[3]


3. 사건 전개[편집]



3.1. 첫 살인[편집]


그러나 떡 선물을 할 당시 이미 이기영은 벌금 마련을 위해 강도짓을 할 작정이었는데, 산악회 활동을 하며 전국 각지의 산지를 돌아다녔던 이기영은 얼마전 진천에서 등반 중 한 외딴 주택을 발견하곤 노부부 정도가 살 것이라 생각한 이기영은 7월 16일에 그 곳을 범행 대상으로 삼아 야구배트를 구비한 다음 본인의 하얀 카이런 승합차를 몰고 범행하러 출발했다.

대상으로 삼은 주택에 도착한 이기영은 야구배트를 들고 담벼락을 넘은 다음 창문을 통해 침입하였는데 처음엔 아무도 없는 줄 알고집안 이곳저곳을 뒤지며 금품을 훔치려던 차 갑자기 집주인 부부의 딸 A씨가 소리를 듣고 나왔다가 이기영을 마주쳤고, 이기영은 A씨를 야구배트로 위협하여 제압하고 이불을 덮어 꼼짝 못하게한 다음 금품을 마저 털다가 A씨를 성폭행 하려 시도했는데 A씨가 거세게 저항하자 이기영은 들고있던 야구배트로 A씨의 머리를 사정 없이 내려치고 목까지 졸라 살해하였다.

A씨를 살해하고 금품을 갈취하여 달아난 후, 범행하려 결심했으나 미처 살인까지 할 줄은 몰랐던 것인지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기영은 A4용지 2장 분량의 유서를 작성하는데, 대략 내용은 '사는 것이 힘들다. 세상이 잘못 되었다. 내 전생의 업으로 인해 죄인이 되었다.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였으며 이를 항상 차에 가지고 다니며 쉽사리 귀가하지 못하고 근처 객지를 돌아다니며 숨어 지냈으나 결심과 다르게 자살도, 그렇다고 자수도 못하면서 그저 좌이대사 하고 있었다.


3.2. 연쇄 살인의 시작[편집]


23일 20시반경, 그날도 이기영은 검거될까 두려워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평택 서정동의 여성회관 주차장에서 차를 대고 그저 시간만 보내고 있었는데, 마침 스포츠댄스 강습을 마치어 차를 타고 귀가하려던 39세 B씨가 주차장에 내려와 이중주차 되어 있던 이기영의 차를 보곤 다가가서 보니 안에 사람이 있는 것을 확인하여 주차를 똑바로 해 달라 요청했으나 이기영은 들은 체 만 체 하면서 오히려 B씨에게 따져 물었고 이에 당황한 B씨는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나."라는 말과 함께 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이기영은 B씨가 자신을 무시했다 여기고, 이제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는 생각에 강한 살의에 사로잡혀 이전 강도짓에 썼던 야구배트를 들고 본인의 카이런 승합차에서 뛰쳐나와 무방비의 B씨를 향해 휘둘렀고 그렇게 쓰러진 B씨에게 이기영은 무차별적으로 야구배트를 전신에 마구 휘둘러 B씨를 잔혹하게 폭행한다. 머리를 집중 타격 당해 두개골이 함몰되어 실신 직전에 놓인 B씨가 신음하며 "살려달라."라고 애원하자 이기영은 그제야 폭행을 멈추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B씨를 본인의 카이런이 아닌 B씨의 EF소나타 트렁크에 실어 감금하곤 자신의 차는 그대로 버려두고 B씨의 EF소나타를 몰고 도주한다.

갈취한 B씨의 차로 B씨를 십 몇 분 끌고 다니며 유기할 곳을 찾던 이기영은 평택 장안동의 한 농수로에 B씨를 버려두기로 작정하고 차를 세워 트렁크를 열어보니 B씨는 고통 속에서 숨지기 직전이었으며 그대로 B씨를 그곳에 유기하고 달아났으며, 직후 B씨는 사망한다.

1시간 후인 21시50분경, 훔친 B씨의 차를 타고 어찌할까 돌아다니다 안성휴게소 뒷길로 진입 중 휴게소에서 일을 마친 어머니를 모셔가려던 32세 C씨의 차가 주차되어 있는 것을 보고 "차량이 진입할 수 없다."며 시비를 걸어 C씨를 내리게 한 다음 또 다시 야구배트를 들고 뛰쳐나와 갑작스런 이기영의 행동에 미처 방비하지 못했던 C씨의 머리를 내려쳐 쓰러뜨리고는 이기영 본인조차 몇 회인지 모를 정도로 C씨의 머리를 마구 내려쳐 원래의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잔혹하게 폭행해 살해한 다음 시신을 갓길에 눕혀두고, 그 위로 훔쳐 타고 온 B씨의 차를 올려놓고 이번엔 C씨의 소나타를 타고 도주한다.

이기영은 C씨의 차를 타고 다음날인 24일 새벽 2시반까지 돌아다니다 남쪽으로 도주할 요량으로 중부고속도로에 올랐다가 충북 진천 부근에서 하행선을 앞서가던 카렌스를 들이박는 사고를 내는데, 카렌스 운전자가 내려 사고 상황을 살피려던 순간 이기영은 또다시 야구배트를 들고 뛰쳐나와 카렌스 운전자를 마구 폭행했고 이를 보고 놀란 동승자가 나와 합세한다. 이기영은 두 사람에게 배트를 마구 휘둘러 대다가 제압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피해자 모두가 경황이 없는 사이 C씨의 차를 버리고 방금 폭행하던 운전자의 카렌스에 기습적으로 올라 훔쳐 달아난다.

이후론 무차별 살인 행각을 멈추고 전국을 순회하며 도주 작전을 펼치게 된다.


3.3. 시체 발견[편집]


16일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온 A씨의 부친은 안방에서 옷이 벗겨지고 머리가 깨져 온통 피범벅이 되어 숨져있는 딸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하는데, 조사를 마친 경찰은 A씨의 몸과 손톱에서 저항하며 남겨진 피의자의 DNA를 식별하는데 성공했으나 누구의 것인지는 감별해 낼 수 없어 진척이 없던 상황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후인 24일 새벽, 경찰은 고속도로에서 거수자에게 폭행 당하고 차량까지 빼았겼다는 신고가 들어와 출동하여 조사하니 이기영이 버리고 간 소나타가 있어 소유주 조회를 하였고 차 주인이 32세의 C씨란 것이 확인되자 이기영의 범행을 모르던 경찰은 C씨를 잡아 조사하기 위해 전화 추적을 하였는데 그 위치가 안성휴게소 갓길인 것을 보곤 즉시 출동하여 계속 수색하던 경찰은 설마하는 심정으로 주차되어 있는 차량들 밑을 들여다 보았고 결국 주차되어 있던 어느 EF소나타 밑에 처참하게 폭행당하여 숨져있던 C씨를 발견한다.

결국 C씨의 시신 위에 서있던 EF소나타를 조사하던 경찰은 차 트렁크에서 다량의 혈흔이 발견되었고 차적 조회 결과 B씨의 남편 것이란 게 밝혀졌는데, B씨의 남편은 23일 저녁에 아내가 차를 몰고 나간 이후 이틀 동안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실종 신고를 이미 한 상태였다. 경찰은 B씨의 전화를 추적했으나 여성회관 근처에서 전원이 끊긴 것만 확인하여 그곳에 가서 B씨의 행적을 추적하던 경찰은 B씨가 여성회관 주차장에서 하얀 카이런 승합차에 접근한 것이 마지막 행적임을 확인하고 해당 카이런을 조사해 보니 지난 16일 진천에서 A씨를 강도살인 후 도주하다 CCTV에 찍혔던 그 차량임을 확인했다.

이때, 전에 이기영을 마약혐의로 검거했던 형사가 그 카이런에 꽂혀 있던 차량 열쇠를 보았는데 낯이 익어 그 악세사리를 곰곰히 생각해 보니 전에 봤던 이기영의 그것과 같은 것이었다. 거기에 추가로 유서로 보이는 A4용지 2장이 발견되어 범인이 자살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경찰은 언론 보도 자제를 요청한다. 이후 EF소나타 트렁크에 있던 혈흔이 B씨의 것으로 확인되면서 B씨가 살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즉시 인근 지역을 수색하기 시작했고, 25일 오전 8시경에 장안동의 농수로에서 마찬가지로 무참하게 살해된 B씨의 시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에 경찰은 탈취당한 카렌스를 전국에 수배하고 톨게이트를 중심으로 검문을 시작한다.


3.4. 검거[편집]


이러는 와중 도주한 이기영은 탈취한 카렌스를 몰고 경북 안동을 지나 봉화까지 가서 검문을 피할 심상으로 차 번호판을 훔쳐 바꿔달고 다시 남하하여 전라도의 한 사찰에 도착해 그 곳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25일에 다시 경기도로 북상하면서 범행지인 평택과 진천이 아닌 이천쪽으로 올라오다가 장호원에서 신호위반 단속에 걸렸으나, 그대로 안성까지 도주하여 고삼저수지에서 카렌스를 불태우고 인근에서 이스타나 승합차를 훔쳐 타고 신탄진을 거쳐 대전까지 달아났으며, 대전에 위치한 어느 보훈병원 주차장에 이스타나도 버린 다음 기차를 타고 전라남도 구례까지 도주했다. 이기영은 산악회 활동을 하면서 전국 각지의 산간오지를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구례에서 또 하룻밤을 보낸 이기영은 26일에는 버스를 타고 순천과 남원을 지나 전주까지 또 도주하였는데, 경찰은 이기영이 중부고속도로로 도주하면서 사용한 통행권과 CCTV를 통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도주 중인 것을 확인했고 검거가 늦으면 추가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으며 이렇게 도주하는 것을 보니 자살할 위험은 없다고 판단해 이기영을 전국에 공개 수배로 전환하여 수사하기 시작했고 같은날 밤 KBS2 특명 공개수배에서도 긴급수배를 내렸다.

공개 수배 후 남원 등지에서 이기영을 봤다는 제보가 들어와 확인해본 결과 맞는 것으로 판단한 경찰은 그를 계속 추적했는데, 자신이 공개수배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이기영은 결국 자포자기 하여 전에 자신을 검거했던 평택경찰서로 전화해 자수 의사를 밝히고 27일에 전주에서 천안까지 기차를 타고 온 다음 전철로 환승하고 평택역에서 내려 자신의 집으로 걸어갔다.

경찰은 자수하겠다는 이기영의 연락을 받기 전부터 이기영의 집과 가족 주변에 잠복하여 수사하고 있던 상황으로서 이번엔 확실한 검거를 위해 이기영 집 주변을 포위하듯 추가 잠복하여 기다리고 있던 중, 오전 11시경 이기영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경찰은 직후 또 한통의 제보를 받는데, 바로 이기영의 아내가 남편이 돌아왔다고 신고한 것이었고 경찰은 그대로 집으로 진입하여 안방에 있던 이기영을 현장에서 체포할 수 있었다. 체포된 이기영은 놀란듯 주저앉으며 "자수하려고 왔던 겁니다." 라고 했다 한다.


4. 재판 과정[편집]


B씨와 C씨 살해 혐의는 모두 순순히 자백한 이기영은 16일에 있었던 A씨에 대한 강도살인은 끝까지 함구했는데 결국 경찰이 A씨 몸에서 발견된 이기영의 DNA 자료와 도주하면서 찍힌 CCTV를 보여주자 그제서야 범행을 인정하며 "마약 벌금을 구하려고 강도짓을 하다가 우발적으로 살해했다."라고 주장했고, B씨와 C씨에 대한 살해도 "너무 화가나 나도 모르게 저질러 버렸다."고 주장했다.

이후 무기징역 판결을 받은 이기영은 현재도 수감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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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60년 10월 11일 출생[2] 어머니 포함[3] 검거 당시부터 협조적이더니 이젠 고맙다며 떡까지 선물하는 이기영에게 형사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내심 보람을 느끼며 감찰과의 승인을 받고 선물 받은 떡을 동료들과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