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모토 준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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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모토 준이치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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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베스트팀
파일:J1리그 엠블럼.svg







파일:51179_l.jpg


난카츠 SC No. 8

이나모토 준이치
稲本 潤一 | Junichi Inamoto

출생
1979년 9월 18일 (44세)
일본 오사카부 사카이 시
국적
[[일본|

일본
display: none; display: 일본"
행정구
]]

신체 조건
181cm, 77kg
포지션
수비형 미드필더
프로 입단
1997년 감바 오사카
소속팀
감바 오사카 (1997~2004)
아스날 FC (2001~2002 / 임대)
풀럼 FC (2002~2004 / 임대)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 (2004~2006)
카디프 시티 FC (2004~2005 / 임대)
갈라타사라이 SK (2006~2007)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2007~2009)
스타드 렌 FC (2009)
가와사키 프론탈레 (2010~2014)
콘사도레 삿포로 (2015~2018)
SC 사가미하라 (2019~2021)
난카츠 SC (2022~ )
국가대표
파일: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svg 82경기 5골 (일본 / 2000~2010)

1. 개요
2. 선수 경력
3. 기록
3.1. 대회 기록
3.2. 개인 수상
4. 기타
5. 같이 보기



1. 개요[편집]


일본축구 선수. 주 포지션은 수비형 미드필더이다.

2. 선수 경력[편집]


1997년 17세 6개월이라는 역대 최연소 나이로 J리그에 데뷔했고 데뷔 한 달 만에 골을 기록하며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1999년 FIFA 청소년 월드컵 주축 멤버로서 일본의 준우승에 일조했고, 2000 시드니 올림픽 일본 축구 올림픽 대표팀에 선발되면서 본격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여러 유럽 팀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2001년 잉글랜드의 명문 아스날 FC로 임대되었다. 그리고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일본 국가대표로 선발, 벨기에전에서 역전골, 러시아전에서 결승골을 넣는 맹활약[1]으로 일본의 사상 첫 16강 진출(9위)를 이끌며 한국의 축구팬들에게도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아스날에서 이나모토는 전혀 출장 기회를 잡지 못했고, 월드컵이 끝난 후 풀럼 FC로 임대되었다. 그리고 풀럼에서 이나모토는 인터토토컵 결승전 1차전에서 골을, 2차전에서는 일본인 최초로 유럽 무대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치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이같은 활약에 고무된 풀럼 측에서도 완전 이적을 시도했지만, 정강이 부상으로 국가대표에 선발되지 못하며 워크퍼밋 발급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결국 2004년 친정팀인 감바 오사카로 복귀해야 했다.

얼마 후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으로 이적, 다시 잉글랜드 무대로 돌아갔고 이후 카디프 시티로 임대되어 뛰었다. 그리고 2006 FIFA 월드컵 독일 일본 대표로 선발되어 크로아티아전에는 후반전만, 브라질전에는 풀타임을 뛰었다.

월드컵이 끝난 이후 터키 쉬페르리그갈라타사라이 SK로 이적했는데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그 외에는 뚜렷한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고, 2007년 5월 독일 분데스리가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로 이적했다. 그리고 2009년, 프랑스 리그앙스타드 렌 FC으로 이적했지만 주전 경쟁에서 밀려 벤치 멤버로 시간을 보내다, 결국 2010년 1월 가와사키 프론탈레로 이적하면서 J리그로 복귀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0 FIFA 월드컵 남아공 일본 국가대표로 선발, 3회 연속 월드컵 무대를 밟았다. 이때는 카메룬전 88분 교체 출전, 덴마크전에는 91분에 교체 출전했다. 이후 2014년까지 가와사키 프론탈레에서 뛰다가 2015년 J2리그의 콘사도레 삿포로에 이적하여 2018년까지 4시즌을 뛰고 2019년 1월 J3리그의 SC 사가미하라로 이적했다.

2022년 1월 사가미히라를 2부 리그로 승격시키고, 이나모토 본인은 5부 리그의 난카츠 SC로 이적했다. 이후 2023년 11월 30일에 선수 겸 코치로 부임했다.#


3. 기록[편집]



3.1. 대회 기록[편집]





3.2. 개인 수상[편집]




4. 기타[편집]


아스날 FC 입단 후 경기에는 나오지 못하는데 유니폼은 많이 팔리는 현상이 나타나자 아시아 선수들이 유럽에 진출하면 유럽 축구팬들에게 유니폼 팔러왔냐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2004년 아스날이 하이버리 대신 에미레이트 스타디움을 새로 짓자 이나모토가 판 유니폼 판매 수익으로 새로운 경기장을 지을 수 있었다는 우스갯소리가 한국 축구 커뮤니티에서 돌기도 했지만 이는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아스날에서는 실패했지만 당시까지 아시아인으로 유럽에서 성공은 고사하고 뛰는 선수조차 드물었기 때문에 유럽에 진출하는 것 자체가 경력으로 인정받던 시절이었다. 게다가 아스날 시절의 임팩트가 너무 커서 그렇지 다른 유럽 클럽에서 뛸 때는 아예 수준 이하급의 선수는 아니었다. 그래서 일본 국대나 아시아에서의 위상은 그다지 나쁜 편은 아니었다.

프리스타일 축구 기술에 능숙해 호나우지뉴와 나이키 프리스타일 CF를 찍은 적이 있다.


5. 같이 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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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파일:Screenshot_20221216-043554_Gallery.jpg 그러나 이 골은 오프사이드가 선언됐어야 했다. 야나기사와 아츠시의 패스가 간 시점에 이나모토의 왼발이 러시아 최종 수비수보다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당시에는 공을 안받더라도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으면 오프사이드였고 2005년부터 공을 직접 받는 선수만 오프사이드로 개정되었다.) 다른 일본 선수가 명백히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었으나, 오프사이드 선언을 안했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폭동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