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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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tablebgcolor=#ffffff><colbgcolor=#000000><width=10%> 캐스터 ||<width=10%> 김민수 ||<width=10%> 최두영 ||<width=10%> 조주영 ||<width=10%> 이승현 ||<width=10%> 김민준 ||<width=10%> 정세현 ||
|| 해설자 || 민훈기 || 양상문 || 이대형 || 이성우 || 윤석민 ||



이대형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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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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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7~2010 KBO 리그 도루왕

KBO 보유 기록
단일 시즌 최다 타수
600타수
단일 시즌 최다 단타
174개
연속 시즌 60도루
3년 연속[1]


이대형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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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등번호 53번
이용호
(2002)

이대형
(2003~2013)


양석환
(2014~2018)
KIA 타이거즈 등번호 53번
이종환
(2012.9.9.~2013)

이대형
(2014)


김호령
(2015~2017)
kt wiz 등번호 53번
김사연
(2014)

이대형
(2015~2019)


김민혁
(2020~)


A대표팀 참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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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POTV 로고 화이트.svg 해설위원
이대형
李大炯 | Lee Daehyeong

출생
1983년 7월 19일 (40세)
충청남도 보령시 죽정동[1][2]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본관
경주 이씨[3]
학력
광주서림초 - 무등중 - 광주제일고
신체
187cm[4]체중 78kg|혈액형 O형
포지션
투수[5]중견수[6], 좌익수[7], 우익수[8][9]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2003년 2차 2라운드 (전체 11번, LG)[10]
소속팀
LG 트윈스 (2003~2013)
KIA 타이거즈 (2014)
kt wiz (2015~2019)
지도자
대한민국 베이스볼 5 국가대표팀 플레잉코치 (2022~ )
해설위원
SPOTV 야구 해설위원 (2023~)
소속사
파일:Playades_Logo.png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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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부모님, 형(1981년생)[1]
친척
이종사촌동생 나용기
병역
전시근로역[2]
등장곡
LG / KIA / KT: Black Eyed Peas - Pump It[3][4]
응원가
LG: Boney M. - Bahama Mama[5][6][7]
KIA: Sato Naoki - Departure[8]
KT: FT아일랜드 - 멋쟁이 vs 예쁜이[9][10][11]
럼블피쉬 - 으라차차[12]
포지션 - Paradise(Rock'n'roll Party)[13]

1. 개요
4. 은퇴 이후
4.1. 모델 전향 선언 및 연예계 진출
4.3. SPOTV 해설위원
5. 여담
5.1. 외모
5.2. 통산 홈런
5.2.1. 이대형의 저주?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現 대한민국 베이스볼 5 국가대표팀 플레잉코치 및 SPOTV 해설자. 선수 시절 포지션은 외야수.

KBO 리그 4년 연속 도루왕 수상자이자 역대 최초의 3년 연속 60도루, 역대 3번째 개인 통산 500도루 등의 굵직한 기록을 남긴 선수로 평균 이하의 타격 생산 능력을 보였지만 도루만으로 한시대의 스타로서 임팩트를 남겼다.

본인을 대표하는 시기는 LG 트윈스 시절로 팀 컬러와 어울리는 선수로 종종 꼽혔으며, 4년 연속 도루왕 시절이 바로 이 시기. 타팀에서 타격적인 반등을 보이기도 했지만, 활약 기간이 1~2년에 그쳤기에 지나가는 추억 정도로 회고된다.

KBO 리그의 대표적인 미남 선수로 꼽힌다.

2. 선수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대형/선수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이대형/플레이 스타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은퇴 이후[편집]



4.1. 모델 전향 선언 및 연예계 진출[편집]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2020년 10월 13일, 남성 패션 매거진 '로프시엘 옴므 YK에디션'을 시작으로 모델로 전향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원래부터 잘생긴 외모로 현역 시절에도 화보를 찍었던 적이 있었던 만큼, 팬들은 그의 제 2의 인생을 응원하고 있다.‘슈퍼소닉’ 이대형, 패션 화보 촬영…모델로 연예계 데뷔 신고 이후 심수창과 함께 도시어부에 출연했다.

2021년 4월 19일, KBS1에서 방영된 장애 이해 교육 드라마 '나의 너에게'에 특별 출연해 공중파 진출에 성공했다.

2021년 4월 20일, LG 트윈스 "트윈스샵" 매장에 일일 알바 직원으로 등장하였다.# 외부 매장에서 있다가 경기 시작전에 구장 내 매장으로 들어가서 일했다고. 그래서인지 이 날 여성팬들의 사진요청으로 구장 1층이 붐비기도 했었다.

2021년 4월 27일부터 6월 22일까지 TV 조선화요청백전에 출연했다.

2021년 7월부터 방송되는 iHQ의 프로그램 '리더의 연애'에 고정 출연한다.

2021년 8월 8일에는 JTBC뭉쳐야 찬다 2에 출연했다. 1차 오디션에서는 4골로 만장일치로 합격했으며, 2차 오디션도 통과했지만 마지막 최종 엔트리에 못 들었다. 도루왕 다운 빠른 스피드와 순발력을 자랑했지만 볼 컨트롤이 아쉬웠고 본인 스스로도 축구 실력, 기술이 부족하다고 인지하고 있지만 전반전에는 외야수 출신 답게 김동현 못지 않은 골키퍼로서의 활약을 보여줘 3:0으로 기존 실력자인 어쩌다 FC멤버들을 이기는 데 한 몫했다.

2021년 9월 5일,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161차 경연에서 아침을 깨우는 목소리 굿모닝이라는 가명으로 참가하였다. 밤을 지배하는 목소리 굿나잇과 1라운드 듀엣곡 플라워의 Endless를 불렀고, 대진운으로 탈락하게 되었다. 탈락 무대로 이승기 [11]의 내 여자라니까를 불렀다. 당시 판정단으로 나왔었던 고유진LG 트윈스 팬이어서, '이대형이 내 노래를 불러줘서 고마웠다.' 고 말했다.

2021년 12월 13일 안싸우면 다행이야 58화, 59화에 출연하였다.

2022년 3월 29일부터 2022년 5월 24일까지 방영한 MBN의 야구 예능 프로그램 빽 투 더 그라운드의 고정멤버로 합류했다.

2022년 10월 24일~31일 안싸우면 다행이야 100화, 101화에 출연하였다.

2023년 9월 11일~18일 안싸우면 다행이야 140~141화에 출연하였다.

4.2. 유튜브 <슈퍼소닉 이대형>[편집]


2020년 10월 13일, 이대형의 유튜브 '53슈퍼소닉'에 제목이 2020년 10월 13일[12]인 1분 내 동영상 8개가 올라왔다. 영상은 타격, 골프, 노는 영상 등이 있다. 그 뒤로 영상은 안 올라오는 중이었다.

그러나 2021년 5월 10일 첫 인사 영상을 통해 공식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유튜브 채널명은 현역 시절 별명인 슈퍼소닉 이대형. 앞으로 팬들과의 소통과 함께 다양한 콘텐츠를 보여주겠다며 호언장담했다. 첫 화 인사 영상에서 여전히 현역의 스탯을 보여주고 있어 댓글에 그아댕[13]이 달리는 중.

현역 시절의 명성 때문인지 구독자 수가 비교적 빠르게 오르고 있다.

선수시절 악연이 있었던 임준혁과의 유튜브 합방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이대형은 임준혁과 연락이 된다고 했고 친하다며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으나 일각에서는 실질적으로 임준혁에 대해서는 언급을 꺼리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기도 했다.[14] 이런 추측에도 불구 훗날 그의 유튜브 채널에 임준혁이 출연하여 당시 상황에 대해 털어놓기도 했다.


4.3. SPOTV 해설위원[편집]




2022시즌부터 SPOTV 스포츠 타임 베이스볼의 크루로 합류했다. 2022년 5월 15일, KIA 타이거즈 vs LG 트윈스전과 2022년 6월 26일 LG 트윈스 vs kt wiz 경기에는 현장 객원 해설로 참여했다. 중계 도중 자학 해설(?)을 하면서 야구팬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했다.

이후 2023년 3월 6일 SPOTV 정식 해설진으로 합류했다는 공식발표가 나왔다. 관련기사

주로 서남 방언을 사용하는 광주광역시 출신이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 KIA 타이거즈에서 선수 생활을 2014년 한 해만 제외하고는 모두 서울이나 수원 등 수도권에서 했기 때문에 해설할 때는 표준어에 가까운 말투를 쓴다. 게다가 은퇴 이후로 유튜브 채널을 오픈하고 간간이 방송활동도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말을 조리있게 하는 편이다.

일단 말을 하면 할수록 졸리고,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많은 같은 회사의 이성우정민태에 비해 말솜씨가 상당히 좋고, 목소리도 아주 듣기 좋은 목소리라며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현역 시절 주루 플레이에 능한 선수였기 때문에 해설을 할 때도 주루를 중점적으로 설명하는 편이다. 특히 경기 흐름과 관련된 투수의 움직임과 주자의 움직임을 잘 설명해주기 때문에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영상 특히 뛰는 야구를 지향하는 염경엽 감독의 작전 스타일을 정확히 간파해내는 모습을 보이며 LG팬들이 놀랍다는 반응이다.[15] 그 중 압권은 8월 4일 대구 삼성전이었는데 염경엽 감독의 작전을 모두 읽어냈다.영상

현역 시절만 해도 주루코치 하면 절대 안 될 거 같은 인물로 꼽혔으나, 해설위원이 된 이후에는 여러 커뮤니트를 중심으로 자기팀 주루코치 해달라고 각 팬덤 커뮤니티마다 호평과 주루코치 영입을 요구하는 글이 올라올 정도였다.

더군다나 같은 스포티비 소속 새내기 해설위원인 오재원의 경우, 중계를 할 때마다 논란을 일으켰기에[16] 이대형은 더더욱 평가가 좋아졌다.

라이브 방송 중에 LG 트윈스 코치로 가겠다는 말을 했다. # 다만 이후 언젠가는 간다는 말을 덧붙였는데, 팬덤에서는 구단과 구두로나마 이야기가 되어 있어서 가능하다는 추측과 함께 2024시즌 박용근을 대신할 주루코치로 선임되는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17]

5. 여담[편집]


  • 심수창과 더불어 LG 트윈스 비주얼의 양대산맥이었으나, 2011년 8월 1일부로 심수창이 넥센 히어로즈 선수가 되었고, 2013년 11월 17일부로 이대형마저 KIA 타이거즈로 FA 이적함으로써 완전히 해체됐으나 심수창은 8년만에 LG 트윈스로 돌아와서 은퇴했다. 이것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 이대형도 다시 LG로 돌아오면 된다는 드립이 있었다. 중간중간에 준수한 외모를 가진 선수들이 LG에 오기도 했으나, 배우급 외모를 가진 이대형, 심수창 앞에서는 명함도 못내밀 수준이다.

  • LG 트윈스를 대표하는 세련된 이미지와 빠른 다리로 슈퍼 소닉이라는 공식 별명이 있으나 성적 하락과 부정적 이미지 덕에 사용 빈도가 많이 줄었고, 국내야구 갤러리에서 '김해갈매기'란 유저가 꾸준글로 달리며 붙인 개씹대형이나 역시 야갤에서 만든 깝대형이라는 별명이 오히려 많이 쓰였다.

  • 잘생긴 얼굴과 날씬하고 길쭉한 몸매와 빠른 발을 가지고 있어서 여성 팬들과 어린이 팬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자랑했다. 고등학교 졸업사진을 보면 운동부 특유의 까까머리도 곧잘 소화한 모습도 보일 정도로 잘생긴 얼굴이지만, 결정적으로 야구선수로서의 성적이 팬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거기에 충공스런 FA 계약은 그의 이미지에 크리티컬을 가했다.[18] 그래서인지 현역시절 LG팬들에게 야구만 잘한다면 그야말로 완벽할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 186.7cm라는 키는 야수 중 상위 20%안에 들며 중견수로만 한정하면 이보다 큰 키는 흔치 않다. 어깨만 제외하면 대단히 좋은 신체조건.[19] 하지만 막상 도루 능력과 수비 능력을 제외하고는 타격 성적은 최악이었기 때문에 이대형을 달갑지 않게 보는 팬들도 많은 편이었다. 1번 타자를 맡았으면서도 2007, 2014, 2015, 2016년을 제외하고는 출루율이 0.350를 넘긴 적이 없으며, 장타율 또한 타율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형편없었다. 리그 통산 OPS 0.662. 이래저래 LG에게 있어서 계륵과 같은 존재였다.

  • 이대형 때문에 이용규가 밀려 KIA 타이거즈로 이적했다. 이용규가 KIA로 트레이드된 건 2005년 초. 이땐 아직 이병규가 건재하던 때였다. 더 웃긴 것은 2013년 시즌 종료후에 사상 최대 규모의 FA시장이 폭발하자 기아에 있던 이용규가 거액 FA 제도한화 이글스로 가자, 바로 몇시간 뒤에 LG에서 주전 경쟁에서 밀려난 이대형도 FA 제도를 통해 KIA 타이거즈로 가버린 것. 이용규를 놓치자 꿩 대신 닭이라고 이대형을 지른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LG 트윈스 팬들은 풍악을 울렸고, KIA 타이거즈 팬들은 광분했고, 타 구단 팬들은 어이없어했다. 어이없는 정도가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는 하단의 FA 부분의 길이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문제는 탈쥐효과에 그 다음해 FA거품이 겹치면서 아주 준수한 영입으로 보인다는 거. 특히 75억 선풍기를 생각해보면 아주 준수한 영입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2014년 타율은 김현수보다 위다. 물론 2014년이 극심한 타고투저라는 걸 감안해야하지만, 그런 부분을 어느정도 감안하더라도 LG 시절의 깝대형을 생각해보면 정말 감개가 무량한 성장이었다.

  • 잘생긴 데다가 말수가 적은 듯하면서도 은근 말이 좀 많아서 가벼울 것 같은 이미지가 있으나 사생활 면으로 잡음이 나온 적이 한번도 없다. 실제 성격은 착하고 순하며 팬 서비스도 좋고[20][21] 특히 어린이들에게 기부와 봉사활동을 정기적으로 하는 등 선행을 자주 한다. 실제로 현역 시절에도 실력에 관한 비판은 들었을지언정 인성에 관한 비판은 들은 적이 없었던 선수였다. 이용규와 반대다 [22] 자기관리 역시 몸무게 78kg를 계속 유지할 정도로 뛰어난 편. 은퇴 이후에도 운동을 꾸준히 하기에 체중이 많이 늘지도 않은 상태다.

  • 과거 괴악한 패션 센스로 유명했던 적이 있다. 이후 스톡킹에서 밝혔는데, 전날 입은 옷을 또 입었다간 밖에서 놀다가 외박했다는 오해를 받을까봐 옷장을 전부 뒤져가면서 옷을 입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패션 센스가 개판이 된 것도 있고, 당시 유행에 맞춰 따라가다 보니 상당히 괴악한 조합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샛노란색 옷은 잘생긴 이대형조차 커버해내지 못했다.[23]이후 이대형이 충분히 나이를 먹고 상술한 오해가 사라질 때 쯤 되자 패션 센스에 관한 논란은 사라졌다. 본인은 의외로 그 당시 자신의 패션에 부끄럽지 않다며 다시 한 번 입어보고 싶기도 하다는 말로 당당함을 표했다. 나름의 추억으로 생각하는 듯 하다.

  • 고교 시절까지만 해도 투수였다. 감독의 혹사로 어깨가 망가진 데다[24] 원래 빠른 발이 있고, 좌투수는 내야수로 뛰기엔 불리하다는 점에서 후에 외야수로 전향하게 되었다. 자신의 개인 유튜브 체널 슈퍼소닉 이대형에서 투수로써의 모습을 오랜만에 보여주었는데 소녀어깨라는 별명과는 다르게 구속이 무려 122km이나 나왔다.


  • 2016년 한 시즌 최다 타수 600타수[25], 한 시즌 최다 단타 174개, 한 시즌 최다 내야안타 62개, 한 시즌 개인 최다안타 192개를 기록하였다. 그러나 이 말은 192개의 안타 중 장타가 18개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 현역 시절에 말라보이는 체격[26]과 장타력은 매우 저조한 것을 보면 힘이 약해보이지만 생각보다 힘이 세다. 벤치 프레스 110kg를 들고,[27] 21년도 빽 투 더 그라운드 촬영 당시 악력이 70kg이 나왔다.[28] 현역시절 프리배팅을 치면 잠실상단이었다 한다. 하지만 현역시절엔 극단전인 단타형 타자였다. 기아,kt시절엔 타구 방향이 더욱 좌측 위주의 단타형 타자가 되었다. 기아시절부터 완성된 그 유명한 침대타법 탄생비화.

  • 2010년, 삼성 배터리를 제대로 농락하였다.[29] 이 영상의 백미는 도루 후 이대형과 현재윤의 표정.

  • 등번호는 선수 시절 내내 53번을 사용했다. 3개의 팀을 거쳤음에도 등번호만큼은 항상 53번을 유지했다.[30][31] 고등학교 때는 9번을 달았으나 알다시피 LG의 9번은 현재 영구결번이신 대선배였으니 어림도 없었고, 그래서 남는 번호 중 단 번호가 53번이었다.


  • MBTI는 ISFJ이다.[32]


  • KIA 시절 룸메가 박찬호 선수라고 한다.

  • 2013년 FA 자격을 얻었을 당시 톱타자+외야수 보강을 노리던 한화 이글스이용규 영입에 실패할 시 후순위로 이대형과 계약할 계획이 있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한화가 이용규 영입에 성공하면서 없던 일이 되었다. 재미있게도 이용규의 원소속팀 KIA 타이거즈는 이용규와 계약에 실패하자 대체 자원으로 이대형과 계약해 공백을 메웠다.


김성근 : 내가 볼때 정말 좋은 자질을 가진 선수들이 무지 많아요. 근데 못 키우고 있어요. 에... 에... 지금 바로 제일 아쉬운 게... 내가 한번 만지고 싶은 아이가 있어요. 만진다는 게 다른 거를 뜻하는 게 아니고(웃음) 이대형이예요... 나는 걔를 한번 만져보고 싶어요. 고양으로 한번 보내줬으면 좋겠어. 근데 LG에서 안 보내주더라고... 조금만 만지면 어마어마한 선수가 될 꺼예요. 아마 고양에서 석달만 있으면 어마어마한 선수가 될 꺼예요. 몸이 먼저 나가요. 그것만 고치면 정말 어마어마한 선수가 되지 않나 싶어요. 벌써 몇년째인가 싶어요. 그러니까 사람이 모든 것이 얼만큼 열정을 가지고 덤비느냐..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 은퇴한지 꽤 됐음에도 뭉쳐야 찬다에 나와, 잘 관리 된 몸매와 프로야구 최상급의 피지컬을 자랑했다. # [33]

  • 여담으로 이대형이 자신의 유튜브에서 이 항목을 낭독하는 컨텐츠를 찍었다. 삼권분립이나 기타 별명들에 대해 읽으면서 웃프게 수긍하기도 하고 장점에 대해선 자부심을 가지기도 하면서 그러다가 별명인 개X대형에 대해서는 야 이거 고소해 하며 츳코미를 날리기도 했다.해당영상

  • 팀 선배이기도 했던 심수창에게 상당히 약했다. 스톡킹에서 일화가 나오는데 이대형이 심수창을 상대로 타석에 나오면 심수창이 이대형에게 울상을 지으며 계속 눈빛을 날렸다고 한다. 그 뜻을 보자면 '치지마...치지마...' 라는 시그널이었다고...

  • 아마추어 시절 투수를 해서 그런지 프로 은퇴 후에도 투수 시절을 그리워 하는 듯 하다. 은퇴 후에는 피칭하는 영상을 가끔씩 업로드하는데 좌완 쓰리쿼터 폼으로 직구 커브 슬라이더 포크볼 체인지업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특히 직구 궤적은 뱀직구 궤적이라고 부를만큼 좋다. 제구도 좋은 편이다. 프로시절에는 소녀어깨라고 불릴 정도로 어깨가 약했지만 은퇴 후에는 어깨관리를 잘했는지 구속도 은퇴선수치고는 좋다. 평균 구속은 120대 정도 된다.

  • 장애 이해 영화 다큐멘터리 나의 너에게라는 작품에서 특별 출연했다. 여담으로 LG 트윈스 팬인 배우 이종혁도 출연했다.

  • 별명은 쓰리댕이다.


5.1. 외모[편집]


현역시절엔 항상 미남 선수 타이틀을 달고 다녔으며 은퇴 후에도 그 외모를 거의 그대로 유지한 동안이다. 1983년생으로 2023년 기준 40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20대 시절과 외모 차이가 전혀 나지 않는다.[34] 참고로 최형우[35], 김진우, 권혁, 작뱅, 장원삼, 이현승과 동갑이다. 이것보다 더 무서운 사실은 송창식보다 형[36]이다. 아울러 이대호, 김별명, 이동현[37]보다 한 살 동생. 게다가 키도 장신인 데다 은퇴 후에도 지방 없이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계속 유지 중이다.

다만 이러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아직 미혼이다.[38] 참고로 이대형이 가장 오래 소속했던 LG는 두산, SSG와 함께 결혼 비율이 높은 편에 속하는 팀이다.

파일:external/lh3.googleusercontent.com/%25EC%259D%25B4%25EB%258C%2580%25ED%2598%2595%2520%25EA%25B5%25AD%25EB%258C%2580%25EC%25A7%25A4.jpg
국대짤.

파일:external/image3.inews24.com/1249625964152_1.jpg
어린이 환우들을 돕기 위해 박용택과 더불어 오래전부터 기부도 하고 있었다.

파일:external/pbs.twimg.com/BVakBbOCMAAGfhc.jpg

파일:external/blog.donga.com/20090611100709.jpg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0961064_STD.jpg
도루저지 후.

파일:external/lh6.googleusercontent.com/ldh_.jpg
파일:external/lh4.googleusercontent.com/ldh__.jpg

파일:external/lh6.googleusercontent.com/%25EC%259D%25B4%25EB%258C%2580%25ED%2598%2595%25EB%25B0%2594%25EB%25B2%25A8%25EC%25A7%25A4.jpg

파일:/image/109/2011/05/23/201105231523774240_2.jpg

파일:external/lh5.googleusercontent.com/%25EC%259D%25B4%25EB%258C%2580%25ED%2598%2595%25EC%2598%25A4%25EC%25A7%2580%25ED%2599%2598.jpg
오지환이 그냥 꿇어앉은 것이기는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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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환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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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와도 그림 같은 샷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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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이적 후 찍은 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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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27일 시범 경기에서 광주일보 김여울 기자가 찍은 이용규와의 투샷[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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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장에서. 왼쪽은 이대형(83년생 31세), 오른쪽은 손아섭(88년생 26세).


나성범도 오징어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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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시범경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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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명의 선수들이 뽑은 미남 순위 1위에 랭크되었다. 스포츠경향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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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동님조차도 반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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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프런트에서 이대형의 외모를 아주 찰지게 이용했었다.


5.2. 통산 홈런[편집]


현역 시절 통산 9개의 홈런을 친 극단적인 똑딱이 타자다.[40] 오죽하면 이대형이 10홈런을 치면 탕수육을 준다는 쿠폰 짤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하나는 아쉽게 채우지 못하고 현역 커리어를 마감했다.[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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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전통의 구형. 이 버전도 완전 초기버전에 비하면 깔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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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련미가 돋보이고 2013년 7호 쿠폰까지 반영된 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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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쿠폰 갱신한 뉴등반점 개점 쿠폰[42]

그리고 이 탕수육 쿠폰이 네이버 기사에 올라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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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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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홈런 반영 버전.

2007년의 통산 1호 홈런은 대구 시민구장에서 임동규를 상대로 제대로 당겨치며 담장을 훌쩍 넘기는 홈런이었다. 이 시절까지는 이대형이 홈런을 언제 칠까에 대해 말이 돌긴 했지만, 당겨친 홈런의 비거리를 보고 그래도 한 시즌 서너개는 치겠거니 하는 팬들도 있었다.

2009년의 2호 홈런도 놀랍게도 잠실구장에서, 그것도 X-존이 아닌 원래 잠실 좌측 펜스를 밀어쳐서 살짝 넘기는 홈런이었다. 2홈런까지는 전부 삼성에게 친 홈런이다. 1호 홈런을 허용했던 임동규가 군대를 갔기 때문에[43] 2호 홈런을 허용한 안지만도 조만간 군입대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삼성팬들의 우려를 받았다.[44] 안지만의 경우 2010년 이후 각성한데다 그 해 광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뽑혀 금메달리스트가 되는 등 병역 면제까지 받아서 현재까지 이대형의 저주 리스트 중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대신 이대형에게 홈런을 맞은 그 해(2009년)에 어깨 부상으로 인해 일찌감치 시즌을 접어야 했다.

2009년 6월 10일 잠실구장에서 3호 홈런을 쳤는데 인사이드 더 파크 홈런이다.[45] 참고로 이대형의 3호 홈런을 허용한 두산의 정재훈 투수는 홈런 맞은지 얼마 안 돼서, 어깨 부상으로 2군에서 휴식한 후 2009년 8월 9일 LG:두산 전에 1군 복귀 후 첫 등판을 가졌는데, 9회 말 또 이대형에게 끝내기 적시타를 맞아서 패전 투수가 되었다.

2010년 6월 18일 또 잠실구장에서 롯데 자이언츠 송승준을 상대로 오리지널 펜스를 훌쩍 넘기는 통산 4호 홈런을 쳐냈고, 2011년 10월 3일 잠실 야구장에서 두산 베어스 김승회를 상대로 변화구를 풀스윙도 아니고 컴팩트한 스윙으로 대처해 우측 담장을 넘기는 통산 5호 홈런을 쳐냈다.

그리고 2012년 7월 13일 잠실 야구장에서 넥센 히어로즈 김영민을 상대로 좌익수 쪽 담장을 살짝 넘기는 솔로홈런을 밀어치기[46] 뽑아 내며 통산 6호 홈런을 기록하였다.

2013년 6월 4일 잠실 야구장에서 9회말에 대타로 나와서 두산 베어스 홍상삼을 상대로 초구에 우측 담장을 넘기는 솔로홈런을 때려내여 통산 7호 홈런을 기록했다. 그러고 이 홍상삼은 홈런을 맞은 3일 뒤 채태인에게, 4일 뒤 박한이에게 연이틀 끝내기 홈런을 쳐 맞으며 역대 최초 2경기 연속 끝내기 홈런 허용 투수라는 타이틀과 함께 두바이 홍이라는 별명까지 생겼다.

2014년 5월 15일 마산 야구장에서 1회초 선두 타자로 첫 타석때 이민호를 상대로 중앙 담장을 넘기는 8호 홈런을 기록.

2016년 6월 18일 수원 kt 위즈 파크에서 1회말 선두 타자로 나선 첫 타석때 이재학을 상대로 밀어서 홈런을 만들어내며 765일만에 9호 홈런을 기록했다.

의외로 1, 8, 9호 홈런을 빼면 전부 다 홈런 나오기 가장 힘든 잠실 야구장에서 쳤다는 것. 다만 2014년부터는 KIA 타이거즈로 이적한 까닭에 잠실에서 타석에 들어설 확률이 줄었으니 잠실구장 편식이 달라질 듯. 실제로 8,9 홈런은 이적 후에 친 것이다.

결국 탕수육 쿠폰 10장은 못 채우고 은퇴를 하게 되었다.

이후 스톡킹에 출연하여 농담으로 심수창에게 홈런을 쳐 10개를 채우지 못해서 아쉽다고 말했다.

통산 10홈런을 치지 못한 타자들 중 통산 타석이 가장 많다.


5.2.1. 이대형의 저주?[편집]


그런데 그에게 홈런을 맞은 투수들은 대부분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일명 깝수육의 저주...라고 알려져 있으나 사실 커리어 전체를 따져보면 절반정도밖에 안된다.

이대형에게 데뷔 첫 홈런을 허용한 허용투수. 2007년 시즌 전 미필이었기에 해외출국 가능 나이가 차서 스프링캠프에 참여하지 못한 탓에 몸을 제대로 만들지 못했고, 결국 시즌 내내 부진했다.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했다가 소집 해제되어 복귀한 2010 시즌, 실전 경험 부족으로 인해 1군에 오르지 못하고 방출되었다.
부상. 다만 안지만이 2010년부터 삼성왕조의 필승계투로 자리잡으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견인하고 KBO 한 시즌 최다 홀드 신기록을 세우는 등 2010년대 초반을 장악하는 중간계투로 자리잡는 듯 했으나, 그 후 두 차례 도박 사건에 연루되어 계약이 해지되어 불명예 은퇴하는 초라한 결말로 남았다.
2009년 플레이오프 피홈런왕. 다만 이후 정재훈의 커리어를 생각하면 사실상 저주의 해당사항이 없는데, 당장 2010년에 홀드왕을 차지했고, 어깨부상으로 아예 4경기밖에 나오지 못한 2012년과 롯데 시절의 2015년을 제외하면 꾸준히 두산의 필승조로 제 역할을 다 해주었으며, 친정으로 복귀한 2016년에는 다시 전성기 시절처럼 리그 최강의 셋업맨으로 자리잡아 두산의 정규리그 우승의 1등공신이 되었다.
이쪽도 커리어 전체를 따져보면 롯데에서 통산 109승을 차지하고 은퇴한 레전드긴 하다. 2014년부터 기량이 크게 하락해 먹튀소리를 들었고 선발 로테이션도 잘 못채웠지만, 이건 단순 슬럼프 또는 연령에 따른 성적 하락 정도로 볼 수 있는 것이었다. 2017년에는 다시 회춘해 팀의 가을야구를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은퇴 직후 금지약물 소지에 연루되어 위증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며 찝찝한 말년을 남기게 되었다.
또 다른 예외사항. 2012년 두산 베어스 선발진의 한 축을 든든하게 맡아주었고 롯데 이적 후에도 불펜으로서 알토란 같은 활약을 해줬다. 단 깝수육을 적립한 2011 시즌만 놓고 보면 2010, 2012년에 비해 ERA와 WHIP이 신인 시절급으로 높게 형성되는 등(2010 4.24/1.19 2011 4.68/1.44 2012 4.04/1.22) 부진한 시즌이었던 건 맞다.
완벽히 슬럼프에 빠져서 연패와 조기강판을 반복하고 있다가 방화범으로 전락했다. 다만 2016년, 김세현으로 개명하고 마무리 투수로 전환한 이후 세이브왕을 찍으며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그 후 KIA로 트레이드된 뒤에는 방화범 → 커리어하이 → 방화범을 반복하다가 2차 드래프트로 SK로 이적 후 큰 활약 없이 방출되었다. 그나마 트레이드된 후 우승반지를 하나 얻었다.
3연전 2경기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상대로 연속으로 끝내기 홈런을 맞는다. 깝수육 이후 9회에만 홈런을 5개 허용했고, 준플에서는 박병호를 피하겠다고 고의사구를 보낸 게 폭투가 되질 않나, 다시 공을 던졌는데 또 폭투, 그리고 풀카운트에서 또 폭투(기록은 안 됐지만)로 박병호는 출루했고, 다음 강정호 타석에서 또 폭투를 해서 한 이닝 폭투 세개(+1)로 화룡점정을 찍기까지 했다. 결국 2019년 방출 후 KIA 타이거즈로 이적했다. 이적 이후 이대형의 은퇴로 인해 저주가 풀렸는지(...) 결정구 커브에 힘입어 필승조 내지 추격조 역할을 든든하게 맡아주었다. 그러나 이대형의 저주는 잠시 쿨타임을 가졌던 것이었다! 2022년 홍상삼은 웨이버 공시되어 KIA에서 방출되었다.[47]
홈런을 맞았던 당시에는 전반기에는 갈수록 부진하여 선발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지만 후반기에는 필승조로 쏠쏠하게 활약해주었다. 그러다가 선발을 맡았던 2016년 7월 부인 폭행과 합법 의혹에 휘말려 크게 곤욕을 치렀다. 더군다나 이민호는 당시 겨우 24살로 선수의 전성기를 향해 달려갈 때 그런 일이 생긴 거다.
당해 올스타전에서 3타자 연속 홈런을 맞았을 정도로 부진했던 데다가 김세현, 송승준 따위는 애기 놀음으로 보일 정도로 큰 사건에 휘말려 포스트시즌에도 출전을 하지 못했다. 그나마 검찰에서 이재학과 관련된 혐의를 모두 무혐의&공소권 없음으로 처분한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 그러나 2017 시즌은 완전히 망했고, 2018 시즌에는 어느정도 부활에 성공했으나 답이 없는 득점지원 속에 시즌 최다패 투수가 되고 말았다. 2019 시즌에도 그럭저럭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나 정작 NC가 통합우승이라는 대업을 이룬 2020 시즌에는 완벽하게 몰락한 모습을 보이며 팬들에게 민심을 완전히 잃었고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도 당연히 제외되었다. 이 여파는 2021시즌까지 이어져 초반에는 완전히 배팅볼 머신으로 전락해 아예 은퇴하라는 악담까지 나올 정도였지만 후반부터 갑자기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48]
한화의 2014년 1차 지명 선수로, 그 이후 두 차례나 토미 존 수술을 겪으며 오랜 시간동안 재활을 거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2019년부터는 재활을 끝내고 1군 무대에도 콜업되기도 하는 등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으나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채 2022년 10월 방출되며 한화의 1차지명 잔혹사에 이름을 추가하게 되었다.

6. 관련 문서[편집]


[1] 부모님의 고향은 광주광역시라 한다. KIA 시절 조부상 있었을 때를 보면 전남 화순선산이 있다. 이대형은 아버지가 한국전력 대천지사에서 근무하던 시절 보령아산병원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이대형은 대천에서 유년기를 보냈으나 야구가 하고 싶어 대도시로 가자고 졸랐고 아버지가 한전 광주지사로 발령이 나서 광주에서 살게 되었다. 현재 본가도 광주에 있다.[2] 이대형 본인은 광주광역시를 고향으로 생각한다. 보통 이런 케이스의 경우는 운동선수를 떠나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자라온 지역을 고향으로 여기기 마련이고, 운동선수들이 보통 고향 이야기를 하면 태어난 곳보다는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한 곳을 고향으로 인식하는 경향도 있기 때문에, 광주에서 야구를 시작한 이대형이 광주를 고향으로 여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허나 은퇴 후 인터뷰에서는 프로선수 시절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냈기 때문에 고향을 서울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성인이 된 이후 기아에 있던 1년을 제외하고는 쭉 수도권에서 보냈기 때문에 그런 맥락에서 나온 너스레로, 또 하나의 고향이 서울이라 여기는 것이지 광주를 고향으로 생각하는 것은 맞다.해설을 하거나 유튜브 영상 촬영, 주변 사람들에게는 호남 방언 억양이 약간 섞인 느낌의 서울말을 쓰지만 고향 친구 앞에서나 편한 상황이 생기면 전라도 사투리를 쓴다.[3] 40세 ○형(炯) ○희(熙) 항렬.[4] 선수시절 프로필에서는 184cm이었는데, 키를 줄인 것이었다. 신인 시절 사람 키가 185를 넘는다는 걸 본인이 징그럽다고 생각해서 구단에 184cm로 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정확한 키는 186.7cm. 사실 이대형의 젊은 시절인 2000년대에는 남성이 날씬하고 중성적인 특성을 갖는 것이 오히려 좋은 것으로 여겨지던 때라 키가 너무 크거나 어깨가 넓은 등 현재 기준으로는 플러스 요인인 점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기도 했었다. 현재는 오히려 머리 크기보다 어깨가 좁은 게 외모에서 더 마이너스 요인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이대형의 생각이 이상한 건 아니다.[5]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투수였다.[6] 이병규의 일본 진출로 공석이된 중견수 자리에 주전으로 안착했으며, 이후 말년 초입까지 거의 중견수로만 출전했다. 선수 시절 대부분을 출전한 이대형을 대표하는 포지션. (통산 1236 경기 출전)[7] 데뷔 초에 간간히 출전하기도 했으나 거의 출전이 없다가 kt 위즈 이적 후 출전 빈도가 늘었다. 2017 시즌엔 주전 좌익수로 출전하기도 했다. (통산 191 경기 출전)[8] 1군에 눈도장을 찍었을 무렵 가장 많이 출전 했던 포지션으로 2006 시즌엔 주전이 마땅치 않았던 우익수 자리의 백업으로 한시즌을 보내기도 했다. 어깨가 강한 편은 아니었지만 중견수 자리에 이병규, 좌익수 자리에 박용택이 공고했기에 나머지 외야수들은 주로 우익수에 출전하던 시기였다. (통산 97 경기 출전)[9] 그 외 2루수 출장 기록이 몇 경기 있는데, 2005년에 2루수로 선발 출장한 기록이 있다.[10] 유급으로 동갑내기들보다 1년 늦게 졸업[11] 참고로 이승기는 LG 트윈스 팬이다[12] 유튜브 에서 제목을 딱히 설정을 안 하면 업로드 한 날짜가 제목이 된다.[13] 그래도 아직 이대형[14] 이대형은 2022년 1월 공개된 구라철유튜브 영상에서 임준혁과의 벤치 클리어링 에피소드를 말하였는데 훗날 기아 타이거즈로 이적하였을 때 회식 자리에서 팀원들이 자신의 옆 자리에 그를 앉혀 술 한 잔 먹고 풀었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를 듣고 있던 출연자들이 불편했겠다고 추론하자 불편하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이대형은 자신의 채널 영상에서, 갈등 상황에서 인간 관계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는 구독자의 물음에 그 사람이 선배라면 안녕하십니까. 후배일 경우 어~ 하면서 기본적인 인사만 하고 지내고, 그러다가도 어떤 계기가 있으면 가까워질 수도 있는 것이라고 답한 적도 있기에 회식날 임준혁이 옆에 앉은 것이 불편하지 않았다는 말은 진심인 듯 보인다. 상황을 설명할 때 보인 말투나 표정으로 보아 오히려 기아 팀원들이 나서서 정리해 준 것이 좋았던 것 같다. 여담으로, 구라철 출연 당시 이대형은 일이 있고 나서 '그 다음 해인가? 제가 기아를 갔어요.'라고 말하였는데 사실 정확하게는 5년 6개월 여 후에 기아로 이적했다. 벤치클리어링은 2008년에 일어난 일인데 상황으로만 기억하고 있다보니 시간의 흐름은 정확하게 인지되지 않았나보다.[15] 여담으로 현역 시절에 워낙 주루 원툴이라는 이미지가 박혀 있어서 그런지 주루 타이밍과 같은 다른 해설들은 그다지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 세세한 요소를 꼼꼼하게 설명하는 모습이 재평가를 받고 있다. LG가 2023시즌이 시작하고 견제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다 보니 더 두드러지는 경향이 있다.[16] 해설 관련 논란뿐만 아니라 인터뷰에서 대선배를 저격하거나 개인 SNS에서 한참 어린 후배에게 폭언을 하는등 여러 논란으로 반시즌도 못가 마이크를 내려놓았다.[17] 2023시즌 LG는 시즌 팀 도루 갯수가 166개로 2등인 두산과 33개 차이를 내며 압도적 1위를 기록했지만, 동시에 KBO 역사상 최고로 많은 주루사를 기록했다. 주루코치에 변화가 있어도 이상할게 없는 상황.[18] 재밌는 점은 트레이드나 은퇴가 아닌 FA로 팀을 떠났는데도 LG 트윈스는 프론트 차원에서 환송식을 열어줬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환송식이 열릴 정도로 실력은 몰라도 성실함과 인성만큼 매우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환송식이 열린 것이다.[19] 다만 변명의 여지가 있는 게, 원래 고교시절까지만 해도 투수였다. 당시 감독이 그를 엄청 혹사시킨 탓에 어깨가 결국 망가져 수술 후 군면제 처리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대형을 베이징 올림픽으로 군면제가 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아니다. 애초에 베이징 올림픽 지역예선에서만 엔트리에 들었었고 본선에는 워낙 쟁쟁한 선수들이 선발되었기 때문에 이대형은 승선하지 못했다.[20] 기아 시절에 좋은 편이라는 말이 꽤나 있었다. 다만 LG 시절에서는 여성 팬과 어린이한테만 좋다라는 얘기가 많았다. 그래도 KT 와서는 달라졌다는 얘기도 있고, 이대형의 팬이 여성팬이 많다는 걸 생각해 보면 어린이들과 여성 팬에게 우선으로 했을 가능성도 있기야 하다. 헌데 KT시절에는 어린 팬의 사인요청을 무시해서 구단이 강제 사인회를 개최한 적도 있다. 그런데 불가피한 사정에 의해 일일이 모두에게 사인을 다 해주지 못할 때면 마음이 좋지 않다고 한다. 은퇴 이후로도 사인 요청에 꾸준히 응하는 것을 보면 그냥 하는 얘기는 아닐 듯.[21] # # # # [22] FA 이적 후 첫 타석에서의 이대형 그리고 관중들의 반응 해설진의 말에 묻어난 이대형의 태도 자신의 파울 타구를 맞은 관중을 걱정하는 모습 경기 후 병원을 찾아 응급실 앞에서 1시간 이상 대기 메르스 방역 지침에 의해 관중을 직접 만나지 못 하자 관중의 부모님께 사과한 이대형 [23] 사실 2000년대 중반이 워낙 한국 패션의 암흑기라서 저때 입은 옷은 지금 시점에서는 거의 다 촌스럽다.[24] 이는 이대형의 소녀 어깨의 이유와 군 면제 사유가 되기도 한다. 다만 병역 면제를 받은 데에는 프로 선수로 생활하며 얻은 부상 탓에 어깨 수술을 두 번이나 받은 것이 주효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대형은 양어깨 탈골이며 한 쪽만 수술하고 나머지 한쪽은 근육으로 지탱해 둔 채 지내고 있다. 실제로 22년 출전한 베이스볼5 마지막 경기에서 어깨가 살짝 빠졌다고 한다.[25] KBO 최초 600타수[26] 은퇴 후에도 체격은 비슷하다.[27] 참고로 말하자면, 웨이트 트레이닝 동호인들 사이에서 나오는 말인 3대 운동(벤치 프레스, 데드리프트, 스쿼트) 중에서 보통은 벤치 프레스의 중량이 제일 낮게 나온다. 벤치 프레스를 저 정도로 든다면 스쿼트랑 데드리프트는 최소 110kg보다는 훨씬 높은 중량을 들 수 있다는 뜻이다. 못 해도 3대 350~400은 그냥 나온다는 뜻. 이대형의 경우엔 은퇴 후에도 꾸준히 운동을 하기 때문에 3대 중량은 더 높을 수도 있다.[28] 야구선수들의 운동능력은 어지간한 일반인과는 비교도 안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에 건장한 성인 남성도 투구 시 구속 80km도 넘기기 힘듦을 생각하면 차원이 다르긴 할 것이다.[29] 상황을 설명하자면 2사에 이대형이 출루했는데, 차우찬과 현재윤은 그를 의식하며 3개의 피치아웃으로 풀카운트를 만든다. 그러나 이런 삼성 배터리의 노력을 가볍게 무시하며 이대형은 풀카운트가 되자 차우찬과 현재윤이 사인을 주고받으려 하고 있을때 빈틈을 찾아 도루를 성공시키며 현재윤을 벙찌게 만들었다.[30] 참고로 준족인 선수는 보통 한 자릿수나 낮은 번호를 쓰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이대형은 데뷔할 때부터 53번을 사용한 경우이다. 신인 때 달았던 번호를 선수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상징으로 만든 케이스라고 봐야할 듯.[31] 이대형은 또한 좌타인데, 이대형의 영향으로 53번을 사용하는 좌타자들이 많이 생겼고 53번은 좌타자라는 인식이 강하게 되었다. 물론 투수(김민우, 신민혁, 최하늘)도 있고 우타자(양석환)도 있지만.[32] 7분 29초부터 7분 38초 경의 내용을 통해 ISFJ-T임을 알 수 있다. 맨 처음에는 ESTJ가 나왔다고(36초~51초) 한다.[33] 프로 생활을 하면서 부상이 단 한번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골절로 인한 부상 위주였지 근육으로 문제된 적은 없었다. 뭉쳐야 찬다 오디션 때 본인 또한 505도루를 했지만 근육이 올라온 적은 단 한번도 없다고 밝혔다.[34] 비슷한 예시로 박정진이 있다.[35] 심지어 최형우는 양력으로 빠른 84년생이다. 따라서 동갑이나 다를게 없지만 순수 나이로만 따지면 이대형이 1살 형인 셈.[36] 이대형 1983년생 > 송창식 1985년생. 뭐 굳이 무서운 사실을 더 표기하자면 엄청난 노안으로 유명한 장민재, 안승민보다 거의 10살 가까이(!) 많다.[37] 나이로만 따지면 동갑이지만 이동현이 빠른 년생이라서 형이다.[38] 공교롭게도 같은 소속팀에 오래 있었고, 이대형과 함께 LG의 외모를 책임(?)진 심수창도 노총각이었다가 은퇴 후 늦게 결혼하였다.[39] 둘의 인연은 참 묘하다. 이용규가 LG에 입단했을 적엔 같은 포지션인 이대형에게 밀려, 결국 KIA로 트레이드 되었고, 이후 2013년에 이용규가 한화로 이적한 후, 그 자리를 대체하기 위해 이대형이 KIA에 오게 되었다.[40] 은근히 간과하지만 통산 1414개의 안타를 쳐낸 선수며 200안타 언저리인 192안타까지 쳐봤다. 하지만 그 중에 장타가 200개가 채 안된다. 심지어 통산 도루 개수가 본인 2루타의 4배에 가깝다.[41] 사족이지만 비슷한 시기에 이대형과 반대로 도루에 매우 취약한 이대호는 도루 10개의 떡밥이 있었고 그로인해 '이대호 10도루 vs 이대형 10홈런'으로 누가 더 빨리 해낼지 하는 떡밥이 있었다. 이대형은 은퇴시점에서 아쉽게 1개가 모자랐는데 이대호는 딱 10개를 채우고 은퇴하여 이 떡밥은 이대호의 승리로 끝났다. 그래서 둘 다 '이대호가 도루하는 소리한다', '이대형이 홈런치는 소리한다'는 밈이 있었다.[42] 이대형과 비슷한 과로 생각된 서건창도 중국집 쿠폰이 있는데 3년차만에 포텐이 대폭발해 이대형의 적립한 쿠폰을 다 따라잡고 탕수육까지 공짜로 나눠주었다. [43] 그후 임동규는 2010년 시즌 후 방출까지 되었다.[44] 실제로 2010년 삼성 동료 조동찬과 함께 상무 피닉스 야구단 입대 신청을 해 합격까지 했다. 그런데 합격 직후 출전한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 병역특례를 받은 것. 그리고 안지만과 조동찬이 빠진 자리를 채운 선수가 바로 김현우박동원.[45] 통상 그라운드 홈런은 에러성 수비가 동반되는데 이때 이대형은 장타를 친 후 전력질주만으로 그라운드 홈런을 쳐냈었다. 전성기 시절 이대형의 주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 다만 이때는 두산의 홈경기였기 때문에 X-존이 없었으나, 이거 가지고 이대형의 홈런이 폄하될 이유는 없다.[46] 그 깝깝한 타격폼에서 김영민의 제구 안되는 높은 강속구를 사실상 찍어때려서 홈런을 만들어냈다.[47] 다만, 본인이 구단에 직접 방출을 요청했다.[48] 특히 10월에는 두산 베어스를 상대로 완봉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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