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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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문화대학교 융합고고학과 명예교수
이도학
李道學 | Lee DoHak


파일:external/img.seoul.co.kr/SSI_20101021175959_V.jpg

출생
1957년 10월 (66세)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본관
전주(全州)[1]
가족
아내, 딸2, 아들1
학력
동국대학교 (사학과 / 학사)
연세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 석사[2])
한양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 박사[3])
현직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융합고고학과 명예교수
약력
연세대학교 강사 역임
한양대학교 강사 역임
백제문화제추진위원 역임
동국사학회 회장 역임
한국고대사학회 평의원
동아시아고대학회 회장 역임
한성백제문화제추진위원회 위원장



















1. 개요
2. 상세
3.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역사학자. 현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융합고고학과 교수와 동국사학회 회장, 동아시아고대학회 회장, 고조선단군학회 회장, 한성백제문화제추진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또한, 한국고대사학회와 동아시아고대학회 등의 평의원이다.



2. 상세[편집]


1957년 10월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에서 태어났다. 1984년 2월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1991년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개성있는 연구와 참신한 학설로 학자로서의 역량을 보였고 출판, 방송 활동 등으로 인지도를 쌓았다. 많은 논문을 발표하며 연세대학교와 한양대학교에서 강사로 활동을 하다가 경기도 문화재감정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는 충남 부여에 소재한 한국전통문화대학교의 융합고고학과 명예교수를 지내고 있다. 점차 이름이 알려진 이래로 한때는 역사스페셜, 역사저널 그날과 같은 역사 관련 방송에 출연을 했었다.

한국 고대사, 특히 백제사를 전공하였으며, 이미 1980~1990년대부터 양기석이나 노중국 등과 함께 백제사 연구의 권위자로 이름을 떨쳐왔다. 초기부터 백제와 관련된 많은 논문을 발표하였다. 특히 백제의 국가형성 과정에 대해서는 괄목할만한 연구 성과를 보여 학계 최고의 전문가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한편 1991년경에 한양대학교에서 박사 학위 논문으로 쓴 <백제집권국가형성과정연구> 등은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는데, 오늘날까지도 여러 학위 논문과 연구 서적에 인용될 정도로 높은 퀄리티를 자랑한다. 2017년인 최근에도 여전히 여러 논문과 서적을 낼 정도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정교수직을 퇴임한 현재에도 고대사와 후백제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광개토대왕릉비와 《삼국사기》 <온달전>에 등장하는 아단성을 지금의 서울 아차산성이 아니라 단양의 온달산성으로 비정하는 학설[4], 중국 기록에서 수시로 언급되는 만주에서의 백제 기록을 토대로 만주에서 기원했다는 학설과 흑치상지의 조상들이 분봉받은 '흑치'라는 지역이 필리핀이라는 학설, 장군총광개토태왕의 무덤으로 보는 주장, 백제 비류 시조설도 그가 선구적으로 주장했다[5]. 특히 그는 후백제 연구에서도 선구적인 학자로 주목받고 있다[6]. 그외에도 중국 사서에 적혀 있는 백제의요서진출을 방대한 문헌 자료와 고고학적 물증, 그리고 북조 사서의 왜곡 등을 토대로 체계적이고도 합리적으로 입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동성왕 당시 백제북위 사이에 벌어진 전투에 대해서 요서경략과 결부지어 재해석을 했다.

그렇지만 사이비 역사학자인 환빠와는 거리가 먼 인물로, 오래전부터 《환단고기》를 비판한 적이 있으며[7], 중국이나 일본의 자국 중심의 역사해석에 맞서 식민사관으로 짓눌려 있던 한국사를 복원하는 일에 힘 쓰고 있다.




3. 여담[편집]


  • 특유의 속사포식 달변으로 유명하며, 특히 종종 역사스페셜류의 방송에 출연할 때마다 어김없이 볼 수 있다. 덕분에 수강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일명 "도학대사"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실제로 학술 논문이 아닌 대중 교양서를 보면 그 문체도 상당히 열정적이다.

  • 후백제의 시조인 견훤의 이름을 '진훤'이라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자신이 쓴 대부분의 연구서적과 논문에서도 견훤의 이름을 '진훤'이라 표기하였다. 자세한 것은 견훤 항목 참조. 또한 청나라의 입관 이전까지의 만주족의 역사를 한국사로 편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오래 전부터 밀고 있다


  • 정교수직 퇴임을 몇년 앞두고 활발하게 논문을 발간한 바 있다. 대표적으로 2020년 한 해에만 KCI 등재지 논문 5편과 연구서 4권을 발간하였고, 2021년에는 KCI 등재지 논문 4편과 연구서 1권을 발간하였다. 또한, 2022년에는 <백제사 신연구>와 <후백제사연구>, 그리고 <쉽고도 어려운 한국고대사>를 발간하였고, 그해 8월 말에 정교수직을 퇴임하고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융합고고학과 명예교수로 영전하였다.[8]

  • 백제의 공주인 계산공주 설화를 발굴하고 꾸준히 콘텐츠로의 활용방안에 열정을 쏟았으며 2022년 68회 백제문화제에 계산공주 쇼케이스가 등장하게되어 그의 노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 걸음걸이가 상당히 빠른 편에 속한다. 이도학 교수가 맡은 수업 특성상 답사는 한 번씩 필수로 갔었는데, 답사를 가는 학부생들보다 먼저 앞서나가 목적지에 누구보다 빠르게 도착을 했다. 체력도 60대 평균 남성에 비해 상당히 좋은 축에 속한 편인듯 하다.

  • 개인 자가용이 없다. 본가는 서울에 있는데, 정교수 당시 부여에서 서울까지 버스를 타면서 출퇴근을 했었다.

  • 금실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어느 정도냐면, 아내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웬만하면 다 들어주고, 시간이 날때마다 여행도 자주 가는 등 상당한 잉꼬부부이시다. 또한, 수업 도중에 이따금씩 본인의 딸을 언급하면서 딸에 대한 칭찬을 할 때도 있었다. 딸바보의 기질도 있으신 듯하다.

  • 오로지 고대사 연구에만 평생을 연구하셨는지, 흔히 아는 연예인들이나 TV프로그램, 유튜브 등 인터넷 문화에 문외한이다시피 하다. 다만,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문화유산혁신인재개발원 원장이자 교수인 진경환 교수님에 따르면, 이도학 교수님께서 유일하게 생방송으로 시청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하는데, 그 프로그램 이름은 가요무대라고 한다.

  • 2010년 이후 스마트폰이 한참 보급화가 된 이후로도 2020년이 넘어서까지도 여전히 폴더폰인 2G폰만을 고집하셨다. 다만, 2G가 2023년 6월 30일 완전히 서비스가 종료되어서, 3G로 바꾸셨거나 스마트폰으로 바꿨을 가능성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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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효령대군파 22세 존(存) 학(學) 항렬.[2] 석사학위 논문: 백제 왕위계승과 왕권의 연구[3] 박사학위 논문: 百濟 集權國家形成過程 硏究(백제 집권국가형성과정 연구).[4] 참고로 이도학은 아단성을 두 개의 성으로 보고 있어 책계왕 때 수리하고 개로왕이 전사한 아단성을 아차산성, 온달이 전사한 아단성을 온달산성이라는 주장을 내놓기도 하였다.[5] 고려 초기 후백제 유민들을 포함한 대통합 목적으로 대대적인 '역사 만들기'가 있었다고 보고 있다.[6] 그만큼 후백제를 열정적으로 연구한 학자도 없다.[7] 다만 최근에는 환빠적인 책 중 하나인 《규원사화》에 대해서는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는 《환단고기》와 《단기고사》는 확실한 위서이지만 《규원사화》는 위서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고 본다. 《규원사화》 위서론의 근거가 충분히 반박 가능한 빈약한 근거이기 때문에 확실한 위서라고 단정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진서라고 하기에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적어도 《규원사화》에 한해서는 냉정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는 책이라고 주장한다.[8] 그의 연구 역사를 담은 <나의 연구 회상: 고투苦鬪와 약진 45년>이라는 저서가 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