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리스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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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배경과 건국
3. 쇠퇴와 멸망



1. 개요[편집]


파일:모로코 중세.png
중세 모로코의 삼국시대. 보라색이 바르가와타, 핑크색이 이드리스 왕조, 연두색이 미드라르 왕조, 노란색이 살리흐 왕조.

모로코의 베르베르 지역을 통치한 아랍의 이슬람 왕조.후우마이야 왕조에 이어 두 번째로 아바스 왕조의 직접 지배를 이탈한 국가였고, 최초의 시아파 국가였다. 시아파 중에서 자이드파(5이맘파) 신앙을 갖고 있었다. 모로코 최초의 중앙집권화된 국가로, 페스를 건설했다.


2. 배경과 건국[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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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함마드의 후손 세력들의 계보도. 이드리시 왕조의 초대 군주는 무함마드의 5대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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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리시 왕조의 계보.

제4대 정통 칼리파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의 후손들이 이끄는 시아파의 도움으로 건국된 아바스 왕조가 예상과는 달리 되려 시아파를 탄압하자 786년, 마지막 정통 칼리프이자 선지자 무함마드의 사촌동생이었던 알리의 장남 하산 이븐 알리의 증손인 이드리스 이븐 아브드 알라 이븐 하산은 알리 지지파를 결집하여 성지 메카에서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다.

이슬람아랍의 총본산이자 정통성인 메카 수복을 위해 아바스 조의 칼리프 알 만수르는 가혹하게 진압했고 알리의 후손 대부분이 절멸당했으나 이드리스 본인은 추종자들과 함께 아바스 왕조의 세력이 미약한 이프리키야(아랍인들이 이집트 제외 북아프리카를 부르는 명칭)로 건너가 이라크의 아바스 중앙정부에게 소외감을 느끼던 아틀라스 평원 일대의 베르베르 족을 포섭했다. 비록 그들은 수니파였지만, 정통성과 중앙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쉬아파인 이드리스를 지도자로 받아들여 789년, 모로코에 신왕조를 건설했다. 이드리시를 따르는 쉬아 아랍인들은 로마 시대의 도시인 볼루빌리스(윌릴리) 근처 산간에 물라이 이드리스라는 요새 도시를 세워 수도로 삼았다.

파일:물라이 이드리스 3.jpg
물라이 이드리스에 남아 있는 이드리스 1세의 영묘

뒤를 이은 이드리스 2세가 아버지의 과업을 넘겨받았지만 전국을 장악하는 데는 실패했다.이드리스 2세는 '샤리프'('고귀한 자'. 예언자 무함마드의 직계에게만 쓰임) 칭호를 정착시켰고 801년에 페스를 건설하여 수도로 삼았다. 그 후 페스는 이 지역의 정치적ㆍ종교적 중심지가 되었다.

이드리스 왕조는 베르베르족의 제도를 넘어 일부 아랍인들까지 포함하는 중앙정부를 조직한 최초의 왕조였다. 이들은 모로코에 샤리프 전통을 확립했으며, 모로코 일부 지역을 아랍어권으로 만들었다.

이드리스 2세가 승하한 828년에 이드리스 왕조의 세력은 알제리 서부에서 모로코 남부까지 넓어졌고, 이때가 이드리스 왕조의 세력이 가장 강할 때였다.

3. 쇠퇴와 멸망[편집]


이드리스 2세의 승하 이후 이드리스 왕조는 쇠퇴하여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 무함마드와 그의 형제 7명으로 왕국이 분열되었는데, 모로코와 알제리에서 8개의 이드리스 국이 형성되었다. 무함마드 자신은 형제들에 대한 명목상의 권위만을 가지고 페스만을 다스리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 이슬람과 아랍 문화는 페스에서 아성을 얻었고, 모로코는 사하라 횡단 무역으로 이익을 얻었으며, 이 무역은 이슬람교를 믿는 베르베르인 무역업자들이 지배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과 아랍 문화는 단지 그 영향력을 도시에서만 느끼게 했을 뿐인데, 모로코 인구의 대부분은 여전히 베르베르어를 사용하고 있었다.이드리스 왕조는 그 도시들의 통치자였으며 그 나라 인구의 대다수에 대한 정치적 권력이 거의 없었다.

이드리스 왕조는 베르베르인들에게 심하게 비난을 받다가, 868년 여러 베르베르인들이 이드리스 왕조에 대항하여 공동 전선을 형성햤다. 그들은 세프라우에 있는 그들의 근거지에서 이드리스 왕조의 샤리프 알리 이븐 우마르를 무찌르며 죽일 수 있었고, 페스를 점령할 수 있었다. 죽은 알리의 동생 야히아는 880년에 페스를 탈환하여 새로운 샤리프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드리스 왕조는 바르가와타와 시질마사의 하리히스와 네코르의 수니파를 여러 차례 공격했지만, 이드리스 왕조의 영토로 편입시킬 수는 없었다.

917년 미크나사와 그 지도자인 마살라 이븐 하뷔스는 그들의 동맹군인 파티마 왕조를 대신하여 페스를 공격하고 야히야 이븐 이드리스에게 파티마 왕조를 인정하도록 강요한 후 921년에 그를 투옥했다. 야히아의 후계자가 925년부터 927년까지 페스의 지배권을 가까스로 지켰지만 그는 이드리스 왕조의 마지막 권력을 쥐고 있었다. 페스에서 베르베르족들은 모로코를 가로질러 이드리스 왕조를 무너뜨리려는 격렬한 사냥을 시작했다. 그나마 대부분의 이드리스 왕족들은 모로코 북서부의 즈발라 부족 사이에 정착했는데 부족 장로들이 무함마드 가문의 지역 후손들을 전멸시키기를 꺼리는 덕분에 보호받고 있었다. 그들은 즈발라 지방의 하자르 안나사르 요새에 거점을 두고 있었는데, 거기서 마지막 이드리스가 우화를 다시 파티마 왕조로 바꾸는 실수를 저지르자, 974년 후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파에게 잡혀 985년에 코르도바에서 처형되었다.

이후 파티마 왕조가 이집트로 본거지를 옮기고 시리아와 이집트, 히자즈 경영에 주력을 다하자 북아프리카 지역은 무방비 및 방치 상태가 되어 거의 반 독립 상태나 마찬가지가 되었고 토착 왕조들이 새워졌는데, 모로코에는 무어인무라비트 왕조(알 모라비드 왕조)가 세워져 11세기 말, 스페인 남부를 점령하는 등 번영했다.

한편, 11세기 초엽 코르도바 일대를 지배한 함무드 왕조 역시 이드리시 왕가의 방계 가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외의 이드리시 후손들이 마린 왕조 멸망 이후 분열기이던 1465년부터 1471년까지 잠깐 모로코의 술탄이 되기도 했고, 이후론 셰프샤우엔을 16세기까지 다스렸다. 20세기에 들어선 아라비아 반도의 아시르 지방을 다스리기도 했고 (아시르 토후국, 1906 ~ 1934년) 리비아의 세누시 왕조(1916 ~ 1969년)를 세우기도 했다. 튀니지 베이국 역시 그 후손을 자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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