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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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李夢鶴
(? ~ 1596년)


1. 개요[편집]


조선 중기의 인물. 이몽학의 난의 주도자.


2. 생애[편집]


왕족의 서얼 출신[1]으로 충청도에서 종군할 때 조련 장관이 되어 홍산 무량사에 지내면서 한현과 친교를 맺었는데 이몽학은 어리석고 아무런 재능은 없었다고 한다. 상당히 포악하고 불량해 못된 짓만을 골라 해서 부모까지 그를 호적에서 판 뒤 내쫓고난 뒤라 떠돌이로 살고 있었다.

한현의 지시로 홍주에 있다가 거사하기로 했으며 무량사의 굴 속에 잠입해 중들과 함께 깃발, 몽둥이 등을 만들면서 동갑회를 결성해 패거리들에게 계를 만들고 선전하며 동네 어귀 들판에 모이게 했다. 마을로 들어가 사람들을 불러 모은 후에 "백성을 편안히 하고,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한 일"이라면서 "거역하는 자는 죽이고 순종하면 상을 받는다"고 해 모두 따르게 했으며 사족 자제, 무뢰배 등이 이몽학에게 많이 가담했다.

홍산현을 습격해 윤영현을 사로잡고 박진국도 사로잡아 항복시켰으며 청양, 정산 등 6개의 고을을 공격했다. 군사가 수 천 명이 넘자 김덕령, 곽재우, 홍계남, 이덕형이 자신을 돕는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이몽학은 한양으로 향하려 했지만 무리들이 질서를 잃자 통솔할 능력이 없어 홍주의 한현에게 가려고 했는데 한현은 이미 체포된지라 홍주를 공격했다가 홍가신 등이 저항해 함락하지 못했으며 퇴각한 이몽학은 덕산으로 향하면서 "김덕령, 홍계남 등이 합류해 한양으로 갈 것"이라 했지만 부하들이 그를 믿지 못해 도망치는 자가 속출했고 결국 이몽학은 부하들의 손에 목이 잘려 살해당하고 부하들은 의병들과 관찰사들한테 이몽학의 목을 바쳐 항복하면서 그렇게 반란이 종결되었다.

이몽학의 난으로 인해 이순신의 후원자였던 선조에게 의심증이 도져서 원균을 추켜세우기 시작하고 끝내 이순신의 파직에 이어서 칠천량 해전 크리까지 덤으로 터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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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러나 자세한 가계는 알려진 바 없다. 왕실의 족보인 《선원록》(璿源錄)이나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紀略)에도 나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