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바디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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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의 종파 (마드하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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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슬람과는 별개의 종교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다.
* * 시아파와는 별개의 종파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다.




1. 개요
2. 이바디의 어원
3. 이바디파의 역사
4. 여담



1. 개요[편집]


이슬람의 소수 종파이며, 아라비아 반도 동남부 오만에서 다수를 차지한다. 카와리즈파에서 유래되었다.


2. 이바디의 어원[편집]


이바디즘은 우세한 무다르[1]의 한 부족 출신인 압둘라 이븐 이바드 알 무리 알 타미미의 부친 이름에서 유래한 말이었다. 그는 우마이야 왕조의 통치에 반대하는 저항 운동의 주요 지도자들 중의 한 명이었는데, 그들의 통치가 《쿠란》과 순나에 위배되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 그룹을 이끌어갈 강력한 지도자를 찾으려고 노력했으나 이븐 주바이르와 같은 당시 중요한 인물들로부터 거절되었다.

이로 인해 이븐 이바드는 이 저항 운동을 직접 이끌게 되었고, 실질적인 기반과 명확한 경계, 그리고 지도력을 바탕으로 이바디 학파가 등장하게 되었다.[2] 이맘 제도는 1959년까지 지속되다가 술탄과의 전쟁에서 패배해 해체되었다.


3. 이바디파의 역사[편집]


수니파에 반기를 든 카와리즈파라는 이슬람 과격파가 있었다. 그들은 예언자 무함마드, 초대 정통 칼리파아부 바크르, 제2대 정통 칼리파인 우마르 시대에 있었던 순수한 이슬람 국가 건설을 이상으로 내세웠다. 또한 카와리즈파는 칼리파가 반드시 예언자 가문 출신일 필요가 없으며, 당대의 사람들을 잘 이끌어갈 수 있는 인물이 칼리파로 선택되어야 한다는 혁신적인 사상을 내세우기도 했다. 그래서 이들은 우마이야 칼리파조로부터 대대적인 탄압을 받게 되었고, 이란, 이라크, 북아프리카마그레브 지방(리비아, 알제리, 튀니지), 아라비아 반도, 잔지바르 등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7세기 무렵 여러 지역에 흩어진 카와리즈 분파 가운데 오늘날 이라크의 남부 바스라 지역에 정착한 분파가 바로 이바디파였다. 이바디파는 과격한 행동주의를 없애고, 온건적으로 흘러가면서 수니파와 절충적인 교리를 발전시켜 나갔다. 이 같은 이유에서 일부 학자들은 이바디파가 비록 카와리즈파로부터 유래했고, 교리적인 측면에서 영향을 받았지만 두 파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바디파는 684년 이라크 남부 바스라에서 압둘라 빈 이바드 알 무리 알 타미미(Abdullah bin Ibad al-Murri al-Tamimi)에 의해 창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바디파에 속한 학자들은 수니파 무슬림들도 학생으로 받아들일만큼 개방적이었으며, 우마이야 칼리파조나 아바스 칼리파조와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바디파 역시 정권으로부터의 탄압을 피하지 못했고, 결국 새로운 안식처를 찾기 시작했다.

압둘라 빈 이바드의 제자였던 자비르 이븐 자이드 알 아즈디(Jabir ibn Zaid al-Azdi, 642~714)는 새로운 안식처를 찾아 자신의 추종자들을 데리고 바스라를 떠나 아라비아 반도 동남부의 오만으로 향했다. 그는 오만에서의 이바디파 창시자가 되어 《하디스》를 편찬하고 교리를 정립했다. 이때부터 이바디파는 오만에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749년 오만의 이바디파는 알 줄란다 이븐 마스우드(al-Julanda ibn Mas'ud)를 이맘으로 선출하고 내륙에 위치한 니즈와(Nizwa)를 수도로 하는 최초의 이맘국을 건설했다. 이 최초의 이맘국은 9세기 말까지 지속되었다.[3]


4. 여담[편집]


이바디는 꽤 관용적인 종파이다. 오만의 식민지였던 잔지바르에 기독교 선교사가 성당을 세우는 것도 허락해주었다. 현대 오만에도 다른 걸프 아랍 국가들과는 달리 인도인 노동자에 대한 배려의 일환으로 힌두교 사원을 세워주는 것을 비롯해 가톨릭, 아랍 정교회, 불교 등등 다양한 종교 시설들을 국가가 나서서 지어주고 지원해주고 있다. 다만 다른 종파와 마찬가지로 배교에 대한 처벌이 가능하다. 이바디파의 입장으로는 《쿠란》에 명시된 바와 같이 종교는 강요될 수 없다라는 명제에 충실하기 위함이기도 하거니와, "불신자들이 알아서 지옥에 가겠다는데 우리가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지" 정도의 뉘앙스를 풍긴다.

그리고 이들은 수니파와는 달리 《쿠란》이 창조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보며,[4] 문자 그대로의 《쿠란》 해석을 경계한다. # 이는 곧 극단주의로 빠지는 구멍을 미연에 차단한다는 것이다.[5]

이에 따라 오만은 중동의 스위스라고 불리며, 이슬람 종파 간 갈등으로 헬게이트가 된 이웃 국가 예멘과 시리아, 이라크, 심한 양극화와 이슬람 원리주의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는 달리 정세가 매우 안정되어 있으며, 오만의 외교도 이에 영향을 많이 받아 중동에서 사이가 매우 안 좋은 이스라엘, 이란, 사우디간의 외교 중재를 주로 도맡아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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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장 강력한 북부 아랍 부족 집단 중 하나였다.[2] 출처 http://islam-in-oman.com/kr/ibadhiyah-ko/ibadhiyah-islam-history-sunni-shiite-ko/islamic-democracy-election-imam-ko.html[3] 출처[4] 중세 수니파 무타질라 학파의 견해와 맥을 같이 한다.[5] 많은 원리주의가 성서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데에서 싹이 트고 기승을 부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