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부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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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러시아의 소설가, 시인. 러시아어권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이자 톨스토이와 체호프가 확립한 19세기 러시아의 리얼리즘 문학의 마지막 계승자로 평가받는다.
2. 생애[편집]
1870년 러시아 보로네시의 귀족가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러시아의 오래된 명문가로, 19세기 초의 시인인 안나 부니나와 바실리 주코프스키가 그의 조상이다.
어려서부터 자연에 대한 애정과 감수성, 시적 서정성을 지니게 되었다. 이때부터 푸시킨과 레르몬토프를 동경하며 시를 쓰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는 도박중독자였고 부닌의 집은 재산을 잃고 말았다. 1881년 부닌은 Yelets에 있는 공립학교에 보내졌지만,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크리스마스 방학 이후에 학교에 돌아오지 못하여 1886년 3월에 퇴학을 당했다.
1887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신문 <조국>에 시와 산문을 발표하며 문학을 시작했다. 이때 체호프와 서신을 주고받기도 했다. 1894년 톨스토이를 만나고 나서 그의 문학에 매료되었던 부닌은 그해 가을 톨스토이의 문학을 불법 배포한 혐의로 체포되기도 하였으나 니콜라이 2세의 즉위 기념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다. 1899년부터는 막심 고리키를 만나 그의 문학서클 '스레다'에서 활동하기 시작한다. 1903년과 1909년 2번에 걸쳐 푸시킨상을 받는다.
그 후에도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신사》, 《마을》등의 중단편집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던 중 1918년 러시아 혁명에 반대하여 프랑스로 망명한다.
망명한 부닌은 프랑스 국적을 획득하지 않고 무국적으로 살아간다. 1920년대와 1930년대를 거치는 동안 부닌은 톨스토이와 체호프의 진정한 계승자로 여겨지며 유럽에서 존경받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1933년 러시아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러시아 고전 산문의 전통을 순결하고 교묘하게 따르고 발전시킨 공로" 가 그 이유였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소련 정부는 문호로 명성이 높았던 부닌을 귀국시키려고 노력하였다. 반공 성향의 부닌을 설득하는 데 지극정성으로 공을 들이고 무려 소련 내 작품 출판까지 준비하였으나, 그가 귀국을 끝내 거절함으로써 무산되었다.
1953년 11월 8일, 프랑스 파리에서 사망하였다.
3. 작품[편집]
3.1. 장편소설[편집]
- 아르세니예프의 인생
3.2. 중편 소설[편집]
- 마을
- 마른 골짜기
- 미티아의 사랑
4. 단편집[편집]
세상의 끝으로 그리고 다른 이야기들
들판의 꽃
새의 그림자
애도자 이오안
생명의 성배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신사
창의 꿈
태양의 신전
원시적 사랑
절규
제리코의 장미
미티아의 사랑
일사병
신성한 나무
어두운 골목
봄의 유대
Loopy Ears and Other Stories
4.1. 시[편집]
시(1887–1891)
열린 하늘 아래
낙엽
시(1903)
시(1903–1906)
1907년의 시
선정된 시 (1929년 파리)
5. 여담[편집]
똑같이 혁명 때문에 망명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와는 꽤나 복잡한 사이였다. 나보코프는 부닌보다 30살이나 어렸는데, 처음에는 그를 존경으로 대하였고 부닌도 그에게 호의를 보였다. 그러나 나보코프의 명성이 올라가자 그를 질투하기 시작하며 관계가 악화되었다.
1951년 부닌은 지인에게 나보코프를 '어릿광대'로 칭하였고, 나보코프는 부닌을 ‘늙고 쇠약한 거북이’라 폄하했고 부닌의 80세 생일 파티에서 연설하기를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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