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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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高麗史)

[ 세가(世家) ]
1·2권
3권
4·5권
태조 · 혜종 · 정종定宗 · 광종 · 경종
성종 · 목종
현종 · 덕종
6권
7·8·9권
10권
정종靖宗
문종 · 순종
선종 · 헌종
11·12·13·14권
15·16·17·18·19·20권
21권
숙종 · 예종
인종 · 의종 · 명종
신종 · 희종 · 강종
22·23·24권
25·26·27권
28·29·30·31·32권
고종
원종
충렬왕
33·34·35권
36권
37권
충선왕 · 충숙왕
충혜왕
충목왕 · 충정왕
38·39·40·41·42·43·44권
133·134·135·136·137권 ※ [ 열전 ]
45·46권
공민왕
우왕 · 창왕
공양왕
[ 지(志) ]
47·48·49권 「천문(天文)」 / 50·51·52권 「역(曆)」 / 53·54·55권 「오행(五行)」 / 56·57·58권 「지리(地理)」 / 59·60·61·62·63·64·65·66·67·68·69권 「예(禮)」 / 70·71권 「악(樂)」 / 72권 「여복(輿服)」 / 73·74·75권 「선거(選擧)」 / 76·77권 「백관(百官)」 / 78·79·80권 「식화(食貨)」 / 81·82·83권 「병(兵)」 / 84·85권 「형법(刑法)」
[ 표(表) ]
86·87권 「연표(年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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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列傳) - 후비·종실·공주 ]
88·89권 「후비(后妃)」
90·91권 「종실(宗室)」 · 「공주(公主)」
태조
신혜왕후 유씨 · 장화왕후 오씨 · 신명순성왕태후 유씨 · 신정왕태후 황보씨 · 신성왕태후 김씨 · 정덕왕후 유씨 · 헌목대부인 평씨 · 정목부인 왕씨 · 동양원부인 유씨 · 숙목부인 · 천안부원부인 임씨 · 흥복원부인 홍씨 · 후대량원부인 이씨 · 대명주원부인 왕씨 · 광주원부인 왕씨 · 소광주원부인 왕씨 · 동산원부인 박씨 · 예화부인 왕씨 · 대서원부인 김씨 · 소서원부인 김씨 · 서전원부인 · 신주원부인 강씨 · 월화원부인 · 소황주원부인 · 성무부인 박씨 · 의성부원부인 홍씨 · 월경원부인 박씨 · 몽량원부인 박씨 · 해량원부인
태자 왕태 · 문원대왕 왕정 · 증통국사 · 대종 왕욱 · 안종 왕욱 · 왕위군 · 인애군 · 원장태자 · 조이군 · 수명태자 · 효목태자 왕의 · 효은태자 · 원녕태자 · 효성태자 왕림주 · 효지태자 · 태자 왕직 · 광주원군 · 효제태자 · 효명태자 · 법등군 · 자리군 · 의성부원대군 · 안정숙의공주 · 흥방궁주 · 대목왕후 · 문혜왕후 · 선의왕후 · (정덕왕후 소생 공주) · 순안왕대비 · (흥복원부인 소생 공주) · (성무부인 소생 공주)
혜종
정종
광종
의화왕후 임씨 · 후광주원부인 왕씨 · 청주원부인 김씨 · 궁인 애이주
문공왕후 박씨 · 문성왕후 박씨 · 청주남원부인 김씨
대목왕후 황보씨 · 경화궁부인 임씨
흥화궁군 · 태자 왕제 · 경화궁부인 · 정헌공주 · 명혜부인
경춘원군 · (문성왕후 소생 공주)
효화태자 · 천추전부인 · 보화궁부인 · 문덕왕후
경종
성종
목종
헌숙왕후 김씨 · 헌의왕후 유씨 · 헌애왕태후 황보씨 · 헌정왕후 황보씨 · 대명궁부인 유씨
문덕왕후 유씨 · 문화왕후 김씨 · 연창궁부인 최씨
선정왕후 유씨 · 궁인 김씨
-
원정왕후 · 원화왕후
-
현종
원정왕후 김씨 · 원화왕후 최씨 · 원성태후 김씨 · 원혜태후 김씨 · 원용왕후 유씨 · 원목왕후 서씨 · 원평왕후 김씨 · 원순숙비 김씨 · 원질귀비 왕씨 · 귀비 유씨 · 궁인 한씨 · 궁인 이씨 · 궁인 박씨
평양공 왕기 · 검교태사 왕충 · 효정공주 · 천수전주 · 인평왕후 · 경숙공주 · 효사왕후 · 효경공주 · 경성왕후 · 아지
덕종
정종
경성왕후 김씨 · 경목현비 왕씨 · 효사왕후 김씨 · 이씨 · 유씨
용신왕후 한씨 · 용의왕후 한씨 · 용목왕후 이씨 · 용절덕비 김씨 · 연창궁주 노씨
상회공주 · (유씨 소생 공주)
애상군 왕방 · 낙랑후 왕경 · 개성후 왕개 · 도애공주
문종
인평왕후 김씨 · 인예순덕태후 이씨 · 인경현비 이씨 · 인절현비 이씨 · 인목덕비 김씨
대각국사 왕후 · 상안공 왕수 · 도생승통 왕탱 · 금관후 왕비 · 변한후 왕음 · 낙랑후 왕침 · 총혜수좌 왕경 · 조선공 왕도 · 부여후 왕수 · 진한후 왕유 · 적경궁주 · 보령궁주
순종
선종
정의왕후 왕씨 · 선희왕후 김씨 · 장경궁주 이씨
정신현비 이씨 · 사숙태후 이씨 · 원신궁주 이씨
-
한산후 왕윤 · 경화왕후 · (사숙태후 소생 공주) · 수안택주
숙종
예종
명의태후 유씨
경화왕후 이씨 · 문경태후 이씨 · 문정왕후 왕씨 · 숙비 최씨
상당후 왕필 · 원명국사 징엄 · 대방공 왕보 · 대원공 왕효 · 제안후 왕서 · 통의후 왕교 · 대령궁주 · 흥수궁주 · 안수궁주 · 복령궁주
승덕공주 · 흥경공주
인종
의종
명종
폐비 이씨 · 폐비 이씨 · 공예태후 임씨 · 선평왕후 김씨
장경왕후 김씨 · 장선왕후 최씨
광정태후 김씨
대령후 왕경 · 원경국사 충희 · 승경궁주 · 덕녕궁주 · 창락궁주 · 영화궁주
효령태자 왕기 · 경덕궁주 · 안정궁주 · 화순궁주
왕선사 · 왕홍기 · 왕홍추 · 왕홍규 · 왕홍균 · 왕홍각 · 왕홍이 · 연희궁주 · 수안궁주
신종
희종
선정태후 김씨
성평왕후 임씨
양양공 왕서 · 효회공주 · 경녕궁주
창원공 왕지 · 시령후 왕위 · 경원공 왕조 · 대선사 경지 · 충명국사 각응 · 안혜태후 · 영창공주 · 덕창궁주 · 가순궁주 · 정희궁주
강종
고종
원종
사평왕후 이씨 · 원덕태후 유씨
안혜태후 유씨
순경태후 김씨 · 경창궁주 유씨
수령궁주
안경공 왕창 · 수흥궁주
시양후 왕이 · 순안공 왕종 · 경안궁주 · 함녕궁주
충렬왕
충선왕
충숙왕
제국대장공주 · 정신부주 · 숙창원비 김씨
계국대장공주 · 의비 · 정비 · 순화원비 홍씨 · 조비 · 순비 허씨
복국장공주 · 조국장공주 · 경화공주 · 명덕태후 홍씨 · 수비 권씨
강양공 왕자 · 소군 왕서 · 정녕원비 · 명순원비
세자 왕감 · 덕흥군
용산원자
충혜왕
공민왕
공양왕
덕녕공주 · 희비 윤씨 · 화비 홍씨 · 은천옹주 임씨
휘의노국대장공주 · 혜비 이씨 · 익비 한씨 · 정비 안씨 · 신비 염씨
순비 노씨
석기 · 장녕공주
-
세자 왕석 · 숙녕궁주 · 정신궁주 · 경화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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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전 - 제신(諸臣) ]
92권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 유금필 · 최응 · 최언위 (최광윤 최행귀 최광원) · 왕유 왕자지 · 박술희 · 최지몽 · 왕식렴 · 박수경 · 왕순식 이총언 견금 윤선 흥달 선필 태평 · 공직 · 박영규
93권
서필 · 최승로 최제안 · 쌍기 · 최량 · 한언공 · 류방헌 · 김심언 · 최항 · 채충순
94권
서희 서눌 서공 · 유진 · 강감찬 · 최사위 · 황보유의 장연우 · 양규 (양대춘) · 지채문 지녹연 · 하공진 · 김은부 · 주저 · 강민첨 · 곽원 · 왕가도 · 김맹 · 류소 · 윤징고 · 위수여 · 전공지 · 이주헌 · 이주좌 · 안소광 · 조지린
95권
최충 최유선 최사제 최약 최윤의 · 이자연 이자량 이자인 이혁유 이자현 이자덕 이예 이공수 이지저 이오 이광진 · 박인량 박경인 박경백 박경산 · 황주량 · 류신 · 왕총지 · 위계정 · 소태보 왕국모 고의화 · 문정 · 정문 · 김원정 · 손관 · 최사량 · 김선석 · 임의 임원후 임극충 임극정 임부 임유 임익 임항 · 김한충
96권
최사추 · 김인존 · 윤관 윤언순 (윤언식 윤언민 윤언이) 윤인첨 윤세유 윤상계 · 오연총
97권
김부일 김부의 · 고령신 · 김황원 이궤 · 곽상 곽여 · 유재 호종단 신안지 · 김경용 (김인규) · 최홍사 · 한안인 · 이영 · 한충 · 임개 유녹숭 · 김준 · 류인저 · 강증 · 허경 · 문관 · 정항 정서 · 김극검 · 김약온
98권
김부식 김돈중 김군수 · 정습명 · 고조기 · 김정순 · 정극영 · 박정유 · 최사전 · 김향 · 최자성 · 김진 · 임완 · 최기우 · 김수자 · 최유 · 이숙 이위 · 허재
99권
양원준 · 최유청 최당 최린 최선 최종준 최온 최문본 최평 최옹 · 이공승 · 신숙 · 한문준 · 문극겸 · 류공권 류택 · 조영인 · 왕세경 · 이순우 · 임민비 · 최척경 · 함유일 · 염신약 · 이지명 · 유응규 유자량 · 현덕수 · 최균 최보순 최윤개 · 김거공 · 한유한
100권
두경승 · 우학유 · 노영순 · 조위총 · 방서란 · 박제검 · 기탁성 · 홍중방 · 경대승 · 진준 · 최세보 · 박순필 · 이영진 · 백임지 · 이준창 · 최충렬 · 정세유 정숙첨 정안 · 정국검 이유성 · 정방우 · 정언진
101권
민영모 민식 · 송저 · 김광중 김체 · 안유발 · 최여해 · 최우청 · 왕규 · 차약송 기홍수 · 정극온 · 류광식 · 권경중 · 김태서 김약선 김미 · 문한경 권세후 백돈명 · 노인수 · 김의원
102권
금의 · 이규보 이익배 · 유승단 · 김인경 김승무 · 이공로 · 이인로 오세재 조통 임춘 · 조문발 · 이순목 이수 · 김창 · 송국첨 · 최자 하천단 · 채송년 채정蔡楨 · 손변 · 권수평 · 이순효 장순량 · 송언기 · 김수강 · 김지대 · 이장용
103권
104권
조충 조변 · 김취려 김문연 김변 · 이적 · 채정蔡靖 · 박서 송문주 · 김경손 김혼 · 최춘명 · 김희제 · 이자성 · 김윤후 · 김응덕
김방경 김구용 김제안 김흔 김순 김영돈 김영후 김사형 박구 · 한희유 · 나유 나익희 · 원충갑 · 김주정 김심 김종연 김석견
105권
류경 류승 류돈 류만수 · 허공 허종 허관 허금 허부 허유 · 홍자번 홍승서 홍영통 · 정가신 · 안향 안우기 안목 · 설공검 · 유천우 · 조인규 조서 조연 조덕유 조린 조연수 조위
106권
백문절 백이정 · 박항 · 곽예 · 주열 · 이주 이행검 · 장일 · 김구 · 이승휴 이연종 · 김훤 김개물 · 정해 정오 정포 정공권 · 조간 · 심양 · 추적 이인정 채우 · 김유성 곽린 · 윤해 윤택 · 이영 · 엄수안 · 안전 · 최수황 · 박유 · 홍규 홍융
107권
108권
한강 한악 한수 한방신 · 원부 원충 원호 원선지 원송수 · 김련 · 김부윤 · 정인경 · 권단 권부 권준 권렴 권용 권적 (권고) 권화 권근 · 민지 민상정
민종유 민적 민사평 민변 민제 · 김지숙 김인연 · 정선 · 이혼 · 최성지 최문도 · 채홍철 · 김이 · 이인기 · 홍빈 · 조익청 · 배정지 · 손수경
109권
박전지 · 오형 · 이진 · 윤신걸 박효수 · 허유전 · 박충좌 · 윤선좌 · 이조년 이승경 · 이곡 · 우탁 · 안축 안종원 안보 · 최해 · 장항 · 이성 · 조렴 왕백 · 이백겸 · 신군평
110권
111권
최유엄 · 김태현 김광재 · 김륜 김경직 김희조 김승구 · 왕후 왕중귀 · 한종유 · 이제현 이달존 이보림 · 이능간
염제신 · 이암 이강 · 홍언박 홍사우 류연 · 류탁 · 경복흥 · 김속명 · 이자송 · 조돈 조인옥 · 최재 · 송천봉 · 홍중선 · 김도 · 임박 · 문익점
112권
이공수 · 류숙 류실 · 이인복 · 백문보 · 전녹생 · 이존오 · 이달충 · 설손 설장수 · 한복 · 이무방 · 정습인 · 하윤원 · 박상충 · 박의중 · 조운흘
113권
안우 김득배 이방실 · 정세운 · 안우경 · 최영 · 정지 · 윤가관 · 김장수
114권
윤환 · 이성서 · 이수산 이념 · 이승로 · 황상 · 지용수 · 나세 · 김선치 · 전이도 · 구영검 · 오인택 · 김보 · 변광수 · 정지상 · 임군보 · 나흥유 · 목인길 · 김유 · 양백연 · 지용기 · 하을지 · 우인열 · 문달한 · 김주 · 최운해
115권
116권
117권
이색 · 우현보 · 이숭인
심덕부 · 이림 · 왕강 · 박위 · 이두란 · 남은
정몽주 · 김진양 · 강회백 · 이첨 · 성석린
118권
119권
120권
조준
정도전
윤소종 윤회종 · 오사충 · 김자수
121권
「양리(良吏)」
「충의(忠義)」
유석 · 왕해 · 김지석 · 최석 · 정운경
홍관 · 고보준 · 정의 · 문대 · 조효립 · 정문감
「효우(孝友)」
「열녀(烈女)」
문충 · 석주 · 최루백 · 위초 · 서릉 · 김천 · 황수 · 정유 · 조희참 · 정씨 · 손유 · 권거의 노준공 · 신씨 · 윤구생 · 반전 · 군만
유씨 · (현문혁의 처) · (홍의의 처) · (안천검의 처) · (강화부 세 여인) · 최씨 · 배씨 · 문씨 · 김씨 · 안씨 · 이씨 · (권금의 처)
122권
「방기(方技)」
「환자(宦者)」
「혹리(酷吏)」
김위제 · 이녕 (이광필) · 이상로 · 오윤부 · 설경성
정함 · 백선연 · 최세연 · 이숙 · 임백안독고사 · 방신우 · 이대순 · 우산절 · 고용보 · 김현 · 안도치 · 신소봉 · 이득분 · 김사행
송길유 · 심우경
123권 「폐행(嬖幸)」
유행간 · 영의 · 김존중 · 정세신 · 백승현 · 강윤소 · 염승익 · 이분희 이습 · 권의 채모 이덕손 · 임정기 (민훤) · 주인원 · 이지저 고종수 김유 · 인후 인승단 · 장순룡 차신 노영 · 조윤통
124권 「폐행(嬖幸)」
윤수 윤길보 (송화) · 이정 김문비 이병 · 원경 · 박의 · 박경량 · 전영보 · 강윤충 · 배전 · 민환 · 윤석 · 손기 · 정방길 임중연 강융 · 신청 박청 · 왕삼석 양재 조신경 최노성 윤현 안규 · 최안도 이의풍 김지경 이인길 · 노영서 박양연 송명리 · 김흥경 · 반복해 · 신원필
125권 「간신(姦臣)」
문공인 · 박승중 · 최홍재 · 최유칭 · 박훤 · 송분 · 왕유소 · 송방영 · 오잠 석주 · 김원상 · 류청신 · 권한공 · 채하중 · 신예 전숙몽 · 이춘부 · 김원명 · 김횡 · 지윤
126권 「간신(姦臣)」
이인임 · 임견미 · 염흥방 · 조민수 · 변안열 · 왕안덕
127권 「반역(叛逆)」
128권 「반역(叛逆)」
129권 「반역(叛逆)」
환선길 · 이흔암 · 왕규 · 김치양 · 강조 · 이자의 · 이자겸 · 척준경 · 묘청 (정지상)
정중부 이광정 송유인 · 이의방 · 이의민 · 정방의 · 조원정 석린
최충헌 최이 최항 최의
130권 「반역(叛逆)」
131권 「반역(叛逆)」
한순 다지 · 홍복원 (홍차구 홍군상 홍선 장위 류종) · 이현 · 조숙창 · 조휘 · 김준 · 임연 · 조이 김유 이추 · 한홍보 · 우정 · 최탄 · 배중손
조적 · 조일신 · 김용 · 기철 · 노책 · 권겸 · 최유 · 홍륜 · 김문현 · 김의
132권 「반역(叛逆)」
신돈
133·134·135·136·137권
신우(우왕) (신창(창왕))


이방실(李芳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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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실 장군의 초상화.
1298년(충렬왕 24) ~ 1362년(공민왕 11)

1. 개요
2. 생애
3. 여담



1. 개요[편집]


고려 후기의 무신. 본관은 함안(咸安)으로 조부는 함안 이씨[2]의 시조인 이상(李尙)[3]이고 아버지는 이원(李源)[4]이다.


2. 생애[편집]


이방실은 일찍이 충목왕을 따라 원나라에 들어가 시종한 공로가 있었고 충목왕이 즉위하자 중랑장에 보임되었다가 호군으로 옮겨졌고 토지 100결을 하사받았다. 이후 공민왕 3년(1354년)에 대호군으로 전임되었고 선성 달로화적(達魯花赤) 노연상(魯連祥)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방실이 용주(龍州)의 군사를 이끌고 몰래 강을 건너 노연상의 집으로 바로 들어가 아버지와 아들을 찔러 죽이고 머리를 개경으로 보냈다. 이후 정세운, 유탁, 염제신, 권겸, 원호, 나영걸, 인당, 김용, 이권, 강윤충, 황상, 최영[5], 최운기, 안우 등 40여 인과 서경 수군 300명, 날쌔고 용맹한 군사들과 함께 베이징으로 가서 장사성 토벌전에 참가했다. 공민왕 7년(1358년) 왜구가 교동을 침범하자 안주군민 만호부만호로 발탁된 안우의 부관으로서 편비(偏裨)에 제수되어 왜구의 침입에 맞섰다.

공민왕 8년(1359년) 겨울 홍건적 4만 명이 압록강을 건너 의주, 정주, 인주를 함락시켰고 이방실은 안우와 함께 분전하여 적을 상대로 분전했으나 서경이 함락되는걸 막지 못했다. 공민왕 9년(1360년) 고려군이 대대적인 반격에 착수해 홍건적 수천 명을 주살하자 홍건적은 물러나 용강과 함종에 주둔했다. 이방실은 철화에서 맞닥뜨린 홍건적 100여 명을 주살했고 1월 27일에 상만호가 되어 용강과 함종에 주둔한 홍건적을 공격했으나 홍건적이 고려군이 진을 치지 못한 틈을 타 돌격하여 패퇴시켰다. 홍건적이 정예 기병으로 추격하자 이방실은 안우, 김어진, 대장군 이순 등과 함께 군사 1천 명을 이끌고 적과 죽기로 싸워 수십 명의 머리를 베어 적이 50리쯤 쫓다 돌아가게 했으나 그 과정에서 1천 명이 산으로 달아났다. 그 후 이방실은 안우 등과 함께 철수하는 적을 맹추격해 연주강에서 적을 쳐 홍건적 수천 명이 강에 빠져 죽게 만들었다. 이에 적이 언덕에 올라 저항할 태세를 갖추자 안우 등은 궁지에 몰린 적이 죽기로 싸울 것을 우려해 군사를 거두고 쫓지 않았다. 그날밤 적이 달아나자 이방실이 이른 아침에 병사들에게 밥을 먹이고 그들을 추격해 선주에서 적병 수백 명을 죽였다. 결국 홍건적은 불과 300명만이 살아남아 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 달아났는데 이방실은 공로를 인정받아 개경에 개선한 직후 추성협보공신 추밀원부사에 임명되었다.

공민왕 9년(1360년) 4월 홍건적이 다시 70여 척의 전선을 거느리고 서해도의 풍주, 벽달포와 서경의 덕도, 석도 등지에 정박해 봉주의 성문을 불태웠다. 이에 이방실이 출격하여 풍주에서 적을 격퇴해 30여 명의 목을 베었고 살아남은 적은 배를 타고 도망쳤다. 공민왕은 군신들에게 연회를 베풀며 이방실에게 옥대(玉帶)와 옥영(玉纓)을 하사했다. 이에 노국대장공주가 물었다.

어찌 귀중한 보물을 아끼지 않고 가벼이 남에게 주십니까?


공민왕이 답했다.

우리의 종묘사직이 병란으로 폐허가 되지 않게 하고 백성들이 어육(魚肉)이 되지 않은 것은 모두 이방실의 공로입니다. 내가 비록 살을 베어 주더라도 오히려 보답할 수 없는데, 하물며 이까짓 물건 따위겠습니까?


공민왕 10년(1361년) 10월 홍건적 10만 명이 압록강을 건너 삭주, 나성을 함락시켰고 이방실은 서북면도지휘사가 되어 상원수 안우, 도병마사 김득배 등과 함께 출정했다. 홍건적이 무주에 이르자 이방실은 적은 많고 아군은 적으니 함부로 싸워서는 안된다고 판단하고 군대를 멈춘 뒤 공민왕에게 은주, 순주, 성주의 3주와 양암현, 수덕현, 강동현, 삼등현, 상원현의 5현의 백성곡식을 절령책으로 옮기자고 요청해 허락을 받아냈다. 그 후 이방실은 판사농사 조천주, 좌승 유계조, 대장군 최준 등을 보내 홍건적을 박주에서 격파했고 지휘사 김경제와 함께 개주에 진군하여 적병 150여 명의 목을 베었으며 친히 100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연주로 진격하여 20여 명의 목을 베었다. 그러나 안주에서 홍건적이 습격해 고려군은 패하고 상장군 이음과 조천주도 전사했으며 김경제는 사로잡혔다. 공민왕은 밀직제학 정사도, 김두를 파견해 절령책을 지키게 했지만 홍건적이 밤에 군사 1만여 명을 책 근방에 매복시켰다가 이 울자 철기 5천 명으로 책문을 공격하여 부숴 고려군은 크게 무너지고 안우와 김득배 등은 단기로 도망쳐 돌아왔다. 공민왕은 남쪽으로 파천하기로 결심하고 김용, 안우, 이방실, 최영 등의 만류를 무릅쓰고 11월 19일 개경을 떠나 남쪽의 복주로 향했다. 결국 11월 24일 개경이 홍건적에게 함락되었고 홍건적은 소와 말을 죽여 가죽을 펴서 성에다 두르고 물을 부어 얼게 만들어 사람들이 타고 오를 수 없게 했으며 남녀를 붙잡아 불태워 죽이고 임신한 여자의 을 구워 먹는 등 온갖 잔학한 짓을 자행했다.

공민왕 11년(1362년) 1월 17일 이방실은 안우, 김득배, 황상, 한방신, 이여경, 안우경, 이구수, 최영, 이성계 등과 함께 20만 대군을 이끌고 개경을 포위했다. 그들은 이튿날 새벽에 총공격을 감행해 개경을 탈환하고 홍건적을 몰살시켰는데 궁지에 몰린 적이 결사적으로 항전해 아군의 희생이 커지는걸 막기 위해 숭인문과 탄현문을 열어줬고 잔당 파두반 등 1만 명의 홍건적이 빠져 나와 압록강을 건너 멀리 달아났다.

김용은 정세운이 총병관으로서 홍건적을 궤멸시키고 개경을 수복하는 공을 세우자 공민왕의 총애가 쏠릴 것을 두려워해 안우 등으로 하여금 정세운을 죽이게 만들려 했다. 그는 왕지를 꾸며 글을 써서 조카인 전 공부상서 김림으로 하여금 몰래 안우 등을 찾아가 정세운을 죽일 것을 도모하도록 했는데 이 때 김림은 안우 등에게 말했다.

정세운이 평소에 경들을 꺼렸으니 적을 격파한 후에는 반드시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인데, 어찌 먼저 그를 도모하지 않는가.


안우와 이방실이 김득배의 장막에 찾아가 말했다.

지금 정세운이 적을 두려워하여 나아가지 않았으며, 김용의 글이 이와 같으니, 따르지 않을 수 없소.


김득배가 말렸다.

이제 겨우 적을 평정하였는데, 어찌 마땅히 우리끼리 서로를 죽이겠는가. 옛날 사마양저(司馬穰苴)는 마음대로 장가(莊賈)를 죽였으나, 위청(衛靑)은 소건(蘇建)을 죽이지 않은 것은 고금의 밝은 귀감이니, 신중하게 하지 않을 수 없소. 만약 부득이하면 그를 잡아서 궁궐 아래에 이르게 하여 상(上)의 처분을 듣는 것이 또한 옳지 않겠는가.


안우와 이방실은 이에 물러나와 병영으로 돌아갔으나 밤이 되어 다시 와서 말했다.

정세운을 토벌하는 것은 군주의 명령이오. 우리들이 공을 세우고 군주의 명령을 받들지 않았다가, 그 후환을 어찌하겠는가.


김득배는 끝까지 거부했지만 안우 등이 그를 강요했으며 결국 세 사람은 술자리를 차려두고 사람을 시켜 정세운을 불러서 오게 했다. 정세운이 오자 안우가 장사들에게 눈짓을 해 좌석에서 그를 때려 죽이게 했는데 이후 장군 목충이 군전으로부터 행재소로 찾아와 말했다.

여러 장수들이 정세운을 살해하고 비밀로 하고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공민왕은 문하시중 홍언박, 김용, 경천흥, 찬성사 유탁, 추밀원사 유숙을 불러서 의논하고 직문하 김전을 보내 여러 장수들에게 용서한다는 뜻을 반포하며 행재소로 올 것을 독려해 마음을 안심시키도록 했는데 이 때 복주 수령 박지영이 재추소에서 와서 말했다.

이방실이 홀로 정세운을 벨 것을 모의했고, 안우 등 또한 해를 당했습니다.


이에 인심이 위태롭고 흉흉하자 공민왕은 김전 등을 불러 돌아오게 하고 군사를 보내 토벌하려 했다. 얼마 후 판태의감사 김현과 상장군 홍사우가 와서 여러 장수들이 정세운을 비난한 글을 바치자 공민왕이 이를 보고 크게 기뻐하며 금, 은, 포, 비단을 하사했다. 공민왕은 다시 김전 등을 보내 용서한다는 뜻을 반포하며 박지영을 불러 책망한 후 관직을 파면시키고 향리로 돌아가게 했는데 지주사 원송수를 보내 여러 장수들에게 옷과 술을 하사했다. 이후 안우는 공민왕을 뵈러 행재소로 갔다가 김용에 의해 살해되었고 공민왕은 김용 등에게 교지를 내려 다음과 같은 내용의 방문을 걸게 했다.

안우 등이 불충하여 정세운을 함부로 죽였다. 안우는 이미 처형당하였으니 김득배와 이방실을 잡는 사람은 3등급을 올려 임명하겠다.


공민왕은 대장군 오인택, 어사중승 정지상, 만호 박춘과 김유 등을 나누어 보내 김득배와 이방실을 잡게 했다. 이방실이 행재소에 나아가면서 용궁현에 이르자 공민왕은 이방실의 장인인 우산기 신순과 안렴 성원규에게 가서 맞이하게 했다. 박춘이 도착하여 교지를 가지고 왔다고 하자 이방실은 뜰로 내려와서 꿇어 앉았는데 직후 오인택이 을 빼어 내리치자 이방실은 바로 엎어져 기절했다가 다시 깨어나 담을 넘어 달아났다. 박춘이 쫓아가 그를 잡으려 하자 이방실이 박춘의 칼을 뺏으려 했는데 정지상 등이 뒤따라와 그를 쳐서 죽였다. 얼마 후 김득배도 살해되면서 개경 탈환에 큰 공을 세웠던 세 장수들이 10여 일만에 주살되었다.


3.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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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은 이방실 장군의 묘로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하색리에 위치한다. 고려 후기의 무신 이방실 장군과 그의 두 부인을 함께 모신 합장묘. 1972년 7월 10일 경기도의 기념물 제52호로 지정되었다.

  •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과 창원시 마산구 진봉면의 경계 지점에 한치라는 고갯마루가 있다. 이 곳에는 고려 공민왕 때 20만 무리를 이끌고 수도개경으로 침략해 온 홍건적을 물리친 이방실 장군의 기마동상이 있다. 기마동상은 함안군 가야읍 말산리 함안공설운동장 앞 함주공원에 있으며 <함안 이씨 가보>는 현재 창원시 마산구에 있다고 한다. 함안 사람들[6]은 이방실 장군을 을지문덕이나 이순신에 필적하는 인물로 추앙하고 있다.

  • 홍건적을 물리친 당시 3원수로 불리던 장군들은 이방실을 필두로 안우, 김득배 등이다. 최영같은 유명한 위인들과 활동했지만 이 분들은 그리 명성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아마 비극적인 최후가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 조선시대에 고려를 지킨 16명의 공신 중 1명이 돼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숭의전에 위패가 모셔져 있다. 신도비는 군북면 소포리에 있다.


  • 2005년작 MBC 드라마 신돈에서는 배우 김춘기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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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창원과 합쳐졌다.[2] 현재 마산[1] 중심으로 널리 퍼져 있다. 하지만 창원 쪽과 서울 부분에 많이 배포되었다.[3] 고려의 관리로 이방실이 중시조로 알려져 있지만 알려져 있는 가장 오래된 시조는 이 분이다.[4] 생물학적 아버지다. 당시에 집안에 뛰어난 인물이 태어나면 양자로 임명하기 때문이다.[5] 최영과 아주 친한 친구라고 알려져 있다.[6] 이방실 장군 후손들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