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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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 대한민국 국회의원 (경남 사천시)
제15대
황성균

제16-17대
이방호


제18대
강기갑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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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회휘장(9대-19대).svg 대한민국 국회 독도수호 및 일본의 역사교과서대책특별위원장
제17대 전반기
김태홍

제17대 후반기
이방호


활동 종료

파일:한나라당 흰색 아이콘.svg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정책위원회 의장
17대
서병수

18대
이방호


19대
전재희


대한민국 제16·17대 국회의원
이방호
李方鎬 | Lee Bang-ho


파일:PYH2011030311860005400_P2.jpg

출생
1945년 4월 6일 (79세)
경상남도 사천군 삼천포읍 선구리
(現 경상남도 사천시 선구동)
본관
경주 이씨[1]
배우자
황성희
자녀
슬하 3녀[2]
학력
부산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법학 / 학사)
병역
병역면제 (각막혼탁)
종교
개신교
소속 정당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의원 선수
2
의원 대수
16, 17
약력
삼천포시 청년회의소 회장
경남지부 청년회의소 연수원 원장
삼천포시 체육회 부회장
삼천포수협 조합장(4선)
한려제빙냉동(주) 대표이사
민선 수협중앙회 회장(재선)
대통령직속 농어촌발전위원회 위원
삼천포 중앙라이온스클럽 회장
한나라당 한일어업협정 재협상대책위원장
한나라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수산위원장
한나라당 당과 정치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
한나라당 비상근 대표특보
한나라당 독도수호대책특위 위원
17대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위원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의장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후보 조직위원장
한나라당 사무총장
한나라당 제17대 대통령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선거대책본부 본부장
한나라당 제18대 총선공천심사위원
1. 개요
2. 생애
3. 선거 이력
4. 소속 정당
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정치인이다.


2. 생애[편집]


1945년 경상남도 사천군 삼천포읍 선구리(현 경상남도 사천시 선구동)에서 태어났다.# 부산고등학교(16회), 연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3] 이후 삼천포 지역 수산업계에서 종사하였으며 1990년부터 1995년까지는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도 역임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경상남도 사천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친여 무소속 황성균 후보에 밀려 패하였다. 이후 황성균이 입당하여서 지구당위원장직을 내 놓아야 했다. 하지만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황성균이 불출마를 선언하자,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1년 한나라당 원내부총무에 임명되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6년 한나라당 원내 지도부 선출 때 이재오 의원과 러닝메이트가 되어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하였다.[4]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치러진 한나라당 대한민국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친이계로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였다. 이후 본선후보로 선출되어 당무우선권을 가지게 된 이명박 후보에 의해 한나라당 사무총장에 임명[5][6]되었다.

이후 이명박이 17대 대통령에 당선되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뤄진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사무총장 겸 총선 기획단장으로서 한나라당 공천을 주도하였다.[7]그런데 이 때 친박계 사람들[8]을 공천에서 대거 탈락시켜서 당 내 반발을 야기하였다. 이 때문에 계파 갈등이 일어나 박근혜친박계에 제대로 찍혔고, 자신도 원래 지역구인 사천시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노동당 강기갑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 당시 두 후보의 표차는 겨우 178표차. 참고로 출구조사는 이방호가 경합도 아닌 넉넉한 차이로 이긴다고 나왔다. 이 때 낙선한 이유 중 하나가 친박계 공천 학살에 반발하여 친박연대박사모가 합작하여 야당 후보인 강기갑 당선 운동을 벌였기 때문이다.[9](...) 이 때 노골적으로 사천 지역에서는 한나라당 유세단이 분열이 되어 있었고, 거기다 구 삼천포시 지역과 통합 이전 구 사천군 간 지역감정까지 동원되어 있던 탓에[10], 구 사천군 주민들이 강기갑에 몰표를 주어[11] 결국 이방호를 낙선시키고 만다. 그리고 낙선 이후 낙선소감을 취재하러 온 취재진들에게 욕설과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은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 이후 친이계의 거물이었음에도 존재감이 많이 희석되었다.[12] 이방호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3년이 지나고 아무런 임명직을 맡거나 하지 않았는데 당의 비주류였지만 세력이 약하다고 보기엔 어려웠던 친박계와의 공조를 위해서는 이방호의 기용이 어려웠다는 것이 정설.[13]

이후 2010년 제5대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경남도지사 출마를 선언했지만 대통령이 밀어준다는 소문이 돌던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이 대선 경선에 뛰어들자 격하게 반발했고 결국 경선 기간 중에 예비후보직을 사퇴했다.[14] 이후 2011년 1월에 지방분권촉진위원회 위원장직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19대 총선 출마를 위해 1년만에 사임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선거구 통폐합[15] 등의 이유로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그러자 공천 결과에 불복하며 새누리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경상남도 사천시-하동군-남해군 선거구에 출마했다가 새누리당 여상규 후보에 밀려 또 낙선하였다. 낙선 이후 복당을 신청했으나 복당을 보류(사실상 거절)당했고#, 2년이 지난 2014년에야 복당에 성공했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예비후보 등록은 하였으나 최종적으로는 출마를 포기하였다. 이후 나이도 칠순을 넘긴 고령이다 보니 사실상 정계 은퇴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새누리당 - 자유한국당 - 미래통합당 - 국민의힘 당적을 유지하고 있다.[16]

친이계 정치인이면서도 의원직을 야당시절에 지냈던 인물. 정작 정권을 다시 가져온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오랜 시간 야인이었고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야인이었다.(...) 이유야 당연히 위에 언급한 박근혜와 친박에 찍혔기 때문.

2016년 총선 불출마 이후 한동안 소식이 없었다가 유튜브에 근황이 공개됐는데 색소폰 연주에 빠진듯 하다.#


3.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96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사천

[[신한국당|
파일:신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17,350 (27.60%)
낙선 (2위)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1997~2004).svg

32,618 (57.32%)
당선 (1위)
초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30,965 (60.09%)
재선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23,696 (47.33%)
낙선 (2위)
[17]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사천·남해·하동

[[무소속|
무소속
]]

28,251 (24.57%)




4.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신한국당|
파일:신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1996 - 1997
정계 입문

파일:한나라당 흰색 로고타입.svg

1997 - 2012
합당[18]

[[새누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2
당명 변경

[[무소속|
무소속
]]

2012 - 2014
탈당[19]

[[새누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4 - 2017
복당

[[자유한국당|
파일:자유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7 - 2020
당명 변경

[[미래통합당|
파일:미래통합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20
합당[20]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2020 - 현재
당명 변경


5.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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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2세손 호(鎬)자 항렬을 쓴다.[2] 차녀 이지현유승민의 측근으로 바른정책연구소 부소장을 지내다가 2018년 12월에 자유한국당에 복당하였다.[3] 과거 김해시장을 지낸 송은복과 고교-대학 동기다.[4] 이 때 대결했던 진영은 김무성 - 고흥길 러닝메이트였다.[5] 한나라당의 당헌 당규상 대통령 선거의 본선후보는 당무우선권을 갖게 되고, 따라서 각종 당직들에 대해서도 임명권을 행사할 수 있다. 당 대표인 강재섭보다 대통령 후보인 이명박의 권한이 더 강했던 셈. 이후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된 윤석열 후보가 본선후보로 선출되고 나서 권성동을 당 사무총장에 임명한 것도 본 당헌당규에 근거한 결정이다.[6] 본래 사무총장이던 황우여는 대선 경선 당시 사무총장을 맡고 있어 중립에 가깝다는 평을 받았지만 친이보다는 친박에 가깝다는 평이 많았다. 그런데 이방호는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가 원내대표를 하던 시절 의기투합한 정책위의장이었고 경선 당시에도 이명박을 지지한 진성 친이계라고 할 수 있던 인물이었다.[7] 당시 공천심사위원회 간사를 맡으며 같이 친박계 숙청을 주도한 이는 정종복.[8] 물론 이 때 날아간 사람들 상당수는 3선 이상의 중진들이었다. 이 때 공천에서 탈락한 중진들은 친박연대를 창당하거나 친박 무소속 연대를 결성하여 한나라당 후보와 대결했고, 상당수가 승리해서 돌아온다.[9] 이 때 제1야당이었던 통합민주당은 승산이 없는 사천시를 비롯한 서부경남권에 자당 후보를 아예 공천하지 않았다.[10] 이 중에서 이방호는 삼천포 출신이었다. 당연히 구) 사천 출신들은 이방호를 마음에 안 들어했다.[11] 정확히는 서포면을 제외한 모든 읍면 지역(구 사천군)이 강기갑을, 남양동을 제외한 모든 동 지역(구 삼천포시)이 이방호를 찍었는데, 강기갑이 이긴 동네가 이방호가 이긴 동네보다 더 많았다.[12] 그도 그럴 것이 지역구 내 경쟁자였던 강기갑은 적극적인 의정활동에 힘입어 인지도가 크게 높아졌지만 반면 이방호는 원외 당협위원장 신분이었기 때문에 잊혀질 수 밖에 없었다.[13] 대신 이명박 대통령은 친박계와의 공조를 위해 17대 대선 경선 당시 박근혜 예비후보 비서실장을 맡았던 재선 의원인 유정복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으로, 일찍부터 친박으로 분류되 최경환을 지식경제부 장관으로 입각시킨 것은 물론 친박-친이의 갈등 봉합을 위해 친박계 좌장으로 불리던 김무성에게 특임장관까지 제의했다. 결과적으로 김무성을 제외한 나머지 둘은 장관이 되었고, 이를 계기로 김무성은 박근혜와 갈라서기 시작한다.[14] 정작 이 때 나선 이달곤은 야권 단일후보였던 김두관에게 패배하고 만다.[15] 인구비례에 따라 선거구 개편이 이뤄졌는데, 그 과정에서 사천시(통합진보당 강기갑)와 남해군-하동군(새누리당 여상규)가 합구되었다. 물론 남해군-하동군 현직 의원이던 여상규가 친이계에 속하는 인물이기는 하나, 지난 대선 당시의 악감정이 있던 이방호에 비하면 친박계 입장에서는 덜 부담스러운 인물이었다.[16] 딸인 이지현이 바른정당을 거친 것과는 대조적이다.[17] 총선 당시 당 사무총장. 여권 실세가 여권이 대승하는 상황에서 험지도 아닌 곳에서 낙선해버린 초유의 사례가 되었다.[18] 통합민주당과 신설 합당[19] 총선 공천 탈락 불복으로 인한 탈당[20]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