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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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011) ||
||<-4> ||





이병훈 감독 장편 연출 작품




MBC 창사 46주년 특별기획 드라마
이산
(2007)
李祘

파일:이산(드라마) 포스터.jpg

장르
사극
방송 시간
월 · 화 / 오후 9:55 ~ 오후 11:05
방송 기간
2007년 9월 17\일 ~ 2008년 6월 16일
방송 횟수
77부작
제작
김종학프로덕션
채널
MBC
제작진
제작
조중현
연출
이병훈, 김근홍
극본
김이영
출연
이서진, 한지민, 이순재, 한상진
시청 등급
파일:15세 이상 시청가 아이콘.svg 15세 이상 시청가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
2. 기획
3. 기획의도
4. 제작진
5. 줄거리
5.1. 1~4회
5.2. 5~10회
5.3. 11회 ~ 32회
5.4. 33회 ~ 47회
5.5. 48회 ~ 61회
5.6. 62회 ~ 77회
6. 특징
7. 명대사
8. 등장인물
8.1. 주요인물
8.2. 왕실 인물
8.3. 정조의 여인들
8.4. 조정 인물
8.5. 무관들
8.6. 실학자들
8.7. 내시부, 내명부
8.8. 그 외 인물
8.9. 아역
9. 소설
10. 역사재현의 오류
11. 여담
12. 해외 방영
13. 수상 내역



1. 개요[편집]



2007년~2008년에 방영된 조선 22대 국왕 정조를 다룬 MBC 사극이다.


2. 기획[편집]


사극으로 유명한 이병훈이 연출을 맡았다. 경쟁작 《왕과 나》보다 3주나 늦게 시작하였으나 불리한 대진운에도 불구하고 12회만에 결국 따라잡고 평균 시청률 26.4%, 최고 시청률 35.5%를 기록하는 등 큰 인기를 누렸다. 이병훈 감독으로서는 《대장금》에 이어 김재형 감독과의 대결에서 또 한 번 승리한 셈.[1]

당초 60부작으로 기획되었으나 높은 인기로 17회나 연장하여 77회로 종영했다. 스페셜 3회까지 포함하면 80부작.

대왕의 길에서부터 시작된 영조사도세자정조 프로젝트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이다. 이산 이전의 이야기는 대왕의 길의 스토리와 일치한다. 그러니 그 이전에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대왕의 길을 보도록 하자.

총 77회 중 절반 이상은 고군분투하는 세손 시절의 모습을 그린다. 연출가인 이병훈 감독에 의하면 정조의 업적보다는 인간적인 고뇌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고. 45회에 즉위한 뒤, 나머지 32회 동안 개혁정치를 펼치는 즉위한 정조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가히 생존물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쉴세 없이 정조를 음해하는 음모들이 펼쳐지고 영조 이순재의 카리스마가 빛나는 전반부는 압권. 즉위 후에도 가시밭길이다. 버라이어티하게 펼쳐지는 위협들을 이산의 오랜 친구인 도화서 다모 성송연과 무사 박대수, 책사 홍국영과 같은 조력자들의 도움으로 이겨내는 모습이 주가 된다.

3. 기획의도[편집]


18세기 후반, 조선조 제22대 임금 정조 이산! 500년 왕조사에서 가장 파란만장하고 가장 굴곡진 인생을 살았던 임금! 가장 열린 생각을 갖고 가장 민주적인 방법으로 모두를 포용했던 현군. 그 극적인 인생의 기다림과 좌절, 성공과 회한, 빛나는 업적과 안타까운 사랑을 드라마로 엮는다.

이산이 그리는 이야기… 이산 정조대왕의 정치. 뛰어난 통치력과 포용력으로 수백 년 이어온 파당 정치를 해소하고 실물경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18세기 조선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룩한 천재군주 정조임금!

드라마틱한 그의 일대기를 그리면서 그의 부국 강병책을 뒷받침한 명재상과 실학파 인재들의 다채로운 업적을 담아낸다.

조선후기 문화의 정수. 수원 화성으로 대표되는 뛰어난 건축기술과 새 문물인 서학도입 등, 조선후기 문화의 정수들이 박지원 이익 정약용 김홍도 신윤복 등 당대를 빛낸 실존 인물들의 역동적인 행적과 함께 드라마에서 화려하게 소개한다. 더불어 사극에서 처음 보여주는 궁중 도화서와 액정서, 세자 익위사의 흥미로운 모습들이 500년 왕조사에서 일찍이 없었던 10여 차례의 국왕 암살미수 사건들과 함께 박진감 넘치게 그려진다.

18세기 전환기의 경제. 가내공업에서 장시경제와 무역으로 옮겨지는 18세기 조선경제의 전환기! 당시 실물경제의 생생한 모습이 극중 인물들을 통해 소개되는데 송연이 이끄는 전국적인 상업조직인 조상계는 훗날 조선 상업의 큰 축인 보부상으로 발전하고 그녀의 조선 특산품들이 청국과의 무역으로 이어진다. 또한, 여주인공 송연(의빈 성씨)와 정조임금의 30년 사랑이 드라마의 한 축을 이룬다.



4. 제작진[편집]


  • 기획 : 조중현
대장금》의 기획자이다.
김이영 작가는 이 작품으로 33세의 젊은 나이에 장편사극 메인작가가 됐다. 이전에도 《허준》 집필에 참여한 적이 있으나 보조작가였고, 이후로는 《내 사랑 팥쥐》,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등 주로 현대극을 썼다. 《이산》의 성공 이후 이병훈-김이영 조합은 《동이》, 《마의》등을 함께 했으나 시청률 30%의 벽을 넘지 못했고, 전작을 답습한다는 비판도 받았다. 이후 김이영 작가는 김상호 감독과 《화정》을 작업했으나 흥행하지는 못했다.
허준》, 《대장금》등을 만든 트렌디 사극의 거장.
  • 연출 : 김근홍[2]


5. 줄거리[편집]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5.1. 1~4회[편집]


1762년(영조 38년, 임오년), 뒤주에 갇힌 아버지 사도세자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기 위해 어린 정조 이산은 시민당으로 향한다. 그러던 와중에 생각시 성송연, 어린 내관 박대수를 만나게 된다. 사도세자를 만나 영조에게 그림을 전해달란 부탁을 받은 세 사람은 그림을 전하기 위해 궁 밖으로 가서 영조를 만나려 하지만 결국 사도세자는 죽고 만다.[3]


5.2. 5~10회[편집]


9년 후 1771년(영조 47년), 이산은 노론 세력들의 음해에 맞서 겨우 겨우 세손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편, 어린 시절 이산을 돕다가 궁에서 쫓겨난 성송연(한지민)은 도화서 다모가 되고, 박대수는 무과를 준비하며 다시 이산을 만날 날만 기다리고 있다. 정후겸은 청국에 보낼 조공품 백우포를 훔쳐 이산을 곤경에 빠트리지만 성송연이 황우포를 호분으로 염색하는 아이디어를 내 해결한다. 이 일로 이산과 성송연, 박대수가 재회하게 된다.


5.3. 11회 ~ 32회[편집]


이후 이산은 책사 홍국영(한상진) 등의 도움으로 노론 세력들의 음해를 조금씩 이겨낸다. 박대수는 무과에 급제하고, 서장보, 강석기 등과 함께 세자익위사가 되어 이산을 지킨다. 한편, 이산과 성송연의 사이가 깊어져가는 것을 알게 된 혜경궁 홍씨(견미리)는 성송연을 청국으로 보내버린다. 이 일로 이산과 성송연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지만 헤어지게 된다.


5.4. 33회 ~ 47회[편집]


5년 후 1776년(정조 원년), 성송연은 우여곡절 끝에 조선으로 돌아와 도화서 화원으로 성장한다. 이산은 노론 세력들에 의해 궁지에 몰리지만 결국 온갖 음해를 이겨내고 보위에 오른다. 영조는 승하 전, 사도세자의 그림 속에 숨겨진 편지를 읽고 후회와 미안함의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하옥된 노론 일파 중 이태석은 고금도에 유배 후 사사, 오인철은 강화도에 유배 후 사사, 홍인한은 여산에 유배 후 사사, 정후겸은 함경도 경원에 유배 후 사사하고, 김귀주는 흑산도에 유배, 화완옹주는 폐서인 후 유배 및 위리안치(圍籬安置)[4]당한다.

한편 자살을 기도했던 정순왕후는 편전에 찾아와 정조에게 충복이 되겠다 선언하고, 그 이유를 묻는 최석주에게 '한번 죽어봤더니 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걸 알았다. 이제 살기 위해서 금상의 충복이 되어야 한다면 기꺼이 그리 하겠다'라고 말한다. 한편 홍국영은 정순왕후가 정치로 정조에게 맞서려 함을 파악하고 정조에게도 '정순왕후가 정치로 공격하려 하니 전하께서도 정치로 맞서시라'고 충언하며 정순왕후에 대한 처벌을 보류할 것을 제안한다.


5.5. 48회 ~ 61회[편집]


이산은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등과 함께 개혁정치를 펴나간다. 효의왕후는 송연에게 입궐에 대한 의중을 조심스럽게 떠보는 한편 홍국영은 자신의 누이를 혜경궁 홍씨의 며느리로 천거한다. 궐에 들어오라는 효의의 제안을 받고 고민에 빠지는 송연. 그런 송연에게 속마음을 내비치는 대수를 보며 송연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5.6. 62회 ~ 77회[편집]


우여곡절 끝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이산과 성송연이 맺어진다. 믿었던 홍국영이 권세를 유지하기 위해 중전을 암살하려는 모의를 꾸몄다가 발각되어 모든 권력을 잃고 귀양을 갔다 사망한다. 마침내 혜경궁 홍씨에게 인정받은 성송연이 낳은 문효세자가 홍역으로 요절하고, 성송연은 둘째 임신 중 장결병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이후 최석주와 민주식, 그리고 정순왕후가 개입한 노론 최후의 반란도 진압되고, 14년 후, 이산 역시 죽음을 맞이한다. 그후 아들 순조가 즉위한다.


6. 특징[편집]


정조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임오화변을 시작으로 한다. 임오화변 시기에 어린 정조가 사도세자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중 어린 생각시와 상직소환의 도움을 받는데, 이 세 아이가 평생 사랑과 우정을 나누게 된다는 스토리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훗날 어린 생각시 송연은 정조의 후궁 의빈 성씨가 되며, 상직소환 박대수는 정조의 호위무사가 된다.

영조로 출연한 이순재는 극강의 카리스마를 선보이며, 박근형과 더불어 가장 영조 역에 어울리는 탤런트가 되었다. 여기에서 영조는 주인공 이산이 어린 시절에 정말 만만찮은 군기로 다스렸다. 주인공 이산 역에는 이서진이 출연하여 그에 못지 않는 열연을 보여주었다. 히로인인 성송연(후에 의빈 성씨) 역에는 한지민, 정조의 그림자이자 송연의 친구인 박대수 역에는 이종수가 출연했다. 하얀거탑과 더불어 배우 한상진이 미국으로 이민가지 않도록 붙잡은 드라마이기도 했다.[5]

특이하게 송연이 정조의 오랜 친구[6]인 것으로 설정되어 화제를 모았다.[7] 또한 대장금 이후로 재미들린 것으로 대장금에서 한국 요리한의학을 다룬데 이어, 송연을 원래 도화서의 다모인 것으로 설정하여 도화서의 이모저모를 자세히 보여주기도 했다.[8] 그런데 도화서가 나오면서도 김홍도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는데, 처음엔 등장 계획이 있었으나, 정조의 일대기에 집중하기 위해 백지화했다고 한다.기사

이병훈 감독은 당초 차기작으로 '정조'와 '김홍도'를 놓고 고민했는데, 그림을 영상으로 나타내기 어렵다는 점과 김홍도를 주인공으로 할 경우 신분이 낮은 주인공이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직업세계에서 성공을 거둔다는 면에서 전작들과 지나치게 유사해질 것을 우려하여 최종적으로 정조를 선택했다고 한다. 김이영 작가 역시 그림만으로 50부작을 이끌어가기는 힘들다고 판단했다고. 때문에 직업세계가 주된 배경이고 왕실이 보조적인 위치였던 전작과 달리 왕실이 중심이고 도화서는 보조적으로 등장한다. 히로인 송연이 도화서에 있을 때는 비중 있는 에피소드[9]들이 등장하기도 했으나 그녀가 후궁이 된 뒤(62회~)부터는 매 회에 한 신 정도 감초 조연들이 수다를 떠는 공간으로 전락해버렸다.

원래는 32회에서 혜경궁 홍씨(견미리)에 의해 청국에 보내진 송연이 5년 후 조상계(보부상 조직)의 우두머리로 변신해 정조시대의 상업을 보여준다는 설정이었으나 무슨 이유에선지 취소되고 그냥 돌아와서 계속 그림을 그리는 걸로 바뀌었다.

정순왕후 김씨(김여진)는 이 드라마에서 최종보스의 이미지인데, 노론 신료들과 회합하는 장면에서는 그야말로 악의 카리스마를 마음껏 발산하고 있다. 이 장면은 한성별곡의 장면과 비슷하지만, 두 장면의 느낌은 사뭇 다르다.

이덕일의 영향력이 이 드라마에도 유감없이 발휘되는데, 노론 음모론을 반영하여 노론세력은 악의 축으로 비하되고 있다.[10] 하지만 PD도 논란을 의식해 혜경궁 홍씨가 사도세자를 살해하는데 가담하지 않은 것으로 표현하고, 노론 중에서도 장태우와 같은 올곧은 보수주의자들도 등장시켰으며, 정조의 죽음을 병사로 그려 이덕일 사관을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않았다.[11]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역사 왜곡이 매우 심한 편이다. 가상의 인물 몇몇을 추가한 것이 아니라 거의 스토리가 통째로 사실이 아니다. 정순왕후가 만악의 근원인 최종보스로 나오고 그걸 극대화 하기 위한 허구 설정으로 쿠데타 시도를 주도하다가 정체가 들통나는 것으로 극이 전개됐다. 그 바람에 정작 발이 묶이게 되어 정순왕후가 정조가 죽을때까지 최고의 정치적 라이벌임에도 불구하고 후반부에 존재감이 떨어지게 만드는 상황이 됐다.

7. 명대사[편집]


왜 그리하였느냐… 왜 그때 내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은 것이냐…? 어째서… 살아서도 죽어서도 너에겐 이토록 모질고 나쁜 아비로 만든 것이냐…? 이 아비를 용서하지 말거라… 미안하다… 미안하다… 선아…!

-

38회 영조. 사도세자의 무덤에 찾아가서 흐느끼며[12]


알고 있느냐? 내 어린 시절 네 손에 이 술띠를 묶어 주었을 때 내 마음도 함께 묶었었다는 걸… 알고 있느냐? 그러니… 가져가거라, 내 마음… 네가 가져가거라. 네 눈 속에 내 모습을 담아간다 했으니… 기다려다오… 내 너와 향이를 만나러 갈 것이니 그 때까지 기다려다오, 송연아….

-

정조. 죽은 송연에게 남기는 말


떠난다는 인사를 글월로 대신하는 무례를 용서하시옵소서, 저하. 이렇게 인사도 드리지 못하고 떠나지만… 지난 세월, 감히 저하와 맺었던 인연은… 제 생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기억하십니까? 어린 시절, 세상에 홀로 남겨진 절, 저하께선 다정하게 동무라 불러주셨습니다. 그리고… 가슴에 깊이 묻어두었던 제 꿈 또한 꺼내주셨지요. 하오니 되겠습니다, 저하… 말씀하신 대로, 약조드린 대로, 천하다 포기하지 않고, 아녀자라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함께 넣은 풍잠은… 저하께 드리고 싶었던 제 마음입니다… 마노라는 보석으로 만든 것인데, 비록 보잘것없는 하찮은 것이지만, 긴긴 세월 땅 속에 묻혀, 빛깔과 무늬를 만든 마노는 수천 년이 지나도 한 점 변치 않는 것이랍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저하… 수천 년이 지나고 거기서 또 수천 년이 지나도 저하의 곁에 머물며 지내온… 고마운 시간들을… 잊지… 않겠습니다.

-

의빈 성씨(송연)


전하, 어찌 지내고 계시옵니까? 그곳에서… 의빈 마마는 만나셨사옵니까? [13]

알고 계십니까 전하? 저는 지금도, 그날 그 순간을 또렷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 벅찬 희망이었습니다. 눈부신 태양 아래, 누구보다 눈부셨던 전하의 눈빛에는, 이 나라 조선의 가장 아름다운 꿈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 꿈을, 저희들이 꾸겠습니다, 전하. 이제 그 꿈은, 전하의 백성들이 지켜낼 것입니다. 그러니, 끝난 것이 아닙니다. 멈춘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 전하의 그 꿈이, 다시 이 세상을 움직일 것이니, 언젠가 이 나라 전하의 백성들은 그들이 꿈꾸는, 그런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

박대수, 정조와 효의왕후의 묘 앞에서의 독백



8. 등장인물[편집]



8.1. 주요인물[편집]


  • 박지빈이서진 : 정조 이산[A]
    •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아들. 영조의 손자. 11살 나이에 아버지를 잃는다. 이후 매번 노론 세력들의 음해와 위협에 시달리지만 꿋꿋이 이겨낸다. 초반부 힘없고 나약한 세손에서 점차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실학자들을 등용하고 수원화성을 짓는 등 개혁정치를 펼친다. 참고로 이 드라마의 정조는 그야말로 조선제일검이다. 드라마 보다보면 호위무사도 없이 자기를 죽이려는 자객들을 직접 썰어버리는 장면이 많이 나오며, 심지어 자기를 죽이려는 조선 제일의 암살자까지 불시에 기습을 당한 상태에서 1대1로 맞다이 떠서 이기고 죽여버린다... 오히려 호위무사들이 정조보다 약해보인다.
이 부분은 실제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 것일 수 있다. 실제로 정조는 문무를 겸비한 왕으로 여러 기록들이 뒷받침하듯 무술 실력이 대단했다.
홍국영의 최대후원자이며 홍국영과는 원빈 홍씨로 인해 처남과 매제사이이나 원빈의 죽음 이후 홍국영을 관직을 삭탈하고 유배형에 처하는데, 홍국영이 유배지에서 계속 참회하며 병에 걸린 뒤 자신의 환상을 보고 감격한 모습으로 죽었다는 보고를 듣고 혼자서 대체 왜그랬는가라며 착잡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정조도 홍국영을 내심 그리워했으나 홍국영의 죄로 인해 불러들일 수 없었던 것에 대한 정조의 심정을 대변하는 대사라는 평을 들었다.

  • 이한나한지민[14] : 성송연[15]
    • 10살 나이에 역병으로 부모님을 잃고 생각시로 입궁, 정조 이산과 인연을 맺는다. 이산을 돕다 궁에서 쫓겨나 도화서 다모가 된다. 화원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림에 조예가 깊다. 이산과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고 후궁이 되지만 둘째 임신 중 장결병(간경화)으로 사망한다.

  • 이순재 : 영조[A]
    • 조선 제 21대 임금. 손자인 정조를 끔찍이 사랑하지만 그럴수록 더 엄하게 제왕학을 가르친다. 사도세자를 죽인 것을 내심 후회하고 있었으며, 중반부에 치매에 걸리면서 중전 일파에 의해 사도세자를 오해하던 시절의 기억으로 돌아가 세손인 이산을 사도세자를 부정하지 않으면 폐세손한다며 교지를 내렸으나 성송연이 올린 사도세자의 그림과 그 속에 숨겨진 사도세자의 편지[16]를 읽고 자신이 노론에 속아 사도세자를 죽게만들었다는 사실에 경악하고 치매로 흔들리던 기억이 돌아온다. 하지만 치매로 다시 기억이 흐려질까봐 노론 벽파가 장악한 오군영을 도성 100리밖으로 보내고 세손에게 양위를 하려고 하다가 노론 벽파에 의해 오랜 기간동안 치매가 악화되어 편고증이 발병하면서 혼수상태에 빠지고 중전이 그 사이에 군대를 동원해 대전까지 처들어오지만 기적적으로 깨어난 영조가 중전과 노론 벽파들을 모두 체포하고 대역죄로 다스린다고 명한 뒤 세손에게 양위를 한다는 교지를 내린 뒤 자신이 생모와 어린 시절을 보낸 사가로 가서 그곳에서 운명한다.

  • 한상진 : 홍국영
    • 정조의 책사이자 조력자. 가장 가까운 측근이었으나 갈수록 권력에 집착하면서 자신의 누이를 후궁으로 보내고, 심지어 연회를 이용해 효의왕후를 독살하려는 짓까지 저지른다. 하지만 하마터면 효의왕후가 아니라 정조가 독살당할 뻔하면서 그제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를 깨닫고 이를 자백하는 것으로 끝내 몰락한다. 이후 유배지에서도 참회하며 정조를 그리워하다가 병사하는데 정조가 찾아온 것을 보고 몸을 일으키다가 사망한다.

  • 권오민[17]이종수 : 박대수
    • 송연과 함께 산의 오랜 친구이자 정조의 호위무사. 30년간 송연과 함께 산을 지켜주리라 결심하고 일을 시행한다. 훗날 장용영 대장이 된다. 송연을 짝사랑 하지만 송연은 세손만을 바라보고 있어 안타깝다. 주요인물 중 가장 오래 살아남은 인물로, 정조의 승하 이후에도 정조의 아들인 순조를 호위하며, 마지막에는 정조의 능인 건릉 앞에서 정조가 만들고자 했던 세상을 기원하며 대단원의 막을 장식한다. 소설에서는 대비인 정순왕후가 순조의 수렴청정을 하면서 정조의 치적을 모두 되돌리고 정조가 신임한 신하들을 유배형에 처하는 등 악행을 하고 백성들을 수탈하여 정조의 옛신하들과 민란에 뛰어들지만 민란이 실패하고 박대수가 부상입은 몸으로 정조와 의빈 성씨의 릉으로 가서 절을하는 것으로 소설의 결말부는 결국 정순왕후가 권력을 쥐고 안동 김씨들이 세도를 하는 결말로 이를 막으려고 한 박대수마저도 실패하는 암울한 결말이다.


8.2. 왕실 인물[편집]


  • 김여진 : 정순왕후
    • 영조의 계비. 노론 벽파의 수장. 조용하고 온화해보이나 카리스마와 야욕이 넘치는 인물.
원작 및 드라마에서 모두 최후의 승리자로 그려진다. 차이점은 소설에서 정조와 의빈 성씨 모두 정순왕후에게 독살당하는 것이며, 드라마는 의빈 성씨는 산후병으로 정조는 종기가 악화되어 사망한다. 바뀐 이유는 이덕일/비판에서도 나오듯이 이덕일은 정조독살설을 주장하는 유사역사학자인데, 주류 역사학계는 정조독살설을 부정하고 있었으나 정조나 의빈 성씨가 독살되었다는 주장은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이를 소설가들이 소설화한 것이다. 드라마는 주류 역사학계가 부정하는 사실을 그대로 드라마에 연출하기는 껄끄러웠기에 정조와 의빈 성씨는 병사로 연출하고 정순왕후가 악의 축이라는 이덕일의 주장도 일부 차용하는 것으로 타협했다. 이후에 정조 어찰첩이 발견되면서 정순왕후가 악의 축이라는 주장도 파훼되어 이덕일이 그간 주장해온 정조 독살설이나 소현세자 독살설이 설득력을 잃게되었다.

  • 성현아 : 화완옹주
    • 영조의 딸. 정조의 고모. 정순왕후에 비해 다소 경박한 느낌. 양자 정후겸을 왕으로 만드려는 야심을 갖고 있다.
정조가 등극한 뒤 노론 벽파가 정조를 암살하려고 하고, 실패한 뒤 이를 기획한 양자 정후겸을 사사로 잃고 본인은 강화도로 유배된다.

  • 견미리[21] : 혜경궁 홍씨
    • 정조의 어머니. 아들 정조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다. 이산측 인물이지만 아들 다음으로 가장 가깝게 여기던 효의왕후를 한순간에 의심하기도 하는 등 빌런의 역할이 더 강하다. 드라마에선 송연을 적대하지만 실제 기록에 따르면 1762년에 성덕임을 궁녀로 입궁시키고 양녀처럼 길렀으며 의빈 성씨가 출산할때 자신의 유모를 시켜 도와주는등 오히려 호의적이었다. 이러한 이유는 송성연의 아버지인 성윤우는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이자 정조의 외조부인 홍봉한의 청지기 출신[18]으로 혜경궁 홍씨와 성윤우 내외가 가까웠고 이후에 성윤우가 나랏돈을 탕진하여 가계가 기울어서 성송연이 1762년 궁녀로 입궁하는데 가족들간에 가까운 사이였던 혜경궁 홍씨가 성송연을 자신의 처소의 궁녀로 청하였다고 전해진다. 의빈 성씨는 1753년생으로 9살때부터 혜경궁 홍씨가 직접 기르게되는데 당시 의빈의 어머니는 몇해 전에 사망했고 성윤우도 담벽증으로 와병을 하는 등 자녀들을 돌볼여력이 되지않는데 다른 기록에는 혜경궁이 의빈에게 입궁을 권했다는 기록도 있어서 역사학계는 혜경궁이 어린 의빈을 가여이여겨서 도와줄려고 했다고 보는데, 이미 입궁전부터 성윤우와 그의 첫번째 아내 장흥 마씨를 알고 지냈고 두번째 아내인 통덕랑 임종주(林宗胄)의 딸 정경부인 부안 임씨가 출산한 성씨의 존재를 알았다고 나오며, 어린 덕임이 아픈 어머니에 대한 효심이 깊고 기특하다며 용채[19] 을 내렸다는 기록이 혜경궁일기에 존재하므로 혜경궁 홍씨와 의빈 성씨의 부친인 성윤우는 사이가 원만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부안 임씨는 1756년에 사망했기에 혜경궁일기의 기록을 볼때 부안 임씨가 사망한 1756년을 쳐도 의빈 성씨는 4살(만2~3세)이었는데 영특하다고 할 정도이고 의빈 성씨의 생모인 부안 임씨의 사후에 성윤우도 담벽증으로 아픈 시기에 자신의 처소의 궁녀로 칭해 친히 길렀다는 기록으로 볼때 의빈 성씨를 도우려고 궁녀로 칭한 것이지 괴롭히려고 했다고 볼 수 없다. 드라마 연출에 의한 피해자인 셈.[20]

  • 이창훈 : 사도세자[A]
    • 정조의 아버지. 정조가 11살 때 뒤주에 갇혀 죽으며 부디 성군이 되어라 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8.3. 정조의 여인들[편집]


  • 박은혜 : 효의왕후
    • 정조의 정비. 조용하고 온화하나 자식이 없었다. 홍국영, 원빈 홍씨와 갈등한다.

  • 황금희 : 원빈 홍씨
    • 홍국영의 여동생. 정조의 첫 번째 간택후궁. 간택된 지 1년도 안되어 병사한다.

  • 유연지 : 화빈 윤씨
    • 정조의 두 번째 간택후궁. 16세에 간택되어 자식도 없이 외롭게 지내다 60세에 죽는다.


8.4. 조정 인물[편집]


  • 조경환 : 최석주 역 (실존인물 심환지를 모델로 함.)
    • 가상인물로 노론 세력의 핵심 중진으로 나오며 교활하고 능수능란한 성격을 지녀 영조, 정조의 치세와 정순왕후의 세력을 줄타기하며 자신의 권력을 지켜내는 노회한 정치가. 중견배우인 조경환의 열연으로 정순왕후와 투톱의 악역으로 함께 극을 이끌어 나갔다. 영조의 평가에 의하면 속을 알 수 없는 능구렁이이지만 그래도 나라의 녹을 받아먹는 신하라는 것은 자각하고 있어 조정이 파국으로 치닫는 것은 원치 않는 자라고 한다. 해서 작중 영조가 정조에게 양위하려는 계획과 동시에 사도세자를 모함한 세력을 축출하려 했을 때에도 정조와 대립하는 노론의 수장임에도 불구하고 불러내어 자신의 계획에 동참하라고[22] 권하기도 했다. 이러한 정치 스타일로 정조 즉위 직후의 노론 숙청에서 살아남아 자리를 유지했으나, 정조의 치세가 계속되면서 점점 벽파의 입지가 좁아지기 시작하자 정순왕후를 위시하여 정조를 해치려는 시도까지 거듭 저지르고, 결국 정조의 특명을 받은 장보의 멋진 반간계를 통해 암살모의가 발각되어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노론이 2차 숙청을 당하면서 본인도 고신 끝에 참수당한다. 하지만 이 상황마저 예견했는지, 거사를 치르기 전 정순왕후에게 본인은 모르는 일이라고 무조건 잡아떼어야 한다고 당부해두었고, 정순왕후가 이에 따라 목숨을 부지하면서, 후세의 재앙의 씨앗이 끝내 남겨지게 된다.
  • 이인성조연우 : 정후겸
    • 화완옹주의 양자. 정조의 라이벌. 정조 즉위 후 사사당한다. 겉으로는 온화하고 신사적이나 속은 비정한 성격으로 등장하며, 화완옹주와 노론 쪽의 브레인으로 활약한다. 송연과도 미묘한 기류를 형성.
  • 한인수 : 채제공
    • 정조의 최측근. 사도세자의 충신으로 정조의 교육을 맡았었다. 유배에서 돌아온 후는 남사초와 함께 정조의 곁에서 서포트를 맡는다.
  • 정명환 : 김귀주
    • 정순왕후의 오라비. 가볍고 생각이 짧으며 매우 난폭하고 거만한 망나니같은 성격. 감정적으로 일을 벌이다가 일을 말아먹는다. 정조 즉위 후 흑산도로 유배가게 된다.
  • 신충식 : 홍봉한
    • 혜경궁의 아버지. 정조의 외조부. 홍인한의 형. 조정에서는 중립에 가까우나 기본적으로 정조파 인물으로, 혜경궁의 서포트를 한다. 역모 발각 시에는 홍인한을 구하려고도 했으나 결국 실패.
  • 나성균 : 홍인한
    • 혜경궁의 숙부이며 처음에는 소론파였으나 노론으로 넘어간다. 정조 즉위 후 사사당한다. 노론에서 촐싹맞은 행동을 담당하는 반쯤 개그 캐릭터로, 결국에는 노론의 음모가 발각되고 목숨을 구걸하다 처형당한다.
  • 한상혁 : 윤창윤
    • 화빈 윤씨의 아버지. 판관.
  • 이재용 : 장태우 역 (실존인물 김종수를 모델로 함.)
    • 정순왕후 이전의 노론 수장이었으나 그녀의 주도로 실각한 후[23] 재야에 칩거하던 노론 대신으로, 비록 정계에서는 물러났지만 관찰사가 정책이 시행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무릎 꿇고 간청할 정도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정조 즉위 후 노론 세력의 궤멸을 염려한 최석주의 요청으로 조정에 복귀한다. 정조와 대립하지만 악당은 아닌 원칙적인 보수로 역모에는 동참하지 않고,[24] 정조의 정책에 반발하는 관료들의 파업을 주도하면서도 백성이 해를 입으면 안 된다고 사재를 출연하고 다른 노론 대신도 동참하게 한다. 정약용을 처음엔 안 좋게 봤지만, 점차 호의적으로 변해 낙향 후 그 고을에 정약용이 암행어사로 왔을 땐 반가워 하며 여러 조언들을 해준다.[25]


8.5. 무관들[편집]


  • 서범식 : 서장보
    • 대수와 알고지내던 무관. 대수와 강석기와는 거의 삼총사로 활약한다. 다혈질적이고, 열혈적인 성품을 지닌 천생 무관. 홍국영에 대한 충성심이 매우 깊다. 홍국영이 실각한 후, 홍국영의 귀양길 호위를 함께 하자는 강석기의 부탁을 거절한다. 하지만 백성들이 홍국영에게 돌을 던지자, 몽둥이를 휘두르며 그들의 앞을 막아서며 누구보다 충심을 다하는 사람이라며 홍국영을 두둔한다. 후반부에 대수와 강석기는 총관으로 승진했지만, 자신만 승진하지 못한것에 불만을 품고 무관의 소임을 내팽겨치고 막나가던중 노론측의 회유를 받아 박대수와 강석기의 의혹을 받기도 하나, 끝내 넘어가지 않았다.[26] 그리고 노론대신에게 분노하게 되는데 정조가 그들을 죽이지 않자, 격분하여 직접 죽이러 가려고 하기도 한다. 이후부터는 승진도 제대로 되어 겸사복장을 맡게 되고, 무관으로서의 소임을 다하여 정조를 끝까지 보필한다
  • 장희웅 : 강석기
    • 서장보와 함께 대수와 알고지내던 무관. 대수와 서장보와는 거의 삼총사급으로 활약한다. 서장보와는 달리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을 지녔으며, 지략이 뛰어난 쪽이다. 서장보에게 홍국영의 귀양길 호위를 함께 하자고 하지만, 서장보는 거절하고 결국 대수와 둘이서 호위를 맡는다. 후반부, 혼자 승진하지 못하여 폭주하는 서장보를 끝까지 붙잡으려고 한다. 결국 다시 서장보와 함께 정조를 끝까지 보필하며, 내금위장까지 오르게 된다.


8.6. 실학자들[편집]




8.7. 내시부, 내명부[편집]


  • 맹상훈 : 상선 남사초 (대전) 역
  • 이희도 : 상약 박달호 역
  • 금세웅 : 영조 시기 상선 (대전) 역
  • 최예진 : 박 상궁 (대전) 역
  • 이숙 : 강 상궁 (정순왕후 처소) 역
  • 백현숙 : 이 상궁 (혜경궁 처소) 역
  • 안여진 : 곽 상궁 (화완옹주 처소) 역
  • 김소이 : 김 상궁 (효의왕후 처소) 역 [27]
  • 이도은 : 양 상궁 (의빈 성씨 처소) 역
이름은 양초비로 원래는 도화서의 다모로 성송연의 선배였는데, 성송연이 승은을 입고 궁내에 거처가 정해지면서 수발을 들 상궁을 뽑을때 성송연의 배려로 상궁으로 발탁된다. 도화서에서는 처음에 성송연을 괴롭히는 선배였지만 차츰 성송연을 도와주고 걱정해주는 조력자로 바뀐다. 사실 처음에 괴롭힐때도 성송연이 힘들어하는 걸 보고 찔려하고 걱정하는 츤데레 캐릭터로 드라마에서 도화서의 이천과 죽이 맞는 개그캐릭터이기도 하다.
  • 이상미 : 최 상궁 (원빈 홍씨 처소) 역
  • 김희라 : 상궁 (화빈 윤씨 처소) 역


8.8. 그 외 인물[편집]


  • 유정석 : 성송욱 역
    • 성송연의 잃어버린 남동생이며 천주교 신자이다. 소설에서는 아기였을 때 누나 송연과 떨어지게 되면서 온갖 산전수전을 겪다가 우여곡절 끝에 누나 송연과 재회한다. 누나 송연을 입궁하게 한 결정적 역할을 한다. 죽음을 앞둔 송연을 살리려 서양의 의술을 사용하려하는 이산을 도우려고 하나 끝내 누이와 사별한다.
  • 이정용 : 자객 역
  • 백민 : 어의 역
  • 지상렬 : 이천 역
    • 도화서 소속 화원으로 성송연과 도화서 내에서 가장 가까운 인물이며 도화서 내 화원들 중에서 유일하게 성송연과 친하다.
  • 유민혁 : 탁지수 역
    • 도화서 소속 화원으로 이천과는 서로 티격태격하는 사이. 주로 탁사형으로 자주 불리는 인물이다.그리고 도화서 화원들 중에서 성송연을 제일 많이 괴롭혔었으며 성송연이 화원으로 일하게 되자 여자애 하나 챙겨주는 도화서면 자기는 못 있는다면서 화원들과 말을 맞추며 뛰쳐 나간 적이 있다가 그러다가 성송연이 영조의 승은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자[28] 자기 목이 날아가는 거 아닐까 하며 전전긍긍하며 지내게 되었다. 이후에 정조가 등극하고 송성연이 정조의 승은을 입고 후궁으로 책봉되자[29]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자기 덮쳐서 내 여자로 삼을걸 그랬다며 후회하는 것을 볼때 진작부터 성송연에게 마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괴롭힌 것도 좋아하는 사람 괴롭히는 츤데레였던 모양. 하지만 성송연은 승은을 입은 뒤이므로 이러한 발언은 강상죄에 해당한다. 특히 성송연을 자기 동생처럼 아끼는 이천은 탁지수가 하는 말을 듣고는 분노해서 탁지수의 멱살을 잡아서 탁지수는 제대로 망신살을 샀다.
  • 신국 : 박영문 역
  • 오현수 : 익위사장 역

8.9. 아역[편집]




9. 소설[편집]


김이영 작가가 쓴 시놉시스를 원작으로 신춘문예 출신 소설가 류은경이 집필했다. 드라마가 정조의 세손 시절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것처럼 소설 역시 전5권 중 4권에서 정조가 보위에 오른다. 드라마와 큰 줄기는 같으나 세세한 부분에서 다르다.

  • 성송욱: 의빈 성씨의 잃어버린 동생 성송욱이 드라마에서는 천주교 신자로 나오나, 소설에서는 자객으로 나온다.
  • 주인공들의 죽음 : 드라마에서는 정조와 의빈 성씨 모두 병사한 것으로 그려지나, 소설에서 의빈은 문효세자가 죽은 후 정순왕후 김씨의 협박에 독약을 먹은후 살려고 약을 뱉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죽는다. 정조도 훗날 정순왕후 일파에 의해 중독된 후 제발 빨리 죽으라며 대비(정순왕후)에게 목이 졸린 뒤 대비가 떠나자 "수정전..."이라고 중얼거리다가 죽는다.
  • 결말: 박대수가 정조의 능인 건릉을 찾는 건 같지만 전개는 다르다. 소설에서는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에 의해 정조의 치적이 무너지자, 민란에 참여했다가 부상당한 박대수가 건릉에서 쉬다가 산과 송연의 환영을 보고 정조가 만들고자 했던 세상을 이루어 나가리라 각오를 다진다. 반면 드라마에서 박대수는 정조 사후 금군별장 직책으로 순조의 호위를 맡고 있는 상황이며, 건릉에 가서 후손들이 정조의 꿈을 이룰 것이라는 말을 하며 희망적으로 끝난다. 그리고 산과 송연이 궁을 향해 걸어가는 장면으로 엔딩을 맞는다.


10. 역사재현의 오류[편집]


드라마 자체로는 명작이나 역사적 사실의 반영은 거의 포기했다고 봐야한다. 아래의 목록들은 그 중에서도 일부이며 누구나 알법한 큰 틀의 역사를 제외하고는 모든 부분이 창작이다. 이 드라마로 영•정조시기를 판가름하면 큰일날 일.

  • 노론 음모론을 차용했다. [30] 또한 정순왕후(김여진)와 노론 세력들이 쿠데타를 일으킨 것으로 그려졌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 혜경궁 홍씨가 왕실의 최고어른으로써, 내외명부의 모든 사무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31] 처럼 나와있지만 실제로 내명부의 수장은 중전이고,[32] 중전 위로 정순왕후가 있었으며[33][34] 무엇보다도 사도세자가 뒤주에 감금되어 사망하고 정조가 백부 효장세자의 양자로 왕위에 오르면서 혜경궁 홍씨는 공적으로는 아들인 정조와 숙질지간이기 때문에 극중에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까지 대단한 권세를 누리면서 살았던 것은 아니다.[35]

  • 영조정조에게 왕위를 직접 계승하는 것처럼 그려졌으나 실제로는 대리청정이며 그 기간은 1년 남짓에 불과하다. 대리청정은 1775년에 시작되었으며, 영조는 1776년에 사망하였다.

  • 의빈 성씨1762년(영조38년, 임오년)에 궁녀로 입궁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나, 이후에 도화서 다모가 됐다는 것은 허구적 설정이다. 그리고 도화서에 다모가 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 극 중 혜경궁 홍씨원빈 홍씨를 누구보다 총애하는 걸로 묘사되나 실제 역사에서 혜경궁 홍씨는 아예 홍국영과 원빈 홍씨 남매를 누구보다도 극혐했다. 홍국영 남매에 대한 혜경궁의 혐오감은 한중록에 굉장히 잘 드러나있다.

  • 원빈 홍씨가 임신한 적이 없으므로, 극 중의 임신에 관련된 해프닝은 허구적 설정이다. 그리고 원빈 홍씨는 13세에 간택되어 이듬해에 사망했는데, 극중 원빈 역할을 맡은 황금희는 출연 당시 31세로 전혀 13세의 소녀처럼 보이지 않는다.[36]

  • 화빈 윤씨는 임신한 적이 있으나 상상임신이어서 슬하에 자녀가 없었으므로, 극 중에서 의빈 성씨와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한 것과 같은 날 옹주를 낳은 것은 허구적 설정이다.

  • 의빈 성씨가 문효세자를 낳고 둘째 임신 중 간경화로 사망한 것으로 그려졌으나, 실제 역사에서는 1782년에 문효세자, 1784년에 옹주를 낳고 1786년에 셋째를 임신한 채 원인 모를 병으로 사망했다.

  • 청나라 사신이 환관인 것 또한 오류. 한인이 주도권을 잡기 이전의 청나라는 조선행 칙사 인선에 있어 굉장히 일관적으로 3품 이상의 고위급 만주족 관료를 정사, 부사로 임명해 보냈으며, 명나라가 환관의 전횡으로 기운 것을 반면교사로 삼았는지 청나라에서는 환관을 중용한 적도 없었다.

  • 38회에서 사도세자를 죽인 일에 대해 크게 후회한 영조가 인시(寅時, 약 새벽 3~5시)에 사도세자가 묻혀있는 영우원으로 떠났다고 했는데 드라마상에서는 해가 완전히 뜬 모습으로 나타난다. 궁궐에서 가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떠 있는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계절이 겨울이라 그만큼 뜨려면 진시(辰時, 약 7~9시)는 되어야 한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오류.

11. 여담[편집]


  • 송연의 아역 이한나의 머리스타일이 현대적이라 논란이 되기도 했다. 태양인 이제마에서의 임성민의 '깻잎머리' 논란과 더불어 큰 화제를 일으켰다.

  • 극중 영조(이순재)가 어머니 숙빈 최씨에게 받은 쌍 옥가락지를 붕어 직전 손자 정조(이서진)의 연인 의빈 성씨(한지민)에게 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병훈 감독-김이영 작가의 후속작인 《동이》에서 숙종(지진희)이 숙빈 최씨(한효주)에게 쌍 옥가락지를 주는 장면이 나온다. 두 작품의 시간이 이어짐을 보여주는 장치.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기사

  • OST 준비가 미흡했던 것 같다. 초반부 엔딩곡인 '항아'는 이병훈 감독의 전작 《서동요》의 엔딩곡을 편곡한 것이고, 정조와 의빈 성씨의 멜로 테마곡인 '약속'(장윤정) 역시 감독의 전작 《상도》OST '약속'(보라)을 편곡한 것이다(...). 심지어 장윤정 버전의 '약속' 준비가 늦어졌던 것인지, 1회부터 19회까지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가수가 부른 버전이 사용되었다가 20회부터 장윤정 버전이 사용되었다. 보라 버전이 몽환적인 느낌이라면, 장윤정 버전은 시원시원한 느낌이다. 1회~19회에 쓰였던 버전은 그 중간 느낌.

  • 메인곡 제목이 '약속'인 것처럼 극이 진행되는 내내 약속이 참 많이 등장한다. 어린 산, 송연, 대수는 꼭 나중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산은 영조에게 성군이 될 것을 약속한다. 또 송연은 죽기 전 산에게 어떤 일이 있더라도 견뎌내달라 부탁하고 산은 송연의 무덤에 가서 그 약속을 꼭 지키겠다고 말한다.


  • 대장금에서 빌런으로 나왔던 견미리, 이희도, 이잎새[37]는 이산에서 선역으로 나왔고 반대로 대장금에서 선역으로 나왔던 김여진은 악역으로 나왔다.


  • 무한도전 멤버들이 35~36회에 특별출연하여 무한도전 이산 보조 출연 특집을 촬영했다. 덕분에 무도 멤버들을 찾아보는 쏠쏠한 재미를 주기도 했다. 연기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은 문을 지키는 군사나 행인 등 엑스트라 역할을 맡았지만, 일부는 대사가 있는 역을 하기도 했다. 정형돈은 중국(시대상으로는 청나라) 상인 역을 하면서 중국어 대사를 한마디 했고, 유재석정준하주막에서 꽤나 많은 양의 대사까지 친다.[38] 참고로 주막씬에서 본래는 박명수가 출연할 예정이었으나, 버벅대면서 대사를 틀리는 사고를 여러번 치는 바람에 교체되었다(....) 이산의 엄청난 인기 시너지를 받아 무한도전 이산 보조 출연 특집은 무도 역대 에피소드중 최초이자 유일하게 시청률 30%는 넘는 진기록을 세웠다.

  • 이병훈의 대장금과 관련하여 김소이가 '전생에 수라간에 있었던 거 같다'고 개그를 치기도 한다. 이것은 맹상훈이희도에게도 해당되는 내용이다(...). 여기를 보라. 이병훈 사극의 감초 조연들이 겹치는 경우가 많기에 나올 수 있는 이야기. 그리고 후속작의 주인공인 동이가 누구의 어머니인지 알면 웃긴 사실. 따지고 보면 한효주가 이순재의 어머니라는 것.

  • 위에도 써있다시피 하얀거탑(2006년 1월 방영)이 한상진을 미국에 이민가지 않게 했다면 한상진에게 부와 인기를 가져다 준 것은 이산이었다. 하얀거탑에서의 박건하의 역할이 단지 임팩트 있던 조연이었지만 이산의 홍국영은 주조연에 가까운 역할이었고 드라마 또한 대박이 났었기에 이는 당연한 현상이기도 했다. 참고로 오디션을 보던 한상진은 본인이 어떤 역할로 캐스팅 될지도 정확히 모른 채 이것저것 시키는대로 다 했는데 처음에는 이병훈 PD가 자기를 홍국영이 아닌 하얀거탑의 박건하와 비스무리한 어떤 역할을 시킬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 캐스팅은 홍국영이었고 실제 그 당시 이병훈 감독이 7~8년간 무명으로 살아온 한상진에게(하얀거탑이 떴지만 이는 일시적이었으므로) 하루아침에 인기를 얻는다는 것이 뭔지 알게 될 거라고 했고 한상진은 반신반의했는데 홍국영의 역할이 주목받으면서 생애 처음으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된다.

  • 이 드라마는 먼 훗날 꽃할배에서의 '서지니'를 탄생시키는 기폭제가 된다. 꽃보다 할배에서 이순재가 나PD에게 이서진을 추천한 이유를 밝히는데 그 이유가 이산 촬영시 싹싹함 때문이라고 하였다. 물론 이순재의 파괴력이나 연기적인 면에서 이서진이 믿고 따르는 게 맞으나 그래도 나름 대작 드라마의 주연으로 열연하면서도 라면 서비스부터 온갖 잡일을 하였다고 하니 꽃할배에서 보여주는 웃어른 공경과 삼시세끼에서 보이는 아랫사람/또래 막대하는 것을 볼 때, 원래부터 윗사람에게는 아주 깍듯하게 하고 아랫사람/또래에게는 제대로 편하게 대하는 성격인듯 싶다.

  • 한편, 원작인 책 <이산 정조대왕>의 제목 그대로 드라마를 기획하려 했으나 주몽, 허준 등의 성공의 사례를 통해 제작진은 한번에 기억할 수 있고, 한번에 부를 수 있는 짧은 제목인 <이산>으로 제목을 변경했다.

  • 동 시기 드라마 왕과 나와 함께 아역배우 노출 문제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크게 두번의 사건이 있었는데, 환관 양성과정 중 아역배우 권오민의 음경음낭이 순간적으로 3번 정도 노출된것이다. 다른 하나는 아역 엑스트라들의 알몸 그대로 방송되었다. 그나마 앞의 사건과 달리 성기 부분은 모자이크과 손으로 가려서(...) 방송 되었다. 하지만 정작 사건 당사자들은 당시에는 재밌게 노느라 창피하거나 부끄러운거 없었고 지금은 그냥 추억이라고 한다. 강제적으로 찍은 장면도 아니었고, 더운날씨에 물놀이 장면을 찍는 것이라서 오히려 좋아했으며, 별로 부끄럽지도 않은 채 재미있었다고 한다. 자세히 보면 아역들이 시대에 맞지않게 "나의 초 필살기다!"(...)라며 놀기도 하고 옷을 뺏기고도 표정이 오히려 해맑았다(...).당사자의 글 거기다가 원래 엑스트라들이 연기열정을 불태우며(...) 이왕 찍는거 정조와 성송연이 옷을 도둑질해 도망가는 것을 쫓아갈때 아예 옷으로 가리지 말고 손으로만 가리는 것으로 연기하려 했으나 제작진의 만류로 이 정도로 끝난 것이라고 한다.

  • 방영 당시 메인커플에 대한 반감이 심해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커뮤니티에서 자주 오갔다. 왜냐하면 당시 역덕들 사이에서 정조라는 왕에 대한 이미지는 매우 냉철하고 이성적이었기 때문에 유일한 승은후궁이어도 정조가 지고지순한 사랑을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받아들여지지 못했던 것. 그러나 '어제의빈묘지명'과 심환지와의 어찰첩이 공개되면서 정조의 인간적인 면이 제대로 드러나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 방영 14년후, 같은 방송사에서 정조와 의빈 성씨를 다루는 옷소매 붉은 끝동이 방영한다. 차이점은 이산은 정조 중심으로 전개되는 반면, 옷소매 붉은 끝동은 의빈 성씨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또한, 후자가 이산에 있던 노론 음모론을 탈피하고 정순왕후를 중립적인 시선으로 보는 등, 역사재현에서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준다.


12. 해외 방영[편집]


일본 2008년 NHK BS2에서 방영되었다.

일본에서 한국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건 하루이틀의 일은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인기를 끈 작품이 이산으로, 한국의 사극 중에서는 가장 인지도가 높은 드라마이다[39]. 특히 일본 여성 중장년층의 사랑을 받아, 동이와 함께 재미있게 본 한국 드라마로 이산을 꼽는 일본여성이 매우 많다.

루마니아에서는 TVR1에서 2009년~2010년에 Furtuna la palat(왕궁의 폭풍)이라는 제목으로 방영되었는데, 자국 드라마를 제치고 시청률 1위를 찍었고 최고 시청률은 4.4%로 큰 인기를 끌었다.#

홍콩에서는 2011년 3월 7일~2011년 6월 24일 aTV에서 방영되었다.


13. 수상 내역[편집]


2007년 MBC 연기대상
  • 이서진(정조 역) : 최우수연기상
  • 한지민(의빈 성씨 역) : 우수연기상
  • 이순재(영조 역) : 황금연기상[40]
  • 한상진(홍국영 역) : 신인연기상
  • 김이영 : 올해의 작가상
  • 박지빈(어린 정조 역) : 아역연기상

2008년 백상예술대상

2008년 제3회 좋은방송프로그램상

[1] 김재형 감독의 전작 《여인천하》에서 인종 역으로 출연하였던 아역배우 권오민은 이 드라마에서 어린 박대수 역으로 출연하고, 이병훈 감독의 전작 《서동요》에서 조연으로 출연했던 배우 구혜선은 《왕과 나》에서 폐비 윤씨 역으로 출연하였다. 또한 이병훈 감독의 전작 《허준》의 메인 주인공인 전광렬과 《대장금》에 출연하였던 양미경, 여운계, 조정은 등이 출연하여 출연진들간의 시청률 경쟁이 펼쳐졌다.[2] 4년 뒤, 이서진과 《계백》으로 재회하지만 흥행하지는 못했다.[3] 여담으로 실제역사에선 1762년 사도세자가 사망한 후 홍봉한의 집의 청지기였던 성윤우의 딸인 성덕임(의빈 성씨)을 혜경궁 홍씨가 1762년 성덕임을 궁녀로 들이고 양녀처럼 기른걸로 보아 실제 첫만남이 1762년으로 동일할수도 있다. 또한 정조가 15살때 후궁을 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되자 곧바로 승은 내린걸로 보아 실제로도 첫사랑일 확률이 높다.[4] 유배지에서 도주하지 못하도록 책을 설치하여 가두는 것. 즉 감시처분.[5] 실제로도 한상진은 여기서 맡은 홍국영 역할로 배우로서 자기이름을 확실히 알렸다.[6] 임오년에 역병으로 부모님을 잃고 생각시가 되었는데, 그 때가 마침 임오화변의 시기인지라 박대수 및 이산과 어찌어찌 얽히고 설켜서 친구가 되었다.[7] 그런데 정조가 쓴 어제의빈묘지명에 따르면, 의빈 성씨는 실제로도 임오년에 입궁했다. 또 이미 14살 때 정조가 승은을 내리려 한 것으로 보아 어린 시절부터 친구라는 드라마 속 설정이 실제와 어느 정도는 맞는 것으로 보인다.[8] 이후 동이 때는 국악을 소재로 하려고 했으나 망했다.[9] 기린, 황우포 염색, 가을, 금강산.[10] 노론세력이 화성에서 정조를 암살하려다가 실패해 대거 처형되고 정순왕후는 의금부로 잡혀가 구금당한다, 정조 독살설보다도 한술 더 뜬 셈이다.[11] 다만, 드라마의 소설판에서는 정순왕후에게 독살당하는 것으로 그려진다.[12] 송연이 사도세자가 생전 그린 그림의 암호를 풀어내 그림 밑에 숨겨진 아버지에게 쓴 서신을 찾아내 영조에게 전해주었다. 안타깝게도 영조가 승하하기 얼마 전의 일이다.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에야 아들과의 오랜 오해가 마침내 풀리게 된 것이다.[13] 이 대사 이후 박대수와 정조가 나눈 대화의 회상 장면이 나온다.[A] A B C 여담으로 정조 아역을 맡은 박지빈을 제외한 실제 배우 모두 왕가 측 등장인물과 같은 이씨이다.[14] 동 시대를 다룬 영화 역린에서는 정순왕후 김씨를 맡는다.[15] 의빈 성씨의 실제 본명은 성덕임이다.[16] 사도세자는 소론을 동원해 역모를 일으킨다는 노론 벽파의 모함으로 체포되었는데, 실은 역모를 일으키려한 것은 맞았지만 소론들이 멋대로 벌인 짓이었으며, 사도세자는 동참하는 척하면서 소론 일파를 제압하고 역모를 중지시키면 너희들을 고변하지 않는다며 역모를 막았다. 노론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사도세자를 모함했고 사도세자는 자신을 걱정해 역모를 일으키려한 이들을 중지시킨 자신이 자기가 살자고 그들을 배신할 수 없었다며 진상을 알리는 편지를 썼다.[17] 2001년 SBS 드라마 여인천하에서 원자 시절의 인종을 맡았다.[18] 《승정원일기》, 《이재난고》, 《무보》, 《갑진왕세자책봉경용호방》, 《창녕성씨상곡공파보》 속에 성윤우가 등장하는데 모두 동일인물로 아들 성담(成湛), 성완(成浣), 성흡(成洽)이 무과에 합격했다는 기록으로 그의 신분은 양반이지만 조부때부터 과거에 급제자가 없어 성윤우의 대에서는 몰락양반에 가까웠다.[19] 웃전이 아랫사람에게 내리는 용돈[20] 당시에는 밝혀진 역사적 사실이 없었던 관계로 미흡했으나, 동시대를 그린 차기작인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는 제대로 연출되었다.[21] 조선왕조 오백년에서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 역을 맡았다.[22] 노론 세력이 조정에서 장악하고 있는 군대가 무엇인지 밝히라고 했다.[23] 그래서인지 정순왕후를 '암탉'으로 부른다.[24] 오히려 드라마 후반부 노론의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고 이들의 죄를 추궁하려 하니 이들을 살릴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말에 어찌 역적을 보호하자는 말을 하냐며 일갈한다.[25] 드라마 첫 등장할 땐 관찰사가 애원할 정도로 재야의 막강한 실력자였지만, 이 시점에서는 과거의 권력을 잃고 지방관의 비리를 질타하는데도 무시당할 정도로 위세가 꺾였다. 마침 정약용이 암행어사로 와서 응징할 수 있었다.[26] 사실은 대수와 석기도 모르게 정조와 짜고, 승진누락에 불만을 품은 척하여 그를 회유하러 접촉하는 노론세력을 낚으려는 작전이었다.[27] 대장금에서도 박은혜가 분했던 숙원 이씨의 지밀상궁인 민상궁 역을 맡았다.[28] 탁지수가 어진화사의 그림을 그리는 화공으로 발탁되었는데 영조를 대면에 두고 못하자 성송연이 대신하게 되었고, 영조가 밤에 매화도가 생각나서 밤에 불러서 그리게 하느라 밤에 같이 보내게 하였는데 다른 도화서 사람들이 성송연이 승은을 입은 것으로 착각했다.[29] 드라마에서는 바로 후궁으로 책봉된 것으로 나오지만 성씨는 정조가 첫 승은을 요구하던 시절은 영조 재위기로 영조의 궁녀였다. 세손이라는 신분이므로 궁녀에게 승은을 내릴 수는 있었지만 성씨의 가계도를 보면 신분이 미천하다고 나온다. 성씨는 정조가 등극한 후에 승은을 입게되지만 바로 후궁으로 간택되지는 않고 상의(尙儀)에 봉해지는데 상의(尙儀) 정 5품 하계 궁관직, 상계 궁관직은 상궁(尙宮)으로 승은을 입었으므로 특별 상궁 직첩에 봉해진 것이다.[30] 다만 노론 중에서도 장태우처럼 권력다툼이 목적이 아닌, 국가운영에서 정석과 원칙을 중요시하는 정통 보수주의자들도 등장하는 등, 아예 대놓고 노론을 악역으로 만드는 다른 드라마와는 차별화된 면도 있다.[31] 극중에서 의빈 성씨가 혜경궁과의 갈등으로 한동안 정식첩지를 받지 못하고 상궁지위에 있다가 청나라 사신간의 갈등수습 및 임신을 해서 혜경궁 홍씨가 소용에 임명하였다.[32] 효의왕후도 모든 사무를 그녀와 의논하는 것으로 나온다.[33] 정조의 후궁 원빈 홍씨화빈 윤씨혜경궁 홍씨가 간택한 것으로 그려졌으나 실제로 정순왕후가 당시 왕대비로서 정조의 후궁 간택을 진두지휘 했다.[34] 극중에서 정순왕후는 노론 세력들과 쿠데타를 일으켜서 권한이 없는것으로 나온다.[35] 정조 사망 이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궁내의 명위를 혜경궁 홍씨가 며느리인 효의왕후보다 아래로 하라는 언문 교지를 내렸다.[36] 사실 황금희가 맨 처음 배정받았던 배역은 원빈 홍씨가 아니라 영조의 후궁이자 훗날 정조에 의해 사사당한 숙의 문씨였다. 하지만 결국 숙의 문씨는 극 중 한번도 등장하지 못했고, 대신에 원빈 홍씨로 배역이 바뀌어서 등장한 것.[37] 초반에는 송연이를 괴롭히는 악역으로 나온다.[38] 둘은 개그맨인데다가 반전 드라마에서 연기를 한 적이 있다. 게다가 정준하는 영조 역을 맡았던 이순재 하고는 하이킥에서 부자 지간으로 나왔다.[39] 특히 정조인 이산이 세손이던 시절, 반대파들에 의한 시해 공작에 위협받고 있는 초반 상황이 일본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측면도 있다. 이점이 대장금과는 또다른 차이점인데 대장금이 왕실 소속 공무원에 관한 권모술수라면 이산은 직접적인 궁중내의 암투를 다룬 이야기인지라 여느 작품보다 흥미로운 요소가 많았기 때문이다.[40] 여담으로, 당해 MBC 연예대상에서는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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