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기업인)

최근 편집일시 :

前 SM엔터테인먼트 CEO
이성수
李聖洙 | Lee Sung-su


파일:이성수 대표.jpg

출생
1979년 11월 3일 (44세)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소속
SM엔터테인먼트
학력
한국외국어대학교 상경대학 (무역학 / 학사)
경력
SM엔터테인먼트 CAO(최고 A&R 책임자, 2023. 4.~)
KREATION Music Rights(KMR) 대표이사(2023.8.~)
SM Studios 대표이사
SM엔터테인먼트 공동 대표이사(2020. 3.~2023. 3.)
SM USA 대표이사(2019~2020)
SM엔터테인먼트 프로듀싱 본부장(2015~2020)
SM엔터테인먼트 A&R팀장
수상
2023년 빌보드 인터내셔널 파워 플레이어스
2022년 빌보드 인터내셔널 파워 플레이어스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
2. 생애
3. 활동 및 경력
3.1. 프로듀서(A&R) 활동
3.2. 송라이팅 캠프
3.2.1. 송라이팅 캠프에서 만든 곡
3.3. 수상
3.4. 강의
3.5. 인터뷰
4. 사건사고
5. 기타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기업인. SM엔터테인먼트 CAO(최고 A&R책임자), SM엔터테인먼트 前 대표이사, A&R 전문 프로듀서.

SM엔터테인먼트 설립자 이수만의 처조카 이다. 즉 이모부가 이수만이다.


2. 생애[편집]


대학 시절인 1998년 신화 데뷔 당시 PC통신상의 팬클럽 동향을 모니터링하여 회사에 리포트하는 업무로 SM엔터테인먼트(당시 SM기획)와 처음 연을 맺었다. 이후 2005년 정식으로 A&R 직원으로 입사하였으며, 입사 후 처음 맡았던 팀이 샤이니라고 한다.[1] [2] 음악 비전공자로 A&R 업무를 하면서 실무 감각을 익히려고 작곡, 작사를 배우기도 했다. 그렇게 탄생한 곡이 소년, 소녀를 만나다내가 사랑했던 이름이며 이 두곡을 끝으로 더 이상 곡은 쓰고 있지 않다. 2009년 A&R 팀장으로 승진한 해에 소녀시대 'Gee', 슈퍼주니어 'Sorry, Sorry 등이 연이어 히트했고, 이수만 프로듀서의 지원으로 2015년 이후 실장, 그룹장, 그리고 이수만 회장 직속의 프로듀싱 본부장으로 초고속 승진하였다.

미국, 노르웨이, 네덜란드, 스웨덴, 영국 등 유럽 각지를 돌며 유니버설, 소니 등 글로벌 뮤직 퍼블리셔 및 로컬 퍼블리셔와 계약한 작곡가, 프로듀서 발굴해 왔으며, SM 내부에 'SM Song Writing Camp'로 명명되는 집단 창작 활동을 만들고 수년간 운영하여 현재의 A&R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일조했다. SM과 작업한 여러 작가들 SNS에는 꽤 주기적으로 송캠프 후기 사진들이 올라온다.

프로듀싱 본부장으로서 40여 명의 A&R실을 포함 약 100여 명의 프로듀싱 본부 인원들을 지휘해 오고 있으며, 창업자 이수만 프로듀서의 추천으로 2017년 4월부로 SM의 등기 이사, 2020년 3월부로 SM의 대표 이사(CEO)가 되었다. 2023년 2월, 이수만 프로듀서와 이성수를 필두로 한 현 경영진과 카카오 연합 간의 대립이 시작되자 이수만을 연일 저격하며 자신도 대표이사 연임에서 포기한다고 밝혔다. # 그러나 회사에 남아 실무는 계속 챙길 것으로 보이는데 일각에서는 본인이 폭로한 이수만 프로듀서의 문제가 자신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수만이 과거의 유산이고 청산되어야 할 대상이라면 그의 업무를 집중적으로 지원, 수행하고 옹호해 왔던 이성수도 똑같은 과거의 유산이며 청산되어야 할 대상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당시 본인이 대표 이사이기도 했기 때문에 배임에 준하는 행위를 한 직원이 계속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구멍가게도 아닌 상장사에서 용인될 수 있는 일인지에 대한 논란 또한 있다.# 한편 본인이 주도한 카카오에 대한 신주 발행은 이수만의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져 무산되었다.# 그래도 결국 하이브와 카카오 간의 합의로 한숨 돌리긴 했으나 경영인으로서의 이력에 큰 타격을 입었고 대의 명분도 상당히 잃어버렸다.[3]

이수만 체제에서는 회사 내 영향력과는 별개로 대외적인 존재감이 미약했으나 평사원이었던 자신을 초고속 승진으로 대표 이사까지 올린 SM엔터테인먼트 설립자 이수만 프로듀서에게 등을 돌리고 카카오와 손을 잡고 경영권 분쟁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여러 기사와 증권가의 입에 오르내리는 등 여러모로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존재가 된 것만큼은 확실하다. 카카오와 손을 잡고 미래로 가는 차세대 지도자인지 혈연으로 초고속 승진한 뒤 이수만을 배신한 배은망덕한 인물인지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고 있다. 44세 데미안. 성수가 성수했다.


3. 활동 및 경력[편집]


  • 2005년 SM엔터테인먼트 입사
  • 2015년 SM엔터테인먼트 프로듀싱본부 본부장
  • 2019년 SM엔터테인먼트 USA 대표이사
  • 2020년 SM엔터테인먼트 공동대표(CEO)
  • 2023년 SM엔터테인먼트 최고 A&R책임자(CAO)


3.1. 프로듀서(A&R) 활동[편집]


SM엔터테인먼트의 CAO이다. 이수만 프로듀서에 의해 A&R팀이 만들어진 이후 실무를 이어받아 세계적인 수준의 SM A&R 팀과 프로듀싱 본부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 이수만 체제에서 프로듀싱 본부장으로서 SM엔터테인먼트 전체 콘텐츠 프로듀싱을 총괄했고 SM 3.0 도입으로 인해 멀티 프로듀싱 체제가 시작되면서 그 역할이 분산될 예정이다. SM은 음악에서부터 스타일링, 매니지먼트까지 매뉴얼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매뉴얼을 바탕으로 각 아티스트에게 최적화된 음악을 찾아내는 역할을 수행했다.

SM A&R팀은 이수만 프로듀서에 의해 1990년대 후반부터 프랑스에서 매해 개최되는 음악 컨퍼런스 행사인 'REED MIDEM'에서 퍼블리셔와 작가를 발굴하기 시작한 것이 시초이다. 1998년 S.E.S. 2집의 타이틀곡이었던 'Dreams Come True'를 구매한 것이 국외에서 쓰여진 곡을 사용한 첫 시작이라고 한다.[4] 당시 대한민국의 저작권 개념에 대한 인식과 인프라가 조악했던 것을 감안하면, 외국인 작곡가가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 곡을 판매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첫 해외 구매 곡이었던 Dreams Come True는 단순 번안 곡이 아니라 이수만의 음악적 동반자 격인 유영진이 재창조 급으로 편곡한 곡이었는데 그 결과물이 원곡 작곡가로부터 큰 호평을 얻었고 덕분에 해외 네트워크 개척에서 좋은 첫 단추가 끼워지게 되었다. 이후 이수만 프로듀서가 개척한 해외 네트워크 위에 여러 실무자들을 거쳐 이성수가 실무를 맡아 꾸준히 이어가면서 국외 작곡가들과의 네트워크가 점차 쌓여 갔다. 2023년 기준으로 3천 명의 전세계 작곡가 네트워크가 구축되었다.

초반에는 좁은 저작권 시장, 미미한 아시아 영향력 때문에 아시아, 북미, 유럽에서 같은 곡이지만 해당 저작권자와 합의하여, 각 나라의 가수들의 곡으로 발매되기도 했다. 2009년 이후 K-POP 시장 규모가 확대되며 자연히 저작권 시장도 커졌고, 최근에는 외국인 작곡가가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단독으로 곡을 판매할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아시아에 자신들의 브랜드를 알리고 싶어하는 외국인 프로듀서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일단 케이팝 크레디트에 이름이 올라가는 순간 본인 및 작곡,프로듀싱 팀의 브랜드가 올라가고 일본, 중국, 태국, 대만 같은 곳에서도 곡을 팔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SM A&R은 국내/국외 팀이 나뉘어 있으며 각 부서의 전문가들에 의해 여러 곡을 제작하고 선택하는데, 최종적으로는 이수만의 결재가 떨어져야 발표 되었다. 이수만이 모든 가사와 사운드 하나까지 다 챙긴다고 한다. 실제로 이성수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이수만의 업무영역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광범위하고 디테일하게 보이지만 실제로 가능했기에 SM이 지금까지 커졌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A&R팀이 태티서Twinkle을 타이틀곡으로 추천했고 이수만이 가사와 트랙을 들어본 뒤 '눈에 잘 띄잖아'라는 가사를 '눈에 확 띄잖아'로 바꾸었고 기타 리프는 수십 번의 수정 후 최종 완성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A&R보다 이수만의 감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애초에 Twinkle을 골라낸 A&R팀이 없었다면 태티서의 성공적인 유닛 활동은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A&R팀이 골라낸 곡을 이수만이 최종 결재하지 않았다면 엉뚱한 곡이 타이틀곡이 됐을 것이다. 실제로 샤이니셜록의 경우 A&R팀이 보유한 라이브러리에서 이수만이 Clue와 Note를 골라내 A&R팀에게 두 곡을 한 곡으로 합쳐 보자는 미션을 내린 일화가 유명하다. 또 레드벨벳Psycho의 경우 뮤직비디오 공개 전날까지 유영진에게 편곡과 믹싱을 지휘하는 등 이수만이 사운드를 직접 챙긴 일화가 공개된 있다.# 한마디로 실무진에서 곡을 잘 확보하여 골라내었고 이수만이 최종적으로 검토, 보강하고 승낙한 팀워크의 결과물로 봐야 할 것 이다.

A&R팀은 단순히 곡을 수집하는 것을 넘어 작곡가와 프로듀서에게 수정을 디테일하게 요구하기도 하는데, Red VelvetIce Cream Cake의 데모 버전은 지금의 사운드가 아니었다. A&R의 지속적인 피드백이 현재 완성된 Red VelvetIce Cream Cake였던 것이다. 단순히 돈을 주고 곡을 사 온다는 개념보다는 상위로 보는 것이 옳다. SM에 곡을 주는 프로듀서들이 YG나 JYP를 비롯한 여러 기획사와도 작업을 하고 있지만 SM에서 나온 곡들의 분위기는 확실히 SM 느낌이 난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SM A&R팀이 구축한 매뉴얼의 영향이 크다.[5]

3.2. 송라이팅 캠프[편집]


기존 유니버설, 소니, 워너 채플 등의 음원 배급사를 연계한 프로듀서와 작곡가에게 곡을 받다가 그 중에서도 실력 차이나 색깔 차이가 분명하기에 잘하는 사람들과 곡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SM 청담동 사옥에 스튜디오를 만들고 비트 메이커와 톱 라이너의 조합으로 일명 '송라이팅 캠프'를 국내에 최초로 체계적이고 대규모로 도입하였다.

국내에서도 이전부터 공동 작업은 드물지 않았으나, 어떤 곡을 구입하여 국내 작곡가가 편곡하고 추가 수정하는 것을 넘어, 서로 다른 대륙과 국적의 음악가들이 서로 얼굴도 모르는 관계에서, 한 장소에 모여 공통의 목적을 가지고 곡을 생산하는 시스템은 확실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현재는 K-POP 씬이 커지면서, SM이 주최한 '송라이팅 캠프'가 아니라도 많은 '송라이팅 캠프'가 개최되고 있으며, 여러 K-POP 가수들이 이곳에서 만든 곡을 발표하고 있다.


3.2.1. 송라이팅 캠프에서 만든 곡[편집]



이외에도 다수의 곡이 존재하며 앞으로도 많은 곡이 계속해서 발표될 예정이다.


3.3. 수상[편집]


  • 2020년 대한민국 창조경영
  • 2022년 빌보드 인터내셔널 파워 플레이어스 선정


3.4. 강의[편집]


  • 2020년 11월 21일 ‘COMEUP 2020’에서 ‘컬처 테크놀로지, 뉴 노멀 시대에 빛나게 될 문화 기술’ 기조연설
  • 2020년 10월 07일 '코리아 인베스트먼트 페스티벌 2020'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 K-POP의 미래 전략' 연설
  • 2020년 09월 25일 '뮤콘 온라인 2020' 콘퍼런스에서 '컬처 테크놀로지, IP 산업 그리고 언택트' 연설
  • 2020년 09월 24일 디지털 뉴딜 문화 콘텐츠 산업 전략 보고회 ' 디지털 뉴딜 우수사례 선정' 발표
  • 2019년 6월 '함께 꿈꾸기: 케이팝의 미래와 문화 기술' 토론 콘서트
  • 2019년 06월 25일 '2019 콘텐츠 산업 포럼' 이야기 포럼 섹션에서 '이야기×음악 산업, 아티스트 그리고 세계관' 강연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79&aid=0003244230
  • 2019년 06월 19일 뉴욕 맨해튼 링컨 센터 ‘K-Pop의 진정한 가치’ 특별 연사
  • 2014년 01월 20일 세계 한류 학회 창립 1주년 기념 포럼 ‘2014년 한류의 동향과 전망’에서 ‘케이팝 성공을 이끈 프로듀싱 그리고 문화 기술’ 강연https://entertain.naver.com/read?oid=112&aid=0002515492


3.5. 인터뷰[편집]




4. 사건사고[편집]



4.1. SM엔터테인먼트 경영권 분쟁[편집]


  • 이성수는 당시 공동 대표 이사로서 포스트 이수만 시대를 준비한다며 카카오에 신주 및 전환 사채 발행을 핵심으로 한 SM 3.0을 발표했다.# 이는 카카오를 이수만에 이은 2대 주주로 맞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수만 또한 은퇴를 공언하고 있었기 때문에 순조롭게 진행되는 줄 알았으나 문제는 최대 주주인 이수만의 동의 없는 결정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경영권 분쟁으로 비화되었고 이수만은 적대적 M&A에 반발하며 즉각 가처분 신청을 냈다. 그러자 이성수는 이수만에 대한 폭로전을 시작하였다.# 폭로 과정에서 자신의 배임 혐의 등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용기 내어 용서를 비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정작 대표 이사만 내려놓고 실무로 복귀하겠다는 뜻을 내비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이수만 또한 카카오가 아닌 하이브에게 자신의 지분을 매각하기로 결정하면서 경영권 분쟁이 한층 격화되었고, 이수만이 낸 신주 및 전환 사채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며 이성수의 경영 결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다.# 법원의 판결로 경영인으로서의 이력에 큰 타격을 입게 되었으나 추후에 하이브와 카카오가 극적으로 합의하면서 현업으로 복귀할 길이 열렸다. 결국 C레벨 임원(CAO)으로 복귀 하였다.#
  • 한국증권법학회가 발행하는 증권법연구에 '이성수 등 현 SM 경영진이 추진한 카카오에 대한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에 대한 가처분 판결로 인해 1400억원 상당의 주주 이익 침해를 막을수 있었다는 논문이 발표됐다. 해당 논문에 따르면 현 SM 경영진이 신주를 대량으로 발행함으로써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을 약 9% 정도 희석한 뒤 그렇게 모인 9%의 지분율을 특정인(카카오)에게 집적시켜 그를 2대 주주로 만들어줌으로써 기존 주주들의 지분 구도에 변경을 초래하고 기존 주주들의 비례적 이익(지배권 및 지분가치)을 약화시켰다는 것이 판결의 본질이며 법원의 가처분 판결로 인해 현 SM 경영진의 부당한 경영 결정을 막고 주주들의 이익이 보호되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로 평가했다.#
  • 이수만과 현 SM 경영진 + 얼라인 파트너스 + 카카오 연합의 경영권 분쟁 당시 이성수를 포함한 경영진이 직원들에게 현 SM 경영진의 편에 설 것을 강요하고 현 경영진의 편에 서지 않는 직원에게는 불이익을 주었다는 의혹이 있다. # 피해 직원들은 현재 서울 지방 노동 위원회에 부당 대기 발령 구제 신청을 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서 언론사가 SM에 입장 확인을 요청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5. 기타[편집]


디자인 뮤직과 런던노이즈K-POP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프로덕션 팀으로 만들었고(사실 가장 덩치가 큰 SM에서 곡을 자주 발표하니), 언더독스나 테디 라일리, 스테레오 타입스 같은 세계 최정상 프로듀서들을 섭외하여 수많은 타이틀곡을 주문 제작하였다고 한다.

다니엘 오비 클라인이라는 프로듀서 역시 슈퍼주니어의 'Sexy, Free and Single'과 레드벨벳의 'Automatic'등을 통해 소개된 후 E SENS The Anecdote의 프로듀싱을 맡는 등 여러 음악가들이 소개되고 있다.

일부 아티스트는 그가 추천한 곡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소녀시대의 'Mr.Mr', 샤이니의 'View'가 있다. 샤이니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더 좋은 곡을 찾아보자 했으나 시간이 촉박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으며 태연의 경우 A&R 팀에서 반대하는 'INVU'를 자신의 고집으로 밀어 붙였다고 한다.

2016년 인터뷰에서는 SM도 힙합의 인기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는 뉘앙스의 말을 하고 있다. 이후 데뷔한 NCT의 '일곱 번째 감각'을 시작으로 한 곡들을 보면 힙합이 떠오르는 것이 우연이 아닐 것이다.

SM STATION 채널이나 스크림 레코즈 등을 전략적으로 밀고 있다.

2008년부터 덴마크 출신의 프로듀서 Thomas Troelsen의 곡들을 많이 발표했는데(주문, 산소 같은 너, 셜록, 에브리바디, NU ABO) 앨범 발표 전 유력한 SM의 타이틀곡 프로듀서로 언급이 될 만큼 깨나 여러 기간 동안 실제적으로 SM에서 가장 인상적인 행보를 보여 주었다. 이후 Thomas Troelsen은 플로 라이다, 저스틴 비버, 돈 디아블로, 메간 트레이너, 데이비드 게타 등 톱 뮤지션들과 작업하기도 했다.

  • SM의 오랜 팬들 중 일부는 현재 SM의 다양성 실험 방식에 회의적이고 여러 컬래버나 이벤트 및 기획들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기존 SM 고유의 폐쇄적이고 고집스러운 면을 계속 유지했으면 하는 것이다. 다만 최근에는 SM Station 프로젝트가 재조명되고 있기도 하다.
  • 실제로 가사에 집중하겠다고 말이 나온 뒤 잼 팩토리라는 작사 전문 집단과의 작업이 늘어났다. 서지음 등이 이곳 출신이다.
  • 유튜브에서도 얼굴을 찾아볼 수 있다. 국외 언론과의 인터뷰도 직접 몇 번 하였다. 1979년생으로 40대인 걸 감안하면 상당히 동안이다.
  • JYP 소속의 심은지 작곡가가 SM의 f(x)곡으로 데뷔하거나 Station 참여 및 GSoul이 샤이니 태민의 앨범에 참여하는 등 타 기획사 작가들과의 작업도 활발한데 이는 전 JYP, 울림Ent A&R 총괄, 소니뮤직 아시아 총괄이자 현 모드하우스 대표 이사인 정병기 상무와의 친구 관계로서 소개받은 것으로 보인다.
  • 아무래도 SM 스테이션 등에선 A&R이나 작곡가 취향도 반영되는 곡들이 발표되기도 하는데 켄지의 라틴발라드, 이성수 대표의 재즈와 클래식 취향 등이 그러하게 보인다.
  • 서지음, 전간디 등의 작사가들이 지금처럼 활발하게 활동하지 않던 시절 사실상 신인에 가까운 작가들의 작품들을 기꺼이 쓰고 또 그 작가들의 작사 스타일을(서로의 피드백이 있었겠지만) 굳이 파괴하거나 평범하게 바꾸지 않았다. 프로듀서 히치하이커, 라이언 전의 인터뷰를 보아도 이름값이나 외부의 증명보다는 해당 작가들의 스타일을 꾸준히 발굴하고 시도하려 걸 멈추지 않는다.
업계 1위가 기존에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과 작업이 훨씬 더 수월할 텐데 굳이 안전하게 가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이는 여러 뮤직비디오 감독들과 디렉팅을 같이 하고 영상에 관여했던 민희진 본부장의 경우를 봐도 SM 내부적인 기조인 듯하다.
[1] '김이나의 작사법'에서 인터뷰[2] 에프엑스 매니저를 했다는 것은 잘못된 정보라고 한다[3] 적대적 인수 합병은 경영을 임시로 위임받은 현 경영진이 기준이 되는 게 아니라 최대 주주가 기준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법원이 최대 주주 이수만이 반대하는 현 경영진의 카카오에 대한 지분 매각이 적대적 인수 합병으로 판단할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것은 경영인으로서 이성수의 명백한 큰 실책이라 봐야 한다. 쉽게 말해 이런 시도가 용인된다면 이재용, 최태원, 정의선도 전문 경영인에 의해 원하지 않는 적대적 인수 합병에 노출될 수 있는데 상법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이것이 용인되기는 어렵다. 심지어 이성수를 비롯한 현 경영진은 하이브가 적대적 인수 합병 하는 것이라며 주주와 팬들에게 호도하기까지 했으니 책임이 가볍다 할 수 없다.[4] 이때 이수만이 곡을 구매한다는 소문이 퍼질까 봐 단독으로 핀란드 원작자인 'Risto'의 집에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서 집 앞에서 계약을 확정했다. 그런데 이후 십수 년이 지나자 반대로 SM이 개최한 송라이팅 캠프에 그때의 원작자가 먼저 찾아오게 되었다고 한다. S.E.S 컴백 리얼리티에서 이수만이 직접 밝힌 내용이다. 그야말로 상전벽해.[5] SM은 음악 제작에도 매뉴얼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음악에서 팬들이 느끼는 그 특유의 SM스러움은 유영진스러움이라고 봐도 사실상 무방하다. 이수만이 유영진의 음악 스타일을 적극적으로 지지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 현재의 SM A&R팀의 매뉴얼이다. 보통 유영진하면 SMP만 떠올리지만 SES, 신화, 플라이투더스카이 모두 유영진의 스타일로 만들어진 앨범들이다. 실제로 이수만에 의해 A&R 팀이 고안된 시점이 회사가 너무 커져 유영진이 홀로 모든 앨범을 관리하기가 어려워진 시점과 연관이 있다. 현재에도 유영진은 간간이 작곡에 참여하고 있으며 편곡, 믹싱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여전히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6] 테디 라일리, 이현승, Jinbo, 이은진 등의 국내외 작곡가가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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