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범

덤프버전 :

이세범의 수상 내역 / 역대 등번호
[ 펼치기 · 접기 ]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2006
2008

대구 동양 오리온스 등번호 4번
팀 창단

이세범
(1997~1998)


문혁주
(2002~2005)
대구 동양 오리온스 등번호 3번
팀 창단

이세범
(1998~2000)


김승현
(2001~2007)
{{{#fed300 [[전주 KCC 이지스|대전 현대 걸리버스]] 등번호 6번}}}
김현주
(1997~1999)

이세범
(2000~2001)


김태진
(2001~2002)
{{{#ffffff [[서울 SK 나이츠|서울 SK 나이츠]] 등번호 5번}}}
윤호영
(1999~2001)

이세범
(2001~2005)


정락영
(2005~2007)
서울 삼성 썬더스 등번호 3번
이병윤
(2004~2005)

이세범
(2005~2006)


박영민
(2006~2011)
원주 동부 프로미 등번호 3번
김상영
(2005~2006)

이세범
(2006~2009)


김진호
(2009~2010)



용산고등학교 농구부 코치

YONGSAN HIGH SCHOOL BASKITBALL TEAM

파일:20220827 이세범.jpg

이세범
李世凡

출생
1974년 8월 20일 (49세)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신체
180cm|체중 70kg
직업
농구선수(포인트 가드 / 은퇴)
농구 코치
학력
서울대방초등학교 (졸업)
용산중학교 (졸업)
용산고등학교 (졸업)
중앙대학교 (졸업)
프로 입단
1997년 대구 동양 오리온스 입단
현역시절 등번호
4, 3, 6, 5
소속
선수
대구 동양 오리온스 (1997~2000)
대전 현대 걸리버스 (2000~2001)
서울 SK 나이츠 (2001~2005)
서울 삼성 썬더스 (2005~2006)
원주 동부 프로미 (2006~2009)
코치
원주 동부 프로미 (2009~2017)
용산고등학교 (2017~)

1. 소개
2. 선수 시절
2.1. 고교-대학 시절
2.2. 프로 시절
3. 지도자 생활
4. 관련 문서



1. 소개[편집]


한국의 전 농구선수이자, 현 농구 지도자.


2. 선수 시절[편집]



2.1. 고교-대학 시절[편집]


김병철과 함께 용산고의 앞선을 책임지며 용산고를 90년대초 고교 3강으로 이끈 가드로, 김병철이 졸업한 뒤 첫 대회였던 1992년 춘계연맹전에서 안정적인 게임 운영으로 서장훈-현주엽의 장신군단 휘문고와 박성배의 경복고를 연파하며 우승, 본인은 MVP를 차지한다.

중앙대 진학 후엔 같은 포지션의 쟁쟁한 의 존재와 본인의 득점력 부재로 인해 4년내내 주로 벤치만 지켰고, 주가가 많이 하락한 상태로 대구 동양 오리온스에 자유계약으로 스카웃된다.


2.2. 프로 시절[편집]


파일:서울 SK 시절의 이세범 2003-04시즌.jpg
하지만 의외로 프로에 오면서 백업 가드로 쏠쏠한 활약을 하며 2009년까지 총 5팀을 거치며 무려 12시즌 연속 선수생활을 했다. 대구동양 시절엔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고 00-01 시즌을 앞두고 달랑 2500만원에 현금트레이드 되기도 하지만, 서울 SK 시절부터는 안정적인 경기운영 능력을 가진 백업가드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팀에서 꽤나 쏠쏠한 역할을 해주었고 03-04 시즌엔 황성인에 이은 NO.2 포인트 가드으로 총 47게임을 뛰기도 했다.

파일:썬더스 이세범.jpg
05-06 시즌 서동용(188cm,F)와 1:1 트레이드로 서울 삼성에 합류한 이세범은 '2쿼터의 사나이'[1]라는 애칭을 얻으며 준주전급 1번으로 활약, 서울 삼성의 챔피언결정전 업셋에 깨알같은 공을 세운다. 서울 삼성에서의 한 시즌 맹활약을 바탕으로 이세범은 2006년 FA 시장에서 포인트 가드를 원하는 팀들의 영입대상이 되었고, 두 배로 뛰어오른 연봉(6천만원 → 1억 2천만원)에 원주 동부 프로미 유니폼을 입게 된다.

06-07 시즌 전반기까지 원주 동부의 주전 포인트 가드를 맡았으나 김주성의 아시안게임 출전 공백과 양경민(1972)의 출장정지 파문까지 겹치며 팀이 하위권으로 추락하는 걸 막지 못했다. 시즌 후반기에 표명일이 트레이드로 합류하면서 이세범은 다시 백업가드로 돌아갔고 팀은 2게임차 8위로 아쉽게 플레이오프에 나가지 못한다.

다음시즌인 07-08 시즌엔 표명일의 백업요원으로 활약하며 원주 동부가 정규리그 1위 및 통산 세 번째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하는 데 일조하지만, 정작 이세범 본인은 서울 삼성과의 챔프전 결정전을 앞두고 급성 맹장염에 걸려 병원에서 팀의 우승을 지켜봐야 했다. 이후 08-09시즌에도 팀을 플옵 4강까지 이끈 뒤 은퇴했다.


3. 지도자 생활[편집]


파일:external/www.jumpball.co.kr:43473/news_20160623205613_DP.jpg
은퇴 직후 2009년부터 16-17 시즌까지 원주 동부의 코치를 맡아 강동희-이충희-김영만 감독 순으로 보좌했으며 김영만 감독이 계약 연장을 하지 않고 물러나자 코치직을 사임했다.

2017년 6월부터 모교인 용산고등학교에서 고교 지도자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관련 기사


4. 관련 문서[편집]



[1] 당시 KBL은 2쿼터 한정으로 외국인 선수를 1명만 기용할 수 있었는데, 서장훈의 존재감이 컸던 삼성은 2쿼터에 외국인 빅맨을 빼고 이세범을 기용해 스피드를 보완하고, 서장훈에게 엔트리 패스를 찔러줘 쏠쏠한 재미를 봤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4 00:19:40에 나무위키 이세범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