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번(태종 이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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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인물은 태종 이방원(드라마)/등장인물 참고




조선 태종의 공신
안성부원군 이숙번
安城府院君 李叔蕃


파일:태종 이방원_이숙번.jpg

캐릭터
봉호
안성부원군(安城府院君)
신분
안산군수 (13~19회)
우부승지 (19~20회)
지승추부사(24회)
참찬의정부사지의흥부사 (28회)
등장회차
12회 ~ 30회
배우
정태우[1]

1. 개요
2. 인물 묘사
3. 극중 행적
3.1. 호방한 선비, 늑대의 칼날이 되다
3.2. 태종의 측근이 되다
3.3. 오만방자한 권신, 몰락을 자초하다
4. 인간 관계
5. 여담
6. 어록



1. 개요[편집]



[ 공식 홈페이지 인물 소개 ]


-1 이방원의 칼이자 분신.
이방원이 왕이 되기 위해 치렀던 핏빛 난(亂)의 중심엔 항상 이숙번이 있었다.
그렇다고 무장은 아니다. 엄연히 문과 급제를 이룬 문신이다.
말하자면 문무를 겸비한 인물로, 이방원과 무척 닮았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겸양의 미덕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 측에 가담하여, 세자 방석과 정도전·남은·심효생 등을 제거한다.
이를 계기로 이방원의 충성스런 행동대원이 되어 제2차 왕자의 난과 조사의의 난에도 앞장선다.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등장인물로, 조선의 정사공신이자 좌명공신. 최종 봉호는 안성부원군(安城府院君).

담당배우 정태우는 사극에는 만렙인 배우였지만, 하나같이 단명하거나 기구한 삶을 살고, 그게 아니라도 어리고 유약한 배역을 많이 맡아왔는데, 이례적으로 건방지고 안하무인인 이숙번 캐릭터 또한 대단히 잘 소화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2. 인물 묘사[편집]


행적을 보면 이방원의 최측근이자, 정적의 목을 베는 태종의 칼이나 다름없다. 도성 문을 열고 송현방을 습격해 심효생을 베고, 광화문을 열어 젖히며 숙위군을 이끌던 박위를 베어 넘겨 경복궁 장악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역대 사극에서 묘사된 이숙번과 비교했을 때 본편의 이숙번은 거들먹거리며 안하무인의 성격이었다는 기록을 반영하여, 출사하기 전부터 속물적이고 공격적인 모습, 그리고 도덕적인 명분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인물로 묘사된다. 그리고 출세하려는 야망과 탐욕을 전혀 숨기지 않는 인물이기도 하다. 강경한 의견을 적극 표출했지만, 속물적인 모습보다는 강직한 모습이 주로 비춰줬던 정도전(2014)의 이숙번과는 비교된다. 선동혁용의 눈물에서 맡았던 이숙번도 사실 강직하고 무인적인 모습이 더 많이 그려졌는데[2] 이 작품에서는 그것보다 한층 더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3]

젊었을 적엔 치기 어린 그 모습이 젊은이의 오기 정도로 보여 민제나 이방원 등 이숙번을 중용한 사람들은 그냥 저러다 말겠지라는 식으로 웃어 넘겼지만, 공신이 된 이후에도 자신의 은인인 민제의 두 아들들을 숙청하는 데에 앞장서기도 하고, 점차 선을 넘는 모습을 보여 다른 공신들도 이숙번과 선을 긋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스스로 무덤을 파고 들어간다. 인물 소개대로 '겸양의 미덕'이 없었는지라, 자신의 패악질을 태종이 여러 차례 봐주고 있었음은 생각지 않고 끝까지 선을 넘으며 뻗대다가 결국 태종의 숙청을 피하지 못한다.그리고 죽을때까지 조정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그리고 상왕이 된 정종의 거처인 인덕궁으로 길을 내라고 갑질을 했던 실록의 기록을 반영하여, 무인정사 이후로 이방과와 충돌하는 장면이 여럿 묘사된다. 눈치 없고 천연덕스러운 느낌에 맞춘 연기라서 주변 인물들 신경 안 쓰는 마이웨이 캐릭터가 약간은 코믹스러운 편. 이런 특징도 그렇고 첫 등장에서 말하는 "나라 잘 굴러가고 나만 잘 살면 되지"라는 대사는 훗날 보이는 무소불위의 권신으로서의 일면을 연상토록 한다.[4][5]

전반적으로 무겁게 진행되는 극 중에서 하륜, 이지란, 이화상 등과 함께 극중 개그씬을 책임지는 몇 안 되는 캐릭터이기도 하다.[6] 다만 얼굴 표정 하나 안 바뀌고 사람을 죽이는 섬뜩한 일면이 있어 개그 캐릭터로 보기에는 너무 무거운 감이 있다.

3. 극중 행적[편집]



3.1. 호방한 선비, 늑대의 칼날이 되다[편집]


과거를 치르러 개경에 들어서는 것으로 첫 등장한다. 당시 조선 왕조에 벼슬을 하지 않겠다면서 개경을 떠나는 유생들과 설전을 벌이다가 전부 무술로 제압하면서 "당신들이나 정신차리시오. 어? 당신들처럼 하나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선비들이야! 아, 왕씨면 어떻고 이씨면 어때? 나라만 잘 돌아가고 나만 잘 살면 되지! 아, 괜히 급제할 자신 없으니까. 에으, 이 한심한 것들... 참."이라고 일갈한다. 그 광경을 본 민제하륜에 의해 숙소를 제공받는다. 고위 대신이고 왕실의 사돈인 민제에게 "출출하니 술 한 상 넣어달라."라고 말하는 패기를 보이고, 민제는 오히려 그게 더 마음에 들었는지 웃으며 들어준다.

이후 하륜, 박은 등과 함께 민제의 소개로 이방원을 만나 첫 회합에 참여한다. 이때 이미 안산 군수가 되어 있다. 그는 여기서도 이방원에게 패기있게 "저희들 목숨으로 뭘 하실 거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이방원은 이에 "어릴적에 내가 봐온 늑대 무리들은 가장 우수한 놈을 정해 우두머리로 삼아왔으며, 나도 똑같은 일을 할 셈이다."라고 답하자 만족한 듯한 웃음을 지었다.

14회에서 신덕왕후 능묘 보수 문제로 한양에 오게 되고, 이때 하륜과 만나서는 도성 안에 능묘가 있는 것은 원칙에 안 맞지 않냐면서 따지고, 하륜에게서 도성에 능묘를 조성한 이성계의 정치적 의도를 듣고는, "중전마마가 살아있을 때나 무섭지, 죽어서 관 속에 있는데 무슨 소용이냐?" 라고 디스하면서도 한편으로 정안군을 전하가 그토록 경계하고 있는데 이길 수 있는 싸움이냐며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하륜이 고려 시절 이성계가 수도없이 경계받았지만 끝내 역성에 성공한 예를 들며,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머뭇거리지 않는 자가 이기는 것이란 답을 내놓자 납득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신덕왕후의 능묘를 보수한다는 명분으로 안산의 병력을 이끌고 도성에 진입한다. 주군인 정안군이 삼봉과 논쟁을 하다 파하고 떠난 자리에, "비키시오, 중전 마마의 능을 보수하러 가는 길이요."라면서 능청스럽게 이방원에게 비켜서라고 하고는, 지나가면서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다. 그러면서 군관들에게는 삼군부와 궁의 위치를 주지시키면서 가다가 자신을 멈춰세운 정도전에게 추궁당한다.
곧장 능으로 갈 것이지 삼군부랑 육조 거리는 굳이 왜 지나가나? → 공조에서 확인할 사안이 있어서입니다. → 그럼 자네만 들르면 될 것이지 병사들은 굳이 왜 데리고 오나? → 송구합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 병사들한테 갑옷은 왜 입혔나? → 일하다 다칠까봐 그런 겁니다. → 상자에 든 건 뭐냐? 까 봐라, 만일 창칼이라도 나오면 넌 곧장 순군부행이다. → (곡괭이 등 토목 장비가 나온 후) 이것도 병장기라 생각하시면 압수하십시오. 맨 손으로 일하겠습니다. → 그럼 그만 가 봐라.
하지만 이숙번은 태연하게 넘겨버리고, 그나마 수상쩍게 여기던 상자에도 든 것은 단순한 농장기일 뿐이었기에, 어찌됐든 갑옷만 입었지 비무장 병사였는지라 무사히 도성에 진입하는데 성공한다. 무인정사 당일, 민씨가 숨겨뒀다가 넘겨준 병장기로 무장한 안산 병사들을 이끌고 도성 문을 열었으며, 이후 이방원의 지시를 따라 남은의 첩실을 습격, 심효생을 포함한 세자파 대신들을 모두 척살해버린다.[7] 그리고 조영무가 투항한 뒤 궁궐로 진격할 때에도 앞장서 숙위대장 박위와 일기토를 벌여 목을 베어버린다.

그간 무력이 뛰어난 묘사가 나왔지만, 17회에서 역시 고려 말 전장을 누빈 이방과에게는 상대가 안 되어 이방원에게 항의하는 이방과를 막으려다가 단번에 패대기 당한다. 검모잠에게 패대기쳐진 이검.[8] 도당에서는 칼을 소리가 나도록 칼집에서 반쯤 꺼내다 다시 넣으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중신들을 압박하고, 마지막 남은 정도전 파 대신인 남은도 참수한다.

야간에 궁궐의 경비를 맡고 있을 때, 영안군 이방과가 궁에 출입하려 하자 그를 막고, 고분고분하지 않게 자신을 가로막는 이숙번에게 화가 난 이방과가 정안군의 위세를 믿고 안하무인이라고 비난하자, 자신도 목소리를 높이면서 "정안군의 허락 없이 궁궐을 드나들려는 자는 누구든 목을 베도 좋다고 하셨다"며 위협하여 이방과를 물러나게 만든다. 이전 화부터 이방과와 충돌하는 장면이 계속 나오고 있는데, 이는 실록에 기록되었다시피 권신이 된 이숙번이 안하무인격으로 자신의 집 말고 상왕이 된 정종의 집 앞에 길목을 내라면서 심기를 건드렸던 일화에 대한 복선으로 보인다. 이후 민제, 하륜 등을 비롯한 대신들과 도당에 있다가 김 내관에게 태조가 이방과에게 양위한다는 내용의 교서를 받는다.

정종의 즉위 후 방원의 공신들이 조정 요직을 꿰차는 가운데 승정원에 배치되어 정종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는, 다시말해 감시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성계의 조언을 받은 정종이 자기 신하들을 만들려는 시도를 해서 측근들과 정무를 활기차게 돌보는 것을 보고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곧 손을 써 그들을 모두 사헌부에 비위 혐의로 고발해 잘라냈다. 그리곤 이를 따지는 정종에게 정안공과는 상관 없는 일이라며 딱딱하게 대답하다가 멱살을 잡힌다.

2차 왕자의 난 이후 이방원의 등극이 기정사실화되자 우리 세상이 왔다며 기뻐하고, 하륜과 기방에서 술을 마시면서, 늘 판을 엎을 기회만을 노렸다면서, 고려가 멸망했을 때 역적모의에 동참하지 못한 걸 땅을 치고 후회했다고 거침없이 떠든다.

세자로서 실권을 쥔 이방원이 절제사와 공신들 앞에서 사병 혁파를 천명하자, 이방원의 진의를 다시 한 번 묻는다. 이후 민무구, 이거이 등 절제사들이 반발하는 와중에 본인은 침묵을 지키고[9], 결국 원경왕후의 지지로 민씨 가문이 마음을 바꿔 사병 혁파가 결정되자 민제와 미리 얘기한 대로 이에 재빨리 찬성하고 끝까지 반발하는 이거이와 입씨름을 한다.[10]


3.2. 태종의 측근이 되다[편집]


이방원의 경고로 즉위식이 차갑게 마무리되자 하륜에게 원래 즉위식은 좋은 분위기로 벌이는 게 아니냐며 투덜대고, 방원이 그리한 이유에 대해서 하륜이 설명하자 쉽게 좀 설명할 수 없느냐며 따진다. 이후 전가식의 배후를 찾으라는 태종의 명을 받은 하륜이 박은에게 이를 지시하는 동시에 그에게는 황주(황해도)로 가라고 하자 거긴 왜 가냐고 심드렁하게 묻고, 하륜이 전하께서 거기 귀양간 조영무를 다시 부르려고 하신다며 이유를 알리자 그럼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나선다.

그리고 23회에서 황주에 있는 조영무의 유배지로 찾아왔다. 여기서 처음에 조영무한테 농담을 섞어가며 깐족거리다 멱살을 잡히자 슬쩍 사면소식을 알려주며 같이 한양으로 돌아온다.[11]

조사의의 난이 발발했을 때, 이천우가 패퇴하자 박은과 함께 남도에서 올라온 병력을 이끌고 먼저 출병한 태종의 병력에 합류. 위기에 빠진 태종을 구해준다. 이후 조사의의 난 진압을 축하하는 공신들의 자리에서 다들 힘이 넘치는 것 같다는 이방원의 말에, "힘이 넘쳐서 심심하니 왜구라도 치러가야 할 것 같다"면서 분위기를 띄운다.

태종이 민씨 형제를 쳐낼 결심을 하고, 그의 지시를 받은 하륜을 따라[12] 민무구, 민무질 형제를 쳐낼 공작을 벌이는데, 먼저 민무질에게 방원이 진짜로 세자에게 양위를 할 수 있다고 바람잡이를 해서 그들에게 기대감에 차게 해 민씨 형제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고, 양위를 거둔 뒤 표정이 굳어진 민무구와 민무질을 보면서 "두 분은 하나도 기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며 바로 공격에 들어간다.[13]


3.3. 오만방자한 권신, 몰락을 자초하다[편집]


하륜의 비리에 관한 투서가 사헌부에 날아들고, 태종이 이를 애써 묵인하지만 조영무와 유정현, 박은 등이 하륜의 처벌을 주장하자, 어전에서 나오는 길에 같은 공신들끼리 너무하는 것 아니냐고 비난한다. 이에 대해 신하가 국왕에게 먹칠하는 것은 피해야 하지 않겠냐고 좋게 설득하는 조영무에게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이 어딨는가. 대감이라고 내가 건드리면 무사하실 것 같냐."는 협박 비슷한 말을 한다.[14] 이때 조영무를 두둔하는 박은에게 "야, 네가 판서 됐다고 지금 나한테 바른 말 하려는 거냐?''라고까지 하는데, 이에 박은이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라고 정색하자 멱살잡이를 하려다가[15][16] 조영무에게 제지당하면서, 위계를 무시하고 안하무인격으로 굴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니 사헌부 끌려 가기 싫으면 자중하라는 경고를 듣게 되고, 이에 동료들이 자리를 뜬 뒤에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른다.[17]

29회에서 세자의 대학연의 완독을 축하하는 술자리에서 농을 치며[18] 분위기 메이커로써의 역할을 한다.

30회, 하륜과의 술자리에서 간관들이 별의 별 걸로 트집을 잡는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그에 대해 하륜은 그러지 말고 전하께 용서를 빌고 자중하고 근신하라며 말리지만, 본인은 그럴 수 없다며 술자리를 파하고 나가버린다. 그리곤 야밤에 대신 중 하나를 협박하여 간관을 처벌하라는 상소에 서명하라고 강요한다.

하륜이 태종에게 사직을 청하고 물러가던 날, 공신(자신)을 모욕한 사헌부 간관들을 처벌하라는 상소를 직접 태종에게 올린다. 태종은 여기에 서명한 대신들이 자발적으로 서명한 게 맞냐고 이숙번한테 물었고 이숙번은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한다. 태종은 다시 임금에게 거짓을 고하는 것은 불충[19]이라고 하면서 거짓으로 한 것이 아닌지 물어본다. 사실상 마지막으로 경고한 것인데[20] 이숙번이 자신있게 거짓이 아니라고 대답한다. 이에 태종은 나가보라고 하면서 매우 복잡미묘한(화나면서 안타까워 보이는) 표정을 짓더니 이숙번을 불러세워 그 동안 고생했다며 노고를 치하하고 이숙번은 계속 전하를 위해 일하겠다 대답하지만...

결국 바로 다음 장면에서 유정현으로부터 공신 녹권과 직첩을 모두 박탈한다는 태종의 어명을 듣고 경상도 함양으로 유배되는 형벌을 받는다. 이숙번은 말도 안 된다고 유정현에게 반말을 하며 태종을 직접 만나야겠다면서 달려나가지만, 병력들에게 제압당하고 함거(죄인을 태우는 수레)에 강제로 탄 와중에도 "이대로 끝인 줄 아느냐?! 돌아오면 널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이다!"라고 반성하지 않고 발악하는 것으로 퇴장한다.[21] 이때 사직한 뒤 낙향하던 하륜이 심란한 표정으로 이숙번이 유배가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본다.


4. 인간 관계[편집]



4.1. 이방원[편집]


자신의 주군. 하지만 이성계-이지란에 비견될 의형제급으로 친밀하던 이전 사극들과는 달리 주군과 신하 이상으로 사적으로 친밀한 관계는 아니다.[22] 여기서 이숙번에게 이방원은 형님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실현해줄 사다리에 가깝고, 이방원에게 이숙번은 자신을 대신해 더러운 짓을 도맡아 주는 고마운 인재다. 하지만 태종 정권 이후 그의 신임을 믿고 계속 안하무인하게 굴다 동료 대신들과 점차 척을 지고, 급기야는 그런 그를 가만히 지켜보던 태종마저 신임을 거두고 유배를 명하면서 숙청당하고 만다. 사실상 자신의 안하무인적인 성격과 잘못된 처신으로 스스로 무덤을 파고 만 셈.

4.2. 이방과[편집]


주군의 형이지만 1차 왕자의 난 이후로 부딪히는 일이 많아지며 악연이 되고 있다. 권신이 된 이후 서대문을 틀어막고 정종의 집 앞으로 길을 내라던 실록의 기록이 극중에 반영된다면 절정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 분량 문제를 생각하면 생략될 가능성이 높지만.[23] 30회에서 대간이 탄핵 상소에 '상왕께 방자했다'라는 내용이 있다는 말로 간접적으로만 언급되었다.

4.3. 하륜[편집]


출사하기 전 민제와 함께 처음으로 만나서 시원스런 선비라는 호평을 들으며 인간 관계를 구축, 이후 서로 농담도 잘 던지고 둘이 함께 술을 마실 정도로 친근한 관계로 묘사된다. 하륜이 부패 혐의로 탄핵될 때도 혼자서 두둔할 정도. 하지만 하륜 역시 대신들과 척을 질 정도로 안하무인으로 일관하던 이숙번에게 질려 낙향하기 직전 처신을 제대로 하라며, 진심어린 마지막 충고를 남기지만 이숙번이 그조차 듣질 않자 결국 조용히 사직하면서 그와의 인연도 청산해버린다.

4.4. 민제[편집]


하륜과 함께 본인을 등용시켜준 은인같은 존재. 무인정사 때 여흥 민씨 집안과 함께 이방원 진영의 최전선에 서서 이방석 및 정도전 일당을 제거하고, 쿠데타를 성공시켜 태종 정권을 수립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사병 혁파를 둘러싸고 태종이 왕비 및 외척인 여흥 민씨 집안과의 마찰을 시작으로 여흥 민씨 집안을 경계하기 시작하면서, 하륜과 함께 여흥 민씨 집안 숙청의 장기말이 되는 신세가 되며 민제와 멀어지고 만다. 본인도 민씨 집안에 은을 입었던지라 처음엔 민씨 숙청 계획에 한숨을 쉬며 크게 내켜하지는 않았지만, 곧 마음을 굳히고 태종의 처남들을 처형시키는데 앞장서게 된다. 정작 본인도 잘못된 처신으로 인해 민씨 집안과 마찬가지로 숙청의 대상이 되고 말았지만, 목숨까지 빼앗긴 민제의 아들들과는 달리 그나마 목숨을 부지하고 쫒겨났으니 다행으로 여겨야 할 지경.

4.5. 조영무[편집]


1, 2차 왕자의 난과 조사의의 난까지 태종과 본인과 함께 전장터에서 함께 싸워 이긴 전우였으며 민무구, 민무질 형제를 숙청할 때도 협력하여 하륜까지 이방원의 측근 중에서도 최측근인 3인방이라 할만하다. 그러나 이숙번과 사적으로도 친한 하륜과 달리 조영무는 사적인 친분은 전무했고 오히려 안하무인인 이숙번을 경계했다. 애석하게도 이숙번이 상대하기에는 조영무가 연륜과 무력이 훨씬 위였고 그와 하륜이 고령으로 조정에서 물러나 여생을 살다간 반면, 이숙번은 마지막까지 권신으로 굴다가 홀로 토사구팽당하고 몰락하는 대조적인 결말을 맞았다.


5. 여담[편집]


본작에서는 용의 눈물에서 이숙번을 맡았던 선동혁(극중 이지란), 정도전에서 이숙번을 연기했던 조순창(극중 이방간)도 출연해 총 삼숙번이 등장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왔다.

이전에 무인시대에서 정태우 본인이 연기했던 희종과 비슷한 면이 있다. 단, 유배 과정에서의 차이점이 있다면 희종은 최충헌을 죽이려고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폐위될 당시 참회를 했던 국왕인 반면 이숙번은 참회고 뭐고 유배 당시 저항부터 했던 인물이었다.

배우 개그면으로는 아무래도 사극에 오래 몸을 담근 정태우인지라 여러 소소한 개그가 많은데, 심효생 역에 분했던 이경영과는 용의 눈물에서 세트로 죽임을 당했던 입장이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그 매제를 죽이는 역할을 맡은데다가, 하필 그를 탄핵하는 역할을 맡은 배우가 임호가 맡은 유정현인데, 정태우는 왕과 나에서 연산군을, 그리고 임호는 대장금에서 중종을 맡았던지라 중종이 이복형 연산군을 몰아내는 꼴이 되었다.

6. 어록[편집]


당신들이나 정신차리시오. 어? 당신들처럼 하나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선비들이야! 아, 왕씨면 어떻고 이씨면 어때? 나라만 잘 돌아가고 나만 잘 살면 되지! 아, 괜히 급제할 자신 없으니까. 에으, 이 한심한 것들... 참.

- 12회, 첫 등장. 고려에 충성을 강요하는 유생들을 후드려 팬 뒤

저희들 목숨으로 뭘 하실 겁니까? 어디까지 가실 겁니까?

- 13회, 이방원의 가신들이 모인 회합에서 이방원의 포부를 물으며

비키시오. 중전 마마의 능을 보수하러 가는 길이오.

- 15회, 안산의 병력을 이끌고 이방원에게 능청스럽게

알지. 세자의 장인.

- 16회, 심효생을 직접 죽이며

아셨으면, 어서 물러가시지요. 이거 놓고 어서 물러 가십시오. 정안군의 허락 없이 궁궐을 출입하려는 자, 누구든 목을 베도 괜찮다고 하셨습니다!

- 18회, 궁궐에 들어가려는 이방과와 충돌하며

날마다 이런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용상이 그냥, 확! 뒤집히는 기회 말입니다.}}}

- 20회, 이방원의 집권 확정 후 축배를 들며 술김에

야, 가 지금 판서 자리 올랐다고, 나한테 바른 말 하려는 거냐?

- 28회, 자신을 비판하는 박은에게

너 이놈, 내가 반드시 돌아와서 네 놈을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이다! 내가, 여기서 끝날 줄 아느냐? 나 이숙번이야! 정사공신 안성부원군 이숙번이란 말이다!

- 30회, 숙청되어 귀양 가는 길에
[1] 〈용의 눈물〉에서는 이방번 역을 맡았으며 이번이 KBS 대하드라마 11번째 출연이다. 태조 왕건에서도 김영철이 연기한 궁예의 책사 최응을 연기한 인연이 있다. 거기서도 통수쳤지[2] 물론 오만한 모습도 어느정도 그렸긴 했지만.[3] 일단 말투부터가 다른 신하들과 달리 껄렁껄렁하다.[4] 실제 이숙번은 시끄럽다고 사대문 중 하나를 무단으로 틀어막고, 자기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왕명까지 거부할 정도로 삐지는 등 마이페이스적인 면을 보였다.[5] 이는 왕명을 받드는 장면들이 나올 때에도 드러나는데, 태종 즉위 후 군사적인 일에 같이 엮여서 나오는 박은은 다른 신료들처럼 대답할 때 가볍게 목례하며 명을 받드는 반면, 이숙번은 항상 고개를 숙이지 않고 명을 받든다.[6] 1,2차 왕자의 난 이후 이지란, 이화상 부자는 점점 비중이 줄고, 왕실의 피바람을 보고 웃음기도 없어졌기 때문에 하륜과 함께 사실상 투톱 체제이다.[7] 심효생을 맡은 이경영용의 눈물에서 정태우가 맡았던 이방번과 같이 죽임을 당한 이제 역할을 맡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참으로 묘한 캐스팅이다.[8] 사실 그간 드라마에서 이숙번이 무장으로 묘사되고 정종이 유약하게 묘사되어 그렇지 역사를 살펴보면 오히려 정종이 무장의 기질이 훨씬 더 강했다. 태조를 따라 여러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9] 사실 이숙번은 권문세족 출신이 아니고 개국공신도 아니었기 때문에 본인이 가진 사병이 전무했다. 때문에 사병 문제와 관련해서 민씨 가문이나 이거이 등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웠으며, 오히려 본인을 등용해 준 이방원의 주장에 동조하여 힘이 되어 준다.[10] 이거이에게 '세자 저하께서 결정하신 일인데 왜 이리 군말이 많냐'며 질책한다.[11] 용의 눈물에서 태종의 명을 전하러 갔다가 따귀를 맞은 것을 오마주한 장면이다. 다행히 이쪽 조영무는 점잖은 스타일이라 멱살로 그쳤다.[12] 지시를 이행하겠다고 하면서도 하륜과 회의할 때 하륜과 마찬가지로 본인의 출세를 도와준 민씨 가문을 작살내야 해서 내키지 않는 마음에 탄성을 내질렀다.[13] 이때 이숙번과 공신들의 조리돌림이 백미다. 이숙번은 희색을 띄며 천세를 열창하면서도 고개를 돌려 민무구와 민무질의 반응을 슬쩍 보다가, 둘의 표정이 굳은 것을 보고 바로 "아니 그런데 두 분은"하면서 운을 뗄 때만 해도 밝은 표정이었다가, 곧 정색하면서 "하나도 기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라고 공격에 들어가고 이에 하륜도 천세도 안 외쳤다면서 옳다구나 거들고 마지막으로 조영무가 숙위병들을 불러 바로 둘을 사헌부로 끌고 가버린다.[14] 하지만 조영무는 죽을 때까지 그 흔한 뇌물 사건 하나 없었을 정도로 청렴한 인물이었다. 졸기에도 '소박하고 공정하다'란 말이 있을 정도. 그러니 이숙번의 저 말은 그냥 성질나서 뱉은 시비에 가까운 막말이다.[15] 실제로는 박은이 1370년생으로 이숙번보다 나이가 3살 많을 뿐만 아니라 이숙번이 조선 초인 1393년에 과거에 급제했을 때, 박은은 이보다 8년 빠른 고려 말 1385년에 이미 급제하여 관직 경력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왕자의 난 이후에는 이숙번이 출세 가도에서 박은을 한참 앞질렀고, 태종 즉위 이후에도 박은이 한참 동안 지방관을 돌며 인사고과 점수를 채우고 있을 때 이숙번은 삼군부나 의정부의 요직에 있었다. 나중에 박은이 이숙번을 뛰어넘어 정승이 되었을 때도 이숙번은 원래 박은이 자신의 밑에 있던 사람이라며 실망감을 드러냈다.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의 품계가 명목상으로는 정2품으로 같지만 갓 2품이 된 박은과 2품으로 경력을 오래 채운 이숙번이 비교될 수는 없었다. 그런 점을 감안해도 박은이 자신보다 어린 이숙번에게 예의를 지키는 마당에 정작 이숙번은 무례하게 반말을 하며 박은의 멱살을 잡고 한 대 치려했다.[16] 현대 사회로 따지면 청와대 국무조정실장, 국회사무총장, 국회 상임위원회 위원장들(이숙번의 현대 직책)이 국방부장관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박은이 맡은 병조판서 현대 직책)을 겁박하고 폭행을 가하려 한 셈이다. 현대 사회였음 이숙번은 박은한테 사과로 끝나면 다행이고 해임되거나 국회의원이면 다음 총선 낙선 대상으로 선정되어 똑같이 실제 역사처럼 정치 생명이 끊어졌을 것이다.[17] 양녕대군이 폐세자되기 1년 전에 유배를 가게 된다. 안하무인성 성격에 나이가 한창인지라(이방원보다 6살이 어리다) 세자를 갖고 놀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배를 보내고 죽을 때까지 태종은 찾지 않았지만 세종은 1438년 1차 왕자의 난 당시 기록을 수정하기 위해 잠시 이숙번을 불러 올린 적이 있다. 다만 아버지의 유언을 깰 수는 없었기에 복귀를 시키지는 않았고 경기도 인근에 살도록 허락해주는 선으로 마무리했다. 신하들이 다시 유배보내라는 상소를 이숙번이 아프다는 이유로 세종은 거절했는데 실제로 이숙번은 세종이 부른 뒤 얼마 못 가(1440년) 병사했다.[18] 태종이 자신도 늙은 것 같다고 하자 "왕자들에게 늙지 말라 명하십시오."라는 말을 하는데, 자신이 숙청된 이유가 상술했듯이 젊어서 세자를 가지고 놀 소지가 있어서였음을 생각해보면 묘한 대사다.[19] 임금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기군망상죄에 해당하며 이는 기본 사형으로 다스리는 중죄이다. 그럼에도 유배형으로 끝냈으니 사실상 봐준 셈. 재미있게도 태조 왕건에서 최응을 연기한 정태우는 극중에서 이 기군망상죄를 몇 번 언급한 적이 있다.[20] 태종은 아랫사람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더라도 한 번의 기회는 주는 것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 방금 그 경고가 첫 번째이자 마지막 기회였던 셈.[21] 태종은 세종에게 절대로 이숙번을 불러들이지 말고 유배를 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였기에 이후 이숙번은 두 번 다시 정계에 복귀하지 못하고 만다. 세종이 용비어천가를 지을 때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증인으로 불렀을 때도 유배가 풀린 마냥 안하무인격으로 굴었고, 세종은 유배는 풀어 경기도에서 살게 해줬지만 태종의 유지대로 그를 복직시키지는 않았다. 세종이 부른지 얼마 안 가서 이숙번이 세상을 떠나긴 하지만.[22] 이방원에게 의동생 같은 역할에는 이 드라마에선 이화상이 가깝다.[23] 실록에서 어리가 처음 언급되는 것이 1417년인 반면, 이숙번이 서대문을 틀어막고 인덕궁 앞으로 길을 내라고 고한 것은 1413년이다. 나오더라도 이숙번의 죄를 열거할때 잠깐 언급되기만 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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