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공포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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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한 시위자.
1. 개요
2. 근대 이전의 이슬람공포증
3. 현대의 이슬람공포증
3.1. 배경
3.1.1. 국제정세 변화
3.1.2. 이슬람 문화적 특징
3.1.3. 이슬람 급진 단체의 테러범죄와 여파
4. 이슬람공포증의 현황
4.1. 정파별 현황
4.2. 지역별 현황
4.2.1. 유럽, 영미권, 이스라엘
4.2.2. 제2세계
4.2.3. 제3세계
4.2.4. 튀르키예
4.2.5. 대한민국
5. 전망
5.1. 극복을 위한 노력
5.1.1. 이슬람 외부의 노력
5.1.2. 이슬람 내부의 노력
5.2. 한계
5.2.1. 이슬람 측의 문제
5.2.1.1. 관련 문서
5.2.2. 비이슬람 측의 문제
6. 결론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본 문단에서는 이슬람공포증에 대한 학술/이론적인 접근을 하며, 가치판단 없이 이슬람공포증을 서술한다.
Islamophobia

이슬라모포비아(Islamophobia)는 이슬람 + 포보스(Phobos: 그리스어로 공포)가 합성되어 만들어진 단어로, 한국어로 풀이하면 '이슬람 공포증' 혹은 '이슬람 혐오증'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슬람 문화권과 무슬림, 혹은 이슬람 그 자체에 공포를 느끼거나 그 공포심이 발전하여 혐오감까지 느끼는 것까지 총체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학술적으로 이슬람공포증(이슬라모포비아)이 정확히 무엇인가, 인종차별, 반이슬람, 반무슬림, 반아랍인 등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에 대해서 논란이 있다. 단순한 인종주의에 불과하다고 보는 학자들도 존재하며, 9.11 테러,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 등의 이슬람 근본주의에 대응하여 나타나는 심리, 유럽에서는 자국의 무슬림 인구 증가에 따른 경계 심리라는 세 의견이 가장 강세이다. 그 밖에 프레드 할리데이는 무슬림에 대한 비이성적인 공포를 포괄적으로 "반무슬림주의(Anti-Muslimism)"로, 롤랜드 임호프와 줄리아 레커는 편견과 정당한 비판을 구분하고자 "이슬람 편견(Islamoprejudice)"으로 명명하는 게 적합하다는 의견을 보였다.

또한 반이슬람적 성향이 있는 유럽북미에서 전국으로 이슬람 포비아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는 가운데, 실제 이슬람공포증은 비이슬람국가의 정상인들의 의미 없는 행동을 이슬람의 무슬림들이 음탕한 말과 행동 그리고 반종교적인 행동이라고 착각하며 극심한 분노를 일으키는 것에 대하여, 극히 보통 인간과는 다른 성향의 사상과 행동에 대해 정상인들이 인간적이고 원초적인 거부감과 혐오감을 이슬람에 느끼는 것과 이슬람에 대한 불통과 여러 가지 국제 사건에 어울려 이슬람 공포증으로 굳어진다는 주장이 있다.[1]

일례로 1996년 러니메이드 트러스트는 이슬람에 대한 서구의 시각을 '개방적 관점'과 '폐쇄적 관점'으로 구분하여, 이 중 폐쇄적 관점을 이슬라모포비아로 정의하였다.[2] 요약하자면 미디어나 일상적 대화로부터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생성되고, 고용, 의료, 교육 등 사회 서비스 제공에 있어 무슬림을 차별하고 배제하며, 나아가 물리적 또는 언어적 폭력에 이르는 전반적 과정 모두가 이슬람공포증에 해당한다.

대다수의 무슬림들은 원리주의자들과 달리 이슬람 종교법에 바탕한 국가나 사회에 이념적으로 열성적이지 않고,[3] 법 체계상으로도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샤리아를 전통적인 방식으로 적용하지 않는다.[4] 하지만 무슬림들이 샤리아를 정의로운 것으로 여기는 성향은 존재한다. # 일단 이성적인 측에서는 "만들어진 시대를 감안하고 취지를 생각하면 정의로운 것이지만 현대사회에는 맞지 않는 옛법"으로 인식하고 비이성적인 측에서는 "무조건 따라야할 정의"로 인식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학술적으로는 이슬라모포비아는 근본적으로 이슬람교에 대한 공포심과 더 나아가서는 혐오심이 정의이며, '단순한 포비아' 와 '그로 인해 파생되는 차별 등의 행위'는 명백히 구분되어야 한다. 롤랜드 임호프와 줄리아 레커의 주장대로 쿠란의 교리를 곧이곧대로 해석하는 자들이나 샤리아를 개정할 수 있음에도 밀어붙이는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국가 무슬림들에 대한 정당한 비판은 이슬람포비아에 포함되지 않는다.

ECRI(유럽 인종주의 및 불관용 인권위원회)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비판을 제외한 나머지 이슬라모포비아를 그 형태 및 강도와 무관하게 반인권적인 행위로 규정하고 있으며, 유럽인권위에서도 2011년 ECRI의 2010년 연례보고를 인용, 유럽에서의 이슬라모포비아 증가 추세에 대해 경고하였다. 2015년 4월 21일 UN에서 개최한 관용과 화해를 위한 고위 주제 토론 개회 선언에서도 "반유대주의, 이슬라모포비아, 인종차별 등 모든 불관용의 형태가 가시적으로 나타난 것을 규탄해야 한다"고 경계했다.


2. 근대 이전의 이슬람공포증[편집]


이슬라모포비아라는 용어는 심리학의 발전과 민족주의의 대두 이후인 1918년에 생긴 것이지만, 개념 자체는 역사상에서 여러 가지 유례를 통해 찾아볼 수 있다. 서구의 이슬라모포비아를 가장 잘 나타내는 표현이 "한 손엔 칼, 한 손엔 쿠란"인데, 이는 이슬람의 전파가 전쟁을 통한 정복 행위와 함께 이루어졌기 때문에 발생한 속설이다. 즉, 이슬람 제국이 세력을 키울 때마다 유럽에서는 이에 대한 공포가 만연했다고 볼 수 있다.

이슬람의 첫 유럽 진출은 우마이야 왕조 시대로, 771년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하고 현재 프랑스 남부 지역까지 쳐들어가 유럽을 위협했다. 농담이 아닌 것이, 만약 732년 투르-푸아티에 전투에서 카롤루스 마르텔이 이슬람군을 막지 못했다면 지금 유럽은 이슬람 문화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5] 1096년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어 1099년 일시적으로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탈환하여 이슬람으로부터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듯 했으나, 살라딘이 이끄는 아이유브 왕조가 일어나 1187년 예루살렘을 다시 점령하였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은 메흐메트 2세 하에서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발칸반도 일대를 점령, 이후 오랜 시간 유럽과의 대치 관계를 유지하였다.

이슬람권은 정복 전쟁을 통한 세력 확장 과정에서 점령 지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고자 학살이나 추방 대신 기존 거주민의 종교를 인정하되 차별을 두고 세금을 더 거두는 정책(이른바 '지즈야')을 취했다. 오스만 제국의 경우 1831년 인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약 1/3 가량이 그리스 정교회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이슬람과 인접한 유럽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로, 동유럽, 이베리아 반도 등 이슬람권과 상대적으로 많은 접촉이 있었던 지역에서는 전쟁의 위협은 있었어도 이슬람 자체에 대한 반발은 그다지 크지 않았고, 오랜 세월에 걸쳐 무슬림 지배하 비무슬림이 병존하는 구도가 형성되었다. 이슬람과 타 종교의 병존 흔적은 콥트 정교회, 아르메니아 사도교회, 레반트 지역 기독교 등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오랜 세월 이슬람 해적들에게 습격당하던 중부 유럽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공포가 크게 자리잡았다.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만 해도 100만명 이상의 유럽인들이 바르바리 해적들에게 노예로 끌려갔다. # 이슬람 해적들의 습격은 8세기부터 시작되었는데, 8세기부터 15세기까지는 얼마나 많이 노예로 끌려갔을지 파악하기도 힘들다. 이슬람 해적의 주요 습격지는 남부 프랑스와 남이탈리아였는데, 동유럽은 동로마 제국의 영토였으니 상대적으로 공략하기 힘든 데다가, 동로마 제국 멸망 뒤 오스만 제국을 공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이베리아 반도는 오랜 기간 무어인이 지배했으므로 만만한 상대였던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집중되었던 것. 프랑스는 중앙집권이 확립되지 않아 왕과 귀족 간의 다툼과 분쟁이 잦았고, 이탈리아는 여러 국가로 분열되어 힘이 없었다. 또한 16세기 후에는 해상 활동을 활발히 했던 영국인들도 많이 노예로 끌려갔다. 참고로 정말로 이슬람과 마주할 기회가 없었던 스칸디나비아 같은 북해 쪽의 유럽인들은 아예 20세기 이전까지 이슬람에 대해 관심 자체가 별로 없었다. 실제로 십자군 전쟁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 나라는 항상 프랑스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었다.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바르바리 해적이라면 치를 떨 정도였다.

십자군 전쟁 무렵 장편 서사시인 무훈시(chansons de geste)들이 일반인 사이에 유행하였는데, 일부에서는 이를 이슬람을 상대로 무기를 들도록 기독교도들을 독려하는 프로파간다[6] 해석한다. 예루살렘 재함락 위기가 감돌던 1145년에는 프레스터 존의 전설이라는 이야기를 지어내면서까지 유럽 기독교 세력은 이슬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 위안을 얻고자 하였다.

하지만 십자군 전쟁의 발단이 단순히 비가톨릭을 배제하려는 중세 교회의 배타성과 기독교도들의 종교적 광기가 원인인 것으로 보던 이전 세대와 달리, 현재 학계는 십자군 전쟁이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한 배경에서 일어났다고 평가하고 있다.[7] 예루살렘 성지의 수복은 십자군 원정에 순례의 성격을 더해주기 위해 추가된 것이었지, 십자군의 본래 목적은 어디까지나 이슬람의 공격으로 심각하게 수세에 몰린 동로마 제국의 원군 요청에 의한 응답이었다. 그리고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하여 동로마 제국에 결정적 타격을 입혔다.

이슬람에 대한 공포에 지배되던 일반인들과는 달리 학자들은 이슬람권과 비무슬림권 모두 적극적으로 교류하였다. 이슬람권에서는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모든 무슬림의 의무"라는 무함마드의 가르침에 따라 인종을 불문하고 학자들을 우대하였고, 중세 교회법과 스콜라 철학에서도 관용(tolerantia)에 대한 관심이 커서 이슬람권의 철학과 학문을 배우는 것을 적극적으로 장려하였다. 그 결과 아바스 왕조에서 꽃을 피운 당대 최고 수준의 학문을 배우기 위해 각지에서 학자들이 자발적으로 유입되었고, 이러한 학술적인 교류를 통한 상호 이해는 이후 르네상스로 이어지는 원동력이 되었다.

의외로 근세 시절 개신교가톨릭과의 사이에 비하면 이슬람권에 비교적 호의적인 편이었다. 교리 면에서 약간 비슷한 것도 있었고 오스만 제국신성 로마 제국의 개신교도들을 지원해주기도 하였다. 마르틴 루터도 오스만 제국에 대해 맞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우상 숭배 금지 등에 대해서는 은근히 칭찬하기도 하며 교황보다는 쟤네들이 낫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3. 현대의 이슬람공포증[편집]


제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하여 이슬람권과 서방세계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는데, 오스만 제국이 참여했던 동맹군이 패전함에 따라 영토의 대부분이 연합군에 편입되면서 서방세계가 무슬림을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영국은 1915년 맥마흔 선언에서 전후 아랍인들의 독립국가 건설을 지지한다고 했으나, 1916년 사이크스 피코 협정으로 프랑스, 러시아와 중동을 분할 통치하기로 밀약하였고, 유대인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1917년 밸푸어 선언으로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독립국가 건설을 약속했다. 이슬람권에서는 이를 현재 중동 문제의 시발점으로 보고 있고,[8] "서구로부터의 독립과 이슬람 문화의 부흥"을 내세운 무슬림 형제단이 1928년 결성되면서 이슬람 근본주의가 나타났다.

다수의 무슬림들이 연합군 국민으로 유입되면서 프랑스 혁명산업 혁명 등을 거쳐 근대화된 사고방식을 갖게 된 유럽인들과의 가치관 차이에 따른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였다. "이슬라모포비아"라는 어휘 자체도 이 무렵 발생하였으며, 문학, 영화 등 각종 매체에서 아랍인에 대해 테러리스트(bomber), 졸부(billionaire), 윤락녀(belly dancer) 등 3B라는 부정적 이미지의 묘사가 시작되었다.[9]

독일, 이탈리아 등 일부 국가들의 우경화 및 배타적 민족주의로 인해 이슬람권에서의 유럽 이민은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전후 복원을 위해 노동력 수요가 급증하였다. 프랑스, 네덜란드 등은 아프리카 식민지를 독립시키며 해당 국가 출신 혼혈들의 이민을 타 유럽 국가들에 비해 적극적으로 수용하였으며, 식민지가 없었던 독일의 경우도 초청노동자라는 개념으로 터키, 폴란드, 이탈리아, 아시아계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유치하였다. 1970년대 중반 이후 탈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유럽으로의 이민은 점차 줄어들었으나 당시 유입된 문화는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지역사회에 흡수되고 융합되었다. 유럽에서의 이슬라모포비아는 이러한 이문화간 융합에 적응하지 못한 사회 계층에서 주로 발생한다.

한편으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스라엘이 건국됨에 따라 중동 문제는 크게 악화되었으며, 그 외에도 중동의 각국은 미국소련이 서로 친미/친소 정권을 심으려 하는 정치적 영토 싸움 대상이 되었다.[10] 파키스탄에서는 무함마드 지아울하크 장군의 쿠데타를 지원, 친소 성향인 줄피카르 알리 부토 총리를 1977년 실각시키고 1979년 사형시켰다. 이로 인해 우파 이슬람 정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파키스탄 인민당이 추진하던 세속주의, 사회적, 경제적 개혁은 무산되었고, 그 결과 현재 파키스탄은 악명 높은 이슬람 광신 국가에 거의 무정부 상태탈레반 세력의 본거지가 되었다. 이란에서는 친미 성향인 팔라비 왕조의 전제군주제를 탈피하려 노력한 모하마드 모사데그 총리를 자헤디 장군의 쿠데타 지원을 통해 실각시켰고, 이란 혁명을 저지하기 위해 팔라비에게 갖은 지원을 하였으나 결국 반미, 반서방 성향의 이슬람 근본주의자인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집권하여 이슬람 신정 국가가 되었다. 특히 반미, 반서방 정책을 추구하자, 미국과 유럽은 이란에게 경제 제재를 날려 이란 경제가 그 전보다 더 악화되게 만들었다. 이란의 경제 제재는 2016년 이란이 핵포기를 하기로 합의하여 해제될 때까지 가해졌다. 경제 제재가 해제되었다 해도 군사 분야의 제재는 여전히 해제되지 않아 이란은 군사력 강화를 못하는 형편이다. 2017년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새로운 경제 제재를 했다.

그 후로도 중동 국가들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이 커지자, 미국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3, 4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지원하였다. 그리고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이라크를 지원하여 이란-이라크 전쟁의 빌미를 제공하였다. 그 지원을 받은 사담 후세인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 종식된 후 쿠웨이트를 침공하였고, 결국 이를 막기 위해 미국이 걸프 전쟁에 직접 참전하여 후세인 세력을 강력하게 공격하여 쿠웨이트에서 쫓아내었다. 이는 그간 미국의 각종 개입으로 말미암아 싹튼 반미 감정이 팽배했던 중동권의 입장에서 "이슬람에 대한 전쟁 선포"로 해석될 여지를 제공하였다. 하지만 중동권에는 미국을 상대할 힘이 없다 보니[11] 분노만 삭히다 결국 폭발하는데, 이로써 발생한 사건이 바로 9.11 테러이다. 이에 대해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구체적인 실체가 없는 "테러"라는 개념을 적으로 삼을 수는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의 이슬람 국가를 상대로 한 전쟁을 계속하였다. 미국과 비 이슬람권 친미 국가들에서의 이슬라모포비아는 유럽과 달리 전쟁 상대에 대한 적대감 및 잠재적 테러 집단에 대한 공포감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서방국의 "테러와의 전쟁" 일환으로 이슬람 국가의 침략에 대한 반발로 이슬람 극단주의가 부각되었다. 이들은 마드리드 열차 테러 참사, 런던 지하철 폭탄 테러를 자행하여 많은 사상자를 발생하였고,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반이슬람 분위기가 고조되어 무슬림에 대한 무차별 폭행, 사회 참여 거부 및 탄압, 차별이 거리낌 없이 자행되었다. 유럽 내 무슬림 비중이 적지 않고 사회 일각의 화해와 동반자의 관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슬림에 대한 테러는 자행되었다. 2005년 프랑스 시 외곽에서는 경찰의 검문에 불응하여 도주하던 무슬림 청소년들이 변압기에 감전되어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무슬림과 아프리카 저소득 계층에 대한 괄시를 받던 이들은 무슬림의 탄압을 금지라는 구호하에 시위, 폭동으로 번졌다.[12] 이후 프랑스 사회 내에서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져 갔고, 무슬림의 화해와 협력이라는 기조를 보였다. 물론 무슬림에 대한 차별과 멸시는 여전하며, 이슬람 무장 단체들과 광신도들의 테러 때문에 이게 더 심해지고 있어 프랑스 내의 골칫거리다.

2008년에 미국 금융 위기가 전세계적으로 퍼져 나가면서 유럽 지역의 경제도 둔화되었고, PIIGS(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의 경제가 붕괴 수준으로 넘어가면서 유로존 붕괴 위험이 높아지고, 이들 지역을 중심으로 실업률도 높아져갔다. 이에 저소득 직업군을 무슬림과 같은 제3국에서 유입된 민족이 차지하고 있고, 이들이 자국의 부를 유출시킨다는 편향된 논리가 퍼져 나왔다. 자국 경제의 회복에 대한 실망감과 배신감의 화살을 무슬림과 같은 취약 계층에게 돌린 것이다.[13] 더불어 무슬림=이슬람 극단주의자라는 논리로 혐오감을 조성하는 분위기가 높아졌다. 이는 고스란히 무슬림에 대한 탄압으로 진행되었고, 탄압에 못 이겨 스스로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되는 사람도 발생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14]

2010년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 사건으로 인해 중동의 정치적, 사회적 개혁이 진행되는 가운데 리비아에 대한 서방 국가의 개입으로 개혁이 앞당겨지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미군 특수부대에 의해서 알 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되면서 중동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기대도 하였다. 하지만 비이슬람권에서 무슬림에 대한 탄압과 혐오는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으로 남고 있다.

2014년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의 칼리파 국가 수립 선포는 일개 이슬람 무장 단체의 행위를 전체 이슬람의 본질인 것인 양 매도하는 세력들에게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하였다. 이슬람 내부에서는 종파를 불문하고 이들을 반이슬람적이라고 규탄하고 있으나, 일부 석유 재벌들에 의한 물질적 지원이 있다는 의심이 제기되고 있다.[15] 이슬람권 내부적으로 이러한 반인도적인 행위를 지속적으로 견제하여 국제 사회의 신뢰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

한편,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극우 세력의 이슬람 문화에 대한 반발로 반대 시위가 커지고 있다. 이슬람공포증이 이슬람에 대한 피해망상적인 측면이 부각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이슬람의 문화에 대한 부정의 근거 또한 고유 문화를 해치는 이유를 근거로 들고 있다. 해당 국가에서도 표현하다시피 해당 트렌드는 그릇된 시점에 그릇된 대처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사실, 프랑스의 이슬람 이민자 반대를 주도하는 극우파의 대표격인 르 펜의 국민전선악시옹 프랑세즈로 대표되는 구 왕당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당연히 자유, 평등, 박애를 핵심으로 삼는 대혁명 이래 프랑스 공화국의 보편주의에 대한 반대를 기본에 깔고 있는 것이다.

계속해서 서방 쪽으로 무슬림 난민들이 유입되는 상황에 오히려 문제만 일으키는 건 기본이고 동화는커녕 오히려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16] 특히나 인구수가 대폭 증가하고 있는 상황인데, 대부분 선진국 인구수는 무슬림에 비해 매우 낮다는 점 때문에 자칫 무슬림이 인구수로 밀어붙여서 민주주의 방식으로 바꾸기 시작하면 답이 없어진다는 것 때문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표적인 예로 이스라엘이 현재 겪고 있는 문제가 바로 하레디다. 실제로 하레디 인구수가 너무 불어나서 이스라엘 정부조차 못 건드리는 상태다. 민주주의 방식으로 상대하자니 오히려 친하레디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재 폭력 및 테러를 많이 일으키는 종교가 이슬람으로, 트럼프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할 때 반대 시위가 나온 건 좋지만 대놓고 폭력을 휘두르고 아예 간접 테러를 일으키는 상태. 폭력과 테러를 많이 일으킨 건 최근 일이 아니다. 이러한 난폭한 수단들 때문에 이슬람공포증이 많이 생긴 건 물론 여러 국가의 언론들조차 무슬림의 폭력 및 테러에 대해 매우 비판한다는 점이다.[17] 결론적으로 대화로 해결하기는커녕 오로지 폭력과 테러로 해결하려는 모습 때문에 좋지 않은 시선을 늘 받고 있다.


3.1. 배경[편집]


이슬라모포비아는 일부 극단주의 무슬림들테러 등의 행패와[18] 그로 인한 비무슬림[19]의 피해의식에서 근원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슬람공포증인 사람들의 '포비아'적인 논리적 배경은 실질적인 이슬람에 대한 본인의 직접적인 자유 침해가 아니라[20]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9.11 테러, 2015년 11월 파리 테러 등의 절대로 정당화될 수 없는 테러 행위로 자신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위기 의식이다. 게다가 몇 몇 무슬림들은 이슬람 국가 외에서도 현대 민주주의, 인권 의식과는 한참 먼 샤리아 도입을 강요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확실히 미운 털 박힐만하다.[21]

상당수의 비무슬림들은 무슬림과의 화합과 공존을 요구하고 있으나, 특정 종교나 지역에 기반한 세력들이 이슬라모포비아를 조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독일의 "월요시위"이다. 이들은 "독일의 유대 및 기독교·서방 문화의 보존을 원한다"라는 주장과 함께 동조자들을 규합해 세를 불리고 있다는 점이다. 본인들은 애국이라고 표방하고 있으나 명백한 종교적 배타적인 이기심에서 나오는 현상이다. # 반면 기독교 사회당(CSU)의 메르켈 총리는 이러한 편협한 사회 불만 세력에 대하여 "독일을 찾는 모든 이들은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고 피력하며 화합을 내세웠다. # 그러나 무슬림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와 범죄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면서 메르켈 총리의 화합은 날이 갈수록 빛을 잃고 있다.

이슬람공포증을 외치면서 테러리즘으로 일관하는 세력은 상당수가 종교의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이슬람만큼 신자들의 삶에 구속에 가까울 만큼 영향을 주는 종교가 없고 그에 따름 자살 테러나 강간, 명예살인 등 범죄들을 보면 이슬람포비아의 동인의 상당수가 종교적 논리이기에 극단적이므로 부정적이라는 서술은 부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1980년 이후 기독계를 비롯한 종교계의 정치세력화로 인해 본인들의 가치관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미국의 1/3은 무교라고 대답하고 있고, 1990년대의 1/5에서 1/3으로 무교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 다만 미국에서 무교의 증가가 특정 종교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한 결과이고 그 중 하나를 예로 든다면 현대 사회가 산업화, 정보화가 진행되어 감에 따라 종교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진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슬라모포비아는 전세계적인 국제 정세 변화 과정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현상들에 대한 해석에 있어, 이슬람 자체의 종교적인 특징 내지는 문제점을 그 원인으로 보는 데에서 비롯된다. 거기에 2000년대 후반부터 세력을 키운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행동이 미디어의 발전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도 결정적이다. 더불어 서방 국가들의 경제에 이민족들의 세력화와 부의 증가를 견제에서 시작하여 증오로 변모하게 됨을 보인다.

이슬람에 대한 포비아의 주요 배경은 2차대전 이후, 냉전 시대로 접어들면서 아시아를 비롯한 제3국가들의 성장과 교류가 늘어나면서 상호간의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지역에서 여러 인권신장운동[22]이 발생하면서 인식의 개선이 빠른 속도로 이루어졌으나, 상대적으로 중동 지역은 신정일치라는 특유의 문화로 개선의 속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짐에 의해서 대립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신정일치의 문화는 중동의 발전을 막는 걸림돌이 되어 중동 지역은 어떤 지역보다 낙후되어 있어 오일머니 외엔 별 볼 일 없고 테러와 폭력, 광신이 난무하는 막장 동네라는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물론 중동의 막장스러운 현실을 보면 이게 틀린 것만은 아니다. 중동 외에도 다른 이슬람 국가인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몰디브도 이슬람 극단주의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3.1.1. 국제정세 변화[편집]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중동의 각국은 미국과 소련이 서로 친미/친소 정권을 심으려 하는 정치적 영토 싸움 대상이 되었다.
파키스탄에서는 무함마드 지아울하크 장군의 쿠데타를 지원, 친소 성향인 줄피카르 알리 부토 총리를 1977년 실각시키고 1979년 사형시켰다. 이로 인해 우파 이슬람 정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파키스탄 인민당이 추진하던 사회적, 경제적 개혁은 무산되었고, 그 결과 현재 파키스탄은 거의 무정부 상태로 탈레반 세력의 본거지가 되었다.
이란에서는 친미 성향인 팔라비 왕조의 전제군주제를 탈피하려 노력한 모하마드 모사데크 총리를 자헤디 장군의 쿠데타 지원을 통해 실각시켰고, 이란 혁명을 저지하기 위해 팔라비에게 갖은 지원을 하였으나, 결국 반미 성향의 이슬람 근본주의자인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집권하였다. 그 뒤 미국은 이란 견제를 위해 이라크를 지원하여 이란-이라크 전쟁의 빌미를 제공하였고, 그 지원을 받은 사담 후세인은 이후 중동 정세를 크게 악화시키는 데 일조하였다.

  • 냉전 체제 종식
자유주의 진영 대 사회주의 진영이라는 진영 논리가 소련의 붕괴로 무의미해지면서 진영간의 벽이 허물어진 대신, 개별 국가 또는 지역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세계 정치 흐름이 변화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라크쿠웨이트 침공이 발생하였고, 미국이 걸프 전쟁에 참전하면서 이를 "이슬람에 대한 전쟁 선포"로 해석한 이슬람 극단주의의 주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9.11 테러를 계기로 미국이 주창한 테러와의 전쟁 과정에서 이슬람을 공산주의 이후의 주적으로 삼기 위해 뉴스, 영화 등의 매체에서 부정적인 요소를 과도하게 부각시켰다. 특히 뉴스의 경우 테러에 의한 사망 뉴스는 다른 사망 뉴스 대비 수천 배 분량으로 보도되며, 테러범 체포, 테러 대상, 사망자 수 등 다른 요소 보다 테러범이 무슬림이라는 사실이 보도 분량을 늘리는 결정적 요소로 작용한다. 이러한 경향은 주요 언론 매체에서 보다 두드러진다.
2016년 국내 연구에 따르면 응답자의 83%가 아랍, 이슬람 관련 국내언론보도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의 보도가 더 많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부정적인 논조의 보도내용을 많이 접하고 있는 응답자는 그렇지 않은 응답자 대비 아랍, 이슬람에 대해 더욱 부정적 이미지를 갖게 된다.

  • 유럽 내 이슬람권 노동자와 이민, 난민의 유입 증가
한편 유럽에서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전후 복원에 있어 남성 노동자의 필요로 인해 제3세계 국가의 노동 수입을 하였는데, 상당수가 동유럽/이슬람 사람들이었다. 이후 냉전 체제 종식으로 인해 구 소련의 제어에서 벗어난 동유럽 및 중동에서 서유럽으로 이민이 급증하였고, 중동 지역의 연이은 내전으로 이를 가속시켰다.[23] 이 과정에서 다수의 이민자들이 특정 지역에 밀집하여 거주하면서 이슬람 문화를 지역 사회에 적용할 것을 요구하고,[24] 이에 대해 기존 지역민들이 반발함에 따라 여러 가지 사회 문제가 각국에서 벌어졌다. 이러한 이민자들에 의한 문제는 이슬람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어느 나라에서나 이민자들은 서로 모여 살기 때문에 게토가 형성되며, 선진국의 경우 이민자들은 기존 국민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소득 수준을 가지기 때문에 빈민가 형태로 나타나 주변 지역과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 1세대 이민자가 받아들여진 지 반 세기가 지난 현재 이민자 2세대, 3세대로 넘어감에 따라 초기 이민자의 소수 민족에서 뚜렷한 정치 세력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는 미국, 한국 등 선진국에서는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문제로 각국은 이민법 개정 등을 통해 기존 국민과 이민자 사이의 갈등을 막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당시 이주한 노동자들은 본국에 비해 삶의 질이 향상되었다는 이유로 다소의 차별을 감내하였으나, 2세/3세의 경우 비교 대상이 부모의 모국에 살고 있는 또래가 아닌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또래이기 때문에 민족간 소득 격차와 무슬림에 대한 차별을 절감하고 있으며, 이는 이슬람권 소수민족 젊은이들이 극단적 선택을 취하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1990년 이후 냉전 체제 종식과, 이슬람권에서는 국지전 및 내전으로 인한 난민 발생으로 인해 다시 유럽으로의 이민이 증가하고 있다. 전쟁으로 인한 난민 외에도 이슬람권의 극심한 경제난으로 인해 발생하는 빈부격차, 빈곤, 실업으로 인해 유럽으로 이주하는 이민도 증가하고 있다. 특히 중동, 아프리카, 남아시아 지역으로부터의 이주자가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일상적 만행과 각종 테러의 위협이 이러한 이슬람 이민자 및 2세/3세들을 서방세계에서 좋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이슬람 국가들과 사회가 다른 종교들과 달리 이런 극단주의자들을 통제를 못하고 아예 지지하는 사람들까지 있다 보니 서방세계와 비이슬람권 국가들은 갈수록 이슬람에 대한 혐오와 적대가 커지고 있다.


3.1.2. 이슬람 문화적 특징[편집]


사실 이슬람이 이러는 이유는 기독교, 불교, 유대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최근에 등장한 종교인 탓도 있다.[25] 당장 이들도 500년 전만 해도 원리주의 성향이 강했으며 인권수준도 이슬람권과 비슷했다.
이슬람에서는 정신과 육체를 따로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이슬람의 경전인 쿠란이 그대로 실생활을 다스리는 법 중에서도 가장 높은 우선순위로 존재한다. 즉 과거에도 현재에도 세속적 인권보다 전근대적이고 반인권적인 종교 규범이 우선하는 정교일치 성향이 대단히 심한 종교라는 것. 다른 종교는 경전을 어겨도 처벌받지는 않으나, 이슬람에서는 경전을 어기는 것이 현대에도 상당수 지역에서 엄청난 권위를 갖는 샤리아법에 의거해 실질적 처벌이나 배척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이 타 종교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26] 더구나 이는 샤리아 법이 실정법으로서 유효하지 않은 국가에 거주하는 무슬림들도 마찬가지여서, 간혹 살인죄를 저지르고도 명예살인이라며 떳떳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27]

  • 기존 거주 비무슬림들의 높은 실업률과 패배주의의 반발심리
대다수 선진국에서 겪고 있는 제노포비아들의 주된 논리는 이들 후진국에서 유입된 이민 계층이 자국내 하위 계층을 형성하면서 저임금을 기반으로 한 직업군을 독점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높은 청년 실업률[28], 기존 청년계층의 취업에 대한 불안감과 좌절감을 심어주었다. 저임금 기반 직업을 선택하려고 해도 하위 계층과 동등한 수준을 선택하기는 힘들다 보니 실업률은 지속적으로 높아져만 가는 것이다. 이에 반발 심리로 인해 유입된 하위 계층에 대한 저항 심리가 나타나게 된다. SNS 등 소셜 네트워크를 통하여 이슬라모포비아를 비롯한 제노포비아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유이다.[29]

  • 전근대적 인권 의식
이슬람 사회에서는 주인과 노예 관계, 남자와 여자의 관계, 신자와 불신자의 관계 등의 세 가지의 불평등을 경전 상에서 공인하고 있으며, 이 중 불신자의 경우는 개종을 통해 극복 가능한 관계라고 해석하고 있다. 중세 이슬람이 모든 종교 가운데 가장 빠른 속도로 전파된 원동력은 "신자에게는 법적 혜택을, 불신자에게는 법적 불이익을" 줌으로써 피정복민들의 자발적인 개종을 유도한 것이었다.[30] 하지만 이는 여전히 전근대적인 규정이며, 오늘날의 완전한 개인의 종교 선택의 자유 개념과는 거리가 있다. 이 부분에서 이슬라모포비아가 이슬람을 비난/비판하는 가장 큰 논지가 이슬람을 버리고 타 종교로 개종하는, 이른바 배교 행위에 공적이든 사적이든 보복이 따라온다는 점이다. 일례로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임산부에게 수단 정부가 사형을 선고한 것을 국제 사회가 구한 사건이 2014년에 있었다. 특히 이슬람 국가들의 인권 탄압은 엄청난 악명을 자랑한다. 심지어 세속주의를 추구하는 이슬람 국가들조차 종교적인 면에서는 여전히 관대하지 않아 이슬람 비판을 금지하고 이를 탄압하는 등 인권탄압이 심각한 상황이다. 무슬림 이민자들도 인권 의식이 낮다 보니 이민 와서도 장소를 구분 못하고 인권침해 범죄 저질러서 처벌당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 교리에 근거한 범죄
가장 심각한 것은 교리를 빙자한 남녀차별, 비무슬림 차별 및 그에 기반한 명예살인, 섹스 지하드, 여성할례 등의 비인도적인 범죄이다. 하지만 여성 인권 문제가 대두된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20세기 초중반에 불과했고, 세속국가인 터키 뿐만 아니라 이슬람 국가인 이란, 파키스탄 등에서도 우리나라보다 더 많은 여성 정치인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31] 하지만 20세기 말부터 21세기까지는 이슬람권만은 세속주의의 후퇴와 함께 계속해서, 여성 인권이 실질적으로 악화되어 국제사회의 우려를 낳고 있다. 이슬람 자체의 개선 노력도 중요하지만 이슬람계 이민자 여성에 대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여 계몽하는 등 서방 세계의 도움도 필요하다 할 수 있다. 문제는 세속주의 정권이 잡고 있을 때는 그나마 이런 도움과 캠페인을 하는 시늉이라도 했는데, 근본주의나 부족주의에 기대는 정부가 집권하거나 아예 군웅할거하는 나라가 많은 지금은 그런 게 없다 보니 매우 비관적이라는 것이다.

  • 유일신교 특성 및 타 종교 배척
종교적인 견해 차이도 무시할 수 없는데, 이는 같은 유일신교인 기독교, 유대교[32]보다는 아시아권의 다신교인 불교, 힌두교 등과의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슬람은 불교, 힌두교를 우상숭배 종교로 보고 철저하게 박해하기 때문에 공통분모를 찾기 어렵다.[33] 불교의 경우 당장 눈에 보이는 불상 문제를 제외하고 최대한 원시불교적인 교리로 간다고 해도, 이슬람 측에서는 불교가 인간의 가르침만을 숭배하고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으로 파악할 수도 있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등에서는 이슬람 대 타 종교 대립 구도가 서구만큼 빈발하고 있다.
이는 이슬람교 자체에 내재한 문제라기보다 이슬람권 국가들의 정치 사회가 아직 덜 개인주의화되었고 덜 발전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 가지 종교의 뿌리가 깊은 나라에서는 종교가 개인의 것이라는 명제를 인정하지 못한다. 무신론자를 신을 잃은 사람이라며 불쌍히 여기거나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것은 중동 뿐만 아니라 인도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즉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그 종교가 유일신교냐 아니냐에 있지 않고 국가 및 사회가 얼마나 세속화되었느냐에 있다.

  • 이슬람만의 특징적인 문화
인간의 공감 능력이 단순히 개개인에 따라 높거나 낮을 거라 생각하지만 사람들은 타인의 외모, 인종, 성별, 복장, 연령, 행동거지 등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공감 정도를 결정한다.[34][35] 이슬람 교도들은 남성은 수염을 길게 기르고 여성의 경우 히잡으로 머리를 가리는 등 아주 특징적인 외형을 가진다. 음식도 할랄과 하람으로 나누어 철저히 가려 먹고 생활 방식도 외부인들과 매우 다르므로, 외부인들은 무슬림들에게 동질감을 갖기가 매우 힘들다. 이는 역으로 무슬림 역시 외부인과 동질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데에도 똑같이 작용한다. 특히 식사는 인간 본능과 굉장히 깊게 연관되어 있는데, 인간이 타인과 음식을 나누어 먹을 때 서로의 친밀감과 신뢰도, 협동력이 상승한다고 한다. #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인과 어울릴 때 드레스 코드를 맞추거나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은 이러한 본능적 이유 때문인데, 무슬림들은 이것이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로 인해 외부인들은 무의식적으로 무슬림들을 향해 배타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는 데다, 이 배타 심리는 생존과 직결된 인간의 본능이므로 절제할 수는 있어도 제거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한 상황에서 일부 무슬림이 사회적 분란거리를 야기하면 내재되어 있던 배타심리가 폭발하면서 이슬람공포증이 발현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이슬람만의 특징적인 문화라기 보기는 이슬람주의, 이슬람 근본주의, 이슬람 극단주의가 80년대부터 세계화된 이후의 모습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슬람주의자들은 히잡, 부르키니, 턱수염, 피부노출금지, 터번이라는 의상과 샤리아, 할랄푸드를 이슬람의 고유한 정체성이라고 정의하고 이를 하나라도 지키지 않으면 불신자라는 인식을 퍼트리고 있다. 이슬람주의자의 정체성 정치가 비이슬람과 이슬람 간의 간극을 더 넓힌 셈이다.


3.1.3. 이슬람 급진 단체의 테러범죄와 여파[편집]


  • 이슬람 급진 단체의 테러
2004년 스페인 열차 테러, 2005년 런던 지하철 테러 등 타국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저지른 여러 테러로 인해 이슬람 문화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공포 심리는 극대화되었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외국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자국내에서 행해지는 이슬람 급진 단체들과 급진주의 성향을 추종하는 이슬람 신도들의 테러, 범죄 행각으로 인하여 이슬람에 대한 인식이 아주 크게 악화되었다.

대표적인 국가가 프랑스.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 2015년 11월 파리 테러, 2016년 니스 테러, 2016년 프랑스 성당 테러, 2017년 프랑스 마르세유 흉기 테러, 사뮈엘 파티 피살 사건. 2020년 니스 테러등 이슬람 급진 단체들과 급진주의를 추종하는 이슬람 신도들의 연이은 테러, 범죄행각으로 인해서 이슬람에 대한 인식이 나락으로 치닫았다. 오죽하면 마크롱 대통령과 프랑스 정부에서 대놓고 이슬람을 대상으로 하는 공화국 가치 강화 법을 추진하여 하원에 통과된 상태.

  • 이슬람인에 대한 규제와 공포
테러범죄의 여파로 인하여 각국 정부는 자국 내 테러 위협에 대하여 이슬람 세력에 대하여 대대적인 조사 및 파악에 들어갔으며 이슬람 급진 단체에 대한 정상적인 수사와 조사, 처벌, 감시를 넘어서 이슬람인 전체에 대하여 인권침해 소지가 높은 행동들이 자행되었다. 아랍어를 비롯한 이슬람권의 언어들의 경우, 아직 서방 세계에 문화가 정착되지 않아 비이슬람권 시민들이 모르는 데다 이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편이다.[36] 언어적, 문화적 장벽과 함께 테러라는 공포감으로 인해 시민 사회의 접근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4. 이슬람공포증의 현황[편집]


본 단락은 앞선 이슬람공포증이 바깥으로 표출되어 무슬림에 대한 탄압이나 배척이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다.

2007년부터 2011년까지에 걸쳐 진행된 각종 갤럽 설문조사 결과 아래와 같은 내용들이 확인되었다.

  • 편견이 있다는 의견
    • "서방세계가 무슬림 사회를 존중하는가"라는 질문에 미국, 캐나다 등 북미 지역에서는 부정적인 답변이,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는 긍정적인 답변이 많았다. 단, 독일의 경우 예외적으로 2008년 조사 결과에 비해 2011년 조사 결과 9% 정도 긍정적 답변이 감소하였다.
    • "서방세계와 무슬림 사이의 긴장은 어떤 요인으로 인해 초래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남아프리카에서는 종교적 문제라는 답변이, 유럽에서는 정치적 이해관계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으며, 중동북아프리카, 북미, 아시아에서는 두 답변이 비슷한 비율로 나왔다. 정치적 이해관계는 상황에 따라 변화할 가능성이 있지만, 종교 및 문화적 문제는 변하기 어렵기 때문에 더 큰 우려 요인인 것으로 분석된다.
    • 미국에서 절반 이상이 "미국인이 무슬림 미국인에 대해 편견을 갖고 있다"고 응답하였고, 특히 유대교도와 무슬림의 경우 각각 66%, 60%로 편견을 더 높게 체감하고 있다.

  • 차별이 있다는 의견
    • 무슬림을 대상으로 한 5개 차별 금지 행동의 중요성 중 "무슬림 상징에 대한 훼손 금지"에 대해 약 80%가 매우 중요하다고 답변하여, 약 60%가 매우 중요하다고 답변한 다른 행동들인 동등한 대우, 미디어에서의 정확한 묘사 등에 비해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 중동 지역의 무슬림 국가들에서는 절반 이상의 응답자가 서방세계의 무슬림이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응답했고, 중동 이외의 무슬림 국가들에서는 미국, 프랑스, 영국, 중국 등에서 무슬림이 차별받느냐는 질문에 대해 약 1/4의 응답자가, 특히 미국에 대해서는 약 1/3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 미국 내 무슬림 중 48%가 인종차별이나 종교차별을 경험하였다고 응답하여 타 종교의 20~30%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 그렇지 않다는 의견
    • 2009년 스위스에서 가결된 이슬람식 첨탑 건축 금지 법안과 관련하여, 대다수의 스위스 국민들은 종교적 자유가 중요함에 동의하면서도, 응답자의 약 2/3은 "해당 법안으로 인해 스위스 내의 무슬림이 차별받는다고 생각할까"라는 질문에 부정하였고, 응답자 대다수가 첨탑 금지 법안이 무슬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으며 스위스의 국제적 위상을 격하시키지 않는다고 답했다.[37]


4.1. 정파별 현황[편집]


  • 고보수주의, 비이슬람 종교적 우파, 대안우파 강경파

고보수주의는 WASP적 가치를 옹호하기 때문에 이슬람뿐만 아니라 가톨릭도 미국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이슬람이 가톨릭에서 유래되었다는 알베르토 리베라의 음모론을 믿고 있다. 주로 미국 동남부의 바이블 벨트에서 개신교 이외에 타종교와 타종파에 대한 배타성이 심하다.

비이슬람 종교적 우파는 이슬람 이외에도 자신의 종교가 아니라면 다 배척하지만 특히 이슬람을 지구 문명을 위협하는 절대악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슬람과 동성애, 공산주의, 페미니즘은 모조리 한 패라는 반지성주의적인 설교를 하고 있고 이슬람의 테러리즘만은 기억력이 생생한 선택적 기억이 심하다.

대안우파 강경파는 대개 세속적이지만 자신의 이슬람혐오를 정당화하기 위해 기독교팔이를 하는 일부가 있으며 원래 그들이 이슬람혐오를 하는 것은 사회적 불만을 이슬람에게 화풀이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 이슬람 말고도 유대교도 화이트 제노사이드 공범이라고 간주하고 있지만 네오나치즘을 내세우는 아랍인은 오히려 같은 백인이라고 간주하고 있다.[38] 다만 일부 대안우파 강경파들은 적의 적 논리로 이슬람에 우호적이기도 하다

  • 신보수주의, 대안우파 온건파

신보수주의는 세속주의를 극혐하고 기독교 가치를 내세우지만 유대교에 공개적으로 호의적이고 이슬람에 비공개적으로 호의적이다. 신보수주의자들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이유는 두 국가는 미국에 충성하고 있으며 미국적 세계화를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보수주의자중 한 사람인 조지 W. 부시는 이슬람이 평화의 종교라고 발언했고 로널드 레이건은 공산진영을 물리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 알카에다와 친했다. 물론 조지 부시가 알카에다, 탈레반을 주적으로 간주한 것은 이슬람혐오때문이 아니라 9.11 테러를 자행해서 반미적인 언행을 보였기 때문이다.

대안우파 온건파는 이슬람혐오를 하게 된 계기가 거의 이슬람주의 성향의 무슬림들이 서양 문화를 배척하고 리버럴이 그런 모습을 문화상대주의라고 착각하며 지지하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슬람 자유주의에 호의적이기 때문에 마지드 나와즈, 마시흐 알리네자드를 지지하며 서양, 동아시아의 페미니즘을 암으로 간주해도 대(大)중동엔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도 지지하고 있는데 친시오니즘 기독교 우파와 달리 이스라엘은 예수의 고향이고 예언이 실현되는 곳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대(大)중동에서 유일하게 란제리, 비키니 입은 커머셜 모델이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모습을 지지하기 때문이다.[39]

  • 사회자유주의, 사회주의

주류 사회자유주의, 신트로츠키주의 계열은 언더도그마 심리때문에 이슬람주의 수사를 무슬림의 하소연으로 착각하지만 좌파 중에서도 이슬람혐오자가 존재한다.

프랑스, 터키의 사회자유주의자들은 프랑스 혁명의 모토인 라이시테를 지지하기 때문에 이슬람도 가톨릭과 다를 바가 없는 반자유주의로 간주하지만 무슬림, 중동인에게는 인종주의적 인식은 없다. 오해하지 말 것은 마지드 나와즈같은 이슬람 자유주의자들은 이슬람혐오자가 아니라 이슬람개혁가이고 주류 다문화주의를 지지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마르크스주의 계열부터 종교를 인민의 아편으로 여겨왔고 이슬람도 그런 아편 중 하나라고 간주하고 있다. 그들은 언더도그마에 빠져 이슬람주의에 세뇌된 무슬림을 지지하는 것은 퇴행적 좌파라고 정의했고 이슬람도 기독교처럼 문명의 진보를 가로막는 우민화 수단이라고 간주하고 있다. 그렇고 해서 이슬람혐오때문에 핍박당하는 무슬림의 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우파와 우파 간의 갈등이라고 해면서 이런 상황을 비판하고 있다. 요점은 이슬람주의에 세뇌된 모습이 무슬림의 선천적인 특징이 아니라 이슬람이라는 비합리적인 상부구조때문에 생겨난 후천적인 특징이라고 간주하는 것이다.

  • 무신론

샘 해리스, 이븐 워라크를 위시로 한 무신론자의 이슬람 비판이 퇴행적 좌파, SJW로부터 이슬람공포증이라는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무신론자의 이슬람 비판은 반종교주의 일부이며 다른 정파와 달리 실증적인 근거로 이슬람을 비판하는 것이다. 이들은 무슬림에 대한 인종주의가 없으며 이슬람 자유주의에는 어느 정도 호의적이다.

다만 샘 해리스,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아얀 히르시 알리는 대안우파 온건파적 주장을 하기 때문에 이슬람 자유주의자들에게도 친제국주의,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비판받고 있다.[40]


4.2. 지역별 현황[편집]



4.2.1. 유럽, 영미권, 이스라엘[편집]


파일:external/www.pewglobal.org/GA_2016.07.11_national_identity-00-01.png

2016년 기준 주요 유럽 국가 국민들이 무슬림에 대한 부정적이라고 응답한 비율. 동·남유럽 지역의 반(反)이슬람 감정이 두드러진다.

2000년대 이라크전, 스페인 열차 테러, 런던 지하철 테러 이후 서방세계의 무슬림에 대한 경계가 강화된 틈을 타 무슬림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행과 살인이 일어나고 있다.


2015년 3월 노르웨이 진보당은 모스크들을 교외로 이전하는 캠페인을 추진하였다.

노 고 존 문서 참조.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벌어진 보스포러스 연쇄살인 사건 수사 결과 범행 대상 명단에 하원의원 2명과 터키-이슬람 대표자 다수가 포함되어 있었다.

2009년 드레스덴에서 열린 재판에서 히잡을 쓰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받았던 인신모독을 증언하기 위해 참석한 이집트 여성이 법정에서 칼에 찔려 사망했다.

2014년 HoGeSa(Hooligans gegen Salafisten, 살라피스트에 맞서는 훌리건들)란 시위가 열렸으나, 무분별한 증오 발언과 나치즘 발언 및 폭력 행위가 자행되었다. 같은 해 드레스덴에서 PEGIDA가 조직되어 독일의 이민 정책을 비판하였다. 상세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2016년 쾰른 집단 성폭행 사건에서 난민 신청자들이 집단 범죄를 저지름에 따라 독일 내 반이슬람 정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41] 해당 사건의 반대급부로 3월 13일 지방선거에서 독일을 위한 대안당이 3개 주에서 의회에 진출하고 지지도가 상승한 배경에 이슬람 혐오 정서를 부추겼다는 평가가 있고, 급기야 5월 1일 전당대회에서 "이슬람은 독일의 일부가 아니다"라는 강령을 채택하였다.

2016년 6월 6일에 라이프치히대학 연구팀이 시행한 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이들의 41.4%가 무슬림 출신의 이민자를 금지하는 데 동의했다. 7년 전인 2009년에는 21.4%보다 두배로 증가한 숫자다.

2015년 1월 12일 보수 성향인 미국 폭스TV의 테러전문가 스티븐 에머슨은 영국 버밍엄의 인구 중 23%가 무슬림이기 때문에 무슬림의 도시라고 평하면서 테러 위험이 있다는 발언을 하였고, 이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트위터에 사과문을 게재하고 버밍엄의 어린이 병원에 후원금을 내겠다고 하였다.

2015년 2월 11일에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백인 남성 크레이그 스티븐 힉스가 같은 아파트 단지 거주자인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치대생 바라카트와 그의 아내 유소르 아부 살하, 살하의 여동생 라잔 무함마드를 총으로 살해하고 경찰에 자수했다. 미국 경찰은 주차 문제로 인한 분노범죄라고 하지만 범인 힉스가 평소에 이슬람을 증오한 데다 피해자들이 모두 무슬림이라서 이슬람모포비아로 보고있다. 이 때문에 터키 대통령 에르도안이 이 범죄를 크게 비난했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는 학생 수십명이 모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집회를 열었다.

2015년 4월 22일, 미국 연방지법은 친 이스라엘 단체인 미국자유수호협회(AFDI)의 이슬람 비방 광고를 버스에 부착할 것을 허용하도록 뉴욕시 교통 주무기관인 MTA에 명령하였다. 2013년 시카고와 샌프란시스코에서도 유사 광고가 있었다.

2015년 5월 유나이티드 항공 비행기를 탄 무슬림 여성 이맘에게 따지 않은 캔을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며 스튜어디스가 차별적 대우를 하고 다른 승객도 이에 동조하였다. 이때 피해를 입은 여성 이맘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대화를 위한 모임을 촉구하던 사람이었다. 이 사건에 대하여 미국 언론도 이슬라모포비아 하나로 분석하고 있다. 문제는 이와 비슷한 사건이 2016년 8월 5일에도 터졌는데, 미국 마이애미에서 워싱턴DC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한 한 무슬림 여성이 승무원에게 물을 달라고 요청했다가 항공사에서 부른 경찰에 의해 기내에서 쫓겨났다. 경찰과 항공사는 기내 안전 때문에 이 여성을 쫓아냈다고 했지만, 이 사건도 이슬람모포비아로 분석한다.

2016년 7월에 공화당의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이 올랜드 사건과 니스 테러를 계기로 미국 내 무슬림 가운데 이슬람 율법 신봉자들을 가려내 추방해야 한다고 말해 논란이 일고 있다.

2016년 8월 15일에 미국 뉴욕에선 대낮에 이슬람 사원에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이맘과 보조 사제가 총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사제들이 소지한 돈을 가지고 가지 않았기에 경찰은 증오 범죄로 보고 있다. 이는 미국 무슬람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2016년 9월 8일에 뉴욕 브루클린 배스비치에서 30대 백인 여성이 각각 11개월, 15개월 된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 중이던 무슬림 여성 두 명을 폭행하는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범인인 에미르제타 제릴리는 극렬 이슬람 혐오자로, 평소에도 인터넷과 페이스북에 이슬람 혐오를 드러냈고 범행시 이슬람 혐오 발언을 하며 피해자들을 폭행하였다. 게다가 피해자들의 유모차를 뒤집으려고 하기까지 했다. 물론 범인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피해자들은 심하게 다치지는 않았다. 미국의 이슬람 단체인 아메리카·이슬람 관계위원회는 9일 성명을 내고 이 사건에 대한 검찰 기소와 이슬람 사원 등에 대한 경찰의 경계 강화를 요청했다.

2016년 11월 미국 대선에서 반이슬람 성향인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미국 내에서는 이슬람 혐오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11월 10일에 LA인근 우드랜드 힐스 지역 엘카미노 고등학교에서 트럼프 지지자 남학생 2명이 무슬림 여학생에게 '너희 나라로 떠나라'는 욕설을 하며 폭행하고 그녀가 쓰던 히잡을 강제로 벗긴 다음 지갑을 빼앗아 달아난 사건이 터졌다. 같은 날 샌디에고 대학 캠퍼스에서도 남성 2명이 무슬림 여성에게 다가가 위협과 함께 지갑·자동차 열쇠를 빼앗아 달아나는 사건이 접수됐다. 산호제 주립대에서도 투표일인 8일 교내 주차장에서 히잡을 쓴 무슬림 여성이 괴한에게 폭행을 당하고 히잡을 뺏기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래서 미국 경찰은 이 사건들에 대해 수사에 들어갔다. 이슬람 권익 단체인 미국이슬람관계위원회(CAIR)는 10월에 미국 무슬림 유권자들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5%가 지난해 미국에서 이슬람 혐오와 반(反) 무슬림 정서, 증오 범죄가 증가했다고 답했다. 이러다 보니 미국 내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혐오와 증오 범죄가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슬람에 대한 공포감이 어찌나 확산되었는지, 유튜브 등지에는 소위 "Muslim bomb prank" 라고 해서 공연히 행인들이나 가옥, 상가 등에 정신 나간 장난을 치는 영상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중동 사람처럼 변장한 공모자가 검정 가방을 휙 던지고 내달리면 행인들이 소스라치게 놀라서 줄행랑을 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습게 볼 수 있겠지만, 실제 테러리스트들이 이런 방식으로 폭탄을 터뜨리기 때문에 이 사람들 입장에선 절대로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물론 이 사람들도 케바케라 무덤덤하게 반응하거나, 가방 놓고 갔다고 주워다 주거나, 심지어는 그걸 그대로 주워가는 영상도 있었다. 테러리스트의 복장과 종교는 특정할 수도, 특정해서도 안 된다는 점에서 무슬림 혐오적인 행위이다. 어지간히 짓궂은 길거리 몰카 장난도 웃어넘기는 미국인들조차 빡쳐서 "야 이 개새꺄, 웃기냐? 웃겨?"하며 작정하고 쫓아가서 공모자에게 그라운드 기술을 거는 영상도 볼 수 있다. 그만큼 이 장난이 마냥 웃고 넘기기에는 사회적으로 선을 넘은 부분이 있다는 것. 당연히 무슬림들은 이 장난을 매우 싫어한다. 결국, 해당 영상들은 삭제되었다.

다만 상당히 세속화된 편이라지만 국민의 절대다수가 무슬림인 터키에서도 이런 장난을 치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 딱히 서구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이 해당 영상도 유튜브 측 경고와 같이 삭제당했다. 당연한 게 터키는 후술하겠지만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도 아랍인은 최하 신분으로 차별해왔다. "아랍놈들을 우대하느니 이교도 그리스인들을 우대하는 게 이롭다."는 말도 나올 판국이었고 실제로 이랬다. 터키에서 아랍풍 옷차림 하고 거리 지나면 무척 언짢은 눈빛으로 보는 경우도 많다. 특히 터키는 아랍권 국가들과도 관계가 좋지 못하다. 참고로 이는 이슬람이 다수인 유라시아 나라들, 아제르바이잔이나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같이 튀르크계 이슬람권에서도 매우 공감하는 사항이다.[42]

벤 샤피로는 한 유튜브 영상에서 인도네시아 인구의 반이 극단주의화 된 이슬람 교도들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2005년 벌어진 런던 자폭테러 이후 이슬람에 대한 감정이 악화된 것으로 설문조사에서 드러났다.

2006년 프레스톤의 자미아 마스지드 모스크를 백인 젊은이들이 벽돌로 공격하는 과정에서 무슬림 청소년 1명을 칼로 찔러 살해하였다.

2007년 런던 중앙 모스크의 성직자를 대상으로 한 연쇄폭행 사건이 있었고, 이집트 축구선수인 미도를 상대로 반무슬림 구호를 외친 뉴캐슬 유나이티드 훌리건 두 명이 체포되었다.

2009년 이슬람 릴리프의 글래스고우 지부가 방화로 크게 손상을 입었고, 그린위치 이슬람 센터에도 방화 공격이 있었다.

2011년 북웨일즈 플린트셔 지방에서 모스크 건설 계획 발표 직후 관련 기관에 방화 공격이 있었다.

2015년 파리 테러의 영향으로 런던에서 이슬람 증오 범죄가 증가하여 런던 경찰이 단속에 나섰다.

2016년 6월 27일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는 영국의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가 실행된 직후인 주말 동안 100여건의 무슬림 혐오 범죄가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또 영국 국립경찰서장협회는 무슬림 증오에 따른 언어폭력이 지난주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한 달 전 같은 시기보다 57% 증가한 것으로 집계했다. 영국의 무슬림 공격사건 감시단체 '텔 마마'(Tell Mama)'가 발표한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무슬림에 대한 혐오범죄 사건사고는 437건으로 2014년에 비해 326%나 증가했다. 이러다 보니 영국 정부는 굉장히 우려하여 대책에 나섰다.

2017년 런던 브리지 테러가 일어남으로서 영국 내 반이슬람 정서도 더 확산되었다.

보스니아 내전에서 보스니아계 무슬림들이 정교회 신도가 대다수인 세르비아계에 의해 대량학살당해, 사망 추정자 20만 명에 5만여 명의 여성이 강간당했고 22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또 코소보 전쟁은 알바니아계 무슬림의 자치권을 세르비아계가 일방적으로 박탈함에 따라 일어난 해방 전쟁으로, 역시 다수의 알바니아 민간인이 학살당했다. 참고로 유고연방 출신 국가들 중 무슬림이 80%를 넘는 코소보와 무슬림의 비중이 높은 보스니아계를 제외하곤 모두 이슬람포비아가 타 유럽에 비해 심한 편이다.[43].

이슬람 대 비이슬람 분쟁의 근원으로 다른 어느 나라보다 이슬람 진영의 테러 위협에 노출되어 있어 이슬라모포비아도 크다.

2005년 팔레스타인과 적대적 관계 종결을 선언한 후에도 2006년 하마스가 집권하자 적대 행위를 계속하고 있으며, 조금만 문제가 있어도 막강한 군사력으로 무차별 폭격을 퍼부어 민간인 사상자를 내고 있다. 특히 2012년 11월 가자지구 폭격, 2014년 7월 가자지구 분쟁을 통해 이슬라모포비아가 극에 달하면 사람이 아닌 악마가 될 수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단, 이쪽은 이슬라모포비아가 원인이라기보다는 원래 적대 세력 자체를 미리 눌러서 세력 확장을 막는 예방전쟁에 가깝다는 평가다. 왜냐면 이스라엘은 이슬람만 탄압하는 게 아니라 기독교도 악랄하게 탄압하기 때문에, 기독교 세계에서 이스라엘은 이단으로 찍혀있는 상황이다. 해외의 유대인들과 유대교도 기독교와 이슬람을 탄압을 하는 이스라엘을 굉장히 싫어하고 비난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이슬람공포증은 인종차별에다 적대 세력을 박살내려는 예방전쟁이 맞다.

2005년 10월 27일 저소득층 거주지인 파리 북동쪽 외곽마을 클리시수부아에서 검문 검찰을 피해 달아나던 소년 2명(15세, 17세)이 송전소 변압기에 감전하여 사망하여 아프리카 저소득층과 무슬림들이 "사회적 편견으로 인한 사고"라며 폭동을 일으켰고, 이에 반발하여 프랑스 내 무슬림에 대한 폭력이 급증하였다. 아프리카인과 무슬림의 폭동은 프랑스 정부가 투입한 대규모의 경찰에게 진압되었다.

2005년 파리 모스크에서, 2009년 카스트르 모스크에서 반달리즘이 행해졌다.

2008년 아라스 지방에서 무슬림 무덤을 훼손하고 돼지머리를 묘비에 다는 범죄가 자행되었다.

2010년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는 복장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되어 승용차 내부 및 모스크에서 예배시 외에는 무슬림 여성의 니캅 착용이 금지되었다. 르 몽드지 조사 결과 무작위 설문 응답자의 74%가 이슬람을 참아줄 수 없다는 결과까지 나오고 있고, 이에 힘입어 우경화 행보를 보이고 있다.

2015년 1월,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 사건 이후 닷새 사이에 프랑스에서 이슬람 시설 등을 겨냥한 공격이 50건 이상이나 발생하였고, 마린 르 펜다시 전면에 등장하는 등, 프랑스 내에서 이슬람의 입지가 매우 위태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2015년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생한 프랑스 최악의 테러로 인해 이슬람에 대한 혐오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파리 테러 이후 이슬람 증오 범죄가 평소의 8배나 증가했다.

2015년 12월 25일 프랑스 코르시카 섬 아작시오 시의 저소득층 임대주택단지 일대에서 주민 600여 명이 며칠 동안 반 이슬람 시위를 벌였다. 문제는 이 기간 동안 소방관 2명과 경찰관 1명이 시위장소 인근에서 후드를 쓴 괴한 수 명에게 습격당해 다치는 사건이 터졌다. 그로 인해 이 시위는 과격해져서 인근 이슬람 사원을 습격하여 기도실의 유리문을 깨부수고 난입해 쿠란 등 이슬람 경전 50여 권을 빼앗아 거리에 내팽개치고 이 중 일부를 불에 태웠다. 게다가 사원과 인근에 살던 무슬림들에게 욕설까지 퍼부었다. 이로 인해 현지 경찰이 출동해서 막았고 이슬람 사원에 경찰력을 배치했다.

2016년 4월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가 무슬림 여성에게 대학교에서 머리카락 등 신체를 가리는 스카프(히잡)를 쓰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2016년 6월 코르시카에서 다시 이슬람 사원에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예배당이 크게 손상되었다. 프랑스 경찰은 증오범죄로 보고 있다.

2016년 8월 14일 프랑스 마뉘엘발스 총리와 베르나르 카즈뇌브 내무장관은 프랑스 내 모스크와 이슬람 기도실에 대한 외국 자금 지원을 일시적으로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즉 모스크들이 극단주의 세력의 자금 지원을 받나 감시하겠다는 소리다. 게다가 카즈뇌브 장관은 증오를 부추기는 사람은 모스크에 서지 못하게 하겠다고 하여 이맘들이 극단주의 설교를 하나 감시하겠다는 강경 발언을 하였다.그래서 프랑스의 '이슬람혐오 반대연합(CAIF)'의 마르완 무하메드 사무국장은 모스크 전체를 테러리스트와 연계돼 있다고 매도한다며 비판했다. 하지만 우습게도 프랑스는 이슬람을 빼버리고 외면할 수 있나? 늘 비아냥적인 반응이 압도적이다. 과거 아랍 지배하던 영국이나 지금도 아랍에 이스라엘 편들며 영향을 끼치려고 하는 미국과 더불어, 아니 미국 이상으로 이슬람에 대하여 무시할 수도 없는 현실을 가지고 있다. 알제리라든지 북아프리카 나라들을 오랫동안 지배하고 지금도 이들 마그레브 지역에 영향을 가지려는 터에 이런 이슬람공포증이 이어지면 프랑스에 대한 반감으로 돌아오기에 그럼 경제적, 외교적인 손실이 엄청나다. 무엇보다 영국보다 훨씬 많은 무슬림이 살고 있으며 유럽에서 가장 무슬림이 많은 것도 프랑스다. 마린 르펜만 해도 겉으로 반이슬람 정책을 추구한다고 하곤 정작 무슬림 다수 국가인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나라들에 대해 외교 우호랍시고 나서면서 무슬림 이민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이중성을 보였을 정도.

2020년 사뮈엘 파티 피살 사건니스 테러가 일어나면서 반이슬람 정서도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호주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이미지가 매우 좋았으나, 시드니 인질극 사건 이후로 급격히 안 좋아지고 있다. #illridewithyou 운동 등 이슬람을 두둔하는 운동도 전개되었지만, 호주 전역에 히잡 착용 여성들을 상대로 폭행 사건이 셀 수 없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슬람 사원에 돼지고기가 투척되는 반달리즘 사건이 보도되는 건 물론 무슬림 상점들에 방화와 폭언 스프레이 사건들이 일어나고 카페나 버스 등에 히잡을 쓰고 다니면 많은 사람이 조용히 나가거나 욕설을 퍼붓는 등 여론이 급격히 나빠졌다.


4.2.2. 제2세계[편집]


러시아 역시 이슬라모포비아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이는 대개 체첸 지역의 존재와 이츠케리아 체첸 그리고 그 후신인 캅카스 에미레이트 반군[44] 극단주의적 행동[45]으로부터 기인한다. 여기에 IS의 등장 이후로 이쪽 출신 반군들이 IS로 모여들면서... 체첸 공화국은 람잔 카디로프가 러시아 편에 서면서 독재로나마 체첸을 안정화시켜서 토착 수피즘의 샤리아 같은 인권 문제가 지적되긴 하나[46], 그나마 중동, 아프가니스탄에 비하면 양반이다. 물론 체첸 입장에서도 할 말은 많은 게,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무자헤딘 이븐 알 하타브와 그를 통해서 전염된 와하비즘에 물든 샤밀 바샤예프 같은 놈들이 똘아이짓[47]을 해서 체첸을 다시 러시아 연방 자치공화국으로 전락시켰기 때문. 상세 내용은 체첸 사태 문서 참조. 현재도 러시아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혐오가 서구권만큼 무척이나 강하다. 러시아 정부는 미국 견제라는 목적으로 이슬람 국가들한테 우호적인 자세를 나오지만, 러시아 국민들은 이슬람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러시아는 유럽 최대의 이슬람 대국이기도 하다.[48]


2013년 11월 모스크바 신임 시장이 모스크바 시내 모스크 증축을 허가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러시아 내 이슬람계에서는 모스크바 10개 구에 하나씩 모스크를 둘 것을 제안하였다.

2013년 11월 이슬람 종교집단인 Tablighi Jamaat 소속 회원이라는 이유로 이슬람 극단주의자 혐의를 받은 경우가 있었다. 해당 집단은 인도에서 설립되었고, 100개 이상의 국가에서 합법이나 구 소련 소속 지역에서는 불법이다.

동투르키스탄 지역의 독립 요구와 테러로 인하여 그 지역에 거주하는 한족들이 꽤 경계를 갖고 있지만 평소 아랍권 눈치를 보며 아랍측 대변인이라고 나서는 중국 정부는 이로 인하여 이슬람에 대한 문제로 비쳐질까봐 일부 지역에서 갈등 수준으로 적게 보도하고 언론적으로 감추려 든다. 중국의 이슬람 탄압은 강경한편인데 중국 정부는 자국내의 무슬림인 위구르인들의 이슬람 문화를 금지하며 단속하고 있다.# 라마단 행사를 금지시키고 금식 기간인 라마단 기간에 음식을 먹도록 한다. 부르카는 인권 탄압 논란이 있기에 그렇다손 치더라도 턱수염, 터번히잡까지 금지시킨다. 중국의 이슬람 탄압은 위구르인에게 집중되어 있는 편인데 신장위구르의 이슬람 탄압은 독립운동 탄압의 일환이라고 치더라도 중국 공산당에 협조적인 회족들 역시 자유로울수는 없다. 그동안 회족에 대해서는 심하게 터치하지 않았으나 시진핑 집권 이후로는 회족에 대한 종교 규제도 강화되어 스피커를 이용한 아잔 낭송 금지, 모스크 지붕 모양 규제[49], 아동 대상 이슬람교 교육 금지등의 규제 명령이 하달되어 시행중이다. 중국의 이슬람교에 대한 규제와 탄압때문에 중동 지역 무슬림들은 중국 공산당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편이다. 탄압받는 중국 무슬림 신자들의 추가 증언에서 보다시피 국가 무신론유물론을 신봉하는 중국 공산당이 이슬람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볼 수 있는데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가정 재교육 운운하는것, 공산당이 지배하는 사회에 살아가면서 이슬람을 믿지 말라고 명령 받았으면 그 말을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는 폭언이 그것이다. 대신 대학입시 가산점, 계획생육정책 제외 등의 혜택도 주지만 이건 무슬림이라서 주는 혜택이 아니라 소수민족에 대한 혜택 일 뿐이고[50] 최근에는 다에쉬들의 행각들이 널리 알려지면서 언론 통제가 상대적으로 약한 인터넷에서도 이슬람 혐오 정서도 상당히 심한 편이다. 더욱이 (미국식) 정치적 올바름 같은 것도 없기 때문에 국내 뉴스들에 달리는 댓글이 그러하듯 수위 높은 폭언들도 많다. 위구르 지역에서만 갈등이 심하다고 하는데 당연히 아니다. 2014년 쿤밍역 테러가 좋은 예. 온 중국이 경악할 스케일의 사고였기 때문에 쿤밍 지역만이 아닌 전 중국에서 이슈로 떠올랐다. 굳이 테러가 아니더라도 이미 상당수의 무슬림들이 중국 다른 지방까지 퍼져 있으며 그들과의 충돌, 갈등에 대한 체험담 내지는 괴담들이 떠다닌다.[51] 한족 세속주의 뿐만 아니라 칭하이성 등 지역에서는 티베트 불교를 믿는 티베트족들과도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장회충돌)

다른 나라와 중국이 다른 점은 중국이 매우 강력한 통제 사회며, 그럴 수 있는 기술적 역량도 충분하다는 점이다.게다가 티벳, 내몽골, 위구르 등은 중국 전체 면적의 몇 분의 1이 되는 방대한 면적에 비해 토착민 인구가 매우 적기 때문에, 철도 연결과 내륙 개발을 하며 중국 정부가 한족을 대거 이주시켜 인구구성비에서 절대 다수를 한족으로 만들어버렸고 이들에게 지방 정치 경제의 주도권을 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현지 무슬림 2세의 공교육에서 이슬람을 빼버리는 것은, 서구국가만큼 인권에 얽매이지는 않는 중국 정부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며 한 세대만 언론통제하면 중국 정부 관점에서 "문제는 영구 해결"이다.


4.2.3. 제3세계[편집]


이슬람공포증은 제1세계의 SJW의 인식과 달리 서구권에서만 가지고 있는 정서가 절대 아니다. 비서구권의 비이슬람 지역 나라들이 세계와 단절된 곳도 아니기에 해외에서 벌어지는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의 타 종교 집단에 대한 박해 뉴스는 이들 나라에도 들어오기 마련. 국내에서 소수 통제 받지 않는 무슬림들의 악랄한 만행이 때때로 벌어지기도 한다(이슬람 근본주의 문서 참고). 이런 경우에 일반 주민들이나 타 종교를 믿는 주민들이 가지는 반발심리와 불안심리가 매우 격렬하게 확산되는데, 이 역시 쉽게 극단적인 방향으로 치닫는다. 단지 서구권의 사회운동가와 언론이 이를 잘 언급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이러한 지역들에서 비무슬림의 이슬람 공포증과 이슬람 혐오 감정은 서구권보다 훨씬 높다. 게다가 이런 나라들 상당수는 무슬림에게 향하는 폭력을 철저히 단속할 치안력이 있고 인권의식이 높은 서구권과 정반대로 치안이 불안정하고 인권의식도 상대적으로 낮아 그 혐오가 날것 그대로 대놓고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52]

이런 상태 하의 제3세계에서 이슬람이 소수인 국가들은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주도한 테러가 일어나서 몇 명 죽거나 재산 피해를 입으면 당장 비이슬람 집단도 분노하여 폭동으로 맞불을 놓는다. 그리고 무슬림 거주지로 쳐들어가 닥치는 대로 두들겨 패고, 집이고 가게고 가리지 않고 때려부수는 등 처참하게 짓밟아버리고, 심지어 테러나 극단주의와 무관한 무슬림을 죽이는 것도 서슴치 않는다. 그야말로 한 대 때리고 100대 맞는 꼴이다.

그리고 경찰 같은 공권력에서도 애초에 이슬람 집단을 좋게 보지 않고 사회 불만을 이쪽으로 돌릴 수 있다 보니, 이런 폭동이 일어나도 제대로 법적 처분을 내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백 배로 보복당한 이슬람 집단 역시 증오가 강화되는 악순환이 나타나게 된다. 제3세계의 이슬람 무장 단체들이 비이슬람 국가들한테 심하게 얻어맞아도 잘 버티는 게 이것 때문이다.

영국의 식민지배에서 독립 이후 종교, 민족간 대립으로 내전도 치뤘고, 여기 인구 절반 가까이가 기독교이니 이슬람과 인구가 비슷한 만큼, 그 내전 여파로 서로 죽고 죽이고 테러가 크게 벌어지고 있다. 정말 여기처럼 이슬라모포비아와 크리스티아노포비아가 비슷한 인구층 수준으로 극단적인 나라도 없다. 특히 인간 쓰레기 집단인 이슬람 무장단체 보코하람의 행패로 이게 더욱 커지고 있다.

이슬람 국가인 수단과 한 나라였을 당시 온갖 차별과 억압을 받았기에 그 증오가 깊게 남았다. 하지만 단순히 이슬람 자체로만 그랬더라면 차라리 이 나라가 적어도 통합이 되기는 쉬울 듯. 문서 보면 알겠지만 여러 부족 문제에 기독교조차도 여러 종파로 나뉘어져 소수 남은 무슬림보다는 다수 기독교인들끼리 서로 내전 중이다. 물론 소수 무슬림도 언제라도 공격받고 그래서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중이다.

동티모르는 인구 대다수가 가톨릭(92%)이다. 필리핀과 더불어 여긴 포르투갈의 오랜 지배를 받아 이렇게 된 거였다. 사실 여긴 이슬람 인구는 겨우 2% 수준이다 보니 그다지 테러를 벌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포르투갈에서 독립한 뒤 인도네시아에게 강제 병합되어 30년 가까이 지배받으며 무슬림 위주 정책을 벌인 점 때문에 이슬람에 대한 증오가 남게 되었다. 그나마 여긴 인도네시아가 무슬림을 이주 정착하게 하지 않았지만.[53]

여기는 아예 이슬람 국가이며, 무슬림 수가 61.3%이다. 허나 이들 대부분은 말레이인으로, 그 못지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인인도인 등은 십중팔구가 비무슬림이다. 이러다 보니 안 그래도 나라가 직면해 있는 민족간 갈등과도 자연스레 엮이게 된다. 역시 말레이인들중에서도 이슬람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도 적은편은 아니다.

현재 집권당인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은 친말레이인, 친이슬람 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주요 야당 중 하나이나 범여권으로도 분류되는 경우가 많은 범말레이시아이슬람당(PAS)은 이름부터가 이슬람주의 정당으로 비록 친말레이 색채는 옅어젔으나 이슬람 색채는 UMNO보다 훨씬 더 강하다. 반면 민주행동당(DAP)이나 인민정의당(PKR)과 같은 선명 야당들은 아예 세속주의를 추구하며 이슬람주의에 반대한다. 허나 선명 야당을 주장하는 후자 2당은 대개 중국인과 인도인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그 중 DAP는 수뇌부부터가 비무슬림 중국계다. 이 때문에 말레이인들에게 있어서 DAP의 집권은 그야말로 공포가 따로 없다. 물론 DAP는 "우리는 반이슬람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DAP의 실체를 알면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으며, DAP의 원로인 림킷시앙은 아예 대놓고 "이슬람 때문에 나라가 발전하지 못 하고 있다"는 소리를 늘어놓으면서 반이슬람 색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중.

대체적으로 반이슬람은 중국인들 사이에서 드러나는 편이다. 왜냐하면 중국인들은 이슬람이 금지하는 돼지고기를 즐겨 먹으니까. 이 때문에 일부 말레이인 무슬림 강경파들은 중국인을 "돼지"라고 비난하기도 하고, 중국인 강경파들 또한 말레이인에게 돼지고기를 먹이려 한다거나 하는 등 서로간의 갈등 또한 문제가 되고 있다. 심지어 중국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가수 나미위 또한 대표적인 반이슬람주의자.

본디 말레이시아와는 무관했다가 여기로 들어온 사라왁, 사바의 경우 기독교인 비중이 월등히 높으며, 말레이시아 기독교인의 대부분이 다 이 쪽에 있다. 당연히 UMNO 정권은 이들을 최대한 이슬람으로 개종시키고자 유도했고 이 때문에 이 지역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반이슬람 감정이 생각보다 심한 편이다. 이 지역의 제1의 기독교단체인 보르네오복음교회는 대놓고 한국의 극우 기독교협회를 만나서 "이슬람화 저지"를 운운했을 정도.

불교도 비율이 높은 미얀마의 경우 무슬림계 코카소이드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각하다. 미얀마 주류인 버마족이 영국 식민지 시절에 불교에 깊이 의지하여 불교 자체가 민족의 정체성이 된 한편, 로힝야족 등 무슬림들은 침략자인 영국의 부역자로 미얀마에 유입된 제국주의의 산물로 인식한다. 일각에서는 이슬라모포비아는 그냥 간판이고 실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로힝야족을 배격하는 것으로 평가하기도 하며, 다른 측에서는 종전 카렌족을 비롯한 소수민족을 반란 명목으로 학살한 것과 마찬가지로 아직도 굳건한 군부의 지배력 및 내부 불안을 이슬람 탓으로 돌려 민주화 흐름 속에서도 군부의 경제적, 정치적 입지 및 언론이나 종교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의도로 분석하기도 한다. 이들의 선조가 7세기부터 미얀마에 정착했다는 학설과 영국 식민지 시절에 대다수가 미얀마로 이주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방글라데시에서 온 불법이주자"라는 의미의 '벵갈리'라는 멸칭으로 부르며, 1982년 아예 시민권을 박탈하였다. 군부 독재 시절인 1978년부터 정부 차원에서 로힝야족을 탄압, 해외탈출과 송환을 반복하고 있으며, 민주화된 이후로도 2012년 테인 세인 대통령은 "유엔난민기구(UNHCR)가 운영하는 난민캠프에 정착시킬 것"을 주장하면서 "만약에 이들을 받아주는 나라가 있다면 그 나라로 보내버릴 수도 있다”며 추방 의사를 밝혔다. 자세한 내용은 기사 참조.

미얀마 불교도들 대부분은 이슬람 사회의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아 시간이 지날수록 불교가 이슬람에게 밀려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고, 극단주의적 불교도들은 이를 언론을 통해 공공연히 반 이슬람 선동을 하여 버마인들의 이슬람에 대한 반감을 키우고 있다.

미얀마에서의 박해를 견디지 못한 로힝야족들은 미얀마로부터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미얀마 국내에서 반군 무장 투쟁을 펼치거나[54] 혹은 미얀마를 떠나 바다에서 보트피플이 되거나, 육지 국경을 넘어가며 여러 국가들로 입국을 시도하지만, 미얀마의 옆나라이자 같은 이슬람계 코카소이드 동족 국가인 방글라데시는 로힝야족들을 받아주긴 하지만 영토도 좁고 인구문제 및 경제적 문제로 대량으로 수용할 여유가 없고, 방글라데시와 마찬가지로 미얀마의 인접국이자 코카소이드 계열 국가인 인도는 방글라데시에 비해 영토도 방대하고 힌두교도들보다는 못해도 이슬람 교도들도 많이 있지만, 로힝야족을 받는데 여전히 소극적인 데다 최근 힌두교 극우 성향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집권으로 힌두교 극우주의 세력이 힘을 얻으며 힌두교도들의 무슬림에 대한 폭행과 차별, 보복이 벌어지고 있어 절대 안전하다고 할 수 없는 동네다. 더욱이 2017년 9월 로힝야족 난민에 대해 '수용 불가' 방침을 선포했다.[55] 미얀마와 사이가 안 좋은 태국[56] 인도적 차원에서 식량은 제공하지만 기본적으로 반이슬람 정서가 강한 데다 태국 남부 지역의 이슬람을 믿는 말레이계 소수민족 세력의 분리주의 문제를 안고 있어 정착을 불허하고 있고, 같은 동남아시아의 이슬람계 국가인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도 종교만 같은 이슬람이지 언어, 문화, 민족 등이 달라 받아주지 않는 데다,[57] 필리핀과 동티모르는 이슬람과 대립하는 기독교 카톨릭 국가인 데다 특히 필리핀은 무슬림의 인구가 높은 남부 민다나오 지역의 오랜 분쟁과 테러로 인해 이슬람에 대한 증오감이 강성한 카톨릭 근본주의 국가이고, 동티모르 역시 포르투갈의 식민지배에서 독립 후 이웃나라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에게 강제합병당하고 주류 종교인 카톨릭이 이슬람권 국가인 인도네시아 정부에게 탄압까지 받았을 정도로 반 이슬람 정서가 강한 데다 동남아시아에서도 경제적으로 엄청 못 사는 가난한 국가고, 국토 면적도 다른 나라의 타민족 난민들을 무조건 수용하기에는 너무 영토가 좁다.[58] 또 다른 동남아시아의 국가들인 캄보디아베트남, 라오스, 싱가포르도 종교와 문화가 다르고 자신들과는 전혀 상관 없는 타국의 내부 분쟁으로 일관하는 등 무관심으로 대응하고 있고,[59] 유럽이나 미국도 더욱 먼 나라인 데다 이들이 급진 이슬람 과격 세력일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배척하는지라 오갈 데가 전혀 없는 신세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치조차도 로힝야족 문제에 대해서는 수십 년간 침묵하다가 국제사회의 비판과 압력이 거세지자 마지 못해 유감 표명을 한 차례 했을 뿐이다.

2013년 3월 불교도들이 메이크틸라 인근의 이슬람 기숙학교를 습격하여 36명을 살해한 사건에 대해서는 형량이 10~15년이었던 것에 비해 같은 시기 살인 혐의로 기소된 무슬림에 대해서는 무기징역이 선고되어 형평성 논란이 일었다.

2013년 7월 정체불명의 집단이 미얀마 인기 여배우의 페이스북 계정을 해킹하여 인종/종교 차별적인 발언을 퍼뜨린 사건[60]이 발생하였다. 이는 아신 위라투(Ashin Wirathu)[61]의 유튜브 비디오가 세계적 주목을 받던 시기에 벌어져 더욱 문제가 되었다.

2015년 5월 불교도와 무슬림 결혼 금지 및 여성의 출산 간격을 규정하는 가족법을 극단주의를 표방하는 불교도 집단이 주도적으로 추진하여 입법하였으며, 이는 무슬림 인구 증가를 막기 위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종종 해외나 한국 반무슬림 사상을 가진 이들이 이를 찬양하지만 로힝야인들은 나라없는 민족이라 얼마든지 이런 것 뿐이며, 기독교힌두교를 믿거나 심지어 유태교를 믿으며 스스로 유태인이라고 자부하는 소수민족까지도 미얀마 군부는 엄청나게 차별하고 탄압해왔다. 이러한 로힝야인에 대한 탄압은 종교만 바꾸면 다른 소수민족들에게도 얼마든지 해당한다. 또한 기독교에 대해서도 기독교 인구 증가를 막기 위한 법안이 통과 예정 중이다.

2017년 6월 초 사모아 의회에서 기독교에 유리한 헌법을 삽입하도록하는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정부와 사법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전에는 사모아 헌법 제 1조는 '사모아는 신에 기초를두고있다'라고 선언했는데, 이것은 모든 종교 단체에 적용될 수 있는 광범위한 종교적 개념이었지만, 이번 개정안으로 인해 제 1조는 '사모아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그리스도 성령으로 설립 된 기독교 국가'라고 바꿨다. 사모아 현지에서는 사모아 내에서 이슬람에 대한 두려움에 의해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총리 투엘라파 말리엘레가오이(Tuilaepa Malielegaoi)는 종교적 긴장을 피하는 것이 정부의 의무라고 믿는다."며 "현재 세계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종교적 전쟁'때문이며 이 문제는 국가 내의 내전으로 이어지고 있기에 기독교를 법적으로 국교로 하면 이러한 긴장이 해소될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불교가 국교는 아니지만 법률상 불교를 우대하는 스리랑카에서는 소수파인 무슬림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62] 스리랑카의 무슬림들은 무슬림 비율이 높은 방글라데시에서의 불교도 탄압을 비난하는 등 공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여론은 다른 이슬람 국가에서의 소수종교 탄압과 파키스탄 및 아랍권에서 온 극단주의 무슬림의 행동들로 굳어진 이미지 때문에 차갑게 보고 있다.

2012년 4월 20일 스리랑카 중부 도시 담불라(Dambulla)에서 약 8천명이 넘는 불교 승려들과 불교도들이 불교 성지 위에 이슬람 성원과 힌두 사원이 세워졌다고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들은 이슬람 성원에 난입하여 기물을 파괴하고 난동을 부리다 정부 관리가 요구를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자 해산했다. 이에 스리랑카 내 이슬람 단체는 항의하였으나 여론은 "그러는 너희들 이슬람 국가에서는 다른 소수종교를 어떻게 대했냐?"

2013년 8월 불교도가 이슬람 사원을 공격해 적어도 5명이 부상했고, 뒤이어 불교도와 무슬림이 거리에서 충돌하면서 가옥 여러 채가 파손되고 사원을 지키던 경찰 2명도 다쳤다.

2014년 6월 강경파 불교 집단의 폭력과 방화로 무슬림 3명이 사망, 8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2013년 대통령이 연설에서 "이슬람의 영향력이 종식될 것"이라 선언하고 다수 모스크가 폐쇄되면서 정부 차원에서 이슬람을 탄압한다는 의심을 받은 바 있다. 정부는 "폐쇄된 모스크가 토지 등기와 건축 허가서 등을 갖추지 못한 탓"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다만 2019년 위와 같은 내용으로 앙골라 내에서 모스크들이 파괴되고 있다는 뉴스가 확산되었으나, 이는 AFP 통신의 팩트 체크를 통해 가짜 뉴스임이 확인되었다. 2013년 뉴스에서 정부를 비판했던 앙골라 무슬림 협의회의 데이빗 자(David Ja) 대변인인도 2019년에는 정권 교체 후 무슬림들이 국가 및 사회와 더 나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 파키스탄에 이어 세계에서 3번째로 무슬림이 많은 만큼(약 1억 7,700만 명)[63] 이슬람과의 갈등이 매우 심하다. 거기에 카슈미르 문제(인구 대다수가 무슬림인데도 인도가 자기 영토라고 포기하지 않아[64] 카슈미르 내 무슬림계 주민들 다수에게도 인도는 극도의 증오를 받고 있다. 단 그렇다고 파키스탄에게만 긍정적인 것도 아니다)[65]에서부터 이웃 파키스탄과 여러 전쟁을 벌이면서 갈등이 크다.[66] 특히 인도는 이슬람 혐오가 서구권만큼 강해서 무슬림들이 정치, 사회적으로 심한 차별을 받는다. 만모한 싱 총리때 전직 판사인 라젠데르 사차르(Rajender Sachar)와 위원회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인도 무슬림들은 인도 사회에서 불가촉천민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다고 한다. 물론 실제로 본다면 불가촉천민보다 더 아래인 처지다. 특히 실업률만해도 불가촉천민은 47%인데 무슬림은 52%나 된다. 여성의 실업은 더 심해서 불가촉 천민이 70%라면 무슬림은 91%나 된다. 문맹률도 높아서 무슬림 절반이 문맹이다. 무굴 제국 당시 무슬림 대부분이 지식인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굉장히 추락한 상황이다.[67] 교도소 수감률도 높아서 인도 내 수감자의 40%가 무슬림이다. 취업에서도 차별을 받아 저임금 직종들밖에 찾지못하며[68] 경제 개발에서는 항상 무시당한다. 정치적인 위치도 미약해서 공무원 중 무슬림 비율은 5% 미만에 불과한 상황이다. 무슬림들이 사는 지역들은 열악하여 보건 인프라가 낮다보니 수명도 인도인의 평균수명보다 더 낮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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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남성을 폭행하고 조리돌림하는 힌두교 극우단체 회원들. 조리돌림하면서 계속 채찍으로 때리고 있다. 사진과 영상을 보면 주변에서 아무도 말리지 않고 구경하고 있으며 심지어 구경하는 사람들 중 웃고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게다가 힌두교 극우들은 이슬람의 테러와 범죄가 발생하면 무슬림들에게 보복범죄와 가혹행위를 저지르는데 인도 경찰은 제대로 된 처벌도 안하여 무슬림들이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2017년에는 강경 힌두교 민족주의자인 힌두교 성직자 요기 아디티아나트가 북부 우타르 프라데시 주의 주 총리로 취임하면서 소고기 단속에 나서면서 소고기로 케밥을 만들어 팔던 무슬림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69] 물론 성공한 무슬림도 있다. 아웃소싱 업체 1등인 ‘위프로’의 아짐 프렘지 회장이나 인도 발리우드 영화계의 인기 배우인 샤룩한(Shah Rukh Khan)과 다르멘드라(Dharmendra) 등이 대표적이다. 인도의 유명한 기업 씨풀라(Cipua)[70], 히말라야(Himalaya)[71]도 창업주가 무슬림이다. 하지만 문제가 성공한 무슬림들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것이다. 이렇게 인도 사회에서 심한 차별을 받다보니 인도의 무슬림들은 인도에 대한 반감이 굉장하며 많은 인도 무슬림들이 이슬람 단체 인도 무자헤딘(Indian Mujahideen), 인도이슬람학생운동, 데칸 무자헤딘에 들어가서 테러와 증오범죄를 벌이고 있으며 이슬람 극단주의에 빠져 타종교와 세속주의자들에게 종교적인 범죄를 저질러 인도 내에서 골치아픈 문제다. 경찰과 군대 역시 무슬림에 대한 인권침해로 비판을 받는다. 다만 인도에선 기독교도 장난아니게 극단적으로 보고 있으며 힌두교 극우단체들은 이슬람과 더불어 적으로 규정해 선교사를 끔살시키고 개종자까지 고문함에도 인도 정부가 외면하고 있는 똑같은 모습을 보인다. 시크교 역시 힌두교 극우단체들에게 박해를 받는다.[72] 얼마나 심하면 일부 인도인들은 인도의 최대 적국중 하나인 중국위구르, 카자흐등의 이슬람 소수민족에 대한 탄압과 모스크파괴 및 이슬람 문화 금지정책들을 좋게 생각하면서 중국을 옹호하고 있으며, 인도의 우방국인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을 탄압하는 것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국민들이 다수다.[73]

인도네시아에서 매우 이질적인 지방인 뉴기니 지역도 포함된다. 인도네시아는 대부분이 이슬람인 나라이지만 그 외에도 일부는 크리스트 교, 힌두 교, 그 외 기타 종교를 가진 나라이기도 하다. 특히 뉴기니 섬은 인도네시아의 다른 지역들과는 다르게 인종이나 민족, 언어, 문화도 매우 이질적인데다가 지역감정 등으로 대우가 안 좋고 특히 네덜란드 지배의 영향으로 크리스트교(또는 개신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 토속신앙과 더불어 크리스트 교 신자들도 많기도 하다. 그리고 뉴기니는 처음부터 인도네시아 영토가 아니었으나 네덜란드가 뉴기니(서파푸아)에 철수하자 인도네시아는 뉴기니를 점령하여 자신들의 영토로 편입시키고 이곳을 지배했다. 이러한 이유로 서파푸아 분쟁이 일어났는데 인도네시아는 매우 강경하게 진압을 하고 있다. 한 때 유혈사태가 일어났던 적도 있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서파푸아는 인도네시아에 대한 악감정이 매우 크지만 동시에 인도네시아인들이 대부분 믿고 있는 이슬람 역시 부정적으로 보기도 하거나 완전히 긍정적으로 바라보진 않는다(물론 정확히 따지자면 인도네시아 무슬림에 대해서만 한정이다. 서뉴기니 항목 참조). 서파푸아가 아닌 인도네시아 본토만 하더라도 세속주의를 추구하는 이슬람 국가들이 그러듯이 이슬람에 거부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거나 이슬람 근본주의 및 극단주의를 경계하는 인도네시아인들도 적지않다.

태국도 갈등이 심한데, 여긴 원래 이슬람이 다수이던 여러 작은 나라를 강제로 병합하면서 갈등이 깊다.
말레이시아 국경에 있는 빠타니·얄라·나라티왓 주는 말레이인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거의 95% 이상이 무슬림이었으나, 태국이 강제로 차지한 게 고작 100년 남짓이었다. 불교 국가인 태국은 무슬림에 대한 차별정책을 강화하고 1920~30년대에 군대를 주둔시켜 모스크를 강제로 절로 개조하면서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 차별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인데 인구 80% 이상이 무슬림인 이 곳은 공무원 90% 이상이 불교도이며 공립학교 또한 불상을 두고 불교 교육만 배우게 한다. 무슬림 다수는 실업자라서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린다. 이런 이들의 불교에 대한 증오는 깊어져 가고 결국 과격 이슬람 세력이 이들에게 무기를 제공하면서 헬게이트가 열려버렸다. 주둔 태국군은 막장으로 테러 의심되는 무슬림을 재판도 없이 참수하지 않나, 그 보복으로 역시 대다수 불자 민간인을 참수하는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으며, 2014년 10월 관공서에서 폭탄이 터져 소방차 및 시청이 파괴되는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승병까지 임용하는 일까지 벌이며 불교계에서도 뭐야? 정부가 총을 주며 싸우라고 하는 승려라는 거냐?[74]라고 반발하는 일도 벌어졌다. 그러다보니 이슬람 국가이고 동족을 옹호하는 말레이시아는 태국이 그런 식으로 나오니까 문제라며 비난한다.
하지만 태국 측은 자기들 잘못은 생각안하고 이 모든 게 말레이시아 탓이라고 반발하며 두 나라가 으르렁거리고 있다. 국경과 접한 가운데 이 3개 주가 말레이시아와 마주보고 있으며, 여기서 분리독립하는 이들이 차라리 말레이시아의 주가 되는게 낫다고 선언까지 하고 있기 때문.

정확히는 피지 원주민들인 피지인들만 한정. 피지는 영국의 지배를 받았는데 영국은 여기서 힌두인들을 고용했다. 노동자들로 고용한 힌두인들은 대부분 무슬림들이었으며, 피지인들이 게으르다고 생각했던 영국인들이 강제로 데려왔다. 피지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자 정치나 경제 등 고위층 쪽으로는 무슬림 인도인들을 포함한 인도인들이 대부분 장악했는데 이로 인해 피지인들은 인도계 무슬림들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기 시작하기도 했고, 내분으로 이어지기도 했었다(게다가 피지인들은 토속신앙을 유지하거나 영국의 영향으로 크리스트교로 개종한 피지인들도 있었다).

인구 90%가 기독교(80% 이상이 가톨릭)인 필리핀이지만 10%가 채 안되는 무슬림과 사이는 극도로 나쁘다. 그런데 그럴 수 밖에 없는게 이들은 같은 동족이라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는 역사를 가졌기 때문이다. 필리핀 역사를 봐도 알겠지만 위에 태국처럼 독립을 요구하는 민다나오 섬을 비롯한 지역은 대다수가 무슬림이고 320년이 넘는 스페인과 50년 가까운 미국 지배에서도 굴하지 않고 싸웠던 만큼 많은 학살과 수탈을 당해 왔기에 기독교에 대하여 이가 갈릴 역사와 증오를 가지고 있다. 반대로 필리핀은 대다수가 기독교인이 되었으니[75] 서로 역사도 종교도 다르며 동족으로 여길 수가 없다. 무슬림들 입장에서는 외세에 굴복한 이들이 우리 땅까지 쳐먹으려고 한다며 거부감을 보이며 독립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허나 자국 땅을 포기 못하는 필리핀은 독립을 거부하고 무력으로 응징하니 당연히 내전이 터질 수 밖에.[76] 이 와중에 아부 사야프같은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가 나타나고 외부 이슬람 극단주의 지원까지 받아가며 더더욱 악랄하게 무차별 기독교인 테러로 나서면서 필리핀에서도 이슬람공포증이 커졌다.
필리핀이나 태국에서도 기나긴 내전에 하도 짜증나다보니 '골치아픈 놈들 땅을 가지면서 고생만 한다. 차라리 저들 요구대로 독립시키고 무슬림을 죄다 내쫓으면 된다'고 하는 의견도 있지만, 둘 다 군대 보내고 강제로 핍박하고 기독교인 및 불교인을 이주시켜 정착하게 하므로 갈등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 민다나오 섬에 자원 봉사하러 간 이가 본 바에 의하면 필리핀 측에서 일부러 그런 건지 도시 개발도 엉망이고 그나마도 도시 개발이니 뭐니 하는 것도 죄다 기독교인 거주 지역에 우선권을 주니 현지 무슬림들이 이가 갈릴 법하다고. 자기들을 도우러 온 외부 기독교인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면서 답답한 듯 하소연하길 "온갖 차별을 가하고 이젠 우리 땅에까지 필리핀 기독교놈들이 정착하니 우리가 그들을 대체 곱게 보겠어요! 차별없이 잘 대해줬다면 적어도 극단주의 과격파 지지는 훨씬 줄었을 겁니다."라고 긴 시간에 걸쳐 이야기했다고 한다. 실제로 필리핀에서 가장 문맹이 많고 평균수명도 적으며 온갖 전염병이 판치고 사회시설 및 도로도 가장 열악한 민다나오 섬은 필리핀에서 가장 헬게이트였으니 더더욱 반필리핀 감정이 폭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오랫동안 내전을 벌이던 이슬람 모로 민족 전선(MILF...)은 이전에 주장하던 독립 요구를 그만두고 우리도 이젠 지겹고 평화를 찾고 싶다면서 필리핀 정부와 협상에 들어가 자치권 보장을 받으며 무력충돌을 멈추고 있다. 하지만 아부 사야프같은 극단파는 완전 독립 아니면 인정하지 않는다며 맞서고 있어 답이 없는 상황이다. 물론 필리핀 정부는 MILF만이라도 투항시켜 협정에 나서고 서로 협상시킨 것에 만족하며[77] MILF와 손을 잡으며 극단파들을 토벌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2017년 5월 23일 ISIL을 추종하는 극단주의 세력이 민다나오 무슬림 자치주의 마라위를 점령하자 필리핀 정부에서 진압에 들어갔고 남부 민다나오 지역에 60일간 계엄령을 선포했다. 결국, 이로 인하여 벌어진 마라위 전투로 마라위 시는 폐허가 되어버렸다.


4.2.4. 튀르키예[편집]


비록 다양한 종파가 공존하긴 하지만, 통계상 약 98%가 무슬림튀르키예에서도 이슬람 공포증이 존재한다. 정확히는 근본주의에 대한 경계 및 배척이다.

튀르키예는 아타튀르크 이후 에르도안 집권 전기까지만 해도 강경한 세속주의, 그것도 프랑스식으로 종교권력을 국가의 힘으로 억누르는 '라이시슴' 형태로 세속주의가 이루어졌으며 에르도안 집권 이후에도 외부에서는 "튀르키예가 이슬람화된다!"[78]라고 우려할 정도로 이슬람적 색채를 드러내기 시작하기는 하지만[79] 여전히 튀르키예의 정치형태는 세속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에르도안도 공식연설에서 영미식 세속주의를 언급하며,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종교생활을 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천명한 바 있으며, 이러한 명분으로 그동안 철저히 금지되었던 공공장소에서의 히잡착용, 공무원의 예배시간 휴식부여 등을 실시했다. 말하자면 과거에 비해 이슬람화되었다고 우려되는 에르도안 정권조차도 근본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튀르키예는 헌법에 이슬람의 '이'자조차도 명시되어 있지 않으며, 튀르키예 헌법은 절대로 개정될 수 없는 조항 3개조항을 두고있는데 그중 하나가 국교없는 세속주의 국가이다. 때문에 2016년 현재에도 튀르키예 교육과정에서는 국내 학생이든, 외국 유학생이든 아타튀르크와 케말주의, 튀르키예 혁명사를 의무적으로 수강하게 되어있다.[80]

이러한 배경 때문에 튀르키예에서도 비록 무슬림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 현재 시리아이라크에서 IS가 점령한 지역, 이란, 보코 하람의 근본주의적이고 인권억압적인 행태를 보며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되는거 아냐?" 하고 두려워하며 가깝게는 튀르키예에 기 300만 가까이 존재하는 시리아 난민에 대한 두려움과 전통적으로 아랍인을 천시하고 미개하다고 여겨온 관념과 결합해 이슬람공포증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당장 2015년, 2016년만 해도 에르도안을 호메이니라고 비난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우린 이란이 아니다!리고 욕하며 아타튀르크 사진을 크게 내걸고 시위하던 시위대도 늘어났다.

한편 튀르키예의 이슬람공포증적인 현상에 대해 이해하려면 튀르키예인 특유의 민족주의관도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군주이슬람교의 지도자인 칼리파 타이틀을 보유하던 오스만 제국 당시 조차도 샤리아를 적용한 적이 없다. 제국 내의 여러 민족들을 그들이 믿는 종교로 분류한 다음, 교단과 교구를 중심으로 이들을 묶어 밀레트(Millet)를 형성하고 - 이슬람, 정교회, 유대교, 아르메니아교회 - 각자의 고유법에 따라 민법상법을 담당하고, 형법(Kanun)은 모든 밀레트마다 공통으로 따르게 했다. 물론 형법에서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말하는 것과 같은 투석형이나 화형, 도둑의 손을 자르는것 따윈 시행되지도 않았다. 오스만 제국은 리즈시절부터 멸망 직전까지도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의 국가도 아니었고, 이슬람 제국도 아니었다. 오스만 제국에 대한 것은 오히려 기독교권인 유럽인들 증언에서도 잘 나와있다. 오스만 제국 술탄을 영접한 오스트리아 사신이 남긴 기록만 봐도 "오스만 제국 황실에는 다양한 인종종교가 공존하고 있다. 물론 재상같은 고위직은 무슬림이 차지하지만 이전에 기독교인이라도 개종한다면 재상이 될 수 있다.그리고 비무슬림이라도 일단 궁궐에서 벼슬을 누릴 수 있다! 더불어 궁궐 곳곳에 기독교인이나 유태인이나 소수 종교인들도 일하는 걸 볼 수 있다. 유럽 황궁이라면 절대 생각하지 못할 모습이라 너무나도 놀랐다."라고 할 정도이다.[81]

보통 아르메니아 대학살이 이슬람과 기독교 충돌이라고 전혀 엉터리로 아는 경우도 많은데 당시 오스만 제국 집권층과 이 학살을 조장한 청년 튀르크당은 오히려 종교에 진보적이었고 종교는 개뿔, 되려 민족주의적 시각으로 벌인 학살이다. 때문에 기독교인이 다수인 아르메니아인과 아시리아인 말고도 당시 무슬림 아랍인들도 수십여만이 가차없이 오스만 제국에 해가 된다며 학살당할 정도로 종교와 무관한 학살이었다.[82]

이러한 역사적 바탕과 더불어, 전통적으로 아랍인을 기독교인보다 더 밑으로 봤다. 오스만 무슬림이 1등 신민이라면 그 다음에 기독교인은 2등 신민, 그 다음에 유태인과 다른 종교인. 다음이 아랍 무슬림.... 이러다보니 아랍 무슬림들도 튀르키예를 이스라엘급으로 무척 싫어한다.[83] 이러한 편견과 취급이 현대에까지 고스란히 이어져오면서 이슬람공포증적인 현상이 심지어 종교적인 우파 지지자들에게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전통적인 케말주의자들은 물론이고 현 에르도안 정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조차도 튀르키예가 아랍화된다.며 반발하는 현상을 이런 배경이 없으면 이해하기 힘들다. 이러다보니 에르도안조차도 아랍 나라들과 교류를 나누고 같은 무슬림 형제이니 뭐니 웃는 소리 못한다. 그리고 에르도안부터가 오스만 제국 만세! 라고 외치며 이라크라든지 주변 나라들 땅을 슬금슬금 노리니 아랍연맹에서도 경고하기도 하고 아랍권에서 튀르키예 인식은 에르도안도 역시 튀르크 놈이라고 혐오하는 인식이 많다.


4.2.5. 대한민국[편집]


유럽에서와 같은 "이문화간 융합에 적응하지 못한 사회계층의 반발"과 미국에서와 같은 "잠재적 테러집단에 대한 공포감"이라는 두 유형이 동시에 발현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이슬람권에 대한 여론과 정책은 미국의 이해관계와 동조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상 반이슬람적인 미국과 유럽 또는 일본의 이슬람에 대한 비관적 생각이 이슬람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대한민국의 이슬람에 대한 생각에 큰 영향을 끼쳤다. 대표적인 것이 문민정부 이전까지의 미국에 의한 이스라엘에 대해 우호적을 넘어 찬양 수준이었던 학교 교육과, 미국이 적대 관계를 취한 이란, 이라크 등 국가에 대한 부정적인 언론 묘사들이다. 특히 냉전시대에는 친미냐 친소냐에 따라 선악이 결정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일부 종교단체를 제외하고는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삼지 않았고 단순히 이국적인 이미지로만 받아들였다. 일반 국민들은 9.11 테러 이전까지는 이슬람 자체에 대한 적대감이나 불안감을 갖지는 않았고, 중동 지역 건설 프로젝트들을 통해 경제적 협력이 가능한 비즈니스 파트너로 보거나, 2000년대 후반부터는 셰이크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맨체스터 시티로 대표되는 부자로 여겨졌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아래와 같이 인식이 변화되고 있으며, 2018년 제주 난민 사태에서 대대적으로 표출되었다.[84] 대구 대현동 모스크 건축 논란같이 2023년에도 진행 중인 일도 있다.

일단 한국은 한국 거주 외국인, 귀화 외국인, 외국인 노동자를 포함해도 무슬림 비율이 낮은 편에 속하는 국가이며, 대체로 이슬람 하면 떠올리는 근본주의 무슬림은 아직 큰 세를 얻지는 못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한국에 있는 무슬림은 대부분이 튀르키예, 구 소련 소속 중앙아시아 국가 같은 세속주의 이슬람 국가 사람들이 다수이다. 이들은 아타튀르크의 군부의 세속주의 교육,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의 소련 공산당의 반종교 세속화 교육을 거의 한세기 가랑 받았고 유럽에서의 기독교만큼은 아니어도 거의 그에 근접한 수준으로, 종교가 그저 관습처럼 살짝 남아있는 등 세속화가 되어있다. 복장이나 식습관 등까지 세속화되어있고, 한국인이 주로 생각하는 중동/아프리카 등지의 이슬람 무슬림과 달리 튀르키예인은 백인 외모, 우즈베키스탄이나 카자흐스탄인은 몽골인 같아보이는 중앙아시아인 외모를 하고 있고 복장도 평범하여 무슬림이라는 외형적 인상도 적고, 세속 국가라서 이들에게 이슬람은 가벼운 전통으로만 남아 있다. 이후 9.11 테러가 준 이미지와 엮여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한 중동/아프리카의 근본주의 무슬림들과는 꽤 이질적인 것. 심지어 한국에서도 이들끼리 간의 갈등도 없지않아 있는데, 일찍부터 한국에 머무르는 전자의 세속주의 무슬림들(터키, 우즈벡, 카자흐, 인도네시아 등)이 후자의 근본주의 무슬림 집단(파키스탄, 이라크, 시리아, 이란, 아프간, 리비아 등)이 물의를 일으키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견제를 하는 경향 또 있기 때문이다. 세속주의 무슬림들은 강력한 국민국가 밑에서 근대교육, 세속화 하에 살아본 경험이 있고 한국의 사회에 잘 섞여드는 편이나, 근본주의 무슬림들은 식문화, 인권의식, 복장 등의 부분에서 세속주의 국가들과는 하늘과 땅 차이로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에 이슬람 이슈가 최근에서 두드러지지만, 이전에도 이슬람 국가 사람들은 꽤 적지 않게 있었음에도 이런 이슈가 없었다는 점은 최근 한국에 중동/아프리카/남아시아계 근본주의 국가들에서의 무슬림의 유입이 늘어났음을 시사한다.[85]

  • 외국인 노동자 유입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국내 단순 노동자들의 삶이 어려워진 데 이어 다수 기업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을 활용함에 따라 "외국인 노동자 때문에 우리 삶이 힘들어지고 있다"는 잘못된 현실인식이 제노포비아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하는데,[86] 다만, 테러와 범죄 관계자의 출입국이 문제된 적은 여러 차례 있다.[87]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고용허가제 송출국가에서 이슬람 국가를 제외해 달라는 민원과 제안이 2010년 한해 178건 접수되었고, "이슬람 국가의 유학생을 받지 말라”, “이슬람 사원 첨탑 건설을 승인하지 말라”는 등의 민원도 발생했다. 하지만 서구와 비교해 봤을 때 한국에는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정도 외에는 과격한 이슬람 국가 출신 이민자가 그다지 많지 않다.[88]

미국의 요청에 따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이슬람권에 군부대를 파견한 결과 이슬람 극단주의자에게 "대한민국도 적"이라는 인식을 갖게 만들었고, 김선일씨 참수사건,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 시나이 반도 버스 폭탄테러 사건, 한국 청소년 이슬람 국가 가담 사건 등 한국인이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피해를 입는 사건들로 이어졌다. 중동에서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이슬람 서울 중앙성원에 항의, 협박, 혐오발언 전화 등이 폭주하는 것은 일상다반사가 되었다.
2015년 10월 코엑스 테러 협박, 11월 IS를 추종하는 불법체류 인도네시아인 검거[89]국가정보원을 비롯한 여러 국가 기관에서 대한민국 내에서의 테러 발생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 자극적 뉴스와 댓글문화
9.11 테러, 다에쉬의 등장, 중동을 중심으로 한 전쟁 및 테러 같은 사건들로 인해 비이슬람권 국가의 시민들에게는 "이슬람은 테러종교"라는 인식이 암암리에 퍼져 있다. 대한민국 또한 예외가 아니며,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율이 굉장히 높은 대한민국의 특성 상 이러한 자극적인 뉴스들은 엄청난 속도로 확산된다. 한국인의 아랍, 이슬람 이미지 및 관련 언론보도 인식연구(2016)에 따르면 한국인 중 83% 이상이 아랍, 이슬람 관련 국내 언론 보도에 부정적인 내용이 더 많다고 인식하고 있고, 이는 아랍, 이슬람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 갖도록 유도한다.
게다가 단순히 뉴스가 퍼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원색적인 댓글들까지 같이 달리게 되므로, 일반인들 사이에 이슬람 혐오 정서는 나날이 확산되고 있다. 오유, 보배드림, 뽐뿌, 82쿡, 클리앙 등등 성향과 남녀노소 구분 없이 거의 모든 유명 커뮤니티에서 이슬람을 욕하는 의견은 다수의 지지를, 옹호하는 의견은 다수의 반대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거에는 주로 극우 성향이나 종교적 성향의 사용자들이 돼지고기, 술, 개 등 한국 사회와 일치하지 않는 이슬람 교리 및 무슬림 문화를 빌미삼아 무슬림을 열등한 인간으로 묘사해 저급한 우월심리를 자극하는 형태로 이를 주도했으나, 2014년 ISIL 등장 이후로는 주로 테러 및 잔혹행위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이를 일부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게 되었다. 현재 지속되고 있는 IS 및 알카에다 테러를 비롯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행태들로 인해 이슬람의 인식이 거의 바닥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한국으로 유학온 이슬람 학생들을 위한 기도실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대학교를 비난하는 등[90], 이슬람포비아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댓글에 볼 수 있듯이 비공감의 수도 적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귀화하거나 한국인과 혼인해 이들의 2세가 한국사회에서 자라면서 문화적 갈등이나 사회적 부적응을 겪을 우려가 조금씩 점쳐지고 있다. 다만 국내 다문화가정은 이슬람 문화권보다 불교, 기독교 문화권이 많고 차별의 이유도 종교적 측면보다는 경제적 측면에 기반하고 있다. 또한 국내의 이슬람계 다문화 가정은 주로 세속주의가 강한 중앙아시아 계통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종교적인 이유로 갈등이 생기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일반적으로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겪는 차별 문제에 더하여 이슬람 문화권 출신이 보다 우려를 사는 점은, 이들 가정에서 이슬람 교육에만 힘을 쏟고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세속적 지식이나 교육을 등한시하거나 종교적 이유로 한국 교육을 거부하면서 이들 자녀들이 일반 한국인과 어울리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사회적으로 고립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를 빌미로 일부 극단적 다문화 반대주의자들은 반이슬람 국민정서를 완화시키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아예 무슬림들의 장기 국내 거주를 금지해 "외로운 늑대" 형태의 무슬림 2세대의 일탈을 예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아닌게 아니라, '한국이 곧 이슬람화될 것', '무슬림들이 들어와 땅을 뺏고 개종시키며 여자들 밭에 씨를 뿌려 혼혈을 조직적으로 일삼아 순수한 한민족의 피가 더럽혀질 것' 이라는 둥 헛소문으로 밝혀진 할랄 문제를 꺼내는 둥, 한국 다문화 반대운동의 반이슬람 정서와 분위기도 심각하다. 상식적으로 봐도 말이 안 되는 제노포비아 유언비어를 바탕으로 허위 선동을 하는 행위가 인터넷 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이건 이슬람만에 해당한 게 아니라 비무슬림 다문화에도 똑같이 반대하며 같은 놈들이라고 하는 반응이다. 여기에는, 이제 겨우 본격적으로 이민을 받아들이면서 정부 공무원의 어설픈 이상주의와 선의에 바탕한 정책이 만든 결과적인 역차별도 원인이 되었다.


이슬람을 암세포라 비유할 수 있는 이유를 몇 가지만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암세포는 배타적이다 암은 주변의 다른 세포들을 배려하지 않고 철저히 배타적이며 혼자만 제한 없이 커진다. 이처럼 이슬람의 속성도 지극히 배타적이다. 다른 종교를 배려하지 않으며 다른 문화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이후 생략) -2015. 9. 22 이만석 목사

종교적 이유로써 이슬람혐오증도 존재한다. 특히 기독교 근본주의에서 이스라엘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고 무자 할랄 식품단지를 만든다 하니 이슬람촌이 될 거라 악선전하고, [여담이지만]이슬람권의 돈을 투자받겠다 하니 이슬람의 식민지가 된다고 악선전하며 정치권에 압력을 넣는 식이다.[91] 대표적으로 전광훈 목사등을 비롯한 극우적인 단체인 한국이란인교회 이슬람선교훈련원 등이 있는데, 할랄괴담은 이슬람선교훈련원 원장목사 이만석등이 기독일보등에 칼럼으로 올린적이 있다. 1 심지어는 이슬람교를 암세포와 비유하는 몰상식한 혐오발언을 일삼는다. 2 백번 양보해서 이슬람교가 정말로 이만석 목사가 말한 사실이여도 12억명이 믿는 종교를 암세포라 말하는건 잘못이다. 위의 칼럼등을 보면 개신교 근본주의에서 보이는 이슬람에 대한 입장을 파악 할 수 있다. 사실 이슬람교를 암세포라고 비유하는글이 개신교의 혐오감정을 다루는 이 문단을 대표할 수 있는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 이정도면 미국이나 영국등 차별금지법에 입법된 곳에서는 법적인 불이익이 있을 수 있는 수위의 헤이트 스피치이다.
이슬람권에서도 개신교 선교에 무슬림들이 물질적인 이득을 미끼로 개종[92]시킨다며 출국하는 전형적인 내로남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슬람 선교를 지지하면서도 한국 기독교의 선교 정책은 최악이라고 비난[93]하는 김동문 목사(아랍어에 능통하고 아랍권에 오래 거주하며 무슬림 지인들을 많이 둬 아랍 정보통 목사로 유명하지만 근본주의 기독교계에서 빨갱이 목사라는 개드립으로 비난하고 있다)는 이런 한국 기독교계의 이슬람 공포증 조장은 기독교 공포증 못지 않게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그 예로 한국 여러 기독교 예배당에서 터키에서 이슬람 선교단을 수백여 명 한국으로 보낸다고 난리법석을 부렸던 적이 있다. 그런데 알다시피 터키는 이슬람권에서 세속적인 나라이고 터키 안에서조차 이슬람 선교는 불법화된 나라이다. 그런 터키에서 대놓고 선교단을 보낸다? 이런 걸 잘알기에 이게 얼마나 엉터리임을 안 김동문 목사가 알아보니 당연하지만 진실은 고작 터키 대사관 측에서 직원 2명이 새로 왔다는 것. 당연히 무슬림이지만 이들은 대사관 직원이니 선교하러 온 게 아니었다. 이 사례를 이야기하며 허구헌날 이슬람권에 묻지마식의 무분별한 기독교 선교 등 아주 기독교 망신을 자행하면서 닥치는 대로 선교하자는 이들이 정작 무슬림 대사관 직원이 새로 오는 것만으로도 지들처럼 선교하러 온다고 공포에 질리고 이슬람을 왜곡하여 공포증을 부르짖으니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유럽에서 반이슬람 노선으로 인기를 얻은 정치인들이 있듯이 국내에서도 근본주의 지지 세력을 등에 업고 공개적으로 반이슬람 성향을 드러내는 정치인들이 존재한다. 한 예로 바른정당 이혜훈 당대표는 국가인권위위회 헌법기관화 반대 시위에서 "법 개정이 이뤄지면 이슬람 세력 확산이 보장되고, 그렇게 될 경우 유럽 여러 나라에서 발생하는 테러처럼 기독교 세력에 대한 도전과 폭력이 한층 격렬해질 것이다"라고 발언했다. 그런데 종교적으로 서울을 바치네 뭐네 말이 많던 이명박 정권 때 이슬람 금융자본 수쿠크에 대하여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가 기독교계에서 배신자 이명박 정권이라고 결사반대하여 흐지부지되었던 사례가 있다.

동아시아서유럽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세속적인 지역이다.[94] 대한민국이라고 예외는 아니며, 실제로 2015 인구주택총조사 결과 과반수인 56.1%가 '종교가 없다'고 응답했고 2012년 갤럽 조사에 따르면 적극적인 무신론자 비율도 15%로 세계 5위이다. 이들은 종교를 불문하고 원리주의 및 극단주의를 비이성적인 행위로 간주하고 배척하는 경향을 보이며[95], 따라서 평일 낮시간 기도, 과도한 금식, 금주 등 종교적 계율이 생활 문화에 짙게 배어 있는 이슬람 교도들의 행동을 좋게 보지 않는다. 사실 이들의 경우 엄밀히 따지면 '이슬람 혐오'보다는 '반종교'(혹은 '근본주의 혐오')라고 부르는 게 맞으며 실제로 개신교와의 갈등도 많은 편이지만, 반종교는 이슬람 혐오를 포함하는 개념이며, 그나마 이슬람보다는 세속적인 면모를 보이는 개신교조차 대놓고 혐오하는 이들에게 있어 이슬람은 개신교 이상의 혐오대상이 되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서 이슬람 문제만큼은 개신교와 무종교가 같은 스탠스를 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96] 결과적으로 이슬람 혐오의 한 가지 형태라고 봐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 여성 차별로 인한 이슬람 혐오
이슬람의 율법인 샤리아를 엄격하게 지키는 나라들은 당연하게도 여성 차별과 여성 인권문제가 심각하다. 이걸 자기들 나라에서만 하면 차라리 남의 일이라고 넘어갈텐데 국내에 유입되는 무슬림들 중에는 과격한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에서 온 사람들도 많다보니 대한민국 안에서도 이걸 지키려고 한다. 문제는 그들에게는 종교적 정체성에 속하지만 대한민국 헌법상으로는 완전히 위반인 사항이 많다는 것. 대표적으로 미성년 아동의 강제 결혼, 여성의 취업 금지, 남편이나 혈연 이외의 남성과 대화 금지(과격한 곳은 혈연 이외의 여성과의 대화조차 남편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 히잡 착용을 비롯한 복장 규정 등이 있다. 대한민국의 젠더 갈등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의아하게 여겨질 수도 있는데 이 이유로 인한 무슬림 혐오자는 사실 남성도 의외로 많다. 특히 젊은 세대와 자녀를 둔 부모 세대들은 이슬람 국가에서 성행하는 사촌간의 근친결혼[97]과 조혼 풍습(국가마다 다르지만 과격한 곳은 6~12세 여아를 명목상이 아니라 실제 성관계까지 포함해서 결혼시키는 곳도 있다)에 아주 몸서리를 치며 생리적인 혐오감을 보인다. 조혼 풍습 자체야 평균수명이 짧던 시절엔 전세계에 골고루 있었고 요즘도 수명 짧은 나라에선 성행한다지만 종교 지도자[98]가 9세 여아를 성관계까지 포함해서 취처한 사례[99]는 찾아볼 수 없으며, 종교의 창시자 중에서 조혼을 한 사례는 없기때문에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긴 하다. 다만 조혼이 이슬람의 교리는 아니다. 쿠란에서 언제 결혼할 수 있다는 나이가 고정된것은 아니고 적당한 시점에 결혼하라고 하기 때문에 이슬람에서 조혼이 교리다 라고 주장할만한 근거는 부족하다. 이슬람이 있는 지역에서 여전히 조혼이 풍습으로 남아있어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역할을 하지못한다 비판 할 수 있다.

  • 일부 국가들의 북한 외교
단, 이 부분은 무작정 종교적으로만 보기는 애매하며, 오히려 외교적, 정치적 이유에 더 가깝다. 우선 몇몇 아랍계 또는 일부 이슬람권 국가 중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거나 친북성향의 국가들도 적지 않은데, 이로 인해 이슬람권이 북한과 친하다는 확대해석으로 나타난 생각이다. 다만 시리아처럼 사회주의 성향을 가졌거나 이란, 팔레스타인처럼 북한과 긴밀한 외교관계가 좀 있는 곳들도 있다. 터키도 경제난과 한국의 대북 유화정책으로 북한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모두 북한처럼 반미+반서방 감정을 가졌는데 이러다 보니 서로 비슷한 처지에 놓인 나라들이 북한에게 친근감을 가졌다. 국가가 아닌 단체로서는 후티 반군, 헤즈볼라, 하마스가 대표적으로 북한과도 친하다. 이런 점이 있다보니 한국의 일부 보수적인 기독교신자들이나 친서방, 친미 성향의 사람들, 친이스라엘적인 인물들은 이걸 빌미로 쓰면서 이슬람권은 북한과도 같은 동네로 취급하면서 안 좋게 본다. 당연하지만 모든 이슬람권이 북한과 친한 것도 아니며, 이라크처럼 북한을 안 좋게 보는 이슬람권들도 적지 않다. 오히려 북한과 친한 이슬람권 국가들이 더 적다. 분명히 몇몇 이슬람권들이 북한과 친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지만, 별도로 이것으로 이슬람권이 모두 또는 거의 북한과 친하다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에 불과할 뿐이다. 또한 북한은 공산주의 체재이기 때문에 종교를 탄압하지만, 애초에 종교적으로서는 거리를 두었던 편이다. 그리고 이란처럼 북한과도 친하거나, 시리아, 팔레스타인처럼 북한과 외교를 맺은 곳조차 한국 문화 등에 관심이 있어하는 사람들도 있고, 한국에 관심있다고 이들을 탄압하진 않는다. 그저 남북한의 상태를 제대로 모르는 것이다.[100] 이러한 이유로 몇몇 반아랍감정 및 반이슬람권 감정을 가진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옹호하고 팔레스타인과 골란 고원이 이스라엘에 지배받아 마땅하다는 제노포비아를 연상시키는 발상을 주장하기도 한다.


5. 전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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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극복을 위한 노력[편집]


이슬라모포비아에 기반하여 반이슬람행위에 빠져들지 않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와 허용, 그리고 이슬람 내부의 자성이 필요하다. 비이슬람 문화권의 경우, 자국에 유입된 무슬림을 포함한 모든 계층에 대하여 배척하지 않고 이해를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제노포비아 자체가 해당 인종에 대하여 막연한 공포감을 토대로 형성되었음을 인지하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갖추도록 하자.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슬람 문화권은 오랜 기간동안의 율법에 의한 통치와 남성 중심의 율법적 해석이 문제점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중동 세계도 아랍의 봄 이후 정치적 개혁 요구와 함께 서구 문명의 유입으로 기존 관습 철폐를 주장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비이슬람 진영에서 경계하고 배척해야 할 것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지 무슬림 전체 또는 이슬람 문화 자체가 아니다. 이슬람계 출신이면서도 다른 사회에 적극적으로 동화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또한 많다. 그런 것을 무시하고 그저 문제아들과 같은 민족, 같은 종교라는 것만을 이유로 무조건적인 차별을 일삼으면 오히려 멀쩡하던 이들도 반발심리로 진짜 문제아들인 극단주의자들에게 가담할 수 있다. 실제로 극단주의자들은 자신의 행동을 지하드, 즉 이슬람 대 반이슬람의 전쟁이라고 정당화하여 이슬람 사회 내에서 지지를 얻고 있으며, 이슬람에 대한 비이슬람 진영의 차별이 늘어날수록 일반 이슬람 교도들이 극단주의자들의 의견에 동조하여 자발적인 지하드 가담이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무력화시키는 궁극적인 방법은 비이슬람 진영에서 이슬람에 대한 열린 시각을 넓혀 일반 무슬림들이 비이슬람 진영과의 전쟁 상태가 아니라고 스스로 느끼고 극단주의를 이슬람 내에서 배척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이슬람은 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며, 전쟁상태가 아니라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와 같은 일반 무슬림들에 대한 인도적인 대우는 이슬람 대 비이슬람 사이의 평화 증진에 도움이 된다.


5.1.1. 이슬람 외부의 노력[편집]


일단 서방의 방식은 세속주의를 받아들이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존중하는 무슬림은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무슬림은 적극적으로 적발하여 법으로 처벌하거나 추방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즉 이슬람의 전근대성을 약화시키면서 세속에 편입시키는 식이다.

각국 정부에서 아래와 같은 조치들을 취한 바 있다.
  • 미국은 군 복무중인 무슬림들을 위해 전투식량으로 할랄 푸드를 제공한다.
  • 영국은 무슬림 죄수들이 교리를 위반하는 일이 없도록 교도소 화장실 방향 변경 공사를 한 바도 있다. 일부 사례들은 과도한 무슬림 옹호 내지는 비무슬림에 대한 역차별로 평가되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강아지가 포함된 홍보물이 무슬림들을 불쾌하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무슬림들이 항의하자 경찰청이 사과한 사례, 다섯 살 여자아이의 여권사진에 어깨가 너무 드러나 무슬림을 언짢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여권발급을 거절한 사례, 런던에서 한 버스 기사가 버스에 타고 있는 무슬림이 기분상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한 여인이 개와 함께 탑승하는 것을 거절한 사례 등이 있다. 하지만 대체로 무슬림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신앙적인 부분은 존중해 주되, 그게 세속 가치를 침해하지 못한다고 분명히 선을 긋는다.[101]
  • 프랑스 정부는 여성을 이슬람 여성이 아닌 프랑스 국민으로 간주한다는 차원에서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종에서 부르카 착용 금지를 시행했다. 이에 대해서 복장 선택과 직업 선택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이슬람 여성들의 반발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프랑스의 정책은 지극히 현실적으로 체격이 작은 남자 무슬림이 부르카를 착용하고 여자인 척 하면서 테러를 저지르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 각국 정부 차원에서 무슬림 2세들에게 세속주의 교육을 적극 시행하며, 이민을 온 무슬림들에게 세속주의를 소개하고 어떻게 따라야 하는가를 가르친다. 특히 이슬람 극단주의자와 극단주의 무장단체의 테러가 발생해도 무슬림에 대한 차별과 증오범죄를 금지하며 단속한다. 반이슬람 선동 역시 금지한다.

민간 차원에서도 아래와 같은 활동들이 전개되었다.
  • 오타와 총기난사 사건 직후 이슬람 혐오자들이 모스크에 낙서를 하는 등의 비이성적 행위를 했지만 이후 지역주민들은 자발적으로 모스크의 낙서를 지우고 "이곳이 너희 집이다"라는 문구를 달아주었다.
  • 시드니 인질극 사건의 여파로 호주 내에서 이슬람에 대한 여론이 악화될지도 모른다는 분위기가 확산되자, 호주인들 사이에서 무슬림, 특히 히잡을 착용한 여성들이 린치 당하지 않도록 동행하자는 #illridewithyou 운동이 전개되었다.# 토니 애벗 총리 역시 "IRA가 종교적인 의도로 테러를 한다고 해서 교황을 비난하는 사람은 없다" 며 이번 사건과 이슬람과의 선을 그었다. 다만 이슬람의 이름으로 테러를 저지를 경우에는 가차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 프랑스에서도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사건의 여파로 국민전선 등의 일부 우익 활동가들이 이슬라모포비아 활동을 재개하고 있으나 공화당원 주도의 추모시위에서 르 펜과 강성 우익인사들을 초대 대상에서 배제하는 등, 이슬람 그 자체를 적대시하려는 시도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102] 프랑스 대통령 역시 "우리는 종교가 아니라 테러와의 전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전근대성을 고집하는 무슬림들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임을 분명히 했다.

즉 이슬람 자체를 적대시하지는 않되, 이슬람의 전근대성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시정 요구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시정을 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5.1.2. 이슬람 내부의 노력[편집]


2010년 튀니지를 비롯한 아랍의 봄을 시작으로 이슬람 내부의 자성과 변화가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중동 지역의 기존 정권에 대한 개혁 요구로 인해 시작된 시위는 그동안 이슬람 문화의 자성을 보여준다. 정책적으로 튀르키예는 2004년에 명예살인을 살인죄로 적용키로 하여 자행되던 악습의 피해자를 감소시켰다.[103] 사우디아라비아는 높아져 가는 이혼률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율법에 따르면 이혼은 가능하나 되도록 피해야할 사항이나 부부간의 갈등 표출이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104] 이란의 한 여성은 히잡에 반대하여 페이스북에 히잡 쓰기 반대 운동목적의 사진을 게시하였고 국제 NGO는 인권상을 수여하였다.[105]



5.2. 한계[편집]


문제는 국제정세와 관련된 복잡한 문제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 가능성이 요원하다는 점이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이스라엘-미국-이슬람 세계와의 이해관계와 증오의 연쇄 문제다. 단순히 누가 가해자고 누가 피해자라고 쉽게 단정지을 문제가 아니다.

  • 아랍권 이슬람 국가들의 경우 이스라엘의 존재 자체를 지하드 상태로 보고 있으며,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중동 문제에 개입하는 것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중동에서의 두 세력의 존재 자체가 화해할수 없는 문제라고 간주하고 있다.[106]
  • 이스라엘의 경우 본래 단순히 유대인 거주구에서 주권을 행사하는 세속 국가를 지향했지만 제1차 중동전쟁제2차 인티파다 등 아랍측의 선제공격으로 인한 전쟁으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즉 지금의 상황은 이슬람측이 먼저 유대인을 배제하기 위해 벌인 일이며 현재 이스라엘의 행동은 이에 대한 '대응'임을 주장한다.
  • 미국의 경우 이스라엘과 아랍의 왕족들을 지원한다는 이유로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자행된 보복테러에 대한 보복을 주장하는 것이 미국 이슬람포비아의 주류이며 실제로도 9.11 테러에 의해 고조된 반이슬람은 테러와의 전쟁 후유증으로 서서히 가라앉았다가 ISIL의 등장으로 다시금 여론의 50% 이상을 장악하는 모습을 보여왔으며 이슬람 극단주의가 서구를 위협하는 이상 반이슬람은 당연한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갈등의 근본적인 해결을 하려면 이슬람-이스라엘-미국 3자가 풀어야 되겠지만, 각자의 이해관계가 너무나도 복잡하게 얽혀있는지라 현재로서는 뾰족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또다른 중요한 사실, 이슬람공포증을 부추기는 가장 큰 원인은 극단주의 조직들의 테러 행위인데, 이게 바로 그러한 조직들이 원하는 것이다. 서구사회에서 이슬람에 대한 배척이 심해질 수록 이슬람 2세대 젊은이들이 사회에 대한 분노를 품고 살아가게 되고, 이는 손쉬운 '전사' 공급원이 된다. 포용은 어렵지만, 증오와 혐오는 쉽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셈이다.

또한 무슬림에 의한 범죄가 비록 언론에 의해 과장되는 측면이 있을지라도 실제로 발생하고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한 예로 피파 바카(Pippa Bacca)라는 이탈리아 국적의 행위예술가가 "Brides on Tour"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밀라노에서 예루살렘까지 히치하이킹으로 여행하던 중 2008년 3월 31일 터키의 겝제(Gebze)시에 도착한 뒤 실종, 강간 살해된 채 4월 11일에 발견된 바 있다. 관련 기사 이를 많은 사람들은 이슬람의 문제로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며, 두 명이 함께 여행하다가 이스탄불부터 헤어져 혼자 여행한 점이나, 범인이 약물 및 알콜 중독 상태라는 점과 같이 보다 범죄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원인들은 무시된다.


5.2.1. 이슬람 측의 문제[편집]


우선 가장 큰 문제는 선민 사상에 기반을 둔 교리 해석에 있다. 지하드는 기본적으로 이교도에 대한 약탈을 인정하는 등 전근대적인 측면이 많고, 이슬람을 비교해서 신흥 사이비 종교를 만드는 경우에 적용되던 배교자에 대한 살해 명령 역시 어느 순간 이슬람에서 다른 종교로 개종한 사람 전체를 대상으로 확대되었다. 설사 샤리아를 전면부정한다고 해도 쿠란 자체에 현대 사회 가치관과 충돌하는 부분이 많기는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교리 자체를 고칠 수는 없어도 전면적인 재해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107]

또한 다우드 킴 같은 사례 즉 성폭행 피해자의 폭로를 은폐하기 위해 피해자를 대상으로 적반하장으로 타크피르를 선동하는 것들은 반드시 추방시켜야 한다. 극단주의자들의 절대다수가 이슬람주의 선교 성금 커넥션과 연계되거나 그 지원을 받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것들을 방치할 경우 무슬림 여성이 부르카니캅을 벗었다는 이유로 성폭행을 당하면 여성 책임이라는 궤변을 선동하면서[108] 뒤에서 코인을 받는 일이 생긴다.

또한 종교계를 넘어 정계, 학계, 언론계 등 사회/문화 전 분야에 걸쳐 원리주의가 큰 영향을 끼치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양대 종파 수니파와 시아파의 수장격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과 같이 원리주의 신정체제 국가의 경우 정치계학계가 원리주의를 엄수하기로 더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고, 무슬림이 절대 다수로 있으나 샤리아 법이 실정법으로서 작용하지 않는[109] 인도네시아언론계 내 원리주의 확대 및 말레이시아 B1A4 팬미팅과 관련하여 발생한 성추행 논란은 샤리아 법정의 처벌에 따라 결국 이벤트 주최자가 자격정지되었다.그 외 다수 非이슬람 국가에서도 인도, 미국에 샤리아 법정이 존재하는 등, 원리주의는 다양한 지역, 형태, 계층에 자리잡고 있다.

원리주의와 극단주의가 동의어는 아니지만 극단주의의 폭력적 행위는 원리주의에 그 근거를 두는 것이 현실이고, 테러리즘의 형태까지 나아가지 않아도 서구 르네상스 이후 인본주의의 가치에서 탄생한 UN 인권헌장의 관념에 신본주의적 가치가 충돌하며 물러서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110] 즉, 인도 이슬람 학자 집안 출생의 유명 미국 언론인 파리드 자카리아의 "역시 하지만 오늘날 이슬람 지하디스트들이 가진 피비린내 나는 믿음은 무슬림 세계에서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심지어 온건한 무슬림조차 신성모독과 배교는 이슬람에 대적하는 범죄로 엄중히 처벌받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라는 오피니언으로 정리할수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장애는 다른 집단에 대한 경계 및 배척이 모든 인간에게 내재된 동물적인 본능이라는 점이다. 이는 서로 융화하기를 꺼리는 무슬림만의 책임도 비무슬림만의 책임도 아니다. 양쪽 모두 문화적으로 100% 융화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서로 인정할 필요가 있으며, 종교관습을 명목으로 자행한 위법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하고 이러한 행위를 경계하는 측도 선을 지켜가며 맹목적인 혐오가 아닌 비판의 영역에서 머물러야만 한다. 그러나 각각의 입장에서 물러서지 못할 한계점이 어디까지인지가 문제인데, 대표적으로 샤리아 법[111]이 무효하다는 점에서 물러 설 수 없는 비무슬림과 경전에 어긋나는 행위를 강요하는 것에 대해 물러설 수 없는 무슬림들 사이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컨대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 사건에 대한 반응에서 나타나듯, 샤리아 법에 따른 신성모독 금지와 표현의 자유란 현대 시민사회의 가치가 충돌할시 샤리아 법에 따른 가치를 비무슬림이 받아들일수는 없는 법이고 반대로 평범한 무슬림조차도 받아들이기에 경전에 어긋나는 행위인 경우극단주의화 까지 나아가기도 한다.

다시 말해 비무슬림 측에선 발생한 갈등현상에 대해 정치와 도덕을 분리하는 마키아벨리즘식 대응으로 정치적인 귀결[112]이 나기도 하며, 그러한 관점에서 해결 비용(사회적/경제적) 지출을 최소화하려는 심리와 경계 심리가 만나 이슬람권 전반에 대한 효율적인 경계를 넘어 비이성적인 공포증,혐오증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반대로 무슬림 측에서는 다소 관용적인 세속주의부터 IS[113]와 같은 극단주의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어 경전에 어긋나는 행위를 정의하는 방식의 범위가 다양하긴 하나 앞의 사례들로 소개되었듯 원리주의가 상당한 영향을 미치며 한편으로는 그것이 구조화, 확대화, 심지어 극단화까지 되기도 하여 갈등의 원인이 재생산되는 상황이라 이슬라모포비아란 갈등 현상의 해소를 기대하기에 부정적 전망이 내세워지기도 한다.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경계는 근본적으로 이슬람교에서 권장하는 행위/가치관이 인류 보편적인 가치에 정면으로 반한다는 점에서 나온다. 이슬람의 문화와 제도, 규범이 존중받아야 한다면 그 반대로 비이슬람의 문화와 제도, 규범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슬람의 율법과 제도, 문화는 비타협적이고 다른 문화와 국가, 종교의 규율과 규범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이슬람 측이 관용적인 태도로 수용하고 소위 말하는 세속적인 태도를 취해야 해결이 가능하지만 이슬람의 정교일치 사회, 종교적 규범이 일상의 모든 것을 규정하고 통제하는 사회의 속성상 절대로 타협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현재로서 이슬람 문화에 속하는 사람과 비이슬람 문화에 속하는 사람은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못할 정도의 거리를 가지고 사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114] 이슬람-비이슬람 사이의 충돌의 원인은 과거와는 달리 그들 사이에 물리적 거리가 너무 가까워지고, 서구 유럽사회 또는 자본가들이 저임금 노동력의 활용을 위해 의도적으로 저개발국가의 외국인노동력을 수입해 자국내의 임금억제-자국민 노동자 견제를 해왔고, 그렇게 수입된 외국인노동자들의 다수가 무슬림이었다는 점에 있다(유럽의 경우).

이 문제의 해결의 열쇠는 오직 무슬림들이 가지고 있다.기독교불교에 대한 비판, 성경 또는 예수에 대한 비판과 불경 또는 석가모니에 대한 비판은 가능하지만 이슬람이라는 종교, 그 종교의 창시자 등에 대한 비판은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인가? 이 문제는 이슬람 측의 종교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태도가 나오지 않는 이상 비이슬람 측의 일방적인 양보만을 요구하게 되는데, 그 결과는 오직 모든 인류가 이슬람을 믿거나 단 한 명도 이슬람을 믿지 않는 두 가지 극단 외에는 결코 갈등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헌데 문제는 전자로는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 분명 전자가 되면 이슬람을 믿냐 안 믿냐로 인한 갈등은 발생하지 않엤지만 기독교도 여러 교파로 갈려있듯 이슬람도 여러 교파와 학파로 갈려 있기에 이번에는 이슬람 내 교파갈등이 세계구급으로 발생할 것이며[115] 샤리아 도입을 놓고도 의견이 갈릴 수 있다. 결국 이슬람 스스로가 개혁에 나서지 않는다면 설령 이슬람측에서 자신들이 원하던 모든 것을 이루게 된다 하더라도 이슬람 공동체의 이상과 염원이 실현되는 세상은 결코 올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5.2.1.1. 관련 문서[편집]



5.2.2. 비이슬람 측의 문제[편집]


예를 하나 들어보자. 실제로 유럽에서 자주 일어나는 모순이다. 평소에 술고래이면서 동시에 캣콜링을 즐기면서 “히잡 안 쓰는 여자를 성추행했는데 뭐가 잘못되었다고?”라고 주장하는 무슬림 한 명과, 술도 안 마시고 캣콜링 같은 행동을 하지 않고 유순하게 사는 무슬림이 한 명이 있다. 첫 번째 경우는 이슬람교에서 금기시하는 술을 마시기 때문에 “온건 세속주의 무슬림”으로 분류되기도 하고 동시에 여성을 성추행하고 이를 이슬람으로 합리화하여 들기 때문에 동시에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된다. 다른 한 편으로 또 다른 한 명은 사고도 안 치고 다녀서 “평화를 사랑하는 무슬림 이웃”이 되지만, 동시에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에 “수구 근본주의 무슬림”으로도 분류가 가능하다. 농담으로 극단적인 예시를 든 것이 아니라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즉 이슬람 극단주의자를 구분하는 구체적인 기준이 부재하고 이 점이 서구 사회에서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것이다.[116][117]

이슬람공포증을 극복하려 하지 않는 것이슬람공포증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려 하는 것 역시 문제이다. 차별과 편견의식을 거두긴 커녕, 이슬람 측의 과오만을 보면서 무슬림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더더욱 강화하다보니, 차별과 편견으로 인해 사회에서 밀려난 무슬림이 극단주의에 더더욱 빠지게 된다. 문제삼는 것을 스스로 키워내는 모순점에 빠져있고, 오히려 그것을 이용해 정치적 이득을 취한다. 이슬람교와 무슬림을 괴물로 묘사하고 자신들을 그 괴물과 싸우는 투사로 포장한 다음, 투사로써 신망과 명예를 취한다. 또한 괴물이 아닌 무슬림들까지 공격하여 그들이 극단주의로 빠질 환경을 제공해, 문제삼던 것을 더더욱 키워버리게 된다. 상대하는 괴물이 크고 강대할수록, 투사가 얻을 수 있는 명예는 더더욱 커지게 되어 괴물을 더더욱 키워내려 하게된다. 이슬람공포증을 이용하니깐 이슬람공포증을 극복하려 하지 않고 키워야 할 필요성만 생기는 것이다.

이슬람교와 상관관계에 있을꺼라 여겨지는 어떠한 사건이나 사회적 현상에 대해, 명확한 인과관계에 있는지 공변성이나 선후관계에 대한 검증을 하지 않는다.[118] 그런데도 인과관계가 있을꺼라는 맹목적 믿음을 근거로 삼아 논지를 전개해나가, 실질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대단히 문제있는 주장이 나오게 된다.[119] 이슬람공포증이라는 신앙을 신봉하는 셈이다.

이슬람 내부의 전근대성을 지나치게 과장하고[120] 극단주의자들이 전체 이슬람 교도의 일부에 불과함을 무시하고 전체 무슬림과 전체 비무슬림 사이의 갈등을 의도적이고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극단적 반이슬람 세력이 존재한다. 이들은 이슬람을 비난하는 행위를 통해 인지도와 지지도를 확보하는 언론인과 정치인들로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각종 혐오 발언을 일삼고 있다. 특히 2008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 이후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에 빼앗긴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반이슬람 운동을 활용하여 정치적, 당파적 이득을 챙긴 것으로 분석되며, 결국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는 결실을 맺었다.

반이슬람 네트워크는 미국의 티파티 운동에서 유럽 극우 세력, 이스라엘의 극우 시오니스트, 기독교 근본주의, 영국의 인종주의자 축구 훌리건들에 이르기까지 대륙 간에 걸쳐 세력을 확장했고, 국내에서도 이슬람 관련 키워드를 검색하면 미국의 기독교 언론 기사들을 그대로 번역한 기독교 언론들의 기사들이 난립하고 있다. 이들 기사는 사실 전달에 그치지 않고 기독교적 가치관에 따른 가치판단을 결론으로 제시하며, 반이슬람 정서를 부추기기 위해서라면 사실 왜곡까지도 자행한다.

주장 자체가 대부분 논리적 요류가 들어간다는 것 또한 문제다. 대표적인 것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다. 문제가 되는 무슬림은 일부지만, 공포심에 그 일부를 일반화해서 전체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되지 않는 무슬림 역시 구별하지 않고 문제로 바라보니, 문제를 실제보다 크게 부풀려서 보게되어 정확한 문제인식을 스스로 방해한다. 스스로 방해한 인식을 바탕으로 잘못된 주장을 펼치게 되어 실상과 전혀 맞지 않는 내용을 주장하게 되버리는것이다. 또한 무슬림이 한국에서 자신들의 신앙에 따라 행동하면, 한국에 왔으면 한국법에 따르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한국 헌법에 쓰인 사상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한국법을 지키지 않는건 무슬림을 비판하는 사람들이다. 혐오와 공포라는 감정이 논리로 재단될 수 있는것은 아니지만, 주장과 근거는 논리와 이성에 기초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보니 주장 자체가 감정을 풀어내는 것이 많으며, 대상의 주어만 반대쪽으로 바꾸면 자기 자신들을 공격하는 주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이슬람측에 주장하는것이 자신들에게 해당될때는 모르쇠로 일관하는 내로남불을 행한다.

비종교 언론에서도 가끔 무슬림 내부에서의 테러 비판에는 침묵하는 등 편견적인 기사를 내보내기도 한다.

6. 결론[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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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들어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들이 저지른 테러 활동들이 전세계에 보도되면서 이슬람의 이미지가 악화되었고, 이를 이용해 각국에서 여러 세력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무슬림에 대한 공포와 혐오를 부추김에 따라 이슬람공포증이 확산되었다. 그 결과 국수주의, 인종주의 단체들에 의해 이 문서에 기술된 것과 같은 여러 차별 및 폭력 행위들이 무슬림을 대상으로 벌어지고 있다.

인간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그 자체로 올바르지 못한 행위이며, 국제사회에서도 반인권적인 행위로 규정한 바 이슬람공포증은 반드시 극복해야 할 문제이다. 또한 차별로 인해 사회에서 밀려나는 무슬림이 극단주의에 빠지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라도 전체 무슬림에 대한 무분별한 차별과 혐오는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슬람 극단주의와 이슬람공포증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악순환의 관계에 놓여 있으며, 양쪽 모두 결과적으로 인권 침해와 사회 갈등, 극단주의 유발이라는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오랜 갈등의 역사와 현실적인 문제들로 많은 어려움이 있더라도 무슬림과 비무슬림 양쪽 모두 공존을 위해 문화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100% 융화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서로 인정하고 양쪽이 합의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조금씩 늘려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7.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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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슬람 여성의 숨겨진 욕망 기사.[2] 프레드 할리데이는 이에 대해 국가 및 문화에 따라 이슬람에 대한 편견의 형태가 다르다며 부정하였으나, 말콤 브라운, 로버트 마일즈 등은 차별의 형태가 다르다고 해서 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부정되지는 않는다고 반박하였다.[3] The Britannica Guide to Political and Social Movements That Changed the Modern World, 2009, 317쪽.[4] 종합경제사회연구원 중동 지역연구, 3-3).[5] 다만 이 주장은 투르-푸아티에 전투 문서에서도 서술되어있듯 이 주장은 현대 역사 학계에서는 부정적으로 평가된다.[6] 다만 저자는 사학 전공자가 아니라 건축가 겸 디자이너이므로 주의.[7] Jonathan Phillips, The Crusades 1095-1204, pp. 17-23.[8] 9.11 테러 직후 오사마 빈 라덴의 성명에서 언급된 "80년 간의 굴욕과 불명예" 발언이 이를 겨냥하고 있다.[9] 이는 이후 유태계 자본이 언론 및 영화계를 지배하면서 더욱 강화된다. 단, 9.11 테러 이후로는 반대로 무슬림을 부정적으로 묘사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는 주장도 존재한다.[10] 사회적 유물론에 입각한 친소 진영은 집권 성향에 따라 종교를 탄압하거나 적어도 권장하지는 않았다. 이에 대응하여 미국은 원리주의자들을 오히려 무신론에 맞서 싸우는 숭고한 종교인으로 포장하고 지원했다. 람보 3에서 공산 정권에 맞서 싸우는 아프간 무자히딘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에 지나지 않는다.[11] 군사력과 기술력, 경제력에서 이슬람의 전 국가들이 연합해도 미국을 못 이긴다. 당장에 미국이 이슬람 국가들한테 경제 제재만 내려도 입는 타격이 장난 아니기에 미국의 의견은 절대 무시 못 한다. 이란과 시리아가 중동에서 반미 국가이지만 미국을 이길 힘이 없어 대놓고 적대하지 않는다.[12] 이는 싱가포르인도/인도네시아 저소득층 노동자들이 일으킨 폭동과 유사하다.[13] 이는 실업률이 높아지거나 사회의 성장동력을 잃어버린 국가에서 종종 일어나는 현상이다.[14]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아랍인 탄압으로 인해 발생하는 테러가 좋은 예다.[15]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2013년 테러 단체에 대한 재정 지원을 법적으로 금지하였고, 미국과의 합동 공습에 동참하는 등 태도를 바꾸었다. 카타르와 쿠웨이트는 이에 따르지 않고 있다.[16] 당장 샤리아를 적용시키려 하거나…[17] 예루살렘의 경우, 불만을 가진 무슬림들이 대놓고 테러를 하려고 했었다. 시카고와 뉴욕에서 자폭 테러를 시도했었다.[18] 오해하면 안 되는 게 대부분의 제정신 박힌 무슬림이라면 테러는 반대한다.[19] 다만 이슬람 문화권의 경우 그 내부에서 박해받고 있는 소수파인 비무슬림의 경우는 피해자인 경우가 많고,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다수파인 무슬림들이 오히려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소수파가 가해자인 경우보다 피해자인 경우가 흔하고, 오히려 다수파가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 허나 현대에 종교를 이유로 박해하는 지역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 이슬람권이 두드러진다. 그 이유는 이슬람권의 경우 인종, 경제적 가치보다 종교적 가치가 더 높고 따라서 다른 나라에서 인종차별이 차지하는 위치를 종교적 차별과 탄압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로 미국과 같은 경우 이슬람을 제외하고는 종교적으로 차별 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 유럽도 마찬가지. 그러나 인종차별은 아직도 남아 인종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강도의 경우 이슬람이 더 심각한 것은 맞다. 이유는 서구 선진국의 국민들이 경제적, 의식적 측면에서 더 나은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20] 그러나 실제 이슬람권에서 무슬림에 의해 종교적인 이유로 생명의 위협을 포함한 박해를 당하고 서구권에서 이슬람포비아 활동을 하고 있는 인사(소말리아 출신의 아얀 히르시 알리레바논 출신의 브리지트 가브리엘)도 있기 때문에 이것도 전적으로 그렇다고도 할 수 없다.[21]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슬람 국가인 이란이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기독교식 법치를 따르라는 시위를 벌이는 사람이 있다면 결말은 불 보듯 뻔하다.[22]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 영국/프랑스의 전쟁 반대, 여성/아동의 인권 신장.[23] 각국 총 인구 기준 무슬림의 비중은 영국 4.4%, 프랑스 5~10%, 독일 1.9% 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되며, 프랑스의 경우 제대로 된 인구 조사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단, 독일의 경우는 이전 조사 결과인 5.9%에서 급감했는데, 이는 독일 내 이슬라모포비아 현상의 증가로 무슬림들이 불이익 당할 것을 우려해서 자신의 종교를 솔직하게 응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24] 이 요구는 작게는 히잡 착용이나 할랄 푸드 영업 허용 등과 같이 논란의 여지는 있어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것부터 샤리아법 도입 및 종교경찰 활동이나 이슬람 거주구 에미레이트 분리독립 등과 같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까지 다양하다. 어느 선까지를 요구하고 받아들일지에 대해 이슬람과 비이슬람 사이에 합의가 필요하다.[25] 당장 불교, 유대교 같은 종교들은 기원전에 나왔고, 기독교는 기원 초에 나왔으나 이슬람은 겨우 5~6세기에 출현한 종교이다.[26] 유교나 타 종교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과거에는 경전에 명시된 사회 규범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한 법적 처벌이 있었으나, 현대에는 그러한 법적 처벌이나 삶의 제약의 정도가 세속화 추세나 정교분리에 따라 이슬람권과 달리 현저히 감소했다. 더욱이 유교를 종교로 구분하는 데 있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27] 하지만 이슬람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남성에 대하여서는 상당히 유연한 자세로 적용됨을 알 수 있다.[28] 그러나 2016년 현재 미국과 영국의 실업률은 매우 낮다는 점을 감안하면, 저임금 기반 직업군을 이민자들이 차지해서 청년 실업률이 높아진다는 의견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29] 제2차 세계대전 이전 독일의 유태인의 증오 심리로 인해 홀로코스트가 나타난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자.[30] 이슬람이 타 종교에 대해 관대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쿠란의 "불신자들의 목을 쳐라"라는 구절을 인용하는데, 이는 전쟁 중에 국한된 것이며 전쟁이 끝난 후에는 불신자인 피정복민(딤미)에게는 "이슬람이 보호하고 있다"는 명목으로 소위 인두세라 불리는 "지즈야"라는 세금을 징수하였을 뿐 개종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오스만 투르크 초기에는 세금도 동로마 제국에 비해 적은 액수였기 때문에 당시 기독교와 유대교도들은 세금만 내면 종교의 자유를 누렸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용은 이슬람과 같은 신을 믿는 유일신 종교에만 국한되는 것으로, 다신교도들과 무신론자들은 철저하게 탄압하였다. 조로아스터교 대학살을 자행하기도 했고, 무신론자-신을 믿지 않는 자는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라고 쿠란에 명시되어 있다.[31] 다만 이것은 시스템 개선이 낳은 유리천장 깨기가 아니다. 매우 독특한 터키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은 일회성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조선시대에 꼽을 만한 여성 위인이 있었던 것과 비슷하다.[32] 애당초 이 둘은 이슬람교와 뿌리가 같다.[33] 인도랑 동남아 국가들이 이슬람 국가들과의 관계가 더러운 게 이것 때문이다. 특히 무슬림들은 인도와 동남아인들의 종교만 박해한 게 아니라 그들을 야만인으로 멸시하기까지 했다. 그러니 이쪽의 이슬람 혐오는 서방 세계의 이슬람 혐오만큼 심하다. 특히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가 터지면 이슬람 혐오가 더욱 심해진다.[34] 그렇기에 남들보다 가족에게, 타 인종보다는 자신의 인종에게 더 높은 공감 수치를 보인다. #[35] 이 것이 각종 난민 구호 협회 혹은 봉사 단체에서 '우리는 모두 똑같은 사람'이라는 문구를 즐겨 쓰는 이유이다. 공통점을 찾아 공감도를 높이려는 것.[36] 버스 안이랑 공공장소에서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고 하면 테러 공포감에 '테러범 잡아라' 하며 집단 린치를 당할 수 있다. 경찰에게도 테러범으로 간주되어 체포당하여 조사받게 된다. 기독교가 '하느님이 위대합니다'라고 하면 '저 사람 민망하게 왜 저래'라며 무시받는 것과 차원이 다른 조치다.[37] 하지만 이에 대해 UNUN 인권위 모두 "명백한 차별"이라는 의견을 밝혔다.[38] 바샤르 알아사드의 정책이 나치즘과 유사하기 때문에 그를 지지하는 대안우파 강경파가 종종 있다.[39] 다만 대안우파 온건파가 지지한다는 이슬람 자유주의의 정의는 마지드 나와즈의 목표와 차이가 있다. 마지드 나와즈는 이슬람주의가 히잡, 부르키니를 이슬람의 정체성이라고 정의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지만 대안우파 온건파는 히잡, 부르키니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40] 샘 해리스는 이슬람황금기 역사서술이 PC적이라고 비판했고 미국이 상대적으로 착한 거인이라고 발언했다. 그리고 아얀 히르시 알리는 진영논리적으로 도널드 트럼프를 옹호하고 무함마드 빈 살만의 친미적인 개혁을 지지했다.[41] 반이슬람 외에도 메르켈 정부의 난민 수용 정책과 사건에 대한 정부 대응에 대한 비판 의견들도 있으나, 이에 대해서는 해당 문서 참조.[42] 튀르크계 무슬림은 세속주의 성향이 강하며 이슬람 율법에 딱히 신경쓰는편도 아니며 오히려 이들의 정부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엄하게 단속하고있다 특히 아제르바이잔은 인구의 60%가 사실상 무종교인이라는 조사결과도 있으니.[43] 당장 이슬라모포비아의 대표적인 밈인 리무브 케밥어디서 나왔는지만 봐도 알 수 있다.[44] 이게 본진이라 할 체첸 지부(러시아어로는 "빌라얏 노흐치최(Vilayat Nokhchicho)"의 문제만이 아니고 잉구시 공화국 지부인 "빌라얏 갈가이체(Vilayat Galgaycho), 다게스탄 공화국 지부인 "빌라얏 다게스탄(Vilayat Dagestan)" 같은 타 지부도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체첸 쪽은 푸틴과 카디로프가 밟아 놔서 그나마 괜찮은데 오히려 다게스탄이 더 극성이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45] 물론 이 극단주의적 행동에는 이슬람 극단주의에서 발생하는 범죄와 나무위키 규칙상 링크 금지인 납치참수 같은 막장짓들도 해당된다.[46] 체첸전 시절에 수피즘 계열 세력도 잔학 행위는 했다.[47] 이놈들이 체첸 내부에서도 난장판을 친 것도 있고, 다게스탄 침공(그 악명 높은 1999년 다게스탄에서 벌어진 "체첸 클리어"도 다게스탄 침공 부대 지휘관 "살라투딘 테미르블라토프(salautdin temirbulatov)"가 벌인 짓거리였다. 인과응보인지 투옥된 이후 의문사를 당해서 문자 그대로 존재 자체가 증발했다), 베슬란 학교 인질사건으로 벼르고 있던 러시아에게 명분만 신나게 줬다.[48] 2012년 조사에 의하면 러시아 인구의 6.5%인 940만 명이 무슬림이다. 체첸인인구시인, 다게스탄 주민뿐만 아니라 바시키르인, 타타르인, 체르케스인도 많이 믿으며, 러시아인도 개종자가 적지 않다.[49] 이 규제에 따라 향후 중국 내 모스크는 중국식 기와 지붕으로 지어져야 한다.[50] 이 정도면 중국 공산당이 체제유지의 일환으로 무슬림들을 배려해주고 편의를 봐주는 것이나 다름없다.[51] 단적인 예로 중국어 실력이 된다면 바이두에서 切糕를 키워드로 검색해 보면 안다.[52] 단, 서구에서도 2016년 쾰른 집단 성폭행 사건, 외로운 늑대에 의한 다수 소프트 타깃 테러, 브렉시트 결정에 이민자 문제가 미친 영향 등으로 인해 이성적인 관용이 점차 힘을 잃고 있다.[53] 인도네시아 지배 하에서도 무슬림 수는 4% 정도가 최고였으며, 동티모르 독립 이후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여 줄었다.[54] 그러나 이는 로힝야족이 거주하는 미얀마 남서부의 라카인 주에서도 인구 비율이 30% 남짓인데다 아라칸 족 등 토착소수민족들이 해당 지역에 더 많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도 독립은 불가능한 실정이다.[55] 다만 인도 일부 주에서는 중앙 정부의 방침과는 별개로 미얀마에서 인도로 탈출해온 로힝야족 난민들을 수용하기도 했다. # 사실 인도는 정치적으로도 연방제를 채택하고 있어 국방, 외교를 제외한 행정주의 자치권이 어느 정도 보장되어있긴 하다.[56] 미얀마 버간 왕조가 태국 일대를 지배하던 아유타야 왕국을 침략, 멸망시켰을 정도로 두 나라의 관계는 아주 사이가 나쁘다. 아예 두 나라의 국경 지역도 폐쇄되어 있어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러 온 외국인 관광객들도 태국에서 미얀마로 넘어갈 때 비행기를 타고 넘어갈 정도.[57] 실제로 미얀마를 비롯해 동남아시아의 불교 국가인 캄보디아라오스 등은 숙적인 태국을 견제하기 위해 태국과 대립 관계에 있는 말레이시아와 긴밀한 무역, 국방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게다가 말레이시아는 캄보디아와 태국의 국경 분쟁 지역인 쁘레아 비히어 사원도 캄보디아 영토로 인정하며 캄보디아를 편 들어주기도 했었다.[58] 동티모르 본토 지역과 월경지인 외쿠시 암베누 지역까지 합하면 영토 면적이 14,609km² 정도밖에 안되는 소국이다. 미얀마의 옆나라인 방글라데시보다 영토 면적이 더 좁은 셈이다.[59] 게다가 캄보디아와 베트남 역시 자국 내의 무슬림계 소수민족인 참족들을 탄압, 학살한 적이 있었다. 반대로 싱가포르는 사실상 말레이시아의 말레이족 무슬림들에게서 쫓겨난 수준의 강제독립으로 생겨난 나라인지라 역시 이슬람에 대해 그다지 좋은 감정은 없다.[60] 미얀마 인기 여배우의 페이스북 계정을 해킹한 집단은 미얀마의 극우단체인 마바타(민족과 종교 수호 위원회)로 추정된다.[61] 자칭 미얀마의 빈 라덴이라고 주장하며 공공연하게 무슬림 말살을 외치고 다니는 불교 승려로, 90년대에 반이슬람 선동 및 폭동 주도 혐의로 징역 8년을 산 적이 있다.[62] 힌두교기독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며, 각각에 대해서는 스리랑카 내전 문서와 크리스티아노포비아 문서 참고.[63] 물론 인도 인구의 80%가 힌두교이기에 높아봐야 10%라서 인도 내에서는 소수 집단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이 정도 인구가 벌이는 반발 규모는 장난이 아니다. 미국 유태인 언론인인 조지 프리드먼이 아랍권은 왜 아랍에서 이스라엘이 벌이는 무슬림 차별과 학살에 으르렁거리며 인도에서는 그 규모가 다름에도 이건 무시하냐고 사설에서 불편해야 한 적도 있다.[64] 사실 둘 중 하나 선택해야 하는 과정에서 지도자 하리 싱이 힌두교도였기에 힌두 국가인 인도를 선택해 버렸기 때문. 인도 입장에서는 우리한테 붙겠다고 했는데 왜 그러냐? 하는 것이다. 특히 카슈미르가 큰 땅덩어리(넓이가 한반도 비슷하다.)이기도 하니. 이 주장에 파키스탄은 반대로 힌두교 다수 지역이지만 무슬림 지도자가 있었던 비슷한 크기의 하이데라바드가 독립국으로 남기를 선택하였으나 인도의 침공을 받은 케이스를 들며 내로남불이라 반론한다.[65] 파키스탄 문서에 있는 파키스탄의 현실을 보면 인도보다 나을게 하나도 없는 막장국가다. 그래서 카슈미르에서는 인도와 파키스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카슈미르 공화국을 건설하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세속주의를 추구하는 카슈미르인들은 파키스탄이 종교에 대해서 관대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에 파키스탄 편입을 반대한다.[66] 하지만 인도는 이웃나라 파키스탄을 제외한 기타 이슬람권 국가들과는 사이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편이라서, 파키스탄을 제외한 다른 나머지 이슬람권 국가들(아랍에미리트, 요르단, 카타르, 이집트, 이라크, 이란, 오만, 쿠웨이트, 튀니지, 인도네시아, 기타등등)과는 적대감정이 거의 없거나 덜한 편이다. 그나마 있다면 파키스탄을 지지하고 있는 튀르키예 정도.[67] 라고는 하지만 무슬림 지식인과 엘리트들이 대부분 파키스탄방글라데시로 빠져나가고 이사 할 돈도 빽도 없는 가난한 무슬림만 대부분 인도에 남은 탓도 있다.[68] 이외에도 장사를 하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다.[69] 특히 힌두교 극우단체들이 소고기 파는 무슬림들에게 폭력을 쓰고 고문하는 사례까지 있다.[70] 인도에서 제약회사로 유명하다[71] 천연 제약과 샴푸로 유명하다.[72] 단 극우단체들이 폭동을 일으켜 무슬림이나 기독교인, 시크교도를 학살하거나 잔혹행위를 하는것까지 인도 정부가 눈감아주는것은 절대 아니라서 이때는 가차없이 경찰을 투입해서 폭동을 진압하고 구속하며 처벌한다. 오릿사 주만 해도 극우단체들의 폭동 때 기독교인에 대한 학살이 심각해지자 정부가 경찰을 대규모로 투입해 진압하고 폭동을 일으킨 극우단체 회원들을 전부 구속했다. 주 총리 역시 정부에서 책임을 물어 파면하고 교체시켰다.[73] 하필이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국가가 바로 파키스탄이다. 자세한건 파키스탄-팔레스타인 관계문서 참조.[74] 태국은 군복무제도가 있지만 승려로 군복무기한 동안 있게하는 제도가 있는데 이러다보니 승려복무제도를 없앤다는 반발까지 나왔다.[75] 지배에 순순히 응했다는 서술이 있었으나 당연히 그랬을리 없다. 애초에 19세기부터 스페인이 급속으로 쇠락하면서 반격을 꾸준히 해왔다. 스페인이 처음 식민지배 했을때는 무기가 워낙 우수하기도 했고 그당시 워낙 강대국이라서 강하게 눌려있을수 밖에 없었고 이후 스페인이 쇠약해진 후에도 스페인은 쿠바처럼 꿀맛 같은 요충지인 필리핀을 놓아주질 않았고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같은 기독교도라고 스페인이나 미국이 같이 우대한 것도 아니었다. 필리핀이 독립한 것도 스페인계 혼혈로서 부유층인 현재도 필리핀 기득권인 이들이 스페인에게 하등 계층이라고 무시(이들은 대다수 필리핀인들을 하등하게 보고 자신들이 잘난 스페인인이라고 자부했는데 정작 스페인 측은 같은 것들이 뭐냐?라고 무시했다.)당하자 울컥하여 독립을 추구한 것도 유명한 사실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라 당시 미국 대통령윌리엄 매킨리가 기독교도가 많은 필리핀으로 쳐들어가버리곤 "꿈에 하나님이 나와 올바른 신앙을 심으라고 하셨다."라는 개소리를 하던 핑계부터 알만하다. 대다수는 무슬림 피해자가 컸으나 필리핀 가톨릭교도들도 미군 침공으로 수만여명이 죽었던 걸 봐도 절대로 이들이 미국의 우대를 받은 게 아니다.[76] 근데 필리핀 입장에선 독립시켜주었다가는 다른 섬들도 독립하겠다고 난리칠것이 분명해서 독립시켜줄수가 없다. 뭐, 이 논리라면 인도네시아나 인도, 중국 등등 많은 나라에서 똑같이 대하는 것이지만.[77] 왜 그런가하면 MILF 자체가 필리핀 무슬림 단체로서 가장 세력이 컸기 때문이다. 수십여년동안 막대한 군비를 들여 많은 전사자를 내면서도 굴복하지 않은 이들이 알아서 협상에 나서자고 하자 오죽하면 당시 필리핀 여당이 좋아라 수십여년동안 굴복하지 않던 MILF가 협상에 나선 것도 이긴 것이라고 자랑할 정도. 과반수 지지를 받아 압도적인 MILF와 달리 아부 사야프나 다른 극단 조직은 민다나오 무슬림들에게 큰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78] 인구의 대부분이 무슬림인 국가가 '이슬람화된다'는 것은, 인구 구성의 대부분이 무슬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수단, 브루나이처럼 이슬람 근본•극단주의자들이 사회 및 정치적 주도권을 잡게 되는 것 더 나아가 이슬람 근본주의를 기반으로 한 교권주의 체제로 개편되는 것을 의미한다.[79] 다시 말하자면 에르도안 정권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이 에르도안 정권 이전에 비하면 손쉽게 활동할 수 있게 된 시기이다.[80] 사실 에르도안 정권 이전의 튀르키예의 세속주의의 경우 여러 종교가 공존하고, 종교인들이 사회적 영향력을 어느정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과 비교해 볼때, 지나치게 과한 감이 없지 않다. 아타튀르크 집권 당시에서부터 세속주의는 튀르키예 공화국의 근간이지만, 공화국 정체를 거부하는 교단들만 조지고 그 자리에 튀르크 민족주의 개념을 도입한 아타튀르크때와는 달리 그의 후임인 이스멧 이뇌뉘와 이후의 정권들은 위로부터의 개혁을 가속화하기 위해, 그리고 지방에 대한 확실한 장악을 목적으로 아랍어로 된 예배와 쿠란을 금지하고 히잡을 금지하고, 위반자에 대해서는 국가반역자 수준으로 철저하게 탄압했었다. 사회학 이론을 들자면 중앙과 변두리의 갈등 사례라 할 수 있는데, 2010년대에 들어와서도 튀르키예 내에는 두개의 나라가 존재한다 싶을 정도로 한쪽은 극단적으로 세속적이고, 한쪽은 극단적으로 종교적인 양 측 사이에 왔다갔다하는 중간층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동안은 억압적인 세속주의에 질린 중간층이 정의개발당에 투표하는게 현재 에르도안이 장기집권하는 비결이다.[81] 부연하자면, 오스만 제국 전기에는 아예 개종하지 않은 베이, 파샤들도 많았고, 오스만 제국 후기에도 지방, 특히 기독교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발칸, 그리스, 레반트 지방의 경우 개종하지 않은 토착 호족이나 세력자들도 많았다. 심지어 이들은 재력이나 군사력을 바탕으로 중앙정계에 간접적인 영향력도 행사할 수 있었다. 당장 오스만 제국의 멸망 직전인 1908년에만 해도 제국 의회 내 비무슬림 의석이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현대적 이슬람 극단주의의 시초는 오스만의 타락한 이슬람을 몰아내자는 것이다.[82] 그렇다고 종교 탄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종교와 무관한 학살이 더 많았을 뿐이다.[83] 여기에 대해 흥미있는 농담이 있다. 튀르키예인들 사이에서 도는 농담으로, 구약 신약에 이르기까지 모든 예언자들은 유대인인데 유독 무함마드아랍인인 이유가, "예언자는 진정으로 노답인 사회에서 나타나는데 유대인들만큼이나 아랍인들도 노답이니까" 라고 한다.[84] 2000년대에도 한국에서도 이슬람공포증이 있었지만 2010년대에 비해 덜 했으며 2006년에 호주 이슬람 성직자가 성범죄가 여성의 노출 탓이라고 말한 것에 동의한 안티페미니스트가 몇몇 있었다.해당기사 [85] 여담으로 한국에 있는 무슬림이 다수가 터키, 중앙아시아 국가 출신이듯이 일본의 경우 무슬림 다수가 인도네시아 사람들이다. 이들 모두 사고를 치는 것과는 거리가 먼 세속국가여서 얼마 전까지 대이슬람 인식 문제나 마찰이 적었던 것이다.[86] 2004년 다와툴 이슬람 코리아라는 방글라데시인 500여명 규모의 종교 모임을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반한 테러단체로 오인하여 공개한 바 있다. 경찰 수사 결과 어떤 테러 연관 증거도 밝혀지지 않았으며, 해당 단체 방글라데시인과 방글라데시 대사가 항의하였다.[87] 1986년 김포공항 폭탄 테러 사건도 아랍계 테러리스트가 저지른 것이다. 그 목적과 동기는 종교적인 것이 아니었지만.[88] 한국에 있는 외국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이슬람권 국가는 2015년 6월 기준으로 인도네시아(39,303)-우즈베키스탄(35,537)-방글라데시(11,749)-파키스탄(9,124)-키르기스스탄(2,721)-카자흐스탄(2,409)-말레이시아(2,146) 순이고, 압도적으로 다수인 인도네시아와 우즈베키스탄은 세속적이다. 다만 인도네시아에서도 민주화 이후 날뛰는 강경 무슬림들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고, 우즈베키스탄도 IMU 같은 원리주의 단체들을 세속적 독재정권으로 억누르고 있는 형편이다. 그리고 근본주의적이라고 평가되는 파키스탄마저도 동부 대도시 지역들은 세속정당이 상당한 지지를 받으면서 여성의 인권이 어느정도 보장이 되는등 세속성향이 강한편이다.[89] 정확히는 알누스라 전선 지지자이지만 IS 지지자로 와전되었다.[90] 이것은 최초에 문제 제기를 한 사람은 다른 종교를 믿는 교인일 수도 있었겠지만, 근본적으로 종교 문제라기보다는 형평성 문제에서 나온 이의제기로 일반화할 수 있다. 이를테면 기숙사에 몇 개 있는 휴게실 중 하나를 이슬람교나 기독교 학생을 위한 기도실, 예배실로 제공했다고 하자. 이것이 학생 공동체의 압도적인 찬성 의결로 이루어진 배려라면 어쨌든 넘어갈 일이지만, 학교측의 임의적인 공간 배정이라면 그 교와 무관한 학생쪽에서는 부당한 처사로 여겨질 수 있다. 마치 비공식 루트로 동아리 공간을 얻은 것이나 같으니까. 종교라는 것은 그 교의 신앙인에게만 의미를 가질 뿐이지 바깥 사람에게는 취미활동에 지나지 않는다.[여담이지만] 정작 한국이슬람중앙회에선 할랄 방식은 기계에 녹음문 틀어놓고 목썰고 피빼는 자동화 방식을 사용해서 이맘이 대규모로 필요가 없다.[91] 함정은 정작 이슬람권 수출로 먹고사는 태국,뉴질랜드, 브라질등은 기독교가 다수인 국가이며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무슬림들은 할랄이 없는 경우에는 기독교인이나 유대인이 도축한 고기를 차선책으로 먹는게 가능해서 한국인 무슬림들은 닭고기를 먹을때 브라질산 닭고기는 문제없이 섭취하는 경우가 많다[92] 당연히 밥먹는다고 개종하는 게 아니라 개종하는 척하고 물질적으로 받아 챙기고 비웃는 사례가 대다수이다. <개독교를 위한 변명>이란 책자에서 목사이자 선교사인 지은이가 방글라데시에서 실제로 아멘~이러고 기도하며 먹을 것이나 생필품을 한국 선교사들에게 받아 집으로 오곤 피식 웃으며 알라후 아크바르~라고 비웃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참고로 지은이는 이런 선교에 대하여 욕먹을 짓이라고 비난한다.[93] 김선일 참수 사건 겨우 몇 달전에 순복음교회 계열 신문인 국민일보에 컬럼으로 아랍이나 이슬람권에 닥치고 선교하는 한국 기독교를 비난하며 이대로 가면 모든 한국인이 아랍에서 목이 날아갈 참극이 벌어진다. 국민일보에 얼마 전 이라크 선교 기회라고 어느 목사 글이 올라왔는데 "위험하다. 지금 이라크는 그야말로 지옥이라고 할 정도이다. 같은 무슬림도 종파 분쟁으로 마구 죽어나가고 가톨릭과 정교회 등 현지 기독교와 온갖 소수 종교도 마구 죽어나간다. 그런데 선교라고? 자살하러 가자고 하는 소리다!"라고 했는데 정말로 몇 달도 안 가 들어맞았다.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 때도 탈레반이 악랄하고 비난받아야 하지만, 왜 그런 곳에 가지 말라고 해도 가서 선교라고 하고 죽으면 순교라고 포장하는 짓이 정말 한국 기독교를 위한 길이라고 보는가?" 라고 맹렬하게 비난했다.[94] 사람에 따라서는 서유럽 이상이라고 보는 경우도 많다. 서유럽의 경우 그래도 종교정당이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준은 되지만 동아시아에서는 그조차도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95] 심할 경우 종교 그 자체를 비이성적인 행위로 간주하고 배척하는 이들도 있다.[96] 신무신론 입장에서 개신교는 그냥 광신도지만 이슬람은 테러하는 광신도이며, 개신교 입장에서도 무종교가 그냥 불신자라면 이슬람은 테러하는 불신자다. 당연히 나중에 서로 싸울때 싸우더라도 일단 공동의 적인 이슬람은 막고 보자는 암묵적인 공감대가 형성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2018년 제주 난민 사태와 같은 사건 기사들에서 반이슬람교 성향 댓글에 대한 공격을 무종교 성향 댓글이 그 순간만큼들은 옹호해주는 광경을 매우 쉽게 볼 수 있다.[97] 재산을 지키기 위해 여성을 같은 가문 내의 사촌과 강제로 결혼시킨다. 사촌간 결혼이 허용되는 국가는 이슬람권 이외에도 많지만 대부분 '금지하지 않을 뿐 사실상 사문화'되어 있다는 점이 이슬람권과 다르다.[98] 유교, 불교, 기독교 등 대한민국에 큰 영향을 미친 철학/종교는 그 창시자들이 색욕에 빠지는 것을 매우 경계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종교 관계자라고 하면 금욕적인 사람을 우선 연상하는 경향이 있다.[99] 이슬람 문화 안에서도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는데 취처하고 형식상 같은 잠자리에 들었으나 성관계는 없었다는 주장과 무함마드의 발언에 근거하여 성관계가 있었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100] 한국을 비롯한 비이슬람 또는 비중동 지방의 국가들이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문제를 제대로 잘 알지 못하는 현상과 비슷하다.[101] 문제는 이 행위 자체가 이슬람에 대한 편견 내지는 불쾌감을 부추기는 것에 한 몫했다는 것이다. 이슬람의 종교의 자유는 보장하는 데 왜 우리는 아니냐는 게 논지. 이미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민자가 맞추는 것도 아니고, 이민자에 원주민이 맞추는 형편이라 불쾌해하는 사람들이 많다.[102] 다만 마린 르 펜은 이슬람 자체를 적대하기보다는 이민자 적대 및 이슬람 근본주의 적대에 가깝다.[103] 터키의 길 2부..문명 간의 결혼, 터키와 EU [104] '이슬람 종주국도 예외없다' 사우디 작년 이혼 급증[105] 히잡 벗기 캠페인 이란 여성에 국제 NGO 인권상 - 연합뉴스[106] 하지만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아랍인을 핍박하고 있는 이스라엘도 책임이 상당하다.[107] 프랑스 이슬람의 경우 이맘 자격제 실시 등의 방법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108] 니캅 안 쓰면 다 불신자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이런 식으로 니캅 등등 형식 관련 논쟁으로 소모적인 말다툼이 일어나는 동안에는 선교사, 왕족 등이 돈을 횡령하기 쉽기 때문이다. 문맹 퇴치 운동 반대에다 탈레반의 사상적 기원을 확립한 아불 알라 마우두디와 그 친척들이 뉴욕에서 호의호식한 사례가 레전드로 남아있다. 만화 페르세폴리스에서는 "집을 나서면서 스스로에게 '내 바지가 충분히 긴지, 베일은 잘 씌워졌는지, 화장이 너무 진한지, 나를 채찍으로 때리면 어떡할지' 걱정하는 질문을 하는 사람은 더 이상 '나의 사상의 자유는 어디 있는지, 나의 언론의 자유는 어떻게 됐는지, 내 삶은 살 만한지, 정치범들은 어떻게 된 건지'를 질문하지 않을 거라는 걸 정권은 잘 알고 있었다고 묘사하는 장면이 나온다.# 삶의 가장 사소한 부분들 중 하나인 옷 입는 부분에서 국민들에게 엄격한 통제를 가함으로써 보다 깊이있고 근원적인 질문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109] 실정법과 샤리아 법이 병행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분야별로 어느 법이 우선되는지가 실정법에 의해 정해져 있다.[110] 말레이시아 사례에서 연방 이슬람 종교부의 “K팝 아티스트들의 80% 이상이 기독교인이라며 K팝 문화가 무슬림들에게 기독교 정신과 자유주의 사상을 전파하는 위험한 문화”라는 반응에서 기독교 문화와 더불어 자유주의 문화 역시 경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111]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는 신성모독과 같은 사안 외에 자국인 비무슬림에게 샤리아 법 예외를 적용하기도 한다.[112] 물론 마키아벨리즘에 따른 결정들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도덕적 비판을 받고 있다.[113] IS는 수니파 극단주의로 원리주의 국가의 대표격인 사우디마저 비판한다.[114] 현재 많은 이슬람계 난민을 받아들인 유럽의 경우, 이슬람 난민들은 타 종교및 문화를 가진 기존의 유럽국가 주민들과 서로 융화하며 존중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들끼리 모여 살며 주변 유럽인들과 교류하지 않는 배타적인 삶을 살고 있어 이슬람인들의 거주지역은 게토(Getto)화 되버린다. 물론 차이나 타운이나 코리아 타운같이 같은 문화권의 사람들이 모여사는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들은 문화적 교류마저 차단하고 서로를 감시하며 배타적 성향을 고수하여 국가 내 공존과 융화를 저해한다는데 있다.[115] 당장에 현실의 이슬람권도 마찬가지로 사우디와 이란이 왜 사이가 나쁜지 이슬람 테러단체들도 같은 이슬람이라고 마냥 우호적이지만은 않은지 그 근본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116] 무슬림 국가들의 경우 테러리즘 추종 극단주의자들을 핀셋으로 골라내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장치는 갖추고 있다. 예를 들면 사적인 일로 타크피르(다른 사람을 함부로 카피르(거짓된 불신자), 무나픽(무슬림 사칭하는 위선자) 같은 말로 지칭하는 행동 등)를 행하거나 아니면 길거리에서 지옥 드립하면서 선교하는 경우 위험 인물로 감옥에 수감시키거나 집중 관리 대상으로 삼는데 서구 국가에서는 2015년 파리 테러 이전까지는 이런 쪽에서 대처가 다소 미비했다.[117] 뭐, 굳이 말하자면 나만 이슬람 교리에 입각해 술 안 먹고 돼지고기 안 먹는다면 이슬람 근본주의자일지언정 극단주의는 아니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남에게도 강요하면 극단주의라고 할 수는 있다. 어차피 나만 안 한다면 그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서방 국가에서는 굳이 그걸 말릴 이유도 명분도 없고 오히려 존중받을 권리가 있지만 남에게 강요하는건 존중받을 수 없다.[118] 항상 확실하고 동일한 반응을 보이는 자연과학과 달리, 사회과학의 영역이면 인과관계의 입증은 훨씬 더 어렵다.[119] 브리짓 가브리엘의 '평화로운 다수는 상관없습니다' 란 발언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반이슬람 정서를 가진 사람들은 이 발언을 높이 평가하지만, 잘 따져보면 공격적인 소수가 있는 집단이 이슬람교 뿐인건 아니기 때문이다.[120]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슬람이 전근대적이지 않다는 게 아니라 개선 가능성을 아예 배제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사실 "너는 무식하고 개선 가능성이 없으니 내가 도와주는대로만 따라야한다"류의 이런 주장은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 민족들을 폄하해 세뇌시키고 지배하기 위해 열강측에서 흔히 즐겨써온 레파토리다. 지금은 제국주의 시대가 아니고, 사람들의 교육수준이 향상되었으며, 이슬람도 단순히 한두개 나라 규모가 아닌 서방이 위협감을 느낄 정도로 거대한 영토와 인구를 갖춘 세력이기에 이런 편견을 가지고 선동해봤자 결코 굴복시키거나 지배할 수 없다는것이다.[121] 이슬람을 비하하는 멸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