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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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제처장 (1948~1954)
법무부 법제실장 (1954~1960)

초대
유진오
제2대
신태익
제2대
신태익
제3대
강명옥
국무원사무처 법제국장 (1960~1961)
내각사무처 법제국장 (1961)


초대
김도창
초대
현명섭





대한민국 제35대 법제처장
이완규
李完揆 | Lee Wan-kyu

파일:이완규법제처장.jpg}}}
출생
1961년 2월 4일 (63세)
인천광역시
현직
법제처장
재임기간
제35대 법제처장
2022년 5월 13일 ~ 현직
학력
송도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 석사[1] · 박사[2])
병역
대한민국 육군 상병 의병전역
소속 정당

[[무소속|
무소속
]]
[3]
경력
제32회 사법시험 합격
제23기 사법연수원 수료
서울남부지방검찰청 형사4부장검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부부장검사
대전지방검찰청 서산지청
청주지방검찰청 차장검사
서울북부지방검찰청 차장검사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
제35대 법제처장 (윤석열 정부)
1. 개요
2. 경력
3. 생애
3.1. 검사 이전의 시절
3.2. 검사 시절
3.3. 퇴직 이후
3.4. 법제처장
4. 여담
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검사 출신의 변호사. 현직 법제처장.


2. 경력[편집]




3. 생애[편집]



3.1. 검사 이전의 시절[편집]


1961년 2월 4일 경기도 인천시(현 인천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송도고등학교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0년 제3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23기로 수료하였다.


3.2. 검사 시절[편집]


대검찰청 검찰연구원으로 근무할 때 검사와의 대화에 참여했다. 그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게 "법무부 장관이 갖고 있는 이 제청권, 실질적인 인사권을 가지고 정치권의 영향력이 수없이 저희 검찰에 들어왔다"며 "검찰 전체 구성원이 수긍할 수 있는, 또 다 납득하고 또 따를 수 있는 그런 인사를 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이익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검찰 인사에 문제제기를 한 바 있다.

2005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검 형사1과장, 서울남부지검 형사4부장, 서울중앙지검 부부장검사, 대전지검 서산지청장, 청주지검·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 인천지검 부천지청장을 지냈고 2017년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한 뒤 변호사로 개업했다.


3.3. 퇴직 이후[편집]


윤석열 직무정지 사건 때 윤석열 검찰총장의 변호인을 맡으면서 화제가 되었다. 왜냐하면 이완규와 윤석열은 평소에 절친한 관계였음에도, 2017년 5월 윤석열의 서울중앙지검장 지명 당시에는 '법무부장관이 공석인 상황에서 장관의 제청없는 대통령의 중앙지검장 임명은 법과 제도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면서, 윤 총장의 임명을 반대했었기 때문. 윤 총장이 임명되자 결국 이완규는 "청와대 주도로 전례없는 인사가 행해졌다"는 말을 남기고 검사장 승진까지 3개월을 남기고 검찰을 떠났고, 이 때문에 이완규와 윤석열의 사이는 멀어졌을 것이라는 관측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예상과는 달리, 이번에는 반대로 윤석열이 직무정지 등 고초를 당하자 "검찰총장의 목숨이 걸려있지 않느냐"라면서 자신의 동기[4]를 돕기 위해 전력을 다해 변호했지만 패소하였다.

이후에도 윤석열이 사퇴하고 대선 출마 후 공식 대선 캠프를 출범시키자 본격적으로 대선캠프에 합류하여 손경식 변호사와 더불어 공식 변호인로서 네거티브 공세 대응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캠프 관계자에 따르면 공식적인 합류가 아닌 개인적인 법률 자문이라고 한다.


3.4. 법제처장[편집]


파일:윤석열 사단 인사.jpg
2022년 5월 13일, 윤석열 대통령이 법제처장에 임명했다.


4. 여담[편집]


  • 검찰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가 담긴 검사님의 속사정이라는 책에 따르면 의외로 이완규 법제처장은 서울대 재학시절에 운동권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강제징집되어 군에 입대했고 모 부대 행정병으로 일을 하고 있었으나 보안사에서 이걸 괘씸하게 여겨서 더 힘든 부대로 전출을 갔고, 끝내 훈련 중에 다쳐서 의병제대를 했다고 한다.[5]

5.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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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석사 학위 논문 : 犯罪少年 處理節次에 관한 硏究 : 소위 檢事先決主義를 中心으로(범죄소년 처리절차에 관한 연구 : 소위 검사선결주의를 중심으로).[2] 박사 학위 논문 : 검사의 지위에 관한 연구 : 형사사법체계와의 관련성을 중심으로.[3] 원 소속정당은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이었으나 법제처장에 임명되어 탈당.
[4] 서울법대 79학번 동기이자 사법연수원 23기 동기이다. 단, 사법시험은 이완규가 1년 빨리 합격했다.[5] 물론 이 책의 특성상 이완규 법제처장(연수원 23기)이 그리 긍정적으로 묘사된 것은 아니다. 과거에 후배들에게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송을 받았으나, 그런 인물이 검사가 되어 검찰조직을 보호하는 인물이 되었다는, 즉 곡학아세의 예로 묘사되었다. 비슷한 예로 묘사되는 인물이 똑같이 대학 시절에 운동권으로 살다가 검사장까지 오른 윤대진 전 검사장(연수원 25기), 임관혁 검사장(연수원 26기)이다. 둘 다 이 책이 나오던 시절에는 부장검사였으나, 결국 검사장까지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