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규
덤프버전 :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검사 출신의 변호사. 현직 법제처장.
2. 경력[편집]
- 1979.2. 송도고등학교 졸업 (59회)
- 1986.2.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법학 학사
- 1988.2. 서울대학교 대학원 졸업, 법학 석사
- 1990.10. 제32회 사법시험 합격
- 1994.2. 사법연수원 수료 (23기)
- 1994.2.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 1996.2. 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 검사
- 1997.8. 전주지방검찰청 검사
- 1999.8. 서울지방검찰청 서부지청 검사
- 2003.2. 대검찰청 검찰연구관
- 2005.2. 서울대학교 대학원 졸업, 법학 박사
- 2005.8. 광주지방검찰청 검사
- 2006.2. 광주지방검찰청 부부장검사
- 2007.2.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 2008.3.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부부장검사
- 2010.2. 제44대 청주지방검찰청 제천지청장
- 2010.8. 대검찰청 형사부 형사1과장
- 2011.8. 서울남부지방검찰청 형사4부장
- 2012.7. 법무연수원 교수
- 2013.4. 제52대 대전지방검찰청 서산지청장
- 2014.1. 청주지방검찰청 차장검사
- 2015.2. 서울북부지방검찰청 차장검사
- 2016.1. 제23대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장
- 2017.9. 법무법인 동원 구성변호사
- 2022.5. ~ 제35대 법제처장 (윤석열 정부)
3. 생애[편집]
3.1. 검사 이전의 시절[편집]
1961년 2월 4일 경기도 인천시(현 인천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송도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8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0년 제32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을 23기로 수료하였다.
3.2. 검사 시절[편집]
대검찰청 검찰연구원으로 근무할 때 검사와의 대화에 참여했다. 그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게 "법무부 장관이 갖고 있는 이 제청권, 실질적인 인사권을 가지고 정치권의 영향력이 수없이 저희 검찰에 들어왔다"며 "검찰 전체 구성원이 수긍할 수 있는, 또 다 납득하고 또 따를 수 있는 그런 인사를 하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이익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검찰 인사에 문제제기를 한 바 있다.
2005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검 형사1과장, 서울남부지검 형사4부장, 서울중앙지검 부부장검사, 대전지검 서산지청장, 청주지검·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 인천지검 부천지청장을 지냈고 2017년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한 뒤 변호사로 개업했다.
3.3. 퇴직 이후[편집]
윤석열 직무정지 사건 때 윤석열 검찰총장의 변호인을 맡으면서 화제가 되었다. 왜냐하면 이완규와 윤석열은 평소에 절친한 관계였음에도, 2017년 5월 윤석열의 서울중앙지검장 지명 당시에는 '법무부장관이 공석인 상황에서 장관의 제청없는 대통령의 중앙지검장 임명은 법과 제도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면서, 윤 총장의 임명을 반대했었기 때문. 윤 총장이 임명되자 결국 이완규는 "청와대 주도로 전례없는 인사가 행해졌다"는 말을 남기고 검사장 승진까지 3개월을 남기고 검찰을 떠났고, 이 때문에 이완규와 윤석열의 사이는 멀어졌을 것이라는 관측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예상과는 달리, 이번에는 반대로 윤석열이 직무정지 등 고초를 당하자 "검찰총장의 목숨이 걸려있지 않느냐"라면서 자신의 동기[4] 를 돕기 위해 전력을 다해 변호했지만 패소하였다.
이후에도 윤석열이 사퇴하고 대선 출마 후 공식 대선 캠프를 출범시키자 본격적으로 대선캠프에 합류하여 손경식 변호사와 더불어 공식 변호인로서 네거티브 공세 대응을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캠프 관계자에 따르면 공식적인 합류가 아닌 개인적인 법률 자문이라고 한다.
3.4. 법제처장[편집]
2022년 5월 13일, 윤석열 대통령이 법제처장에 임명했다.
4. 여담[편집]
- 검찰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가 담긴 검사님의 속사정이라는 책에 따르면 의외로 이완규 법제처장은 서울대 재학시절에 운동권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강제징집되어 군에 입대했고 모 부대 행정병으로 일을 하고 있었으나 보안사에서 이걸 괘씸하게 여겨서 더 힘든 부대로 전출을 갔고, 끝내 훈련 중에 다쳐서 의병제대를 했다고 한다.[5]
5. 둘러보기[편집]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4 07:58:34에 나무위키 이완규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석사 학위 논문 : 犯罪少年 處理節次에 관한 硏究 : 소위 檢事先決主義를 中心으로(범죄소년 처리절차에 관한 연구 : 소위 검사선결주의를 중심으로).[2] 박사 학위 논문 : 검사의 지위에 관한 연구 : 형사사법체계와의 관련성을 중심으로.[3] 원 소속정당은
이었으나 법제처장에 임명되어 탈당.[4] 서울법대 79학번 동기이자 사법연수원 23기 동기이다. 단, 사법시험은 이완규가 1년 빨리 합격했다.[5] 물론 이 책의 특성상 이완규 법제처장(연수원 23기)이 그리 긍정적으로 묘사된 것은 아니다. 과거에 후배들에게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송을 받았으나, 그런 인물이 검사가 되어 검찰조직을 보호하는 인물이 되었다는, 즉 곡학아세의 예로 묘사되었다. 비슷한 예로 묘사되는 인물이 똑같이 대학 시절에 운동권으로 살다가 검사장까지 오른 윤대진 전 검사장(연수원 25기), 임관혁 검사장(연수원 26기)이다. 둘 다 이 책이 나오던 시절에는 부장검사였으나, 결국 검사장까지 올랐다.
이었으나 법제처장에 임명되어 탈당.[4] 서울법대 79학번 동기이자 사법연수원 23기 동기이다. 단, 사법시험은 이완규가 1년 빨리 합격했다.[5] 물론 이 책의 특성상 이완규 법제처장(연수원 23기)이 그리 긍정적으로 묘사된 것은 아니다. 과거에 후배들에게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송을 받았으나, 그런 인물이 검사가 되어 검찰조직을 보호하는 인물이 되었다는, 즉 곡학아세의 예로 묘사되었다. 비슷한 예로 묘사되는 인물이 똑같이 대학 시절에 운동권으로 살다가 검사장까지 오른 윤대진 전 검사장(연수원 25기), 임관혁 검사장(연수원 26기)이다. 둘 다 이 책이 나오던 시절에는 부장검사였으나, 결국 검사장까지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