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래

덤프버전 :


1 최영은 · 2 황재원 · 3 안창민 · 5 장성원 · 6 홍정운 · 7 김진혁 · 9 에드가 · 11 세징야

C
· 13 벨톨라 · 14 박세진
15 이원우 · 16 전용준 · 17 고재현 · 18 케이타 · 19 김영준 · 20 김강산 · 21 오승훈

VC
· 25 서도협
27 김동현 · 28 최민기 · 29 박재현 · 30 박용희 · 31 한태희 · 33 홍철 · 34 손승우 · 35 윤태민 · 36 김희승
37 이종훈 · 38 배수민 · 39 박재경 · 40 신한결 · 42 정윤서 · 43 유지운 · 44 김리관 · 51 한지율 · 74 이용래
88 이준희 · 99 바셀루스 · # 권광덕 · # 박상영
{{{#fff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최원권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마철준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용발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이종현
* 본 문서는 간소화한 것입니다. 스쿼드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여기를 참고해 주세요.
* 타 구단으로 임대 간 선수는 제외했습니다.




이용래의 역임 직책





이용래의 수상 이력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베스트팀
파일:K리그2 로고.svg







대구 FC No. 74
이용래
李容來 | Lee Yong-Rae

출생
1986년 4월 17일 (38세)
대전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75cm, 71kg
직업
축구 선수 (중앙 미드필더)
축구 코치
소속
유스
FC 메스 (2002~2003)
선수
경남 FC (2009~2010)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1~2017)
안산 경찰청 축구단 (2014~2015 / 군 복무)
치앙라이 유나이티드 FC (2018~2020)
대구 FC (2021~ )
지도자
대구 FC (2022~ / 플레잉 코치)
국가대표
17경기 (대한민국 / 2010~2011)
{{{#08162e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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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
||<table width=100%><width=30%><colbgcolor=#5fa4e3,#1c5065><colcolor=#051d39,#ffffff><tablebgcolor=#ffffff,#191919> '''학력''' ||<-2>대전중앙초등학교 {{{-2 (1993~1998)}}} [br] [[우송중학교|대전동중학교]] {{{-2 (1999)}}} [br] 대전봉산중학교 {{{-2 (2000~2001)}}} [br] [[유성생명과학고등학교]] {{{-2 (2002~2004)}}} [br] [[고려대학교]] {{{-2 (2005~2008)}}} ||
||<|6> '''등번호''' ||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 6[*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11[* 2003 핀란드 FIFA U-17 월드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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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 삼성 블루윙즈]] || 6[* 2011, 2012. 2013], 43[* 2015], 4[* 2016, 2017] ||
|| [[안산 경찰청 축구단]] || 7 ||
|| [[치앙라이 유나이티드]] || 8 ||
|| [[대구 FC]] || 74 ||


1. 개요
2. 선수 경력
3. 지도자 경력
4. 플레이 스타일
5. 기록
5.1. 우승 기록
6. 여담



1. 개요[편집]


대구 FC 소속 미드필더.

성실함이 뒷받침된 인생역전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2.1.1. 아마추어 시절[편집]


아마추어 시절에는 상당히 촉망받는 유망주로 유성생명과학고 1학년에 재학중일 때 대한축구협회의 지원을 받아서 프랑스 리그 앙의 FC 메츠로 1년동안 축구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으며[1] U-17, U-20 국가대표팀에도 콜업되고 약체로 평가받던 유성생명과학고를 우승으로 이끄는 등 고교 무대를 호령하던 선수였다.

그 활약 덕분에 당시 대학 팀들의 스카웃 대상으로 떠올랐으며 2005년에 고려대학교 축구부로 입학하게 된다. 조민국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새내기 때 전국 춘계 1,2학년 대학축구대회에서 준우승과 함께 4골로 득점왕을 타는 등 앞날이 창창해보이는 선수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성화 감독이 이끄는 청소년 대표팀에서 발목이 돌아가는 큰 부상을 입고 한 학기를 통째로 쉬며 재활을 재활을 하게 되었으며 그 후유증이 쉽게 회복되지 않으며 전체적으로 폼이 저하되었다.

그래도 2학년부터는 동기 권순형 바로 앞에서 드리블로 상대를 휘저으며 팀의 크랙으로서 맹활약하며 팀을 4년 연속[2] 전국대학축구대회 우승으로 이끈 주역이었다.

다만 졸업시즌인 2008년도에 K-리그스카우터들 앞에서 경기를 뛸 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으며, 4학년 때 보여준 경기력의 저하와 2학년 때 당한 장기부상 때문에 프로 선수로서 플레이가 어렵다는 루머까지 돌 정도였다.

2.1.2. 경남 FC[편집]


결국 2009년 K리그 드래프트에서 어느 팀도 이용래를 지명하지 않았고, 경남 FC의 번외 지명에서 지명을 받아 연봉 1,200만원에[3] 경남의 유니폼을 입게 된다. 그동안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수였는데 어느 팀도 자신을 드래프트하지 않자 축구에 대한 회의감이 심하여 방황을 하기도 하였다고 할 정도.

그러나 당시 경남 FC의 감독은 유망주 육성에 관심이 많아서 일명 '조광래 유치원'을 이끄는 '컴퓨터 링커' 조광래 감독이었고, 2009시즌을 앞두고 시행한 동계훈련에서 조광래 감독의 눈에 띄어 시즌 초반부터 기회를 부여받았다. 데뷔전부터 좋은 움직임을 보이더니 데뷔 시즌인 2009시즌에 30경기를 출장하며 6골 6도움을 기록하여 경남 유치원의 확실한 주전멤버로 도약하였고, 이 시즌의 활약으로 각 팀들이 경쟁적으로 높은 주급을 제시하며 이용래를 이적시키려 시도하였다.[4]

그러나 이용래가 타 팀의 이적을 거절하고 '좀더 많은 주전 경험을 가질 수 있는 경남에 남겠다'라고 선언하였고, 경남 FC도 이에 화답하며 연봉을 큰 폭으로 상승시켜주었다.

2010시즌에는 새로운 중원의 파트너로 2010시즌 드래프트를 통해 새로이 입단한 윤빛가람을 만나게 되면서 두 선수가 다같이 물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10시즌에도 32경기 4골 1도움을 기록하며 최고의 전성기를 보내게 된다.


2.1.3. 수원 삼성 블루윙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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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즌 종료 후인 2010년 12월에 이적료 6억원, 계약기간 3년에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하게 된다. 이 당시 수원의 중앙 미드필더진은 이름값에 비해서 실속이 딸리는 미드필더진이었기에[5] 수원 팬들은 '어이쿠 이런 어리고 좋은 선수를 저렴하게 사다니 경사로세'를 외치던 분위기였다.

2011년에는 수원 소속으로 데뷔하여 오장은과 함께 수원의 중원을 형성하고 있다. 다만 이전의 경남 FC 시절의 경우에는 김태욱 선수와 같이 뒤에서 궂은 일을 해 주는 수비력 좋은 미드필더가 보조를 해준 반면, 수원에서는 오장은과 이용래 모두 우수한 공격력에 비해 수비력이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처럼 썩 좋은 편이 아닌지라 수원의 미들진이 가끔 상대팀의 거친 미드필더진에게 심하게 쓸려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있다.

2012년 여름에 중동 클럽의 오퍼를 받고 이적을 시도했으나, 메디컬 테스트에서 심장 이상을 지적받고 불합격했다. 이후 수원에 남았으나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시즌 아웃. 2013년 5월까지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가 복귀를 했다. 이후로 오장은과 콤비를 맞추며 괜찮은 활약을 펼치고 시즌이 끝난 후 안산 경찰청에 입대하였다.

2015년 9월 25일 전역 후 원 소속팀 수원으로 복귀하였으나, 이전에 당한 십자인대 부상으로 인해 2015년 시즌엔 뛸 수 없었다.

2016년 스페인 전지훈련에서 있었던 친선경기에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2016시즌 전반기 내내 부상 후유증으로 제대로 경기를 뛰지 못했다. 상하이 상강과의 챔피언스리그 마지막 경기에서는 선발 출전했다가 둔한 움직임으로 전반에 교체되기도. 후반기들어 이종성과 짝을 이루어 중앙미드필더로 연속 출장을 하고있지만 경기력은 상당히 부진한 편. 확실히 부상 기간동안 스피드와 체력이 많이 떨어져 수비형 미드필더에게 가장 필요한 활동량이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수비형 미드필더가 부진하니 수원 수비진에 과부하가 걸리는건 당연지사.

그래도 2017년에는 꾸준히 출장 기회를 받으면서 그동안의 기나긴 부진을 조금씩 만회하는 중, 전북과의 32라운드 홈 경기에선 비록 전반 뿐이었지만, 국대 시절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고, 35라운드 슈퍼매치에서 2011년 입단 후 처음으로 슈퍼매치에서 골을 기록하게 된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는 그간의 고생 때문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고. #

또한 36라운드 강원 FC 전에서 역전 골을 성공시키며, 2연속 골을 성공시켰다. 이날 조나탄도 3경기 연속 득점과 더불어 득점을 기록하는 덕에 같은 선수가 연속 경기 골을 넣는 기록을 세웠다.


2.1.4. 치앙라이 유나이티드[편집]


파일:이용래태국.jpg

12월 26일 대표팀시절 조광래의 수석코치였던 알렉산드레 가마가 감독으로 있는 타이 리그 1치앙라이 유나이티드로 이적이 확정되었다. #

그리고 태국에서의 첫시즌에 리그를 제외한 FA컵, 리그컵, 슈퍼컵 국내대회 트레블이라는 기록을 세울때 큰공을 하였다. 그리고 다음시즌인 2019시즌에는 아일톤 실바 감독 지휘하에 태국내에서 최강팀이라 불리는 부리람 유나이티드를 밀어내고 팀 역사최초의 타이 리그 1우승에 큰공헌을 하였다.


2.1.5. 대구 FC[편집]


2020년 11월 30일을 끝으로 치앙라이와의 계약이 끝나고 경남 FC국가대표시절 감독이자 조광래가 현재 단장으로 있는 대구 FC에 플레잉코치 직책으로 1년 계약이 확정됐다. #


2.1.5.1. 2021 시즌[편집]

등번호 74번을 배정받았는데, 아내 생일이 7월이고 아들 생일이 4월이어서 둘을 합쳐 74번으로 정했다고 한다. #

2월 28일 수원FC와의 개막전 경기에서 후반 67분에 교체 출전하였는데 들어오자마자 중원을 장악하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6라운드 울산 현대와의 경기에서도 선발 출장하였다. 그렇게 71분내내 뛰다 교체되어 나왔다.

약 2주간의 A매치 휴식기 이후 7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도 선발로 출장하였다. 이진용과 함께 중원에서 괜찮은 활약을 하였으나, 전반 39분 포항의 역습과정을 끊는 과정에서 경고를 받았다.

11라운드 자신의 친정팀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경기에서도 선발출장 하였다. 경기내내 대구의 중원을 책임져 주었으나 후반 75분 수원의 정상빈과 볼경합 과정에서 정상빈의 발을 밟아 옐로우카드를 받아 다음경기에 경고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

12라운드 광주 FC전에서는 앞선 경기에서 받은 옐로우카드로 인해 경고누적으로 선수로써 뛰지 못하여 코칭스태프로 광주에 내려와 코치직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13라운드 수원 FC전부터 다시 선발라인업에 복귀하여 뛰고 있다.

22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의 홈경기에서도 선발출전했으나 전반 18분 몸에 이상이 생겼는지 이른시간에 츠바사와 교체되어 나왔다. 그리고 이어진 울산 현대와의 원정경기를 시작으로 약 3주간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그러다 26라운드 광주 FC와의 홈경기에서 오랜만에 교체명단에 들었다. 하지만 경기출장은 불발 되었다. 27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원정경기에서는 선발로 나와 82분가량 경기를 뛰다 조진우와 교체되어 나왔다.

29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의 원정경기에서 선발로 출장했다. 그리고 전반 26분 고영준이 소유한 볼을 뺏는과정에서 고영준의 발목을 밟아 퇴장논란등 좋지 않은 경기력을 펼치다 후반 56분 박한빈과 교체되어 나갔다.

AFC 챔피언스 리그 16강전 나고야 그램퍼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출장해 나고야의 공격을 잘 짤라내는등 좋은모습을 보여주었으나 후반 56분 부상을 당하며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팀은 부상으로 빠진 정태욱의 높이와 이용래의 미드진 밸런스가 무너져 버려 이후 3골을 연달아 먹히며 아쉽게 대회에서 탈락하게 되었다.

9월 16일에는 지난 28라운드 포항 스틸러스 원정에서 고영준의 발목을 뒤에서 밟은것으로 인해 2경기 출장정지 징계를 받았다.

그리고 2경기 출장징계가 끝난 32라운드 수원 FC와의 홈경기에서 교체명단에 복귀하였다. 그리고 후반 57분 햄스트링 부상으로 빠지는 세징야오후성을 대신해 이근호와 함께 교체되어 들어왔다. 그리고 후반 65분 수원 FC의 역습을 차단하는 과정에서 박주호에게 파울을 저질러 옐로우카드를 받으며 2차 경고누적 징계로 다음 경기에 출장정지를 당하게 되었다.

21시즌 기록은 리그와 FA컵, ACL을 합쳐 32경기 출전.


2.1.5.2. 2022 시즌[편집]

구단과 플레잉 코치 신분으로 재계약하며 잔류했다.

16라운드 성남 FC 원정 경기에서 우즈베키스탄에서 개최된 AFC U-23 아시안컵에 참가했다가 성남전 경기 전날 입국한 이진용을 대신해 오랜만에 선발명단에 들었다. 그리고 개막전 FC 서울전 처럼 이용래-라마스 조합이 속도가 느려 성남전에서도 위험하지 않겠냐라는 여론과는 다르게 전반 내내 중원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후 후반 71분 이진용과 교체되었다.

햄스트링 부상으로 한달간 빠지다 30라운드 성남 FC전에서 오랜만에 선발출장해 이진용과 함께 대구의 중원을 잘 이끌어 갔다. 이후 체력안배를 위해 후반 6분 페냐와 교체되었다.

리그 최종전 성남 FC 원정에선 전반 10분 이진용과 교체되어 들어가서 안용우의 득점을 어시스트하며 대구 입단 후 첫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22시즌 기록은 리그와 FA컵, ACL을 합쳐 36경기 1도움.


2.1.5.3. 2023 시즌[편집]

올해로 계약이 끝나며, 번호는 여전히 74번이다.

10라운드 수원 원정에서 53분에 코너킥으로 에드가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하며 시즌 첫 도움을 기록했다. 이 골이 결승골이 되면서 시즌 첫 원정승을 거뒀다.

4월 말부터 주장 세징야가 부상으로 이탈하고 부주장 오승훈은 최영은과의 경쟁에서 밀렸으며, 또 다른 부주장인 이근호가 선발 명단에서 빠질 때면 이용래가 주장 완장을 달고 선발 출전하고 있다.

15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와의 홈경기에서 선발로출전하여 55분을 소화하고 박세진과 교체되었다. 팀은 에드가의 헤더 멀티골이 터졌으나 후반 92분 홍시후에게 실점하며 2:2로 비겼다.

16라운드 FC 서울과의 홈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하여 70분을 소화하고 케이타와 교체되었다. 팀은 세징야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었다.

17라운드 전북 원정에서 선발로 출전하여 62분을 소화하고 바셀루스와 교체되었다. 팀은 송민규에게 실점하여 0:1로 패하였다.

18라운드 수원 FC와의 홈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하여 73분을 소화하고 박세진과 교체되었다. 팀은 황재원세징야의 활약으로 3:1 승리를 거두었다.

19라운드 울산 현대 원정에서 선발 출전하여 후반 51분 고재현과 교체되었다. 팀은 1:3으로 패하였다.

20라운드 수원 삼성과의 홈경기에서 선발로 출전하여 후반 56분 이근호와 교체되었다. 팀은 세징야의 동점골로 1:1 무승부를 거두었다.

21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후반 90분 박세진을 대신해 교체 투입되었다. 팀은 장성원의 결승골로 2:1 역전승을 거두었다.

22라운드 강원 FC와의 홈경기에서 후반 67분 바셀루스를 대신해 교체 투입되어 중앙 미드필더로 30분 가량을 소화했다. 비가 상당히 많이 와서 경기장이 미끄러웠으나 큰 실수 없이 대구의 중원에 힘을 보태주었다.

22라운드 중 21경기에 출전하며 이번 시즌도 많은 경기에 나서고 있다. 모든 경기 명단에서 빠지지 않았고 6라운드 FC 서울 원정을 제외하면 매경기 선발이든 교체든 출전하였다.


2.2. 국가대표 경력[편집]



2.2.1.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편집]


1 정성룡 · 2 최효진 · 3 황재원 · 4 조용형 · 5 곽태휘 · 6 이용래 · 7 박지성

C
· 8 윤빛가람
9 유병수 · 10 지동원 · 11 손흥민 · 12 이영표 · 13 구자철 · 14 이정수 · 15 홍정호 · 16 기성용
17 이청용 · 18 김보경 · 19 염기훈 · 20 김신욱 · 21 김용대 · 22 차두리 · 23 김진현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1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fff; font-size: 0.8em"
감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조광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박태하
스태프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서정원 ·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현태 · 파일:브라질 국기.svg 알렉산드레 가마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때 국가대표팀으로 자리를 옮긴 조광래 감독의 콜을 받으며 국가대표팀에 데뷔했다. 특히 아시안컵 5경기에서 김정우를 대체하는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으로 출장하며 MOM을 1회 수상하는 등 최고의 활약을 보였다. 이는 국내 축구팬들에게 이용래라는 이름을 크게 각인시키게 된다. 이 때의 활약으로 아스톤 빌라의 스카우터가 진지하게 지켜봤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실제로 이적할 리는 없으리라는 게 중론이었고[6] 실제로도 언론의 설레발로 끝나고 말았다.


2.2.2. 2011년[편집]


조광래호 시절 국가대표에 발탁되기 시작했는데, 대표팀 소집에서 빠진 적이 한 번도 없고 기성용, 구자철과 공존시키겠답시고 이용래를 수비형 미드필더에 박아놓고 무리하게 수비 부담을 지운 결과 2011년 약 60경기가 넘는 경기를 뛰는 혹사를 당하게 된다. 2011년에 대표팀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후 대표팀에 소집되지 않고 있다.


3. 지도자 경력[편집]


2020년 11월 30일 대구 FC에 플레잉코치 직책으로 영입이 되었다. 하지만 취업 사기를 당했다는 말이 나올정도로 대구에서 코치직 보다는 선수로써 거의 매경기 출장하여 맹활약을 해주었다. 이후 11라운드 수원 삼성 블루윙즈전에서 옐로우카드를 받으며 경고누적으로 다음경기에 출전이 불가능하게 되어 12라운드 광주 FC전에서 드디어 처음으로 코칭스태프 직책을 수행하게 되었다.

# 이 기사에 따르면 팀내에서 코치 역할을 하는것은 맞으나, 연맹에는 코칭 스태프로 등록하지 않았다고 한다. 엄밀히 따지면 플레잉 코치는 아닌 셈이다. 코치 등록이 되어있지 않으면 경기 중에 벤치에서 직접 지시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현재 대구에서는 경기장이 아니라 클럽 하우스와 훈련장 등지에서 코치 역할을 겸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감독 성향에 따라 직접 뛰면서 지시하는 플레잉 코치 역할을 부여하기도 하니 실제 직책 부여 여부가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긴 하다.[7]


4. 플레이 스타일[편집]


좋은 킥력과 시야, 이에 기반한 좋은 패싱 능력을 갖춘 중앙 미드필더. 데뷔 초기에는 공격형 미드필더로 뛰기도 했으나, 커리어가 진행되며 그보다는 밑으로 내려가 3선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다고 레지스타처럼 활동량이 안 좋은 것도 아니라서 아시안컵에서는 구자철이나 기성용의 파트너로 뛰며 그 둘을 받쳐주는 좋은 활동량을 보여주기도 했다. 다만 파트너를 좀 타서 수원에서는 오장은보다는 다소 밑으로 내려가서 딥라잉 플레이메이커처럼 뛰면서 평범한 활동량을 보여주고 있다.

대구에서는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강점을 온전히 살리며 중원의 핵심으로 활동중이다. 파트너는 바뀌더라도 이용래가 공수조율 뿐 만 아니라 수비 시의 빌드업 그리고 공격 전개를 위한 기점이 되는 날이 많은데, 보통 파트너가 공격 줄기를 담당하는 만큼 이용래의 보조는 필수적이다. 심지어 30대 후반의 나이에도 경기마다 상위권의 활동량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용래가 경기장에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대구의 승점이 바뀌는 현상이 일어난다. 경기 초반과 후반부에 카메라에 비춰지는 모습을 보면 취업사기로 조광래를 고소해도 할 말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서 경기장에 모든것을 쏟아붇는 핵심 자원이다. 문제라면 나이인데, 이미 30대 후반에 접어드는 나이라 언제 기량이 확 꺾여도 이상하지 않고, 대구 구단 입장에서도 노장인 이용래가 주축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 장기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아니기 때문.


5. 기록[편집]


시즌
클럽
소속 리그
리그
FA컵
대륙 대회
합계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경기
득점
도움
경기
득점
도움
2006
고려대학교
U리그
-
1
0
-
1
0
0
2009
2
0
2
0
0
2009
경남 FC
K-리그
26(4)
6(0)
4(2)
2
0
28(4)
6(0)
4(2)
2010
K리그
27(5)
4(0)
0(1)
1
0
28(5)
4(0)
0(1)
2011
수원 삼성 블루윙즈
28
0
3
3
1
10
0
0
41
1
3
2012
25
2
2
3
0
-
28
2
2
2013
K리그 클래식
20
1
1
1
0
21
1
1
2014
안산 경찰청
K리그 챌린지
33
3
3
0
0
33
3
3
2015
14
1
1
1
0
15
1
1
2016
수원 삼성 블루윙즈
K리그 클래식
13
0
0
1
0
1
0
0
15
0
0
2017
19
2
1
3
0
6
0
1
28
2
2
2021
대구 FC
K리그 1
24
0
0
1
0
7
0
0
32
0
0
2022
28
0
1
2
0
6
0
0
36
0
1
통산
257(9)
19(0)
16(3)
21
1
30[8]
0
1
308(9)
20(0)
17(3)


5.1. 우승 기록[편집]





6. 여담[편집]


  • 의외로 체력유지를 위해 황소개구리를 애용한다는 소문이 있다.

  • 절충형이라는 별명으로도 종종 불리는데, 이는 조광래호에서 주전으로 뛰던 당시 한 기사에서 조광래호와 최전성기 FC 바르셀로나의 전술 및 선수들을 비교하는 자료에서 이용래에게 "절충형"이라는 수식어를 썼기 때문. 애초에 "중앙 미드필더"나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도 아닌 "절충형"이라는 낯선 표현을 쓴 데다가 바르샤 선수 중 절충형에 해당하는 선수로 이니에스타를 선정하고 되려 이니에스타보다 공수밸런스가 잘 잡힌 차비 에르난데스를 "공격형"으로 선정하는 등 기자의 축구 지식이 의심되는 기사였는데, 이게 조광래호 특유의 만화축구와 처절한 실패와 겹쳐져서 개그짤로 남게 되고 그 중 제일 튀는 수식어가 붙은 이용래에게 덩달아 이상한 별명이 붙어버린 것.

  • 트로트 가수 영탁과 매우 닮았다. 특히 이용래 아내분도 보자마자 너무 닮아서 놀랐다고 했을 정도. 그래서 이용래에게 '올드탁'이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아이러니한건 이용래의 나이가 영탁보다 3살 적다.

  • 2021시즌 대구 FC의 플레잉 코치로 오게 되었으나 구단의 얇은 중원 스쿼드 때문에 잦은 교체 출전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6라운드 울산 현대전부터는 선발로 출전하여 팬들로 부터 취업사기를 당한게 아니냐 할정도로 뛰게 되었다. 근데 앞서 말했듯이 공식적으로는 코치로 등록되지 않은 상태라서 진짜로 취업 사기를 당했다는 농담이 있다.#

  • 상당한 노안이다. 20대부터 그 나이 또래라고는 믿기지 않는 외모를 보여준다. 대표팀의 맏형인 이용과는 동갑이고 동료이자 선배인 이근호보다 1살 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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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후 메츠와 프로 계약을 맺은 조작법 어모씨, 강진욱과는 달리 메츠의 제의를 거절하고 같은 유학생이었던 김동민과 함께 귀국하였다.[2] 2005, 2006, 2007, 2008[3] 계약기간은 1년, 연봉은 최저연봉인 1,200만원이었다. 승부조작사건 후 2000만원[4] 번외지명은 계약 기간이 1년이므로 계약이 만료된 상황이면 자유계약으로 이적이 가능하다.[5] 장기부상을 당한 이관우, 잔부상 때문에 제대로 된 폼을 못 보여주던 백지훈, 한 시즌만 ㅎㄷㄷ했던 홍순학 등.[6] 경남에서 수원으로 이적한지 2달만에 아스톤 빌라로 옮길 경우 1시즌 동안 2팀 이적 시 마지막 옮긴 팀에서 잔여시즌 동안 출장이 불가능하다는 규정 탓에 EPL의 시즌 종료까지인 6월까지 출장이 불가하다.[7] 그럼에도 이용래의 사례가 특이하게 비춰지는 것은 플레잉 코치들은 비교적 선수보다는 코치 역할에 집중하며 선수로는 자주 나서지 않는 사례가 많기 때문. 플레잉 코치를 할 정도면 이미 후배 선수들에게 자리를 물려준 베테랑일 가능성이 크고, 그렇다면 굳이 플레잉 코치가 아니더라도 경기를 풀 타임으로 뛰기보다는 벤치에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거나 노하우를 전수해주는 역할을 더 많이 한다. 그나마 출전을 해도 라이언 긱스처럼 강점을 살려 교체멤버로 짬짬이 출전하는 정도. 그러다보니 플레잉 코치 역할을 받은 선수들도 자연스레 코치 역할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 아예 R리그같은데 내려가서 유망주 코칭에 더 집중하는 케이스도 있다.[8] 치앙라이 유나이티드시절 5경기 제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