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종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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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한국천주교상징.png 한국천주교 교구장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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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동 블라시오 아빠스
※ 밑줄 친 교구와 주교는 관구의 중심교구와 해당 교구의 교구장 대주교를 뜻한다.
※ 교구장 대주교 외에, 유흥식 라자로 前 대전교구장 주교가 교황청 성직자성 장관 및 추기경, 장인남 대주교가 교황청 대사로 봉직 중이다.




이용훈 마티아 주교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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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천주교 수원교구
이용훈 마티아
李容勳 | Matthias Lee Yong-Hoon

파일:이용훈 마티아 주교.jpg

출생
1951년 9월 13일 (72세)
경기도 화성군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사제 수품일
1979년 3월 6일 (45주년)
주교임명일
2003년 3월 7일 보좌주교 임명[1]
2009년 3월 30일 교구장 승계
재임기간
수원교구 보좌주교
2003년 5월 14일 ~ 2008년 10월 9일
수원교구 부교구장
2008년 10월 10일 ~ 2009년 5월 13일
수원교구장
2009년 5월 14일 ~
공식 홈페이지
이용훈 마티아 주교
파일:이용훈 주교 문장.png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2]
(UNITAS IN CHRISTO)


1. 소개
2. 주요 행적
3. 주교회의 의장 선출
4. 평가
5. 논란



1. 소개[편집]


한국 가톨릭교회의 제 4대 수원교구주교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2020년 10월~현재). 세례명마티아이다.


2. 주요 행적[편집]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윤리신학을 가르치던 교수 신부 출신의 주교로, 자신의 전문분야에 맞게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과 생명윤리위원장을 맡았다.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의 희생자 추모 미사 때마다 강론에서 박근혜 정부를 비판하였고, 이명박 정부4대강 정비 사업을 반대하는 미사도 집전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의 사학법 사태때 사학법은 정부가 교회의 주요 사목활동 중의 하나인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종교탄압이라고 개신교계와 천주교계 모두 강력하게 반대했다. 당시 요구[3]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사학재단을 운영할 이유가 없다면서 법률불복종 운동과 정권퇴진운동까지 언급하였다. 다만, 사학법 사태 당시에는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을 중심으로, 한국 가톨릭의 주교, 사제단 거의 전체가 사학법 개정을 강력하게 반대했었다.

수원교구가 대교구들에 맞먹을 만큼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까[4], 알려진 것보다 한국 가톨릭 내에서 이용훈 주교의 발언권이 막강하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주교회의에서 서기를 역임했다.[5]

2023년 1월 7일 16시,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거행되었던 베네딕토 16세 전임교황 추모미사를 집전했다. 다시보기

2009년 5월 14일부터 14년째 재임하고 있다. 안동교구장 권혁주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22년째) 주교 다음으로 오래 재임한 교구장이다.

3. 주교회의 의장 선출[편집]


2020년 10월 17일, 김희중 히지노 대주교의 뒤를 이어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부의장을 거치지 않고서 의장이 된 드문 사례이며,[6] 그만큼 이 주교에 대한 교회 내부의 신망이 높음을 보여준다.


4. 평가[편집]


진보 성향의 고위 성직자로, 가톨릭 주교들 중 사회 참여적인 역할을 적극 수행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렇다 보니 진보 성향 신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러나 반대로 보수주의 성향 신자들에게는 가톨릭 성직자라는 사람이 좌파의 물이 너무 많이 들었다면서 비판을 받는다. 이는 서울대교구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과 같은 중도보수 성향의 주교들에게는 정반대로 적용된다. 다만 가톨릭 고위 성직자로서 과도하게 정치적 사안에 개입하여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비판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사회 참여적인 성향과는 다르게, 의외로 교리적인 부분(특히 낙태, 동성애 같은 생명ㆍ성윤리 관련)에 대해서는 상당히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이용훈 주교는 차별금지법 문제나 낙태 관련 문제 등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과 어긋나는 정책이나 법률에 대해서, 어느 정권인지를 막론하고 적극적으로 염려와 반대를 표명하고 있다.


5. 논란[편집]


2020년 가톨릭 사제들과 수녀들의 검찰개혁 촉구 시국선언(윤석열 비판 성명)에서 수원교구 내에 있는 수도원과 수녀원 소속 수사들과 수녀들에게 시국선언서 서명 및 참여를 강요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관련 기사. 주교회의 의장인 본인이 나설 수도 없고, 게다가 이런 매우 정치적인 사안에 종교단체인 가톨릭 교회가 직접 주교회의를 통해서 입장을 발표할 수도 없었을 터이니, 정의구현사제단을 내세우고 본인은 뒤에서 이를 참여 강요 등으로 후원했다는 것.[7] 실제로 이용훈 주교 본인의 이름은 성명서에 올라와 있지 않지만, 김희중 전 주교회의 의장 및 현직 및 은퇴 주교 6명[8]의 이름이 성명서에 올라와 있으며 여기에 이용훈 주교의 보좌주교인 이성효 주교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 이에 대해서 검찰개혁은 가톨릭 교회와 아무런 상관이 없을 뿐더러 사제들이 나서서 시국선언을 해야 할 만큼 컨센서스를 모을 일이었는지에 대한 의문과, 주교회의 의장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또한 신혜선 우리들병원 불법대출 의혹 사건 관련자이기도 하다. 이용훈 주교는 자신이 신혜선에게 문재인 당시 당대표를 소개받은 인연으로 알게되어, 신혜선의 우리들병원 불법대출 의혹 사건 관련 탄원서를 청와대에게 전달한 것은 사실이나, “신자들에 대한 탄원서 전달은 종종 있는 일”이라면서 사건의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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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4 08:17:00에 나무위키 이용훈(종교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카타붐 카스트라 명의주교[2] 성체성사를 통하여 교구민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를 이루고 수원교구가 파스카의 신비 안에서 세상의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3] 열린우리당의 사과. 대통령 거부권을 통한 사학법 철회.[4] 광주대교구, 대구대교구보다 거대하며, 규모만 따지고 보면 서울대교구 바로 다음이다. 그래서인지 현직 주교만 3명이다. 교구장 이용훈 마티아 주교, 총대리 이성효 리노 주교, 보좌주교 문희종 세례자 요한 주교.[5] 서기가 요직이긴 하다. 하지만 부의장을 건너뛰고 의장에 바로 앉은 것은 의외다.[6] 현재 부의장은 대전교구김종수 아우구스티노 주교이다.[7] 이 시국선언을 대표로 작성하고 발표한 사람이 바로 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의 정제천 수사신부(전 예수회 한국관구장)였다.[8] 김희중, 윤공희, 강우일, 김종수, 이성효, 옥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