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범(1886)

덤프버전 :


이명
이정섭(李丁燮)
본관
함평 이씨[1]
출생
1886년 2월 15일
전라도 함평현 식지면 우치리
(現 전라남도 함평군 나산면 우치리)
사망
1907년 12월 11일[2] (향년 21세)
전라북도 정읍군
묘소
광주광역시 광주 운정동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2. 생애[편집]


1886년 2월 15일 전라도 함평현 식지면(現 전라남도 함평군 나산면)에서 아버지 이남규와 어머니 태인 박씨(泰仁 朴氏, 1863 ~ 1922. 9. 7)[3]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이남규는 1894년(고종 31) 식년 생원시에 3등 38위로 입격했다.

1907년 9월 전라남도 장성군 서이면 관정리(現 장성군 황룡면 관동리 관정골) 수연산(隨緣山) 석수암(石水菴)에서 아버지가 기삼연·이석용(李錫庸) 등과 함께 호남창의회맹소를 결성하자, 이에 가담했다. 이후 기삼연의 의병진에 소속되었고, 1907년 음력 9월 23일(양력 10월 29일) 기삼연과 함께 고창군 고사면 칠성리(現 고창군 고수면 은사리 칠성마을) 문수사(文殊寺)로 진군하던 중 이를 발견한 일본 제국 육군 및 관군의 습격을 받아 접전하여 큰 피해를 주었다.

이후 음력 11월 1일(양력 12월 5일) 아버지 이남규 등 기삼연 의병진 소속 의병들과 함께 고창군에서 일본인이 경영하는 상점 및 일본 제국 육군 헌병대 분파소를 공격했으며, 음력 11월 3일(양력 12월 7일)에는 영광군 진량면(現 영광군 법성면) 법성포에 있던 순사주재소를 공격해 군량을 수습하고 건물을 불태우는 등의 전과를 올렸다.

그러나 음력 11월 7일(양력 12월 11일) 고창군 고창읍성이 일본 제국 육군 및 관군에 함락되면서 아버지가 처형되었다. 이에 도주해 정읍군 박원택의 집에 숨어들었으나 1907년 12월 11일 고부군에 주둔하던 일본 제국 육군 수비대에 체포된 뒤 피살되어 그 자리에서 순국했다.

2014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2 07:23:38에 나무위키 이원범(1886)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현감공(縣監公) 손무(孫茂)파 28세 범(範) 항렬.[2] 음력 11월 7일.[3] 박석홍(朴碩弘)의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