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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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義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후한 말의 인물이며 자는 효의(孝懿)로 이풍의 아버지. 사례 빙익군 사람.

이회(李恢)라고도 표기한다.


2. 생애[편집]


그는 한미한 가문 출신으로 엄간과 친했다. 그의 성격은 점잖으면서 마음씨가 너그러웠다. 그는 중평 말에 20여 세였는데, 다른 사람들을 도와 장례를 치르는 것을 즐겼다.

빙익군의 명문인 환씨, 전씨, 길씨, 곽씨, 이전의 시중이었던 정문신 등은 엄간과 함께 이의의 점잖고 너그러운 인품을 인정했다. 삼보의 난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피난했지만, 이의는 엄간과 함께 고향을 떠나지 않고 남은 사람들과 함께 머물며, 먹을 것과 장작을 구하여 스스로 생활했다.

건안 초에 관중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고, 조칙으로 인하여 빙익군 서부의 여러 현들이 분할되어 좌내사군이 군의 치소가 되었고, 동부의 여러 현들은 임진이 군의 치소가 되었는데, 이의와 엄간이 소속된 군을 기준으로 따지면 이의와 엄간은 서부를 섬기는 것이 당연했지만, 이의는 서부의 젊은이들과 자리를 다툴 수 없다면서 같은 자리에서 함께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느 때에 한 해가 끝날 무렵에 군에서 이의를 상계연에 임명했는데, 후에 이의는 회계를 보고하러 수도에 가서 머무르다가 평릉령에 임명되었고 용종복야에 봉해졌다.

황초 연간에 그는 위위를 지내어 아들인 이풍과 함께 종군했다. 이풍이 명성이 높아져 위나라 조정으로부터 상당한 관심을 받았는데, 그들 두 부자가 허창에서 군무에 종사할 때 더욱 이풍의 이름이 알려지자, 이의는 이를 못마땅하여 이풍의 외출과 함께 사람과의 교제를 금지했다.

배송지에 따르면 위략장기, 서서, 엄간, 유초, 양습, 조엄, 배잠, 한선, 황랑과 같은 열전에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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