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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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호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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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호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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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3번
스미스
(1999~2000)

이정호
(2001)


박한이
(2002~2019)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11번
김기태
(2000~2001)

이정호
(2002~2004)


김대익
(2005)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25번
강병식
(2002~2004)

이정호
(2005)


강정호
(2006)
{{{#fff [[우리 히어로즈|우리]] / [[서울 히어로즈|서울 히어로즈]] 등번호 23번}}}
팀 창단

이정호
(2008)


신철인
(2009~2010)
{{{#fff [[서울 히어로즈|서울]] / [[넥센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 등번호 11번}}}
이상열
(2008)

이정호
(2009~2010)


이정훈
(2011~2016)
한화 이글스 등번호 79번
신용균
(2014)

이정호
(2015)


마일영
(2016~)
키움 히어로즈 등번호 82번
박도현
(2016)

이정호
(2020~2022)


김태완
(2023~)
KIA 타이거즈 등번호 79번
송지만
(2020~2022)

이정호
(2023~)


현역




KIA 타이거즈 No.79
이정호
李正鎬 | Lee Jeong-Ho

출생
1982년 4월 27일 (41세)
대구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내당초(삼성리틀) - 경상중 - 대구상고
신체
187cm, 97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1년 1차 지명 (삼성)
소속팀
삼성 라이온즈 (2001~2004)
현대 유니콘스 (2005~2007)
우리-서울-넥센 히어로즈 (2008~2010)
고양 원더스 (2012)[1]
지도자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2011)
한화 이글스 3군 투수코치 (2015)
대구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2016)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2017~2019)
키움 히어로즈 잔류군 투수·재활코치 (2020)
키움 히어로즈 재활·잔류군 투수코치 (2021~2022)
KIA 타이거즈 2군 투수코치 (2023~)
프런트
고양 원더스 (2012~2014)
병역
사회복무요원 (2005~2007)
가족
부모님, 형[2], 사촌동생 류효용
1. 개요
2. 선수 경력
3. 지도자 경력
3.1. 대구상원고등학교 코치 1기
3.2. 한화 이글스 코치
3.3. 대구고등학교 코치
3.4. 대구상원고등학교 코치 2기
3.5. 키움 히어로즈 코치
3.6. KIA 타이거즈 코치
4. 프런트 경력
5. 연도별 주요 성적
6. 기타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KIA 타이거즈 2군 투수코치.


2. 선수 경력[편집]



2.1. 아마추어 시절[편집]


대구상업고등학교 1학년 때 팀을 청룡기 준결승에 진출시켰고, 2학년이던 1999년에는 1년 선배 장준관과 함께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본인은 청룡기 우수투수상을 수상했다.[3] 3학년 때인 2000년에는 청룡기 2연패에 도전했으나 성남고김주철에게 막히며 준우승으로 만족했다. 같은 해에는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 대회에 대표로 뽑혔다.[4] 또한 이미 이 때에 시속 153km의 속구를 던지며 미국 스카우트들의 주목을 끌며 부산고 추신수와 함께 해외 진출설이 나돌기도 했다.관련기사


2.2. 삼성 라이온즈[편집]



파일:/image/295/2008/07/21/%25C0%25CC%25C1%25A4%25C8%25A35.jpg

입단 동기 박한이와 함께.

파일:/image/295/2008/07/21/%25C0%25CC%25C1%25A4%25C8%25A36.jpg


2000년 6월 계약금 5억 3천만원[5]에 연봉 2천만원, 총 5억 5천만원에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와 계약하였다. 당시에는 역대 신인 중 최고액 계약금이었으며,[6] 지금까지도 삼성 신인 중에는 최고액이다.[7] 1987년 류중일의 입단 이후 최초로 공개적인 계약식도 했다.[8] 그만큼 이정호에 대한 기대감은 엄청난 수준이었다.

2001 시즌 전, 하와이 전지훈련157km/h의 속구를 던진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헌데 사실은 계형철 당시 투수코치가 일부러 기를 살려준다고 공을 던질 때마다 원래 구속보다 빠른 구속을 외쳤고, 주변에 있던 기자들이 그걸 그대로 받아적은 것이다.

2001년 4월 6일, 선발 김진웅이 5이닝을 소화한 뒤 등판하여 4이닝 투구로 프로 첫 세이브를 올렸다. 이 때 150km/h 초중반을 던지며 삼성의 차세대 에이스가 나왔다고 관중, 기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타구가 팔을 강타하는 부상을 당해 결국 4월 말 2군으로 내려갔다.

2군에서도 팔 상태가 나아지지 않자 결국 검진을 받아, 어깨에 이상이 있다는 결과가 나오고 담당 트레이너를 통해 훈련 프로그램을 짜주고 재활에 들어갔는데, 하필이면 얼마 안 되어 트레이닝 팀 개편이 이뤄지면서 이정호의 재활을 담당한 트레이너를 포함해 다른 트레이너들마저 팀을 떠났다. 결국 도중에 새로 개편된 트레이닝 팀에 의해 계획이 변경되면서 재활스케줄을 완전히 소화하지 못했고, 거기에 다 낫지 않은 상태에서 2군 경기에 등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시 2군 코칭스태프의 일방적인 지시로 투구 폼도 이리저리 바뀌었고, 결국 구위는 구위대로 저하되고 투구 밸런스와 감각을 잃어버리면서 성적은 더 나빠졌다. 급기야 새가슴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결국 프로 데뷔 처음이자 마지막 승리는 입단 3년차인 2003년 8월 19일 SK와의 경기에서 거두게 되었다. 여담으로 이 해에는 박정태의 현역 마지막 홈런을 허용하기도 했다.

2004년 새로 부임한 선동열 투수코치의 지시로 미국 전지훈련에서 3,000투구 훈련을 하다가, 다시 어깨 부상으로 결국 그 해 7월 어깨 수술을 받았다. 체계적인 재활과 웨이트 트레이닝 없이 무작정 공만 던지게 했다가 이런 사단이 난 듯하다. 선동열의 3,000투구 훈련의 첫 희생자인 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4년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까지 연루되어 결국 2004 시즌 후 군입대 확정.

2.3. 현대 유니콘스[편집]


2004년 말, 삼성에선 FA 자격을 얻은 현대의 심정수박진만을 영입했다. 그리고 이때 보호선수 명단에서 이정호를 제외했다. 어깨 수술을 받고 재활 중인데다 군 문제까지 걸린 선수를 데려가지 않겠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것인데,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이정호에 대해 잘 알던 현대 프런트에서 구단 상층부를 설득해 박진만의 FA 보상 선수로 이정호를 선택한 것.[9]

팬들은 왜 삼성 구단이 타율이 2할 초반대인 김재걸이나 김종훈같은 노장 대신 지역 연고 출신 유망주인 이정호를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하냐고 아우성이었지만, 이것이 옳은 선택임이 나중에 드러난다.

현대에 이적한 후 2005년부터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했다. 2007년 초 소집 해제되어 현대로 복귀했지만, 다시 팔꿈치에 통증이 생겨 그 해 5월 팔꿈치 수술을 받았다.


2.4. 넥센 히어로즈[편집]



파일:2010112700000000000171202.jpg


히어로즈로 팀이 바뀐 2008년에 복귀하지만, 여전한 이런저런 잔부상 때문에 예전과 다를 바 없는 성적을 기록했다.

박동희의 옛날 야구 이정호, 24⅓이닝이 주는 교훈


2.5. 이후[편집]


2010년 11월 26일, 갑작스레 해외진출을 선언한다. 잔부상으로 팀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폐만 끼치느니, 차라리 마지막으로 꿈을 향해 도전하겠다는 것. 결국 임의탈퇴로 공시되었다. 만약 해외진출에 실패하더라도 다시 팀으로 돌아오라는 김시진 감독과 넥센 구단의 배려였다. 그리고 2011년 7월 1일 현재 이렇다 할 소식은 없는 상태였는데,


3. 지도자 경력[편집]



3.1. 대구상원고등학교 코치 1기[편집]


2011년 8월 11일 상원고의 청룡기 고교야구 우승 때 모교인 상원고에서 코치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1999년 상원고등학교의 마지막 우승 때 같이 팀을 이끌었던 원투펀치이자 1년 선배인 장준관과 코치 신분으로 우승하여서 기분이 묘했을 듯. 기사


3.2. 한화 이글스 코치[편집]



파일:9714K7Y.jpg


2014년 12월 김성근 감독의 부름을 받아 한화 이글스의 코치로 부임했다. 3군 투수코치 보직을 맡았으나 언론에 가끔 사진이 나오는 것과는 달리 한화 이글스 공식 홈페이지에 이름이 올라와있거나 프로필사진이 포털사이트나 KBO 홈페이지에 등록되어 있지 않다.[10]

2015년 12월에 사임했다고 한다.


3.3. 대구고등학교 코치[편집]


2016년 12월 중순에 이영미 기자와 인터뷰한 기사가 뜨며 한화를 떠난 직후 대구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생활을 1년여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한화의 코치직에서 사임했다고 언급했다.


3.4. 대구상원고등학교 코치 2기[편집]


2017년부터 모교인 상원고 코치로 복귀했다.


3.5. 키움 히어로즈 코치[편집]


2020 시즌을 앞두고 자신의 프로생활 마지막 팀인 키움 히어로즈의 코치로 영입되면서 다시 프로로 돌아왔다. 보직은 잔류군 투수코치 겸 재활코치. 선수생활의 절반 이상을 재활로 보낸 사람 답게 재활중인 선수들을 부활시켜 1군에 올리고 있다. 대표적으로, 문성현이 예인데, 2021 시즌 말부터 등판하며 2022 시즌 팀의 핵심 필승조로 활약하고 있다.


3.6. KIA 타이거즈 코치[편집]


2023 시즌 KIA 타이거즈 2군 투수코치로 선임되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대구 출신 동갑내기이자 넥센 히어로즈에서 같이 뛰었던 손승락이 2군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함께하게 됐다.


4. 프런트 경력[편집]


2011년 말 창단된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에 프런트 직원으로 입사했다. 원더스 합류 초기에만 해도 프런트로 활동하면서 최종적으로는 선수 복귀를 목표로 하고 팀 훈련에도 참가했지만, 훈련 도중 부상이 발생해 아쉽게도 선수 복귀에 대한 꿈은 접고 말았다. 이후 팀이 해체될 때까지 프런트로 재직했다.

2014년에 근황 인터뷰가 실렸다. 삼성 ‘5억 팔’ 이정호① “사실 저 먹튀 맞습니다” 삼성 ‘5억 팔’ 이정호② “나 같은 실패 안 하게 도움 주겠다”

2014년 한국시리즈 5차전을 앞두고 고향 출신 동갑내기인 손승락의 공을 받아주며 연습을 도왔다는 얘기가 황규인 기자의 트윗에 실렸다. 트윗

5.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1
삼성
8
9⅔
0
0
1
0
-
4.66
8
0
11
2
5
5
1.86
2002
5
10⅓
0
0
0
0
-
6.10
12
1
7
12
8
7
1.74
2003
6
4⅓
1
0
0
0
1.000
6.23
8
2
4
3
3
3
2.54
2004
1군 기록 없음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5
현대
군복무(공익근무요원)
2006
2007
1군 기록 없음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8
우리-서울-넥센
9
9⅓
0
0
0
0
-
5.79
10
1
10
8
7
6
1.82
2009
3
2⅔
0
0
0
0
-
13.50
3
0
5
3
4
4
3.00
2010
4
9⅔
0
0
0
1
-
5.59
9
2
9
7
6
6
1.76
KBO 통산
(6시즌)
35
46
1
0
1
1
1.000
6.07
50
6
46
35
33
31
1.94

6. 기타[편집]


  •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수석코치가 투수코치 대신 투수의 투구폼을 교정하며 간섭하는 에피소드가 나왔을 때 야구인들 사이에서 그의 사례가 언급되며 잠시 주목을 받았다.


7. 관련 문서[편집]



[1] 후술하겠지만 선수 겸 프런트로 1년간 활동했다.[2] 전직 야구선수 심수창정용검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MBC SPORTS+의 야구 토크쇼 스톡킹의 메인 피디인 것이 21화 이동현편을 통해 알려졌다#.[3] 여담으로 성민규 롯데 단장과 동기다.[4] 이 대회에서 연장 접전까지 가는 끝에 대한민국은 미국을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5] 실제 계약금은 5억원이었지만, SK에 입단한 정상호가 4억 5천만원을 받자 삼성측에서 좀 더 부풀려 발표했다. 여담으로 삼성에서는 계약금에 해당되는 세금을 대납해 주고, 이정호의 아버지에게 SM520(이정호가 삼성과 계약을 마친 2000년 6월까지만 해도 삼성자동차는 르노에 매각되기 전 삼성그룹 산하였다) 승용차를 새로 뽑아 주었다고 한다.[6] 이후 1년 뒤인 2002년 KIA의 김진우가 계약금 7억원, 2006년 KIA의 한기주가 10억을 받으며 기록이 갱신되었다.[7] 참고로 삼성 신인 계약금 역대 2위는 3억 5천만원의 최채흥원태인, 이승현 3위는 같은 년도에 입단한 박한이가 받은 3억원이다. 여담으로 삼성은 이정호의 실패 이후 2008년 우동균최원제가 입단하기 전까지 신인 계약금으로 2억원 이상을 준 적이 없다. 사실 2000년대 중반 당시 대구-경북지역 팜이 역대급 흉작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특출난 선수가 등장하지 않아 거액을 주려고 해도 줄 선수가 없었다.[8] 이정호 본인이 계약식을 하자고 제시했다고 한다.[9] 같이 삼성으로 이적한 심정수의 경우 전년도 연봉(6억)이 무척 쎘기 때문에 보상금(450%)만 받는 걸로 선택했다.[10] KBO에서 개강하는 베이스볼 아카데미의 지도자 과정을 수료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KBA와는 달리 KBO는 지도자 자격증과 관련된 내용이 규약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고 언론을 통해서 KBO에 지도자로 등록하려면 지도자 과정을 수료해야 한다고만 KBO에서 밝힌 바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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