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영(1982)

덤프버전 : r20240101


이준영의 역임 직책

[ 펼치기 · 접기 ]





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

파일:boriwool_379182_1[666822].jpg}}}
이름
이준영
李俊永 | Lee Jun-Young

출생
1982년 12월 26일 (41세)
강원도 속초시
국적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신체 조건
177cm, 75kg
포지션
윙어, 윙백
학력
속초중 - 강릉상고 - 경희대
소속팀
안양 LG 치타스/FC 서울 (2003~2004)
전남 드래곤즈 (2005)
인천 유나이티드 FC (2006~2011)
상주 상무 (2011 / 군 복무)

범죄
승부조작

1. 개요
2. 프로 생활
3. 승부조작 적발
4. 플레이 스타일
5. 여담



1. 개요[편집]


이준영은 대한민국의 전 축구선수임과 동시에 승부조작 가담자이다.


2. 프로 생활[편집]



2.1. 안양 LG 치타스/FC 서울[편집]


2003년 안양 LG 치타스에 입단, 데뷔 시즌에 33경기 7골을 기록하며 유망한 공격 자원으로 기대를 받았다. 프로데뷔 전에는 크게 알려지지 않은 선수였지만, 이때 활약상으로 정조국, 최성국과 시즌 신인왕 후보로 치열한 경쟁을 펼치며 이름값을 높였다.[1]

연고이전을 한 2004년부터는 좌우 윙백 자리를 오가면서 뛰었다. 저돌적 돌파와 적극적인 수비가담, 오버래핑 등 좋은 모습을 보였다. 김동진, 최원권의 백업으로서 22경기에 출전했다.


2.2. 인천 유나이티드 FC[편집]


2005 시즌을 앞두고 백지훈과의 트레이드를 통해서 전남 드래곤즈로 이적했다. 그러나 시즌 시작 직전에 장경진과 함께 김우재, 김현수와 트레이드되면서 전남 소속으로 단 한 경기도 뛰지 않은 채 인천에 합류했다. 입단 당시 인천에는 제난 라돈치치, 셀미르 등의 뛰어난 외인이 공격진에 자리잡았기 때문에 로테이션 공격 자원 정도에 그쳤으나 나름 괜찮은 플레이를 선보였고, 팀은 그 해 리그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그 뒤로 계속 측면의 만능 자원으로 기용, 윙백과 윙어를 오가면서 활약했다. 공격 자원으로 보기에는 득점력 부족이 눈에 띄었지만 헌신적인 플레이를 통한 차별화에 성공했고, 윙백 자리에서도 가능성을 드러냈다.

팀에서 오랫동안 활약하며 보여준 기여도를 인정받아 2009 시즌에는 노종건의 후임 주장으로 선임되었으나 얼마 못 가 장기부상으로 빠져 임중용이 실질적인 주장의 역할을 했다. 2010 시즌에는 폼이 절정에 도달하여 측면에서 상대를 계속해서 뚫어내는 플레이를 보여줬고, 리그컵에서는 4골을 쓸어담기도 했다. 허정무 감독 부임 이후에도 계속해서 중용됐고 허정무가 나름 아끼던 선수이기도 했다. 2010 시즌 종료 후 그는 입대를 하게 되었고, 당시까지만 해도 많은 인천 팬들은 그가 빨리 돌아오기를 바랄 정도로 팀에게는 중요한 선수였고, 전재호, 임중용, 노종건, 김이섭 등의 선수만큼은 아니어도 충분히 높은 평을 받았다. 팬들 입장에서는 이준영이 차기 레전드 감이었고, 상무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리라 기대되었다. 그러나 정작 시즌 시작 후에는 부상으로 인해 기회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3. 승부조작 적발[편집]


그런데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었고, 결국 영구제명을 당하고 만다.

인천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승부조작에 가담한 것으로 확인된 선수는 이준영을 포함하여 도화성, 안현식, 박창헌, 이세주의 5명이었는데, 이 중 도화성은 브로커로 확인되었고 뒤의 셋은 가장 가벼운 C등급의 징계를 받은 데 비해 이준영은 A급 징계라는 무거운 징계를 받았다. 이 점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준영이 브로커 수준으로 악질 범죄 행각을 저지르지는 않았고 도화성처럼 직접적으로 범죄 집단과 연계된 정도는 아니었으나, 조작 자체에 꽤나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도화성보다야 약간 어리기는 해도 주장 출신에 인천에서 오래 뛰었던 이준영인 만큼 안현식, 박창헌, 이세주의 범행 가담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여진다. 인천에서 오랫동안 헌신해 온 '레전드 급'의 선수들 모두가 이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았으나 오직 이준영 한 명만은 이에 휘말려 큰 충격을 주었고, 팬들을 크게 배신한 존재가 되어 영원한 흑역사 중 하나로 남게 되었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활동량이 상당한 자원으로 팀에 헌신한다는 평을 받았었다. 우측 라인의 온갖 포지션을 다 뛰어본 덕분에 수비력도 많이 상승하였고, 개인 기량을 통한 돌파에도 능숙했다. 그러나 골 결정력이 부족하고 공격 상황에서 간간히 파괴력이 부족한 장면을 보여주기도 했다. 워낙 많이, 또 열심히 뛰던 선수라 인천 팬들 사이에서의 지지가 높았는데, 이랬던 이준영이 승부조작에 가담했음이 드러나자 그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공격 상황에서의 아쉬움도 적발 이후에는 의심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5. 여담[편집]


  • 2008년에 감바 오사카와의 친선 경기를 인천이 가진 적이 있었는데, 경기 종료 후 J리그 > K리그발언을 했다가 가루가 되도록 까인 전적이 있다. 이 당시 이준영의 발언에 대해서 개인의 생각이니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과 할 말과 못할 말이 있다는 주장이 엇갈렸다. 참고로 이 날 경기 자체는 무승부.[2] 참고로 득점자가 이준영이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4 11:28:19에 나무위키 이준영(1982)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당시 정조국, 최성국은 청소년 대표팀에서 활약에다가 히딩크호에도 불려가 합숙했을 정도인 라이징스타 선수였던터라 이들과 같이 언급되며 이준영도 깜짝 스타가 된 셈이다.[2] 이전 기록에서는 인천의 압승이라고 기록되었으나, 인천이 감바 오사카를 이긴 것은 2004년에 있었던 창단 기념경기였다. 여기서 인천이 감바오사카를 4:1로 이겼고, 이후에 두 번 더 감바와 경기를 가졌다. 두 번째 대결에서는 감바 오사카가 0:1로 이겼다. 그리고 2008년에는 1:1로 무승부. 그리고 아직까지 인천과 감바오사카의 경기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