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 스트래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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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슬 로즈
슬래시
더프 맥케이건
디지 리드

리처드 포터스
프랭크 페러
멜리사 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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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 멤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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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범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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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petite for Destruction

스튜디오 앨범

1987
G N' R Lies

스튜디오 앨범

1988
Use Your Illusion I

스튜디오 앨범

1991
Use Your Illusion II

스튜디오 앨범

1991
The Spaghetti Incident?

스튜디오 앨범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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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 Your Illusion

컴필레이션 앨범

1998

Live Era '87–'93

라이브 앨범

1999

Greatest Hits

컴필레이션 앨범

2004

Chinese Democracy

스튜디오 앨범

2008

TBA
}}}





Izzy Stradlin
이지 스트래들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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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제프리 딘 이스벨
Jeffrey Dean Isbell
출생
1962년 4월 8일 (61세)
미국 인디애나 라피에트
국적
[[미국|

미국
display: none; display: 미국"
행정구
]]

직업
음악가, 싱어송라이터, 음악 프로듀서
소속
건즈 앤 로지스 (1985-1991)
이지 스트래들린 앤 더 주 주 하운즈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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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180cm
활동 기간
1981년 – 현재
사용 악기
기타
장르
메탈, 헤비 메탈, 글램 메탈, 하드 록, 블루스 록


1. 소개
2. 참여 음반 목록
2.1. 건즈 앤 로지스
2.2. 솔로
3. 여담
4. 인터뷰




1. 소개[편집]


건즈 앤 로지스의 전 리듬 기타리스트. 건즈 앤 로지스의 시작부터 세계 최정상의 시기(91년)까지 밴드의 메인 작곡가 겸 리듬 기타리스트로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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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즈 앤 로지스 활동 당시 모습

1983년 친구인 액슬 로즈와 함께 할리우드 로즈로 활동하였으며 1985년에 건즈 앤 로지스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기타리스트로서의 지분은 슬래쉬보다 적었으나, 데뷔 앨범에서 밴드의 공동작곡으로 표기된 곡들이 그의 손 끝에서 먼저 나온 곡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슬래쉬와의 음악적 불화, 약물과 여자로 얼룩진 밴드 생활에서 느낀 회의감 등을 이유로 돌연 밴드를 탈퇴했다. 탈퇴 후 고향인 인디애나주로 돌아가 취미로 전용 모터레이싱 경기장을 짓기도 하고,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롤링스톤즈 풍의 정통 로큰롤 밴드인 "Izzy Stradlin & the Ju Ju Hounds"를 결성해 세계 투어를 돌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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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zzy Stradlin and the Ju Ju Hounds
왼쪽부터 릭 리차드[1], 이지 스트래들린, 지미 에셔스트, 찰리 퀸타나[2]

건즈 앤 로지스 탈퇴 이후에도 멤버들과의 사적인 교류는 계속 있었다. 1993년에 길비 클락이 사고로 부상당했을 때 대신 무대에 서기도 했으며 그 이후에도 몇 번 무대에 선 적이 있다. 그 외에도 더프 맥케이건과 함께 곡을 쓰기도 하였으며 더프, 슬래쉬와 함께 벨벳 리볼버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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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건즈 앤 로지스 공연 때 이지와 액슬

2012년 투어 때 몇몇 공연에 이지도 함께 무대에 섰는데 이때 약 11년만에 처음으로 14 years를 불렀다. 음악은 여전했고 마이크 셰어링도 여전했다..

언론과의 접촉은 매우 드문 편이다. 탈퇴 후에도 자신의 솔로 앨범을 간간히 발표하였으며 현재는 아이튠즈로 일이년에 한두곡 정도 발매하는 편이다. 2019년 기준 가장 최근곡은 2017년 여름에 발매된 "Call Me The Breeze"이다. 2016년에는 유튜브에 스틸러스 휠의 'Stuck in the Middle with You'와 조나단 에드워즈의 'Sunshine' 커버 영상을 올리기도 하였다.

2016년 트위터 계정을 만든 후 건즈 앤 로지스의 재결합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전하였다.[3] 이후 노래 추천, 신곡 소식, 새해 인사, 본인의 생일 등등 가끔씩 트위터에 글을 올리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지우기 때문에 2020년 4월 기준으로 2개의 트윗 밖에 안 올라와 있다. 본인의 생일인 4월 8일과 크리스마스에만 트위터에 생존신고를 하고 다시 사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클래식한 정통 로큰롤 리프를 주로 작곡해 곡을 썼으며 무대위에서 다양한 쇼맨십을 보여주는 건즈앤로지스 타 멤버들과는 달리 무표정에 담배하나 물고 묵묵히 배킹을 하며 쿨함 그자체를 내뿜었다. 가끔 기타를 치며 팔을 휘젓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2. 참여 음반 목록[편집]



2.1. 건즈 앤 로지스[편집]


  • Appetite for Destruction (1987)
  • G N' R Lies (1989)
  • Use Your Illusion I (1991)
  • Use Your Illusion II (1991)


2.2. 솔로[편집]


  • Izzy Stradlin and the Ju Ju Hounds (1992)
  • 117° (1998)
  • Ride On (1999)
  • River (2001)
  • On Down the Road (2002)
  • Like a Dog (2005)
  • Miami (2007)
  • Fire, the Acoustic Album (2007)
  • Concrete (2008)
  • Smoke (2009)
  • Wave of Heat (2010)


3.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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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액슬 로즈와 함께 롤링스톤즈의 무대에 선 적이 있다. 좌측부터 믹 재거, 이지, 액슬.[4]

  • 같은 건즈 출신 슬래시에 비해 기타리스트로서 인지도가 밀리지만 밴드 내 창작의 핵으로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액슬 로즈와는 동료를 넘어 청소년기를 함께한 친구였으며 훗날 전화로 탈퇴를 알렸을때 액슬이 엉엉 울었다고 한다.

  • 이지는 옛날부터 자신의 롤모델이 롤링 스톤즈의 리듬 기타리스트인 키스 리처즈라고 말했으며 재밌게도 롤링스톤즈의 보컬인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는 액슬과 이지처럼 죽마고우사이이다.

  • AFD 시절 1989년도 까지는 할로우 바디 기타인 깁슨 ES-175를 라이브에서 주로 사용했으며 UYI 라이브 때는 펜더 텔레캐스터 또는 깁슨 블랙뷰티를 주로 사용했다.

  • 1991년도의 건즈 탈퇴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슬래시와의 음악 성향 불화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슬래시와 이지의 작곡 지향점은 상당히 달랐는데 이지는 곡들이 60년대 롤링 스톤즈 풍의 라이트한 배킹 사운드를 원했고, 슬래시는 그 느낌이 너무 데모 버전같아 싫어했다고 한다. 슬래쉬가 선호하는 방향성의 November Rain과 이지가 작사작곡한 Patience, 14 years를 비교하면 둘의 지향점이 얼마나 달랐나 알 수 있다. 하지만 탈퇴 이후에도 슬래시와 이지는 친분을 계속 유지했다. 벨벳 리볼버도 함께 결성했으며[5] 2006년 이지가 TuneCore의 Jeff Price와 했던 인터뷰에서도 탈퇴 이후에도 멤버들과 친하게 지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언급을 하며, 슬래시의 솔로 앨범의 리듬 기타 녹음을 도와주기도 한 걸 보면 사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 자신의 캘리포니아 집 근처 농장에서 아보카도 농장을 차린 적이 있다.

  • Nightrain[6]과 Think About You, Double Talkin' Jive[7]에서 이지의 기타솔로를 들어볼 수 있다. 특히 Double Talkin' Jive는 마지막 부분을 제외한 리드 기타와 리듬 기타를 모두 이지가 연주했다.

  • 이지가 보컬을 맡은 곡은 14 years, Dust N' Bones, Double Talkin' Jive, You Ain't the First이다.

  • 이지가 보컬을 맡은 곡들을 들어보면 슬래시의 기타가 상대적으로 다른 곡에 비해 튀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 스케이트 보드 타는 것을 즐긴다. 액슬이 먼저 간 이지를 찾기 위해 LA에서 한 달동안 헤맨 끝에 한 아파트 앞에 놓인 이지의 스케이트 보드를 보고 그 아파트가 이지의 거처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 바이크를 좋아하므로 여러 영상에서 바이크를 탄 이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바이크로 일주여행도 곧잘 다녀온다고 한다.

  • 인터뷰에서도 말을 꺼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가끔 말을 몇마디 할 때가 있는데, 액슬을 비롯한 타 멤버의 목소리에 묻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영상 사실 1분 가량 되는 영상에서 이지가 발언권을 쥔 것은 대략 5초밖에 안되지만, 이지의 'NO'가 강력했기 때문에 영상 제목도 Izzy Stradlin interview이다. 개인 인터뷰에서는 말을 드물게 하는 편이라서 보통 영상 앞에 'rare'가 붙어있는 경우가 많다.

  • 슬래시가 자서전에서 이지를 위대한 선동가(The Great Instigator)이라 언급한 적이 있다.


4. 인터뷰[편집]


2008년 11월 팝퓰러1 인터뷰

기자: 팬들이 Guns N' Roses 시절 보여줄 수 없었던 솔로로서의 모습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지?

이지: Guns N' Roses를 떠난 뒤의 노래들도 밴드에 있을 때와 같은 방식으로 썼다. 밴드에 있을 때는 내가 먼저 곡을 쓰고, 슬래시가 자기 파트를 집어넣고, 액슬도 자기 파트를 넣고, 그러면 Guns N' Roses의 곡이 되는 식이었다. 반면에 솔로 때의 곡들도 같은 생각, 같은 영감으로 쓴 곡들이지만 슬래시나 액슬 파트가 없는 거라고 보면 된다. 좀 더 간략해진 버전이랄까.


기자: 슬래시와의 사이는 어땠나? 개인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이지: 음악적으로는 서로 도움이 되는 사이였다. 다른 사람들보다 노력을 더 많이 했지. (웃음)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80년대에 약을 많이 했었는데 시간이 좀 지나고는 다 끊었다. 여전히 그를 친구로 생각하고 계속 연락하고 있다.


기자: 일전에 당신이 맷 소럼이 밴드에 들어왔을 때 스티븐의 연주 스타일이 그립다고 했었다. 둘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나?

이지: 스티븐이 즉흥성이 강하다면 맷은 좀 더 정밀한 스타일이다.[8]


기자: 벨벳 리볼버의 제의를 거절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지: 나는 4인조를 원했다. 슬래시, 더프, 맷, 나. 근데 그들은 보컬을 계속 원했고…가끔 보컬이 문제가 될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내 갈길을 가기로 한거다.

기자: 더프에게 보컬을 하라고 당신이 권했다던데 사실인가?

이지: 그렇다. 그 편이 나았을 것이다.

기자: 반응이 어떻던가?

이지: 더프는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슬래시가 안된다고 했다.

기자: 과거의 액슬처럼 문제가 많았던 '스콧 웨일런드'는 최악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9]

이지: 되게 적절한 질문이긴 한데, 대답하진 않겠다.

기자: 해결하기 불가능한 문제였던 것 같다.

이지: 모르겠다.


기자 :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의 前멤버라는건 어떤 기분인가?

이지: 기타 가게에 기타 코드를 사러 갔는데 어린 직원이 나한테 슬래시 사인이 있는 레스폴 기타를 팔려고 하더라. (웃음) 그 직원이 "신상 슬래시 레스폴 본적 있으세요?" 라고 하길래 내가 없다고 하자 이러더라. "저희 가게에 오늘 딱 다섯대만 들어왔거든요." (웃음)[10]


기자: Live Like a Suicide나 특히 Appetite For Destruction의 큰 성공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지: 밴드가 그렇게 크게 될줄 몰랐다. 우리의 생활 방식은 너무나 자기파괴적이었기 때문에…하지만 그와 동시에 음악이 우리에게 큰 동기 부여를 해줬다. 근데 그렇게 많이 유명해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기자: 많은 팬들이 밴드 해체가 액슬 로즈 탓이라고 비난한다. 실제 액슬은 어떤가?

이지: 액슬은 참 복잡하다. 하지만 매우 재능있는 사람이다.

기자: 맞다. 하지만 모든 정황으로 볼때 밴드가 갈라서게 된게 그의 책임으로 보이는데….

이지: 아까 말했듯이 난 거기 없었기 때문에 모르겠다.

기자: 알겠다. 근데 밴드를 떠나기 전 몇년동안 당신이 본 상황은 어땠나?

이지: 내 생각엔 그 이후 밴드는 일년 정도 쉬었어야 했다. 하지만 갈 곳이 없었지. 불꽃이 한창 타오르고 있는데 "그래 우리 이제 갈라서자." 같은 말을 하는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 않나. 그런 말은 통하지 않는거다.


기자: 당신 인생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앨범 다섯 장을 꼽는다면?

이지: 핑크 플로이드The Dark Side of the Moon, 에어로스미스Toys in the Attic, 섹스 피스톨즈Never Mind the Bollocks, 라몬즈Road to Ruin, 롤링 스톤스Exile on Main 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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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e Georgia Satellites의 리드 기타리스트[2] 2018년 3월 12일 심장마비로 작고하였다.[3] 당시 썼던 트윗을 나중에 이지가 다 지웠기 때문에 지금은 볼 수 없다.[4] 입고 있는 옷은 exile 앨범 표지의 남자로 유명한 쓰리 볼 찰리이다.[5] 보컬 문제 때문에 결국 갈라섰다. 이지는 더프 맥케이건이 보컬도 겸했으면 했지만 슬래쉬는 보컬리스트를 새로 데려오자는 입장이었다고. 결국 벨벳 리볼버의 보컬로 데려온 스콧 웨일런드가 마약 문제를 일으키다가 밴드가 공중 분해되버린 것을 보면 이지의 걱정이 현실이 된 셈이다.[6] 첫번째 솔로.[7] 라이브에서는 슬래시가 연주한다.[8] 매우 정확한 표현인데 건즈 AFD시절의 라이브 영상을 보면 박자가 원본보다 묘하게 빠르다. 보통 드럼 박자에 맞추어 나머지가 따라가야 하는데 스티븐은 라이브에서 앨범보다 약간 빠른 연주를 보여줬다. 팬들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편. 반면 맷 소럼은 앨범과 라이브 버전 간에 큰 차이가 없으며, 있더라도 꽤나 미묘한 수준이라 안정적인 연주를 보장하는 편이다. 다만 스티븐 특유의 그루브를 좋아하던 팬들도 있기에 맷 소럼에게도 호불호가 없지는 않다.[9] 스콧 웨일런드는 당대 그런지 아티스트답게 상습적인 마약 복용자였고 2015년 마약 과다복용으로 죽었다. 이지의 반응과 별개로 벨벳 리볼버 1집은 큰 성공을 거두었으나 2집은 1집처럼 잘 되지 않았으며 결국 웨일런드 관련 구설수로 와해되었다. 장기적으로 보면 이지의 안목이 정확했던 것.[10] 그만큼 어린 신세대들에게 옛날 밴드는 그저 생소할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큰 밴드에 있었더라도 삶에 뭔가 큰 변화나 차이가 발생하는 건 또 아니라는 뜻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