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우

덤프버전 :





이천우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파일:external/e23d059a3d3c1f4e3e19beca42caf098df28d17f2bea311a3434e17707767fbd.jpg

李天祐
1354년 ~ 1417년

1. 개요
3. 대중매체



1. 개요[편집]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이자춘의 손자이며 태조 이성계의 백형 이원계의 차남이다. 태조 이성계의 조카이다. 본관은 전주 이씨. 계모인 남평 문씨는 목화로 잘 알려진 문익점의 딸이다. 즉 이천우는 문익점의 의붓외손자인 셈이다. 민제의 사위이기도 하는데, 즉 태종 이방원의 사촌형이면서 동서지간이다. 다만 조선왕조 실록과 선원속보[1]에는 이천우의 두 번째 부인 황보씨에 대한 기록이 있으나 누구의 딸인지는 기록이 없고, 여흥 민씨 세보에는 민제의 딸이 3명(조박의 처, 원경왕후, 노한의 처)으로만 기록되어 있어 자세한 내용을 알 수 없다.


2. 조사의의 난[편집]


1402년 조사의의 난 당시 박순ㆍ송류 등과 함께 선발대로 나갔으나 초기에 강력한 조사의에게 패배했다. 이천우가 초반에 보낸 기병 백여 명은 조사의에게 잡혔으며, 다음날 전투에서 포위당했다가 아들을 포함한 10여 명의 기병과 겨우 탈출하였다.참고1참고2


3. 대중매체[편집]


인지도가 높은 인물은 아니라서 그런지 여말선초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비중이 있게 나온건 <용의 눈물> 뿐이고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카메오 수준으로 출연하는 정도.[2]

  • 1996년 KBS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는 배우 김옥만[3]이 연기했다. 이방원의 사촌이라는 사실은 사병 혁파에 저항하다 귀양가기 전까지는 크게 언급되지 않는다.[4] 상왕으로 물러난 이성계가 궁 밖으로 나가려 하자 금위장 신분이라 말리다 따귀를 얻어맞는 수난을 겪기도 한다.[5] 이방원의 다른 공신들 중 조영무와 친밀하여 자주 붙어다니는 것으로 그려지는데 나름 공신임에도 이방원이 충분히 대접해주지 않는다고 느끼지만 2차 왕자의 난 당시 조영무와 콤비를 이루어 활약했다.[6] 이후 사병 혁파 시점에 이방원에게 반항하다 귀양 직전 불려온 술자리에서 귀양 간다는 말을 듣고는 험악한 인상을 마구 구기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할 수 있는 짓거리오이까", "저하께서는 인면수심이시옵니다!", "토끼 사냥이 끝나면 개를 삶아 먹는다더니... 우리 신세가 참으로 처량하구나"라고 울부짖는다. 이방원 본인도 이 말에 대해서는 딱히 변명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계속하게 했으며 이후 공신들을 모두 귀양보내고 인면수심이라는 말을 곱씹으며 가슴 아파했다. 이후 귀양지에서 조온과 장기를 두며 세월을 보내다[7] 복직 소식을 받은 후에는 자신들의 사병을 빼앗아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자신들은 귀양보냈다 적당한 시점에 불러들여 감복케 하는 이방원의 정치력에 놀라며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라며 경외심을 보인다. 조영무와 마찬가지로 조사의의 난 진압에 참여[8]한 것을 마지막으로 정국이 안정화되면서 장수가 아닌 조정 대신 중 1명으로 꾸준히 얼굴을 내비친다. 정많고 소탈한 조영무와 달리 왕족으로서 태종의 왕권 강화 정책을 철저히 지지하며 민씨 4형제 숙청에 목소리를 높였고 세자인 양녕대군을 보필해 명나라에 사행을 다녀오기도 한다.[9] 민무휼, 민무회 형제를 처벌할 것을 주장하는 것을 끝으로 퇴장하는데 웬만한 인물들은 모두 졸기를 띄워 주는 와중에 언급도 되지 않고 사라진다.[10]

  • 2015년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등장하기는 했으나 비중은 매우 낮다. 무인정사 즈음에 등장했는데 사실 드라마 특성상 굳이 등장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배역이 이름까지 달고 등장한건 당시 흑화하고 있던 정도전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종친 세력의 대표격 인물이라서인 듯하다.

  • 2021년 태종 이방원에 등장하며, 조사의의 난에서 태종의 명에 의해 출정했으나 패배한다. 태조는 태종이 이천우를 선봉으로 보낸 것이 자신의 조카라는 점을 이용해 자신을 머뭇거리게 하기 위함이라 말하면서, 성정이 급한 녀석이니 유인 후 매복하면 패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실제 그렇게 되었다. 그것 때문에 승리를 축하는 자리에서 이방원에게 벌하여 달라고 빌지만 이방원은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면서 넘어간다.

[1] 완풍군파속보 기준[2] <용의 눈물>은 159부작의 장편 대하사극이고 <육룡이 나르샤>는 50부작이다. 그만큼 뒤로 갈수록 사극 제작 여건이 안 좋아졌음을 알 수 있는 대목. 무엇보다 <육룡이 나르샤>는 실존과 가상, 역할들이 겹친 인물들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서 이천우의 경우는 드러낸 경우가 없다고 볼 수 있다.[3] 2000년 KBS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충주 지역의 장군이던 금식 역, 2001년 SBS 드라마 <여인천하>에서는 류순정 역.[4] 22회에서 이방원이 박포를 통해 이천우를 소개받는 장면이 있는데 전후 맥락으로 보아 아무래도 처음에는 사촌간이라는 사실을 제작진 측에서 몰랐던 듯 하다.[5] 사적으로는 아무래도 조카인데 조카가 자신의 자식을 지지하여 또다른 자식을 죽였으니 원망스러울만도 하다.[6] 다만, 이방원에 대한 충성심은 조영무보다 밑인지라 전투 도중 이방간의 군사에게 수적으로 크게 밀리자 "차라리 항복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물론 단순한 충성심 차이만이 아니라 이성계의 아들들과 사촌 형제라는 점도 작용했겠지만 말이다.[7] 조온이 "곧 자신들을 죽이지 않겠느냐"며 불안해하는 것과는 달리 "죽이든 살리든 어차피 사병을 뺏긴 이상 죽은거나 다름없다"며 자포자기한 모습을 보인다.[8] 다만, 조사의로부터 "삼국지로 비유해서 장비라고 하면 딱 좋을 자"라는 평을 듣고 그 후 대패한다.[9] 양녕대군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에 이천우가 수행하는데 이 때 태종이 "완산군 이천우 백부께서 함께 가실 것"이라고 직접 말한다.[10] 역사적으로는 민씨 형제 중 막내인 민무휼과 민무회가 사사되고 난 이듬해에 졸했는데 졸기가 없는게 이천우 하나는 아니나 비중을 생각하면 아쉬운 일.
이 문서의 r1~74 버전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저작권을 침해하는 내용이 포함된 버전으로 문서를 되돌리거나 링크하는 행위는 금지됩니다. 만일 되돌리거나 링크할 경우 저작권 침해로 간주되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4 13:11:32에 나무위키 이천우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