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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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순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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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롯데 자이언츠 엠블럼(1975~1992).pn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1992



MBC 청룡 등번호 77번
팀 창단

이충순
(1987~1989)


이광환
(1992~1996)
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84번
팀 창단

이충순
(1997~1998)


팀 해체
SK 와이번스 등번호 77번
김준환
(2000)

이충순
(2001)


최일언
(2006~2011)



이충순
출생
1946년
함경북도 명천군
사망
2023년 1월 28일 (향년 76세)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대광중 - 경동고
포지션
투수
소속팀
한국전력 (1966~1975)
지도자
마산용마고등학교 야구부 감독 (1976~?)
중앙대학교 야구부 감독 (1982)
OB 베어스 2군 코치 (1983~1985)
OB 베어스 2군 감독 (1986)
MBC 청룡 1군 코치 (1987~1989)
롯데 자이언츠 1군 코치 (1990~?)
한화 이글스 1군 코치 (?~?)
쌍방울 레이더스 1군 코치 (1997~1998)
SK 와이번스 1군 코치 (2001)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야구인.


2. 생애[편집]


1946년 함경도 명천에서 태어났고 중학생 때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중학생 시절 야구가 하고 싶어서 대광중으로 옮기느라 중학교 1년 유급되었다. 경동고 1학년 때까지는 포수로 뛰다가 당시 김일배 감독이 "키(185㎝)가 크니 투수를 해보라"라고 권해서 2학년 때부터 투수로 활약했다. 고교 졸업 후 1966∼1975년 실업팀 한국전력에서 김명성 전 롯데 감독과 함께 주전 투수로 활약했다.

1976년 마산상고 감독, 1982년 중앙대 감독을 거쳐서 1983년 OB 베어스 2군 코치로 발탁됐다. 그의 아들 이준서씨는 "김성근 감독님이 뽑아주셨다. 그 후 프로야구에선 김성근 감독님이나 강병철 감독님과 늘 같이하셨다"고 말했다. 1986년 MBC 청룡 코치로 활약한 뒤 롯데와 한화 시절엔 강병철 감독과 함께 했고, 쌍방울 시절엔 김성근 감독, SK 시절엔 다시 강병철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1990년 롯데 코치로 부임하자마자 전해 부상으로 1년간 활약하지 못한 윤학길을 다시 마운드에 설 수 있게 훈련시켰고, 1992년엔 염종석을 발굴했다.[1]
염종석은 개막전 엔트리부터 합류하며 35경기에 등판, 17승9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2.33, WHIP(이닝당 출루 허용률) 1.01을 기록하며 그해 신인왕과 투수 골든글러브를 휩쓸었고, 포스트시즌에서도 4승 1세이브, 평균자책점 1.47로 우승의 주역이 됐다.[2]

프로야구 코치 생활을 끝낸 뒤에는 전주고·연세대 인스트럭터로 일했고, 2007년 카자흐스탄과 파키스탄 어린이에게 야구를 가르치기도 했다.

2023년 1월 28일 파킨슨병으로 타계했다. 빈소는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 5호실에 마련됐다. 생전 2011년 약속한 대로 30일 시신 기증 절차(한양대병원)가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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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염종석은 부산고 졸업 후 원래 경성대에 갈 예정이었지만 집안 사정으로 갑자기 롯데에 입단한 신인이었다.[2] 당시 기록한 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 8.40으로 KBO 역사상 역대 신인 최고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