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명나라)

덤프버전 :


파일:허균 수결.svg
허균
관련 문서


[ 펼치기 · 접기 ]
소속
허씨 5문장 · 북인 · 선무원종공신 · 이달의 문화인물
가족
아버지 허엽 · 이복 형 허성 · 동복 형 허봉 · 동복 누나 허난설헌

이복 누나의 남편 우성전 · 동복 누나 허난설헌의 남편 김성립 · 조카 김희윤

매형 김성립의 이종사촌 신흠 · 딸 소훈 허씨의 남편 폐세자 이지
관련 인물
스승 (이달 · 사명당 · 류성룡)

제자 (서양갑 · 이식 · 기준격)

친구 (강변칠우 · 이매창 · 박엽 · 류몽인)

존경하는 인물 (정도전 · 이순신)

본이 되는 인물 (방회 · 이지)

작품 내 등장인물 (이달 · 홍길동)

주군 (선조 · 광해군)
관련 장소
허균 일가의 생가와 외갓집 강릉 · 허균의 친가 한양 건천동

허균 일가의 묘소 용인시 · 허난설헌의 묘소 광주시

친구 강변칠우의 거주지 여주시 · 이매창과 교류한 장소 부안군
관련 사건
임진왜란, 정유재란 · 계축옥사
작품
홍길동전 · 도문대작 · 그 외 작품
기록에서의
모습 및 행적

특징 · 생애 · 창작물
평가
평가 · 사상
파일:허균 수결.svg






李贄
1527년 ~ 1602년

1. 개요
2. 생애
3. 사상
4. 기타



1. 개요[편집]


중국 명나라의 사상가이자 비평가. 호는 탁오(卓吾). 한국과 일본에는 삼국지연의 덕에 이탁오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있다.


2. 생애[편집]


양명학과 당시 그가 살던 천주(泉州)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유심론을 주장하며 형식적 교리와 예절에 반대했다. 또한 도덕지상주의를 비판하고 능력주의를 호소했으며 《수호전》, 《금병매》 등의 서민 문학을 높이 평가했다. 저서에 《분서(焚書)》[1] , 《장서(藏書)》 등이 있다. 결국 75세에 혹세무민의 죄로 감옥에 잡혀들어가고 시자(당시 감옥에서 면도를 해주는 사람)의 칼을 잠시 빌린다고 하더니 그대로 목을 그어 자결하여 생을 마친다.


3. 사상[편집]


이탁오의 사상은 동심(童心)을 중시한다는 것이 그 핵심이었다. 이는 당시 유가의 변질에 의한 것이었는데, 2000년 전 공자가 남긴 말을 후대의 학자들이 각주에 해설에 또 각주를 다는 등… 말 한마디에 해설본만 몇십권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차라리 해석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다행일텐데 학자들은 당대의 정치인들과 결탁하고 해석을 백성들을 억압하고 자신들의 입지만을 위한 방향으로 만드는 일을 했다. 예를 하나 들자면 공자가 여자에 대한 말한것은 "여자와 소인은 다루기 어렵다" 이 한마디 였으나 수천년간 어마어마한 해석과 각주가 쌓이고 왜곡되어서 우리가 흔히 유가에 대해 생각하는 가부장적인 제도, 열녀라는 병폐가 생겨났다. 이탁오는 이러한 상황을 나이 50세에 정확하게 파악하고 공자에 대한 후대의 해석을 중요하게 볼 것이 아니라 공자의 동심 즉 공자가 남긴 말만을 중요하게 보자고 주장했다. 이때 비판이 매우 신랄한데 난장이(나 자신)가 키가 작아 보지도 못하는 굿(공자)을 '남들[2]이 좋다고 하면 그저 나도 좋다고 따라한 것 밖에 되지 않았다'라고 하거나 '나는 그저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따라 짖는 개에 불과했다'라고 하는 등의 말을 남겼다.

이렇게 이탁오는 유가[3]가 인간성을 억제하고 다양한 각주가 통치자들에게 이용만 될 뿐이라면서 탈유가를 주장했다.

또한 이탁오는 성인들의 동심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동심이 중요하다고 했으며 상대가 지위가 높은 재상이라도 동심이 없으면 존경하지 말고 상대가 지위가 낮은 하인이라도 동심에서 나온 것이면 나 자신을 낮추고 절 하라고 했다.

이렇게 나온 책들이 《분서(焚書)》와 《장서(藏書)》였고 이 책들은 당시에 이단이라면서 유학자들의 엄청난 비난을 받는다. 게다가 여성에 대해 자유롭고 진보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여자의 식견이 짧다는 통설에 반대하고 여자와 남자는 단지 생물학적 형태의 차이이지 보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고 했다. 실제로 이탁오는 당시에 매담연을 비롯한 여성 제자들을 양성하고 그들과 함께 공부했다.

하지만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지 못한 매담연은 자살하고, 이탁오가 여성들을 희롱한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도는 등 가뜩이나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건드려서 눈엣가시인 상황에서 이 행동이 결정타가 되어 장문달이라는 유학자가 탄핵 상소를 올려 이탁오를 체포하고 간행된 책은 모두 태워버리라는 황명이 내려진다. 결국 감옥에서 자살하여 생을 마치지만 그의 사상과 책들은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에도 전해지고 있다.


4. 기타[편집]


6대조모가 페르시아인 무슬림이었던 후이족이다. 이지 본인도 이슬람 신자라는 설이 있다.

홍길동전의 저자로 알려진 허균이 이지의 책 분서를 읽은 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허균이 1618년 즈음 엮은 <한정록> 제13권에서 언급된 내용이다.

나는 일찍이 바둑은 세상을 피할 수 있고 잠은 세상을 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둑은 짝을 지어 밭을 가는 장저(長沮)ㆍ걸닉(桀溺)과 같아서 한쪽이 없으면 할 수 없지만, 잠은 바람을 타고 다니는 열자(列子)와 같아서 홀로 가고 홀로 올 수 있으니 아, 훌륭하다 희이(希夷 송(宋) 진박(陳搏)의 호)여, 잠의 뜻을 깊이 터득했구나. 《이씨분서(李氏焚書)》

ㅡ 《한정록》 제13권 현상(玄賞) #

1615년 허균이 명나라에 갔을 때 쓴 기록인 <을병조천록>에 의하면 이지의 분서를 읽고 이지의 "사상의 자유"를 본받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맑은 아침 대머리 늙은이[4]

가 책 태워도

그 도는 아직도 다 타지 않고 남아 있네.

불교와 이 유학은 깨달음이 한가진데,

인간의 세상은 멋대로 떠들어서 시끄럽네.

문선왕 나를 맞아 귀한 손 대접하니,

기린 봉황 높이 나와 친히 보니 기분 좋네.

나의 인물론을 늦도록 읽어주니,

이제야 선현의 책 그 사람을 알겠네.

노자는 나기 전에 아는 것이 많았고,

평생에 참선에 듦이 큰 기쁨이네.

글은 이뤘어도 아직 진[5]

분서 없어

대간의 탄핵 세 번 마음은 상쾌하네.

ㅡ 《을병조천록》 이씨의 분서를 읽음 [6]

위 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허균은 "이지의 저서들은 불탔지만 이지의 사상은 불멸하다"라고 주장했으며 불교든 유교든 똑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역사대하소설 중 하나인 까다롭스키 두번째 작품 임꺽정은 살아있다에서는 해외 활동하는 임꺽정의 브레인 역할을 하고, 영국의 엘리자베스 공주와 손발이 잘 맞는다. 공교롭게도 둘 다 리즈로 줄어 부른다고, 천생염분이란 작가의 간접적 평도 있다.


[1] 제목의 의미는 태워질 책이라는 의미로 자신의 책이 불태워질 것이라 예상해서 지은 제목이다. 그리고 실제로 일어난다.[2] 공자의 말에 해석본을 쓴 후대의 학자들.[3] 공자가 남긴 것이 아닌 후대에 의해 덧붙여져 세워진 유가를 의미.[4] 탁오 이지를 의미한다.[5] 탁오 이지를 의미한다.[6] 국역 을병조천록 43쪽, 44쪽 참조, 2005년 12월 31일 김태근이 번역했으며 현재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이지 문서의 r64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이지 문서의 r64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4 12:10:15에 나무위키 이지(명나라)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