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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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로
梨泰院路 | Itaewon-ro

한남대로 (동) →

노선 번호
4905번 서울특별시도 (관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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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체자
梨泰院路
가타카나
イテウォンロ

기점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1가 삼각지교차로
종점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북한남삼거리
연장
3.3km
개통
1939년 5월 31일
관리
서울특별시 서부도로사업소
왕복 차로 수
4-6차로
주요 경유지
삼각지역녹사평역이태원역 ↔ 북한남삼거리

1. 개요
2. 역사
3. 상세
4. 교차로
5. 궤도교통
6. 사건사고



1. 개요[편집]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1가 삼각지교차로에서 한남동 북한남삼거리를 잇는 3.3km의 보조간선도로. 서빙고로와 함께 용산구의 동서를 잇는 2개의 횡축 도로 중 하나다.

2. 역사[편집]


일제강점기, 이곳은 공동묘지가 있던 곳이었다. 당시 지도를 보면 현재 이태원로 북측의 부촌이라고 일컽는 지역이 공동묘지 터였다. 그정도로 변두리였던 곳이 세월이 지나 그 자리에 유수의 재벌가가 이곳에 자리를 잡고, 이 정도로 번화하게 된 건 참으로 격세지감이라 할 것이다.

1936년, 남산 이남 지역이 경성부로 편입되고, 경성부 시가지가 한남동 일대로 점차 확장되자, 삼각지에서 약수동을 잇는 외곽 순환도로로 계획되었다. 이 공사는 곧장 착수하였는데, 이태원과 한남동을 지나는 고지대를 공사하는 게 당시에는 꽤나 난공사였기 때문에 번번히 미루어지다가, 먼저 한남동에서 약수동으로 넘어가는 현재의 한남대로 - 다산로 구간이 1938년 9월에 먼저 개통되었고, 삼각지에서 한남동으로 이어지는 현재의 이태원로는 이듬해인 1939년 5월에 비로소 개통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태원 공동묘지가 헐렸고, 그 자리에는 주택단지를 조성하게 된다.

당시 기사를 보면 남산주회도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이는 현재 남산 바로 밑을 지나는 소월로를 일컬음이 아니라 이태원로를 이르는 것이다. 당시에는 남산의 녹지가 한남동까지 뻗어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남산 바로 밑으로 지나던 도로는 이태원로였다. 이태원로가 개통되고 나서 이태원로 이북으로 시가지가 계속 남산 쪽으로 팽창했고, 남산 바로 밑을 지나는 소월로는 이보다 30년 뒤인 1969년에 남산순환도로라는 이름으로 개통된다.

3. 상세[편집]


삼각지역에서 이태원로로 접어들면 옆으로 전쟁기념관이 있고, 양 옆으로 용산미군기지가 있다. 이 구간을 지나 녹사평역에 다다르면 흔히 이태원동 거리라고 하는 곳이 시작된다. 미군기지가 바로 옆에 있기 때문에, 전쟁 직후부터 미군으로부터 불하 받은 물품을 납품하거나, 미군을 상대로 영업하는 가게가 이태원로를 따라 많이 생겼다. 미군을 상대로 영업하는 가게가 많았기 때문에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은 이태원 거리로 많이 몰리게 되며 자연스럽게 번화하고, 서울에서 외국인들이 가장 많은 동네라는 이미지를 얻게 된다.

대통령실도 위치해있다.

1980~90년대만 해도 외국 프랜차이즈 업계가 가장 먼저 들어오는 곳이 강남 아니면 이태원이었으므로, 당시 대학생들은 이태원을 많이 찾았다. 그러나 바로 옆에 있던 단국대학교가 죽전으로 이사를 가고, 용산미군기지 역시 평택기지로 대부분 옮기게 되면서 예전보다는 활기가 많이 줄어들게 되었다. 최근 들어 이태원로 인근에 한남뉴타운 재정비촉진지구가 지정되면서 머지 않은 미래에 이 일대 풍경도 상당히 많이 바뀔 것이다.

4. 교차로[편집]


파일:좌회전 금지.png 좌회전 진입 금지


5. 궤도교통[편집]



6. 사건사고[편집]


2022년 10월 29일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해밀턴호텔 옆 골목에서 사상 초유의 대참사인 이태원 압사 사고가 발생하며 전국의 경찰과 소방 인력들이 이태원로로 출동했다. 사고 발생 위치는 이태원로 도로 바로 앞이다.

이에 따라 사고 발생 1시간 45분 후인 10월 30일 0시부터는 사상자 구조 및 사고 수습을 위해 녹사평역에서 한강진역이 있는 북한남삼거리까지의 구간이 봉쇄되었고, 이후 녹사평역에서 제일기획 본사 앞(대사관로 시점)까지 통제구간이 변경되었다. 보광로도 이태원역에서 청화아파트 앞까지의 구간도 봉쇄되었다. 구조 인력 외에는 들어갈 수 없도록 했으며, 해당 구간을 통과하는 모든 버스 노선이 우회하게 되었다.

사고 발생 직후 수많은 사상자들이 이태원로로 쏟아지고 이에 당황한 시민들과 심정지 환자들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구급대원들, 거기에 구급차 100대 이상이 한꺼번에 모여들면서 일대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현장에서 사망한 시신들은 임시로 이태원로 길 한복판에 임시 안치 되었다가 상황이 정리되면서 원효로 다목적실내체육관으로 옮겨졌다.

10월 30일 오전 4시 30분부터 이태원에서 서울역까지 가는 비상수송 노선이 투입되어 이태원에서 귀가하지 못 한 사람들을 이태원 밖으로 빼냈다. 이후로는 이태원역부터 제일기획 앞까지는 북한남삼거리 방면 차선 한정으로 통행이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녹사평역에서 이태원역 구간은 양방향, 제일기획에서 이태원역 구간은 녹사평역 방향 차선 통제로 바뀌었다. 11월 1일부터 이태원로 전구간 통행이 재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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