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진

덤프버전 :




[ 펼치기 · 접기 ]

초대
이해진
(2017~ )

CEO



네이버 GIO
이해진
李海珍 | Lee Hae-jin


파일:이해진이미지.20221219.jpg

출생
1967년 6월 22일 (56세)[1]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제기동
거주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동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본관
전주 이씨 (全州 李氏)[2]
직업
기업인
현직
네이버 총수
네이버 GIO[3]
A홀딩스 대표이사[4]
학력
상문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계산기공학 / 학사)
한국과학기술원 대학원[5] (전산학 / 석사[6])
가족
아버지 이시용[7], 어머니 홍정자
남동생 이해영
배우자 이영림
아들 이승주
딸 이연주
재산
27억 달러 (한화 약 2조 7천억원)[8]

1. 개요
2. 생애
2.1. 창업 비하인드
2.2. 포털사이트 뉴스기사 독점 비판
3. 동일인 지정
4. 경력
5.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기업인. 네이버의 창업자, 글로벌투자책임자.


2. 생애[편집]


1967년 6월 22일,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제기동에서 이시용 삼성생명 대표이사 부사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상문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전자계산기공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한국과학기술원 대학원에서 전산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같은 해 삼성SDS에 입사했다가[9] 1999년 네이버를 창업하게 된다.


2.1. 창업 비하인드[편집]


1986년 명동의 고전음악감상실 '필하모니'에서 집회를 하던 대학연합서클 '샛별고전음악감상회'에 14기 회원으로 가입, 이듬해 14기 회장을 역임했다. 그 해 겨울 서클음악회에서 오페리칼 '핸디맨:사랑의 수선공(연출:이우혁(11기, 소설 퇴마록 저자), 박병철(7기, Kist 이론물리학 박사, 번역가))'에서 주인공 핸디맨역을 맡아 열연했다. 졸업 후 서클의 1년 후배인 15기 이승하(당시 예명, 본명은 이영림, 페인터)와 삼성동 공항터미널에서 결혼하여 서클커플이 되었다.

삼성SDS에 입사해 근무하던 중, 1993년 '세상의 모든 단어 검색서비스' 사업구상을 가지고 있던 서클후배인 15기 조계환(前영풍문고 홍보부 사원)에게 창업전망을 자문하고[10] 이런 의견 외에(?), 당시 SDS 고위층에서는 심마니식의 토속적 분위기로 이름 지으라는 분위기로 가서 고민하던 창업자에게 서소문 중앙일보 큰 길 건너 중국집에서 서클동기인 김종윤과 서클후배 15기 이세영이 당시 미국의 인터넷 서비스 네비게이터 기본으로 세글자로 하라고 하였다. 당시 온라인검색서비스가 SDS 사내벤처프로젝트 공모에 채택되어 5년여의 시행착오 끝에 기술적으로 구체화하고 발전시킨 개발에 성공하여 온라인포털검색사이트 네이버를 국내에 선보이게 되었다.


2.2. 포털사이트 뉴스기사 독점 비판[편집]


언론사가 아니면서 대한민국 언론을 심사해 등급화하면서 '언론 위에 군림하는 지배적 권력'의 지위를 누리고 있는 네이버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 비판이 많다. 네이버는 '뉴스제휴평가위원회'를 만들어 언론사를 평가하는 기준과 관행이 불합리하고, 언론의 독립성과 성장을 해하고 있다.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국회의원들이 관련법 제정 등 해결책 마련에 나선다고 했으나 현실은 여전한 편이다.

네이버가 뉴스제휴평가위원회를 통해 언론사를 평가해 4단계로 등급화하는 관행을 폐지하고, 공정하고 공개된 알고리즘을 통해 뉴스 검색 기능만 제공하고, 독자가 해당 뉴스를 클릭하면 언론사 홈페이지로 연결되는 아웃링크 형식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 상당수 네티즌들이나 일부 학자들의 주장이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가 언제인지 알 수 없지만 발표한 한 자료에 따르면 한 주간 소비된 한국 뉴스의 58%는 네이버를 통해 전달됐다. 다음카카오(28%)까지 합치면 무려 86%에 달한다. 포털, 특히 네이버가 '언론 위에 군림하는 지배적 권력'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9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네이버가 언론사를 평가하고 등급화하고 포털 사이트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았다.


3. 동일인 지정[편집]


2017년 08월 14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네이버 관계자와 함께 방문, 김상조 위원장 등을 만나 네이버를 '총수 없는 대기업'으로 지정해 달라고 했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에서는 여러 이유로 이해진 의장이 실질적으로 네이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판단했고, 결국 2017년 9월 3일, 네이버 주식회사의 총수로 지정하였다.


4. 경력[편집]




5. 여담[편집]


  • 창업 비하인드 관련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 조계환은 1990년 대학 시절 이미 대우학술문화재단이 보유하고 있던 300여종의 심리학관련 영문원서 키워드 추출작업 아르바이트 의뢰를 받아 4년 먼저 일을 시작한 점, 1999년 네이버의 창립 직후 최초로 개설된 홈페이지 내용을 보면 정치 경제 인물 종교 등의 검색 카테고리 가운데 심리학이라는 카테고리를 수많은 대학전공학문 중에서 유일하게 수년간 게시한 점인데,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검색서비스 아이디어에 영감을 주었을 것이라는 조계환의 전공이 심리학이었다. 그 외에도 이해진이 조계환에게서 아이디어 영감을 받았을 거라는 심증은 몇가지가 더 있으나 생략한다.

  • 창업 비하인드 스토리만을 종합해 보면 이해진은 도의상 조계환에게서 창업 자문료를, 김종윤과 이세영에게서는 네이밍 사용료를 각각 빚진 셈인데, 조계환의 경우, 2006년 서클 14,15기 합동망년회를 맞아 압구정 현대백화점 맞은편에 있던 당시 최고급 독일 생맥주 브랜드인 크롬바커(Krombacher)에서 이해진 의장이 골든벨을 울려 술과 안주를 대접받았다.

  • 네이버 창업자이기에 지분을 많이 차지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IT기업 창업주들이 가진 지분에 비해 상당히 적은 약 3.73%만을 소유하고 있다. 이는 네이버가 성장하는 동안 외부 투자를 많이 받았고, 그 과정에서 지분율이 많이 희석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네이버의 일본 관계사인 라인(기업)의 모회사인 Z홀딩스 지분도 일부 보유하고 있다.

  • 김정주 NXC 전 회장과 비슷하게 잘사는 집안 출신으로, 부친이 삼성생명 부사장과 SK생명 사장을 역임했다.

  • 경영 스타일은 전형적인 은둔형 경영자이다. 비슷한 스타일로 유명한 김정주, 이재웅[12], 권혁빈 등보다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다. TV나 매체, 기사에서도 그의 얼굴이나 인터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심지어는 네이버 직원들조차도 한번도 본 적이 없을 정도라고. 다만 2010년대 국정감사에 자주 증인으로 출석하면서 공식 자리에서 제법 그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국정감사에 참석한 연도는 2017, 2018, 2021, 2022년도이다.

  • 위에서 언급한 은둔형 외톨이라는 표현은 오해할 수도 있는게, 기업인으로서 그렇다는 것이지 일반인으로서는 내성적인 집돌이 스타일은 아니라고 한다. 이해진은 해외 출장도 잦으며 골프도 즐기는 스타일이라서 대부분의 기업인처럼 일반에 공개적인 행보를 하지 않는다는 의미일 뿐이지 성격은 활달한 편이라고 한다. 다만 국정감사에 불려왔을때 특히 초창기 답변할 때 보면 대기업 총수답지 않게 좀 떠는 모습도 보이긴 했다. 공개 활동을 꺼리다보니 실시간 대응이나 돌발상황에서의 말주변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 다음 창업자 이재웅과 꽤나 절친인 사이로, 이미 대학 시절부터 이웃사촌이었고 네이버가 사업 초창기 당시 그저 그런 벤처기업 겸 포털사이트였을때 검색엔진 외주를 맡겨서 네이버를 먹여살리기도 했다. 물론 결과적으로 보았을 땐 네이버가 다음을 제치고 독보적인 1위 포털 사이트가 되었고, 다음은 2위 포털 사이트로 전락했으니 호랑이 자식 키운 셈이라 할 수 있겠지만... 물론 이러나 저러나 절대치론 둘 다 초부자긴 하다. 2020년대 아직까진 해방 이후 대체로 공고히 유지되던 대기업 순위에 금이 간 거의 유일한 시기였던 IT,BT 벤처붐 시대의 주역들 중 한명. 상기한 총수 동일인 지정 과정에서도 김상조 공정위원장과 설화(舌禍)가 있었는데, 문재인 정부 혁신성장본부장도 맡은 바 있던 이재웅이었지만 이땐 이해진과 네이버의 주장을 옹호하며 김상조 위원장의 본인 기준 무리한 이해진 총수 지정을 비판하기도 했다.

  •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와의 사이도 나쁘지 않은 편으로 같이 골프도 치고 사적으로도 가까운 사이라고 한다. 시장에서 경쟁관계라 사이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애초에 두 사람은 삼성SDS(당시 삼성 데이터시스템) 입사 동기이고 네이버와 한게임의 합병 후 NHN 공동대표로도 같이 지내기도 했다. 2명의 회사 운영방식도 비슷해서 창업자의 사회적 책임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이사회 의장직을 같이 선택해 대표이사를 앉혀 놓고 본인들은 뒤에서 대표인사권만 손에 쥐고 실질적으로 경영하는 꼼수(?) 경영을 한다는 말도 있다.

  • 2020년 3월 말, 연봉이 공개 되었는데 급여 약 5억 4000만원, 상여금 약 5억 6000만원, 기타 근로소득 약 1억 6000만원을 전부 합해 총 12억 3700만원을 2019년에 받았다. 한성숙 대표이사 사장 하고 비교하면 액수가 적은 편인데, 현재 대표이사가 아닌 것도 있지만 국정감사 당시 일부 언론을 통해 알려진 불출석 사유서를 인용하자면 대부분 시간을 정자동 본사에 있기 보다 출장을 가는 편이라고 한다.

  • 공부법 강의 사이트 "스터디코드"의 대표 조남호 코치와는 대학교 선후배로 네이버 설립 초창기 시절 조남호가 인턴으로 이해진 대표 밑에서 일을 배웠다고 한다. 이해진 대표가 졸업 후 서울대에 와서 컴퓨터공학과에 와서 강의를 하며 조남호 코치를 만났는데 강의에 흥미를 느낀 조남호 코치가 네이버에 찾아갔다고 한다. 이런 인연은 조남호가 서울대 학맥을 예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아들 이승주가 LØREN이라는 예명으로 가수 활동 중이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4 14:48:53에 나무위키 이해진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우연인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사장과 나이가 똑같다. 다만 음력인지, 양력인지 밝혀진 것은 없다.[2] 덕흥대원군파 15대손, 시조 43세손 해○(海○) 항렬이다.[3] Global Investment Officer. 글로벌 투자 책임자.[4] 출처.[5] 카이스트 재학 당시 넥슨 창업자 김정주의 룸메이트였다. 여담으로 카이스트 황규영 교수의 연구실 출신인데, 연구실 내부에서는 아직까지도 네이버의 성공이 '전지현'의 광고 덕인지 연구실 내의 엔진을 이용해서인지 의견이 분분하다고 한다.[6] 석사 학위 논문: CAD 데이타베이스를 위한 버젼 관리 시스템의 설계 및 구현.[7] 1937년생. 삼성생명 대표이사 부사장, SK생명 대표이사 사장 역임.[8] 2021년 8월 포브스 기준. 한국 부자 순위 15위.[9] 그의 부친 이시용 또한 삼성맨으로, 삼성생명 대표이사 등을 지낸 바 있다.[10] 미국에서는 1993년부터 검색 서비스를 시작했다.[11] 이사직도 같이 역임하고 있다.[12] 이해진과는 이종사촌 관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