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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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일
李炫一 | Lee Hyunil


파일:5062242.1.jpg

출생
1980년 4월 17일 (43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영등포초등학교 (졸업)
양동중학교 (졸업)
서울체육고등학교 (졸업)
한국체육대학교 (체육학 / 학사)
한국체육대학교 (체육학 / 석사)
종목
배드민턴
주종목
남자단식
소속
김천시청(2003~2009)
강남구청(현 요넥스)(2010~2012)
MG새마을금고(2013~2017)
밀양시청(2018~)
신체
177cm, 68kg
장비
아펙스 지글러565[1]
후원사
빅터IND(국가대표팀)
요넥스코리아(소속팀)
렛헐메이크오버(개인)
1. 개요
2. 선수 경력
3. 은퇴 이후
4. 플레이 스타일
5. 수상 기록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배드민턴 선수이며, 단식이 약한 한국 배드민턴임에도 세계무대 최상위권에서 경쟁한 대한민국 배드민턴 남자 단식의 역대 NO.1인 대표선수이다.

2. 선수 경력[편집]


한창 세대교체가 진행중이던 1997년 한국 배드민턴계가 주목하던 유망주였다. 차근차근 성장을 밟아가다가 약관 20세의 나이로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꾸준히 경력을 쌓으면서 한국 남자 단식의 간판 주자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각종 대회에 나가서 괜찮은 성적을 거두면서 다른 종목에서는 모두 올림픽을 제패했지만, 유독 올림픽과 인연이 없던 남자 단식에서 기대주로 주목을 받은 것이다.

2004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는 세계랭킹 2위 및 올림픽 전에 열린 프레 올림픽 우승으로 기대를 모았다. 내심 금메달, 못 해도 메달은 따지 않을까 전망했었지만, 아테네 올림픽에서 16강전에서 패하면서 조기 탈락하고 만다. 반대로 2인자 격이었던 손승모가 돌풍을 일으키면서 은메달을 따면서 이현일은 상대적으로 빛이 바랬고, 한 동안 슬럼프에 빠졌다.

그러나 슬럼프에서 벗어나 다시 성적을 내기 시작했고, 남자 단식 선수로는 최초로 2006년 전영오픈 준우승을 차지하는 등, 곧바로 다시 한국 남자 단식의 간판 주자로 입지를 굳혔다. 비록 2006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는 3위를 차지하는데 만족해야 했다.[2] 그런데 2007 코리아오픈에서 1회전 탈락하면서 의욕을 잃고,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미련이 남아서 다시 대표팀에 컴백,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는 두 차례 투어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올림픽의 다크호스로 손꼽히게 되었다. 특히 코리아오픈에서 세계랭킹 1위인 린단을 잡은 것이 컸다.

대표팀 은퇴와 복귀라는 우여곡절 속에 다시 랭킹을 끌어올리고 맞은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4강까지 순항했지만, 4강전에서 말레이시아리총웨이에게 1-2로 아깝게 지고, 3-4위전에서 중국의 천진에게 아깝게 1-2로 패하면서 4위를 차지했다. 즉, 메달을 못 건졌다는 뜻이다. 결국 따지 못한 메달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2012 런던 올림픽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어차피 한국 남자 단식 선수 중에서 이현일을 능가하는 후배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2012년 전영오픈 4강, 스위스 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본인의 마지막 올림픽을 앞두고 제법 페이스가 괜찮은 편이었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단식 조별 예선을 무난하게 통과한 후, 16강과 8강을 잇따라 통과했지만, 4강에서 중국의 린단에게, 3,4위전에서 중국의 천룽에게 지면서 또 다시 4위를 기록하며 올림픽 메달과는 끝내 인연을 맺지 못했다.

국가대표에서 완전히 은퇴하나 싶었는데, 손완호를 제외하면 영 내세울 선수가 마땅치 않은 남자 단식의 상황 상 전격적으로 국가대표에 컴백했다. 그리고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남자 단체전 8강전 일본과의 경기에서 종합 스코어 2-2 상황에서 마지막 단식 주자로 나가 승리하며 팀을 4강으로 이끌었고, 결승전에서는 종합 스코어 2:0으로 앞서다 내리 두 경기를 내주고 쫓기던 남자 대표팀의 마지막 주자로 나와 중국 선수를 세트스코어 2:0으로 잡으면서 단체전 우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며, 클래스의 영원함을 보여줬다.

3. 은퇴 이후[편집]


국가대표에서 은퇴한 지금은 개인자격으로 국제대회에서 활약하는중인데 가끔 빅터 악셀슨, 요르겐센 등의 팔팔한 현역선수들을 이겨버리는 이변을 연출하고 계신다. 은퇴 후에도 클래스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4. 플레이 스타일[편집]


민첩한 발과 엄청난 체력을 지닌 수비형 단식 선수의 최고봉이다. 모든 스트로크의 정확도가 수준급으로 코트 내에 원하는 곳으로 정확히 콕을 보내며 약점을 노려 상대방의 체력을 갉아먹는 플레이를 자주 구사한다. 라켓을 떠나기 전까지 무슨 타구가 나올지 모를 정도로 모든 자세가 일정한 것 또한 특기다. 코스를 틀어서 역습의 빌미를 제공하는 수비 또한 훌륭한 편이다.

가장 큰 장점은 풋워크이며, 20대 시절 못지 않게 민첩성과 순발력이 엄청난 수준이며 잔스텝 없이 굉장히 효율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 풋워크와 섬세한 스트로크가 만나 굉장히 테크니컬한 플레이를 구사했다. 단점은 스매시다. 각도와 코스를 위해 파워를 희생하다보니 좀처럼 강스매시를 하지 않는데 이 때문에 장기전으로 가다가 전세가 뒤집히기도 한다.

5. 수상 기록[편집]


세계선수권
동메달
2006 마드리드
남자 단식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02 부산
단체전
금메달
2014 인천
단체전
은메달
2002 부산
남자 단식
은메달
2006 도하
단체전
은메달
2010 광저우
단체전
동메달
2006 도하
남자 단식
아시아선수권
동메달
2005 하이데라바드
남자 단식
수디르만 컵
금메달
2003 에인트호번
혼성 단체전
동메달
2001 세비야
혼성 단체전
동메달
2005 베이징
혼성 단체전
동메달
2011 칭다오
혼성 단체전
토마스 컵
은메달
2008 자카르타
단체전
은메달
2012 우한
단체전
동메달
2000 쿠알라룸푸르
단체전
동메달
2004 자카르타
단체전
[1] 지식인에 지글러 lhi를 쓴다는 얘기가 돌지만 라켓디자인을 확인하면 확실히 565가 맞다. 도색만 바꾼 경우일 수도 있지만 현재까지 정확히 어떤 라켓을 쓰는지에 대한 증거는 경기영상 외에는 전무하므로 565로 보는 것이 맞다.[2] 배드민턴의 최강국이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일본 등이라서 아시안 게임=세계선수권이다. 즉, 다른 종목과 달리 아시아가 최강인 종목이라 아시안 게임도 치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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