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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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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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미상
1. 설명


1. 설명[편집]


후한 말의 인물. 자는 백도(伯都).

양주 한양군 기현 사람으로 어려서는 궁중의 숙위로 일하다가 20세에 전성[1]을 지냈으며, 나아가서 면지의 현령을 지내 면지에서 관중으로 통하는 길을 뚫는 공사를 주관했다.

170년에 무도태수를 맡았고 부임하면서 서협도가 양주와 익주로 통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는데, 이 곳은 지세가 험해 걷기가 불편해 사람들과 상의해 이 길을 건설했다. 속관을 시켜 도로를 수리했고 도로가 완성되자 사람들이 각석을 만들어 이흡을 찬양해 그의 정치는 마애비석인 서협송에 새겼다.

171년에 석리교각을 세워 172년에 사람들이 부각송을 새겨 이흡을 칭송했다.

이흡의 정치는 백성을 사랑하고 가는 곳마다 치적이 좋아 백성들이 칭송했으며, 어려운 공사를 해서 백성들에게 이득이 되었다. 명나라 사람인 호찬종은 그를 한나라의 양리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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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송 사건 등을 관장하는 직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