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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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실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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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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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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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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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그리너스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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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시티즌
12대




이흥실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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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실의 기타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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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축구 감독

파일:staff_list_hc이흥실.jpg
이름
이흥실
李興實|Lee Heung-Sil

출생
1961년 5월 28일[1] (62세)
경상남도 마산시
(現 경상남도 창원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68cm
학력
마산공업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학사)
직업
축구 선수 (미드필더 / 은퇴)
축구 감독
축구 경영인
소속
선수
포항제철 아톰스 (1985~1992)
완산 푸마 (1993)
감독
마산공업고등학교 (1993~2005)
전북 현대 모터스 (2012 / 감독 대행)
안산 무궁화 FC (2015~2016)
안산 그리너스 FC (2017~2018)
비엣텔 FC (2019)
대전 시티즌 (2019)[2]
코치
전북 현대 모터스 (2005~2011 / 수석 코치)
경남 FC (2014 / 수석 코치·2군 감독)
기타
김천 상무 FC (2021~2022 / 단장)
국가대표
9경기 (대한민국 / 1982~1990)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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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파일:이흥실서명.png


1. 개요
2. 선수 경력
2.1. 클럽
2.2. 국가대표
2.3. 플레이 스타일
3. 지도자 경력
3.1. 초기 (1993~2011)
3.2. 전북 현대 모터스 감독 대행 (2012)
3.3. 경남 FC 코치 (2013)
3.4. 안산 경찰청 감독 (2015~2016)
3.5. 안산 그리너스 FC 감독 (2017~2018)
3.6. 비엣텔 FC 감독 (2019)
3.7. 대전 시티즌 감독 (2019)
3.7.1. 2019 시즌
4. 경영인 경력
5. 지도자로서의 평가
6. 논란
7. 기타
8. 수상 경력
8.1. 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축구 선수 출신 감독, 경영인.

과거 선수 시절 포항 스틸러스에서 오랜 시간 활약했고 지도자로서도 전북 현대 모터스 수석 코치로서 최강희 감독을 잘 보좌하면서 전북의 전성기를 이끌어냈다.

이후 전북 현대 모터스의 감독 대행을 맡았지만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후 2016년 안산 경찰청을 통해 프로 구단 감독으로 데뷔했다. 2017년 안산 그리너스 FC의 초대 감독을, 2019 시즌 후반기에는 대전 시티즌의 감독을 맡앝다.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편집]


파일:흥실선수.jpg

마산공업고등학교한양대학교를 거쳐 1985년 포항제철에 입단했다. 데뷔 시즌부터 맹활약하여 팀의 준우승을 이끌어 1985년부터 제정된 신인상을 차지하며 화려한 데뷔를 알린다. 그 다음 시즌인 1986년에도 맹활약하며 포항제철의 첫 우승에 기여하여 K리그 MVP가 되었다.[3] 1988년에는 포항제철의 우승에 기여, 1989년에는 11도움으로 도움왕에 오른다. 그리고 1991년 시즌에 프로축구 통산 최초로 30-30 클럽에 가입한 선수이다.

1992년까지 포항제철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가 전북 버팔로에 지명된 황선홍의 지명권을 준다는 조건 하에 1:8 트레이드로 떠밀리듯 이적하게 됐다. 그 때 완산 푸마에 지명된 황선홍의 지명권을 포항제철 아톰즈에 트레이드하는 조건이었다. 완산 푸마 이적 후 대통령배 대회에만 1경기 출장한 후, 불과 3개월 만에 현역 은퇴를 선언하였다. 사실상의 포항 원클럽맨.


2.2. 국가대표[편집]


한양대학교 시절부터의 맹활약으로 1학년 때 처음 대표팀에 선발되었지만 무릎을 다쳐서 중간에 나와야 했고, 2학년때 다시 선발 되었다.

하지만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일본에게 패하고, 83년 한일정기전 때도 비기는 등 대표팀에서는 소속팀에서의 만큼의 큰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였다.

그 당시 대표팀에서는 수비력을 강조하기 시작했는데 이흥실은 공격력은 좋은데, 수비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이후 85년부터 87년까지 간간히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던 이흥실은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본선 엔트리에 가까스로 이름은 올렸으며, 우루과이와의 조별리그 3차전에 선발로 출장해 1경기를 소화하였다.


2.3. 플레이 스타일[편집]


이흥실은 80년대 시절 드문 플레이스타일을 가진 테크니션으로 스피드와 발재간을 동시에 지닌 미드필더였다. 특히 공격적 재능에 충실하여 슈팅과 패스를 자유자재로 넣어줄 수 있는 선수였으며, 미드필더이면서도 공격에 적극적으로 가담해 많은 득점을 올렸으며, 특히 빠르고 강한 킥력을 바탕으로 좌우로 넓게 벌려주는 패스의 정확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그로 인해 탱크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수비가담능력이 다소 떨어졌지만 압도적인 공격력으로 이를 만회하는, 전형적인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3. 지도자 경력[편집]



3.1. 초기 (1993~2011)[편집]


파일:강희흥실.jpg

은퇴 후 모교인 마산공고 감독을 맡으며 2005년까지 지도자 경력을 쌓았으며, 2004년 당시 대표팀 코치진에서 사임한 최강희와 함께 브라질로 축구 유학을 갔다가 2005년 7월 전북 감독으로 선임된 최강희 감독이 이흥실 당시 마산공고 감독에게 수석 코치직을 제안하자 두 말 없이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후 2011년까지 최강희 감독을 보좌하면서 변변찮았던 지방 구단이었던 전북 현대를 3년 동안 두번의 우승을 하는 강력한 명문 구단으로 끌어올리는데 큰 기여하였다.


3.2. 전북 현대 모터스 감독 대행 (2012)[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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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레바논 쇼크의 여파로 조광래 감독이 국가대표팀 감독에서 경질되면서 대한축구협회가 전북의 최강희 감독을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하였는데 최강희 감독은 취임하는 자리에서 2014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이 끝나는 2013년 6월까지만 대표팀 감독직을 수행하고 이후로는 전북으로 돌아오겠다고 밝히면서 감독 대행직에 올랐다.

3월 3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홈 개막전이자 자신의 프로 감독 첫 데뷔전에서 성남을 상대로 3:2의 승리를 거두며 화려한 데뷔를 했다. 하지만 3월 7일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 첫 경기에서 중국의 광저우에게 홈에서 5:1 대패를 당하는 참사가 일어나고 일본의 가시와 레이솔 원정에서도 또 5:1로 패배하고 말았고 이후 태국의 부리람과의 2연전에서 승리하고 광저우 원정에서 극적인 3:1 역전승을 거두며 반등하나 했지만 가시와와의 홈경기에서 무기력하게 패배하며 전북 현대 역사상 처음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 탈락이라는 수모를 맛보고 말았다. K리그에서도 디펜딩 챔피언답지 않은 경기력으로 3월달 다섯 경기에서 2승 1무 2패라는 생각보다 저조한 성적을 내며 부진에 빠졌다.

잇따른 5:1 패배로 오대일 감독, 겹게 점이라는 오명을 얻으며 욕을 많이 먹었으나 4월 27일 광주와의 경기에서 광주를 5:2로 격파하고 이후 6월 28일까지 8연승을 달리며 3주 연속 1위를 수성한다. 이 8연승은 최강희 감독 시절에도 달성하지 못했던 기록이며 전북 역사상 최다연승 기록이다. 7월 11일, 서울전에서 K리그 통산 최다 연승 기록과 타이기록인 9연승에 도전했으나 아쉽게 0:0 무승부에 그치며 연승행진을 멈췄다.

그러나 시즌 내내 이어진 수비진의 줄부상으로 미드필더인 김정우나 스트라이커인 정성훈이 수비를 보는 사태에까지 이르렀고 결국 상승세를 이어나가지 못하며 2012년 시즌을 2위로 마쳤다.

최강희 감독이 갑자기 팀을 떠난 상태에서 1년동안 선수들의 부상 악재에도 불구하고 팀의 리그 준우승을 이끌었으나, 전북 팀 역사상 최초로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 탈락 등 팬들의 높아진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평을 받으며 2012년 12월 12일에 자진 사퇴하고 영국으로 떠났다. 이후 브라질 출신의 파비우 레푼지스 피지컬 코치가 이흥실의 후임으로 전북의 감독 대행을 맡았고, 최강희 감독의 복귀가 잠시 지연되자 새로 수석코치가 된 신홍기최강희 감독이 복귀하기 전에 1경기를 감독 대행으로 치렀다.

전북에서 이흥실은 최강희 감독이 사용하던 닥공전술을 구사하였지만 이흥실 감독의 닥공축구는 최강희 감독의 닥공축구와는 다르게 굉장히 공격과 수비의 밸런스를 중요시했으며, 수비시 최강희 감독은 전진함으로서 전방압박을 요구했다면, 이흥실 감독은 공격수들이 수비진영의 대형에 맞추어 자리하는 패턴을 요구했었다.

하지만 이런 이흥실의 닥공축구는 기존의 전북 축구의 색깔하고 다소 달랐다는 점과 더불어 수비적인 측면에서도 기존의 닥공축구와는 다르게 허점이 많았다는 점에서 아직까지도 많은 축구팬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분명히 갈리고 있다.


3.3. 경남 FC 코치 (2013)[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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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현대를 떠난 후 영국으로 건너가 잠시 연수를 받았다. 이후 고향 팀 경남 FC의 감독 내정설이 들렸으나, 이차만 전 부산 감독이 후임 감독으로 내정됐고, 이흥실은 경남 FC의 수석코치로 선임됐다. 그러나 구단 고위층 인사와 선수기용 문제로 불협화음을 겪음과 더불어 시즌 중반 기술 고문으로 영입된 브란코 바비치가 실질적인 수석 코치 역할을 수행하면서 결국 2군 감독으로 내려가 시즌을 마쳤다.#


3.4. 안산 경찰청 감독 (2015~2016)[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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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계약이 만료된 조동현 감독의 후임으로 안산 경찰청의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마침내 프로팀 감독으로 데뷔하게 되었다.

하지만 2015 시즌에는 적응이 안 된 모습을 보이며 안산 경찰청K리그 챌린지 최강 스쿼드에 비해 11팀 중 10위라는 실망스러운 성적을 기록하였다.

2016 시즌에는 반등에 성공. 리그 초반 선두로 치고 나섰으며, 2위인 대구 FC보다 골득실이 뒤졌지만 그해 순위를 정할 때 득점을 골득실보다 우선으로 본다고 규정이 바뀐 탓에 득점에서 앞서서 간신히 K리그 챌린지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연고지 이전 문제 때문에 승격권을 박탈 당했는데, 문제는 이 때문에 시즌 막판 충주 험멜과의 원정 경기에서 1:8 대패를 당하는 등, 승격을 못하는 것에 대한 태업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하였다.


3.5. 안산 그리너스 FC 감독 (2017~2018)[편집]


파일:201808220954501.jpg

2016 시즌 경찰청을 우승시킨 것을 인정받아 새로 창단하는 안산 그리너스의 초대 감독을 맡게 되었다.[4]

2017년 대전 시티즌과의 개막전을 통해 창단 경기를 치렀고, 2:1 승리를 거두며 안산의 창단 첫 승을 이끌었으며, 이후 대전 시티즌 원정 경기에서 창단 첫 원정 승리를 이끄는 등 유독 대전 시티즌을 상대로 강한 면모를 보였고, 파이브백에 가까운 스리백을 토대로 한 선수비 후역습을 주로 구사하였지만, 지나치게 공격에 있어 라울이나 장혁진 등 일부 선수이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았다는 한계 역시 존재했으며, 창단 첫해 시즌 전 이흥실 감독이 예상했던 순위인 10팀 중 9위를 거두었다.

2018시즌 개막전에서는 비록 아산 무궁화에 패했지만, 대전 시티즌과의 홈 개막전에서는 선수 두 명이 퇴장당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2017년과 마찬가지로 극장골로 3:2 승리를 거두면서 대전전 무패행진을 이어갔다.

그러나 전반기까지는 6승 5무 5패, 승점 23으로 그런대로 버텼던 것과는 달리 후반기 들어서는 외국인 공격수들의 부진과 불안한 수비의 한계를 드러내며 내리 8연패를 당하며 최하위로 처졌고, 결국 2018년 8월 21일 지휘봉을 내려 놓았다.


3.6. 비엣텔 FC 감독 (2019)[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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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베트남 1부 리그 승격팀 비엣텔 FC와 2년 계약을 맺고 감독으로 부임하였으며, 자신을 보좌할 코치로 전재호, 김광재 코치를 선임하였다.

하지만 4승 2무 6패라는 부진한 성적과 더불어 구단과의 불화 등을 이유로 6월 12일 구단과의 계약을 해지했다.

3.7. 대전 시티즌 감독 (2019)[편집]


파일:downloadfile-8대전이흥실.jpg

2019년 7월 1일 대전 시티즌의 12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대략 1년만에 K리그 감독으로 복귀하였다.#

한편 이번 선임으로 대전 시티즌은 2007년 이후 12년만에 신인이 아닌 K리그 감독 경력자를 감독으로 선임하게 되었다.[5]

전임 고종수 감독 뿐만 아니라 대전 구단은 2010년대 들어 지속적으로 프로팀 감독 경력이 없는 신인 지도자를 감독으로 선임 및 데뷔 시켜주었다가 대부분의 감독들이 프로팀 감독으로서의 경험과 역량 부족 등의 한계를 드러내며, 매번 좋지 못한 성적을 기록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고, 신임 최용규 사장이 이러한 기존의 감독 선임 체제에 문제 의식을 느끼고 강행한 선임으로 보인다.

이흥실에게 있어 이번 대전 감독직은 상당히 중요한 자리인데, 과거 프로팀 감독으로서는 아쉬운 적이 많았던 만큼, 만일 대전에서도 성과를 내지 못핬다면 자칫 실력 없는 감독으로 낙인 찍혀 프로팀 감독으로서 커리어가 끝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취임식에서 어려운 상황에 놓인 팀 분위기를 조금씩 바꿔 서서히 강팀으로 만들어갈 생각이라며 활기차고 빠른 템포의 축구를 구상 중임을 밝혔다.


3.7.1. 2019 시즌[편집]


FC 안양과의 리그 18라운드를 통해 대전 시티즌 감독 데뷔전을 치렀으나 1:2로 패했고, 연이은 전남전에서도 2:0으로 패하며, 무승 행진을 끊지 못했고, 감독 부임 후 첫 영입 선수인 외국인 마테우스 알레산드루가 메디컬 테스트에서 HIV 양성 반응을 보이면서 입단 하루만에 계약을 해지당하는 악재까지 겹쳤다. #

이후 여름 이적 시장에서 이인규, 박민규, 김찬, 김태현, 하마조치, 안토니오 등을 영입하면서 포지션별 스쿼드의 불균형이 심했던 대전의 밸런스 안정화를 꾀했는데, 특히 전문 센터백은 2명 밖에 없을 정도로 심각했던 수비는 쓰리백을 바탕으로 젊은 선수들을 중용하며 지역 방어 보다는 철저한 대인 마크를 중심으로 수비 조직력을 다졌고, 대인 마크의 약점인 공간 커버를 미드필더들의 적극적인 수비가담으로 메웠다.[6]

7월 21일 수원 FC전에서 홈 첫 경기를 치렀으나 2:4로 패했고, 특히 이날 경기에서는 세트피스에서만 3골을 허용하며 세트피스에 취약한 모습을 보여주며 아쉬움을 남겼다.

7월 27일 아산 무궁화전에서는 비록 0:1로 패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경기를 지배하면서 진영에서 볼을 방출할 때 컷 안당하고 역습으로 잘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줬고, 마무리가 아쉽긴 했지만 공격 작업도 신학영으로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패턴 시도했고 잘 먹혀드는 등 경기력이 확실히 전보다는 올라오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8월 3일 친정팀 안산 그리너스전에서는 새로 영입한 안토니오와 키쭈의 활약을 앞세워 2:0 승리를 거두면서 감독 데뷔승과 대전의 7연패 및 14경기 연속 무승 탈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부산 아이파크와의 23라운드에서 2:0으로 패하며 리그 최하위로 떨어졌다.[7][8]

부천 FC와의 24라운드에서는 외국인 선수인 하마조치와 안토니오, 키쭈 전원을 모두 선발로 처음 기용하였고, 하마조치가 데뷔골을 성공시키는 등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줬고, 확실히 기존에 고립되었던 키쭈에게도 찬스가 생기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외국인 선수들이 서로의 위치에 대한 인지가 부족했던 탓에공격 진영에서 잦은 패스 미스가 발생하고 공격 타이밍에서도 조금씩 어긋났고, 이런식으로 공격에서 잦은 불협화음이 발생하니, 공격 진영에서 실수가 발생한 뒤, 상대의 역습으로 실점을 허용하며 1:2 역전패를 당해 아쉬움을 남겼고, 외국인 공격수들의 팀워크 문제는 이흥실 감독에게 큰 숙제로 남았다.#

연이은 리그 1위 광주전에서는 5백의 극단적인 끈끈한 수비 축구를 펼치면서 광주 플레이메이커 임민혁을 집중 마크해 2선에서 볼 배급을 끊었고, 리그 득점 선두 펠리페를 고립 시켜 광주의 공격을 무디게 하면서 0:0 무승부를 거두며 클린시트를 기록하였으며, 8월 31일 안양전에서도 이같은 수비 축구를 펼치면서 에이스 조규성을 강한 압박과 거친 수비로 저지했으며, 빠른 수비 전환으로 안양의 역습 축구에 쉽게 흔들리지 않으면서 두경기 연속 클린시트를 기록하였다.#

9월 14일 서울 이랜드전에서 1:0 승리를 거두며 홈 첫승과 3경기 연속 클린시트를 기록했으며, 연이은 부산전에서도 0:0 무승부를 기록하며 4경기 연속 클린시트를 기록했다.

9월 21일 수원 FC전에서는 이지솔이 경고 누적으로 결장하면서 기존의 스리백을 버리고 포백으로 명단을 꾸렸지만, 사실 이는 트릭이었다.

경기 시작과 동시에 중앙 미드필더 안상현이 오른쪽 수비수로 내리면서 3-4-3 포메이션을 구축했던 것이었는데, 트릭은 한 번에 끝내지 않고 경기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안상현이 미드필드진으로 이동하면서 다시 포백으로 변화였고, 급변하는 대전의 전술에 수원FC는 크게 당황했다.

비록 2:2 무승부를 거두었지만 결과적으로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이흥실 감독의 트릭에 수원 FC도, 취재진도 모두 속았기 때문이었다. 트릭도 전술의 하나라고 본다면, 분명 대전도 이흥실 감독과 함께 작은 희망을 봤다고 볼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며, 이날 경기로 대전은 가까스로 탈꼴지를 성공하였다.#

하지만 수원 FC전 이후 2019 시즌 잔여 경기가 7경기에 불과하고 당시 8위인 전남 드래곤즈와의 승점 차가 9점까지 벌어져 사실상 중위권으로 도약하기 어려운 만큼 이흥실 감독은 남은 경기에서 최대한 승수를 쌓아 꼴찌만은 면함으로서 축구특별시로서 자존심을 지키는 데 주력하는 한편 신인 선수들의 경기 감각을 끌어올리거나 다른 방식으로 선수를 활용하면서 사실상 2020 시즌을 준비하는 투트랙 전략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9월 29일 안산 그리너스전에서는 예상을 깨고 포백으로 나섰으며, 전반 내내 이정문의 높이를 앞세워 상대를 압박했으며, 4백을 기반으로 볼 점유율을 가져가며 중원을 장악하는 공격 형태를 취했고, 후반들어 안상현을 불러들이고 박수일을 넣어 중원의 활동량을 높이면서 스리백으로 변화였다.

하지만 끝내 득점을 기록하지 못하면서 0:0 무승부를 기록, 6경기 연속 무패를 기록했다.#

10월 2일 부천 FC전에서는 3골을 터트리며 부임 이후 한경기 최다골을 기록, 3:1 승리를 거두며 7경기 연속 무패 행진을 달렸다.

한편 부천전 현장에서 허태정 대전시장이 구단 매각에 대해서 언급한 것에 대해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소식이다"라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으며, 구단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랄 뿐이다. '매각'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들릴 수는 있지만, 기업 후원, 스폰서 유치 등으로 받아들인다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며 "선수들에게는 신경쓰지 말라고 당부했다. 경기에만 집중하라고 이야기했다"라고 말했다.#

10월 5일 전남 드래곤즈전에서 키쭈가 페널티킥을 실축하는 악재 속에서 1:2 역전패하며 무패 행진을 마무리했다.

10월 19일 아산 무궁화전에서 수비에 치중하면서 박인혁, 안토니오 등 스피드 있는 선수들을 앞세운 역습 축구를 구사해나갔고, 안토니오의 득점으로 1:0 승리를 거두며 아산전 무승 행진을 끊어냈으며, 11월 2일 FC 안양전에서 1:1 무승부를 거두며 리그 9위를 최종 확정, 꼴찌는 면하며 대전 구단의 자존심을 지켜주었다.

하지만 2020시즌은 하나금융지주가 인수하면서 황선홍새로운 팀의 감독으로 내정했다는 기사가 보도되면서 거취 문제가 위태로워졌고, 이후 인터뷰를 통해 “사실상 날 경질하는게 아니냐? 시 고위층과 기업이 협상해 기업 구단을 유치하는 거야 찬성이다. 좋은 현상이 아닌가. 하지만 감독에 관한 이야기는 다르다. 구단이 기업구단으로 바뀌면서 코칭스태프를 새로 꾸려야겠다면, 나는 그 생각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공론화되기 전에 내게 먼저 얘기해야 하지 않나? 절차라는 게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얘기를 접했다."라고 언급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설령 감독을 바꾼다고 하면 계약기간이 2년이나 남은 상태인 이흥실 감독에게 구단이 미리 통보를 해 양해를 구하거나 계약 문제에 대해 의견을 조율한 후 차기 사령탑 선임 작업을 공론화시켜야 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이자 매너이지만 문제는 그런 통보 하나 없이 이흥실 감독 입장에서는 언론 보도로 새로운 감독이 내정됐다고 알게 된만큼 시즌이 끝나지 않은 와중에 시즌 중반 부임해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추스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노력한 이흥실 감독 입장에서는 이번 사태는 토사구팽 당했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렇기에 이흥실이 대전 구단으로부터 분노와 불쾌감을 느끼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며, 과거 유상철 감독에 이어 또다시 이런 식으로 감독에게 예의 없는 행동을 반복한 대전 시티즌 구단은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리그 1위 광주 FC와의 폐막전에 임했고, 김찬, 윤성한의 등의 교체로 투입된 젊은 선수들의 활약을 앞세워 3:1 역전승을 거두며 2019 시즌을 잘 마무리했다.

이흥실 감독은 전반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대전 지휘봉을 잡았음에도 수비를 안정화시키며 실점을 줄이면서 대전은 상승세를 탔고 시즌 막판 12경기에서 단 1패만을 기록하면서 어느정도 가능성을 이어갔고, 대전 구단이 기업 구단으로 바뀌는 만큼 선수 보강 등에 있어 아무래도 전보다는 풍족해질 만큼 2020시즌 만일 이흥실 감독이 잔류한다면 충분히 기대해볼 만한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거취가 불분명한만큼 당장 전지훈련을 비롯해 임대로 뛰고 있는 선수들을 비롯해 외국인 선수들에 대한 처분이나 거취같은 선수단 구성 문제들을 신속하게 처리하면서 2020시즌을 준비해야하게 됐는데 자칫 이러한 것들이 지체 될 수 있을만큼 이흥실의 시름이 깊어질 것으로 전망되었다.

2020시즌을 앞두고 대전 구단이 해체 및 재창단을 하면서 기존의 선수단을 대거 정리하고 이미 황선홍 감독과 강철 코치가 팀에 합류했다고 보도되면서 사실상 대전을 떠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후 이후 대전 시티즌의 새로운 운영을 맡은 하나금융그룹 축구단의 창단식에 황선홍 감독이 참석한다고 밝혀지면서 황선홍 신임 감독 부임이 확정되면서 대전 구단을 거의 쫓겨나듯이 떠나게 되었으며, 대전 시티즌의 시민 구단 역사상 마지막 감독이 되었다.#

한편 2020시즌 엄청난 투자와 네임벨류 있는 선수들의 대거 영입에도 불구하고 황선홍 감독이 기대에 못미치는 부진한 경기력과 구단과의 마찰 등으로 시즌 중반 감독직에서 물러났고, 승격도 실패하면서 이럴꺼면 차라리 이흥실 감독을 데리고 2020시즌을 갔었어야 한다는 여론 역시 조성되었다.

애초에 계약 기간이 많이 남아 있고, 아무런 문제없이 감독직을 잘 수행하고 있던 이흥실 감독을 저런식으로 내보내는 것은 애초에 말이 안되는 일이었으며, 이건 감독이기 전에 사람에 대한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던 것이다.[9]

4. 경영인 경력[편집]


2021시즌을 앞두고 김천 상무 FC의 단장으로 부임한다는 단독 기사가 보도되었다.#

이후 언론과의 통화에서 "김천상무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고 밝히며 단장 부임 사실을 인정했다.

2021시즌 김천의 K리그2 우승과 1부 리그 승격을 이끌면서 선수와 감독, 프런트 신분으로 리그 우승을 경험하게 되었다.

2022시즌 이후 김천 상무 FC 단장에서 물러났다.

5. 지도자로서의 평가[편집]


냉정하게 평가해서 그동안의 성적만을 놓고 보면 아직까지는 감독으로서의 능력이 결코 좋다고 보기 어려우며, 명선수는 명지도자가 될 수 없다의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하다.

그러나 단순히 축구전술에 대한 이해도와 응용력 등은 조광래, 박성화와 더불어 현존하는 대한민국 축구 지도자 중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아직도 전북 현대 구단의 메인전술로 선호되고 있는 4-2-3-1을 이용한 공격적이고 직선적인 윙어축구는 사실상 이흥실이 창조해낸 전술로서 닥공 축구 전술의 실질적인 설계자이자 창조자이며, 가장 아름답고 선진적이던 전북 축구의 전술적 트렌드를 이끌던 지도자였다.[10]

특히 공격 중심의 전술을 운용하고 있지만, 팀 스피드를 끌어올리기 보다는 공을 점유하고 빈 공간을 계속적으로 찾아들어가는 움직임을 중요시한다. 때문에 공격형 미드필더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경기 운영 스타일을 주로 보인다.

하지만 박성화와 마찬가지로 지도자로서의 능력치가 전술에만 몰빵되어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감독으로서 필요한 선수 관리 및 조합, 안목 등 모든 부분에서는 많이 미숙함을 보였으며, 또한 지나칠 정도로 포메이션과 전술 놀음에 집착한다는 평가가 많다. 자기 말로는 유연한 전술로 팀의 밸런스를 깨부수고 선수를 지나칠 정도로 이리저리 이동시키는 등 돌발스러운 행동을 자주 벌이는데 실제로 전북 감독 대행 시절 펩 과르디올라가 구사하는 쓰리백 전방압박 축구의 도입과 더불어 앞서 언급한 공격수 정성훈의 중앙수비수 기용[11] 등 파격적인 전술을 너무 많이 추구했는데 오히려 독이 되어 팀이 흔들리고 말았다.

대전 시티즌에서는 부임 이전 문제로 지적되던 불안한 수비는 해결됐지만 문제는 지나치게 수비에 기반을 둔 플레이가 반짝 살아난 창끝마저 무디게 만들었다고 평가받는다.

이 때문에 전북 수석 코치 시절에는 많은 프로 구단이 감독감으로 탐내던 지도자였으나 전북 현대 감독 대행 시절과 경찰청을 거치며 거품이 빠졌고 선수빨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2019년 하반기 동안은 그래도 대전 시티즌에서는 성적과 더불어 각종 사건 사고와 문제, 구설수 등으로 많이 망가져서 여러 측면에서 적폐 청산과 개혁을 추진하면서도 시민 구단에서 기업 구단으로 전환되는 등의 과도기 시기를 겪는 팀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잘추스르고 안정적으로 팀을 운영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호평을 받았지만 그래도 제대로 된 평가를 하기에는 재임 기간이 너무 짧았다.


6. 논란[편집]


1988년 10월 12일 교통사고 특례법 위반 혐의 때문에 포항경찰서로부터 구속 영장이 신청되었다.#

이번 사건이 당시 소속 구단 포항과의 FA 문제로까지 겹치면서 구단에서는 선수들의 권리를 제한했고 이흥실은 끝까지 버텼지만 결국 1993년 포항을 떠나 완산 푸마로 이적하게 됐다.


7. 기타[편집]


  • 2008년 시즌을 앞두고 경남 FC에서 박항서 감독이 구단 프런트와의 마찰로 사임하자 경남 FC의 새로운 감독 후보로 경상남도 출신의 젊은 지도자인 이흥실 코치가 유력한 후보로 올랐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조광래FC 서울 감독이 선임되면서 유야무야. 이후 2010년에 조광래 감독이 국가대표로 부임하면서 경남 FC 감독직이 비자 이번에도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FC 서울 2군 코치였던 최진한 감독이 선임되며 또 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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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동이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전임 최강희 감독과 청년회장인 이동국에 이어 자신은 새마을지도자 정도면 괜찮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즉석 코스프레를 했다.

  • 마산공고 시절에 구단 숙소에서 도주한 적이 있다. 그 때 함께 도주한 인물이 신홍기이다.

파일:K리그 더 클래식 레전드 선수 및 감독.png

  • 지도자로서의 능력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팬 서비스만큼은 좋은 감독인데, 팬들이 싸인이나 사진 요청하면 친절하게 싸인을 해 주거나 사진을 찍어준다.

  • 전북 현대 감독 대행 시절 성적과는 별개로 전북 팬들은 이흥실에 대해 좋게 생각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2023년 5월 29일 포항 스틸러스전북 현대와의 홈경기를 창단 50주년 기념매치의 일환으로 팀 레전드인 이흥실을 초청했는데, 이흥실의 이름이 나오자 전북 팬들이 이흥실의 이름을 연호해주기도 했다.#, #


8. 수상 경력[편집]



8.1. 표[편집]


파일:K리그 클래식(2013~2017) 로고(가로형).svg 신인상
1984년

1985년

1986년
신인상 제정

이흥실
(포항제철 아톰즈)

함현기
(현대 호랑이)
파일:K리그 클래식(2013~2017) 로고(가로형).svg MVP
1985년

1986년

1987년
한문배
(럭키금성 황소)

이흥실(포항제철 아톰즈)
최강희(현대 호랑이)

정해원
(대우 로얄즈)
파일:K리그 클래식(2013~2017) 로고(가로형).svg 도움상
1988년

1989년

1990년
김종부
(포항제철 아톰즈)

이흥실
(포항제철 아톰즈)

최대식
(럭키금성 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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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력 생일, 양력은 7월 10일[2] 시즌 도중 부임[3] 종전 서술에는 현대 호랑이의 수비수 최강희와 함께 공동 MVP에 올랐다고 되었지만, 최강희의 MVP는 1986년 프로축구선수권 MVP로 오늘날에는 이 대회를 리그컵의 일환으로 분류하기 때문에 K리그 MVP에는 기록하지 않는다.[4] 충청남도 아산시로 떠나는 경찰청의 신임 감독은 송선호로 내정됐다.[5] 2007년 김호 이후 처음이며, 2010년대 이후로는 처음이다.[6] 실제로 이후 박민규-김태현-박수창-황재훈 조합은 많은 활동량을 바탕으로 공간을 메웠다.[7] 하지만 이를 이흥실의 책임으로 보기는 어렵다.[8] 애초에 이흥실의 선임은 2019 시즌 좋은 성적을 내기보다는 2020시즌을 준비하는 데 중점을 둔 선임이라해도 무방하다.[9] 하나금융그룹 측에서는 인수 과정 중 선수단 및 사무직 고용 승계에 집중했다며 대대적으로 기사까지 냈던 것에 반해 유독 사령탑에서만큼은 무성의했다는 것이 평이다.[10] 팀 코치진의 상징과도 같은 최강희의 경우, 전술보다는 선수단 관리와 조련에 탁월한 역량을 보여주는 지도자 유형이다. 실제로 두 가지를 모두 해내는 지도자를 찾기는 매우 어려우며 두 명의 지도자가 역할분담하는 체계가 가장 현실적이다.[11] 이때는 수비수 부상이 너무 많아 아예 수비진이 파탄날 지경이라 어쩔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