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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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영문 엠블럼.svg [1]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INCHEON ELECTROLAND ELEPHANTS
창단
1994년 5월 23일 (29주년)[2]
2003년 10월 1일 (20주년)[3]
매각
2021년 6월 9일[4]
후신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5]
구단명 변천
부천 대우자동차 농구단 (1982년 ~ 1993년)
부천 대우증권 실업농구단 (1994년 ~ 1996년)
부천 대우증권 제우스 (1997년 ~ 1998년)
부천 대우 제우스 (1998년 ~ 1999년)[6]
부천 신세기 빅스 (1999년 ~ 2001년)
부천 SK 빅스 (2001년 ~ 2003년)
부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 (2003년 ~ 2009년)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2009년 ~ 2021년)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 (2021년 ~ 현재)
연고지
파일:인천광역시 휘장.svg 인천광역시 (1997년 ~ 2021년)
모기업
파일:전자랜드 Logo.jpg
구단 사무국
인천광역시 부평구 체육관로 60 (삼산동)[7]
홈 경기장
인천도원체육관 (1997년)
부천실내체육관[8] (1997년 ~ 2006년)
인천삼산월드체육관 (2006년 ~ 2021년)

연습체육관
인천삼산월드체육관 보조경기장
클럽하우스
인천삼산월드체육관 1층[9]
키트 스폰서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0px-Joma_LogoESP.png
마스코트
파일:external/s20.postimg.org/Elephants_KOR_mascot.png
끼리코
워드마크
파일: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영문 워드마크.svg (영문)
파일:external/s20.postimg.org/etland_elephants_kor_wordmark.png (국문)
홈페이지
파일:페이스북 아이콘.svg |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매각 당시의 구단경영진 (2021년)
구단주
홍봉철
단장
이익수
감독
유도훈
주장
정영삼
우승 기록
챔피언결정전 우승 (0회)
정규시즌 우승 (0회)
컵대회 우승 (0회)
플레이오프 진출
[ 펼치기 · 접기 ]
챔피언결정전
(1회 / 1패)

2018-19
4강 플레이오프
(6회 / 1승 5패)

2003-04, 2010-11, 2012-13, 2014-15, 2018-19
2020-21

6강 플레이오프
(14회 / 4승 10패 / 최다진출)

1997, 1997-98, 1998-99, 2000-01 , 2001-02
2003-04, 2008-09, 2011-12, 2012-13, 2013-14
2014-15, 2016-17, 2017-18, 2020-21


프랜차이즈 팀 기록
[ 펼치기 · 접기 ]
최고 승률
.704
2010-11시즌 54경기 38승 16패
최저 승률
.148
2005-06시즌 54경기 8승 46패
최다 승
38승
2010-11시즌 54경기 38승 16패
최다 패
46패
2005-06시즌 54경기 8승 46패
최고 FA 계약
5년 5억원[1]
2017-18시즌 박찬희


1. 구단 소개
2. 시즌별 일람
3. 응원단[10]
5. 역대 감독
7. 기타




1. 구단 소개[편집]


All of my Life

KBL의 前 프로농구단으로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의 전신이다. 연고지는 인천광역시, 홈 구장은 부평구 삼산동에 위치한 인천삼산월드체육관.

인천 연고 농구단의 역사는 질곡의 역사를 지닌 연고 야구단만큼이나 파란만장하다. 최초의 뿌리는 1996년 동양제과 실업 농구단과 비슷한 시점에 창단된 대우증권 실업 농구단 시절부터다. 당시 연세대학교명지대학교를 연고 학교로 하여 창단했는데 이때 영입한 창단 멤버들이 무려 우지원, 김훈, 석주일, 조성훈, 정재헌농구대잔치 시절 대학농구의 최고 인기스타들이었다. 그 덕에 실업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는 부동의 인기 구단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창단 감독은 전 연세대학교 농구부 총감독이었던 최종규 감독이 맡았고 최종규의 후배였던 유재학이 코치를 맡았다.

1997년 초 한국프로농구가 본격적으로 출범하면서 수도권 빅마켓으로 꼽히던 인천광역시[11] 대우증권 프로농구단의 연고지로 결정하고[12] 인천 대우증권 제우스라는 이름으로 KBL 원년리그에 참가했는데 안양 SBS 스타즈와 함께 KBL 사상 첫 번째 경기를 치르는 주인공이 됐다. 대우증권이 KBL 첫 경기의 주인공으로 낙점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KBO 리그의 원년 개막전 매치업과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리그의 붐업이 필요했던 상황인 만큼 전국 네트워크를 보유한 방송사를 모기업으로 둔 팀최고의 인기 선수들을 보유한 스타군단을 맞붙여놔야 했다. 1982년 MBC와 삼성이 그랬던 것처럼 SBS와 대우증권은 KBL 출범 경기의 매치업으로 제격이었다. 물론 이 경기에서 대우증권은 경기 막판에 저지른 개그농구로 인해 1점차로 SBS에 패하며 질곡의 역사를 시작하게 된다.

문제는 인천을 연고로 하는 팀이었음에도 KBL 두 번째 시즌 개막 시점인 1997년 11월부터 인천삼산월드체육관이 문을 연 2006년 11월까지 무려 9년간이나 인천의 바로 옆동네인 경기도 부천시에서 홈경기를 치러야 했다는 점이다. 창단 원년 당시 홈구장은 현재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의 홈구장으로 쓰이는 인천도원체육관이었는데 매우 심각하게 낙후된 시설을 갖춰 경기를 치르는 선수나 관람하는 팬들 모두 불편함을 호소했다. 마침 1997년 부천에 삐까뻔쩍한 새 체육관이 문을 열면서 임시방편으로 홈구장을 옮겼고 이때부터 9년간 인천-부천 공동 연고구단으로 운영됐다. 물론 부천지역 팬들은 "부천에서 홈경기를 치르는데 왜 인천팀 소리를 들어야 하느냐. 부천이 인천의 들러리냐" 등의 비판을 했지만[13] 인천의 시장 규모가 워낙 컸고 실제 인천에서 부천으로 넘어와서 관람하는 홈팬의 규모가 상당했기에 인천 연고권을 유지하면서 부천 홈경기를 치러야 했다.[14]

KBL 출범 당시에는 대우증권 산하의 농구단으로 운영되다 1998년 구단 운영법인 (주)대우제우스 설립 후 독립적으로 운영됐고 1999년에 대우자동차로 법인이 합병됐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대우그룹이 망하면서 1999년 가을 구단이 신세기통신으로 넘어가면서 인천 신세기 빅스로 새 간판을 달았다. 그 후 SK그룹이 신세기통신을 인수하고 인천 SK 빅스라는 이름으로 구단이 운영됐고, 한 회사가 두 팀의 지분을 가질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15] 2003년 전자랜드에 매각되어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라는 이름으로 농구단을 운영했다. 이후 고려제강의 상징 동물인 코끼리를 팀명에 넣은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로 구단명을 바꾸게 된다. 전자랜드는 그동안 부족한 모기업 재정 상황이 있었음에도[16] 불구 끈기와 투지있는 농구를 바탕으로 꾸준히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악화로 2020-2021시즌을 앞두고 구단 운영 포기 의사를 밝혔고 결국 2021년 5월 농구단이 한국가스공사로 매각되었다.[17] 자칫 25년의 역사를 품은 농구단이 아예 사라질 뻔 했으나 다행히 구단의 명맥은 이어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한국가스공사의 본사가 있는 대구광역시로 연고이전하며[18] 인천 연고 농구단의 역사는 종지부가 찍혔다.[19] 이후 역사는 대구 한국가스공사 페가수스 문서 참조.


2. 시즌별 일람[편집]




3. 응원단[20][편집]


2020-21 시즌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응원단
응원단장
이윤승
장내 아나운서
함석훈[21], 정현우
치어리더
김소림, 박성아, 박성은, 박소현, 송수지, 신세희, 이예빈, 이유정, 황수지

4. 역대 유니폼[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유니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역대 감독[편집]



역대
이름
재임 기간
경력
비고
초대
최종규
1997년 ~ 1998년
연세대 총감독
삼보 엑써스 감독 및 KBL 감독상 수상
2대
유재학
1998년 ~ 2004년
연세대-기아자동차 선수
1988 서울 올림픽 국가대표 선수
연세대 코치
대우증권 코치 및 감독
모비스/현대모비스 피버스 감독 부임
모비스/현대모비스 KBL 통합우승 4회
KBL 감독상 5회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팀 금메달 감독
3대
박수교
2004년 ~ 2005년
현대전자 선수
1982 뉴델리 아시안게임 금메달 선수
현대전자 감독
기아 엔터프라이즈-모비스 오토몬스 감독
시즌 후 단장 승진
4대
제이 험프리스
2005년
TG 삼보 엑서스 코치
최초 외국인 감독
시즌 중 경질
대행
이호근
2005년 ~ 2006년
현대전자 선수
삼성 블루밍스 감독
동국대 감독
5대
최희암
2006년 ~ 2009년
현대전자 선수
연세대학교 감독
모비스 오토몬스 감독
現 고려용접봉 대표이사 부회장
6대
박종천
2009년
현대전자 선수-코치
82 뉴델리 아시안게임 금메달 선수
현대 다이넷/걸리버스-KCC 이지스 수석코치
LG 세이커스 수석코치-감독
시즌 중 사임
KEB하나 감독
7대
유도훈[22]
2009년 ~ 2021년
현대전자-현대 다이넷/걸리버스 선수
현대 걸리버스-KCC 이지스 수석코치
LG 세이커스 수석코치
KT&G 카이츠 감독
감독대행 포함
구단 최장수 감독
전자랜드 시절 마지막 감독
한국가스공사 초대 감독

특이하게도, 외국인이었던 제이 험프리스를 제외하고 모두 연세대학교 출신이다. 전신인 대우증권이 연세대와 명지대를 기반으로 창단된 신생구단이기도 하였고, 팀을 인수한 전자랜드의 회장도 연세대학교 농구부 후원회장을 지냈을정도로 연세대학교 농구부에 대한 자긍심의 결과로 보인다.

6. 사건 사고[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사건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기타[편집]


  • 한때 2009년 KCC와의 6강에서의 혈투 및 사건사고로 이미지가 좋지 않았고, 잔혹했던 09-10 시즌과 그 이전의 참담한 성적으로 개그랜드, 전자렌지라는 별명이 존재했다. 이러한 기록 및 행보 내지는 한편의 예능을 보는 듯한 플레이를 만든 주범인 박수교 前 감독 겸 단장은 한국 농구사에 한 축으로 평가받는 선수였음에도 전자랜드에서의 행보 때문에 KBL 역사상 최악의 단장 하면 무조건 나오는 이름이 되었다. 참고로 전자랜드 팬들은 박수교를 KBL 최초의 외국인 감독이자 2005-06 시즌 초반 처참한 성적을 내고 경질된 제이 험프리스, 2009-10 시즌 초반에 팀을 나락으로 꽂아넣고 물러난 박종천과 함께 감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23] 오죽하면 별명이 박수괴. 10-11 시즌이 되면서 정규리그 준우승을 기록, 서태힐 시절에 약팀의 이미지를 씻어내긴 했으나, 2011-12 시즌 막판에 6강 상대를 KCC가 아닌 kt와 붙기 위해 일부러 져서 순위를 조정한다는 의혹을 샀다.[24]

  • 그러다가 2012년부터 전자랜드의 경영난으로 매각, 심지어는 해체 이야기까지 나오자 동정여론이 형성되었고 프로구단 대부분이 싫어했던 프로-아마 최강전을 열심히 참가하여, 작은 대회지만 팀 역사상 처음으로 결승무대에 진출했다.[25] 그리고 정규시즌에선 SK모비스의 뒤를 이어 3위를 기록하였고 플레이오프도 4강까지 갔다. 덕분에 KBL에서 가장 호감인 팀으로 대표되는 팀이 되었다. 다만, 위에도 서술되어 있듯이 ""이 평생 두고두고 회자될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후 2013-14 시즌 전 선수 구성원은 최하위권임에도 불구하고 조직력 강한 공격과 수비. 유도훈 감독의 지도력과 용병도 국내선수와 하나 되어 화이팅 하는 모습(대표적으로 수비 전 바닥 찍기)으로 크블 팬들에게 매력발산을 하는 팀으로 자리잡으면서 이전의 불명예스러웠던 이미지를 탈피하고 있다.[26]

  • 그러나 15-16 시즌부터는 성적도 좋지 않으면서 구단의 감성팔이 언플이 지속되자 타팀 팬들이 이에 반발하게 되어 비판받는 횟수가 늘어났고 형편없는 경기력으로 개그 비아냥도 다시 증가하였다. 작년 4강에서 네티즌들에게 호되게 공격당한 어느 팀과 태업한 용병이 트레이드 후 친정과의 눈물겨운 재회로 비춰지며 각종 디스의 희생양이 된 어느 팀의 팬들이 가장 열렬히 깐다 카더라

  • 구단이 돈이 없는 것으로 유명했다. 실제로도 KBL 참여 구단들 중에서 모기업이 가장 작은 편에 속하는데 다른 구단의 모기업이 전부 대기업인 반면 이 구단의 모기업인 전자랜드만 유일하게 중견기업이다.[27] 창단 당시에는 굴지의 대기업이었던 대우그룹 계열사 대우증권이 모기업이었으나 외환위기 이후 대우그룹이 해체 위기를 겪고 대우증권도 사실상 대우그룹의 곁을 떠나게 되면서 부터 가난한 안습의 역사가 시작됐다. 물론 대우에서 신세기통신으로 넘어가고 그 이후에도 SK그룹이 잠시 맡는 등[28] 대기업 구단이었지만 현재 모습은 살짝 초라하다. 대신 창단 이후 인천/부천 연고지를 버리지 않고 유지해온 만큼 팬들의 결속도가 높고, 원정응원에서도 프로농구 팬들로서는 드물게 최동훈 응원단장의 지휘 아래 어마어마한 단결력을 보여주는 구단이기도 하다. 돈이 없다면서 프리미엄 고속버스를 굴리는 건 뭔데? 보통 이런 팀들은 탱킹하면서 하위권인 경우가 많은데 중위권을 지키고 있는 점도 기묘한 점.

  • 한편 이 돈이 없다는 느낌 때문에 농빠들 사이에선 외국인 선수 자유계약제를 반대하는 팀 중 하나로 찍혀 농구팬들에게는 에어컨리그 때마다 좋지 못한 평가를 받고 있다. 2017-18 시즌에도 외인 드래프트로 뽑은 선수들이 속속 교체되는 촌극을 보여주면서 2018-19 시즌부터는 다시 자유계약제로 환원할 예정이다. 다만 전자랜드가 자유계약 반대 팀이라는 오피셜은 나온 적이 없다. 오히려 유도훈 감독은 실명까지 거론되며 자유계약 찬성의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감독의 의견=구단의 의견인 것은 아니니까... 사실상 기정사실화 모드다. 인터뷰 이후 구단한테 갈굼당했을 지도 모른다.

  • 2012-13 시즌부터 2014-15 시즌까지는 팀이 침체기에 빠지면 팀이 단체로 삭발을 하는 전통(?)이 있었다. 다만 이후에는 세대교체로 팀이 극단적으로 젊어진 영향인지 이제는 삭발을 하지 않는다. 이 때의 임팩트가 워낙에 대단했었는지 삭발 안 한지 이제 3년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전자랜드가 연패에 빠졌다 하면 네티즌들은 '이제 슬슬 삭발 해야지?'라는 반응을 보인다.
파일:js.png
  • 2017-18 시즌에 홈경기 승리 시 경기 종료 후 팬들과 단체로 왈츠를 추는 이벤트가 생겼다. 팬과 함께하는 이벤트는 좋으나 보기 민망하다는 의견도 있고 승리 후 능욕 타임이라고 재밌어하는 의견도 있다.

  • 대우 제우스 시절 유니폼은 NBA 팀 올랜도 매직 초기 유니폼과 흡사했다.

  • 2015년 1월 6일 홈경기 때 원정 팀인 동부 프로미김주성 선수가 통산 리바운드 2위로 올라서자 경기를 잠시 중단하고 축하해주는 훈훈한 장면을 보여줬다.[29] KBL에 좋은 선례가 될듯.


그러나 김주성은 이후 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온갖 플랍질을 하며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 걸그룹 러블리즈의 멤버 정예인 양이 2008-09 시즌 당시 어린이 치어리더 1기 멤버였다고 한다.[30] 이 사실이 구단 공홈 자유게시판에 게시글로 올라왔는데, 구단의 치어팀 실장이 글을 보고 댓글을 달았다. 관련 게시글

  • 2003년부터 장내 아나운서를 맡고 있는 함석훈 아나운서는 KBS 공채 14기 출신으로 드라마 야인시대황병관역으로 잘 알려져있다. 1997년 프로농구 원년부터 활동한 베테랑으로 당시에서 원주 나래의 장내 아나운서로 경력을 시작했다.##

  • 2016-17 시즌부터 전자랜드의 게토레이걸을 하고 있는 김유정 양은 10개 구단 게토레이걸 중 가장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2018년부터는 K리그 1에서도 매치볼 전달하러 전국순회를 하고 있으며,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를 졸업했다.[31]

  • 외국인 감독이었던 험프리스를 제외하고 초대 최종규 감독부터 현 유도훈 감독까지 전자랜드의 감독들은 모두 연세대학교 출신이라는 점이 꽤 특이하다. 이는 팀의 전신격인 대우 제우스가 연세대학교 92학번을 기반으로 창단된 팀이기도 하고, 현 전자랜드의 구단주 홍봉철 역시 연세대 출신에 한때 연세대 농구단 후원회장을 맡을 정도로 지독한 연세대 농구빠였기 때문이었던 걸로 추측된다. 팀을 망쳐놓은 박수교 감독도 사실상 단장으로 영전하였고, 그럭저럭 팀의 호흡기를 다시 붙인 최희암 감독은 전자랜드 계열사의 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실제로 최희암 감독은 연세대 농구감독이 되기 전에 꽤 유능한 셀러리맨이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 인천광역시의 스포츠 팀들 중에서 유일하게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하지 못한 팀이다. 야구팀인 SSG 랜더스SK 와이번스 시절,2007년부터 2012년까지 6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나가서 3번 우승을 했고, 2018년에도 우승을 했다.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는 10-11, 11-12, 12-13, 16-17, 17-18, 18-19, 20-21 시즌, 총 7번의 챔피언 결정전을 치뤘다.[32] 그리고 2017-18 시즌에는 현존하는 인천 연고 남자 스포츠팀 중에 2번째로 우승에 성공한다. 심지어 K리그에서 선수 팔아 먹고 사는 축구팀인 인천 유나이티드도 2005년에 정규리그 챔피언 결정전을 치뤘다. 그나마 여자팀까지 범위를 넓혀야 유일한 챔피언 결정전 미진출팀이라는 불명예를 씻을 수 있었는데, 문제는 인천 연고의 여자농구팀인 신한은행과 여자배구팀인 흥국생명은 이전 연고지에서는 우승까지 했다는 점이다. 즉 인천에 와서 챔피언 결정전을 치른 적이 없을 뿐이지, 팀 전체 역사에서는 챔피언 결정전 진출 기록이 있다. 그리고 18-19 시즌 흥국생명은 챔피언 결정전 진출과 동시에 통합 우승까지 달성했다. 여자축구팀인 현대제철은 인천 연고지 소속으로 우승을 6번이나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인천 연고지팀 중에 똑같이 돈이 없고, 역사는 오히려 더 짧은 인천 유나이티드가 먼저 챔피언 결정전을 치뤄봤다는 점은 명백한 인천 전자랜드의 불명예. 그러나 2018-19 시즌 드디어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성공하면서 이제까지의 불명예를 훨훨 날렸다.


[1] 국문 엠블럼.
파일:Elephants-Kor-emblem.png
[2] 전신인 대우증권 실업농구단의 창단년도[3]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로써 창단.[4] 한국가스공사 인수협약식 일자[5] 정식인수 절차를 밟았기 때문에 구단명이 바뀌어도 전자랜드 엘리펀츠의 역사까지 승계된다.[6] 독립법인으로 출범[7] 인천삼산월드체육관[8] 1997년 원년 시즌 홈구장으로 썼던 인천도원체육관의 환경이 심각하게 열악했고 마침 바로 옆 부천시새로운 체육관이 문을 열면서 9년간 부천실내체육관을 홈구장으로 썼다. 전자랜드가 인천으로 복귀한 후에는 신세계 쿨캣 여자농구단광주광역시에서 부천시로 연고지를 옮겨와서 현재까지 WKBL 경기가 열리고 있다. 한편 부천실내체육관인천삼산월드체육관 모두 인천과 부천의 경계지점에 있어서 두 지역 팬들의 상호 접근이 쉽다.[9] 숙소를 2018-19 시즌부터 폐지하면서 클럽하우스를 홈구장 내에 마련했다.[10] 2020시즌[11] KBL 출범 당시에는 서울 연고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인천이 수도권 최대의 빅마켓으로 꼽혔다. 지방에서는 전희철, 김병철 등 고려대학교 졸업생들이 포진한 동양 오리온스대구광역시, 실업 최강팀의 면모를 그대로 이어받은 기아 엔터프라이즈부산광역시 등이 빅마켓이었다. 수도권에는 SBS 스타즈가 있는 경기도 안양시도 있었지만 당시 안양시내에 홈경기를 치를 체육관이 없어 서울과 의정부 등을 전전해야 했고 안양의 도시 규모 자체가 인천보다 월등히 적다.[12] 실업 시절에는 전국체육대회나 농구 코리안리그 등에 출전할 때 무슨 이유에서인지 부산광역시를 연고로 한 적이 있다. 물론 명목상의 지역 대표팀이었을 뿐 부산에서 대우의 홈경기를 치른 적은 없다.[13] 실제로 부천시 측에서 아예 인천 연고권을 포기하고 부천에 정착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인천이라는 빅마켓을 포기하자니 위험부담이 너무 크고 때마침 부천과 매우 가까운 인천 삼산동에 새 체육관이 지어지는 만큼 기존의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그때까지는 인천-부천 체제를 유지했는데 인천에서 홈경기를 홍보할 때는 '인천-부천시민과 함께 하는 농구단'이라는 수식어를 달았고 부천에서 홈경기를 홍보할 때는 '부천-인천시민과 함께 하는 농구단'이라는 수식어를 달았다.[14] 물론 마지막 해인 2021년에도 부천지역의 팬덤이 상당했다. 삼산월드체육관의 입지상 체육관에서 직선거리로 400m만 동쪽으로 벗어나면 행정구역상 부천시 지역이다. 특히 이 지역은 상동신도시, 중동신도시와 연결되는 지역이고 삼산체육관역을 통해 인천과 부천지역 곳곳에서 접근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15] 축구를 제외하면 어느 종목이든 이런 조항이 들어있다.[16] 2020년에 구단 운영 포기 선언을 하기 이전에 몇 차례에 걸쳐 구단 운영 자금난에 의한 팀 해체설이 돌아 농구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이 있다.[17] 공기업은 금융권과 마찬가지로 프로스포츠팀 운영이 불가능하지만 리그 규모가 작은 농구와 배구는 별도 법인 설립을 의무화한 야구나 축구와 달리 별도 법인을 만들 필요가 없으므로 편법적이기는 하지만 이들의 참여를 용인하고 있다. V-리그의 한국전력공사 남자배구단, 한국도로공사 여자배구단이 대표적 사례. KBL의 안양 KGC인삼공사와 V-리그 대전 KGC인삼공사도 모기업 이름이 공사(公社)지만 민영화된 회사다.[18] 원래는 경기도 성남시에 본사가 있었으나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진행된 공공기관 지방 분산 이전 계획에 따라 본사가 대구로 이전됐다.[19] 이미 V-리그에 유사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도로공사 배구단은 2005년 경상북도 구미시를 연고지로 삼으며 프로팀 전환을 이뤘으나 2010년 당시 도로공사 본사가 있던 경기도 성남시로 연고지를 옮겼다. 그러다 2015년 도공 본사가 경상북도 김천시로 이전하자 배구단의 연고지도 김천에 터를 잡았다. 다만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의 경우 한국전력공사 본사가 전남 나주로 이전 했음에도 팀은 여전히 수원에 남았다.[20] 2020시즌[21] 현역 KBL 장내 아나운서 중 최장수 아나운서다. 프로 원년 원주 나래 블루버드 장내 아나운서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체육관 마이크를 쥐고 있다. 특히 전자랜드와의 인연은 매우 깊은데 신세기 빅스 시절부터 장내 아나운서로 활약하면서 20년 정도 한 팀에서 활약하고 있다. 심지어 같은 팀의 감독이자 1967년생 동갑내기로 알려진 유도훈 감독과는 술친구라고 한다. 본업은 연기자로 대표 배역은 야인시대황병관 역.[22] 전자랜드를 10년 이상 맡은 감독이다. 이는 현대모비스를 15년 맡고 있는 유재학에 이어 장기 집권 2위이다.[23] 2006-07시즌부터 2008-09시즌까지 있었던 최희암 감독은 차례대로 9위, 7위, 6위를 기록했으며 이때는 2006-07 시즌을 제외하면 5할을 모두 넘겼지만, 상대전적 때문에 2007-08 시즌은 탈락, 2008-09 시즌은 6강이었다. 전자랜드에서의 통산승률도 81승 81패, 딱 5할을 기록하여 금지어라고 보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다. 2006-07 시즌도 6위 KT&G와 단 2경기 차이였기 때문에 플레이오프에 올라갈 수 있었다. 심지어 상위권 팀에 2위 LG(2승), 5위 삼성(2승) 제외 최소한 반타작 이상을 기록했지만 꼴찌 KCC와 8위 동부에 합계 3승 9패로 탈탈 털리는 바람에 결국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시즌 종료 후, 최희암 감독은 고려용접봉 지점장으로 부임하여 사장을 거쳐 부회장으로 영전했다.[24] 그래도 연장 2번에, 마지막 5차전은 무려 2차연장까지 가는 항구더비로 이미지가 상쇄되었다.[25] 이 때 구단은 우승의 맛을 알게 해주기 위해, 우승하면 리그 통합우승 수준의 우승기념 모자, 티셔츠 등등 많은 준비를 했으나 설레발 결국 준우승.[26] 이 때부터 개그랜드 발언이 많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한때는 전랜까면 사살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27] 다만 2021년 현재는 고양의 모기업인 오리온그룹도 중견기업이다.[28] 신세기 빅스 시절 모기업이었던 신세기통신이 SK그룹에 인수되었기 때문이다.[29] 리바운드한 볼에는 선수 본인이 사인을 해서 다른 볼과 교체한 후 하프타임에 증정[30] 참고로 정예인 양은 인천광역시 부평구 출신이다. 전자랜드의 홈구장인 삼산월드체육관 또한 인천 부평구 소재.[31] 실제로 김유정 양은 FC 서울의 팬이기도 하며 도전 골든벨 해성여고 편에서 아디의 팬이라고 인증하기도 했다.[32] 그리고 20-21 시즌 통합우승을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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