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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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행정구역
3. 자연지리
3.1. 지형
3.2. 기후
3.3. 대기
4. 인문지리
4.1. 90분 광역시
5. 도시구조


1. 개요[편집]


인천광역시의 지리에 관해 설명하는 문서.

2. 행정구역[편집]





파일:인천광역시 하위 행정구역 지도.jpg

하위 행정구역은 8구 2군이다. 구 지역은 대부분 인천 본토 지역이지만 중구는 본토와 영종도로 이루어져 있다. 강화군강화도와 인근 부속도서, 옹진군서해 5도를 포함 작은 섬들로 구성되어 있다.

3. 자연지리[편집]



3.1. 지형[편집]


파일:attachment/incheon_recl.jpg

전국에서 갯벌이 가장 많은 곳이다. 가끔 위성 사진을 보면 분명 바다일 곳인데 색깔은 회토색이나 갯풀의 빨간색이 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앞바다 근해에는 섬 사이의 거리가 1~2km 정도 차이가 나는데 그 사이 수심은 2~30cm 정도 되는 곳도 있다. 위성 사진을 보면 무서울 수준.

그리고 현재 인천 지역 중 연수구의 70%(송도국제도시의 경우 100%), 미추홀구의 20%가량, 서구의 절반가량, 중구의 40%[1] 동구의 20%, 남동구의 10% 정도는 매립지이다. 때문에 인천 해안의 97%는 인공 제방이나 항만 시설이다. 참고로 부산의 경우 동해안이라는 지형 특성으로 인해 50% 정도 자연 해안이 남아있다. 애초에 강화도의 경우 60개로 나눠져 있던 섬이 고려시대 때부터의 매립지 기술로 하나의 큰 섬이 된 것으로, 교동도, 석모도도 원래는 각각 세 개, 두 개의 섬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강화도 도내에선 물만 빠지면 매립 안 해도 그냥 섬과 섬사이를 걸어다닐 수 있는 길이 수십개였다고 전해진다. 아직도 그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으며, 강화도가 섬인데 비해 외곽은 산지면서 내부가 평지인 이유는 매립지가 많기 때문. 게다가 소금기가 빠진 뒤로는 갯벌 덕에 지력이 풍부해 조선시대 때부터 쌀 산지로 유명했다.

해안가 매립 이전의 원인천은 그 모양새가 반도에 가까웠다.

조수간만이 심한 서해안에서도 그 차이가 가장 심한 곳으로 7~8m 정도 되는데, 이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수치다. 외지인들이 인천 앞바다에서 조난이 자주 나는 이유도 심한 조수간만의 차 때문이다.


3.2. 기후[편집]


1981~2010년 기준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최고기온(℃)
1.7
4.4
9.6
16.1
21.3
25.4
27.6
29.0
25.5
19.7
11.8
4.7
평균기온(℃)
-2.1
0.3
5.1
11.3
16.4
20.9
24.0
25.2
21.2
15.0
7.5
0.9
최저기온(℃)
-5.4
-3.1
1.7
7.6
2.8
17.6
21.5
22.4
17.5
11.0
3.9
-2.6
강수량(mm)
20.6
20.8
47.5
57.7
100.3
112.0
319.6
285.8
153.5
53.4
51.0
19.3
습도(%)
61.5
61.8
63.4
64.1
70.3
74.8
82.2
79.1
73.1
67.3
63.9
62.0
평균 강수일
6.6
5.3
6.7
7.3
8.7
9.7
14.9
12.5
8.2
6.2
8.5
7.3
평균 일조시간
178.0
181.5
204.9
219.4
231.4
203.4
156.8
191.0
197.6
211.2
168.6
171.0

인천은 온대 하우 기후(쾨펜의 기후 구분 Cwa)에 속하며, 구분에 따라서는 습윤 대륙성 기후로 분류하기도 한다. 서해 5도와 본토처럼 온대 하우 기후(Cwa)에 속하는 곳이 많지만 강화도 등은 냉대 동계건조 기후(Dwa)에 속한다. 해안도시이지만 낮은 수심의 경기만 깊숙이 자리하여 기온과 강수량은 내륙 지방과 비슷하다. 또한 인천 공식관측소가 바닷가일뿐 내륙에 위치한 곳도 많다. 7~8월에 기온이 가장 높고 강수량이 많다. 인천은 북서풍의 영향을 받아, 같은 위도 상에 있는 동해 연안의 도시보다 겨울철 기온이 낮다. 강수량은 대한민국 중부의 타 지역에 비해 적은 편이다. 옹진군 섬 지역은 인천 육지보다 바다의 영향으로 따뜻한 편이다. 역대 최저 기온은 1931년 1월 11일의 -21℃이며,[2] 역대 최고 기온은 1949년 8월 16일[3]38.9℃이다.

인천과 서울은 기후가 비슷할 것으로 보이지만 바닷가에 위치한 인천 공식 관측소 기준으로 하면 유의미한 차이를 보인다. 물론 사람들이 많이 사는 남동구, 미추홀구, 부평구, 계양구 쪽은 연교차가 크고 봄에 포근하고 여름에 덥기도 해서 서울과 기후가 거의 비슷하긴 하다. 공식관측소 기준으로는 중구 바닷가라서 분지 지형이 아닌데도 해안가라서 서울보다 일교차도 작고 연교차도 작은데 우선 12~1월의 겨울철에는 서울보다 따뜻해서 서울에 비하면 기온이 덜 내려가고 더 올라가는 경향이 있다. 한파가 와도 서울보다 높으며 평균기온도 -1.5℃이다. 그러나 봄철로 접어들어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는 2~5월에는 서울보다 기온이 낮아진다. 또한 전국적으로 이상 고온이 올 때 덜 더운 경향도 있다. 봄철에는 서풍이 자주 불면서 서해안지역의 기온이 많이 오르지 못하기도 하며 서해안지역이라 기온 오르는 속도가 더딘다. 인천의 경우 최저기온은 서울, 대구와 거의 비슷해 차이가 크지 않지만 최고기온은 기본적으로 서울보다 2℃, 대구보다 5℃ 낮으며 극단적으로 오르는 경우가 없으며 이상 고온이 심해도 크게 오르지는 못한다.[4] 2020년 4월에는 고작 하루만 20도를 넘었다. 또한 3월 17℃, 4월 23℃, 5월 28℃를 넘기는 경우도 드물다.[5][6] 다만 2005년 4월에 32.7℃를 기록한 적이 있으니 인천의 봄이 시원하다고 볼 수 없으며 오히려 더울 때도 꽤 있다.[7] 또한 초봄인 3월의 경우 아직 시베리아 기단이 남아있어 최저기온은 서울보다 높을 때도 있으며 내륙지역보다 아침에 덜 추우며 2019년 3월에는 인천에서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날이 없었다.[8] 참고로 인천은 봄이 내륙 지역인 춘천보다도 낮으나 3월은 시베리아 기단 여파가 있어 일반적으로 춘천보다 높다. 여름에 들어서 동풍이 잦아지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데워지는 시기라서 6월 현충일 무렵에 여름이 시작되며 공식관측소 기준 여름도 서울보다 확실히 낮다. 서울에서는 2000년 이후에는 2003년 빼고 다 폭염이 있었으나 인천은 2003년, 2006년, 2007년, 2009년, 2011년, 2013년 총 6번이나 폭염이 없었다.[9] 2020년도 여기에 들어갈 뻔했으나 8월 26일에 33.9℃까지 오르면서 실패했다. 8월 폭염일수가...여담으로 2021년, 2022년은 8월 폭염이 없었다. 또한 이전에도 폭염이 없는 해도 많았다. 그리고 35도를 넘는 해조차 드물며 2018년도 35.9℃가 최고였다. 또한 그로 인해 8월을 제외하고는 폭염이 많이 발생하지 않아 폭염일수도 적어서 폭염에서는 비교적 안전한 지역이다.[10] 그러나 마냥 폭염에서 자유롭다고 볼 수는 없다. 1939, 1943, 2018년처럼 폭염일수가 20일을 넘기기도 하며 2010년대 중반 이후로 폭염이 잦아지는 경향을 보여 인천도 매년 폭염일수를 기록하고 있다. 2019년 8월 10일에 36℃까지 오르기도 했으며 2022년 7월 30일에 35.2°C 로 2021년 7월 25일 최고기온 34.5°C 보다 높았다. 1949년 8월에는 38.9℃를 기록해 2017년까지 수도권 1위였다. 게다가 인천의 여름은 습도가 높아서 더 덥게 느껴진다. 그리고 9월부터는 이제 식기 시작하는 기간이라 천천히 식어 서울과 엇비슷해진다. 게다가 10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식는 시기라서 다시 서풍으로 바뀌어도 인천이 타 수도권 지역에 비해서 따뜻한 편이다. 그래도 해안가와 대도시 위치상 수도권의 내륙보다 따뜻한데다가 봄~여름 평균기온은 내륙과 비슷한 편이라 연 평균 기온은 12.5℃로 수도권 중에서는 높은 편이며 서울보다 약간 낮고 수원과 비슷하다.

타 지역에 비해 여름철에 소나기가 잘 안 온다. 오더라도 주로 남동구, 부평구 등 인천 중심권만 온다(...) 예를 들면 인천 차이나타운과 동화마을이 있는 송월동은 쨍쨍한데, 구월동천둥번개를 동반한 세찬 소나기가 쏟아지는 경우다.[11] 이 영향으로 해안지역의 여름철 강수량이 적은 것 때문에 연강수량이 적고 비가 잘 안 온다. 그리고 맑은 날이 많아 일조시간도 많다. 그러나 바닷가 근처라 습도가 높고 일교차가 작아 여름에는 기온은 낮을지언정 습도 높은 더위를 느낄수 있다.


3.3. 대기[편집]


인천은 강한 편서풍 기류를 타는 몽골 사막지대의 황사 발생원에 가까워 황사의 영향을 전국에서 가장 먼저 받는다. 목포시는 같은 서해안이지만 몽골이나 공장이 밀집된 산둥성의 정동방이 아니어서 미세먼지가 훨씬 덜하며 높은 산과 구름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는 내륙 도시들에 비해 황사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것에 비해 인천은 직방으로 받는다는 얘기.

황사와 미세먼지의 경우 수도권에서 가장 먼저 영향을 받긴 하나 관내에 산지가 적고 바닷가라 먼지가 정체되지 않는다. 실제로 미세먼지 통계를 보면 경기 북부와 충북이 미세먼지 특보 발효건 수가 많다. 통념과 달리 인천은 수도권 평균보다 미세먼지가 적은 곳이다. 한마디로 황사나 미세먼지가 빨리 오지만 그만큼 빨리 지나간다는 것이다.


4. 인문지리[편집]


한반도에서는 중부, 남한에서는 최북단에 위치한다.

육지를 기준으로 북으로는 경기도 김포시, 동으로 서울특별시, 부천시, 남으로 시흥시, 안산시와 접하고 있다. 해상으로는 남쪽으로 충청남도 당진시, 서산시, 태안군[12], 서쪽으로 중국과 접하고 있으며, 북한과는 NLL을 사이에 두고 황해남도 룡연군, 옹진군, 강령군, 청단군, 연안군, 배천군개성시와 맞닿아 있다.[13] 접경 지역이 관할하에 있는 유일한 광역시인 것.

면적은 1,067.0㎢.[14] 1981년 직할시 승격 당시에는 206.6㎢[15]에 불과했지만, 1989년 계양면을 편입하고 1995년 광역시 전환 과정에서 검단면강화군, 옹진군을 편입하면서 면적이 3배 이상으로 불어났으며, 인천경제자유구역을 간척하면서 지속적으로 땅을 늘려왔다.

인천광역시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기초자치단체는 강화군(411.41㎢)이며[16], 가장 면적이 좁은 기초자치단체는 동구(7.20㎢)이다.[17] 가장 인구가 많은 기초자치단체는 서구이다.

도서 지역을 제외한 본토 최북단은 서구 대곡동이며, 최남단은 연수구 송도동이다. 본토 자체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18]


4.1. 90분 광역시[편집]


인천광역시청에서 강남구청, 안양시청, 수원시청 까지 대중교통으로 모두 90분이 걸린다. 부산광역시제주특별자치도도 마찬가지로 공항까지 이동 시간 약 30분에 비행기로 1시간 내외가 소요된다. 비행시간만 고려하면 일본 오사카, 중국 칭다오 까지의 비행시간도 90분이다. 교통수단이 다르긴 하지만 이 정도면 국토 정중앙이 아니냐는 반응이다.


5. 도시구조[편집]


수도권의 주요 항구인 인천항을 중심으로 시역을 확장하다가 다핵 도시가 되었다.[19] 그리고 특히 원인천 지역과 부평한남정맥으로 분리된 시가지를 형성하고 있다. 중앙에서 외곽으로 확장되는 한국의 다른 광역시들과는 다르게 서쪽에서 동쪽으로 도시가 확장된 탓에 고속도로와 도시철도 등을 중심으로 도심기능이 조금씩 분산되어 있다.

2040년 인천도시기본계획에 따르면 송도, 구월, 부평 3도심, 동인천, 영종, 계양, 청라, 검단 5부도심, 연수, 주안, 소래논현, 계산, 강화, 오류, 검암, 가정 8지역중심으로 인천광역시를 재편한다.

현재 인천종합터미널인천도호부관아가 위치한 관교동/문학동이 조선시대까지 인천의 중심지였다면 19세기 말 개항 이후 1980년대까지는 인천항동인천 일대가 인천의 중심이었다. 1980년대 간척사업이 완료되면서 시역이 확장된 곳[20]에 주택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했고 인천광역시청이 시의 중앙에 위치한 구월동으로 이전하면서 중심지가 다시 바뀌었다. 그리고 2000년대 전후로 갯벌을 매립한 송도국제도시, 인천국제공항이 위치한 영종국제도시 지역 등이 개발되면서 도시구조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한편, 계양산 - 천마산 - 원적산 - 철마산으로 이어지는 한남정맥이 인천광역시를 크게 나누고 있어 옛 부평도호부 지역[21]은 독자적으로 발전해왔다. 서로 전혀 다른 도시라고 봐도 무방한 역사.


5.1. 주요 도심/부도심[편집]


  • 도심, 부도심 분류는 2040 인천도시기본계획(안)을 따랐다.#

2003년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된 송도국제도시는 기본적으로 서울에 의존하지 않는 자립형 신도시로 계획되었다. 2021년 6월 현재 송도국제도시는 주민등록인구 기준 19만명 이상이 거주할 정도로 성장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던 포스코타워 - 송도(305m, 지상 68층)와 컨벤션 시설인 송도컨벤시아를 중심으로 펼쳐진 국제업무단지와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등의 바이오 관련 기업들이 대거 입주해있는 바이오 컴플렉스, 그리고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송도점, 트리플 스트리트가 위치한 송도국제화복합단지 사이에 끼어있는 시가지조성단지는 밤낮 가리지 않고 항상 차량과 인파로 북적인다. 인천대교인천국제공항까지 30분 이내로 주파할 수 있어서 에어로트로폴리스로도 분류되며, 서울 접근성 향상을 위한 GTX-B 송도국제도시역도 생길 예정이다.
구월동은 교통, 행정, 금융, 문화, 예술의 중심지. 80년대 말까지 얕은 구릉지에 과수원, 목장[22]이 이어지는 농촌지역이었으나 승기천 인근의 간척지에 서울의 제조업 공장이 이전해오고 연수구 일대에 아파트단지가 조성되면서 도시가 확장됨에 따라 당시 미개발지였던 구월동에 인천시청이 이전하면서 도심으로 성장했다. 인천종합터미널롯데백화점 인천점을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되어 있으며, 서울 접근성 향상을 위한 GTX-B 인천시청역이 생길 예정이다.
부평구는 일제강점기 경인선 철로가 부설되고 미쯔비씨 공장이 이전해오면서 철길을 중심으로 신시가지가 조성되었다. 원래의 부평 구읍은 현재의 계양산 아래 일대로 과거 부평도호부가 있던 곳이다. 일제가 패망한 이후에는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ASCOM 이 들어서면서 일명 ASCOM City라 불리게 되었다. 당시 미군기지의 범위는 현재의 산곡동 전체와 부평동 전체를 아우르는, 비행장이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한국군 군수지원사령부 및 공수부대 등도 위치하면서 부평역에서 부평시장, 부평역에서 백운역에 이르는 상권이 형성되었다. 이후 부개동 및 굴포천 일대 등이 개발되면서 경계를 맞대고 있는 중동신도시삼산동 - 계산동에 이르는 대규모 주택단지가 연담화되었고 대한민국 최대의 인구 밀집지역이 배후지로 성장함에 따라 여전히 많은 유동인구를 유지하고 있다. GTX-B 부평역이 생길 예정이다.

  • 부도심
    • 동인천[23] (부도심)
좁게는 동인천역 인근 지역을 일컬으며, 범위를 조금 넓히면 중구동구 일부 지역을 동인천 지역으로 분류할 수 있다. 동인천이라는 이름은 상인천이라 일컬어지던 일대의 중심이던 상인천역이 동인천역으로 개칭되면서 그 일대 지역도 상인천에서 동인천으로 바꿔 부르며 현재의 지명이 됐다. 개화기 때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인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중심지로서 번화했던 곳이다. 그러나 도시의 팽창과 확대 과정에서 인천시청[24], 버스터미널[25], 명문 중·고등학교[26] 등이 이전하고 시 발전축에서 완전히 소외되었을 뿐만 아니라 1999년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참사로 상권과 함께 도심 전체가 몰락했다. 현재는 여러 도시 재생 사업이 시도되고 있고 개화기 문물이 많은 지역 특성을 관광 코스로 밀면서 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여러 학교들이 오랫동안 터를 잡고 있었다는 이유로 분식집, PC방, 노래방, 당구장 등 10대들이 자주 찾는 공간이 많고 10대들의 문화가 유달리 다른 지역에 비해 활발한 특색이 있다. 도심 기능이 완전히 죽은 이후에도 많은 고등학교가 미처 이전하지 못하고[27]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상인천 항목도 참조.
인천국제공항영종도에 건설되면서 공항종사자들을 위해 90년대 후반 공항신도시(배후지원단지)가 개발되었다. 이후 2003년 영종도 일대가 송도, 청라와 함께 인천경제자유구역 영종국제도시[28]로 지정되며 영종하늘도시, 미단시티 등의 지역도 개발이 시작되었다. 초기에 비해서 개발이 상당수 진행되었으나, 아직 계획의 반도 진행되지 않은 상태이다. 인천하늘고를 비롯하여 인천국제고, 인천과학고 등 특수목적고등학교들이 많다. 이때문에 영종으로 이사 오는 학부모들도 많다. 운서역 주변이 가장 번화한 상권으로 꼽힌다. 도시 내부에 대형백화점, 쇼핑몰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다. 지리적으로는 인천대교연수구(송도), 영종대교서구(청라)와 연결되어 있다. 관광적으로는 영종도 서쪽의 을왕리 해수욕장과 왕산 해수욕장 등이 유명하다. 또한 파라다이스 시티, 파라마운트 테마파크 등 다양한 카지노와 테마파크가 계획, 건설되고 있다.
인천 북부에 위치해 있으며, 2기 신도시인 검단신도시의 개발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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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종도의 절반 정도.[2] 이날 서울도 -22.5℃를 기록하여 역대 서울 최저기온 2위를 달성하였다. 1위는 1927년 12월 31일의 -23.1℃[3] 같은해 7월 16일도 38.9℃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통계 오류일 가능성이 높다. 사실 1949년 7월과 8월 모든 날의 최고 기온과 최저 기온이 한치의 오차도 없이 복붙되어 있는데, 이는 데이터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어떤 오류로 7월 한달 분량의 데이터가 소실되어 8월 데이터를 7월 쪽에 복붙한 것으로 보인다. 8월 16일이 더 신빙성이 있는 이유는, 인천과 가까운 서울이 동년 7월 15~16일 사이에 27~30℃의 온도를 기록했지만, 8월 15일~16일 이틀에 37℃가 넘는 폭염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여름철 서울의 온도가 27~30℃ 정도면 인천도 비슷하거나 낮은 기온, 높아도 1~3도만 높은 기온을 기록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7월 쪽이 더 낮았을 것으로 보인다.[4] 심지어 서풍 때는 서울과 4~6°C, 대구와 강릉과는 10°C 이상 차이를 보이기도 하나 또 가끔가다 서울보다 최고기온이 높게 나오기도 한다.[5] 서울은 3월, 4월, 5월 기준 각각 최고기온이 7~13°C, 14~20°C, 21~26°C로 따뜻하며 이상 고온이 심할 때 16~21°C, 22~28°C, 28~33℃로 덥다.[6] 2022년 봄에는 내륙이나 동해안이 심한 이상 고온을 보인 와중에 인천은 고온이 비교적 약한 편이었다.[7] 진짜 봄에 춥다 할 수 있는 인천 지역은 옹진군이다.[8] 3월로는 유일한 해이다.[9] 반대로 1998년은 서울이 폭염이 없었으나 인천은 폭염이 있었다.[10] 또한 장마의 영향을 받는 7월의 경우2018년, 2019년을 제외하면 대부분 폭염일수가 없었다.[11] 2018년 7월 28일은 남동구와 부평구 일대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시간당 60mm가 넘는 엄청난 소나기가 내렸다. 그러나 이때도 연수구, 중구, 동구의 바닷가 인접지역은 거의 오지 않았다.[12] 당진, 서산, 태안은 연륙교가 없어 바다로만 경계를 이루고 있다.[13] 해수 권역이 대한민국광역시 중 가장 넓다.[14] 2015년까지는 울산광역시의 면적이 더 컸으나, 지속된 간척 사업의 영향으로 2016년 이후로는 인천광역시의 면적이 울산광역시보다 더 넓어졌다. 특·광역시 중에서 면적이 2위이다.[15] 경기도 고양시보다 조금 좁은 정도.[16] 비교대상을 자치구로만 한정한다면 가장 면적이 넓은 기초자치단체는 중구(140.40㎢)가 된다.[17] 동구는 8개 자치구 중 면적과 인구가 모두 8등이며 강화군보다 인구가 적은 곳이기도 하다.[18] 서구와 남동구 역시 남북으로 길쭉한 자치구다.[19] 이는 원도심권을 중심으로 시역을 확장하다가 다핵 도시가 된 부산광역시도 공통점이다.[20] 연수구, 서구 일대[21] 검단 지역 제외.[22] 1999년까지도 인천CGV 옆에 있는 중앙공원 일대가 젖소목장이었다.[23] '인천의 동쪽 지역'이라는 지명 유래를 갖고 있어서 진짜 인천의 동부 지역인 남동구부평구를 동인천으로 오해하기도 하나 정작 동인천은 인천광역시 서쪽에 있다. 사실 동인천이라는 명칭은 인천부청(옛 인천시청, 현 인천 중구청)의 동쪽에 있는 지역이라고 해서 붙은 지명이다.[24]인천광역시 중구청 건물. 1985년에 구월동으로 시청이 이사갔다.[25] 수인·분당선 숭의역 근처에 용현동 구 터미널이 있었지만 1997년에 관교동으로 터미널이 이사갔다.[26] 인천고등학교(율목동 현 정보산업고 부지 → 석바위), 인천여자고등학교(동인천동 주민센터 부지 → 연수동), 송도고등학교(신포동 송도중학교 → 옥련동), 인천대건고등학교(화수동 영풍아파트 부지 → 동춘동) 등. 중학교는 인일여고와 함께 있었던 인천여중이 동인천에서 동춘동으로 이사 갔고 초등학교는 축현초등학교가 동인천에서 옥련동으로 이사갔다.[27] 제물포고등학교, 인일여자고등학교, 인성여자고등학교 등. 이 중에서 제물포고와 인일여고는 나란히 송도로 학교 이전 작업을 추진했다가 지역 사회와 동문회로부터 엄청나게 욕을 먹고 학교 이전 계획을 철회했다. 2021년 현재는 이전이 재추진 중이다.[28] 지정 당시 명칭은 영종지구로, 2018년 공식적으로 영종국제도시라는 이름을 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