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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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즌 현황에 대한 내용은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2023-24 시즌 문서 참고하십시오.
통산 세리에 A 19회 우승, UEFA 챔피언스 리그 3회 우승을 차지했고,[14] 특히 2009-10 시즌에는 이탈리아 클럽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트레블을 달성한 클럽이다. 이전 2회의 우승은 유러피언컵(현 UEFA 챔피언스 리그) 1963-64, 1964-65 시즌의 2연속 우승이었는데, 인테르의 유러피언컵 우승이 특별히 값어치가 있는 건 이때의 인테르가 공히 유럽 최강이라 할 만한 기세를 떨치며 짠물 수비를 유럽 전역에 과시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인테르는 '위대한 인테르(La Grande Inter)'라 불리며 카테나치오를 완벽한 형태로 구현해낸 가장 최초의 팀이었다.
초창기 영국인들이 주도해서 클럽을 창설한 AC 밀란이 영국인과 이탈리아인만을 클럽의 선수로 받아들이기로 하자, 이에 반대한 세력들이 AC 밀란을 탈퇴해서 모든 국가의 모든 선수들을 받아들이겠다며 창설된 팀이며 또한 직설적인 팀명[15] 과 Fratelli del Mondo(세계의 형제들)라는 단어를 팀의 프랜차이즈 모토로 사용함에 따라서 정체성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래도 역사적으로 보면 이탈리아 출신이 우대받았으며, 당장 홈 경기장의 공식 명칭이 1930년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던 공격수 주세페 메아차에서 따왔다. 2년 연속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한 '위대한 인테르' 시절에도 공격수 산드로 마촐라와 이후 구단주까지 되는 자친토 파케티, 그리고 파올로 말디니나 프랑코 바레시에 조금 가려진 면이 없지 않지만 주세페 베르고미 역시 인테르의 이탈리아 출신이다. 게다가 역대 이탈리아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 통계를 내 보면 인테르 소속이었던 선수가 두 번째로 많다. AC 밀란은 3위, 1위는 당연히 유벤투스.
AC 밀란과 같은 경기장을 쓰는데, 정확한 공식 명칭은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Stadio Giuseppe Meazza)'로, 1980년 개명되었다. 주세페 메아차를 기리기 위해 구장의 명칭을 바꾸었는데 주세페 메아차는 AC 밀란이 아닌 인테르에서 전성기를 보낸, 최고 레전드 선수이기 때문에[16] AC 밀란의 팬들은 경기장의 명칭에 바뀌는 것과 바꿔 부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개명되기 전의 공식 명칭은 경기장이 있는 지역구를 그대로 접목하여 '스타디오 산 시로(Stadio San Siro)'. AC 밀란 팬들이 인테르의 주세페 메아차와 분명하게 구분하고자 부르는 명칭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짧아서'라는 게 결정적이다. 홈, 어웨이 경기 구분은 각 서포터들에게 분배하는 티켓 수를 달리 한다고 한다.
공식 클럽 명칭은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이다. 이는 AC 밀란이 공식적으로 도시명을 이탈리아어가 아닌 영어로 쓰는 것에 반발해 이탈리아어를 쓴 것이다. 영어권에서는 영어식으로 '인터 밀란(Inter Milan)'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같은 밀라노가 연고지인 AC 밀란과 맞춰 부르려고 하는 경향 때문이기도 하다.
이름이 길기 때문에 보통 '인테르'로 줄여 부르며, 홈 팬들도 인테르라고 줄여 부른다. 이탈리아어 원 발음대로 하면 인테르라고 해야 하지만 보통 알파벳을 사용하는 국가들 같은 경우 각 나라의 언어대로 읽는 것이 보통인지라 영어식으로 ter 발음을 테~가 아닌 터~ 로 하는 곳도 제법 많은 편이다.
또한 인테르는 이탈리아 클럽 중 유일하게 단 한 번도 세리에 B로 강등되지 않은 클럽이다. 다만, AC 밀란과 중간에 분리되다시피 한 클럽이라 세리에 A 개근 멤버에는 속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러한 팀들 중에서 인테르 다음으로 오랜 기간 참여한 클럽은 더비 라이벌인 AC 밀란이다.
인테르의 전설적인 두 풀백인 자친토 파케티와 하비에르 사네티의 등번호가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엠블럼은 클럽의 설립자이자 화가였던 조르조 무지아니가 만든 초기 디자인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엠블럼의 색깔은 청색, 흑색, 황색이 주를 이루고 있다. 청색과 흑색은 밤하늘을, 황색은 별을 상징하고, 원형 엠블럼 내의 영문은 Football Club Internazionale Milano의 약어 FCIM이다. 뱀은 밀라노의 중심 세력이었던 비스콘티 가문의 상징, 흰 바탕의 적색 십자가는 밀라노의 상징을 뜻한다. 2021년 3월 현재의 새 엠블럼이 발표되었다. #
세리에 A에서 평균 관중 수가 가장 많은 구단으로[18] , 7년 만에 챔피언스 리그로 복귀한 18-19 시즌에도 1위였는데 리그 기준 평균 61,149명, 최대 78,275명의 관중을 동원하며# 유럽 전체에서 평균 관중 순위 5위[19] 에 랭크되었다. 또한 세 번째 빅 이어와 트레블을 달성했던 2010년의 전성기엔 유럽 전체 축구 구단 서포터 수 순위 8위에 랭크되기도 하였다.[20] #
인테르의 팬들은 흔히 인테리스티(Interisti) 혹은 인테리스타(Interista)로 자칭하며[21] , 이 중 울트라스의 경우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의 북쪽 관중석을 차지하므로 흔히 쿠르바 노르드(Curva Nord)로 불린다.[22]
SNS상에선 페이스북 기준 약 2,800만 명 정도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고, 인스타그램 기준으로는 1080만명 정도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봤을 때 인테르의 서포터들이 더 유력한 지역은 인도네시아와 중국으로, 인도네시아의 경우 현 회장인 에리크 토히르의 인지도의 영향을 받았고, 중국의 경우 인테르가 1978년 가장 먼저 방중한 세리에 A 구단이라는 점 때문에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특히 2016년에 쑤닝 그룹이 인테르를 인수함에 따라 중국 내에서 큰 성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인테르 클럽(Inter Club)이라는 공식 서포터즈의 지부 형태로 세계 각지에 팬층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며, 대한민국에서도 2018년 10월경 인테르 클럽 코리아(ICK)#라는 이름으로 인증을 받아 창설되었다. 여담으로 밀라노 본사에서도 의외의 지역에서 생각보다 많은 회원이 가입하여 다소 놀라면서 반가워했다는 후문이 있다. 기본적으로 정책상 비유럽 지역의 경우 연 회비를 납부하는 시니어 멤버가 25명 이상 필요한데, ICK는 무려 80여 명이 참가하였다.
그러나 5년도 안 가서 쑤닝 그룹이 재정 악화로 파산 직전에 이른 통에 팀을 팔기로 했다. 쑤닝 그룹 휘하이던 장쑤 쑤닝부터 2020년 리그 우승을 차지했는데도 갑자기 팀이 해체되어버렸을 정도이다. 재정난으로 우승 보너스도 줄이고 운영도 엉망이라 연봉을 삭감한다고 할 정도이니 심각한 모양이다.
이탈리아 '칼초메르카토'는 2021년 3월 11일(한국 시간) "인터 밀란의 소유권을 가진 쑤닝 그룹이 인수 합의를 마치려는 후보들 중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총재가 포함되어 있다"라고 보도했다. 바로 2020년에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살뻔하다가, 여러 문제로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거부했던 사우디 국부펀드에서 대신 살 가능성이 커졌다. 이후 아무 소식이 없다가 9월 18일 골닷컴 '아랍 에디션'에서 "현재 소식통에 따르면 인터 밀란 경영진과 사우디 대규모 투자 펀드 사이에서 클럽 매각을 위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협상은 매우 진전된 상태이며 곧 마무리될 것이다. 인터 밀란은 지분 50% 이상을 매각한다"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여전히 지지부진한 가운데 2021년 10월 7일에 사우디 왕가 컨소시엄이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사면서 인테르에 엄청난 사우디 왕가 오일 자본이 들어올 가능성이 사라져버렸다고 여겼는데...
2022년 1월 1일(이하 한국 시간) 영국 매체 '인사이드 월드 풋볼'은 인터 밀란의 현 소유주인 쑤닝이 사우디아라비아의 공공투자기금(Public Investment Fund, PIF)에 지분 매각을 앞두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4000억 달러의 자금을 가진 사우디 PIF가 10억 달러의 자금을 활용해 쑤닝 그룹이 보유한 인터 밀란으로 매각될 예정이다"라며 "이 결정은 카타르의 beIN 스포츠와의 '미디어 전쟁'에 대비한 것이다"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같은 리그에서 팀 2개를 소유하는 건 금지되었지만 이럴 경우에는 허용이 된다. 하지만 뉴캐슬 운영에 더 힘을 기울여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긴 하면서도 500조 원 이상 추정 자본을 가진 사우디 왕가 펀드 자본력을 생각하면 2팀 모두 엄청난 투자를 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인테르 팬으로 유명한 사람들은 유명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23] , 영국의 글래머 모델[24] 로 원래 아내와 막 이혼한 상태였던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에게 공개 구혼을 했고 그 뒤 인테리스타의 길로 접어든 에이프릴 서머스[25] , 발렌티노 로시[26] , 미국의 배우 알리사 밀라노 등이 있다. 그리고 금지어도 있다. 레드&블랙이 주요 컬러라 의외일 것 같지만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전 감독 마티아 비노토도 인테르 팬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축구선수 팬으로는 안토니오 카사노, 케빈 라자냐[27] , 니콜라 산소네가 있다. 여담으로 한국에서는 박찬우 해설위원, 가수 케이시가 인테르 팬으로 유명하다.
2017년 발생한 프랑스 시위 과격 진압 사태의 피해자도 인테르 팬임이 밝혀졌다. 프랑수아 올랑드가 그를 면회하러 갔을 때 일반 환자복이 아닌 인테르 유니폼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 본의 아니게 인테르는 이 사건에 연관되게 되었고 이 사람을 경기에 초청하고 싶단 의사를 밝혔다.
모란디 다리 붕괴사고의 희생자 중 콜롬비아인이 하나 있었는데 이 사람은 인테르 팬 클럽 콜롬비아 지부의 회장이었다. 그래서 인테르가 이 사람을 추모하기도 했다.
MM8이라는 BJ도 인테르 팬이다.[28] 선천성 시각장애인이지만 음악과 축구를 아주 좋아하며, 특히 축구의 경우 혼자 직관도 간다. 경기가 끝나고 나오는 인테르 선수들을 만나는 쇼츠[29] 들로 유명하다. 집에서 촬영하는 경우 자기 아버지가 함께 나오기도 하며, 틱톡 기준 약 18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더비 매치로 엮이는 라이벌로는 이탈리아의 세리에 A의 명문 유벤투스 FC와 AC 밀란이 있다. AC 밀란과의 관계가 경기에선 투닥거리긴 해도 중요한 일에는 서로 도움을 주기도 하는 형제 같은 사이라면 유벤투스와는 이전부터도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칼치오폴리 이후로는 서포터와 구단진들 모두 대놓고 상대방을 까내리며 적대적인 수준의 살벌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각각의 더비 매치에 대한 사항은 해당 문서 참조. 그 외에 같은 네라주리 유니폼에 롬바르디아 주 지역 라이벌인 아탈란타 BC와도 엮이지만 아탈란타의 팀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아 치열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아탈란타도 당당히 상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인테르를 대표하는 응원가 중 하나로 홈 경기에서 킥오프 전에 이 응원가가 울려퍼진다.
인테르를 대표하는 응원가 중 하나로 1984년 이 카말레온티(i Camaleonti)의 헌정곡이다.
인테리스타들에게 가장 인기 있던 구단은 다름 아닌 레알 마드리드였다. 일명 '믿고 쓰는 레알산(믿쓰레)', '우리 친구' 등의 별칭으로 불렸는데 이는 2000년대 중반 유독 레알에서 부진했던 선수를 인테르가 영입하면 클럽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큼 멋진 활약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트레블의 주역 베슬리 스네이더르, 왈테르 사무엘, 에스테반 캄비아소가 레알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다가 인테르에서 부활한 선수들이다. 그래서인지 인테르 팬들 중에 레알 마드리드에게 호의적인 사람이 꽤 많았고, 레알 마드리드 팬덤에서도 인테르가 09/10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에서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바르셀로나를 꺾은 바 있기 때문에 인테르의 이미지는 괜찮은 편이었다. 그러나 루카 모드리치 이적설로 두 구단 사이는 틀어지게 됐다.
모드리치의 에이전트가 인테르에게 먼저 모드리치에게는 자유 계약으로 풀릴 수 있으니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인테르는 레알 마드리드의 주전이었던 모드리치를 순순히 내줄 리가 없으니 일단 기다리면서 AS 모나코로부터 케이타 발데를 임대해 오는 것에 주력했다. 그리고 모드리치에게는 훈련에 무단 불참하면서 구단에 대들며 태업하게 유도하지도 않았다. 모드리치 본인도 일단 자신은 프로답게 전 팀과 좋게 이별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선 임대, 후 이적으로 하려고 했던 건 보상금 명목이었다. 당시 인테르가 FFP 징계를 받고 있던 게 가장 컸다.
모드리치와 에이전트 사단은 레알 마드리드의 회장 플로렌티노 페레스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고 이에 레알 마드리드는 인테르를 불법적인 사전 접촉으로 고소할 예정이라고 한다. #
그리고 FIFA는 인테르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지 않기로 하여 사건은 일단락됐다. #
그래도 이후 아슈라프 하키미를 비교적 싸게 인테르에 내주는 모습을 볼 때, 구단 간 관계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모양이고, 그냥 단순 해프닝으로 끝난 듯하다.[30]
더비 라이벌인 AC 밀란과의 선수 이동은 거의 극상성 수준으로 인테르가 손해를 본 트레이드가 많았다. 프란체스코 코코, 위밋 다발라 ↔ 클라렌스 세도르프, 다리오 시미치, 굴리 ↔ 안드레아 피를로 등이 있다.[31]
국내 대표적인 팬 사이트로 띠아모인테르가 있다. 상술한 공식 서포터즈인 인테르 클럽 코리아가 함께 운영되는 장소이며 대체적으로 여러 이슈들에 대해 운영진의 정리보다는 회원 스스로의 자정 능력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트래픽과 라이트 팬의 접근성 문제로 전용 사이트에서 네이버 카페로 옮기게 되었으며, 해당 사이트에 대해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골키퍼와 스트라이커 걱정을 하지 않는 구단으로도 유명하다.
골키퍼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왈테르 젱가 이후 잔루카 팔리우카, 세바스티앙 프레이를 거쳐 프란체스코 톨도-줄리오 세자르-사미르 한다노비치-안드레 오나나까지 잡음 없이 부드럽게 세대 교체가 이어졌고 모두 다 어디 내놓아도 부족함이 없는 월드 클래스 선수들이었다.
역대 스트라이커 및 최전방 공격수들 역시 화려해서, 1990년대부터 위르겐 클린스만, 알바로 레코바, 호나우두, 크리스티안 비에리, 아드리아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디에고 밀리토, 사무엘 에투, 마우로 이카르디, 로멜루 루카쿠, 라우타로 마르티네스 등의 쟁쟁한 선수들이 팀의 핵심으로 활약해왔다. 그 외에도 로베르토 바조, 에르난 크레스포, 에딘 제코 등의 쟁쟁한 공격수들 역시 활약한 바 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공격수들은 대부분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인 것을 알 수 있다. 그 밖에도 이름값만 있는 공격수로는 데니스 베르캄프, 마리오 발로텔리, 디에고 포를란, 알렉시스 산체스 등이 있다.
2006년 유벤투스가 칼초폴리로 몰락하자 인테르의 본격적인 독주가 시작되었다. 05-06 시즌부터 09-10 시즌까지 세리에 A 5연패를 차지하며 통산 18회 우승을 달성하자 팬들은 유니폼에 2번째 별이 생기는 것을 꿈꾸며 독주가 계속 이어지기를 원했다. 인테르의 레전드 사네티도 "인테르의 유니폼에 별 2개가 박히면 그때 은퇴하겠다."라고 발언했다.
그러나 팬들의 기대와는 달리 다음 시즌인 10-11 시즌 스쿠데토를 AC 밀란에 내주더니 그 다음 시즌부터는 유벤투스가 완전하게 부활해버려 10-11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마지막으로 유로파 리그나 전전하는 중상위권 팀이 되어버린다. 이후 17-18 시즌부터 다시 챔스권까지 전력이 상승했지만 여전히 우승과는 거리가 먼 상태였으나 20-21 시즌에 오랜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 후 코파 이탈리아,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컵을 연속으로 들어 올렸다.
2021년 들어서 쑤닝 그룹이 재정 악화로 파산 직전에 놓이면서 결국 팀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중국 슈퍼 리그에 있던 같은 계열사의 장쑤 쑤닝도 전 시즌 리그 우승을 거뒀음에도 2021년 갑자기 해체해버렸을 정도로 재정 문제가 심각하다. 재정 악화의 여파로 인테르 소속이던 주앙 미란다 등을 갑자기 방출하게 된 점, 2021년에 인테르가 세리에 A 우승컵을 오랜만에 들어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통 큰 보상은 커녕 우승 보너스를 줄이고 연봉을 삭감하겠다고 발표하여 반감을 얻고 있으며 2021년에 와서는 팀은 안 팔고 주력 선수 여럿을 팔아치우면서 서포터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중이다.
2022년 6월 15일, 라 레푸블리카는 "중국 정부가 쑤닝 그룹에 인터 밀란의 경영권을 포기하라는 새로운 지령을 내렸다"라고 보도했다.[32] 안 그래도 재정적으로 어려운 쑤닝 그룹은 이제 자국 정부 압력까지 받으니 인터 밀란을 적극적으로 팔려고 하겠지만, 헐값에 팔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다른 곳에서 적극적으로 사려는 움직임도 없는 판국. 한때는 아랍 왕족 자본 인수설이 나왔으나 아랍 자본들은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인수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인수를 제의하는 등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을 우선 알아보는 탓에 인테르에 대한 인수 제의가 안 들려온다.
22-23시즌 인테르가 챔스 준우승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밀란의 수뇌부들은 23-24 여름 이적시장에 투입할수 있는 예산이 적다고 말하며 여전히 재정난이 심각하다는 것을 드러냈다.
2023-24 시즌에 구단이 팔릴 거라는 말도 있다. 정확히는 23/24 시즌 이후에 쑤닝이 인테르를 담보로 사모펀드인 오크트리에서 대출을 받은 돈의 변제기한이 다가오는데, 이를 변제하지 못하면 인테르의 소유권이 오크트리 측으로 넘어간다. 게다가 이게 이자율이 연 12%에 달한다는 말이 있다.
매년 공식 홈페이지에서 후보를 선정 후 투표한다.
후보가 되는 조건은 인테르에서 60경기 이상 출전, 트로피 하나 이상 수상, 은퇴 후 3년 이상이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는 명예의 전당 선수를 선정하면서 특별상(Special Award)도 선정하였는데, 2018년에는 오랜 기간 인테르의 구단주였던 모타리 일가(안젤로 모라티, 마시모 모라티), 2019년에는 1986~1991년 동안 인테르의 수문장이었던 아스티툴로 말지오글리오가 Premio Brothers Universally United의 대표로 수상, 2020년에는 1984년부터 1995년 간 회장이었던 에르네스토 펠레그리니, 2021년에는 1963년부터 2001년 동안 부회장이었던 주세페 프리스코가 수상하였다.
인테르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브라질의 축구단에 대한 내용은 SC 인테르나시오나우 문서, 핀란드의 축구단에 대한 내용은 FC 인테르 투르쿠 문서
, 미국의 축구단에 대한 내용은 인터 마이애미 CF 문서
참고하십시오.1. 개요[편집]
이탈리아 세리에 A의 프로 축구 클럽. 연고지는 밀라노. 홈 구장은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
2. 상세[편집]
통산 세리에 A 19회 우승, UEFA 챔피언스 리그 3회 우승을 차지했고,[14] 특히 2009-10 시즌에는 이탈리아 클럽 최초이자 유일무이한 트레블을 달성한 클럽이다. 이전 2회의 우승은 유러피언컵(현 UEFA 챔피언스 리그) 1963-64, 1964-65 시즌의 2연속 우승이었는데, 인테르의 유러피언컵 우승이 특별히 값어치가 있는 건 이때의 인테르가 공히 유럽 최강이라 할 만한 기세를 떨치며 짠물 수비를 유럽 전역에 과시했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인테르는 '위대한 인테르(La Grande Inter)'라 불리며 카테나치오를 완벽한 형태로 구현해낸 가장 최초의 팀이었다.
초창기 영국인들이 주도해서 클럽을 창설한 AC 밀란이 영국인과 이탈리아인만을 클럽의 선수로 받아들이기로 하자, 이에 반대한 세력들이 AC 밀란을 탈퇴해서 모든 국가의 모든 선수들을 받아들이겠다며 창설된 팀이며 또한 직설적인 팀명[15] 과 Fratelli del Mondo(세계의 형제들)라는 단어를 팀의 프랜차이즈 모토로 사용함에 따라서 정체성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래도 역사적으로 보면 이탈리아 출신이 우대받았으며, 당장 홈 경기장의 공식 명칭이 1930년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던 공격수 주세페 메아차에서 따왔다. 2년 연속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한 '위대한 인테르' 시절에도 공격수 산드로 마촐라와 이후 구단주까지 되는 자친토 파케티, 그리고 파올로 말디니나 프랑코 바레시에 조금 가려진 면이 없지 않지만 주세페 베르고미 역시 인테르의 이탈리아 출신이다. 게다가 역대 이탈리아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 통계를 내 보면 인테르 소속이었던 선수가 두 번째로 많다. AC 밀란은 3위, 1위는 당연히 유벤투스.
AC 밀란과 같은 경기장을 쓰는데, 정확한 공식 명칭은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Stadio Giuseppe Meazza)'로, 1980년 개명되었다. 주세페 메아차를 기리기 위해 구장의 명칭을 바꾸었는데 주세페 메아차는 AC 밀란이 아닌 인테르에서 전성기를 보낸, 최고 레전드 선수이기 때문에[16] AC 밀란의 팬들은 경기장의 명칭에 바뀌는 것과 바꿔 부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개명되기 전의 공식 명칭은 경기장이 있는 지역구를 그대로 접목하여 '스타디오 산 시로(Stadio San Siro)'. AC 밀란 팬들이 인테르의 주세페 메아차와 분명하게 구분하고자 부르는 명칭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짧아서'라는 게 결정적이다. 홈, 어웨이 경기 구분은 각 서포터들에게 분배하는 티켓 수를 달리 한다고 한다.
공식 클럽 명칭은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이다. 이는 AC 밀란이 공식적으로 도시명을 이탈리아어가 아닌 영어로 쓰는 것에 반발해 이탈리아어를 쓴 것이다. 영어권에서는 영어식으로 '인터 밀란(Inter Milan)'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같은 밀라노가 연고지인 AC 밀란과 맞춰 부르려고 하는 경향 때문이기도 하다.
이름이 길기 때문에 보통 '인테르'로 줄여 부르며, 홈 팬들도 인테르라고 줄여 부른다. 이탈리아어 원 발음대로 하면 인테르라고 해야 하지만 보통 알파벳을 사용하는 국가들 같은 경우 각 나라의 언어대로 읽는 것이 보통인지라 영어식으로 ter 발음을 테~가 아닌 터~ 로 하는 곳도 제법 많은 편이다.
또한 인테르는 이탈리아 클럽 중 유일하게 단 한 번도 세리에 B로 강등되지 않은 클럽이다. 다만, AC 밀란과 중간에 분리되다시피 한 클럽이라 세리에 A 개근 멤버에는 속하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러한 팀들 중에서 인테르 다음으로 오랜 기간 참여한 클럽은 더비 라이벌인 AC 밀란이다.
3. 역대 감독[편집]
4. 스쿼드[편집]
4.1. 유명 선수[편집]
- 이탈리아 국적
- 주세페 메아차: 1927-1940, 1946-1947
- 자친토 파케티: 1960-1978
- 산드로 마촐라: 1960-1977
- 로베르토 보닌세냐: 1969-1976
- 가브리엘레 오리알리: 1970-1983
- 주세페 바레시: 1976-1992
- 알레산드로 알토벨리: 1977-1988
- 왈테르 젱가: 1978-1994
- 주세페 베르고미: 1979-1999
- 프랑코 카우시오: 1984-1985
- 마르코 타르델리: 1985-1987
- 알도 세레나: 1978-1985, 1987-1991
- 살바토레 스킬라치: 1992-1994
- 로베르토 바조: 1998-2000
- 안드레아 피를로: 1998-2001
- 크리스티안 비에리: 1999-2005
- 프란체스코 톨도: 2001-2010
- 마르코 마테라치: 2001-2011
- 파비오 칸나바로: 2002-2004
- 마리오 발로텔리: 2007-2010
- 티아고 모타: 2009-2012
- 안드레아 라노키아: 2011-2022
- 안토니오 카사노: 2012-2013
- 페데리코 디마르코: 2014-2017, 2018-
- 알레산드로 바스토니: 2017-
- 니콜로 바렐라: 2020-
- UEFA
- 렌나르트 스코글룬드: 1950-1959
- 루이스 수아레스: 1961-1970
- 한지 뮐러: 1982-1984
- 칼 하인츠 루메니게: 1984-1987
- 로타어 마테우스: 1988-1992
- 안드레아스 브레메: 1988-1992
- 위르겐 클린스만: 1989-1992
- 마티아스 자머: 1992-1993
- 다르코 판체프: 1992-1995
- 데니스 베르캄프: 1993-1995
- 유리 조르카에프: 1996-1999
- 아론 빈터르: 1996-1999
- 로랑 블랑: 1999-2001
- 로비 킨: 2000-2001
- 클라렌스 세도르프: 2000-2002
- 시니샤 미하일로비치: 2004-2006
- 데얀 스탄코비치: 2004-2013
- 루이스 피구: 2005-2009
- 패트릭 비에이라: 2006-2010
-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2006-2009
- 크리스티안 키부: 2007-2014
- 고란 판데프: 2009-2012
- 웨슬리 스네이더: 2009-2013
- 사미르 한다노비치: 2012-2023
- 마테오 코바치치: 2013-2015
- 네마냐 비디치: 2014-2016
- 이반 페리시치: 2015-2022
- 마르첼로 브로조비치: 2015-2023
- 스테판 더프레이: 2017-
- 밀란 슈크리니아르: 2017-2023
- 로멜루 루카쿠: 2019-2021
- 에딘 제코: 2021-2023
- 얀 좀머: 2023-
- 뱅자맹 파바르: 2023-
- CONMEBOL
- 엑토르 스카로네: 1931-1932
- 안토니오 안젤릴로[17] : 1957-1961
- 자이르 다 코스타: 1962-1967, 1968-1972
- 다니엘 파사레야: 1986-1988
- 하비에르 사네티: 1995-2014
- 호베르투 카를루스: 1995-1996
- 디에고 시메오네: 1997-1999
- 호나우두: 1997-2002
- 알바로 레코바: 1997-2008
- 이반 코르도바: 2000-2012
- 아드리아누: 2001-2002, 2004-2009
- 에르난 크레스포: 2002-2003, 2006-2009
-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2003
- 킬리 곤살레스: 2003-2006
-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2004-2006
- 에스테반 캄비아소: 2004-2014
- 다비드 피사로: 2005-2006
- 줄리우 세자르: 2005-2012
- 왈테르 사무엘: 2005-2014
- 막스웰: 2006-2009
- 마이콘: 2006-2012
- 필리페 쿠티뉴: 2008-2013
- 루시우: 2009-2012
- 디에고 밀리토: 2009-2014
- 디에고 포를란: 2011-2012
- 프레디 과린: 2012-2016
- 마우로 이카르디: 2013-2020
- 가리 메델: 2014-2017
- 주앙 미란다: 2015-2019
- 라우타로 마르티네스: 2018-
- 알렉시스 산체스: 2020-2022, 2023-
- 아르투로 비달: 2020-2022
- CAF
4.2. 영구결번[편집]
인테르의 전설적인 두 풀백인 자친토 파케티와 하비에르 사네티의 등번호가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5. 역사[편집]
5.1. 최근 시즌[편집]
5.2. 시즌별 리그 순위[편집]
6. 역대 엠블럼[편집]
엠블럼은 클럽의 설립자이자 화가였던 조르조 무지아니가 만든 초기 디자인을 거의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엠블럼의 색깔은 청색, 흑색, 황색이 주를 이루고 있다. 청색과 흑색은 밤하늘을, 황색은 별을 상징하고, 원형 엠블럼 내의 영문은 Football Club Internazionale Milano의 약어 FCIM이다. 뱀은 밀라노의 중심 세력이었던 비스콘티 가문의 상징, 흰 바탕의 적색 십자가는 밀라노의 상징을 뜻한다. 2021년 3월 현재의 새 엠블럼이 발표되었다. #
7. 유니폼[편집]
전통적으로 네라주리라 불리는 파랑-검정의 줄무늬 유니폼을 착용한다.
8. 인기[편집]
세리에 A에서 평균 관중 수가 가장 많은 구단으로[18] , 7년 만에 챔피언스 리그로 복귀한 18-19 시즌에도 1위였는데 리그 기준 평균 61,149명, 최대 78,275명의 관중을 동원하며# 유럽 전체에서 평균 관중 순위 5위[19] 에 랭크되었다. 또한 세 번째 빅 이어와 트레블을 달성했던 2010년의 전성기엔 유럽 전체 축구 구단 서포터 수 순위 8위에 랭크되기도 하였다.[20] #
인테르의 팬들은 흔히 인테리스티(Interisti) 혹은 인테리스타(Interista)로 자칭하며[21] , 이 중 울트라스의 경우 스타디오 주세페 메아차의 북쪽 관중석을 차지하므로 흔히 쿠르바 노르드(Curva Nord)로 불린다.[22]
SNS상에선 페이스북 기준 약 2,800만 명 정도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고, 인스타그램 기준으로는 1080만명 정도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봤을 때 인테르의 서포터들이 더 유력한 지역은 인도네시아와 중국으로, 인도네시아의 경우 현 회장인 에리크 토히르의 인지도의 영향을 받았고, 중국의 경우 인테르가 1978년 가장 먼저 방중한 세리에 A 구단이라는 점 때문에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특히 2016년에 쑤닝 그룹이 인테르를 인수함에 따라 중국 내에서 큰 성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인테르 클럽(Inter Club)이라는 공식 서포터즈의 지부 형태로 세계 각지에 팬층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상황이며, 대한민국에서도 2018년 10월경 인테르 클럽 코리아(ICK)#라는 이름으로 인증을 받아 창설되었다. 여담으로 밀라노 본사에서도 의외의 지역에서 생각보다 많은 회원이 가입하여 다소 놀라면서 반가워했다는 후문이 있다. 기본적으로 정책상 비유럽 지역의 경우 연 회비를 납부하는 시니어 멤버가 25명 이상 필요한데, ICK는 무려 80여 명이 참가하였다.
그러나 5년도 안 가서 쑤닝 그룹이 재정 악화로 파산 직전에 이른 통에 팀을 팔기로 했다. 쑤닝 그룹 휘하이던 장쑤 쑤닝부터 2020년 리그 우승을 차지했는데도 갑자기 팀이 해체되어버렸을 정도이다. 재정난으로 우승 보너스도 줄이고 운영도 엉망이라 연봉을 삭감한다고 할 정도이니 심각한 모양이다.
이탈리아 '칼초메르카토'는 2021년 3월 11일(한국 시간) "인터 밀란의 소유권을 가진 쑤닝 그룹이 인수 합의를 마치려는 후보들 중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총재가 포함되어 있다"라고 보도했다. 바로 2020년에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살뻔하다가, 여러 문제로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거부했던 사우디 국부펀드에서 대신 살 가능성이 커졌다. 이후 아무 소식이 없다가 9월 18일 골닷컴 '아랍 에디션'에서 "현재 소식통에 따르면 인터 밀란 경영진과 사우디 대규모 투자 펀드 사이에서 클럽 매각을 위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협상은 매우 진전된 상태이며 곧 마무리될 것이다. 인터 밀란은 지분 50% 이상을 매각한다"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여전히 지지부진한 가운데 2021년 10월 7일에 사우디 왕가 컨소시엄이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사면서 인테르에 엄청난 사우디 왕가 오일 자본이 들어올 가능성이 사라져버렸다고 여겼는데...
2022년 1월 1일(이하 한국 시간) 영국 매체 '인사이드 월드 풋볼'은 인터 밀란의 현 소유주인 쑤닝이 사우디아라비아의 공공투자기금(Public Investment Fund, PIF)에 지분 매각을 앞두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 4000억 달러의 자금을 가진 사우디 PIF가 10억 달러의 자금을 활용해 쑤닝 그룹이 보유한 인터 밀란으로 매각될 예정이다"라며 "이 결정은 카타르의 beIN 스포츠와의 '미디어 전쟁'에 대비한 것이다"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같은 리그에서 팀 2개를 소유하는 건 금지되었지만 이럴 경우에는 허용이 된다. 하지만 뉴캐슬 운영에 더 힘을 기울여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긴 하면서도 500조 원 이상 추정 자본을 가진 사우디 왕가 펀드 자본력을 생각하면 2팀 모두 엄청난 투자를 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는 분석도 있다.
인테르 팬으로 유명한 사람들은 유명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23] , 영국의 글래머 모델[24] 로 원래 아내와 막 이혼한 상태였던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에게 공개 구혼을 했고 그 뒤 인테리스타의 길로 접어든 에이프릴 서머스[25] , 발렌티노 로시[26] , 미국의 배우 알리사 밀라노 등이 있다. 그리고 금지어도 있다. 레드&블랙이 주요 컬러라 의외일 것 같지만 스쿠데리아 페라리의 전 감독 마티아 비노토도 인테르 팬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축구선수 팬으로는 안토니오 카사노, 케빈 라자냐[27] , 니콜라 산소네가 있다. 여담으로 한국에서는 박찬우 해설위원, 가수 케이시가 인테르 팬으로 유명하다.
2017년 발생한 프랑스 시위 과격 진압 사태의 피해자도 인테르 팬임이 밝혀졌다. 프랑수아 올랑드가 그를 면회하러 갔을 때 일반 환자복이 아닌 인테르 유니폼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 본의 아니게 인테르는 이 사건에 연관되게 되었고 이 사람을 경기에 초청하고 싶단 의사를 밝혔다.
모란디 다리 붕괴사고의 희생자 중 콜롬비아인이 하나 있었는데 이 사람은 인테르 팬 클럽 콜롬비아 지부의 회장이었다. 그래서 인테르가 이 사람을 추모하기도 했다.
MM8이라는 BJ도 인테르 팬이다.[28] 선천성 시각장애인이지만 음악과 축구를 아주 좋아하며, 특히 축구의 경우 혼자 직관도 간다. 경기가 끝나고 나오는 인테르 선수들을 만나는 쇼츠[29] 들로 유명하다. 집에서 촬영하는 경우 자기 아버지가 함께 나오기도 하며, 틱톡 기준 약 18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다.
9. 라이벌[편집]
더비 매치로 엮이는 라이벌로는 이탈리아의 세리에 A의 명문 유벤투스 FC와 AC 밀란이 있다. AC 밀란과의 관계가 경기에선 투닥거리긴 해도 중요한 일에는 서로 도움을 주기도 하는 형제 같은 사이라면 유벤투스와는 이전부터도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칼치오폴리 이후로는 서포터와 구단진들 모두 대놓고 상대방을 까내리며 적대적인 수준의 살벌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각각의 더비 매치에 대한 사항은 해당 문서 참조. 그 외에 같은 네라주리 유니폼에 롬바르디아 주 지역 라이벌인 아탈란타 BC와도 엮이지만 아탈란타의 팀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아 치열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아탈란타도 당당히 상위권에 위치하고 있다.
10. 응원가[편집]
10.1. C'è solo l'Inter[편집]
10.2. Pazza Inter Amala[편집]
인테르를 대표하는 응원가 중 하나로 홈 경기에서 킥오프 전에 이 응원가가 울려퍼진다.
10.3. Cuore Nerazzurro[편집]
인테르를 대표하는 응원가 중 하나로 1984년 이 카말레온티(i Camaleonti)의 헌정곡이다.
11. 여담[편집]
11.1. 레알 마드리드와의 관계[편집]
인테리스타들에게 가장 인기 있던 구단은 다름 아닌 레알 마드리드였다. 일명 '믿고 쓰는 레알산(믿쓰레)', '우리 친구' 등의 별칭으로 불렸는데 이는 2000년대 중반 유독 레알에서 부진했던 선수를 인테르가 영입하면 클럽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큼 멋진 활약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트레블의 주역 베슬리 스네이더르, 왈테르 사무엘, 에스테반 캄비아소가 레알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다가 인테르에서 부활한 선수들이다. 그래서인지 인테르 팬들 중에 레알 마드리드에게 호의적인 사람이 꽤 많았고, 레알 마드리드 팬덤에서도 인테르가 09/10 시즌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에서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바르셀로나를 꺾은 바 있기 때문에 인테르의 이미지는 괜찮은 편이었다. 그러나 루카 모드리치 이적설로 두 구단 사이는 틀어지게 됐다.
모드리치의 에이전트가 인테르에게 먼저 모드리치에게는 자유 계약으로 풀릴 수 있으니 기다리고 있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인테르는 레알 마드리드의 주전이었던 모드리치를 순순히 내줄 리가 없으니 일단 기다리면서 AS 모나코로부터 케이타 발데를 임대해 오는 것에 주력했다. 그리고 모드리치에게는 훈련에 무단 불참하면서 구단에 대들며 태업하게 유도하지도 않았다. 모드리치 본인도 일단 자신은 프로답게 전 팀과 좋게 이별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선 임대, 후 이적으로 하려고 했던 건 보상금 명목이었다. 당시 인테르가 FFP 징계를 받고 있던 게 가장 컸다.
모드리치와 에이전트 사단은 레알 마드리드의 회장 플로렌티노 페레스를 설득하는 데 실패했고 이에 레알 마드리드는 인테르를 불법적인 사전 접촉으로 고소할 예정이라고 한다. #
그리고 FIFA는 인테르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지 않기로 하여 사건은 일단락됐다. #
그래도 이후 아슈라프 하키미를 비교적 싸게 인테르에 내주는 모습을 볼 때, 구단 간 관계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모양이고, 그냥 단순 해프닝으로 끝난 듯하다.[30]
11.2. AC 밀란과의 맞트레이드 건[편집]
더비 라이벌인 AC 밀란과의 선수 이동은 거의 극상성 수준으로 인테르가 손해를 본 트레이드가 많았다. 프란체스코 코코, 위밋 다발라 ↔ 클라렌스 세도르프, 다리오 시미치, 굴리 ↔ 안드레아 피를로 등이 있다.[31]
11.3. 팬 사이트[편집]
국내 대표적인 팬 사이트로 띠아모인테르가 있다. 상술한 공식 서포터즈인 인테르 클럽 코리아가 함께 운영되는 장소이며 대체적으로 여러 이슈들에 대해 운영진의 정리보다는 회원 스스로의 자정 능력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트래픽과 라이트 팬의 접근성 문제로 전용 사이트에서 네이버 카페로 옮기게 되었으며, 해당 사이트에 대해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11.4. 든든한 최후방과 최전방[편집]
골키퍼와 스트라이커 걱정을 하지 않는 구단으로도 유명하다.
골키퍼는 구단 역사상 최고의 골키퍼 왈테르 젱가 이후 잔루카 팔리우카, 세바스티앙 프레이를 거쳐 프란체스코 톨도-줄리오 세자르-사미르 한다노비치-안드레 오나나까지 잡음 없이 부드럽게 세대 교체가 이어졌고 모두 다 어디 내놓아도 부족함이 없는 월드 클래스 선수들이었다.
역대 스트라이커 및 최전방 공격수들 역시 화려해서, 1990년대부터 위르겐 클린스만, 알바로 레코바, 호나우두, 크리스티안 비에리, 아드리아누,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디에고 밀리토, 사무엘 에투, 마우로 이카르디, 로멜루 루카쿠, 라우타로 마르티네스 등의 쟁쟁한 선수들이 팀의 핵심으로 활약해왔다. 그 외에도 로베르토 바조, 에르난 크레스포, 에딘 제코 등의 쟁쟁한 공격수들 역시 활약한 바 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공격수들은 대부분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인 것을 알 수 있다. 그 밖에도 이름값
11.5. 우승 기록[편집]
2006년 유벤투스가 칼초폴리로 몰락하자 인테르의 본격적인 독주가 시작되었다. 05-06 시즌부터 09-10 시즌까지 세리에 A 5연패를 차지하며 통산 18회 우승을 달성하자 팬들은 유니폼에 2번째 별이 생기는 것을 꿈꾸며 독주가 계속 이어지기를 원했다. 인테르의 레전드 사네티도 "인테르의 유니폼에 별 2개가 박히면 그때 은퇴하겠다."라고 발언했다.
그러나 팬들의 기대와는 달리 다음 시즌인 10-11 시즌 스쿠데토를 AC 밀란에 내주더니 그 다음 시즌부터는 유벤투스가 완전하게 부활해버려 10-11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마지막으로 유로파 리그나 전전하는 중상위권 팀이 되어버린다. 이후 17-18 시즌부터 다시 챔스권까지 전력이 상승했지만 여전히 우승과는 거리가 먼 상태였으나 20-21 시즌에 오랜만에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그 후 코파 이탈리아,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우승컵을 연속으로 들어 올렸다.
11.6. 2021년 이후 구단 재정난과 매각설[편집]
2021년 들어서 쑤닝 그룹이 재정 악화로 파산 직전에 놓이면서 결국 팀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중국 슈퍼 리그에 있던 같은 계열사의 장쑤 쑤닝도 전 시즌 리그 우승을 거뒀음에도 2021년 갑자기 해체해버렸을 정도로 재정 문제가 심각하다. 재정 악화의 여파로 인테르 소속이던 주앙 미란다 등을 갑자기 방출하게 된 점, 2021년에 인테르가 세리에 A 우승컵을 오랜만에 들어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통 큰 보상은 커녕 우승 보너스를 줄이고 연봉을 삭감하겠다고 발표하여 반감을 얻고 있으며 2021년에 와서는 팀은 안 팔고 주력 선수 여럿을 팔아치우면서 서포터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중이다.
2022년 6월 15일, 라 레푸블리카는 "중국 정부가 쑤닝 그룹에 인터 밀란의 경영권을 포기하라는 새로운 지령을 내렸다"라고 보도했다.[32] 안 그래도 재정적으로 어려운 쑤닝 그룹은 이제 자국 정부 압력까지 받으니 인터 밀란을 적극적으로 팔려고 하겠지만, 헐값에 팔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다른 곳에서 적극적으로 사려는 움직임도 없는 판국. 한때는 아랍 왕족 자본 인수설이 나왔으나 아랍 자본들은 뉴캐슬 유나이티드를 인수하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인수를 제의하는 등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을 우선 알아보는 탓에 인테르에 대한 인수 제의가 안 들려온다.
22-23시즌 인테르가 챔스 준우승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밀란의 수뇌부들은 23-24 여름 이적시장에 투입할수 있는 예산이 적다고 말하며 여전히 재정난이 심각하다는 것을 드러냈다.
2023-24 시즌에 구단이 팔릴 거라는 말도 있다. 정확히는 23/24 시즌 이후에 쑤닝이 인테르를 담보로 사모펀드인 오크트리에서 대출을 받은 돈의 변제기한이 다가오는데, 이를 변제하지 못하면 인테르의 소유권이 오크트리 측으로 넘어간다. 게다가 이게 이자율이 연 12%에 달한다는 말이 있다.
12. 역대 주장[편집]
13. 명예의 전당[편집]
매년 공식 홈페이지에서 후보를 선정 후 투표한다.
후보가 되는 조건은 인테르에서 60경기 이상 출전, 트로피 하나 이상 수상, 은퇴 후 3년 이상이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지는 명예의 전당 선수를 선정하면서 특별상(Special Award)도 선정하였는데, 2018년에는 오랜 기간 인테르의 구단주였던 모타리 일가(안젤로 모라티, 마시모 모라티), 2019년에는 1986~1991년 동안 인테르의 수문장이었던 아스티툴로 말지오글리오가 Premio Brothers Universally United의 대표로 수상, 2020년에는 1984년부터 1995년 간 회장이었던 에르네스토 펠레그리니, 2021년에는 1963년부터 2001년 동안 부회장이었던 주세페 프리스코가 수상하였다.
14. 같이 보기[편집]
[1] 이탈리아어로 검정-파랑(Nero-Azzurri). 아탈란타 BC도 사용하지만 인지도 면에서는 인테르가 유명하다.[2] 밀라노 방언으로 '사랑스러운 존재'이라는 뜻이다.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스포츠 기자 잔니 브레라가 붙인 애칭이다.[3] 이탈리아어로 '큰 뱀'을 일컫는다. 중세에 밀라노 및 롬바르디아 지역 전체를 통치했던 비스콘티 가문의 상징이었다. 지금도 밀라노의 상징 중 하나로 여겨진다. 같은 의미로 세르펜테(Serpente)라고 부르기도 한다.[4] 롬바르디아 방언으로 '허풍쟁이'라는 뜻이다.[5] #, #, #[6] 쑤닝 그룹 회장 장진둥의 아들로, 중국식 이름은 장캉양(张康阳). 2018년 10월 27일부로 완전한 회장이 되었다.[7] 인테르에서 영구결번까지 지정된 레전드 선수 출신으로 자신이 뛴 대표 구단의 최고위원까지 오른 케이스.[8] 세리에 A를 10회 이상 우승한 클럽은 엠블럼 위에 금별을 달 수 있으며, 거기서 10회 더 우승할 때마다 별도 하나씩 추가된다. 현재 세리에 A에서 금별을 달고 있는 클럽은 인테르를 포함해, 유벤투스(3개), AC 밀란(1개)까지 총 3팀밖에 없다.[9] 원래는 유벤투스가 우승팀이었지만 칼초폴리 스캔들로 우승을 박탈당했고 순위를 다시 재어 보니 인테르가 공식 우승팀이 되었다.[10] 한화로 약 1180억[11] 한화로 약 1650억[12] 루카 토니와 공동 득점왕[13] 치로 임모빌레와 공동 득점왕[14] 세리에 A 우승 횟수는 유벤투스에 이어 AC 밀란과 공동 2위이며, 챔스 우승 횟수는 AC 밀란에 이어 2위다.[15] 이탈리아어로 Internazionale는 '국제'라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여담으로 09-10 시즌 인테르의 베스트 11에 지목된 선수들이 남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출신만 무려 8명에 육박했고 그중 이탈리아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16] 물론 주세페 메아차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주세페 메아차가 말년에 AC 밀란에서도 뛰었기 때문이다.[17] 아르헨티나-이탈리아 복수국적자로, 아르헨티나 및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 모두 뛰었다.[18] 경기장 관중석 대비 관중 동원률은 유벤투스가 압도적이지만, 두 팀 경기장의 관중 동원력이 3만 명 이상 차이난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19] 18-19 기준 1위 도르트문트 80,820명, 2위 바르샤 75,208명, 3위 뮌헨 75,000명, 4위 맨유 74,498명, 6위 레알 60,967명.[20] 이탈리아 내에선 AC 밀란이 7위에 오르며 정상을 지켰다.[21] 인테르 소속 선수들 내지 보드진, 스태프진도 이렇게 불리곤 한다. 인테리스티는 인테리스타의 복수형이다.[22] 반면 AC 밀란의 팬들은 남쪽에 앉으므로 쿠르바 수드(Curva Sud)라고 불린다.[23] 인테르의 레전드인 하비에르 사네티와도 친하다고 하며, 선수들이 훈련중인 훈련장에서 깜짝 공연을 한 적도 있다![24] 해외에서는 패션 모델과 글래머 모델이 구분돼 있다. 글래머 모델은 키는 좀 작아도 몸매가 좋으면 할 수 있다. 영국에서는 단시간에 돈방석에 앉을 수 있게 해 주는 직업이라고 은근히 각광받고 있다고. 대표적인 사람은 킬리 하젤.[25] 본명은 나디아 포스터. 어쨌든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봄 여름 누님이라고 불리는 듯하다.[26] 티아고 모타의 파리행에 매우 분노하기도 했고, 동향인 스테파노 센시를 칭찬한 적도 있다.[27] 이탈리아 본토 축구선수다.[28] 유튜브 계정도 있으나 주로 틱톡으로 활동한다.[29] 물론 다른 팀 선수들도 만날 때가 있으며, 인테르와 사이가 나쁜 유벤투스의 부폰과 키엘리니와도 만난 적이 있다.[30] 그리고 브라힘 디아스가 맨체스터 시티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할 당시 상황만 봐도 페레스의 레알은 타 구단과의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페레스의 레알조차도 사이가 안 좋은 구단이 있는데 발렌시아 CF와 파리 생제르맹 FC이다. 발렌시아는 페레스 이전 미야토비치 사가와 최근의 비니시우스 인종차별 건으로 인해, PSG는 음바페 이적 사가로 인해 갈등이 있다.[31] 인테르의 트레이드 성적은 썩 좋은 편이 아니다. 96년도에는 나이 먹을 대로 먹은 이반 사모라노 영입을 위해 호베르투 카를루스에 현금까지 얹어줬고, 04년도에는 유벤투스에 낚여 파비오 칸나바로를 카리니, 돈과 맞바꾸고, 08년에는 히카르두 콰레스마를 업어오기 위해서 비토르 우구 고메스 파소스(펠레)에 약 2,000만 유로를 얹어줬다.[32] 중국 정부는 중국 기업들의 외국에 대한 비전략적 투자를 금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