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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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일본의 고교야구 대회. 통칭 고시엔이라 불리는 야구대회는 두 가지로, 마이니치 신문에서 주최하는 3월의 고시엔은 선발고등학교야구대회, 아사히 신문에서 주최하는 8월의 고시엔은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는 전자를 센바츠(センバツ)[1] 또는 봄 고시엔(春の甲子園), 후자를 여름 고시엔(夏の甲子園)으로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둘 다 2번 항목인 한신 타이거스의 홈구장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열리기 때문에 그런 별칭이 붙었다. 좁은 의미의 고시엔 대회는 여름 고시엔, 즉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만을 뜻한다.저희들은 지금 수많은 선배님들로부터 용기를 전해받으며, 어린 시절부터 꿈꿔 온
고시엔이라는 최고의 무대에 최고의 동료들과 함께 섰습니다.
지금 저희가 여기 있는 것은 고향의 모두들은 물론 너무나도 많은 분들이 저희를 지탱해 주신 덕분입니다.
그 모든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그리고 전국의 모든 분들이 “고교야구를 보러 가자!”라고 말씀하실 수 있도록
고교생답게, 거침없이, 시원하게, 정정당당히 플레이하겠습니다.
저희들의 모습이 모두에게 희망과 꿈과 힘을 전할 수 있도록
동료들과 함께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힘이 다할 때까지 전력으로 싸울 것을 맹세합니다!
2014년 봄 고시엔 선수 선서 中
봄 고시엔이라 불리는 선발대회는 추계대회 성적이 우수한 32개 학교를 선발해서 겨루는 대회이다. 이 추계대회부터 난이도가 상당하다. 각 지역의 현 대회에서 이기고 나서 상위 대회인 지방 대회까지 이겨야 하기 때문. 각 권역별 전년도 추계대회 성적이 우수한 28개교를 일반전형으로 선발하고 마찬가지로 전년도 가을에 열리는 메이지 진구 대회의 우승팀이 속한 지역에서 1개교를 추가로 선발하고 이른바 21세기 전형(21世紀枠)이라 불리는 특별전형으로 나머지 3개 고등학교를 선발한다. 이 21세기 전형의 선발 기준은 조금 독특한데, 이른바 "타의 모범이 되는 학교"를 선발하는데, 일본 고교야구 연맹의 안내에 따르면 전년도 추계 지역대회 출전 학교가 128개교가 넘는 지역에서는 16강 이상의 성적, 128개교 미만인 지역에서는 8강 이상의 성적을 기록한 학교여야 하는게 가장 우선적인 조건이다. 이후 세부 선발 기준으로는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적을 얻은 학교, 야구 교실이나 기타 봉사활동을 통한 지역 사회에 이바지하는 학교 등등의 기준이 있다. 또한 굳이 앞서 말한 조건이 아니어도, 전국구급 강호교를 일찍 만나서 빨리 떨어졌지만 실력이 기대되는 학교가 선발될 수도 있다는 부연설명 또한 붙어있다.[2] 그래서 21세기 전형 학교들은 대다수가 첫 출전이며 거의 절대다수가 유명하지 않은 학교다. 그 결과 지역예선을 뚫고 출전한 학교가 21세기 전형 팀에게 지면 큰 이변이 일어났다고 평가한다. 2010년 선발대회에서 시마네현의 명문 카이세이 고교의 감독은 21세기 전형팀인 코요 고교에게 패배하자 선수들에게 어떻게 21세기 전형팀 따위에게 지느냐며 폭언을 퍼부은 것이 고교야구연맹에 제보되자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하기도 했다.
한편 일반전형 학교들도 추계대회 성적순으로만 뽑히는 것은 아니다. 추계대회 성적에 학교가 가지고 있는 기본실력 등이 고려되어 선발되기 때문에 추계 지역대회에서 4강에 들어갔던 학교가 탈락하고 8강에 그친 학교가 선발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추계 지역대회도 변수가 많은 토너먼트 대회인 까닭에 그러한 점을 고려하는 것.
여름 코시엔은 각 도도부현별 지역예선 토너먼트의 우승자들이 모여 겨루는 대회이다. 그냥 고시엔이라고 하면 보통 여름 고시엔을 의미한다.진정한 의미에서 각 지역의 대표자들이 출전한다는 점에서 봄의 고시엔보다 여름의 고시엔이 압도적으로 인기가 많다. 물론 봄 고시엔의 인기도 많지만, 여름 고시엔은 그걸 뛰어넘어 일본인들의 여름을 상징하는 국민적 대축제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엄청나다. 고시엔이 워낙에 넘사벽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보니 야구는 미식축구와 함께 인터하이에 포함되지 않는 두 종목 중 하나이며, 매 경기마다 47,000석에 달하는 거대한 고시엔 구장이 만원에 가깝게 들어차고 대회의 시청률은 무려 20%에 육박한다.
코시엔의 우승이 바로 고교야구 전국제패가 된다. 문제는 이것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어렵다는 것.[5] 고시엔에 진출하려면 지역 예선에서 최소 5연승, 고시엔에서 우승하려면 그 지옥을 뚫고 온 지역대표들을 상대로 또 최소 5연승을 거두어야 한다. 즉, 최소 10번을 이기는 동안 한 번이라도 지면 거기서 끝. 일본에서는 고시엔에서의 패배를 일명 ‘여름의 끝’이라고 표현한다. 한국과 달리 여름을 마지막으로 해당 학년의 공식시합 일정이 종료되기 때문. 10연승으로 우승할 수 있는 것은 그나마 운 좋은 경우이다. 오사카나 가나가와 등의 대형 지역에서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7연승 혹은 8연승을 거두어야 고시엔에 진출할 수 있다.[6] 고시엔 본선에서도 5연승으로 끝낼 수 있는 것은 대진운이 좋을 때에나 해당하고, 일반 대회 기준으로 49개교 중 15개교만 부전승을 하고 34개교는 1회전-2회전-3회전(16강)-준준결승-준결승-결승을 거쳐야 한다. 즉, 경우에 따라 14연승을 거둬야만 우승할 수 있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월드컵 지역예선을 빗대어 설명하자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월드컵 본선을 진출하기 위해선 아시아 예선전을 한번도 패한 경기 없이 최종예선까지 포함해 모든 경기를 승리를 해 1위를 해야만 본선 진출이 확정되어지는 것과 같다.
코시엔 우승팀을 역사상 단 한 번도 배출하지 못한 지역도 수많을 정도로 경쟁은 치열하다. 예를 들어 도호쿠는 지역 내 모든 현을 통틀어 2021년까지 9개 고교가 결승에 올랐지만 그 결승에서 모두 패하면서 단 한 번도 우승을 못하는 비극을 겪으며[8] 도호쿠의 비원이라고까지 불릴 정도로 오랫 동안 희망고문에 시달리다 2022년에 와서야 비로소 미야기현 대표인 센다이 이쿠에이 고등학교가 우승을 달성하며 지역 내 첫 우승팀을 배출했다. 2개 지구로 지역예선을 개최하는 홋카이도도 2004년 코마자와대학 부속 토마코마이 고등학교의 우승 전까진 단 1번도 우승팀을 배출하지 못했다. 도쿄, 오사카, 가나가와, 아이치에 이어 5번째로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사이타마현도 2017년 99회 대회에 와서야 비로소 여름대회 첫 우승팀을 배출했다. 2021년 대회 종료 후 현재까지 일본 47개 도도부현 중 13개 현이 아직 코시엔 우승팀을 배출하지 못했다. 코시엔 우승팀이 나오지 않은 현은 다음과 같다.[9]
그만큼 엄청난 고난을 겪고 얻어낸 성과이기 때문인지, 고시엔에서의 패배가 확정되는 순간 선수들이 나라 잃은 것처럼 통곡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지어 9회말 끝내기라도 당하면 패배팀 전원이 그라운드와 덕아웃에 쓰러져 엉엉 울며 한참 동안 움직이지도 못하는 안쓰러운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더 열심히 노력해 다음 해를 기약하면 되지 울기는 왜 우느냐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는데 워낙 경쟁이 심한 건 둘째 치고, 아예 지역예선 자체가 헬게이트급이라 전국대회 출전 가능성조차 로또급으로 어렵기 때문에 다음 기회를 생각할 여지가 없다. 위의 대진표를 보면 알겠지만, 해당 지역 예선만 보더라도 야구 실력이 난다 긴다 하는 팀들도 많고 더구나 지역대표 야구 명문고교는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한두 팀은 반드시 존재하고 있는지라 이들을 넘는다는 것조차 언감생심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대부분의 주전선수들은 3학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3학년에게 다음 해라는 건 당연히 없다. 단 한 번이라도 졌다간 3년간 죽기 살기로 노력해 온 고교야구 자체가 끝나 버리는 것이다.
최악의 케이스는 고시엔 진출권을 건 지역대회 결승에서의 패배. 이때는 정말로 선수들과 감독, 매니저, 그리고 관중석의 응원단까지 수천 명이 일제히 울음을 터뜨리는 광경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2016년 서도쿄지역에 속한 도카이대학부속 스가오고교는 지역예선 결승에서 패함으로써 3년 연속 지역예선 결승에서 탈락하는 비극을 연출했다. 특히 2016년의 경우엔 기존 서도쿄지역 강호인 니혼대학제3고교와 와세다실업고가 모두 준결승에서 떨어지고 결승 상대로는 그 동안 고시엔에 단 한 차례도 올라가지 못한 무명 하치오지고교가 올라와 손쉬운 낙승이 예상되었지만, 연장 11회에 통한의 역전타를 얻어맞는 바람에 3년 연속 콩을 찍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비슷한 시기인 2016~2018년의 야마구치현의 우베 고죠(宇部鴻城) 고등학교 역시 3년 연속 지역대회 결승에서 떨어지는 대참사가 일어났다.[14][15] 가나가와현의 토카이대학부속 사가미고교 역시 2006~2008년 3연속 지역대회 결승에서 패배해서 떨어진 적 있었다.[16] 이때 스미 코타는 2006년 입학생이었기 때문에 고1/고2/고3 모두 고시엔 문턱에서 팀이 탈락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2001년 후쿠시마현 지역대회 결승 니치다이 도호쿠 vs 세이코 가쿠엔 11회말 극적인 사요나라 역전극
고시엔 본선에서 졌을 때도 선수나 관중들이 울기는 하는데, 일단 분위기 자체가 아쉬움과 안타까움의 차원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최소한 고시엔의 흙을 밟긴 했다는 것으로 그나마 위안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고시엔 티켓이 달려있는 지역대회 결승 경기는 진짜 사느냐 죽느냐의 분위기. 거기다가 역전패를 당하거나 심한 경우 끝내기로 질 때는 그야말로 선수들과 응원단은 멘붕에서 쉽게 회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2001년 후쿠시마현 지역대회 결승에서는 강자인 세이코 학원과 니치다이 도호쿠 고교가 연장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는데 11회초에 4점을 뽑으면서 니치다이 도호쿠가 무난히 고시엔 진출을 이루는 것처럼 보였지만 11회말 공격에서 안타,볼넷, 내야수의 에러, 연속 안타로 점수를 계속 허용하고 결국 중견수를 넘어가는 주자 일소 적시타가 터지면서 그것으로 사요나라. 경기가 끝나면 원래 모든 선수들이 홈베이스를 사이에 두고 일렬로 서서 인사를 해야하는데 니치다이 도호쿠 선수들은 한동안 그라운드에서 일어나지도 못한다. 응원단 역시 울음바다.
2015년 고시엔 예선 탈락팀들의 마지막 미팅 장면.
2020년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로 인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79년 만에 봄과 여름 고시엔 모두 개최가 취소되는 일이 벌어졌다.
2. 역사[편집]
1915년 8월 18일에 도요나카 구장에서 열린 전국중등학교우승야구대회가 시초이다. 당시 73개 학교가 예선에 참가해 본선 티켓을 획득한 10개교가 격돌, 교토2중학교 (현재의 토바고등학교)가 초대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1924년 고시엔 구장이 완공되었고, 이 때무터 현재까지 대회는 매년 고시엔 구장에서 개최되고 있다. 단, 제2차세계대전(태평양전쟁)의 영향으로 1941년부터 1945년까지는 대회가 중단되었으나 일제 패망 후인 1946년부터 대회가 재개되었고 그 이후로 중단된 것은 2020년 코로나19 창궐 당시 단 한 차례 뿐이다.
1948년 학제 개편으로 5년제 중등학교(구제중학교 및 농업/공업/상업학교 등의 실업학교)가 3년제 신제중학교와 3년제 신제고등학교로 분리되면서 고시엔 대회의 명칭도 "전국고등학교야구선수권대회"로 바뀌었다. 참고로 학제개편 이전 도쿄 제1고, 교토 제3고 등의 구제고등학교는 제국대학의 대학예과로서 지금의 대학교 과정에 해당하는 고등교육기관이며, 구제전문학교 등과 경기를 치렀다. 따라서 1947년까지 열린 '인터하이'는 현재의 (신제)고교가 아니라 구제고등학교들의 대회이므로 오늘날로 치면 대학야구에 해당하며, 1948년부터 개칭된 지금의 전국고교야구선수권(고시엔)과 완전히 다른 대회이다.
1991년부터 일본에 소재한 외국인학교의 출전을 허용했는데, 외국인학교 중에서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계 학교인 교토국제학교가 2001년부터 계속 교토 지역예선에 출장해왔고 2021년에는 마침내 여름 고시엔 본선티켓을 따내어 본선 4강까지 진출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2015년에 100주년을 맞았다. 다만 제2차 세계 대전 등으로 대회가 열리지 못한 연도가 있어서 2015년 대회는 제97회였으며, 재100회 대회를 개최한 것은 2018년도였다.
2.1. 1945년 이전 외지 학교들의 고시엔[편집]
1945년 패전 이전까지 일본 제국 영토였던 조선과 대만, 그리고 조차지였던 관동주 등 외지의 각 지방에서도 지역 예선을 거친 대표 학교들이 고시엔에 진출했다.[17]
당초 야구에 부정적이었던 조선총독부는 1919년 사이토 마코토 총독이 부임하고 문화통치를 표방하면서 각급 학교, 특히 보통학교와 고등보통학교 등 조선인 학교에 야구부를 창설하란 압박이 들어갔으며 고시엔 조선지구 예선이 열리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21년 7월 조선지구 예선에서 대표로 선발된 부산상업학교가 제7회 고시엔에 출전한 것을 시작으로 조선에서는 경성중학교(1922년, 1924년, 1926년, 1927년, 1928년), 인천상업학교(1936년, 1938년, 1939년), 평양중학교(1929년, 1932년, 1940년[18] ), 경성상업학교(1931년, 1934년), 휘문고등보통학교(1923년), 부산중학교(1925년), 대구상업학교(1930년), 선린상업학교(1933년), 신의주상업학교(1935년), 용산중학교(1937년) 등이 조선 대표로 고시엔에 진출했다.
대만에서는 조선보다 일찍 일본에서 야구 열풍이 유입되었으나, 정작 고시엔 참가는 조금 더 늦은 1923년부터 이뤄졌다. 1922년 6월에 고시엔 주최사인 오사카 아사히신문의 중역 시모무라 히로시가 대만에도 고시엔 참가를 권유했고, 1923년 7월에 열린 제1회 대만지구 예선에서 우승한 대북일중(臺北一中)[20] 이 제9회 고시엔에 출전하면서 대북제일중학교(1923년, 1929년, 1930년, 1938년, 1940년), 대북상업학교(1924년, 1926년, 1927년, 1934년), 가의농림학교(1931년, 1933년, 1935년, 1936년), 대북공업학교(1925년, 1928년, 1932년), 가의중학교(1937년, 1939년) 등이 고시엔에 참가했다.
1931년 제17회 고시엔에서 가의농림학교(嘉義農林學校, 現 국립자이대학의 전신) 야구부가 준우승을 한 것이 대만팀의 고시엔 최고 성적이다. 다른 학교들과 달리 가의농림학교에서는 대만인과 일본인 사이의 차별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대만 원주민들까지 3개 민족이 어울려 오로지 실력으로 주전을 선발했는데, 특히 신체 능력이 뛰어난 대만 원주민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1931년 고시엔 준우승을 계기로 대만에서 야구 붐이 일었다고 한다. 이 가의농림학교 야구단의 이야기는 KANO[21] 라는 영화(2014년)로 제작되어 히트를 치기도 했다.
관동주에서는 1921년 7월 여순공과대학 운동장에서 열린 만주지구 예선에서 여순중학교(旅順中學校), 남만주공업학교(南滿洲工業學校) 등과 맞붙어 승리한 대련상업학교(大連商業學校)가 제7회 고시엔에 출전했고, 3승을 거두며 4강에 진출했으나 준결승에서 교토제일상업학교에 패배해 분루를 삼켰다. 1922년에는 대련상업학교와 쌍벽을 이뤘던 남만주공업학교가 지구예선에서 우승하고 고시엔에 출전했으나, 1925년 공업전문학교(고등교육기관인 구제전문학교)로 승격되면서 중등학교야구대회에 출전하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그에 따라 1923~1934년간 대련상업학교는 1929년(칭다오중학교 출전)을 제외하고 줄곧 고시엔 본선에 진출하며 1926년에는 준우승을 기록했으나, 만주사변으로 전화가 높아가던 1935년 교우회비 절감을 명목으로 야구부를 해체하고 말았다. 여순중학교는 이미 상급학교 진학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이미 야구부를 해산한 상태였고, 남만주공업학교는 고등교육기관으로 승격되었기 때문에, 대련상업학교의 야구부 폐지는 결국 관동주에서 야구부를 보유한 중등학교 3개교가 전부 역사속으로 사라진 것이었다.
이후 만주지구에서는 1차 대전 후 일본 제국이 독일 제국의 조차지를 인수한 칭다오의 칭다오중학교가 1929년에 이어 1935~1937년 대표로 고시엔에 나갔고, 톈진상업학교(1938~1939년), 봉천상업학교(1940년) 등이 중일전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고시엔에 출전했다.
1940년 황기 2600년 기념 대회를 마지막으로 1941년부터 중단된 고시엔은 일본의 패전 후 재개되었지만 이 때는 이미 외지가 전부 분리되어 조선, 대만, 만주의 학교들은 더이상 참가할 수 없었다.
3. 주제가[편집]
3.1. 여름 고시엔 주제가 "영광의 관은 그대에게 빛나리(栄冠は君に輝く)"[편집]
栄冠は君に輝く 영광의 관은 그대에게 빛나리
1.
雲は湧き光溢れて
쿠모와와키 히카리아후레테
구름은 솟아오르고 빛은 흘러넘쳐
天高く純白の球今日ぞ飛ぶ
텐타카쿠 쥰바쿠노타마 쿄오조토부
하늘 높이 순백의 공 오늘도 날아오르네
若人よいざ眦は歓呼に応え
와코오도요 이자 마나지리와 칸코니코타에
자 젊은이여 눈초리는 환호에 답하고
潔し微笑む希望
이사기요시 호호에무키보오
맑고 깨끗한 미소 짓는 희망
ああ栄冠は君に輝く
아아 에이칸와 키미니카가야쿠
아아 영광의 관은 그대에게 빛나리
2.
風を打ち大地を蹴りて
카제오우치 다이치오케리테
바람을 때리고 대지를 치고 올라
悔ゆる無き白熱の力ぞ技ぞ
쿠유루나키 하쿠네츠노 치카라조와자조
후회 없는 백열의 힘과 기술을
若人よいざ一球に一打に掛けて
와코오도요 이자 잇큐우니 이치다니카케테
자 젊은이여 공 하나에 일타를 걸고
青春の賛歌を綴れ
세이슌노 산카오츠즈레
청춘의 찬가를 엮어라
ああ、 栄冠は君に輝く
아아 에이칸와 키미니카가야쿠
아아, 영광의 관은 그대에게 빛나리
3.
空を切る球の命に
소라오키루 타마노이노치니
하늘을 가르는 공의 생명에
通うもの美しく匂える健康
카요우모노 우츠쿠시쿠니오에루켄코
통하는 것은 아름답고 향내 나는 건강
若人よいざ緑濃きしゅろの葉翳す
와코오도요 이자 미도리코키 슈로노하카자스
자 젊은이여 푸르른 종려나무 잎을 들어
感激を目蓋に描け
칸게키오 마부타니에가케
감격을 그 두 눈에 새겨라
ああ、 栄冠は君に輝く
아아 에이칸와 키미니카가야쿠
아아, 영광의 관은 그대에게 빛나리
대회 개막식과 폐회식에서 연주되는 고시엔 주제가이다. 대회 주관사인 아사히 신문사의 대회 광고 CM 등에도 쓰이고, 5회말이 끝난 후의 클리닝 타임에도 연주된다. 대회 30회째를 맞이하던 1948년에 아사히 신문사가 새로운 대회가를 공모했고, 5천 편이 넘는 응모작 중에서 최우수작으로 선정되었다.
작곡자은 일본의 유명 작곡가인 코세키 유지이다. 그래서 그의 연고지인 후쿠시마역(후쿠시마)의 도호쿠 신칸센 승강장에서 신칸센 발차 멜로디로 채택되어 사용중에 있다.[22] 요미우리 자이언츠 및 뉴욕 양키즈에서 선수로 활약한 마츠이 히데키의 고시엔에서의 활약을 기리며 그의 연고지인 호쿠리쿠 본선 노미네아가리역에서도 접근 멜로디로 사용되고 있다. #
대회 100주년 기념으로 만든 CM에서는 Dream5가 딱 봐도 아이돌스러운 분위기로 불러서 TV버전과 웹버전으로 만들었다.
이외에도 눈물이 주룩주룩(涙そうそう)로 유명한 나츠카와 리미(夏川 りみ)가 부른 것을 포함해 여러 가지 버전이 있다.
3.2. 여름 고시엔 100회 기념 주제가 “여름질풍(夏疾風)”[편집]
고시엔 100회 기념으로 아라시의 아이바 마사키가 스페셜 네비게이터를 맡고, 주제가를 아라시가 담당하였다.
夏疾風 (여름질풍)
眩しすぎる夏の陽射し
너무나 눈부신 여름 햇살
走り出す思いを胸に
달리기 시작하는 뜻을 가슴에 품고
ひとり問いかけてみれば
홀로 자문해 보면
聴こえる本当の声
들리는 진정한 소리
きっとたどり着ける
반드시 다다를 수 있어
答えはここにある
해답은 여기에 있어
約束の場所へ
약속의 장소로
その日まで涙見せず
그날까지 눈물 보이지 말고
さぁ、 舞い上がれ夏疾風
자, 날아올라라 여름 질풍
抑えきれずに高鳴る鼓動
걷잡을 수 없이 두근대는 고동
限りある時の中輝け命
유한한 시간 속에 빛나라 생명이여
暮れてゆく茜空
저물어 가는 붉게 물든 하늘
明日へとまた繋ぐ希望
내일로 다시 이어지는 희망
どんな未来が 待っていても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어도
一人一人の物語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
泣いたり笑ったり
울다가 웃다가
喜び、苦しみ、分け合い、助け合い
기쁨, 괴로움, 서로 나누며, 서로 도우며
こみ上げる思いのままに
북받쳐오르는 마음인 채로
さぁ、 行こう
자, 가자
今吹き抜ける夏疾風
지금 지나가는 여름 질풍
新たな息吹を告げる風の音
새로운 기운을 고하는 바람의 소리
眩い光を集めて願いを乗せて
눈부신 빛을 모아 소원을 실어
何処までも続く青空見上げる
어디까지든 계속되는 푸른 하늘 올려다 본다
夢に手を伸ばして
꿈에 손을 뻗어
いつの日にか届くように
언젠가 닿을 수 있도록
3.3. 봄 고시엔 주제가 “지금 있기에(今ありて)”[편집]
야쿠 유가 작사하고 타니무라 신지가 작곡해 1993년에 발표한 곡으로, 매년 개회식에서 고베 야마테 여자 고등학교 재학생들이 합창한다.
新しい季節のはじめに
새로운 계절의 시작에
新しい人が集いて
새로운 사람이 모여
頬そめる胸のたかぶり
뺨을 붉히는 가슴의 높은 모습
声高な夢の語らい
소리 높은 꿈의 이야기
ああ 甲子園 草の芽 萌え立ち
아아 고시엔 새싹이 움트기 시작한다
駆け巡る風は
휘몰아치는 바람은
青春の息吹きか
청춘의 숨결인가
今ありて 未来も扉を開く
지금 있기에 미래도 문을 연다
今ありて 時代も連なり始める
지금 있기에 시대도 나란히 시작한다
踏みしめる土の饒舌
딛는 땅의 요설
幾万の人の想い出
수많은 사람의 추억
情熱は過ぎてロマンに
정열은 지나쳐 로망으로
花ふぶく春に負けじと
꽃보라가 휘몰아치는 봄에 질지라도
ああ 甲子園 緑の山脈
아아 고시엔 녹색의 산맥
たなびける雲は
나부끼는 구름은
追いかける希望か
뒤쫓는 희망인가
今ありて 未来も扉を開く
지금 있기에 미래도 문을 연다
今ありて 時代も連なり始める
지금 있기에 시대도 나란히 시작한다
ああ 甲子園 緑の山脈
아아 고시엔 녹색의 산맥
たなびける雲は
나부끼는 구름은
追いかける希望か
뒤쫓는 희망인가
今ありて 未来も扉を開く
지금 있기에 미래도 문을 연다
今ありて 時代も連なり始める
지금 있기에 시대도 나란히 시작한다
今ありて 時代も連なり始める
지금 있기에 시대도 나란히 시작한다
4. 고시엔의 흙[편집]
고시엔에서 진 팀의 선수들은 고시엔 구장의 흙을 병이나 흙주머니에 담아가는 전통이 있다. 시합이 종료된 후 패배한 팀의 선수들이 통곡하면서 덕아웃 앞의 흙을 주머니에 담는 모습은 고시엔을 상징하는 장면 중 하나. 1946년에 열린 28회 고시엔에서 첫 준결승에 진출한 도쿄고등사범부속중학교가 그 해의 우승팀 나니와 상업고등학교에 패배한후 부속중학교 감독이 “자, 5학년(한국으로 치면 고3)은 괜찮으니 나머지는 자신의 포지션에 가서 흙을 털어 가지고 와라. 내년에 여기 다시 돌려 주러 오자”고 이야기했던 것이 하나의 전통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우승팀도 우승 기념으로 담아가는 경우도 많아 사실상 시기의 차이일 뿐이지, 전국대회 출전학교 전부 흙을 퍼간다. 그리고 이 전통 때문에 고시엔 구장을 홈으로 쓰는 한신 타이거스는 구단 돈 들여서 고교생들이 퍼간 흙을 메꿔 줘야 한다. 한신 고시엔 구장의 소유주인 한신 전기철도는 고시엔의 흙을 관리하기 위한 전문 계열사까지 설립해 흙을 관리한다. 다만 패배한 팀도 2학년이나 1학년 선수의 경우 “반드시 고시엔에 다시 돌아온다”는 결의를 다지는 뜻에서 흙을 가져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구장의 흙을 아무데서나 막 퍼가는 게 아니라 덕아웃 앞에 정해진 장소가 있다. 그래서 경기가 끝날 때쯤에는 카메라 기자들이 패배가 거의 확실시되는 팀쪽으로 향하는데, 이것도 자리 경쟁이 치열하다.
그러나 이 흙을 버려야 했던 일화도 존재한다. 1958년 고시엔에 출전한 오키나와의 슈리 고교는 1회전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슈리 고교 야구부원들은 전통대로 고시엔의 흙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때는 아직 오키나와가 미국령이었기 때문에 흙이 미국의 검역규칙에 저촉되어 반입이 불허되었고, 결국 야구부원들은 오키나와의 나하 항에서 흙을 내버려야 했다. 훗날 일본항공의 객실 승무원이 고시엔 구장 주변 해안의 돌을 슈리 고교에 기증했고, 슈리 고교는 이 돌을 그라운드 모양으로 배치하여 ‘우애의 비’ 라는 기념비를 만들었다. 당시 사진과 우애의 비 사진(일본어)
2010년 오키나와 대표 코난 고교가 여름 고시엔에서 첫 우승을 거두며 사상 6번째 봄 여름 동시제패를 달성하는 순간 캐스터는 이렇게 말했다. 해당 영상의 7분 27초부터 보면 나하 공항의 거대한 환영 인파도 볼 수 있다.
最後のストレ―ト!! 半世紀前、甲子園の黒土すら持ち込めなかった琉球の島へ、深紅の大優勝旗が初めて渡ります。 沖縄の夢、島人の悲願を、興南高校、春夏連覇の偉業で叶えました!!
최후의 직구!! 반 세기 전, 고시엔의 검은 흙조차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던 류큐의 섬에, 진홍빛 우승기가 처음으로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오키나와의 꿈, 섬사람들의 비원을, 코난 고교가 춘하연패[23]
의 위업으로 이뤄냈습니다!!
다만, 팀이 아닌 선수 개개인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그다지 의미없는 전통이라 생각하는 경우에서부터, 치명적인 실수를 범한 선수는 그때의 일을 회상하기 싫어서, 그냥 관심이 없어서, 내년 대회에 반드시 오겠다는 다짐에서, 프로로 데뷔하여 고시엔 구장에 오겠다는 결의 등등으로 흙을 퍼가지 않는다. 관련기사 물론 퍼가는 선수가 더 많다.
일본 만화에서 야구 경기에 참가한 소년들이 경기가 끝나고 흙을 퍼담는 장면이 나온다면 고시엔에서 따온 것이다.
기타큐슈 스페이스월드 폐장 전 광고의 마지막 부분에서 패러디된 것으로 보인다. 1편2편
참고로, 구장 내에 있는 고시엔 박물관 입장권을 사면 입장 시에 구장 흙이 담긴 플라스틱 볼을 준다.
2020년에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고시엔이 열리지 않자 고시엔 측에서 아예 고시엔 흙을 보내주기로 했다.
여담으로 이 흙은 우리가 보통 일상적으로 접하는 흙에 비해 유독 색이 거무스름한 것을 알 수 있는데, 그냥 아무 흙이나 쓰는 게 아니라 가고시마, 돗토리, 오카야마 등의 고급 흑토와 모래를 적절한 비율로 블렌딩해 만드는 흙으로 꽤 비싼 흙이다. 마츠나가 히로미가 "고시엔 구장의 그라운드는 유치원의 모래밭(처럼 내야쿠션감이 부드럽)다" 라고 평할 정도로 부드럽고, 쿠션감이 뛰어난 고급 흙. 덕분에 내야바운드가 타 구장에 비해 이질적인 편이라는 단점도 있지만, 바닥이 검어서 공이 잘 보이고 선수 보호에 탁월한 장점도 있는 내야.
5. 고시엔과 일본 고교야구의 구조[편집]
2021년 기준으로 약 16만 명에 달하는 선수들로 구성된 일본 전국의 3800여 개[24][25][26][27] 에 달하는 고교 야구팀 중 47개 도도부현에서 지역 단위로 예선을 거쳐서 선발된 49개 팀만이 고시엔에서 겨룰 수 있다. 규모가 큰 도쿄, 홋카이도는 2팀[28] , 나머지 부와 현은 1팀. 가나가와현, 오사카부, 아이치현은 160:1이 넘는 경쟁률을 뚫어야 고시엔 흙이라도 밟아 볼 수 있다.[29]
단, 5~10년 주기로 ‘기념 대회’가 열리면 가나가와, 오사카, 아이치, 효고 등 규모가 큰 도도부현을 분할해 참가 팀을 늘리기도 한다.[30] 가장 최근의 기념 대회는 2018년의 100회 대회로 사이타마, 치바, 가나가와, 아이치, 오사카, 효고, 후쿠오카를 2개 지구로 나눠 사상 최다인 56개 팀이 참가했다. 이들 현들은 지역예선을 시작하면 보통 130~170여개의 학교가 출전하는 격전구라는 공통점이 있다.
약 3,600여개의 고교 야구부들의 전력은 대개 도도부현별로 A, B, C, D급(tier)으로 분류된다.
- A급
물론 고시엔의 치열한 토너먼트전 특성상 A급 학교들도 하위 티어로 평가되는 팀에게 밀려 지역예선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간간이 나온다. 만약 이 사태에 걸리면 선수들도 프로나 유명 대학팀에 지명받기가 어려워진다. 이 때문에 멀쩡한 대도시인 오사카 출신의 다르빗슈 유는 뜬금없이 도호쿠 지방의 미야기 현으로, 효고 출신의 다나카 마사히로도 치열한 효고를 피해 홋카이도로 떠나 각 지역의 A급 학교에 입학하는 일종의 야구 유학을 했다.
격전구에 있는 A급 팀들은 재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립학교가 대부분이며, 공립학교는 고시엔 진출이 극히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공립학교들은 일부 지역의 경우 학군제로 인해 뛰어난 중학생의 광범위한 스카우트가 규제되며 전국, 도도부현 단위로 뽑는다고 하더라도 입시를 교육위원회가 직접적으로 통제하기 때문에 에이스 선발이 극히 어려운 편. 때문에 격전구의 공립학교들은 잘해야 B급 중하위권~C급 수준에 머무르는 것이 현실. 단, 격전구에서도 A급에 위치하는 공립학교들이 소수나마 존재하긴 한다. 대표적으로 격전구 치바현에서도 A급으로 꼽히는 공립 나라시노 고교. 이 고등학교는 야구도 잘하지만 치어리더부와 관악부의 엄청난 합동 응원전으로 더 유명하다. 한신의 레전드 카케후 마사유키와 치바 롯데의 프랜차이즈 1루수 후쿠우라 카즈야가 이 학교 출신.
격전구 외의 지역, 그중에서도 토쿠시마, 돗토리, 시마네, 아키타, 군마, 도치기 등등의 지역에는 공립학교이면서 A급 학교의 지위를 유지하는 학교도 종종 있다.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A급 공립학교라면 1980년대 초중반 전국 최강 중 하나라 불리던 "메아리 타선"의 이케다 고등학교(도쿠시마)와 일본 역사상 유일하게 다이쇼-쇼와-헤이세이 3시대 우승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기적의 백홈으로도 유명한 마츠야마 상업고교(에히메). 이 중 이케다 고등학교는 1992년 이후 무려 22년 동안이나 고시엔에 진출하지 못하다가 2014년 봄 고시엔에 마침내 복귀에 성공했다.
- B급
대부분의 A~B급 학교는 프로 지도자 라이센스를 보유하고 야구 경력도 있는 전문인을 고용해서 지휘권을 맡기며, 특기생이나 스카우트 제도로 지역 내외의 유망선수들을 끌어모으면서 기숙사와 전용 그라운드를 갖추고 체계적인 훈련을 실시한다. 전국적으로 200~300개로 추산되는 이 A~B급 학교들이 대부분의 유명 프로선수들을 배출한다. 단 21세기 이후 학생야구의 본질에 대한 전면적인 자성론이 확산되면서 명문교들의 특기생 제도와 기숙사 운영은 점차 둔화되는 추세에 있다.
참고로 토너먼트 방식인 고시엔 특성상 강호학교끼리 하위 라운드에서 일찍 맞붙는 걸 방지하기 위해 시드를 줘서 멀리 떨어뜨려 놓는다. 이걸 받은 학교는 보통 1회전 없이 2회전부터 치루며 아래에 언급될 C~D급 약팀들과 만난다. 매 계절마다 열리는 현 대회에서[31] 상위 입상한 학교가 시드권을 받기 때문에 A~B급 학교들이 이걸 독식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앞서 말했듯 변수가 많은 토너먼트이고 한 해 한 해의 농사가 중요한 고교 야구 특성상 전년도 여름대회 우승교가 시드를 못 받는 일도 생각보다 흔히 있다. 예시로, 야마구치 현의 우베 고죠 고등학교는 2019년 우승교임에도 불구하고 2021년 여름 현 대회에서 시드가 없다.
- C급
이른바 ‘무명교 출신의 프로선수들’이라고 해도 C급 학교 출신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C급 학교는 현실적으로 프로선수가 배출될 수 있는 한계점으로 간주된다. 단, C급 학교 출신 선수들이 지역예선에서의 의외의 활약으로 상위라운드에서 지명되거나 대학이나 사회인리그를 거쳐 급성장해 프로에서 스타로 등극하는 경우는 의외로 흔하다. 21세기 소프트뱅크의 에이스이자 사와무라상 2회 수상자인 사이토 가즈미는 잘 쳐 줘야 C급인 무명교 미나미교토 고교에서 고시엔 진출 경험이 한 번도 없음에도 두각을 나타내 고졸로 1라운드 지명까지 따 낸 대표적인 경우.
고시엔 본선무대까지 밟는 돌풍을 일으켰던 C급학교 출신 프로야구 스타의 대표로는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의 나카무라 노리히로가 있다. 나카무라는 2학년 때인 1990년, 본선진출 따위가 아니라 전국제패를 목표로 하는 특A급 학교들이 즐비한 초격전구 오사카에서 무명의 공립학교인 시부타니 고교를 이끌고 고시엔 본선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까지 오사카에서 공립학교가 본선에 진출한 마지막 사례이다.
- D급
단, 몇 년에 한 번 정도 이 D급 학교들이 강팀을 이기는 무쌍을 찍으며 코시엔에 진출하는 만화에나 나올법한 일이 나오곤 한다. 당연히 언론의 집중관심을 받고 열광한 졸업생들과 지역 주민들이 지원사격에 나서 원정응원단을 조직하는 등 대축제가 일어난다. 대표적인 예가 그 유명한 사가키타의 기적이며, 슬램덩크로 치면 주인공팀 북산고등학교와 비슷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가뭄에 콩나듯이 드물게 이런 완전 무명 고교에서도 특급 선수가 나올때도 있다.[33]
매년 각 지역의 고시엔 진출권은 A, B급 학교들에 의해 거의 독식되며 비격전구에서는 운이 좋으면 몇 년에 한 번 정도 C급 학교가 끼어들기도 한다.[35] 그러나 설령 A급 학교들이라도 고시엔 진출을 절대 장담할 수 없다는 점에서 고시엔 토너먼트의 치열함과 일본 고교야구 선수층의 두터움이 드러난다. 일본 최고 명문으로서 A급 중의 A급이라 할 수 있는 요코하마 고교(가나가와)나 니혼대학부속 제3고교(서도쿄), 오사카 토인 고교(오사카)조차 2년 연속 고시엔에 진출하면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3년 연속으로 진출하면 역사적인 업적으로 꼽힌다.[36] 오사카의 왕자이자 2000년대 고교야구의 최강이라 불리는 오사카 토인 고교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연속 진출을 이뤄냈지만 2015년 지역대회에서 오사카 라이벌인 리세이샤나 PL학원도 아닌 고시엔 출장 경험이 전무한 무명의 오사카 카이세이 고교에게 패하면서 4연속 진출에 실패했다.[37] 아무리 강자라 해도 기본적으로 팀의 핵심이 3학년 중심으로 꾸려지는 것이 보통이고 이들이 졸업한 다음 시즌에 대비가 조금이라도 허술하게 된다면 언제든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말이다.
2013년 여름 고시엔에서는 무려 8년 연속으로 와카야마현의 여름 고시엔 진출권을 독점해 오던 절대강자 치벤 와카야마 고교[38][39] 가 지역예선 3회전에서 광탈하고 십수 년째 치벤 와카야마에게 저항조차 못하던 미노시마 고교가 고시엔 티켓을 따 내는 대파란이 일어나기도 했다.[40] 2014년 고시엔 여름대회에서는 2010년 봄-여름 고시엔을 연속제패한 오키나와 코난 고교가 지역예선 1회전에서 마에하라 고교한테 패하면서 종말을 고했으며, 2013년 전국대회의 8강 중 4강 진출팀 전원[41] 을 포함한 6개교가 지역예선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이른바 ‘최격전지구’로 꼽히는 가나가와, 도쿄, 오사카 등에서는 웬만한 B급 학교라도 어쩌다 고시엔에 진출하면 타 지역의 A급 학교들을 박살내고 다닐 정도이며 지역 내에서도 C급 언저리에 속하는 공립학교들이 심심찮게 프로 지망생들이 모인 A급 학교들을 거꾸러뜨리는 등 그야말로 지옥으로 불린다. 터치(도쿄), H2(도쿄), 메이저(가나가와), 다이아몬드 에이스(도쿄) 등 여러 야구만화들의 무대가 된 것이 이 최격전지구들. 이에 비해 경쟁이 덜 치열한 지역에서는 최강자 학교가 고시엔 티켓을 독식하는 현상이 심심찮게 보인다. 후쿠시마현의 세이코 학원은 2007년부터 2019년까지 13년 연속[42] , 도치기현의 사쿠신가쿠인은 중지된 2020년 대회를 제외하고 2011년부터 2021년까지 10대회 연속, 고치현의 명문 메이토쿠 기주쿠는 2010년대의 10번의 대회 중 9번 [43] , 도쿠시마현의 나루토 고교는 2010년대의 10번의 대회 중 8번 고시엔 진출에 성공했다. 2019년 대회를 보면 49개 중에서 2년 연속 출전한 학교는 9개교이고 3년 이상 연속 출장은 8개교이다. 첫 출장한 학교는 3개교.
A급 학교나 B급 학교도 몇 년간 부진이 계속됨에 따라 갑자기 C급이나 D급으로 추락하는 경우도 결코 드물지 않다. 일본 최고의 야구 명문학교로 불리던 오사카의 PL학원이 대표적인 예. PL학원은 구와타 마스미, 기요하라 가즈히로, 타츠나미 카즈요시, 마에다 켄타 등 수많은 스타들과 마쓰이 가즈오, 후쿠도메 코스케 등의 메이저리거들을 배출하며 매년 전국 우승에 도전하던 특A급 학교였다. 그러나 선후배간 구타와 각종 사고가 빈발하며 일반 학생들과 분리된 엘리트주의 야구에 대한 자성론이 일어났고, 결국 200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재단은 야구부 운영방침을 야구실력 우선에서 학업 및 인성교육과의 병행으로 변화시켰다. 야구부 기숙사와 야구특기생 제도는 폐지되었으며 일반 학생들에 비해 훨씬 난이도가 낮았던 체육과 학업과정 역시 일반과정에 통합되었다. 그 결과 현재의 PL학원은 오사카에서도 8강 정도가 적정수준인 학교로 쇠퇴한 상태이다. 그나마 2014년 여름 오사카 지역예선에서는 결승전까지 진출했지만, 실상은 인성 중시로 방침을 전환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내 폭력이 근절되지 않아 2013년에 2학년생의 1학년생에 대한 폭행으로 6개월 출전정지 처분과 함께 감독이 사퇴하는 상황에 처해있었다. 그 후 제대로 된 감독도 선임하지 못한 채로 교장이 임시 감독을 맡고 선수들의 분투로 지역예선 결승전까지 올라가는, 그야말로 야구 만화에 나오는 시골학교 야구부스러운 상황을 연출하면서 눈물겹게 노력했다. 급기야 2015년에는 신입부원 모집을 중지하는 등 야구부 해체 일보직전의 상황까지 몰렸고, 결국 2016년 오사카 지역 예선을 끝으로 야구부 부원들이 모두 퇴부하며 무기한 휴지상태에 들어갔다. 사실상 해체나 다름없는 조치로 팬들 사이에서는 상황이 호전되면 야구부를 다시 재건하길 바란다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PL학원의 재단인 종교법인 퍼펙트 리버티 교단 자체의 상황이 여의치 않은지 2017년엔 오사카 고교야구연맹에서 탈퇴해 사실상 명문 PL학원 야구부는 역사속으로 사라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대다수이다.[44] 과거의 영광은 뒤로하고 막장을 향해 달려가다 파국을 맞은 PL학원과는 대조적으로, 오 사다하루를 배출하며 쇼와 시대를 풍미하던 도쿄의 와세다 실업고는 8~90년대에는 학교위상이 B급 중위권 수준으로 격하되었으나, 학교를 도쿄 도내의 부지를 팔고 서부의 고쿠분지시로 이전함과 동시에 야구부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였다. 그 결과 손수건 왕자 사이토 유키, 고교 거포 키요미야 코타로 등의 맹활약에 힘입어 다시 A급으로 위상이 올라간 상태.
C급이나 D급 학교도 우연히 좋은 성적 → 고무된 학교와 동문들의 열성적인 후원 → 유능한 신입생들의 합류에 의해 순식간에 B급이나 A급으로 도약하는 경우도 상당하다. 위에서 언급된 사가키타 고교는 2007년 우승 이후 열광한 동문들의 지원과 유망한 지역 신입생들의 대거 입학으로 순식간에 사가현의 강호로 변모하며 2012, 2014, 2019년 고시엔 진출티켓을 따내는 등 B급 레벨이 되었다.
혹은 아예 야구부도 없던 학교가 재단의 집중적인 투자로 야구부설립 단 몇 년 만에 고시엔 진출권을 따내는 경우조차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가 2004년 봄 고시엔 우승팀인 에히메현 소재의 사이비(済美) 고등학교. 사이비 고등학교는 야구부 창단 3년만에 봄 고시엔 우승 - 여름 고시엔 준우승이라는 무시무시한 업적을 달성했다. 오카야마현의 소우시 고교는 2011년 봄 고시엔에서 창단하자마자 고시엔 진출이라는 전대미문의 대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6. 고시엔과 매스컴[편집]
고시엔이 개최되면 매스컴의 취재 경쟁도 불타오른다. 특히 여름 대회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NHK는 각 지역예선의 준결승부터 중계하며[45] 본선은 종합 TV와 교육 TV 2개채널을 동원해 전 경기를 생중계한다. 테레비 아사히 계열의 경우 고시엔 구장이 위치한 긴키 광역권의 아사히 방송은 모든 편성을 올스톱하고 아침 9시부터 오후까지 전 경기를 생중계하며, 테레비 아사히는[46] BS아사히 채널로 중요 경기를 전국 생중계한다. 또한 대회기간 동안 매일 아사히 방송 제작으로 ‘열투 갑자원(넷토 고시엔 熱闘甲子園)’이라는 특별방송을 편성해 각 팀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그날의 경기를 복기한다.[47]
올림픽과 겹치면 대회를 중계하는 NHK와 테레비 아사히의 준키국 아사히 방송에서는 헬게이트가 열린다. 중계일정을 조정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 NHK에서는 그냥 교육TV로 중계하면 되지만, 올림픽이 북미, 중남미 쪽 지역에서 열리는 경우에는 아사히방송에서 고시엔 경기(아사히 방송 제작)와 올림픽 경기(TV 아사히 제작)가 겹치는 문제가 일어난다. 따라서 경기 일정 자체가 조정되는 경우가 있다.[48] 이 때문에 올림픽이 열리는 해에는 일찍 열리거나 늦게 열리는 경우가 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의 경우에는 아예 일본에서 열려서 경기일정 자체가 통째로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됐지만 올림픽마저 침몰시킨 대형 쓰나미에 밀려 아예 취소가 결정되었다.
한국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고시엔을 시청할 수 있다. 대회기간 중에는 봄 대회와 여름 대회의 주관사인 마이니치 신문과 아사히 신문의 홈페이지에서 각각 모든 경기를 무료로 스트리밍한다. (봄에는 마이니치, 여름에는 아사히) 아사히의 경우 애드블락을 풀고 봐야 한다.
7. 일본 고교야구의 관례[편집]
일본 고교야구는 그 운용방식에도 상당수의 독특한 관례가 존재한다. 야구만화 팬이라면 만화 곳곳에서 자주 보았을 장면들이다.
경기 시작 전에는 독특한 퍼포먼스를 벌이며 전투의욕을 끌어올리는 팀도 있고, 조용히 경기를 준비하는 팀도 있다.
벤치앞에 모여서 유연체조를 한 후 특유의 구호(1분 30초경)를 외친다. 일종의 승리를 향한 의식.
이후엔 양팀 모두 각자의 덕아웃 앞에 정렬, 심판의 집합 신호가 내려지면 함성을 지르며 홈플레이트로 달려간다. 이때 관중들은 두 팀을 위해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이 관례.
홈플레이트 앞에 서로를 마주보며 정렬, 심판의 지시에 따라 서로에게 일제히 고개를 숙여 인사한다. 이때 각 팀만의 인사방식을 비교하는 것도 나름의 재미. 미야기현의 명문 센다이 이쿠에이 고교는 상대가 먼저 고개를 숙이길 기다렸다가 한 박자 뒤에 고개를 숙이는 방식을 취한다.
경기 중의 절대 원칙은 전력 플레이. 애초에 모든 시합이 토너먼트인지라 힘을 비축하는 것도 무의미하기 때문에 모든 플레이에 혼신을 다한다. 1루로 설렁설렁 뛰는 모습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땅볼을 치고 1루에 전력 슬라이딩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될 정도이다. 참고로 1루로 달리면서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는 것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속도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
하루에 치러야 하는 시합이 워낙 많기 때문에 경기시간 단축이 매우 중시된다. 하루에 한 경기장에서 한 경기만을 치르는 프로야구와 달리, 일본 고교야구는 한 경기장에서 오전부터 오후까지 연달아 시합을 편성하지 않으면 4000개나 되는 학교들의 경기일정을 도저히 소화할 수 없기 때문. 아예 고교야구 전용으로 고시엔을 쓰다 보니 과거 한신 타이거스는 죽음의 원정이라 불리는 장기 원정을 매 시즌 8월마다 해야 했고, 1997년 교세라 돔 완공 이후에는 고시엔 대회 때 교세라 돔을 홈구장으로 써야 할 정도다.[49] 따라서 지역예선부터 고시엔 본선까지 결승이나 준결승이 아니라면 한 경기장에서 아침부터 오후까지 서너시합이 연속 편성되는 것이 보통이다.[50] 결국 공수교대, 선수교체, 아웃 후 덕아웃으로 복귀하는 것도 전력질주가 관례로, 프로야구처럼 공수교대 때 덕아웃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 투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삼진당한 타자도 분해할 틈도 없이 덕아웃으로 후다닥 뛰어간다. 그 결과 일본 고교야구에서 웬만한 9이닝 경기는 두 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연장전이라고 해도 3시간 이상을 끄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상대팀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것이 중시된다. 데드볼이 발생하면 무조건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이며, 선수들과 응원단 모두 상대팀을 야유하는 것은 금기시된다.[51] 애당초 서로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난투라도 벌어지면 예외없이 두 팀 모두 출장정지 처분을 당하며, 그걸로 고시엔은 안녕이다. 그 대회만 출장정지면 차라리 다행이다. 잘못 걸리면 다음 대회까지 이어지는 출장정지를 당할 수 있으며, 그 경우 자신들뿐만 아니라 후배들의 고시엔까지 끝장나 버릴 수도 있다.
참고로 일본의 고교야구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이 출장정지 처분이다. 경기중 불상사뿐만이 아니라 부원간 폭력행위, 흡연[52] , 음주 등이 적발되면 그 즉시 고교야구 연맹의 징계위에 회부되며 웬만하면 2~3개월의 출장정지 처분을 당한다. 적발된 타이밍에 따라 아예 고시엔 예선에 출전조차 못하는 날벼락을 맞을 수도 있는 것[53] 감독이나 야구부장 등 관계자들의 자격정지는 덤. 다나카 마사히로를 앞세워 2005년 여름 고시엔을 우승하고 2006년 봄 고시엔에서도 우승에 도전하던 코마다이 토마코마이 고교[54] 는 현역 부원도 아닌 전(前) 부원이 사고친 것이 적발되는 바람에 출장을 자진사퇴하는 촌극을 연출하기도 했다. 꼭 야구가 아니라 다른 종목도 마찬가지여서 루키즈나 슬램덩크 등의 고교 스포츠 만화에서 어지간하면 불상사를 극도로 피하려는 모습이 묘사되는 것이 이 출장정지 때문이다.[55] 잘못하면 3년동안 죽어라 훈련한 것이 부원 한 명의 일탈에 의해 물거품으로 변해 버릴 수도 있다. 거기다 재수없으면 다음해에 야구 유망주 신입생이 끊길 수도 있다. 출장정지 딱 한 번 당한 뒤로 신입생 끊겨서 지역강호소리 듣다가 그 다음해에 사람 없어서 예선 2-3회전에서 떨어지고 평범한 학교가 되는 경우도 제법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PL학원고등학교가 딱 저 케이스. 그렇기에 모르고 보면 “에게? 고작 출장정지?”라고 할지 모르지만, 절대 고작이 아니다.
세레모니 등 선수들의 감정표출에는 별 다른 제한이 없다.[56] 홈런이라도 치면 축구에서 골 넣은 것처럼 미친 듯이 좋아하며 팔을 번쩍 치켜들고 그라운드를 도는 선수들을 볼 수 있다. 승부처에서 볼넷이라도 얻어내면 환호성을 지르며 1루로 뛰어가는 모습도 일상이다. 어찌보면 이러한 야구소년다운 모습들이 고교야구 최대의 매력.
그러나 고시엔에서는 배트가 알루미늄 소재인 것도 있어서 배트 플립은 금기시된다. 오코에 루이가 고교 시절 고시엔에서 배트플립을 시전했다가 잘못했다고 했을 정도. 국제대회는 나무배트가 표준이라 일본 대표팀이 나무배트가 고교야구 표준인 한국, 대만 대표팀에게 고전하고 있으며 야구 명문교들도 이를 감안해 나무배트를 사용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츠츠고 요시토모도 고교야구 알루미늄 배트 사용의 폐해를 지적했을 정도.
경기가 끝나면 양팀 모두 홈플레이트에 정렬, 서로에게 경례하고 악수한다. 이때 앞으로의 경기에서 행운을 빈다는 의미에서 패배팀이 승리팀에게 종이학이나 자신의 용품을 전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2009년 여름 고시엔의 명승부 중 하나였던 토코하 타치바나 고교 vs 메이호 고교의 시합이 끝난 후 토코하 타치바나의 에이스 쇼지 하야토(前 히로시마 도요 카프)는 메이호 고교의 에이스 이마미야 겐타(現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 자신의 배팅글러브를 선물했고, 이마미야는 이후의 경기에서 그 배팅글러브를 사용하며 맹타를 휘둘렀다는 훈훈한 일화가 전해진다.
그리고 이긴 팀은 전광판을 바라보는 형태로 정렬해 교가를 제창한다.
2015년 여름 고시엔. 미에현 대표 츠 상고의 전력 교가제창.
그동안 진 팀은 자신의 덕아웃 앞에 정렬, 교가가 끝날 때까지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 눈물을 흘리며 승리팀의 교가제창을 바라보는 패배팀의 모습은 일본 고교야구의 특징적인 장면 중 하나.
교가[57] 제창이 끝나면 양팀 모두 각자의 응원석 방향으로 달려가서 응원단과 학부모에게 인사하며 감사를 표한다. 일본의 고교야구에서 응원단과 학부모에 대한 감사란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관중석의 모두와 함께 싸운다”는 일본 고교야구의 가장 오래된 금언 중 하나) 이때 관중들은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전력으로 박수를 보내는 것이 관례.
응원단에 대한 인사까지 마치면 경기는 끝. 이제 패배한 팀은 고시엔의 흙을 담아가며 마음껏 울 수 있고, 승자는 또 다음의 경기를 준비한다.
8. 일본 고교야구의 유니폼[편집]
일본 고교야구의 유니폼은 무난한 흰색이 대세이나 회색도 꽤 있으며 하늘색이나 베이지색 등도 드물게 있다. 다만, 제한 규정에 따라 상하의 깔맞춤은 필수이다. 가나가와 야에이 고교의 녹색(페퍼민트 그린)유니폼이나 고시엔 단골인 도카이대학 부속고교 계열[58] , 동도쿄의 대표학교인 테이쿄(帝京)고교의 핀스트라이프는 일본에서도 특이하게 여겨지는 유니폼이지만 그만큼 그 학교들의 이미지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다만 헬멧은 검정, 남색, 흰색 빼고는 못 쓴다. 모자와 꼭 일치해야 한다는 법도 없지만[59] 웬만하면 맞춘다. 2022년 봄 대회부터는 페이스 가드형 헬멧 착용이 허가되었다.
유니폼의 등번호는 본인의 희망대로 결정하는 한국의 고교야구와 달리 엄격한 공식규정에 기초한다. 공식경기 외에는 등번호 착용 자체가 이뤄지지 않으며, 공식대회에서는 1번부터 18번까지 엔트리 숫자에 맞춰서만 등번호 배분이 허용된다. 따라서 한국의 고교선수들처럼 “박찬호 같은 선수가 되고 싶어서 61번”, “이승엽 같은 홈런왕을 목표로 해서 36번”, “특이하게 보이고 싶어서 00번” 같은 얘기는 일본의 고교야구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등번호를 착용하는 선수들도 주전들은 각 포지션별 분류번호에 맞춰 등번호를 착용하는 것이 관례. 이 때문에 1회전 1회에는 수비 번호와 등번호가 100% 들어맞는다.[61] 그 팀의 1번이라면 투수의 분류번호에 따라 그 팀의 에이스에게만 허용되는 것이 일본 야구의 문화이다. 단 후보 투수가 갑자기 기량이 급성장한다든가, 혹은 연공서열에 따라 등번호를 배부해 그 팀 최고의 투수가 10번이나 11번을 착용하는 경우도 간혹 존재한다. 코마다이 토마코마이 고교의 2005년 전국우승 당시 팀의 에이스였던 다나카 마사히로의 등번호가 11번이었던 경우가 그 예. 당시 다나카 마사히로는 2학년이어서 연공서열 때문에 팀의 에이스이면서도 11번을 달았다. 3학년이 된 2006년에는 1번을 달고 출장했다.
등번호의 부착 역시 한국처럼 번호를 유니폼에 직접 박는 게 아니라 번호가 새겨진 네모난 천조각을 유니폼에 박음질하는 방식을 취한다. 일본의 고교야구에서 유니폼에 등번호를 부착하는 것은 팀의 주전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뜻하며 선수 개개인에게는 최대의 영광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일본의 야구만화들에서도 전국대회 예선을 앞두고 주전 멤버를 발표하면서 호명된 선수에게 일일이 표창장 주듯이 등번호가 새겨진 천조각을 수여하는 장면이 묘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학교 수가 워낙 많은데 유니폼 디자인은 한정적이다 보니 가끔은 웃지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유명 프로팀의 유니폼 중 고교야구 유니폼으로 전용할 만큼 수수한 맛이 있는 경우엔 디자인을 살짝만 바꿔서 채용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는 팀 로고명까지 비슷해서 얼핏보면 프로팀 유니폼을 입고 경기하는 학생들로 보이기도 할 지경. 당연히 야구만의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아예 유니폼이 거의 같은 경우까지 존재한다. 이런 경우는 같은 재단 소속의 사립고등학교들에게서는 일반적인 일이다.
시즈오카의 토카이대학 부속 제1고교[62] 와 구마모토의 토카이대학 부속 제2고교[63] 의 경기 장면인데[64] , 사진이 작아 구분이 좀 힘들긴 하지만 헬멧을 쓴 쪽이 공격측인 토카이대학 부속 제1고교의 3루주자, 모자를 쓴 쪽이 수비중인 토카이대학부속 제2고교의 3루수다. 전술했다시피 이 두 학교만이 아니라 토카이대학 부속 계열 고교는 전국에 십 수개가 있는데 이 학교들이 모두 같은 유니폼을 입으며 이들 학교 중에 자기 지역에서 고시엔 단골인 학교들이 몇몇 존재하기 때문에 매년 전국대회에서 같은 유니폼을 입고 출전하는 학교를 2~3개 정도 보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이는 비슷한 위상을 가지고 있는 니혼대학 부속 고교 계열학교들도 마찬가지 이다.
영상으로 남아있는 경기도 있다.
2002년도에 열린 와카야마의 치벤 와카야마고교 대 나라의 치벤 학원의 경기
2021년도에 열린 치벤 와카야마와 치벤 가쿠엔 경기인데, 두 유니폼의 차이점은 왼팔 부분의 학교 소재지(나라와 와카야마) 뿐이다. 역시 두 학교가 같은 치벤학원 재단 소속인데다 각각 자기 지역에서 고시엔에 단골로 출전하는 강호이기 때문에 전국 대회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 심판은[65] 용구 차이만 보고 공격 팀인지 수비 팀인지 구분할 수 있기에 따로 세컨드 유니폼을 두지 않는 듯하다. 반면 축구나 농구 등 용구 차이가 없고, 선수들이 뒤섞이는 종목은 세컨드 유니폼이 필수.
9. 고시엔과 프로 지망[편집]
철저하게 프로 진출, 혹은 대학 진학을 위해 편성된 한국 고교야구와 달리 일본 고교야구의 궁극적인 목표는 바로 이 고시엔 대회 진출이며 야구부 체제 역시 애초부터 프로야구를 노리는 극히 일부 학생을 제외하면 프로 육성이 아닌 고시엔 진출을 위주로 계획-수립된다. 때문에 일본 고교야구에서는 ‘프로를 대비하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고교야구라는 관점은 오히려 금기시된다. 고교야구는 어디까지나 고시엔을 위한 고교생들의 서클 활동이고, 프로 진출은 그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추구하는 별개의 길로 취급받는 것이 일본의 현실. 따라서 프로야구에 진출할 선수들의 어깨를 보존하기 위해 투구수제한 등을 적용하자는 주장은 일본에서 거의 거론되지도 않는다. 최근 제기되고 있는 엔트리숫자 확대나 대회간격 확대 등의 주장은 일반 선수들의 건강보호차원에서 제기되었지 프로야구를 위해 선수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은 고교야구를 프로의 부속물 취급한다는 반발에 직면해 좌초하고 말았다.
엄밀한 의미에서 프로를 배출해낼 수 있는 학교의 숫자는 적게는 200~300개, 많게는 그 배로 추정된다. 정확한 추정이 불가능한 이유는 전국대회 구경도 못해본 무명교에서 지명되는 프로선수가 매년 1~2명은 꼭 존재하기 때문. 무명교 출신이라도 대학과 사회인리그를 거쳐 기량을 쌓아 프로에 진출하는 선수들까지 포함하면 그 추정범위는 더욱 넓어진다.
한편 단 한번의 패배로 고시엔 진출이 좌절될 수 있는 일본 고교야구의 특성상 고시엔에서의 성적이 곧 프로진출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3년내내 고시엔은 고사하고 지역대회 4강에조차 들지 못한 선수가 프로에 1, 2라운드에서 지명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고시엔의 전국 우승팀에서 단 한명도 프로에 지망조차 하지 않는 경우는 매번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2007년 사가키타의 기적.
이는, 일본 고교야구는 한국의 교육시스템인 대학 또는 프로에 가기 위한 중간단계가 아닌, 고교 야구부가 곧 그 동네를 대표하는 야구팀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66] 한국은 현대에 들어 이촌향도가 진행되어 애향심이 희미해지고, 현대에 TV나 인터넷으로 지구 반대편 리그의 명문팀을 응원하고 국내에서도 고교 < 대학 < 프로의 수준차가 있으니 당연히 수준 높은 프로의 경기를 본다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일본은 자기가 사는 지역의 고교 야구팀은 수십 년 전부터 마을에서 운동 좀 하는 동네 젊은이들의 실력 경연이자 동네 자랑이었고, 이 애향심을 가진 동네 사람들 수백, 수천여 개 집단으로 나누어져, 전국 수천여 개 마을의 고등학교 야구 선수들이 일본 최고를 두고 경쟁한다는 성취감 덕에 마치 유럽 축구의 지역리그, 하부리그처럼 지역과 밀착해 자리잡았다. 이 덕에 동네 사람들은 우리동네 우리학교 야구부의 선수들을 응원하는 것으로 스포츠 여가를 대신한다.[67][68] 따라서 프로야구와 분립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동네의 응원단에 있어서 야구부 주전 선수는 곧 우리 동네 대표팀 선수고 곧 국가대표와 같은 사명감과 책임감을 기대한다. 그런 수천여 개 학교들의 경쟁이 바로 고시엔의 존재 이유이다.
프로 지망생들이 주로 입학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 고교야구[69] 의 명문고들과 달리 일본의 최고 명문고들에도 H2의 노다 아츠시처럼 실력이 전국구지만 프로는 기대조차 하지 않고 입학하는 학생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그리고 실제로 일본에서는 고시엔에 진출한 엘리트 선수라도 프로진출을 희망하지 않고 평범한 수험생으로서 입시 준비에 돌입하는 경우가 보통이다. 전국 우승팀이라고 해도 프로선수를 한 명이라도 배출하면 다행으로 여겨지며, 일본대학부속 제3고교, 오사카 토인 고교 등 학년별 부원수가 30명을 상회하는 초대형 명문교가 우승해도 프로는 커녕 대학의 체육특기자 전형에 합격시킬 수 있는 선수도 최대 10명 전후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체육특기자 전형들조차 소논문 작성 등 상당히 엄격한 학업수준을 요구하는 것이 보통이다. 아무리 명문고라도 나머지 선수들은 여름대회 일정의 종료와 함께 수험생이 된다. 이 선수들이 대학에서 야구를 계속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일반전형을 거쳐서이다. 2012년 드래프트에서 주니치 드래곤즈에 1차지명된 후쿠타니 코지는 프로지망원서를 넣었으나 단 한 구단에도 지명되지 않자 그냥 공부해서 게이오기주쿠대학 이공학부에 합격했고, 공학 연구자로도 촉망받을 정도로 열심히 공부하는 와중에 겸사겸사 야구도 해서 프로 진출에 성공했다.
때문에 99%의 일본 고교야구 선수들에게 고시엔은 그들의 야구 커리어의 마지막이며, 이러한 구조가 일본 고교야구의 무차별적인 투수 혹사를 낳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절대다수의 고교생들은 고시엔 이후를 아예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살인적인 연투가 내부적으로 합리화되기도 한다.
프로 입단을 희망하는 일본 고교 선수들의 프로 진출은 선수들의 자발적인 지명희망원서 등록을 통해 진행된다.[70] 다만 프로 지망원서를 내기 위해서는 프로구단 스카우트들의 지망원서 제출요청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이다. 물론 학교장의 허락만 있으면 구단 측의 원서제출요청이 없다고 해도 원서제출 자체는 가능하지만 스카우트의 눈에 띄지 않은 선수가 지망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때문에 스카우트의 요청이 없는 선수가 원서 제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3학년 여름대회가 끝날 때까지 스카우트와 면담하지 못했다면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프로가 되려는 꿈은 접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신 이런 선수들도 대학 야구부나 사회인리그에서 기량을 닦아 프로구단에 상위라운드 지명을 받고 입단하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고졸 선수들이 대다수인 한국의 상위 지명자들과 달리 일본의 상위 지명자들은 오히려 대졸과 사회인리그 출신 선수들의 비율이 고졸들보다도 더 높은 편이다. 병역 의무라는 걸림돌이 없기 때문에 고교 졸업 후 바로 프로로 진출하는 데에 목을 매달 필요도 없고. 실제로 일본프로야구 드래프트의 경우 지명되면 소속 팀에서 뒷배경으로 학교 및 직장 이름을 깔아주고 소감을 발표하는데 대학과 회사가 더 많다.
또한 한국과는 달리 프로 지명이 확실시되어도 지망원서를 제출하지 않고 대학이나 사회인리그에 진출하는 엘리트 선수들도 상당하다. 대학에서 야구 실력을 쌓는 와중에 공부도 하며 미래를 대비하거나, 대부분 대기업들에 의해 운영되는 사회인리그에 입단해 대기업 사원으로서 안정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인생을 내건 승부수나 다름없는 프로진출에 비해 훨씬 안정적일 수도 있기 때문. 실제로 프로에서 확실히 성공할 정도 역량까지는 아닌 선수 중에는 프로 측의 관심이 있어도 거절하고 사회인리그에 남는 선수들은 의외로 흔하다.
일례로 2006년 여름 고시엔 우승투수인 사이토 유키와 2010년 여름 고시엔 우승투수인 시마부쿠로 요스케 (코난 고교), 2011년 여름 우승투수인 요시나가 켄타로 (니혼대학부속 제 3고교) 모두 프로의 뜨거운 관심에도 불구하고 대학행을 선택했다. 고시엔 역사상 최강의 에이스들로 불리던 구와타 마스미나 마쓰자카 다이스케 모두 와세다대학 진학으로 거의 기울었다가 막판에야 프로 입단으로 방향을 전환했던 것은 한국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사실.
대학으로부터 입학 제의가 와도 해당 대학 야구부 내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여의치 않으면 수험으로 재수, 삼수를 하기도 한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뛰었던 에지리 신타로는 미야기현 최고 명문교인 현립 센다이제2고등학교 재학중 게이오기주쿠대학 감독으로부터 입학 제의를 받고도 거부하여 삼수 끝에 와세다대학에 진학하였는데, 대학 시절 정기전에서 게이오를 탈탈 털었다고 한다.[71]
어쨌든 고교졸업 이후 프로 입단을 희망해 드래프트에 참가하고 프로팀의 지명을 받았다면 정말 초특급 거물이 아닌 이상 대부분은 2군에서 짧으면 1년, 길게는 수 년 동안 몸을 만들거나 추가적인 지도를 받게되며 이 기간 동안에는 1군에 아예 못 올라오거나 올라가더라도 잠깐 얼굴만 살짝 비추고 칼같이 다시 2군으로 내려가게 된다. 이는 대다수의 프로팀들은 고졸 선수들을 즉전감이 아니라 미래를 보고 장기적으로 육성할 자원으로 보기 때문이다.[72] 간혹 상위 지명을 받긴 했지만 1군에서 당장 통할만한 급까지는 아닌 신인 고졸 선수들이 1군에 올라와 한동안 경기를 뛰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는데 이는 그 팀의 선수층이 얼마나 형편이 없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10. 일본의 고교 야구부[편집]
초등학교때부터 엘리트 체육 시스템으로 굳어진 한국과는 달리, 일본의 고교야구는 오히려 동아리 활동(그들 용어로는 部活動)에 가깝다. 물론 처음부터 프로를 노리고 빡세게 임하는 선수들도 많이 있지만, 대부분은 방과후 활동선에서 이뤄지는 편.
게다가 규모도 비교불가급으로 차이가 나는데 한국의 고교야구부가 90개 조금 넘는 반면 일본은 고교야구연맹에 정식 등록된 학교수만 2023년 기준 3,818개나 된다. 야구 명문 사립고교의 경우 중학교 유망주들을 싹쓸이해 와서[73] 수업도 편법으로 거르면서 빡세게 훈련시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야구부원들도 일반 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받고 시험도 다 치른다.[74] 시험 성적이 나쁜 경우에는 시합 참가 금지[75] , 심하게는 야구연습을 금지당하기도 한다. 정규수업은 보통 오후 2시까지 다 같이 받고 이후에는 야구 연습이 저녁 7시정도까지 이어진다. 아닌 곳도 있긴 하지만 많은 학교들이 야구부 기숙사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저녁 연습이 끝나고 식사후에도 자율 연습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야구부원의 수도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2015년 고시엔 출장교 중에서 가장 많은 부원을 자랑하는 학교는 고치 현의 명문 메이토쿠 기주쿠. 총 부원수 155명을 자랑한다. 반면 와카야마 현의 강호 치벤 와카야마 고교는 30명이다. 고시엔에 갈 수 있는 레귤러 멤버의 수는 18명이기 때문에 나머지는 응원석에서 응원하는 방법밖에 없다. 18명 이외에는 벤치에 앉아있는 것도 규정상 금지. 경기 중계를 보면 응원석에 학교 응원단 말고도 야구부 옷을 입고 열혈 응원을 펼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대부분 18명 안에 포함되지 않은 선수들이다. 1,2학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3학년은 춘계 지역대회, 운 좋으면 고시엔이 고교 마지막 야구가 될 수 있기때문에 필사적일 수 밖에 없고 대부분의 학교도 3학년을 우선적으로 멤버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실제로 지역대회나 고시엔에서 패배한 팀의 1,2학년 생들의 인터뷰를 보면 3학년 선배들에 대한 정이 각별하다 싶을 정도, '여기까지 데려와준 선배들과 하루라도 더 야구를 하고 싶다' '선배들의 몫까지 내년에는 열심히 하겠다' 등등.
사람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야구부의 경우는 3년 내내 등번호 한번도 달지 못하고 대외 시합에 출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벤치 멤버라도 되어서 고시엔에 나가기라도 하면 엄청난 영광. 가끔 오지에 있는 학교 중에 10명 남짓한 야구부원의 이야기가 방송을 타기도 하는데[76] 일반적인 학교의 야구부는 보통 60-80명은 기본이고 100명이 넘는 학교도 많다.
실력있는 1, 2학년이 에이스를 맡거나 클린업 트리오에 포함되는 경우도 간간히 있다. (ex. 와세다 실업고의 3번 타자는 1학년생 키요미야 코타로, 코난 고교의 에이스는 2학년생 히야네 마사야) 성깔 나쁜 3학년생들은 선발 멤버에 포함된 하급생들에게 '너 때문에 내 마지막 여름이 여기서 끝나면 알아서 해라'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하고, 이런 것이 폭력으로 이어져서 학교 전체가 출장 금지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KK 콤비로 불리는 PL학원의 전설, 구와타와 기요하라의 경우에도 압도적인 실력으로 1학년 때부터 각각 에이스와 4번 타자를 맡았지만 3학년들의 시기, 질투로 인해서 엄청나게 맞았다고 한다. 요즘은 매스컴과 인터넷의 발달로 폭력 사태는 많이 줄었지만 야구 명문고에서도 종종 폭력사태가 나오기도 한다. 자세한 것은 다음 항을 참고.
고시엔 최다우승팀 쥬쿄다이쥬쿄와 오부 고교의 은퇴시합
하나마키 히가시 고교의 은퇴시합과 마지막 펑고.
일본 최고의 투수로 거듭나고 있는 160km/h의 사나이 오타니 쇼헤이(LAA) 와 '황금의 좌완' 키쿠치 유세이(세이부)를 배출한 하나마키 히가시 고교의 경우 부원이 130명을 넘는다. 그러다 보니 벤치에 들어가는 것 조차도 힘든데 이런 경우 3학년생들을 중심으로 보결 멤버들끼리 다른 학교의 보결 멤버들과 '은퇴 시합'을 벌이기도 한다. 이럴 때는 위치를 바꿔서 레귤러 멤버들이 응원석에서 보결멤버 동료들을 응원하고 부모님들, 학교 친구들까지도 많이 와서 본다. 동영상에서 보는 것처럼 감독이 3학년생들에게 마지막 펑고를 쳐주면서 서로 엉엉 우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같으면 어차피 경기도 못 나가는거 뭐하러 공부까지 제대로 못하면서 응원이나 하고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야구부원으로서 자기 학교가 고시엔에 나가는 것은 엄청난 영광으로 생각한다. 사회에서도 고시엔 야구부 출신이라고 하면 쳐주는 분위기도 살짝 있다고 한다.
1991년부터 간혹 재외국인 학교도 참가하기도 하는데[77] , 1999년 81회 지역예선부터 민단계 학교인 교토국제고등학교(구 교토한국고등학교)가 일본 고교야구 연맹 경식부에 가입한 후 재일 한국인 학교로서 처음 참가하여 2001년 83회 지역예선 2회전에서 가이요 고교를 꺾고 3회전까지 갔고, 2002년에는 예선 16강까지 갔다. 2003년 85회 지역예선 때는 이양강 주장이 선서했다. 초기에는 미경험자가 많아 지역 대회마다 본선 진출을 못 하다가 이후 2016년 지역대회 4강, 2019년 지역대회 준우승까지 거치며 점차 성장했고, 2021년 93회 봄 선발대회 본선에 진출해서 우승 후 여름 본선진출 티켓을 얻었는데, 이 여름 고시엔 첫 출장에 에이스 모리시타를 주축으로 준결승까지 진출, 베스트4라는 엄청난 성적을 내면서 새로운 강호 고교로 떠올랐다. 해당 학교에서 배출된 프로 선수는 두산 베어스 내야수 신성현과 전 LG 트윈스 유격수 황목치승 등이 있다.
11. 역대 대회 목록[편집]
-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2017년
-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2018년
-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2019년
-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2021년
-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2022년/봄
-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2022년/여름
-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2023년/봄
-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2023년/여름
12. 유명한 일화들[편집]
자세한 내용은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유명 일화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3. 역대 우승팀과 준우승팀[편집]
자세한 내용은 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역대 우승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4. 고시엔을 다룬 기타 창작물[편집]
14.1. 만화[편집]
일본의 고교야구를 다룬 만화는 전부 '고시엔을 향한 과정' 그 자체라 봐도 무방하다.
- 머나먼 갑자원
- 나미 타로 & 카와 산반치 야구 만화
- 하늘의 플라타너스
- 라스트 이닝
하토가야는 특유의 수완으로 야구부를 일신하고, 현 대회에서 신흥강호 세이보 학원을 혈투끝에 꺾고 여름 코시엔에 진출한다. 코시엔 대회에서도 선전하여 4강까지 올라가지만 우승후보 나니와 난요 고교에 접전끝에 패배.
- 루키즈(원작만화)
- 명탐정 코난
- TVA 초창기의 오리지널 에피소드인 41화 <우승기 절단사건>에서의 우승기가 바로 고시엔 우승기다. 명문학교의 이사장이 전년도 고시엔 우승에 들떠있는 학교에 불만을 갖고, 이 뜻을 따른 학교 교장이 우승기를 커터칼로 훼손한 것이다. 고시엔 우승기도 제대로 관리 못하는 학교라는 이유로 대회 진출권을 자동 반납하려는 계략이었으나 어찌어찌 잘 돼서 다음 대회에 정상적으로 출전한다.
- <고시엔의 기적! 보이지 않는 악마에게 질 수 없다!>. 고시엔을 무대로 폭탄 테러를 일으키려는 범인을 에도가와 코난과 핫토리 헤이지, 오오타키 고로가 막는 내용. 원작자가 야구 팬이라 작가의 단편 <4번 서드>도 고시엔을 다루고 있으며, 이 에피소드에 나오는 두 야구팀은 <4번 서드>의 등장 팀이다. 국내판에서는 황룡기로 현지화.
- 은수저 Silver Spoon
14.2. 게임[편집]
- 98갑자원 - 이건 괴작 게임으로 유명하다(...).
-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
- 카시오 열투갑자원 - 카시오에서 1984년 제작한 MSX1용 고시엔 야구게임
14.3. 영화[편집]
- 지옥갑자원
- KANO - 대만이 일본 식민지였던 1931년 가의농림학교(KANO)가 고시엔 결승에 올랐던 이야기.
14.4. 소설[편집]
- 나, 린
- 마구 - 히가시노 게이고의 1988년 작. 추리소설로 가이요 고교 야구부원 연쇄 살인사건이 주된 스토리로, 프롤로그에 가이요 고교가 코시엔 1차전에서 탈락하는 내용이 나온다.
-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
- 열구
14.5. 도서[편집]
- 『청춘, 여름, 꿈의 무대 고시엔』
2부 「아날로그 문화와 함께해온 고시엔의 역사」
3부 「매뉴얼 사회와 일본 야구의 전통」
4부 「갈라파고스 일본 사회, 유일무이 고교야구」
5부 「상하관계 종사회 문제, 고교야구의 숙제」
6부 「한국은 고교‘야구’, 일본은 ‘고교’야구」
7부 「‘일본 고교야구는 교육의 일환’이라는 오래된 주장」
8부 「마음의 고향, 야구의 성지라는 이름」
9부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과 현미경 야구의 탄생」
10부「마츠리의 나라, 전 국민의 축제 고시엔」
파일:플레이볼 표지.png
- 『플레이볼 : 전쟁 이전 외지의 고교야구 』(2017, 워크룸 프레스)
- 일본의 작가 가와니시 레이코가 쓴 책을 SBS의 카메라 기자 양두원이 번역했다. 고시엔이 처음 열릴 때부터 태평양 전쟁으로 중단 되기 까지 60 여년의 고교 야구를 다룬 책이다. 초창기 고시엔의 야구적인 측면과 함께 역사적인 사건과 배경들이 같이 언급되어 있어서 당시의 분위기들을 잘 알 수 있고, 드물게 대만 야구사에 관해서도 다루고 있다. 특히 일제 식민지 시기의 조선 고교 야구에 대해서도 꽤 많은 장을 할애해서 서술하는데, 조선 고교라고 해도 대부분 일본 학생들 위주로 야구부가 구성되었던 만큼, 당시 참가했던 선수들의 수기나 에피소드들도 일본인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고시엔 역사에서 유일무이하게 조선 학생들로 구성된 휘문고보 (지금의 휘문고)에 대해서 역자가 따로 한 챕터를 직접 써서 넣었다.
15. 비판 및 사건사고[편집]
15.1. 폭력 사건과 출장 정지[편집]
심야식당의 한 장면
일본 야구 만화를 보면 '야구부원이 폭력사건에 연루되면서 학교 전체가 고시엔을 못 가게 된다'라는 설정이 종종 보인다. 아다치 미쓰루의 H2에는 센카와 야구부 그라운드 완성 기념 시합의 상대로 히류니시 고교가 나오는데 폭력 사건으로 공식 시합에 출전 금지를 먹어서 연습 시합밖에 할 수 없게 된다. 일드 심야식당 시즌2 에피소드 1에는 비엔나 소세지를 좋아하는 야쿠자 류 (마츠시게 유타카)의 과거가 나오는데 고교 시절 야구부였고 고시엔 출장이 확정되었던 류는 야구부 여자 매니저와 데이트를 하다가 뜻하지 않게 깡패들과 싸움에 말리는 바람에 그 학교가 출장 정지를 먹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라 히데노리의 '청공'도 비슷한 설정으로 시작한다.
야구부 폭력사건으로 가장 유명한 학교는 80년대 KK콤비를 배출하면서 고시엔 최강팀으로 군림했던 PL학원고등학교다. PL 학원은 고시엔 본선진출 및 우승을 여러번 이뤄낸 고교야구 초명문으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었는데, 2001년 상급생들이 똥군기를 부리며 후배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출장 정지를 먹었다. 그런데 2013년에 또 폭력사고가 일어났고 이 일로 감독이 사퇴하는 등 내홍을 겪다가 급기야 학교측에서 2014~2015년 야구부 신입부원을 뽑지 않기에 이른다.[82][83] KK콤비의 구와타 마스미와 히로시마 카프의 에이스 마에다 겐타 등등 많은 OB들이 모교 야구부 해체 위기에 대해 우려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폭력사건이 무조건 학교 출장 정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나카 마사히로의 모교이자 고시엔 역사상 두 번 밖에 없는 2년 연속 여름 우승의 토마코마이 고교, 고시엔 35회 출장의 강호 가고시마 실업 고교, 6회 출장의 사세보 고교, 고치현의 절대 강자 메이토쿠 기주쿠[84] 등등 수많은 학교들이 폭력사건이 휘말렸고 피해 학생이 자살하는 경우까지 있었는데 학교 스스로 출전을 사퇴하거나 해당 고교에 엄중 경고 및 해당 선수 출장 정지의 처분을 받기도 했다.
일본의 야구문화는 미국처럼 즐기면서 하는 게 아니라 선후배간의 서열이 중시되고 대회 우승 내지는 진출이 지상 목표처럼 강조되다 보니 학생들 간에 알력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일본의 고교야구부는 기숙사(료, 寮) 체제를 취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보통 아침에 잠깐 훈련을 한 후 정규 수업을 끝까지 다 받고 본격적인 훈련은 2시 이후 저녁 7시 정도까지, 이후에는 자율 연습을 한다. 기숙사는 3인 1실, 4인 1실로 되어있는데다 선후배가 같이 쓰기 때문에 아무래도 상급생들이 하급생들을 부려 먹는 경우가 많다. PL 학원을 비롯해 많은 학교에서 최근까지도 '츠키비토(付き人)'라는 악습이 남아있었는데 이것은 직역하자면 '따라붙어 있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하급생이 상급생의 뒤치다거리를 해주는 것을 말한다. 기숙사에 있다보면 훈련 이외에도 마사지나 청소, 세탁, 자질구레한 심부름 등등 할 일들이 제법 많은데 이런 귀찮고 개인적인 일들의 대부분은 하급생에게 가기 마련. 이런 것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을 때를 구실삼아 폭력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추측 가능하다. KK 콤비 역시 1학년 때부터 에이스에 4번 타자를 맡다 보니 선배들의 시기와 질투를 많이 받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엄청나게 맞았다고 한다. 학교 스타가 그 정도라면 다른 일반 야구부원들의 상황이 어떠할 지는 말할 필요도 없을 듯. 다이아몬드 에이스에도 1학년 유망주로 뽑혀온 선수들도 실력에 관계없이 선배들의 다리 주무르고 궂은 일 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일본의 야구부 기숙사를 묘사한 프로그램을 보면 안그래도 머리 빡빡 깎은 애들이 각 잡고 있는 게 거의 군대 내무반을 보는 느낌.[85]
15.2. 투수 혹사[편집]
미국에서는 고시엔이 선수의 미래를 망치는 몹쓸 대회 취급 받는다. 좀 더 신랄하게 까는 사람이나 기자들은 이 축제에 열광하는 일본의 정서 자체를 비판하며 '아이들의 미래를 불태워가며 만들어 내는 드라마가 아무리 아름다운들 결국 아동 학대다.'라고 까지 이야기하는 실정. 더 나아가서 아동 포르노라고 욕하는 시각도 있다.
풀뿌리 지역스포츠 구조는 미국도 거의 똑같이 가지고 있고 특히 풋볼의 경우 미국 고등학교 미식축구가 큰 인기를 얻고 있으므로 일본의 고시엔이나 미국의 고교 풋볼이나 그게 그거 아닌가라는 시각도 있으나 이는 정확하지 못한 견해이다. 미국 고등학교 미식축구는 어디까지나 대학 풋볼 및 NFL 진출을 위한 요람으로서 대학 및 NFL 관계자들, 심지어 나이키 같은 기업에서 매우 주시하는 곳이다. 나이키에서는 매년마다 미식축구 고등학교 캠프를 열어 미국 전역에 있는 에이스급 선수들을 한곳에 모으는데 선수들의 몸상태 및 실력을 외부에서 끝없이 체크를 함으로서 혹시 있을지도 모를 고교 감독들에 의한 혹사를 방지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고등학교를 끝으로 선수 생활을 지속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혹사로 연결되는 고시엔과는 경우가 매우 다르다.
그리고 떡잎이 될 법한 에이스급 선수들은 빠르면 2학년때 부터 대학으로부터 장학금 오퍼를 받기 시작하며 이런 선수들은 당연히 대학 풋볼팀이나 NFL 관계자들도 매의 눈으로 주시를 하여 미리 혹사를 방지한다. 게다가 미국 고교 선수들 마인드 또한 고교팀은 어디까지나 대학 및 프로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생각하지, 고교 생활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접으려는 선수들은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으며 이들이 과연 혹사를 당하려고 하며 전학을 갔으면 갔지 차라리 학교에 붙어있지 않는다. 어차피 운동부를 운영할 때 풋볼을 안 하는 학교는 사실상 거의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운동부를 아예 운영하지 않는 학교는 있어도, 운동부가 있는 학교라면 풋볼을 운영 안 하는 학교가 거의 없다.
또한 선수를 갈아넣는 고등학교는 대학 및 프로에서 강하게 제재를 가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제재가 바로 해당 고교 팀 리크루트 금지로서 이 정도 제재가 가해지면 00명이 대학팀에 갔고 00명이 NFL에 진출로 홍보해야 되는 해당 고교팀이 완전히 폐쇄되는 건 시간문제다. 게다가 고등학교 때까지 미식축구 주전 선수로 뛴다면 기본적인 체력 및 운동센스는 있다는 것이므로 굳이 NFL 말고도 MLB, NBA 등 다른 종목의 스카우터들도 주시를 하고 있으며 가능성이 보인다 싶으면 잽싸게 종목 변환을 권하는 편이다. 결국 선수들이 혹사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고시엔 대회에 대한 일본과 미국의 관점 차이는 근본적으로는 투수를 육성하는 일본과 미국의 입장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 야구계는 "투수의 어깨는 도검과 같아서 단련하면 단련할 수록, 던지면 던질 수록 강해진다."[86] 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는데 정반대로 대다수의 미국 야구인들은 "투수의 어깨는 분필과 같아서 던지면 던질수록 닳는다."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물론 미국도 일본과 흡사한 훈련방식이 없지는 않다. 일본식 훈련법과 가장 흡사한 훈련은 앨런 재거가 창시한 롱토스 훈련법이라 할 수 있는데, 젊은 유망주 중 이 사람의 제자가 많다. 어느 정도의 롱토스는 많은 선수들이 하고 있지만 앨런 재거의 영향을 받은 선수들의 롱토스는 상식 이상의 거리에서 롱토스를 하며 그 외 근력 훈련과 투구수도 무자비하다.
현대의 스포츠의학의 관점에서 보면 일본식 훈련방식은 틀린 방법이다. 어떠한 운동을 꾸준히 계속 훈련하면 일정수준 이상으로 강해지는 것은 맞지만, 그게 정도를 넘으면 반드시 근골계에 탈이 나게 되어 있다. 사람의 근육이나 연골 등은 무한한 자원이 아니라 일정한 한계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시엔은 우승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에이스를 쥐어짤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대회 기간은 짧고, 토너먼트 구조라서 한 경기라도 지면 끝이다. 그리고 아무리 야구 인프라가 탄탄한 일본 고등학교라고 해봤자 프로팀처럼 에이스가 두 명 세 명 있을 리가 없다. 어쩌다가 한명 나오는 에이스를 보유한 고등학교만이 고시엔에 진출하며 결국 남은 경기도 그 에이스를 쥐어짜가며 대회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 고교야구를 그린 야구만화들이 에이스 타령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시엔은 미국 입장에서 보면 '귀중한 분필과도 같은 투수의, 그것도 나이 어린 투수의 어깨를 무자비하게 소모하고 혹사시키는 대회' 로 보이는 반면 일본 입장에서는 '투수의 어깨를 단련하는 과정이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오히려 진정한 에이스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대회'가 되는 셈이다. 실제로 고교 시절에 에이스였던 선수들이 프로 무대로 와서 대성하지 못한 케이스는 한국에도 많은데, 일본이라고 에이스 선수들이 유소년 시절부터 죄다 팔과 손이 강철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니 프로 무대로 와서 대성하지 못한 경우도 없을 리가 없다.
그 동안 고시엔을 거쳐간 수많은 에이스들의 투구수를 보면 미국이 이 대회를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것도 이해가 간다. 1998년 마쓰자카 다이스케(요코하마고교)는 2주 동안 6경기 767개를, 2006년 사이토 유키(와세다실업고교)는 7경기 동안 948개를, 그리고 2013년 안라쿠 도모히로(사이비고교)는 9일동안 5경기에서 772개의 공을 던졌다. 2018년 요시다 코세이(카나이시농업고교)는 6경기에서 881개의 공을 던졌다.
특히 안라쿠의 경우 다르빗슈의 스카우터인 돈 노무라[87] 가 '고시엔에서 안라쿠가 받은 취급은 아동학대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 이 발언은 미국 기자들과 스카우터들의 공감을 얻은 반면 일본에서는 큰 반감을 불러일으켰다.[88] 일본의 지도자들은 '투구 수를 아끼는 미국 투수들도 부상을 당하는 빈도가 높다. 일본인 투수가 부상을 당하는 것은 일본의 단련법이나 고시엔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고시엔과 일본의 단련법을 거치고 롱런하는 투수도 많다'라 주장하지만, 이에 대해 미국인들은 '놀란 라이언 같은 투수가 나올 순 있다. 하지만 누구나 다 놀란 라이언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며, 되라고 강요하는 건 더더욱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반박하고 있다.
물론 일본 유소년 야구 선수들 절대 다수는 프로를 목표로 하는 선수가 아니다. 오로지 고시엔을 위해 피땀을 흘리며 노력해 온 선수들이다. 간단히 말해서 졸업하면 거의 대부분의 선수들은 상위 레벨(대학, 실업, 프로)로 올라가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의 관리가 불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시엔에서 그 청춘을 불태우는 것이고 그 점이 일본인들로 하여금 고시엔이라는 대회에 열광하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착취하는 쪽에서는 이런 논리로 다른 누군가를 혹사시키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89] 착취당하는 쪽도 가스라이팅에 넘어가 자신의 팔을 갈아가며 던진다. 그런 학생들의 말로가 대부분 좋지 않게 나오는 확실한 사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프로 지망이 아니기에 상관없다' 라는 건 핀트가 어긋난 답변이다. 설령 고시엔 이후 야구는 그만둔다고 해도 성장기 시절에 과도한 혹사를 피하는 게 미래의 건강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 일반인은 팔꿈치 인대가 끊어져도 토미 존 수술을 할 필요없이 별 불편함 없이 살 수 있다지만, 역시 최선은 멀쩡한 인대 가지고 사는 것이다.[90] 고시엔은 짧지만, 사람에게 남은 인생은 길기 때문이다.
대한민국도 고교 투수의 혹사가 빈번하지만 일본과 다른 것은 예전에는 이러한 문제에 소홀했으나 경기력 문제와 신인 고갈 문제, 국제대회에서의 실패 이후 이런 투수 혹사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으며 바뀌어야 한다는 여론이 강력하다.[91] 시대가 바뀌고 근육과 달리 인대는 반복 훈련으로 단련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의사들의 주장이 점점 힘을 얻어간다. 미국이 '투수의 어깨는 분필이다'라는 주장을 하는 이유에는 100년이 넘는 경험 때문이기도 하지만 의사들의 이런 주장 역시 큰 이유다. 현대 스포츠의학의 시각에서는 이건 거의 결론이 나와있는 문제다. 사람의 인대나 연골 등은 한계가 있으며 심지어 근육도 아무리 단련을 한다 하더라도 계속되는 스트레스에는 견디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탈이 난다. 츠지우치 다카노부(辻内崇伸)[92][93][94] 등 고시엔에서 연투한 에이스들의 부상 사례가 속출하고 2013년 봄 고시엔에서 일어난 안라쿠 토모히로(安楽智大)의 경이적인 혹사가 세간에 충격을 안겨주며 일본 고교야구계에서도 제도적 차원에서 투수의 건강보호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다르빗슈 유는 트위터로 '각 고교 당 선수 로스터 제한을 18명(지역예선은 20명)에서 25명으로 늘리고, 투구수 한계를 정해야 한다' 라면서 룰 개정을 주장하였으며, 쿠와타 마스미 등 상당수 고시엔 출신 선수들도 이와 유사한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고교야구 지도자들과 선수들이 출장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며 투구수 제한에 반발하는 중.
일본 고교야구 연맹에서도 개혁을 시작, 전국 고교야구 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2014년에 대회 개편안을 발표하였고, 우선적으로 2016년 춘계대회부터 승부치기 제도가 도입될 예정이다. 투구수제한, 엔트리 확대 역시 대회의 경과에 따라 검토될 예정이다.
승부치기는 2018년 춘계대회부터 12회까지 무승부일 경우 13회부터 타이브레이크를 하는 것으로 적용되었다.
15.2.1. 경향 변화[편집]
투수혹사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인 결과는 아니지만 운동부이니까 오로지 운동에만 목숨 거는 듯한 경향에서 벗어나는 학교들이 등장한지는 이미 꽤나 오래되었으며 방송에도 종종 취재되어 나오고 있다. 학업에 충실한 것을 기본으로 하며 제한된 시간 안에서만 빠듯하게 운동하는 식으로 대처하는 것. 투수 역시도 등번호 1번을 단 에이스가 죽으나 사나 대회 시작부터 최후의 경기까지 책임지는 혹사 경향에서 벗어난 학교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해당 학교들은 늘어난 엔트리를 충분히 활용하여 지역예선의 시점부터 복수의 투수를 마치 프로에서 로테이션을 돌리는 듯한 형태로 운영하거나 특별히 구위가 떨어지거나 상대 타선에게 난타를 당하지 않더라도 한 경기에 두 명 이상의 투수를 투입하면는 등 한 투수의 연투를 피하는 경향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는 전국대회 우승이라는 목적달성을 위한 방법에 대해서 학교 및 지도자 측의 시각의 변화가 반영된 것으로 예전처럼 에이스 한 명에게 의존하는 구조로는 전국대회 우승이 점점 불가능에 가까워진다는 점을 각 학교와 지도자들이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변화이다.
에이스 투수 한 명으로 전국대회 우승이 불가능해진 원인은 최근 일본 고교야구계에서 두드러지고 있는 일종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에 기인한다. 일본의 인구가 감소추세에 접어들게 됨에 따라 고등학교들도 학생 수 감소 경향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의 사립고등학교들은 우수한 학생들을 모집하여 명성을 유지함으로써 학교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 당면 과제가 되었다. 사립학교들이 수험생에게 어필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전국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야구부의 보유이고 이런 목적으로 야구부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는 사립학교들은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해서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중학교 유망주들에 대한 전국단위의 스카우트를 점점 더 강화하고 있는 것이 추세이다.
따라서 중학교 때 내로라하던 선수들이 고시엔 진출 가능성이 높은 유명학교 혹은 야구부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린 신흥 사립학교에 몰리는 현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이들 학교는 선수층이 두터워지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학교들을 상대로 연달아 맞붙는 전국대회 본선에서는 과거처럼 다르빗슈나 다나카 마사히로, 오타니 쇼헤이 등 초고교급 에이스 투수를 보유하고 있어도 투수 한명 만으로는 8강 정도 수준에서 에이스의 힘이 떨어짐에 따라 난타를 당하면서 탈락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혹사에 따른 비난은 덤으로 따라오게 된다. 따라서 투수진도 마찬가지로 층을 두텁게 만들고 특정 투수에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전체적인 팀 운영이 바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전국대회 첫 경기 정도는 등번호 10번이나 11번을 달고 있는 1, 2학년 백업 투수들이 선발로 나서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나타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의도치 않게 특정 투수에 대한 혹사는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특히 그런 전국구급 학교를 지망하는 선수들은 프로 지망생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러한 투수 운용은 장래 프로를 지망하는 학생, 특히 투수들에 대한 혹사위험의 경감과 차년도, 차차년도의 주축이 될 선수들의 경험치 축적이라는 부수적인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트렌드의 변화는 다른 쪽에서 부작용을 가지고 왔는데 다름아닌 위에서 언급한 부익부빈익빈 현상, 다시 말하면 각 지역 내 야구 명문교 절대우위의 심화와 세력구도의 고착화를 가지고 오게 됐다는 점이다. 앞서 얘기한 두터운 선수층의 확보와 그에 따른 투수혹사의 방지는 학교재단의 지원하게 전국단위로 우수한 선수들을 광범위하게 수집하는 사립학교에나 해당되는 얘기이다. 고교야구도 갈수록 점점 경기인구가 줄어드는 가운데[95] 중학생 단계에서 야구명문 사립학교들의 저인망식 스카우트의 결과 재정지원 및 지원자 모집에 제약이 있을 수 밖에 없는 공립학교[96] 는 선수수급조차 원활하게 되지 않고 있다. 프로팀에서도 신인 선수들의 훈련이 부족해 스킬 수준이 예전만 못해 많은 것들을 새로 가르쳐야 한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는 편이다.
과거에는 공립학교도 나름대로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던 비격전구조차도 지역 내 유망주들이 고시엔 출전 가능성이 높은 타지역의 전국구 사립학교 아니면 자기 지역의 갑툭튀한 신흥 사립학교로 진로를 정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사립학교들이 고시엔 출전권을 점유하는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나마 공립학교가 기댈 것이라고는 과거의 명성과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한 강도높은 훈련 정도인데 그것만으로는 진지하게 프로를 지망할 정도의 중학생을 설득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최근의 학생들은 소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과거의 명성보다는 현재의 가능성을 더욱 중요시하며 뱀의 머리가 되는 것 보다는 용의 꼬리가 되더라도 체계적인 훈련을 제공하고 비슷한 수준의 기량을 가지고 있는 동료들과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더 선호하고 있다. 게다가 선수수급도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과거와 같은 주먹구구식 강도높은 훈련만으로는 재능의 차이를 극복하기에는 그 벽이 점점 더 높아져 가고 있다.
그 결과 고시엔 본선은 가면 갈수록 중학교 유망주들을 싹쓸이하는 몇몇 사립학교들만의 잔치가 되어가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으며 그나마 21세기 시드 등으로 그러한 핸디캡에 대한 고려가 어느정도 이루어지는 봄대회와는 달리 진짜 실력대결인 여름대회의 경우 지역예선 8강 쯤 되면 일부 돌풍을 일으키는 한두 학교를 제외하면 매년 볼놈볼, 그 학교가 그 학교인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 꼴을 보다 못한 프로야구 쪽에서도 고시엔 성적보다 이외 대회의 성적도 꼼꼼히 보는 스카우트 경향을 보여주고 있으며, 실제로 고시엔에 가지 못해도 나가시마 시게오, 아베 신노스케, 구로다 히로키, 후루타 아츠야 등 좋은 선수들은 나온다. 그래서 상위픽에도 최근 고시엔 비출장교들이 늘어나고 있는 편이고, 최근에는 야마모토 요시노부, 사사키 로키 등 고시엔 대회에 아예 출장하지 않은 선수들이 리그 투수 랭킹을 호령하면서 고시엔에 대한 집착도 줄어들고 있다[97] .
그리고 어쩌다 개천에서 용난 에이스급 한 두명과 조직력을 앞세워 8강 이상까지 올라오는 공립학교들의 경우 팀 내에서 선수들 간의 기량차가 매우 심하고 따라서 여전히 과거의 경우처럼 에이스 한 명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운영이 불가피한 상황에 처해있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공립학교 야구부가 에이스 한 명의 역투를 앞세워 꾸역꾸역 4강정도까지 올라오더라도 그 쯤 되면 이미 연투에 이은 연투로 거의 지친 상황이 되는 반면 타선은 충분히 휴식을 취한 어깨를 가진 상대팀 투수를 때로는 2명 이상 상대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되었다.
즉 공립학교가 기껏 상대팀 에이스 투수를 두들겨서 강판을 시켜도 그와 비슷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 또다른 투수가 구원으로 올라오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니 공립학교는 타선은 타선대로 상대팀 투수진에게 막히게 되고 기댈 곳 없는 에이스는 그 시점 쯤 되면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녹아웃되는 상황은 이제 일상적인 모습이 되고 있다. 공립학교 감독들이 경기에 패하고 나서 에이스가 지쳐 있는 것을 알면서도 막강한 전력을 자랑하는 상대 앞에 계속 맞대결을 시킬수 밖에 없다며 비슷한 실력을 가진 선수가 한 명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고충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2018년 여름 대회는 사상 최대인 56개 학교에 출전권을 줬음에도 불구하고 본선에 진출한 공립학교는 불과 8개 학교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러한 사정이라 사가키타의 기적과 같은 사례는 이제 정말로 야구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불가능한 꿈이 되어가고 있다. # # # 그리고 그 2018년 대회에서 다시 881구를 던진 선수가 나왔다. 공립학교인 아키타의 카나아시 농고 에이스 요시다 코세이는 총 881구를 던졌으며 5연속 완투승을 했으나, 혹사의 여파로 결승에서 와르르 무너져 버렸다. 1-12로 경기가 완전히 기운 후에도 마땅히 교체할만한 백업 투수가 없어 132구까지 던지고 내려가고 말았다.
이런 문제는 투구 수 제한 강화가 본격적으로 적용된 국내 고교야구에서도 이미 나타나기 시작하는 문제다.
2019년에는 2010년에 모교인 코난고교를 여름 코시엔 우승으로 이끈 시마부쿠로 요스케가 방출당하면서 또 한번 코시엔의 혹사 문제가 제기되었다. 시마부쿠로는 코시엔에 무려 13경기나 출장했었고[98] 고교 졸업 이후 주오대학으로 갔는데 여기서 또 한번 더 혹사를 당하면서 완전히 맛이 가버렸다.[99] 결국 상위 라운드 지명이 분명하다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드래프트 때도 5라운드에 와서야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지명했고, 프로에서도 혹사 후유증으로 2~3군을 전전, 데뷔 첫해 1군 공식전에서 2이닝 기록만 남긴채 2019 시즌을 끝으로 방출, 은퇴했다. 은퇴 후엔 모 고교 야구부 지도자가 되었다.
15.3. 여학생 매니저 강제퇴장 파문[편집]
2016년 여름대회에서 코시엔 그라운드에 선수들의 연습을 보조하러 여학생 매니저가 올라갔다는 이유로 해당 매니저를 퇴장시키고 징계를 먹이는 사건이 터졌다. # 일명 일본고교야구 여자 매니저 강제퇴장 파문.
고교야구 연맹에서 내건 이유는 안전규정이다. 실제로 고교야구 연맹 규정에 "그라운드는 위험하기 때문에 여자가 남자들 사이에 섞여서 경기에 출전하거나 그에 준하는 연습에의 참가를 불허한다"라는 규정이 있다. 하지만 실은 "감히 여자가 유니폼을 입고 신성한 그라운드를 밟다니!"라는 고교야구 연맹 꼰대들의 시대 착오적인 남녀 차별 의식이 바탕에 깔린 게 아니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야구 만화 때문에 환상을 가지기 쉽지만 사실 고시엔은 여자들에게는 닫힌 공간이나 다름 없었다. 경기 기록을 담당하는 여자 매니저가 덕아웃에 들어올 수 있게 된 것도 90년대 후반에 들어와서이며 여자 매니저는 유니폼이 아닌 교복을 착용해야 했고 덕아웃까지만 진입이 허용되었다. 그 전에는 여자 매니저가 팀의 기록 담당하는 경우 기록원의 덕아웃 출입이 금지되었다. 기록을 담당하는 여자 매니저는 관중석에서 기록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반면 남자 매니저의 경우에는 선수들과 같이 유니폼을 입는 것이 허용되었고 경기 중에는 불가능하지만 연습시간 중에는 연습 보조로 그라운드에 올라가는 것을 허용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2016년 여름대회에서 오이타현 대표인 오이타 고교의 여자 매니저가 남자 선수들과 똑같이 유니폼을 입고 남자 매니저들처럼 연습 보조를 위해 그라운드로 들어오자 안전규정을 들먹이면서 매니저를 퇴장시켰다. 이 조치에 대해 해당 학교는 " 지금까지 고락을 같이 해온 팀메이트로서 선수들과 같은 복장을 하고 선수들의 훈련을 도와주기 위해서 그라운드를 밟게 해주는 것이 그동안의 노고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라면서 반발했고 이 소식을 들은 야구팬들로부터는 "남자 매니저는 안전이 보장된다는 증거는 있느냐", "남자 매니저는 날아오는 공이 알아서 피해가냐" 등등의 비판이 가해졌다.
결국 고교야구 연맹도 쏟아지는 비판을 못이기고 2017년 봄 대회부터 헬멧을 착용하고 유니폼이 아닌 체육복 차림으로 그라운드의 정해진 구역 내에서만 움직이는 조건으로 선수들의 훈련을 보조하기 위한 여자 매니저의 그라운드 진입을 허용하기로 했다.
15.4. 8호문 클럽[편집]
워낙 인기가 있는 고교야구다 보니 열광적인 팬들도 많은데, 그 중에서도 유명한 것이 일명 8호문 클럽(八号門クラブ)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주로 고시엔 구장의 8번 출입구에서 모여 단체관람을 하기 때문에 붙은 별명인데, 이들의 목표는 고시엔 전경기를 가장 가까이서 보는 것이라고 하며 백네트 부근(타석 바로 뒤에 있는 관람석)의 자리를 독점하는 걸 목표로 한다. 어지간한 고교야구 팬들도 이 사람들 앞에서는 야구 좋아한다는 이야길 꺼내지도 못할 정도라고.
웬만한 인기 연예인들도 이들 눈에는 차지 않아 바로 옆에 있어도 거들떠도 안보는 경우가 많다고 할 정도고 진짜 고교야구 팬이 아니라면 상대도 안해준다고 한다. 일본에선 나름 한끗발 날리는 인기 가수인 오오토모 류헤이(이 사람도 상당한 수준의 고교야구 팬이다)가 이 8호문 클럽에 인정받는게 소원이라고 할 정도이니 말 다한 셈.
그러나 실상은 이른바 여러사람들에게 민폐만 끼치는 자칭 진정한 고교야구 팬으로 이들은 자기들끼리 폐쇄적인 사조직을 만들어 고시엔에서 가장 좋은 자리를 점거하고 다른 사람들이 좋은 자리에서 경기를 관람할 권리를 뺏는 민폐집단. 이러한 집단의 행태가 그렇듯이 고시엔의 좌석이 무료 혹은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나온다는 점을 악용하여 고시엔 구장의 좌석에 대해서 아무런 권리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들 패거리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면 자신들이 맡은 자리에 접근도 못하게 하는 백수에 가까운[100] 민폐집단인 주제에 마치 자신들만이 진정으로 고교야구를 사랑하는 양 비뚤어진 선민의식에 도취된 작자들이다.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형광색 모자를 쓰고 백네트 좌석에 앉는 라거(ラガー)[101] 라는 사람.
결국 이들의 백네트석 독점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자, 일본고교야구연맹에서 2016년 센바츠 대회부터 백네트석을 긴키지역 유소년 야구팀에게 우선적으로 배정하는 드림시트 제도를 도입했다. 유소년 선수들이 선배들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보며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배려함과 동시에 8호문 클럽의 악질적인 문화도 차단한터라 대호평.
라거를 위시로 한 8호문 클럽 멤버들은 그 뒤에도 3루측 맨 앞자리에 앉았으나 코로나19가 터지면서 고시엔에 못 들어갔다. 코로나가 진정된 뒤에 라거는 다시 돌아와 비어있는 백네트 좌석에 앉으려다가 신고당해 경비원에게 쫓겨났고, 이 후 일본고교야구연맹에서 2022년 여름 대회의 티켓 가격을 올리자 너무 비싸다며 안 가고 TV로 보겠다고 말해 비웃음을 샀다.
15.5. 대진표의 불공평함과 토너먼트제의 문제[편집]
일본 고교야구에서 가장 권위 있는 여름 대회는 부전승이 있다. 일본의 47도도부현에서 홋카이도와 도쿄는 각각 남북, 동서로 나뉘어 2팀을 대표로 보내기에 총 49팀이 나오기에 통상적인 여름 고시엔에서는 15개교의 부전승교가 나온다. 센바츠의 경우는 도도부현이 아니라 지역 대표로 나누어 32강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해당사항이 없다.
또한 결승까지 하루나 이틀 정도를 제외하고는 휴식일 없이 돌아가는 빡빡한 일정상 대진표의 앞 쪽에 위치한 팀과 뒤 쪽에 위치한 팀 사이에 불합리함이 생길 수 밖에 없다. 16강 정도가 되면 대진표에 따라 어떤 학교는 하루를 쉬고 일정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어떤 학교는 쉬는 날 없이 바로 경기에 들어가야한다. 이것은 투구 수 제한이 적용되면서 특히 부각되는 문제인데[102] 일본 고교야구의 투구수 제한은 7일간 500구 제한이므로 한 명의 에이스에 의지해 올라오는 경우가 많은 공립 고등학교 특성상 더 불리해졌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고교야구연맹과 학교 예산 문제로 인해 고시엔 대회에 뛸 수 없는 선수들은 가지 못하고[103] , 토너먼트전에서 그대로 탈락하면 끝이라는 특성상 고시엔 대회 이외에도 3년 동안 공식전에서 아예 한 번도 뛰지 못한 선수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 고교야구계에서도 토너먼트제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이 나오고 리그제 도입이 논의되고 있으며, 2014년부터 시작된 고교야구 리그인 Liga Agresiva의 참가교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Liga Agresiva에서는 감독, 지도자와 선수가 경기 후 피드백을 통해 배워 나가고, 투구수 제한 등을 통해 선수를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리고 2023년 Liga Agresiva의 참가교인 게이오기주쿠고교가 우승하고, 리그 참가교 중 4개교가 고시엔 대회에 진출하면서 성적 면에서도 성과를 이뤄냈다.
15.6. 폭염으로 인한 경기 관련 문제[편집]
여름 고시엔 대회는 기본적으로 8월 초에 개최되며, 더위가 심한 한낮에 경기를 치르고 야간 경기가 없기 때문에 선수가 열사병이나 탈수증에 걸릴 수도 있다. 2022년에도 선수가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거나, 탈수로 인해 장딴지에 쥐가 나는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2023년부터 1일 2부제(아침, 저녁) 경기를 실시하는 방안이 고교야구연맹에서 논의되었다.
결승전은 TV중계로 인해 14시에 개최되는데 14시는 하루 중 가장 더운 시간으로 간주된다. 준결승전과 결승전 사이에 1일의 휴식일이 부여되며 준결승전이 비로 연기가 될 경우 휴식일에 준결승전이 치뤄지기 때문에 선수들은 준결승전과 결승전을 2일 연속으로 치러야 한다. 14시에 경기를 하는 이유는 준결승 종료시점과 결승 시작시점을 최대한 벌리기 위해서다.
그러나 폭염으로 인한 선수와 관중의 어려움을 고려하여 오후 2시 시작을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결승전을 오전에 치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15.7. 삭발[편집]
고교야구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의 헤어스타일을 보면 천편일률적으로 삭발한 선수들이 대부분이나 2023년 여름 대회에서 삭발을 강요하지 않고 자유로운 헤어스타일을 용인한 게이오기주쿠고등학교가 결승에 진출하여 눈길을 끌고 있다. 학생선수가 감소하는 추세에서 삭발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학생들도 있고, 야구 저변을 넓히기 위해 삭발을 하지 않는 야구부가 늘고 있다. 다양성과 개성을 존중하자는 의견들이 많아지고 있다.
16. 기타[편집]
샌드박스 네트워크 소속 유튜버 썩코치가 2018년 센바츠대회 직관 영상을 올리기도 했는데, 1경기 전체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대략적인 흐름을 알 수 있다.
90년대에 한국 Q채널에서 방영했던 고시엔 관련 다큐멘터리.
2019년에 고시엔 3회전까지 진출한 경험이 있는 안권수 선수가 두산 베어스에 2차 10라운드 지명으로 입단하게 되었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일본 내 대규모 확산으로 인해 고시엔 대회 개최가 아예 취소되면서, 대회는 무관중 교류시합으로 대체되었고 아사히 방송과 마이니치 방송, NHK가 인터넷을 통해 3사 동시 중계를 하는 사태가 일어나게 되었다. 또한 응원단들도 고시엔에 가지 못해 인터넷을 통한 랜선응원으로 대체되었다.
고시엔이 취소되면서 고교야구 선수들에게 고시엔의 흙이 담긴 열쇠고리를 선물로 주었는데 누군가가 그 열쇠고리를 중고 시장에 팔았다고 한다.https://star.mt.co.kr/stview.php?no=20200904182349310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