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직 차관 아들 살해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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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사건 경위
3. 범인
4. 피해자
4.1. 사건 이후 밝혀진 사실들
5. 기타
6. 사회적 여파
7. 판결
8. 관련 문서


元農水事務次官長男殺害事件


1. 개요[편집]


2019년 6월 2일 일본 도쿄도 네리마구에서 발생한 비속살해 사건이다. 도쿄대학 출신의 농림수산성(구 농림성) 차관까지 지낸 엘리트 관료가 아들을 식칼로 잔혹하게 살해한 것이 밝혀져 가와사키 흉기 난동 사건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던 일본 사회를 다시 한 번 충격에 빠뜨렸다.


2. 사건 경위[편집]


피해자인 쿠마자와 에이이치로(44)는 직업 없이 용돈을 받으며 외부의 아파트를 빌려 생활하다가 5월 25일 본가로 돌아가 살고 있었다. 집에서 게임만 하면서 생활[1]하였으며 사건 당일 인근 초등학교에서 소음이 들린다고[2] 화를 내는 등 부자 간 충돌이 있었는데 6월 1일 새벽 3시경 아들을 꾸짖는 과정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폭행하자 아버지인 쿠마자와 히데아키(76)는 아들을 수 차례 찔러 살해한 후 경찰에 자수하였다.

추가적인 조사에서 사망자는 한 달 용돈으로 40만엔씩[3] 받아서 이 중 30~32만엔[4] 가량의 거액을 게임 현질에 몽땅 꼬라박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일본 중앙부처에서 사무직 차관까지 지내고 정년퇴직한 30년 근속 공무원의 연금 수령액은 평균 24만엔이고 외교관까지 거치고 은퇴한 가해자의 경력을 감안해도 최대 40만엔을 못 넘을 텐데 저 정도 용돈을 매달 지급했으니 가계에도 상당히 부담이 됐을 듯 하다.


3. 범인[편집]


파일:killerfather.jpg

범인 쿠마자와 히데아키(熊澤英昭) 는 1943년 기후현 출생으로 도쿄대학을 졸업한 후 1967년 농림수산성의 전신인 농림성에 들어가 경제국장 등을 거쳐 사무차관을 지냈고 이후 체코 대사를 거친 후 은퇴하였다. 이 때문에 일본과 주변국 뿐 아니라 체코 쪽 언론에서도 이 사건이 보도되었다.


4. 피해자[편집]


파일:deadhiki.jpg
아들 쿠마자와 에이이치로(熊澤英一郞). 1975년 3월 20일 출생[5]. 향년 44세. 위 사진은 피해자의 19세 때 사진이며 죽기 전에 찍은 사진이 아니다. 실제 살해 당시 피해자는 두정부까지 M자형 탈모가 진행되어 있던 상태라고 한다. 아마 위 사진이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외모에 자신이 있던 시절이기에 스스로 공개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19세 때 사진에서조차 탈모가 진행 중이었음을 알 수 있다.

피해자 쿠마자와 에이이치로는 중학교 때까지는 성적이 우수한 모범생이었으나 잔혹한 이지메를 겪으며 성격이 어두워져 갔다고 중고등학교의 지인들은 말했다. 그런데 에이이치로 본인도 눈치 없이 아무 상황에서나 하고 싶은 말을 던져서 이지메와는 별개로 다들 꺼렸다는 이야기[6][7]도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대학 입시에도 실패하였고 도쿄 소재 요요기 애니메이션 학원 애니메이터과 졸업 후 HAL 도쿄(IT, CG, 게임디자인 전문학교)를 중퇴했다가 다시 요요기 애니메이션 학원 캐릭터 디자이너학과에 입학해 졸업했다. 정부의 고위 관료였던 아버지와는 달리 그야말로 서브컬쳐 일직선의 인생을 살아 온 듯하다. 다만 애니메이션 학원을 다니기 전인지 후인지는 모르겠으나 모 사립대에서 건축학 학사를 취득한 후[8] 류츠케이자이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전공은 CG 관련이었다는 듯. 아무래도 집안 분위기상 대학 입시에 실패했다고는 하지만 공부를 계속 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대학 입시를 실패했다는 학생이 진학한 대학이 닛토코마센 라인으로 추정되는 걸 보면 고등학교 때 막장으로 살았다고는 해도 공부를 아주 안 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9]

트위터 계정
픽시브 계정[10]
유튜브 계정

한편 혐한, 넷 우익 성향이 강한 듯 트위터 계정에는 과 같은 한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발언#이 다수 남아 있었으며, 아버지가 고위 공무원이었다는 사실을 과시하기도 했다. 특히 어머니를 증오했는지 어머니를 죽이고 싶다는 트윗도 남아 있다.#, #,#

살해 추정 시각은 새벽 3시 20분이며, 사인은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사. 피해자는 아버지가 휘두른 식칼에 복부에 2회, 옆구리에 2회, 견갑골 아래 등 부위에 1회, 양손과 팔에 여러 방어흔을 입은 채 살해당했으며 이 중 옆구리와 복부의 자상이 치명상이 되었다고 한다. 양손과 양 팔에 남은 방어흔에서 피해자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아버지의 흉기에 저항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피해자가 즉사하지 않고 여러 차례 흉기에 찔린 후 방치당하여 사망에 이르렀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피해자는 과다출혈로 사망했다는 것이 밝혀져 재판에서 논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정황상 범인인 아버지가 치명상을 입고 피투성이가 된 채 행동불능으로 죽어 가는 아들을 방치한 채 구경하다가 아들이 숨지자 그제서야 자수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가해자는 구속되었고 법정에서도 살인죄가 인정되었다.

경찰 조사에서 히데아키는 “(아들이) 히키코모리 성향에다, 집안에서 가족들을 대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경향도 있었다”며 "아들이 초등학생들에게 적대감을 표출하게 되자 가와사키 흉기 난동 사건처럼 주위에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장남을 찔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장남을 "죽일 수 밖에 없다"고 기록된 서한도 확인됐다. 실제로 피해자는 중학생 때부터 어머니를 대상으로 폭행을 가했으며 사건 발생 1주일 전에 독립한 거처에서 문제가 있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는데 여기서 부모와 갈등이 심해졌고 부모에게 폭력을 썼다는 증거가 드러났다. 특히 가해자가 체포된 이후 가해자를 대상으로 경찰에서 수색하는 과정에서 가해자의 몸 곳곳에 멍 같은 게 있는 걸 봐서는 아버지에게도 폭력을 자주 행사했던 걸로 보인다. 하지만 부모들은 절대로 외부, 특히 경찰에게 이런 사실을 신고하지 않았다.[11]

4.1. 사건 이후 밝혀진 사실들[편집]


사건의 범인인 쿠마자와 히데아키가 코미케에서 아들이 그린 동인지를 판매하며 점원으로 앉아 있었다는 지인의 목격담이 알려졌다. 즉, 일본 정부의 엘리트였던 전직 관료가 코미케에서 아들의 동인지를 팔았던 것.(...) 지인의 목격에 의하면 우울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으며 강요된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한편 사망한 쿠마자와 에이이치로와 드래곤 퀘스트에서 게임 친구이자 사망 이틀 전까지도 메일로 연락을 주고 받았던 여성 게이머는 쿠마자와 에이이치로가 친절한 남성이며 자신이 힘든 상황을 토로하면 격려해 주는 따뜻한 사람이라고 증언했다.

2019년 8월 히데아키를 면회한 지인이었던 관료에 의하면 히데아키는 중형을 각오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히데아키의 진술에 앞뒤가 맞지 않는 점이 몇 가지 있고 본인이 진술한 사건 발생 시각과 차이나는 증언이 입수되었다. 히데아키가 진술한 아들 살해 시각은 새벽 3시경이지만, 새벽 4시경 집 근처에서 "죽어!"라는 호통 소리와 "용서해줘. 그만둬. 그만해줘."라고 절규하는 목소리를 들었다는 증언이 입수되어 경찰이 조사했다.

또한 히데아키에겐 아들인 에이이치로 말고도 딸이 있었는데, 에이이치로가 워낙 히키코모리이자 중증 오타쿠로 이미지가 나쁘자 집안의 이미지도 안 좋게 번져 혼담이 취소되자 자살했다고 한다. 생전 에이이치로와 여동생의 사이는 극도로 나빴으며 에이이치로는 수시로 트위터에 여동생과 약혼남의 욕설과 약혼을 방해하는 글을 여러번 올렸다. 이 또한 히데아키의 범행 동기 중 하나로 지목되었다.


5. 기타[편집]


5월 28일 히키코모리가 무차별적으로 학생들을 공격한 가와사키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한 지 일주일 남짓 된 기간에 또 다시 히키코모리 관련 사건이 발생하면서 히키코모리에 대한 일본 사회의 관심이 증가하였으나 자세한 정황들이 사건 발생 이후 언론 등에 의하여 공개됨에 따라서 해당 사건은 단순히 히키코모리 사건이 아니라 부모를 오랜 기간 동안 폭행했던 패륜아가 그 폭력성을 집 인근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전가하려고 하자 이를 막기 위한 부친의 고뇌에 찬 결단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5ch를 비롯한 서브컬처 및 히키코모리 관련 커뮤니티에서조차 피살자에 대한 반응이 극과 극으로 갈렸는데 피살자가 생전에 심한 악플러였기 때문이다. 피살자의 트위터에도 그에게 명복을 비는 트윗이 달린 반면 자업자득이라는 등 비판의 트윗도 함께 달렸다. 한국에서도 사건이 보도되면서 사망한 아들이 저지른 생전의 행패와 인종차별 행각이 함께 정리되어 알려지면서 "오죽했으면 아버지가 그랬겠냐", "무죄가 어렵다면 집행유예로 감형해서 선처해야 한다"는 반응이 주된 반응이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이, 이러한 시민 법감정에 따라서 진짜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면 그건 그거대로 곤란하게 된다. 무죄는 당연히 불가능하지만 하다못해 집행유예가 내려지고 이 사건이 판례가 되어 버리면 사실상 부모가 히키코모리 자식을 살처분할 수 있는 처형면허가 부여되는 셈이다. 따라서 이러한 동정 여론만을 따르기에는 역효과가 너무 크다. 이미 여러 차례 폭행 등을 저지른 아들을 충분히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음에도 이를 거부하다가 결국 살해하였다는 것 자체가 변명의 여지가 없는 범죄이기에 마땅히 처벌을 받는 것이 맞고, 가해자 본인도 이를 잘 알고 있었기에 전부 각오하고 벌인 행위이다.


6. 사회적 여파[편집]


이 사건으로 인해 일본에서는 소위 '8050' 문제가 대두되었다. 8050은 '80대 고령의 부모가 50대 중년의 자녀를 부양한다'는 뜻으로, 일본에서는 고령화사회와 더불어 수십년 전부터 생겨난 히키코모리들이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면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유발하고 있다. 2019년 일본 내각부의 조사에 따르면 중년 히키코모리는 무려 61만명으로 추산되며, 70%가 남성이라고 한다.[12] 8050 가정의 경우 부모가 경제활동에서 은퇴한 지 한참이 지난 데다 자녀마저 구직이 힘들기 때문에 경제적인 어려움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으며, 사회적 체면이나 여러 가지 이유로 외부의 상담이나 도움을 구하기도 어렵다. 결국 이들 부모와 자녀는 사회로부터 고립 상태에 빠져 극단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일본은 해당 사건뿐만이 아니라 8050 문제로 인한 가족의 '고립 죽음'이 상당히 많이 일어나고 있다.

2022년 11월에도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호도가야구에서 50세 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78세의 아버지가 체포된 사건이 발생했다. 아들은 평소 자주 술에 취해 주폭으로 날뛰었으며, 견디지 못한 아버지는 아들을 살해한 뒤 "이대로는 아내와 나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고 호소하며 자수 했다.


7. 판결[편집]


피고 구마자와는 구치소에 구금되었을 때 보석을 신청하여 500만엔의 보석금을 내고 석방되었지만 기소를 피할 수 없었고 결국 기소되어 재판을 받게 되었다. 12월 16일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열린 1심에서 피고 쿠마자와 히데아키에게 징역 6년이 선고되었다.# 피고가 살인죄를 인정하였으나 아들이 워낙 심각한 패륜아였고 단순히 히키코모리로 사는 걸 넘어 부모를 학대하고 부모 노후자금을 가로채기까지 하는 등 악질이었으며 부모가 고령이라 정상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웠던 점 등을 고려하여 정상 참작이 이뤄졌다고 한다. 구마자와 본인이 감옥에서 죽는 것도 이미 각오하고 저질렀다고 했으므로[13] 그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피고는 판결에 항의하여 항소했으나 2021년 2월 2일에는 2심에서도 1심의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8.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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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트위터에다가 자랑스럽게 단 한 하루도 쉬지 않고 게임을 했다고 밝혔고 죽는 그 순간까지도 그의 방에 있던 컴퓨터에는 게임이 켜져 있었다고 한다. 또한 '칸자키 히로미'(神崎ひろみ)란 닉네임으로 픽시브유튜브 계정까지 갖고 있었다.[2] 주변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사건 당일 운동회가 있었는데, 해당 운동회는 학교측이 최대한 노력해서 자기네들에게는 학교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고 했지만 사건이 발생한 쿠마자와씨의 자택 바로 옆이 초등학교였기 때문에 사건 발생지에서는 초등학교에서 나오는 소리가 잘 들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3] 2022년 12월 기준 한화 385만 원[4] 2022년 12월 기준 한화 289~308만 원[5] 일본에서는 3월생까지는 빠른년생이므로 사실상 1974년생.[6] 일본어 위키백과에 의하면 공식적 입장은 이쪽인 듯하다. 성격이 이상해서 그냥 다들 피했다. 사실 모범생(?) 시절에도 부모님께 태도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7] 사실 이런 일은 성적이 좋은 범생이 중 사회성이 떨어지는 학생들이 흔히 겪는 일이다. 아버지도 도쿄대를 거쳐 관료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사람인데 한국이나 일본이나 이런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사회성은 일반 학생들 사이에서의 인싸력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실제로 한국에서도 행정고시 합격자들의 평균 사회성은 일반인 이하라서 일반인 평균 수준의 사회성으로도 충분히 술상무 짓이 가능하다고 한다.) 타고난 성격이 안 좋은 것도 있지만 집안 배경상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는 것은 어려운 스타일이었을 것이다.[8] 공식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니혼대학이 유력하다고 한다.[9] 물론 류츠케이자이대학이 전형적인 F랭크 대학인데 그런 학교의 대학원으로 갔다는 것은 대학 생활을 충실히 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높지만.[10] 망인이 그린 다수의 일러스트가 업로드되어 있는데 40대 오타쿠답게 화풍이 레트로한 8, 90년대 그림체다.[11] 일본 사회에서는 가족 중 누군가 잡혀 들어가거나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리면 가족 전체의 명예가 실추되기에 가정불화와 가정폭력이 일어나도 법적 처벌을 할 수 있음에도 신고도 안하고 쌓아 두기만 하는 사례가 많다. 문제는 이게 쌓이다가 결국엔 패륜 범죄와 이혼으로 터지는 일이 많다는 점이다. 참고로 한국도 이와 비슷하여 사회 문제로 악화될 정도다.[12] 이는 40~60대의 연령대 추정으로, 이보다 어린 연령대까지 포함하면 일본의 히키코모리는 100만명을 돌파한다. 따라서 2020년대에는 상황이 더욱 심각해지면서 9060 문제가 본격화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13] 사실 아들을 죽이고 전 일본에 가정사정이 전부 폭로되었고 본인도 아들을 살해한 것이 명백한 악행인 터라 설령 형을 마치고 출소한다 해도 그의 인생은 이미 끝났다고 봐도 된다. 일본에서 가정폭력 등의 사건이 법적 처벌로 가지 않는 일이 많은 이유가 가해자가 법적 처벌을 받지만 가족들도 불명예를 안고 인생이 가시밭길이 되기 때문인데, 상술된 쿠마자와는 이미 아들 때문에 가정은 파탄나고 딸마저 자살해 더 잃을 명예도 없는 상황이었다. 작정하고 저지른 살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상 외의 가벼운 형량을 받았던 것이 앞으로 사실상 남은 인생이 없는 구마자와에 대한 판사의 마지막 배려였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