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국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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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Maebara_Issei_Arrested.jpg

메이지 시대경찰관. 세이난 전쟁에 참전한 경찰관들. 그 당시 경찰은 일본군(신식 군대)의 별동대로 간주되어 같이 참전한 적도 있다. 다만 정부는 지방 반란일 뿐 본격적인 내전이 아니라 주장했고, 때문에 전투병력을 군이 아니라 경찰에 소속시키는 말장난이었다. 특히 백병전을 위해 재고용된 사무라이 출신자들이 경시청 발도대로 편성되었다.

1. 개요
2. 상세
3. 계급
4. 한반도에서의 활동
4.1. 조선인 경찰관
5. 출판경찰
6. 목록(관련 인물)
6.1. 가상 인물(창작물의 일본 제국 경찰 캐릭터)
6.1.1. 창작물 에서 등장(단역)
6.2. 실존 인물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일본 제국 시절의 보통경찰. 내무성 산하의 기관이었다.


2. 상세[편집]


메이지 유신이후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지면서 각 번은 소속의 군대치안을 맡겼는데 이들은 군인이었지 경찰은 아니었다. 곧이어 사츠마 출신의 카와지 토시요시서유럽을 방문하면서 영국프랑스의 보통경찰에 감탄했다.[1] 그는 귀국한 직후에 프랑스 경찰의 관제를 기반으로 보통경찰을 창설했는데, 1872년에 설립한 사법성의 경보료(警保寮)를 1874년내무성의 경보국(警保局)으로 개편하면서 영국의 런던광역경찰청을 벤치마킹해 내무성 직속의 경시청을 창설했다. 다만 영국 경찰의 경우 영국 식민지 경찰 제도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또한 일본 제국 해군이 사쓰마번, 일본 제국 육군이 조슈번에 기반했다면 일본 제국 경찰은 아이즈 번이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다. 막부파에 선 탓에 지배적인 영향력은 아니었지만 막부 시절의 실무진 상당수가 아이즈 번 출신인지라.

일본 제국의 보통경찰은 프랑스 제3공화국독일 제국경찰행정법을 본받아 내무성 직할의 경보국과 도쿄 시내의 경시청에서 근무하면서 내무대신에게 복종하는 중앙경찰 및 도도부현을 다스리는 현청에서 근무하면서 현지사에게 복종하는 지방경찰로 인사체계가 분리되어 있었고,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한 민정문관이 XX군수로 승진한 뒤에 XX경찰서장으로 부임하는 순환근무도 흔했다. 당연히 일본 본토의 현청 직제를 모방하여 조선총독부의 13개 도청에서는 도지사의 지휘를 받는 5개의 부국(경찰부, 내무부, 재무부, 농상부, 광공부)이 설치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일제강점기한반도에서 경기도청의 경찰부는 지금의 시·도경찰청(행정안전부 관할의 광역경찰청)과 전혀 다른 직제로서 경기도청 직할의 경찰담당 부국에 불과했다.

고등경찰과 특별고등경찰은 보통경찰의 1개 부서로서 내무성 경보국(일본 본토)과 총독부 경무국(일제강점기 조선대만)의 지령을 따랐다. 게다가 일본 제국의 보통경찰은 프랑스의 법제를 본받았기 때문에 치안 유지라는 기능을 공유한 일본 제국 육군 헌병과 경쟁하거나 대립했으며, 일본 육군일본 해군과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다. 1933년에 일어난 오사카 고스톱 사건은 아주 특별한 사건으로 평가되는데, 내무성의 보통경찰이 육군성장교단에게 전혀 힘을 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일본 본토의 일본인들과 조선총독부조선인들과 대만총독부본성인들은 제1코스(순사보→순사→순사장→순사부장→경부보→경부)와 제2코스(헌병 하사관→순사부장→경부보→경부→경시→군수)와 제3코스(제국대학고등문관시험→경부→경시→경시정→총독부 사무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최소한 20년 이상을 경찰관으로 근무한 사람들이 많았다.

일본 제국이 패전한 뒤에 연합군 최고사령부일본 제국의 내무성을 해체하면서 기존의 보통경찰(경보국과 경시청도도부현청의 경찰부)을 모두 폐지하고, 시정촌 공안위원회의 자치경찰로서 오늘날의 일본 경찰을 새로 창설했다.

3. 계급[편집]


  • 경보국장(警保局長) : 일본제국 경찰 전체의 총책임자로서 내무차관, 경시총장과 함께 내무대신에 직속하는 내무성 3대 요직 중 하나로 고등관 1~2등 직위(육해군 중장급 해당). 현재 일본국 경찰청장관에 해당한다.

  • 경시총장(警示總長) : 제복 경찰관 중 최고위 직위로 경보국장과 함께 내무성 3대 요직 중 하나로 꼽혔다. 경시정급 경찰관, 도지사급 민정관 혹은 일본군 소장급이 임명되었다. 현재 일본국 경시총감에 해당한다.

  • 경무국장(警務局長): 내무성 경보국장 및 경시총장과 동일한 칙임관(고등관 1~2등)이자 정무직으로,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은 조선, 대만총독부 경무국장은 대만 주재 경찰관 전체의 우두머리였다. 경시정급 경찰관 또는 도지사급 민정문관 혹은 일본 육군 소장 또는 일본 해군 제독이 임명되었다. 현재 대한민국 경찰청장중화민국(대만) 경정서장에 해당한다.

  • 경시정(警視正): 현대 한국의 치안정감~치안감 직급에 해당하는 주임관. 내무성 경보국과 도쿄 경시청조선총독부 경무국과 대만총독부 경무국의 과장과 사무관 및 경무관과 경무관보를 맡았거나 47개 도도부현청(본토)과 가라후토청(사할린) 및 조선 13개 도청과 대만 5개 주청(州廳)의 경찰부장으로 근무했다. 내무성 경보국과 도쿄 경시청 및 조선총독부 경무국과 대만총독부 경무국에서 근무하는 국장과 과장은 경부로 부임하여 연속으로 승진한 일본인 경시정도 있었지만, 이런저런 민정관청에서 전근한 일본인 민정문관도[2] 있었다. 조선인 경찰서장들 가운데 경시정으로 승진한 사람은 구연수(조선총독부 경무국의 경무관), ___(조선총독부 경무국의 경무관보), 최경진(조선총독부 경무국의 사무관), 윤종화(황해도청의 경찰부장) 뿐이고, 나머지는 보통경찰 계통을 아예 벗어나 XX군수로 수평이동해 XX도청의 XX부장으로 승진한 다음에 도지사와 도참여관 및 총독부 사무관과 중추원 참의로서 정년퇴직을 맞이했다.

  • 경시(警視): 현대 한국의 경무관~총경에 해당하며 주임관 4등~주임관 5등[3]에 해당하는 고등관.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면 시보(수습) 기간을 거쳐 경부로 임용되었고, 경력을 쌓아야 경시로 승진했다.[4] 각 도청 경찰부의 과장 직책에 보임되는 계급이었는데 경무과장, 고등경찰과장은 거의 일본인이 전유했고, 조선인 경시는 각 도청 경찰부에서 잘하면 보안과장이나 형사과장 보통은 위생과장 및 경찰관강습소장으로 재임하거나 경찰서장으로 부임했으며 가끔 조선총독부 경무국에서 사무관으로 승진하거나 매우 드물게 각 도청의 경찰부에서 고등경찰과장을 맡은 케이스도 있었다. 1945년 해방 당시 조선에서 일본인 48명과 조선인 21명 밖에 없었던 고위직이다. 일본 제국의 높으신 분들은 직렬의 구별을 중시하지 않았으며, 해마다 경시(지방경찰)→군수(민정문관)로 전근하거나 군수(민정문관)→경시(지방경찰)로 전근하라고 명령했다. 또한 일본 총영사관의 부영사로 외국에 파견한 조선인 경시가 받은 월급은 예전에 조선에서 근무하면서 받은 월급의 3배였다.

  • 경찰관강습소 교수: 주4~주8

  • 경부(警部): 현대 한국의 경정에 해당. 대개 판임관의 일종이나, 인사적체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승진 대신 고등관 대우를 하는 고등관 경부(현대 한국 경찰에 대입해보면 경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로 대우하기도 했다. 조선인 경부는 한일합방 후 일본제국 치하에서 육성된 세대가 진출한 1933년부터 경찰서장에 보직되기 시작해 10여명의 서장을 배출했다. 경부에서 경시로 승진, 경찰직 군수로 승진, 고등관 경부로 잔류의 3가지 코스가 있었다. 1945년 해방 시점에서 일본인 433명 조선인 105명밖에 없었던 자리다.

  • 경부보(警部補): 판임관. 현대 한국의 경감에 해당. 1945년 해방 기준 일본인 790명 조선인 220명이 재직중이었다.

  • 경찰관강습소 조교수, 경찰관강습소 서기: 판임관.

  • 순사부장(巡査部長): 판임 대우. 현대 한국의 경위에 해당. 보통학교 졸업 학력밖에 없다면 경부고시를 통과해야 경부로 승진할 수 있었다. 조선인 순사부장의 경우 경찰서 주임을 맡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1920년대 중반부터 극소수가 주재소 수석을 맡기 시작했다.

  • 순사(巡査): 판임 대우. 현대 한국의 경사~순경에 해당한다. 이들은 조선인을 현장에서 직접 탄압했으므로 사회적 인식이 나빴지만 경쟁률이 높았다. 1926~1937년 사이에는 10:1~20:1의 경쟁률을 보였다.[5] 80%의 조선인 순사가 보통학교 졸이었기에 학력 미달로 인해 판임관이 될 수 있는 기본 자격이 없었고, 순사부장 시험에 통과해야 승진할 수 있었다.

  • 순사보(巡査補): 고원. 1919년 이후 폐지되고 전원 순사로 변경되었다.[6] 헌병보조원과 동격. 조선대만에서 조선인, 본성인 순사는 대부분 이 계급이었다.

참고로, 관리는 고등관(친임관[7], 칙임관[8], 주임관[9])과 판임관[10]으로 나뉜다. 고원은 임시직이거나 수습직이거나 아니면 신분보장이 되지 않거나 하는 관리관공서에서 잡무를 보거나, 관등이 인정되지 않는 징병된 사병이 이에 해당된다.[11] 일본 경찰의 경우 경부~경부보는 판임관이며, 경시 이상은 고등관, 그 이하는 판임 대우이다. 참고로 일본군에서 사병은 고원 대우, 하사관은 판임관 대우, 소위 이상 장교는 고등관이다. 관공서에서는 군수 이상이 고등관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친임관 - 국무대신, 총독, 육해군대장
칙임관 - 부현지사, 중장~소장, 경시총감
주임관 - 군수, 대좌~소위, 경시, 전옥(형무소장)
판임관 - 면서기, 하사관, 경부, 경부보, 간수장
고원 - 한병 상등병, 순사부장/순사장/순사, 간수부장/간수
용인 - 졸병, 순사보조원, 헌병보조원, 잡일꾼

4. 한반도에서의 활동[편집]


일제 강점기한반도 역시 일본제국 경찰의 활동 영역이었다. 일본 경찰은 강화도 조약이 체결된 후 1880년 원산부산에 영사관이 설치되는 과정에서 처음 한반도에 들어왔다. 당시 이들은 개항장에서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들어온 뒤 1907년 대한제국 경무청으로 흡수되었다.[12] 비슷한 시기 군용통신선을 경비한다는 명목으로 일제 헌병 역시 임시헌병대라는 이름으로 조선에 처음 들어왔는데, 그들은 경찰과 달리 한국인들에 의해 발생하는 항일운동을 무력으로 적극 진압했다. 이후 1910년 한반도의 경찰권이 일본에 의해 완전히 넘어가자, 무단 통치기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헌병경찰제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일제가 조선을 강제로 점령한 후 한반도의 치안은 조선총독부 산하의 경무총감부가 담당하게 되었으며, 각 도에는 경무부가 설치되었다. 헌병경찰제도 하에서는 도시에선 경찰서주재소, 파출소가 설치되어 경찰이 근무했으나, 지방의 시골에서는 헌병이 헌병분대와 분견소를 설치해 근무했다.[13] 이들은 독립운동에 대한 사찰과 탄압은 물론 호구조사와 같은 일반 주민들에 대한 행정업무까지 담당했다. 현대엔 보건소에서 담당할 법한 위생업무는 물론 일장기일본어 보급같은 식민지화 업무까지 경찰의 몫이었다. 즉 당시 경찰과 헌병은 식민지 주민들의 삶에 가장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총독부의 행정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남한 대토벌 작전 과정에서 발생한 학살과 같은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한반도 주민들을 잔인하게 탄압했다. 지방의 일부 관헌들도 헌병이 자신들이 해야 할 업무에 적극적으로 간섭하는 행태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3.1 운동 이후 사이토 마코토 총독이 민족분열통치를 실시하며 일본군 헌병들은 국경지대로 대부분 재배치된다.

이에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는 1919년 8월 20일 경무국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도시 지역의 치안만을 유지하던 체제에서 전국단위로 영향력을 넓히게 된다. 당시 조선총독부 경무국은 부/군에 1개 경찰서, 에는 1개의 주재소를 설치하는 걸 원칙으로 전국에 경찰관서를 설치했으며 일본인 경찰관들을 대거 증원받아 머릿수를 늘려나갔다. 또한 조선인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조선인들에게만 부여되던 계급인 순사보를 폐지하는 등 다양한 유화책을 펼쳤으나 이는 기만일 뿐이었다. 정작 경찰관들의 수는 더욱 늘어났기 때문이다. 심지어 경찰관을 충원하는 방식 중엔 헌병들을 경찰로 특채하여 옷을 바꿔 입히는 것도 있었기에, 식민지인들 입장에선 사실상 헌병이 물러난 자리에 더 많은 경찰관들이 와서 똑같은 패악질을 반복할 뿐이었다. 물론 조선총독부도 바보가 아니었기에 국민경찰이나 문화경찰같은 슬로건을 내세우며 경찰에 대한 반감을 진화하려고 시도했지만, 한반도 주민들의 경찰에 대한 원망은 줄어들지 않았다.[14]

이들이 조선인들에게 폭력적인 태도를 보인 데엔 다양한 분석이 존재한다. 경찰관들을 증원받을 때 '무지몽매한 식민지 사람들을 다뤄야 할텐데 고문관들 대충 추려서 보내도 되겠지?' 같은 생각으로 본토의 경찰들이 골칫거리로 여기던 저질의 자원을 받았다는 점도[15][16] 원인이지만, 많은 경찰관들이 일본인으로 구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한반도 주민들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다는 점 역시 큰 비중을 차지한다.[17] 조선인들로 구성된 순사보와 헌병보조원들이 이들의 업무를 돕긴 했으나, 조선총독부 경찰에서는 조선인의 비율이 일본인을 넘어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더구나 당시 경찰관을 뽑을 땐 채용시험은 있었어도 학력 제한이 존재하지 않았는데, 이 말은 곧 경찰관들 본인조차 자신이 집행해야 할 법에 대해 무지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순사들은 경찰 시험에 응시할 수 있을 만큼의 간단한 법지식만을 숙지한 채 입직하여, 경찰관강습소에서 얕은 수준의 교육훈련을 받고 현장에 투입되었다. 더구나 복잡하고 정리되지 않은 법체계 속에서 똑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조선인과 일본인에게 적용되는 규정이 다른 경우도 허다하다 보니 이러한 양상은 더욱 심했다. 따라서 현지인들과 말도 잘 통하지 않고, 능력도 부족했던 일본인 경찰관들은 현대처럼 홍보와 계도를 통해 규정을 준수하길 독려하기보단 폭력이 수반된 단속같은 강압적 방식을 주로 사용했다. 결정적으로 당시 만연해 있었던 식민지인들에 대한 차별/혐오의식조선태형령 같은 불합리한 법제는 이러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다. 총독부가 일방적으로 정한 법제에 익숙할 리 없었던 조선인들은 무지 또는 별 시덥잖은 이유[18]주재소에 끌려가 태형으로 구타당한 뒤 가족에게 부축받아 나오는 게 일상이었다.

예외적인 경우이지만 식민지 주민들에게 온정을 갖고 있거나 양심을 잃지 않은 경찰관들도 드물게 있었다. 독립운동가 이재유가 서대문경찰서 유치장을 탈출할 때 그에게 감화되어 일부러 보고를 늦게 했다는 순사 모리타의 사례가 대표적.[19] 그의 이외에도 덕수궁파출소에서 근무하던 조선인 순사보 정호석이 근무 중 조퇴하여 딸이 다니던 홍영학교 학생들을 이끌고 만세운동을 주도했다는 기록도 존재한다.

대중매체에서는 흔히 일본군 헌병들과 자주 혼동된다. 때문에 황색 군복을 입은 헌병들을 순사라고 칭하는 경우가 잦은 편. 하지만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헌병과 경찰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기는 했으나 별개의 조직이다.


4.1. 조선인 경찰관[편집]


조선인 중에도 일본 경찰이 된 자들이 여럿 있었다. 전술한 바와 같이 대중들은 폭력적이고 청렴하지 못한 경찰관들을 매우 꺼렸으나, 정작 그 경찰관이 지인이라면 환영해주는 경우가 아주 많았다. 실제 사례는 아니지만 채만식태평천하와 같은 소설을 보면 그러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20] 실제로 일본인에 비해 적은 비율이긴 했지만, 간부 계급을 달고 있었던 조선인들이 930명이나 된다. 또한 학력과 관련된 조건을 요구하지 않았던 경찰[21]은 가난했지만 공부 좀 하는 조선인들에겐 입신양명의 루트 중 하나였다. 따라서 순사는 식민지 주민들에게 대중을 탄압하는 원망의 대상이면서도 매력적인 일자리였다.

조선총독부는 순사보 계급을 철폐하고 조선인 간부를 다수 등용하는 등 겉으로는 민족간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애쓰는 듯 했다. 경무총감부가 처음 창설되어 일제가 패망하기까지 일본인 경관들의 수는 항상 조선인 경관들을 상회했으며[22], 간부의 비율 역시 일본인들이 더 많아서 대부분의 조선인 경찰관들은 말단 주재소나 파출소에서 일선 업무를 담당했다.[23] 급여 역시 조선인들에겐 기본액수만 지급될 뿐 격오지 근무수당이나 가봉 등의 추가수당이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24] 심지어 3.1 운동 당시에는 경찰관서 습격이 빈번해지자 일부 지역에서는 조선인 경찰관들을 내통자로 몰아 처벌하는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인 경찰관의 수는 일제시대 내내 지속 증하여 1945년 해방 당시 시점에 조선인 간부는 경시정 1명(윤종화 황해도 경찰부장), 경시 21명, 경부 105명, 경부보 220명이 있었다.

5. 출판경찰[편집]


일본 제국의 내무성에서 경보국(警保局)의 도서과(검열과)는 각종 신문, 잡지, 단행본, 격문 등을 검열했으며 외국에서 발행되어 일본 제국의 본토와 식민지에 반입되는 간행물도 검열했다. 이들은 1928년부터 1930년대 말까지 '조선출판경찰월보'를 간행했는데, 무슨 출판물을 어떤 이유로 검열했는지 등에 대해 적어 놓아 현대 사가들에게 귀중한 사료로 취급되고 있다. 예를 들어 방정환이 발행하던 잡지에서 아동들을 위해 세계 각국에 대해 소개하는 특집기사가 실렸는데, 그 중 '일본은 본국의 면적이 14,371평방리, ...로 우리 조선의 약 2배가 된다고 한다."는 대목을 삭제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 조선이라는 대목 때문이다.[25]


6. 목록(관련 인물)[편집]



6.1. 가상 인물(창작물의 일본 제국 경찰 캐릭터)[편집]


강우규의 서울역 의거를 모티브로 한 나카지마 아츠시의 소설.


6.1.1. 창작물 에서 등장(단역)[편집]




6.2. 실존 인물[편집]


  • 미와 와사부로[26]
  • 마루오까 [27]
  • 가와지 도시요시
  • 노덕술[A]
  • 하판락[A]
  • 김태석[A]


7. 관련 문서[편집]



[1] 수많은 혁명파업 덕에, 프랑스 경찰반정부세력을 진압하는 법에 도가 텄으며, 나폴레옹 3세 시절엔 경찰청장이 "파리하인 30%는 경찰의 끄나풀" 이라며 자랑할 만큼 강력한 사회통제력을 가진 게 프랑스 경찰이었다.[2] 도쿄제국대학법학부를 졸업한 도야마 오사무는 조선총독부에 취직했는데, 체신국과 식산국에서 속관으로 근무했으며, 함경북도 산업부장→조선총독부 경무국의 보안과장 (31~34세 때)→조선총독부 전매국의 경리과장→함경북도 산업부장→전라북도 내무부장→부산부윤 등의 다양한 보직을 맡았다.[3] 서류상으로는 주4~주8[4] 현대에 제1종 국가공무원 시험 출신의 일본 경찰관은 경부보부터 시작하며 1년간 아무 사고가 없이 있으면 경부로 자동승진한다.[5] 참고자료. 참고로 현대 한국의 순경(남) 경쟁률은 38:1 정도다.[6] 참고자료: 장신, 조선총독부의 경찰 인사와 조선인 경찰(역사문제연구소), 178~180p[7] 천황명하는 관직, 즉 최고위관직.[8] 천황의 명을 받아 총리명하는 관직, 즉 고위관직.[9] 총리가 천황에게 상를 올려 명을 허락받는 관직, 즉 중간관직.[10] 총리의 단만으로 명하는 관직, 즉 하급관직.[11] 지금 우리식으로 따지면 무기계약직 되기 전의 계약직 관공서 사무원들같은 건데, 일본 제국의 고원이라는 건 다양한 모습이라서 일률적으로 이야기 할 수는 없다. 일테면 보통문관시험 합격자가 판임관으로 정식 임명이 되기 전에 고원 신분으로 일하기도 했고 필요한 인원들을 고원으로 뽑았다가 정식 발령을 내주기도 했다. 어쨌던 고원은 그래도 대체로 글 알고 펜대 굴려가며 일하는 인원이 주였고, 관공서에서 육체노동같은 잡일을 하는 인원들은 용인이라고 해서 고원보다 취급이 더 안 좋았다.[12] 물론 당시 경무청은 일제에게 주도권이 완전히 넘어간 상태였다.[13] 도청에 설치된 경무부에선 헌병 좌관이 경무부장을 맡았다.[14] 때문에 일제가 패망한 후 한반도 일부 지역에서는 경찰관들을 살해하거나 린치하는 일도 있었다. 살해당한 일본 관헌들 중 2/3이 경찰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을 정도다.[15] 1925년 평북 구성군의 어느 마을에서는 일본인 경찰관이 부임한 후 온갖 횡포를 부리자 1개월만에 7개 가구가 이사를 가는 사례도 있었다. 해당 순사는 가축을 멋대로 총살하거나 주민들을 이유 없이 구타하고, 심지어 밤중에 민가에 침입해 성폭력까지 저질렀다고 한다. 어처구니없게도 지역 경찰은 "경관은 신이니 노여워 말라." 같은 협박을 하며 제대로 된 보상조차 해주지 않았다고(...).[16] 그렇다고 해서 당시 일본 본토의 보통경찰 경관들이 자국민들에게 친절했던 건 아니다. 이 문서의 내용과 같이 무사 출신자들을 경시청에 대거 특채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공격적인 자세와 선민의식이 경찰에 그대로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일본 경찰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이런 악습은 100년 이상이 지난 아직까지도 청산되지 못해 현재도 시민들에게 무례하게 반말을 하는 경찰관들이 꽤 있다고 한다.[17] 드라마를 통해 한국에도 익히 알려진 미와 와사부로처럼 현지인 수준의 의사소통 능력을 가진 자들도 있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소수였다.[18] 길을 걷다 우편마차와 마주쳤는데 양보해 주지 않았다거나, 자기 집 대문 앞 청소를 미흡하게 했다는 등.[19] 이후 그는 면직당했다는 설도 있고, 참수당했다고 기재된 도서도 있다. 그러나 그가 실존하는 인물인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는 상태.[20] 물론 작중의 윤 직원 영감과 같이 경찰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대중들은 많지 않았다. 그저 권력자인 관헌이 됐으니 축하해 줄 뿐.[21] 은행에 취직하거나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학력을 필요로 했다.[22] 조선인과 일본인의 인구 비율은 1:3에 달했지만, 1945년 기준 조선총독부의 경찰관 비율은 2:5였다.[23] 일제시대에 조선뿐만 아니라 일본 내지에서도 경찰 간부직은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한 행정관료가 총독부 경무국이나 도청 경찰부를 거쳐가는 코스였기 때문에 경찰관으로 입직한 자는 보통 순사부장, 잘하면 경부보가 진급 한계선이었다.[24] 조선인이니까 당연한 것이다. 조선인 관료도 만주로 파견나간 경우에는 가봉을 얹어 2배가 넘는 봉급을 받았다.[25] 자세한 내용은 논문 '조선출판경찰월보 에 나타난 문학작품 검열양상 연구' 및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공개한 조선출판경찰월보 원문 참조바람.[26] 일제강점기종로구에 사는 조선인들은 미와 와사부로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였다.[27] 실존 인물인지 아닌지는 알수 없는 인물이며 김두한 자서전에 등장하는 인물이다.[A] A B C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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