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프로야구선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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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야구선수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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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KPBPA)
일본프로야구선수회 (JPBPA)
미국프로야구선수협회 (MLBPA)



일본프로야구선수회
日本プロ野球選手会
Japan Professional Baseball Players Assoc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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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칭
JPBPA
설립연도
1980년 8월 15일 (43주년)
종류
노동조합
일반사단법인
회장
아이자와 츠바사(노동조합)
마루 요시히로(일반사단법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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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특징
3. 역사
3.1. 프로야구 재편 문제 관련 파업
4. 파업 이후
5. 역대 회장 및 이사장
5.1. 역대 노동조합 일본프로야구선수회장
5.2. 역대 일반사단법인 일본프로야구선수회 이사장
6. 현재 임원
7. 각 구단 선수회 임원
8.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일본프로야구에 소속된 프로야구 선수들이 회원으로 소속되어있는 단체.


2. 특징[편집]


2개의 법인이 등기되어있는 것이 특징으로, 노동조합 선수회와 사단법인 선수회로 구분되어있다. 다만 이는 명목상으로만 구분되어 있는 것이고 실질적으로는 동일한 조직이라 보는게 맞다.

노동조합 선수회는 선수의 대우 개선이나 지위 향상 등 선수의 권익을 위해 단결하여 단체 교섭을 실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사단법인 선수회는 야구 전체의 발전을 목표로 야구 교실 개최와 각종 자선 활동을 주로 시행한다.

노동조합 선수회의 경우,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 전국노동조합총연합, 전국노동조합연락협의회 중 어느 조직에도 소속되지 아니한 중립 노동조합으로 분류된다. 노동조합으로 인정받지 못한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와는 다르게 1985년 도쿄도 지방 노동 위원회에서 노동조합으로 인정을 받았다. 때문에 단체 교섭권한이 있고, 파업 또한 가능하다.[1]

이들 조직 외에는 각 구단별로 선수회가 존재하며, 각 구단별 선수회장은 프로야구 선수회 임원으로도 활동한다.


3. 역사[편집]


양대리그제로 개편되기 이전인 1946년부터 임의 단체로 일본야구선수회를 발족한 것이 시초이다. 이듬해인 1947년 선수 - 경영자 간의 대등한 대우를 약속받고 선수 인권 보장과 자유를 요구하는 헌장을 발표. 아울러 10년 선수 제도[2] 또한 이 시기에 도입되었으나 각 구단들의 반대로 인해 1975년을 끝으로 폐지되었다.

이후 한동안은 임의 단체로만 활동하다 1980년이 되어서야 사단법인으로 법인격을 취득했고 같은해 8월 15일에 사단법인 일본프로야구선수회가 설립된다. 노동조합 선수회는 1984년 노동조합법 외의 조직으로 선수회가 발족되었지만 이듬해인 1985년 11월 5일, 도쿄도 노동위원회로부터 노동조합으로 인정되고 같은달 19일에는 법인등기까지 마치며 마침내 노동조합 일본프로야구선수회가 발족된다. 12구단의 선수회 역시 산하 조합 조직이 되었지만 야쿠르트 스왈로즈 선수회는 모회사의 사정상 탈퇴되었다.[3] 야쿠르트 선수회는 4년 뒤인 1989년에야 선수회로 돌아오게 된다.

1992년에는 오래전부터 요구해오던 FA제도가 이 해의 일본시리즈 종료 후 시행하게 되었다.


3.1. 프로야구 재편 문제 관련 파업[편집]


2004년 6월 13일 당시 모회사의 경영난으로 구단 운영이 힘들어진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오릭스 블루웨이브와 합병하고자 하는 계획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합병 계획이 알려진 후 야구팬들과 노동조합 선수회는 강력하게 반발했다.

거기에 와타나베 츠네오를 중심으로 일부 구단들의 오너들이 10개 구단 단일리그 체제로 재편하고자 하는 계획까지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고,[4] 결국 선수회 측에서 먼저 움직임을 보였다. 후루타 아츠야 당시 선수회 회장은 경영진들과의 대화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이것을 계기로 합병 반대 여론은 더욱 더 거세졌다. 킨테츠 선수회는 7월 16일 합병 반대 서명 운동을 벌였고 8월 12일에는 노동조합 선수회는 내부 투표를 통해 파업권을 확립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킨테츠와 오릭스를 제외하고 열린 9월 8일 오너 회의에서 불참 의사를 밝히고 기권한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제외한 나머지 9구단이 합병에 찬성하면서 결국 오릭스가 킨테츠를 흡수하는 형태로 합병되는 것이 확정되었다. 사실 경영난에 빠진 구단이 구단 경영을 포기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다른 기업에 매각되는 형태가 아닌 타 구단과의 흡수 합병이라는 결과가 나왔다는 점에서 킨테츠-오릭스 합병은 수많은 야구인들과 팬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합병이 결정된 이후 선수회 측에서는 NPB 측과 9월 9~10일의 2일간 협상을 벌였고 킨테츠와 오릭스의 합병을 1년간 동결, 가맹료 철폐 및 보증금 제도 도입 등의 조건으로 잠정 합의를 보고 11~12일에 예정되었던 파업은 일단 실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9월 16~17일에 다시 진행된 협상에서는 선수회가 요구한 합병 동결안과 라이브도어, 라쿠텐으로 부터 신청된 2005시즌 가맹 등의 여러 제시안들을 주장했으나 돌아오는 답변은 "합병 동결은 없다." "가맹 신청 심사 기간이 오래 걸린다"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양 측은 본래 17일 오후 5시까지였던 협상 시간을 2시간 더 연장하면서까지 합의점을 찾고자 했으나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그날 밤 선수회는 9월 18~19일에 파업을 실행할 것을 발표. 9월 18, 19일 2일간 파업이 진행되면서 이날 예정되었던 1, 2군 경기는 모두 중단되었다.

파업 이후 9월 22~23일, 3번째 협상이 진행되었고 협상 2일차인 23일에 아래와 같은 합의안이 최종적으로 나오게 되면서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프로야구 재편 문제는 일단락 되었다.

1. 일본야구기구는 2005년에 양대리그 12구단체제로 운영 할 것을 시야에 두고 신규 참가 팀의 참가 심사를 실시한다.

2. 1안에 대해서 심사 소위원회를 설치해 1개월 정도를 목표로 답신에 자문한다.

3. 가맹료(신규 60억엔, 양도 30억엔)를 폐지하고 보관 보증금 제도를 도입한다.

4. 소위원회의 심사 과정을 투명하게 한다.

5. 2005년도에 신규 구단의 참가가 인정되면 NPB는 원활히 실시 될 수 있도록 적극 협력한다.

6. 선수 분배 드래프트를 실시 할 때 신규 구단의 참가를 인정하고 전력을 균형있게 맞출 수 있도록 협력한다.[5]


7. 조직과 선수회 사이에 프로야구 구조 개혁 협의회(가칭)을 신설한다.


이 사건이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유일했던 파업인 일명 공백의 2일(空白の2日) 사태였다.

4. 파업 이후[편집]


2004시즌에 중단된 2경기는 추후에 진행되지 않고 그대로 시즌이 종료되었다. 그리고 2005년부터 양 리그 간의 교류전을 실시하는 것에 정식으로 승인이 떨어졌고, 팀당 36경기를(홈/원정 3경기씩) 치르는 것으로 정해졌다.

2012년, 사단법인 선수회가 일반사단법인으로 이행되는 것이 인정되었다.

2022년, 오랜 협의 끝에 MLB룰5 드래프트, KBO 리그2차 드래프트와 비슷한 개념의 현역 드래프트를 도입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12월 9일에 시행될 예정. 또한 마이너 FA(가칭) 도입과 관련한 논의도 시행될 예정이다. 한창 기량을 꽃피워야 할 나이에 이런저런 사정으로 1군에서 제대로 된 기회를 받지 못하는 중견급 선수들에게 현역 드래프트와는 다른 새로운 활로를 열어주고 본래의 의도를 벗어나 악용되고 있는 육성계약[6]을 바로잡기 위해 새로운 선수 이동 제도를 도입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5. 역대 회장 및 이사장[편집]



5.1. 역대 노동조합 일본프로야구선수회장[편집]


대수
이름
구단
재임기간
1대
나카하타 키요시
요미우리 자이언츠
1985~1989
2대
하라 타츠노리
요미우리 자이언츠
1989~1992
3대
오카다 아키노부
한신 타이거스
1992~1995
4대
쇼다 코조
히로시마 도요 카프
1995~1998
5대
후루타 아츠야
야쿠르트 스왈로즈
1998~2005
6대
미야모토 신야
야쿠르트 스왈로즈
2005~2008
7대
아라이 타카히로
한신 타이거스
2008~2012
8대
시마 모토히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012~2017
9대
스미타니 긴지로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7]
2017~2021
10대
아이자와 츠바사
히로시마 도요 카프
2021~


5.2. 역대 일반사단법인 일본프로야구선수회 이사장[편집]


대수
이름
구단
재임기간
1대
야스무라 카즈오[8]

1980~1985
2대
오치아이 히로미츠[9]
롯데 오리온즈
1985~1987
3대
이시게 히로미치
세이부 라이온즈
1987~1989
4대
오카다 아키노부
한신 타이거스
1989~1992
5대
오카자키 카오루
요미우리 자이언츠
1992~1993
6대
츠지 하츠히코
세이부 라이온즈
1993~1995
7대
이토 아키미츠
야쿠르트 스왈로즈
1995~1998
8대
카와이 마사히로
요미우리 자이언츠
1998~2001
9대
타츠나미 카즈요시
주니치 드래곤즈
2001~2005
10대
코쿠보 히로키
요미우리 자이언츠[10]
2005~2009
11대
이바타 히로카즈
주니치 드래곤즈
2009~2013
12대
히가시데 아키히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
2013~2015
13대
오오시마 요헤이
주니치 드래곤즈
2015~2019
14대
마츠다 노부히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19~2021
15대
마루 요시히로
요미우리 자이언츠
2021~

6. 현재 임원[편집]



일반사단법인 일본프로야구선수회 임원
이사장
마루 요시히로(요미우리)
전무 이사
아이자와 츠바사(히로시마)
상무 이사
마스다 나오야(치바 롯데)
스가노 토모유키(요미우리)
모리 타다히토(선수회 사무국)
이사
스기모토 유타로(오릭스)
이마미야 켄타(소프트뱅크)
타카하시 코나(세이부)
노리모토 타카히로(라쿠텐)
마츠모토 고(닛폰햄)
오가와 야스히로(야쿠르트)
이마나가 쇼타(DeNA)
치카모토 코지(한신)
오오세라 다이치(히로시마)
야나기 유야(주니치)

마츠세 코키(메이지대학 명예 교수)
츠지무라 히데오(산토리 생명과학 재단)
감사
쇼지 스에미츠(공인회계사)
마츠모토 타이스케(변호사)


7. 각 구단 선수회 임원[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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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별 선수회는 선수회장과 부회장, 회계 및 서기로 임원진이 구성되어 있는것이 일반적이다. 단 아래 문단의 표처럼 모든 구단이 이러한 양식을 따르지는 않는다.

이 중 선수회장은 노동조합 및 일반사단법인 선수회의 임원도 겸할 뿐더러 구단 선수회의 대표로써 선수회 내부의 뜻을 취합해 목소리를 내는 꽤나 영향력이 있는 자리로 주로 팀 내의 중견급 선수들이 역임한다.

선수단의 대표이고 영향력이 있는 자리다보니 "주장=선수회장" 이라고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일본프로야구의 선수회장은 주장과 엄연히 다른 직책이다. 굳이 선출하지 않아도 되는 주장과 달리 선수회장은 12구단 산하에 존재하는 선수회를 이끌어야 하므로 반드시 선출되어야 하며 상술했듯이 구단 선수회의 대표자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주 역할이다. 이에 반해 주장은 경기 내적으로 선수단을 아우르고 다독이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렇다보니 주장과 선수회장은 겸직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주장이 부회장을 비롯한 다른 직책을 맡는 것과 선수회장과 서로 협력하는 활동 정도는 할 수 있으며 주장을 선발하지 않는 구단에 한해서는 선수회장이 주장의 역할을 겸한다.

7.1. 센트럴 리그[편집]







2023년 주니치 드래곤즈 선수회 임원
회장
야나기 유야
부회장
후지시마 켄토
회계
시미즈 타츠야
서기
군지 유야


7.2. 퍼시픽 리그[편집]









8.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5 02:33:42에 나무위키 일본프로야구선수회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그렇다고 NPB와 구단이 선수들을 노동자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개인사업자로 인식하고 있지만 단체 교섭을 실시하면 교섭에 응해주고는 있다.[2] 10시즌 이상 현역으로 뛴 선수들에게 원클럽맨이냐 아니냐에 따라 A, B급으로 나눠 자유계약(A급 한정), 재계약금 수령, 은퇴시합, 트레이드 거부 권리를 준 제도. 현 FA와는 달리 자격 재취득이 3년 후에 가능했다.[3] 이 당시 야쿠르트 본사는 노동조합이 없었고 때문에 선수회 노조는 도의적인 이유로 인정되지 않았기에 선수회의 일원이 되지 못했다.[4] 2004년의 퍼시픽리그는 비단 킨테츠의 합병만이 문제가 아니었을 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다.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는 모기업 다이에의 경영난으로 구단 운영까지 휘청거리고 있었고, 세이부 라이온즈는 모기업 세이부 철도분식회계 사건으로 츠츠미 요시아키 회장이 법적 구속이 되는 등 위기를 맞고 있었으며 치바 롯데 마린즈는 하도 인기가 없어서 타구단 추가 합병설이 나올 시 합병대상 1순위로 꼽히고 있었다.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도 야심차게 홋카이도연고이전한 첫 해라 그런지 관중몰이가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으며 그나마 킨테츠를 떠안을 정도의 여력이 된 오릭스 블루웨이브는 3년 연속 최하위를 자랑하는 독보적인 최약체로 악명 높았을 만큼 어느 한 구단도 조용할 날이 없이 계속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오죽했으면 다이에와 롯데의 합병안까지 나왔을 정도.[5] 그러나 이 조항은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는데, 합병의 주체 구단인 오릭스 버팔로즈가 먼저 보호선수 명단에서 킨테츠 측 25명을, 기존 오릭스 측 20명을 지명하는 형태로 진행되었기 때문. 결국 라쿠텐은 오릭스가 그나마 있던 좋은 선수들을 쓸어간 탓에 남아있는 2군급 선수들만 데려갈 수 밖에 없었다.[6] 지배하 선수 다수를 육성계약으로 빼돌려 육성 선수로 대량 전환하는 행위. 이렇게 되면 지배하 선수 명단에 여유가 생기게 되고 그 자리를 외부 영입 등으로 채워놓게 되면 전력 불균형이 심화 될 수 있다. 설령 영입한 선수가 부진하면 육성으로 빼돌렸던 선수를 다시 지배하 선수로 복귀시키면 그만이다. 최근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이런식으로 11명의 선수를 육성선수로 빼돌렸는데 미야모토 신야가 이를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7] 재임기간 중인 2018시즌 종료 후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적.[8] 1920년생의 법조인 출신 이사장.[9] 퇴임 이후인 1992년 선수회를 탈퇴했다.[10] 재임 도중 2007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이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