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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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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대 통치[편집]
신이 일본을 통치하던 때를 말한다.
2. 역대 천황[편집]
일본의 역대 천황들. 이름 뒤의 별표(*)는 여성을 의미하며, 남북조 시대의 덴노들 중 대수가 회색인 덴노는 정통을 의미한다. 또한 각 문서의 제목이 현행 일본어 표기법을 따르지 않은 표기일 경우, 올바른 표기를 괄호 안에 병기하였다.
3. 계보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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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인의 비조. 여기서 '일본인의 비조'의 의미는 덴노 가를 비롯한 일본의 유력 인물들과 왕공가(王公家)의 수많은 귀족들이 모두 '인간으로서의 비조(鼻祖)'를 진무 덴노로 칭한다는 의미이며, 국조와는 다르다.[2] 1대 결사팔대[3] 2대 결사팔대[4] 3대 결사팔대[5] 4대 결사팔대[6] 5대 결사팔대[7] 6대 결사팔대[8] 7대 결사팔대[9] 8대 결사팔대[10]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함[11] 실체가 인정되지 않은 가공인물. 이주갑인상 문서 참고[12] 야마토 정권 수립 [13] 현재 덴노가의 직계 조상설(3왕조 교체설)[14] 고훈 시대 종막[15] 아스카 시대 개막[16] 소가-모노노베 종교전쟁[17] 일본 역사상 유일하게 암살당한 덴노. 물론 이 외에도 암살설이나 타살설이 도는 덴노는 제법 있지만, 사료에서 명확하게 암살된 덴노는 이 사람이 유일하다.[18] 최초의 여성 군주. 덴무 덴노 이후 덴노로 추존. 쇼토쿠 태자 섭정[19] 최초의 비 소가계(비타츠계) 덴노. 조메이의 아버지인 오시사카히코히토노오오에는 민달의 장자이면서 왕위계승이 좌절된 왕자였다. 그러나 조메이가 즉위하고 그의 아들인 덴지, 덴무 덴노가 훗날에 즉위가 성사된 이후, 잠시 덴무계 황통으로 흘러가다가 49대 코닌 덴노 이후에는 덴지계로 계통이 환원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오늘날 일본 덴노가의 실질적인 시조인 셈이다.[20] 37대 사이메이 덴노와 동일인물[21] 다이카 개신으로 율령체제 완비[22] 35대 고교쿠 덴노와 동일인물
백제 멸망, 백강 전투 참전[23] 왕자 시절 을사의 변과 다이카 개신 주도[24] 국호를 일본으로 확정
본격적으로 왕에서 덴노로 호칭을 격상하여 사용
덴노의 중앙집권 체제 구축
일본서기 편찬
하쿠호 시대 개막[25] 나라의 후지와라쿄로 천도[26] 하쿠호 시대 종언
나라의 헤이죠쿄로 천도
고사기 편찬[27] 교토의 쿠니쿄,
오사카의 나니와쿄,
시가(일본)의 시가라키노미야로 일시 천도[28] 48대 쇼토쿠 덴노와 동일인물[29] 46대 코켄 덴노와 동일인물[30] 교토의 헤이안쿄로 천도
헤이안 시대 개막[31] 후지와라 셋칸정치의 시작[32] '이야사다'라고 읽기도 한다.[33] 인세이 권력화[34] 인세이 통치로 덴노 권력 붕괴[35] 사무라이 본격적인 활동
겐페이 시대 개막[36] 인세이 통치
타이라노 키요모리 집권 [37] 단노우라 전투 패전으로 바다에 투신
삼종신기 소실[38] 가마쿠라 막부 수립 [39] 인세이 통치 [40] 조쿄의 난[41] 제1차 몽골 침입 [42] 제2차 몽골 침입 [43] 가마쿠라 막부 해체
겐무 신정
무로마치 막부 수립
남북조시대 개막
남조의 1대 덴노 [44] 본래 義良이었으나 개명하였다. 남조의 2대 덴노 [45] 남조의 3대 덴노 [46] 남조의 4대 덴노 [47] 고다이고 덴노의 복귀[48] 본래 마스히토(益仁)였으나 개명하였다.[49] 일시적 군주 부재[50] 1382년 북조의 덴노로 취임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51] 1392년에 북조의 덴노로서 남북조 통일 [52] 본래 躬仁으로 표기했으나 개명하였다.[53] 전국시대 개막[54] 무로마치 막부 해체
오다 노부나가의 천하평정[55] 가즈히토(和仁)에서 개명하였다.[56] 도요토미 히데요시 관백에 취임
전국시대 종식
조선 침공
에도 막부 수립[57] 859년 만의 여성 덴노[58] 모로히토(師仁)였으나 개명하였다.[59] 에도 막부 종식, 대정봉환 거행[60] 엄밀히 말해 헤이세이는 연호(元号)일 뿐이고, 현재의 덴노인 아키히토(明仁)의 이름은 아니다. 다만 메이지 이후로는 한명의 덴노의 재위기간에는 하나의 연호만 쓰도록 하는 일세일원(一世一元) 제도가 확립되었으므로, 아키히토가 사망하면 관례에 따라 헤이세이 덴노라는 시호(諡号)가 붙여질 것이다.[61] 26대 케이타이 덴노의 4대조[62] 지토 덴노 사이에서 오카노미야 덴노를 낳음.[63] 덴무 덴노 사이에서 오카노미야 덴노를 낳음.[64] 겐메이 덴노 사이에서 겐쇼 덴노, 몬무 덴노를 낳음.
백제 멸망, 백강 전투 참전[23] 왕자 시절 을사의 변과 다이카 개신 주도[24] 국호를 일본으로 확정
본격적으로 왕에서 덴노로 호칭을 격상하여 사용
덴노의 중앙집권 체제 구축
일본서기 편찬
하쿠호 시대 개막[25] 나라의 후지와라쿄로 천도[26] 하쿠호 시대 종언
나라의 헤이죠쿄로 천도
고사기 편찬[27] 교토의 쿠니쿄,
오사카의 나니와쿄,
시가(일본)의 시가라키노미야로 일시 천도[28] 48대 쇼토쿠 덴노와 동일인물[29] 46대 코켄 덴노와 동일인물[30] 교토의 헤이안쿄로 천도
헤이안 시대 개막[31] 후지와라 셋칸정치의 시작[32] '이야사다'라고 읽기도 한다.[33] 인세이 권력화[34] 인세이 통치로 덴노 권력 붕괴[35] 사무라이 본격적인 활동
겐페이 시대 개막[36] 인세이 통치
타이라노 키요모리 집권 [37] 단노우라 전투 패전으로 바다에 투신
삼종신기 소실[38] 가마쿠라 막부 수립 [39] 인세이 통치 [40] 조쿄의 난[41] 제1차 몽골 침입 [42] 제2차 몽골 침입 [43] 가마쿠라 막부 해체
겐무 신정
무로마치 막부 수립
남북조시대 개막
남조의 1대 덴노 [44] 본래 義良이었으나 개명하였다. 남조의 2대 덴노 [45] 남조의 3대 덴노 [46] 남조의 4대 덴노 [47] 고다이고 덴노의 복귀[48] 본래 마스히토(益仁)였으나 개명하였다.[49] 일시적 군주 부재[50] 1382년 북조의 덴노로 취임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51] 1392년에 북조의 덴노로서 남북조 통일 [52] 본래 躬仁으로 표기했으나 개명하였다.[53] 전국시대 개막[54] 무로마치 막부 해체
오다 노부나가의 천하평정[55] 가즈히토(和仁)에서 개명하였다.[56] 도요토미 히데요시 관백에 취임
전국시대 종식
조선 침공
에도 막부 수립[57] 859년 만의 여성 덴노[58] 모로히토(師仁)였으나 개명하였다.[59] 에도 막부 종식, 대정봉환 거행[60] 엄밀히 말해 헤이세이는 연호(元号)일 뿐이고, 현재의 덴노인 아키히토(明仁)의 이름은 아니다. 다만 메이지 이후로는 한명의 덴노의 재위기간에는 하나의 연호만 쓰도록 하는 일세일원(一世一元) 제도가 확립되었으므로, 아키히토가 사망하면 관례에 따라 헤이세이 덴노라는 시호(諡号)가 붙여질 것이다.[61] 26대 케이타이 덴노의 4대조[62] 지토 덴노 사이에서 오카노미야 덴노를 낳음.[63] 덴무 덴노 사이에서 오카노미야 덴노를 낳음.[64] 겐메이 덴노 사이에서 겐쇼 덴노, 몬무 덴노를 낳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