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성 이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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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제7대 국왕
逸聖 尼師今 | 일성 이사금

파일:일성왕릉.jpg
일성왕릉 전경.
출생
(음력)

44년(?)
사로국 서라벌
사망
(음력)

154년 2월 (향년 110세?)
사로국 서라벌
능묘
일성왕릉
재위기간
(음력)

신라의 태자
연대 미상 ~ 57년 10월
제7대 이사금
134년 8월 ~ 154년 2월 (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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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밀양 박씨

일성(逸聖)
부모
부왕 유리 이사금
모후 이리생부인
형제자매
이복 동생 파사 이사금
왕후
왕후 박씨[1]
자녀
왕자 박토원, 박아달라
왕호
일성 이사금(逸聖 尼師今)


1. 개요
2. 아버지는 누구?
3. 생애
5. 《삼국사기》 기록
6. 같이보기



1. 개요[편집]


신라의 제7대 군주. 칭호는 이사금.

어머니는 일지 갈문왕의 딸 이리생부인이며, 왕비는 지소례왕의 딸이다.


2. 아버지는 누구?[편집]


삼국사기》에서는 유리 이사금(제3대)의 장남 또는 일지(日知) 갈문왕의 아들[1]이라고 했고, 《삼국유사》에서는 유리 이사금의 형 또는 지마 이사금(제6대)의 아들이라고 했다.

한편 148년(일성 이사금 15년)에 박아도갈문왕으로 봉한 사실을 근거로 박아도가 일성 이사금의 아버지라는 주장도 존재한다. 역사학계에서는 박아도가 유리 이사금의 아들이며, 일성 이사금의 아버지일 가능성을 높게 보는데 군주가 되지 못한 아버지를 갈문왕으로 봉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성 이사금이 박아도의 아들이라면 즉위한지 15년이나 지나서야 아버지를 갈문왕으로 삼은 것이 문제가 된다. 게다가 박아도가 파사 이사금의 손자라는 내용이 《삼국사기》에 있는 것도 문제다. 사실 파사 이사금(제5대)부터가 유리 이사금의 차남 또는 조카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이상해진다.

가족 관계에 대해 혼란스럽게 설명하고 있는 것은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의심하게 하는 단서 중 하나가 되고 있으며 해석에 대해서도 각종 학설이 쏟아지고 있다. 사실 《삼국유사》까지 가져와 가족 관계를 따져보면 언뜻 보기에 어느 기록이 맞는지 알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여럿 있는데 기록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 오늘날에 대두되는 학설이다. 《족보》를 따지느냐, 씨족을 따지느냐에 의한 차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설에도 허점이 있고, 실질적으로 당시 신라인들이 대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지금으로서는 알기 힘들다. 성골진골을 나누는 기준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훨씬 앞 시대인 이때는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일성 이사금과 파사 이사금 둘 다 유리 이사금의 아들이라는 것이 맞다고 가정하고서 《삼국사기》 기록을 보더라도 조금 이상하다. 일성 이사금이 , 파사 이사금이 동생인데 동생이 먼저 즉위했으며, 즉위한 것은 서기 80년이었다. 이후 조카지마 이사금을 한 번 거쳐 일성 이사금이 군주가 된다. 동생이 왕위에 오른지 54년만에 형, 아버지가 사망한 지 77년만에 장남이 왕위에 오른 것이다. 이후 왕위에 올라 20년을 다스린다. 이쯤 되면 일성 이사금의 나이를 역으로 계산해 볼 수 있는데 파사 이사금의 기록에 따르면 형보다 현명하여 왕위에 올랐다고 하니 더 똑똑한지 아닌지 알려면 그래도 최소한 8세 이상은 되었으리라 추정된다. 그렇다면 형은 서기 80년에 최소 9세 이상. 그렇다면 왕위에 오를 때는 최소 63세가 된다. 이후 20년 동안 더 살았으니 《삼국사기》 기록을 믿는다면 최소 80세 이상은 살았다는 말이 되며, 너무 최소에 맞춰 타이트하게 계산하지 않고 좀 더 현실성 있게 되려면 90세 이상 장수했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유리 이사금의 아들이 확실하다면 아버지 유리 이사금이 죽은 해에 일성 이사금이 태어났다고 해도 최소 97세 이상을 살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이것도 타이트하게 계산한 것이니 실제로는 100세를 넘겼다는 말이 된다. 이런 비현실적인 수명은 《삼국사기》 초기 기록에서 고구려태조대왕, 명림답부, 차대왕, 신대왕 등 다양한 곳에서 나타난다.[2] 다만 위에 나온 기록 중 형보다 현명하다는 기록은 표면상의 이유고 다른 정치적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3. 생애[편집]


군주가 됐을 때 나이가 많았을 가능성이 높지만 즉위 이전의 행적은 기록이 남은 것이 별로 없다.

134년 즉위 직후 다른 군주들처럼 시조묘(나정)에 제사를 지내고, 죄수들을 사면한 뒤에 138년 금성(金城)에 국가 중대사를 회의하는 장소인 정사당(政事堂)을 설치했다. 144년에는 모든 주군(州郡)에 제방(堤防)을 수축하고, 전야(田野)를 넓게 개간하도록 명했으며, 백성들이 금•은•주옥(金•銀•珠玉)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당시 금•은과 주옥의 사용이 진한풍습이라고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혹자는 당시 귀속된 동호오환족의 고유 풍습이었다고 보기도 한다. 기록에는 오환족의 풍습 중 금•은•주옥을 사용하는 것이 있다고 되어 있다. 146년에는 파사 이사금 때 항복했던 압독국(押督 :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시)이 모반하자 군사를 보내어 평정하고, 주민들은 다시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남쪽 지방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148년에는 박아도를 봉하여 갈문왕에 삼았다.

지마 이사금과 마찬가지로 재위 중에 여러 번 북방 말갈족의 침입을 받아서 그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기도 했는데, 약 세 차례(137년 1번, 139년 2번)의 침입이 있었다. 138년 10월 군주가 친히 북쪽 영토를 순행하고 태백산에 들러 하늘에 제를 올리기도 했으며, 140년 2월 말갈을 막기 위해 장령 고개에 목책을 세우기도 했다. 말갈이 자꾸 쳐들어오자 142년 7월에는 아예 예방전쟁격으로 선제 공격해서 뿌리를 뽑자고[3] 대신들을 불러 주장하기도 했지만 이찬 웅선이 반대해서 그냥 그만뒀다. 다만 이 말갈은 훗날 여진족, 만주족으로 이어지는 퉁구스계 부족이 아니라, 실제로는 지금의 강원도 지역에 분포하던 동예 계통 집단으로 추정되고 있다. 위말갈 문서 참조.

지마 이사금과 마찬가지로 재위 기간 내내 천재지변이 잦았다. 145년, 남쪽 지방의 가뭄이 특히 심각했는지 타 지역에서 식량을 급히 옮겨 굶주리는 백성들을 구제했다.

재위 21년인 154년, 승하했다. 그의 아들이 일성 이사금의 뒤를 이어 즉위하니 신라 초기의 마지막 박씨 군주인 아달라 이사금이다.


4. 일성왕릉[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일성왕릉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경상북도 경주시 탑동 산23번지 소재. 대한민국의 사적 제173호.

5. 《삼국사기》 기록[편집]


삼국사기(三國史紀)

[ 본기(本紀) ]
1권 「신라 1권 (新羅 一)」
2권 「신라 2권 (新羅 二)」
박혁거세 · 박남해 · 박유리 · 석탈해 · 박파사 · 박지마 · 박일성
박아달라 · 석벌휴 · 석내해 · 석조분 · 석첨해 · 김미추 · 석유례 · 석기림 · 석흘해
3권 「신라 3권 (新羅 三)」
4권 「신라 4권 (新羅 四)」
5권 「신라 5권 (新羅 五)」
김내물 · 김실성 · 김눌지 · 김자비 · 김소지
김지대로 · 김원종 · 김삼맥종 · 김사륜 · 김백정
김덕만 · 김승만 · 김춘추
6-7권 「신라 6-7권 (新羅 六-七)」
8권 「신라 8권 (新羅 八)」
9권 「신라 9권 (新羅 九)」
김법민
김정명 · 김이홍 · 김융기
김승경 · 김헌영 · 김건영 · 김양상
10권 「신라 10권 (新羅 十)」
11권 「신라 11권 (新羅 十一)」
김경신 · 김준옹 · 김청명 · 김언승 · 김수종 · 김제융 · 김명 · 김우징
김경응 · 김의정 · 김응렴 · 김정 · 김황 · 김만
12권 「신라 12권 (新羅 十二)」
13권 「고구려 1권 (高句麗 一)」
14권 「고구려 2권 (高句麗 二)」
김요 · 박경휘 · 박승영 · 박위응 · 김부
고주몽 · 고유리
고무휼 · 고색주 · 고해우
15권 「고구려 3권 (高句麗 三)」
16권 「고구려 4권 (高句麗 四)」
17권 「고구려 5권 (高句麗 五)」
고궁 · 고수성
고백고 · 고남무 · 고연우
고우위거 · 고연불 · 고약로 · 고상부 · 고을불
18권 「고구려 6권 (高句麗 六)」
19권 「고구려 7권 (高句麗 七)」
20권 「고구려 8권 (高句麗 八)」
고사유 · 고구부 · 고이련 · 고담덕 · 고거련
고나운 · 고흥안 · 고보연 · 고평성 · 고양성
고원 · 고건무
21-22권 「고구려 9-10권 (高句麗 九-十)」
23권 「백제 1권 (百濟 一)」
고장
부여온조 · 부여다루 · 부여기루 · 부여개루 · 부여초고
24권 「백제 2권 (百濟 二)」
부여구수 · 부여사반 · 부여고이 · 부여책계 · 부여분서 · 부여비류 · 부여계 · 부여구 · 부여수 · 부여침류
25권 「백제 3권 (百濟 三)」
부여진사 · 부여아신 · 부여전지 · 부여구이신 · 부여비유 · 부여경사
26권 「백제 4권 (百濟 四)」
27권 「백제 5권 (百濟 五)」
28권 「백제 6권 (百濟 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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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 · 최치원 · 설총 · 최승우 · 최원위 · 김대문
47권 「열전 7권」
해론 · 소나 · 취도 · 눌최 · 설계두 · 김영윤 · 관창 · 김흠운 · 열기 · 비녕자 · 죽죽 · 필부 · 계백
48권 「열전 8권」
향덕 · 성각 · 실혜 · 물계자 · 백결선생 · 검군 · 김생 · 솔거 · 지은 · 설씨 · 도미 · 필부
49권 「열전 9권」
50권 「열전 10권」
창조리 · 연개소문
궁예 · 견훤




《삼국사기》 <일성 이사금 본기>
一年秋八月 일성 이사금이 즉위하다
一年秋九月 사면을 하다
二年春一月 시조 묘에 제사지내다
三年春一月 웅선을 이찬으로 근종을 일길찬으로 임명하다
四年春二月 말갈이 장령을 공격하다
五年春二月 금성에 정사당을 설치하다
五年秋七月 알천 서쪽에서 사열하다
五年冬十月 북쪽으로 순행해 태백산에 제사지내다
六年秋七月 서리가 콩을 해치다
六年秋八月 말갈이 장령을 습격하다
六年冬十月 말갈이 침입했다가 퇴각하다
七年春二月 장령에 목책을 세우다
八年秋九月 일식이 일어나다
九年秋七月 말갈을 정벌하려다 중지하다
十年春二月 궁실을 수리하다
十年夏六月 화성이 토성을 침범하다
十年冬十一月 천둥이 치다
十一年春二月 제방 수리와 전야 개척을 명하고 민간의 금은주옥 사용을 금하다
十二年 기근이 들자 진휼을 베풀다
十三年冬十月 압독의 반란을 토벌하다
十四年秋七月 장수가 될 만한 자를 추천하도록 하다
十五年 박아도를 갈문왕으로 삼다
十六年春一月 득훈을 사찬으로 삼고 선충을 나마로 삼다
十六年秋八月 살별이 천시에 나타나다
十六年冬十一月 천둥이 치고 전염병이 돌다
十七年夏四月 여름에 비가 오지 않다
十八年春二月 대선을 이찬으로 삼다
十八年春三月 우박이 내리다
二十年冬十月 궁궐 문이 불타고 혜성이 나타나다
二十一年春二月 왕이 죽다

신라 시조 박혁거세를 시작으로 일성 이사금까지가 《삼국사기》 1권이다.


6. 같이보기[편집]


[1] 유리 이사금의 장인이라고 하므로 이에 따르면 박일성은 박일지의 외손자가 된다.[2]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장수왕의 경우, 97세까지 살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여러 사서와 교차 검증도 되고 현실에서도 장수한 축에 속하는 나이라 사실일 가능성이 100%이다.[3] 고려시대조선시대 초기에 수시로 여진족을 공격해 한반도로 못 쳐들어오게 약화시켜 놓았던 것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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