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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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임비(林庇)는 고려의 무신이다. 충렬왕원나라까지 호종한 공[1]으로 보좌공신에 책록되었다. 그리고 나주 임씨의 원조[2]로 비정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2. 생애[편집]


고려 원종장군으로서 충렬왕원나라에 입조할 때 호위하였다. 1269년 당시 무신정권 집권자였던 임연은 친몽주의 강화 노선으로 전환을 꾀하고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환도를 원하던 원종을 퇴위시키곤 태상왕으로 삼고 안경공 창을 추대한다. 원나라에서 귀국을 준비하던 왕태자는 이 소식을 쿠빌라이 칸에게 전하고 연경에 머무르다가, 제국대장공주와 혼인까지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무신정권이 최종적으로 종식되고, 격랑 속에서 당시 왕태자를 호종하였던 공로를 인정받아 1282년에 보좌공신 2등에 책록된다.

1289년 충청도지휘사(忠淸道指揮使)가 되어 원나라 개주(盖州)[3]로 정해진 군량을 기한 내에 수송하지 못한 책임을 물어 파직된다. 당시 임비는 사재시 판사를 겸임하고 있었는데, 사재시는 고려의 어물 조달을 관리하던 관청이었다. 정3품에 해당하는 관직으로, 종3품인 대장군이었던 임비가 해당 직책을 맡았다면 행수제에 의해 수판사재시사라는 직함으로 활동했을 것이다. 즉 품계를 올릴 겨를은 되지 않지만 원나라로 충렬왕을 호종하던 과정에서 지형지물을 어느 정도 파악한 임비에게 군량 수송 임무를 맡기고자 품계보다 높은 자리를 주었는데, 정동행성 설치 등 여몽연합군의 일본 정벌을 추진하던 계획에 차질이 생기면서 결국 자의로든 타의로든 파직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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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에는 왕태자였다.[2] 遠祖, 즉 먼 조상으로 보다 윗대의 조상들이 있으나 특정할 수 없어 임비를 원조로 삼는다고 나주 임씨는 밝히고 있다.[3] 지금의 랴오닝성 가이저우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