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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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배우.
견미리의 첫 번째 남편이었으며, 이유비, 이다인의 생부이다.# [1]
1980년대 MBC 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에서 연산군[2] 역을 맡는 등 잘나가던 탤런트였고, 애초에 엄청난 부잣집에서 태어나 물려받은 재산도 어마어마했으나, 사업 실패[3] 및 지나치게 화려한 생활로 알거지가 되었다.[4] 미국에서 초호화 저택에 외제차 구입과 파티 등 방탕한 생활을 하며 2년 반 만에 165억 원의 재산을 날렸다고 한다.[5]기사.
드라마 조연출을 폭행해서 당시 촬영중이던 조선왕조 오백년 4부 <풍란>이 중단될뻔한 소동이 있었으며, 꾸준히 사건사고로 사회면을 장식하고 있다. 현재 전과 9범으로 알려져 있다.
2020년 3월 방송에 출연해 교회 청소 일을 하며 지낸다고 밝혔다. 기사
2020년 9월부터 덕성여대 평생교육원 교수[6] 로 재직하였으나 또다시 사고를 치면서 사직했다.
2. 논란 및 사건 사고[편집]
여러 구설에 오르고 있다.
- 1996년에는 가짜약 판매 사기 사건 18명 중 한 명[7] 으로 약식기소되어 벌금형을 선고받았으며, #[8]
- 같은 해 연말에는 카페에서 술을 마신 뒤 종업원을 성폭행하려다 상처를 입힌 것이 걸리면서 또 구속되었다. #
- 이후 조용히 잘 사나 싶었지만, 2003년에는 술값을 내지 않아 사기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
- 이어 2007년에도 술값을 내지 않아 체포되었고, 얼마 안 가서 폭행사건에 연루되면서 또 구설수에 올랐으며, #
- 같은 해 12월에도 또 폭행사건을 일으켰고, 이후 잠적해 숨어 지내다가 다음 해 5월에 붙잡혔다. #
- 그런데 2개월 후에는 이번엔 택시 기사를 폭행하여 또 체포되었다. #
- 2010년에는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 다른 손님과 시비가 붙어 가게 기물을 파손하는 등 난동을 피웠다. #
- 이후 방송 활동을 재개하여 활동을 재시작하지만 2013년에도 나이트클럽에서 술값을 내지 않아 사기 혐의로 체포되었으나 무혐의로 풀렸다. #
- 그러나 2014년에는 택시비를 내지 않은 혐의(무임승차 혐의)로 즉결심판을 받았으며, #
-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술집에서 소동을 피우다 입건되었으며, # 결국 집행유예를 선고받기에 이르렀다. #
- 2015년 8월, 그의 신고로 보이스피싱 인출책을 붙잡았다고 한다.기사. 또한 임영규는 간만에 선행을 한 대가로 포상금 5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이 때 많은 대중들은 이 일을 계기로 개과천선해서 제대로 된 인생을 살 것이라고 기대를 했지만...
- 임영규가 위의 선행을 한 뒤 2년 후 2017년 5월 17일에 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면서기사 여전히 막장 인생을 살고 있음을 인증했다.
3.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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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A B 전처 견미리 소생[1] 본인은 방송에서 여러차례 자녀를 보고싶다고 언급했으나, 딸들은 일절 언급 안하는걸 봐서는 사실상 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사실 임영규의 행적들을 보면 딸들에게 대놓고 무시당해도 입이 열개라도 할말없는 처지이긴 하다.[2] 어찌보면, 삶이 배역 그 자체[3] 근데 아직 은퇴할 나이도 아니었기에 외국에 계속 거주하려면 사업을 해야하므로 사업 실패는 사실상 정해진 거나 다름 없었다. 차라리 유지 비용이 적은 곳으로 갔으면 또 모를까.[4] 현재도 무지막지하게 집값이 비싼 산타 모니카에 집을 얻었는데, 방 16개짜리 대저택이었다고 한다. 매주 천만원 이상씩 나가는 파티 생활에 도박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모두 없어질 돈이었다.[5] 사실 본인이 충실하게 회사에 집중했다면 어느정도 사치를 했다 하더라도 망하지 않고 버틸수도 있었을 상황인데 신경안쓰고 직원에게 맡기고 놀러 다닌게 문제였다. 게다가 직원이 회사를 말아먹었음에도 사무실도 비싼데로 이전해서 번듯하게 만들고 다른 투자를 더 하자는 말에 수십억을 밀어넣은거 보면 이미 호구잡고 돈을 빼돌렸던걸로 보인다.[6] 당연하지만 정식 대학 교수는 아니다.[7] 이 중에서는 송해, 배삼룡, 유퉁, 남철, 남성남, 한무, 트위스트 김 등 전설급의 연예인도 있었다.[8] 파장이 너무 커서 대부분 연류되어있는 모든 사람들 모두 방송정지가 될 정도였다. 본인도 1995년 SBS 장희빈을 끝으로 배우생활을 은퇴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