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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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前 롯데 자이언츠, 삼성 라이온즈, 한화 이글스, 두산 베어스, LG 트윈스의 외야수. 그리고 前 갤럭시아SM의 야구사업국 국장. 現 좋은스포츠 사업본부장.
별명은 타신(타격의 신), 수달(수비의 달인),[9]
우승 경험은 2002년(삼성), 준우승 경험은 1999년(롯데), 2005년, 2013년(이상 두산). 전성기와 선수생활의 상당 기간을 두산 베어스에서 보냈기 때문인지 두산맨이라는 이미지가 꽤 강한 편인데, 의외로 저니맨이기도 하다. 2014년 한국프로야구 2차 드래프트를 통해 LG로 이적하면서 총 5개의 구단에서 선수생활을 하게 되었다. 공교롭게도 데뷔 후부터 부산광역시 연고의 롯데 자이언츠에서 데뷔하다가, 대구 연고의 삼성 라이온즈, 대전 연고의 한화 이글스, 서울 연고의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로 옮기면서 경부선을 거슬러 올라가며 선수 생활을 하다가 2015년 롯데 자이언츠에 복귀하면서 다시 경부선을 타고 친정팀으로 귀향가게 되었다.
2015년까지 현역 선수 중 유일하게 롯데 자이언츠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경기에 출전했던 선수이다. 롯데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진출이 1999년이었고 그 때 임재철이 신인이었다. 경기는 삼성쪽으로 기울고에 링크된 99년 플레이오프 7차전 영상에서 그의 신인 시절 모습 볼 수 있다....
그러나 2015년 시즌 이후 은퇴하면서 롯데의 마지막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은 선수들은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2. 선수 경력[편집]
3. 플레이 스타일[편집]
수달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외야 수비는 KBO 전체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한다. 2013년 LG와의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보여준 결정적인 보살 장면에서 볼 수 있듯이 강하면서도 정확한 송구 능력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도 뛰어난 것은 바로 타구판단 능력이다. 빠른 발에 다이빙캐치를 자유자재로 해내는 정수빈과 비견될 정도의 수비력을 가졌었는데, 임재철은 타격과 거의 동시에 반응하여 낙구 지점으로 달려가서 안정감 있는 수비를 해내기 때문. 나이가 든 후로는 예전처럼 운동능력을 활용한 수비가 어려워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코너 외야수로는 최고 수준의 수비력을 자랑했다. 실제로 21세기에 활약한 외야수 중 임재철보다 확실하게 송구능력이 좋다고 할 수 있는 외야수는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주루도 좋아 10도루 이상은 충분히 가능한 수준이었고, 나이가 들고 나서도 대주자로 자주 나왔다.
공격력도 나쁜 편이 아니다. 오히려 백업 외야수로 쓰기에는 사치다 싶을 정도로 좋은 편이다. 두산 이적 후 매시즌 2할 후반대의 타율을 기록할 정도로 컨택 능력이 준수하고 출루율로 대변되는 선구안은 나이가 들수록 좋아졌다. 거포는 아니지만 나름 갭 파워도 갖추고 있다. 과거에는 좌투수 킬러 이미지도 있어서 상대 투수에 따라 플래툰 선발요원이나 대타로도 많이 활용되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매우 건실한 백업 외야수로 뒤에서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해주는 선수. 또한 같은 팀 선수들을 잘 챙기고 리더십이 있어 후배들을 이끄는 역할도 맡는다.
4. 응원가[편집]
두산 베어스 시절 응원가는 한 때 비틀즈의 Let It Be를 개사하여 사용하기도 하였으나, 2009년 시즌부터 개신교의 복음 성가 '내게 강 같은 평화'를 개사하여 "두산 임~ 재~ 철~ 안타!"로 시작되는 가사로 사용되는데, 이 응원가는 다른 타자들의 경우처럼 두산 베어스의 응원단장이 만든 것이 아니라 그의 딸이 그를 위해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오래 못 쓰였다. 두산 베어스의 팬페이지인 '곰들의 대화'에서 왜 찬송가를 쓰냐며 항의했기 때문.[10]
그 후 타석에 서면 "나의 사랑 너의 사랑 임재~철! 불꽃 사랑 임재~철!"이라는 구호를 외쳤었다. 때문에 임재철은 응원가가 딱히 없으나 현재는 오히려 그것이 임재철의 아이덴티티가 되었다.
현역 마지막 해였던 롯데 자이언츠 2기 시절에는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를 개사한 응원가를 사용하였다.
5. 스포츠 에이전트의 길로[편집]
지도자 연수도 생각했던 그는 매니지먼트 업체인 갤럭시아SM으로부터 매니지먼트 제안을 받았고, 그에게 경기장 밖에서 야구를 보는 눈을 키우는 게 좋은 경험이라고 언급한 김선우와 진갑용의 권유에 따라 갤럭시아SM에 입사하게 됐다. 직책은 야구 사업국 국장.
이후 소식이 없다가 2016년 9월 6일 잠실에서 열린 LG-넥센 경기에서 갤럭시아 SM 소속의 손연재와 같은 테이블석에 앉으며 오랜만에 얼굴을 비췄고 이후 2017 KBO 신인왕 시상식때 이정후의 어머니 옆에 서있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2018년 10월 부터 좋은스포츠 사업본부장을 맡는다. # 에이전트 일 말고도 야구 레슨장 일도 겸업하고 있다.
6. 연도별 성적[편집]
7. 여담[편집]
- 쾌활하고 넉살 좋은 성격이어서 선수단 사이에 인망이 높다. 특히 후배들 챙기는 면에 있어서는 알아주는데, 임재철이 뛰었던 지방 구단에서 이적한 선수들은 거처를 구하기 전에 일단 임재철의 집에서 신세를 지고 본다. 특히 최준석은 롯데에서 이적했을 때 임재철의 신혼집에서 지냈을 정도였다. 조규수와 김창훈이 이대수와의 트레이드로 두산 베어스에 이적하자 아니나다를까 임재철의 집에 임시로 짐을 풀었다. 이범호도 일본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임재철의 집에 묵기도 했다.
- 부인은 대전시립무용단에서 무용을 전공한 바 있다. #
- 2012년 8월 8일 둘째 아이로 아들이 태어났다. 태명은 축복이.
- 저니맨으로서, 김혜연의 노래 제목 그대로 서울특별시(두산, LG)-대전광역시(한화)-대구광역시(삼성)-부산광역시(롯데)를 전부 찍었다. 단 순서는 역순. 결국 역순으로 돈 끝에 친정팀 롯데로 귀환했다.
즉 경부선 저니맨새마을호 타고 올라가서 KTX 타고 내려온 셈[11]
- 고향팀인 롯데빠들은 정작 임재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2015 시즌을 시작하기 전에 장원준의 보상선수를 롯데 자이언츠에서 고심하고 있었는데, 이 때 감독으로 부임한 이종운이 그에게 전화를 해서 추천받은 것이 바로 정재훈이었기 때문이다. # 둘은 사이좋게(?) 2015시즌에 부진했고,[12] 거기다 하필 이 때 보상선수로 풀린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혔던 것이 두산 외야의 미래를 책임질 재목인 박건우였다. 이때 당시 두산 2군에서 이미 실력이 완성된 박건우는 두산에서도 2015시즌 후반기부터 콜업되어 국가대표급 활약을 펼치기 시작했으므로 팜 육성능력이 부족한 롯데가 데려갔더라도 그의 포텐셜이 폭발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 협살당하는 상황에서 토스되는 공을 떨구기 위해 헬멧을 위로 던진 적이 있다.
8. 관련 문서[편집]
[1] 1995학번[2] 오~ 오오오오~ 나의 사랑 너의 사랑 임재철! 오~ 오오오오~ 불꽃사랑 임채철!(×2)[3] 두산 임재철 안타~ 두산 임재철 안타~ 두산 임재철 안타날려라 날려버려~ (×2)[4] ΝС 다이노스에서 뛰었던 조평호의 응원가와 원곡이 같다. 이 노래는 꽤 호평받았지만 정작 조평호는...[5] 임재철! LG의 임재철~ 강철 어깨 임재철~ 오오오오~ LG 강철어깨~ (×2) 임재철~[6] 前 한화 이글스의 전현태, 이성열 응원가와 같다.[7] 롯데의~ 임재철~ 롯데의~ 임재철~ 안타 안타~ 오오오 오오~ 롯데의~ 임재철(전체 2번 반복)[8] 추후 오현근이 이 응원가를 쓴다.[9] 수달같이 생겨서 수달인 줄 아는 사람들도 많다...[10] 찬송가도 사실 잘만 찾고 잘만 개사하면 신나게 할 수 있다.[11] 재미있게도, 두산에 들어가기 전 까지는 KTX가 개통하지 않던 시기였다가(2004년 4월에 KTX가 개통했으니 임재철은 개통 2개월 후에 두산으로 보내졌다), 부산에 내려올 때는 KTX가 이미 2단계 구간까지 개통되어 있었다.[12] 정재훈은 이적 1년만에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친정팀 두산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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