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위주 교육/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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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교육과정의 질적저하 문제
2.1. 학자가 되기 적절하지 않은 교육
2.1.1. 대학 교수 스스로의 잘못
2.1.2. 취업 위주 교육에 대한 비판
2.1.2.1. 흥미에 대한 고려 부족
2.1.2.2. 흥미있는 분야에 양질의 일자리 부족
2.2. 고용주가 보기에 적절하지 않은 교육
2.3. 바람직한 시민의식을 키우기 적절하지 않은 교육
2.3.1. 비판적 사고력과 저항력의 약화
2.4. 성인기의 사회적응에 적절하지 않은 교육
3. 정부에서 대학/학과 정원의 수요-공급 매칭 실패
4. 학교 진로지도의 부족
4.1. 사회의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함
4.2. 적성과 소질, 흥미에 맞는 진로를 지도하지 않음
4.2.1. 전공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전공을 골라야 함
4.3. 고등교육을 필요로 하지 않는 진로에 대한 지도의 부족
5. 대입전형의 불공정성 문제
5.1.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절차적 공정성 부족
5.2. 수시입학전형의 절차적 불공정성
6. 기타 문제점
6.1. 부모들의 거짓말
6.2. 충분한 실력이 있는데도 간판이 없으면 무시당하는 경우가 생김
6.3. 부모 경제력의 지나친 영향
7. 평가방법의 문제
7.1. 상대평가의 잔인함
7.2. 절대평가의 교육 붕괴
7.3. 적성검사의 잔인함 vs. 성실성을 보는 평가의 노오력 강조
7.4. 시기별로 비중이 부적절한 평가
7.4.1. 들어갈 때 평가
7.4.2. 중간 및 종결 평가
7.5. 정량평가의 무의미함 + 정성평가의 불공정
7.5.1. 키워야 할 능력과는 무관한 평가
7.5.2. 뽑아야 할 사람을 뽑는 데 실패하는 경우
7.5.3. 정성평가의 불공정성
7.6. 획일적인 평가
8. 공부량과 성적의 상관관계
8.1. '적성과 소질'의 차이
8.2. 수면 부족
8.3. 취미를 즐기지 못하게 강요함
8.4. 가정내 갈등과 대화단절
8.6. 운동 부족
8.7. 단위시간당 학습량의 비효율성



1. 개요[편집]


한편 학교와 아버지, 그리고 몇몇 선생님들의 야비한 명예심이 연약한 어린 생명을 무참히 짓밟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왜 그는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소년 시절에 매일 밤늦게까지 공부를 해야만 했는가? 왜 그는 토끼를 빼앗기고 라틴어 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과 멀어졌는가? 왜 낚시하러 가거나 시내를 구경하는 것조차 금지됐는가? 왜 심신을 피곤하게 만드는 하찮은 명예심을 부추겨 저속하고 공허한 이상을 심어주었는가? 왜 시험이 끝난 뒤에도 당연히 누려야 할 휴식조차 허락하지 않았는가? 이제 지칠대로 지친 이 노새는 아무 쓸모도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 헤르만 헤세수레바퀴 아래서에서.


입시위주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다룬 문서.

2. 교육과정의 질적저하 문제[편집]


이거 시험에 나온다. 외워.


학교,학원의 커리큘럼 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현행 공교육과정은 학교라는 공간내에서 서열놀이와 정치질로 내부투쟁을 벌여서 학생들이 자신의 불만을 표출하지 못하게 하고, 바깥에서 보기에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게 목표가 된 수준이다.

커리큘럼이 시대에 뒤처지거나, 그것을 활용하는 심화,응용과정 없이 그대로 잊히는, 시험 답안에 기록하고 나면 잊히는 일회용 지식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나마도 지식 이외에 한국인의 생활에 필요한 경험과 지혜 같은 영역은 아예 배제해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 시대 대한민국의 50대 이하 세대는, 고3 수능를 마치고 졸업하는 순간, 길어야 1년 안에 공교육 12년동안 배워온 지식과 정보중 95% 이상을 자발적으로 잊어버리며, 성인으로 살아남기 위한 지식을 배우는데 다시 학원이라는 기관에 들어가 12년동안 했던 짓을 고대로 반복하며 그 자리에 가면 외워놓은 것 다시 잊고 또 다시 반복하는 정답 덮어쓰기의 반복된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얼마나 바보같은 전력낭비인가?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올바른 교육과정을 채택해야 한다. 그런 교육과정은 개인이 적응할 수 있는 유용한 지식과 정보를 제공해주며 사회를 살아나가는데 기본적인 지식을 제공해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교육과정이 올바른 교육과정인가?

교육과정의 질 부족을 지적할 때는 다양한 기준이 등장한다. 사교육 기관이나 학부모들이 지적할 때는 '시험에 맞지 않는 교육'일 것이고, 대학 교수가 지적할 때는 '장차 대학원생, 학자로서 맞지 않는 교육', 취업에 관심을 가진 대학생, 취준생, 기업 현직자가 지적할 때는 '신입사원으로서 맞지 않는 교육'일 것이다. 학자가 볼 때는 '신입사원으로서 적합한 교육'은 저질의 쓰레기고 기업인이 볼 때는 '학자가 되기 적합한 교육'은 빈둥대며 놀고 있는 것으로 보일 만큼 서로 관점이 다르다. 이 때문에 관점에 따라 문단을 나누어 설명한다.

이 '관점' 문제를 잘 해결한 것이 유럽의 대학 교육이다. 학자가 되기 위한 University, 취업을 위한 University of applied science이 어느 정도 갈려 있다. 프랑스의 경우에도 고등사범학교 계열 그랑제꼴을 갈 때는 학자가 되기 위해 가는 것이고, HEC 같은 상경계 그랑제꼴에 갈 때는 졸업 후 취직을 목표로 가는 것이다.

2.1. 학자가 되기 적절하지 않은 교육[편집]


'' 만 15세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수학·읽기·과학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수준이었고 고등교육 이수율도 세계 톱10에 든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고등학생일 때까지만이다. 그 훌륭한 인재들이 사회로 나오면 다 어디로 갔는지 잘 보이지 않는다. 목표의식 없이 입시에 맞춘 교육을 따라가다 보니 도전정신은 사라지고 주어진 일에 충실한 '샐러리맨'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김용 (세계은행 총재 및 前 다트머스 대학교 총장)#


이 관점에 따르면, 대학 교수들이 한국의 교육과정을 볼 때는 아주 개탄한다.

대학은 학문을 연구하는 곳이며 신성한 학문의 중심지여야 한다는 것이 본질이다. 각 전공 학문의 발전 역시 선진국만큼 빨라야 한다. 이를 나타내는 지표는 세계 대학 순위에서 한국 대학이 높은 순위에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수한 논문이 많이 나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 전공에 능력있는 인재가 계속 충원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수한 학생들이 취업 잘 되는 전공만 찾지 말고 대학원에도 많이 와야 하며 대학원을 졸업한 뒤 산업계나 해외 연구기관이 아니라 한국 연구기관에 남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석박사 과정의 보수가 높아야 하며 연구자의 취업도 잘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가 투자를 해 줘야 한다. 산업계와 가까운 전공 (상경계, 전화기)만 우대받는 것이 아니라, 산업계에서 거리가 먼 분야 역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교수들은 고등지식 전수에 힘을 쏟아야 한다. 반대로 학생들은 창의성, 비판적 사고, 응용력을 키워야 한다. 이 관점에서, 대학에서 연구한 성과와 기업에서 연구한 성과는 상호 발전에 영향을 끼친다. 어느 한 쪽이 수준이 낮으면 다른 쪽의 발전에도 악영향을 준다. 오해하기 쉬운 것은 대학이 지식과 관점에 있어서는 그 사회 안에서 가장 앞서갈 수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인데, 사실 그렇다면 대학을 선호하는 것은 중산층이 아니라 상류층이 되어야 하지만 상류층에게 대학은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것이다.

2.1.1. 대학 교수 스스로의 잘못[편집]


교수는 단순히 연구만 하는 연구원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은 교수의 연구 성과는 유심히 살펴봐도 그 교수가 학생들을 이끌고 가르칠 만한 능력이 있는지는 안중에도 없다.

또한 이것이 지잡대에 국한 된 이야기도 아니다.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는 말이 있다. 상위권 학교일 수록 해당 학문에서 뛰어난 업적을 가지거나 관련 분야의 지식이 많은 교수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겠지만, 가르친다는 건 교수자의 지식만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수준을 고려하여 적절한 수준의 내용을 잘 전달하고, 시험 치면 까먹는 벼락치기가 아닌 진정한 지식이 되도록 하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2.1.2. 취업 위주 교육에 대한 비판[편집]


이 관점에 따르면, '고용주가 보기에 직장인으로서 적절한' 교육이라는 것은 정규 학교 교육으로서는 매우 부적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7년 IMF 이후의 대학은 대졸자 청년실업이 심각해지면서 직업학원/직업훈련소/직업인 양성소로 전락하고 말았다. 취업 중심, 취업률 100% 내지 공무원 사관학교 따위의 광고 슬로건이 내걸리고 있다. 학생들은 취업 잘 되는 전공을 택하고 기타 학문을 전공하기 싫어하며, 취업 안 되는 전공에는 대학원 진학에 관심있는 학생이 아니라 간판만 따러 온 학생들이 오게 되었다. 대학원을 졸업한다 해도 해외취업이나 취업을 하고 싶어하지 국내 연구기관에 남고 싶어하지 않는다. 세계 대학 순위나 한국 학자들의 활약 역시 선진국에 비해 낮은 편이다. 공부 내용 역시 학문을 공부하여 대학원에 가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취업 스펙을 쌓는 데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관점에서, 오늘날의 대학은 기업의 관점에 너무 부합하려고 들면서 커리큘럼을 개편하는 등 신자유주의적 대학 개혁을 하는 것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공교육이 애초에 대학을 강제로 하기 때문에 자연스레 대학이 사회적 성공의 명분과 취업전문 학교로 변질한다는 문제는 이 관점에서 큰 문제이다.

'사회의 수요' 를 바탕으로 전공을 선택하도록 학부모/교사가 요구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지도 문제다. 어떤 사람들은 '근무시간이 짧고 돈을 많이 벌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으며 오랫동안 해고당하지 않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근무시간이 길더라도, 위험하더라도, 수입이 적고 쉽게 해고당하더라도, 사람들로부터 멸시받더라도, 기타 단점이 있더라도 '자신이 좋아하거나 사회에 큰 기여를 하는' 직업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이런 사람들 입장에서는 학생들이 '좋아하는' 공부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대학으로 갈 수 있도록 지도되는 것이 아니라 '이름도 있고 돈도 된다는' 계열로 '점수에 맞춰서' 대학에 들어가도록 유도한다는 점은 큰 문제로 간주된다. 분명 일찍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아서 원하는 학과에 지원하게 되는 학생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그렇게 되기까지 시류를 거스르는 강한 의지를 다져와야 했거나, 그들이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열린 시야로 기다려주는 부모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지 현 입시교육 시스템이 그들의 의지에 도움을 주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기에게 완벽하게 맞는 전공을 미리 알고 체계적으로 준비해서 갔다 해도 막상 그 분야가 취직하는데 쓸모가 없다면 또 문제가 된다. 특히 이런 문제는 자연과학 분야와 인문학 분야에서 자주 나타나는데, 취업을 한다고 치면 일반적으로는 기업체나 공무원을 떠올리는데 이 쪽은 당장 실무에 투입 가능한 인재를 원하므로 아무래도 이과라면 공학과 통계학, 문과라면 경영학이나 사회과학을 전공한 사람을 원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문학이나 자연과학은 저런 실용 학문과는 달리 세상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 인류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 분명 필요하기는 하나, 막상 개인의 취직 문제를 감안하면 답이 없다. 애초에 뽑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취직을 하는가? 그나마 교직이수를 통해서 교사가 되면 다행이고[1], 대학원에 진학해서 교수가 되는 것도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망했어요

게다가 박사과정까지는 시간은 오래 걸리는데 돈은 못 버는 안습한 처지이다. 집에 워낙 재산이 많아서 별 문제가 없으면 모를까, 일반적인 가정에서 저런 진로를 꿈꾸기는 어렵다. 더욱이 이런 분야의 학생들은 진정 꿈이 있어서 왔다기보다는 점수 맞춰서 온 경우가 꽤 흔하고, 결국에는 공무원 준비하러 가거나 남들처럼 스펙 쌓으러 간다.

이런 진로 문제에 대한 학자 입장에서의 해결책은 취업이 잘 되지 않는 순수학문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지원을 해 주는 것인데, 안 그래도 일자리 문제, 경제성장 문제, 재정적자 문제 등 돈 나갈 곳이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대학에 지원을 한다면 빠르게 많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이공계 위주로 진행되지, 산업과 관계 적은 분야에 대해 관심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연간 '전문직이라 불리기도 하는 12개 직업 1.2만명, 공공기관 1.8만명, 30대 그룹 대기업 연 12.6만명, 공무원 2.5만명, 장기복무 직업군인 연간 약 3천명, 사립학교 교직원 연간 약 3천명, 금융권 연간 약 1.3만명 정도 선발하므로 연 20만명만이 이런 직업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이 쿼터 중 상당수는 생산직, 영업직, 비정규직 등 대졸층이 원하지 않는 일자리까지 포함하고 있기에, '양질의 일자리'는 연 12만명 정도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다. [2] 그 중에서도 문과에 30% 이과에 70% 정도가 분포하고 있기에, 문과 40만명 중 4만명 정도만이 양질의 일자리를 가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가지고 싶다면, 그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 중에 매우 뛰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그 일자리를 얻고자 하는 노력을 매우 즐기면서 할 수 있어야 하고(흥미), 또 아주 잘 해야 하고(적성과 소질), 사회에서 그런 일자리를 많이 제공해주는 산업군에 있어야 한다 (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양질의 일자리' 이외의 일자리를 가지고 싶어하지 않는다. 따라서 청년실업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양질의 일자리에 취업이 잘 되는 학교와 학과의 정원은 제한적인데 많은 수험생들이 이런 제한적인 학과를 원하므로 경쟁이 치열해진다. 따라서 공부시간이 늘어나고 학교생활이 괴로워진다.

거기다가, '적성과 소질'을 도외시한 채 진로를 선택하면 (자격면허나 졸업장을 통해 취업이 보장되는 몇몇 전공을 제외한다면)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를 하면 학과가 취업률이 높은 곳이라도 양질의 일자리 취업에 실패한다.


2.1.2.1. 흥미에 대한 고려 부족[편집]

현재 있어서 가장 큰 문제중 하나가 대학 진학 직후 목표를 상실하고 방황하는 것이다.

막상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은 원하던 과에 들어왔지만 막상 어떤 공부를 해야 할 지 몰라서 방황한다. 이 상황에 학생들은 만족할 것을 강요받는다. 왜냐하면 '좋은 대학'에 들어감으로서 그들은 '좋은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을 것을 믿고 열심히 공부에만 집중해야지, 쓸데없는 것들에 신경쓰면 뒤쳐지기 때문이다.

결국 부모가 원하던 대로 회사에 들어갔다가 서른 넘어서 혹은 명예 퇴직 후에 자신이 사실은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기 위해 공부나 자기개발을 다시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화가가 된다거나 공예가가 된다거나, 기술을 익힌다거나 유독 한국에서 늦은 나이에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경우가 두드러진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해서 반드시 원하던 결과를 얻는다는 보장도 없다는 것이다.

수능 끝난 고3이나 대학 신입생들은 대학에 진학한 이후 목표를 상실하는 경우가 잦다. 18살(대학 입학 이후)이 되기전까진 자신의 적성이나 흥미, 관심분야 등에 대해 진지한 고민없이 그저 대학에 진학하는 것만을 지상 최대의 목표로 생각했던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학가는 것만 목표로 하고 배웠더니, 대학에 가서 뭘 할지 몰라서 우왕좌왕하는 것이다. 소위 "고등학교 때 미친 듯이 공부를 해서 대학에 가서 폐인이 된다."는 소리도 있을 정도다. 이는 우리나라만 그런 것도 아닌 것이, 일본에서도 도쿄대에 입학한 신입생들의 집단자살 사건도 있었다. 비슷한 현상으로 20대 중 후반에 찾아오는 제2 사춘기 현상이 있다. 남자들은 군대에서 병장 달고 나면 더욱 절실하게 느낀다.


2.1.2.2. 흥미있는 분야에 양질의 일자리 부족 [편집]

사회의 수요는 적은 분야에 대해 흥미를 지닌 학생들이 과다 공급되면서, 억지로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취업하려고 시도하면 열정 페이 계산법이라는 것이 나타나서 학생들이 큰 피해를 본다. 직종의 문제와 어두운 면을 기피하고 긍정적인 부분만 보며 업계 레전드나 만화 주인공처럼 재미있게 살고 노력하면 잘 풀린다는 발상을 가져보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이 때문에 업계의 환상이 깨져 혐오감만 가중된다. 설령 실력으로 레전드가 되어도 자신이 업체를 차려서 업계 자체를 바꾸어놓지 않는 한 업계의 병폐를 개선하긴 힘든 경우가 많다.

이런 사회에 적응하여 당분간은 균형을 찾을지 모르지만, 그 균형이 어디에서 이뤄질지는 장담하지 못한다. 참고로 경제학에서 사회의 균형이 꼭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정부 입장에서는 대기업 이외의 일자리를 양질의 일자리로 만들고 그 결과물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그나마 대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취업과 생존권과 관련해 대기업에 안들어가도 다른 블루칼라 직업의 연봉과 년도별 수익 통계를 통해 다른 직업도 먹고 사는데 지장없다는 정보를 널리 공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해당 직장의 안전불감증을 단속하여 '안전비용을 줄여서 수익을 내겠다'는 생각을 허황된 생각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고, 해당 직장의 강제 야근/조기출근/주말출근/휴일특근 등을 단속하여 '근로기준법을 어겨서 수익을 내겠다'는 생각도 허황된 생각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만일 그런 조치 없이 홍보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들면 안전, 근로시간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그 홍보는 거짓이 되고, 그러면 국민들은 그 홍보를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괜히 예산만 낭비한 꼴이 될 것이다.

반대로 일반 시민 입장에서는 현실 상황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정부가 알려주기 전에 인지하고 그에 맞는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2.2. 고용주가 보기에 적절하지 않은 교육[편집]


기업 현직자들이 한국의 교육과정을 볼 때면 아주 개탄한다. 그들의 관점에서 볼 때 학교에서 가르쳐야 할 단순한 지식인데 아무도 가르치지 않아 기업에 들어온 뒤 다시 가르쳐야 해서 교육비가 낭비되기 때문이다. 이들이 볼 때,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은 기업에 올 것이 아니라 교수들에게 가서 학자 되는 교육을 받으러 가야 할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경영학과 문서 참조.

이 관점에 따르면, 학자가 되기 위한 교육은 논문을 읽고 현업에 적용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고, 바람직한 시민을 키우기 위한 교육은 기업을 대상으로 사기치지 않을 정도면 충분하다.

이 관점을 따르지 않았을 때 생기는 참상에 대해서는 청년실업/원인 문서 참조바람.

2.2.1. 해외취업[편집]


박근혜 정부에서는 해외취업을 장려해서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한국 초중고를 나와서 한국 대학교를 졸업한 학생이 해외 유명 직장에서 요구하는 역량을 갖출 수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예를 들어 '유럽언어기준 C1 이상의 영어 구사능력 + 유명 대학에서의 이공계 학위 + 3년 경력', '유럽언어기준 C1 이상의 영어 구사능력 + 유명 외국계 기업에서의 3년 경력', '유럽언어기준 C2 최상위급의 영어 구사능력 + 세계 20위권 대학 상경계, 이공계 학위'라면 해외 취업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런데 그런 능력을 이미 갖추고 있는 사람은 한국에서도 취업이 잘 되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또한 이민, 지방에서 상경 등 자신들의 연고지를 떠나는 것으로 불안감보다는 흥분감이나 희열을 느낄 정도로 진취적이고 모험심이 강한 사람은 전체인구의 3%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과학적으로 보면 이런 사람들은 뇌에서의 도파민 분비가 남들보다 더 왕성하다고(!) 한다.) 따라서 능력이 되는 사람의 대다수는 떠날 이유가 없다.

그리고 그런 능력이 지금 현재 없는 사람들은 단기간에 그런 능력을 갖출 수 있는 게 아니기에 양질의 해외 일자리에 취업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 하고 워킹홀리데이 수준의 일자리에 머물고 만다. 물론, '해외취업해서 나라를 떠나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소망은 소망이고, 해외취업 역시 해외의 사용자들이 만족할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 입시의 목표가 위에서 말한 능력을 갖추는 것을 절대평가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돈이 있든 없든 (선행학습을 하든 말든) 공정하게 경쟁하는 상대평가가 목적이기 때문에 한국 입시 위주로 준비하면 저런 영어 회화 구사능력이나 직무 능력은 거의 갖추지 못한다. 따라서 해외취업으로 청년실업을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망상에 불과하다.

만약 정부가 대책을 세운다면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단계에서 10년간 배우면 해외취업이 가능하게 커리큘럼을 구성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평등한 교육에 반대되기에 쉽게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2.2.2. 제4차 산업혁명인공지능[편집]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해,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 사람들이 큰 곤경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가장 먼저 줄어들게 되는 직업은 생산직, 상하차, 택배, 운전, 상점 점원 등 고등교육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단순 반복형 작업들이다. 경리, 재무, 번역 같은 전형적 문과 직무들 역시 기계 번역의 발전으로 점점 기계와 해외에 빼앗기고 있다.

이런 시대에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종류의 일을 하는 사람이다. 기존 전화기에 덧붙여 통계학, 컴퓨터공학 등의 기반을 갖춘 사람에 대한 수요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3] 코딩, 미적분학, 선형대수학, 통계학이 점점 기본 교양에 가까워질 것이다. 이런 시대가 도래한다면 고등학교 수학도 쩔쩔매서 IT에 진입을 못 하는 사람들은 공무원 시험을 통한 구제로 극소수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잉여인간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2.3. 바람직한 시민의식을 키우기 적절하지 않은 교육[편집]


이 관점에 따르면, 바람직한 시민으로서의 최소한의 역량도 갖추지 못한 사람이 학자로서, 직장인으로서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다 한들 남에게 피해를 주는 이상 그 능력은 아무 쓸모 없는 것이다.

교육학에서는 교육을 '바람직한 인간 행동의 계획적 변화 정도'로 정의한다.[4] 전통적으로 한국에서는 지(知). 덕(德). 체(體)의 수양을 교육의 목표로 삼았으며, 구한말 교육입국조서에서 보듯이 이 세 부분의 성장을 목표로 학생을 이끄는 것이 교육이라고 여겼다. 어떤 표현을 쓰든 교육학에서는 학생 전체의 육체적, 정신적 성숙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인격을 성장시키기를 바라고 있다. 사회성, 창의성, 실무 능력 등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배우고 올바른 인성을 갖추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입시 위주 교육에서는 '사회성, 창의성, 실무 능력, 호기심(知), 인성(德), 건강(體)' 등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 해도 '국어, 영어, 수학, 사회/과학' 시험을 잘 치면 높은 성적을 받아 인기있는 자격/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사회성, 창의성, 호기심, 인성, 건강' 등은 시험과 무관한 능력이기 때문에 이런 능력을 갖추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이 자신의 부족한 점을 개선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런 능력을 시험 준비중인 사람이나 초중고 학생이 갖추려 하면 주위에서 '시간 낭비를 한다'면서 야단치거나 말리는 경우가 많다.

학생들이 과도하게 국영수탐만 판 결과 기술가정, 체육, 미술 등은 암기과목으로 치부해버리며 인문학 (철학, 논리학 등) 등 시험에 나오지 않은 다른 분야는 관심조차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입시위주 교육 문서들만 보아도 당장 눈앞에 닥친 많은 공부량 문제에 대해서 인식하고 불만을 표하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대다수이고, 그 문제를 사회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으며 그 안이 현실성이 있는지, 그 안을 시행했다가 망할 가능성은 없는지, 그런 문제에 대해 기존에 학자들이 어떤 대책을 내놓았는지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험에 나오지 않는 것은 '전문가의 일'이라는 태도가 시민의식의 형성을 가로막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대중은 정책의 방향성에 대해 아는 것이 없게 되어 이미지/얼굴/고향/정치인의 부모가 누군지 등 엉뚱한 기준을 가지고 투표한다. 그렇게 당선된 엉뚱한 정치인은 대중에게 멋있어 보이기만 하면 표를 얻기 위해 입시위주 교육에 대한 '쉽게 납득할 수 있는' 해결책을 내놓는다. 그리고 (당연히 예상되던) 역효과가 커져서 다들 아우성을 치면 그때서야 정책을 원상복귀한다. 그렇게 낭비된 사회적 비용이 점점 쌓이는 것이 도미노처럼 이어진다. 처음부터 정상적인 투표를 해서 신중한 정책을 내세웠다면 그 낭비될 뻔한 비용을 모아서 올바른 교육제도를 만들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투표 몇 주 전에 '투표를 잘 하자'고 마음먹는 게 시민의식을 가진 투표가 아니라, 어떤 정치인을 뽑는 것이 나와 국가에 장기적으로 이익이 될까를 오랫동안 고민해야만 투표를 정상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다.

시사상식, 시민의식, 정치의식, 저작권윤리, 성평등, 비판적인 수용/의견 제시, 명예훼손죄, 의사 표현의 자유, 등에 대해,

학교폭력, 데이트 폭력, 술 강요, 왕따, 왕따로 인한 아싸를 빙자한 은따 만들기, 똥군기에 기반한 전근대적인 선후배 관계, 친구를 이용/친구를 배신, 감정미숙에 의한 부적절한 감정표현, 소외계층 이해와 관심 부족, 게임중독,악플, 여론몰이, 물타기, 마녀사냥, 사생활 침해... 등의 행위를 하지 않도록 교육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상당수 청소년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거나, 언론의 부정적 보도 등의 영향으로 정치를 부정적으로만 인식하고, 정작 행사해야 할 시민의 권리를 귀찮은 것으로 여기며 참여하지 않는다. 정치의식이 정말 빈약한 수준인 것이다. '하는 일 없는 국회의원 100명으로 줄여버리자' 등 정치혐오가 판을 치는데 [5] 이를 예방하는 교육도 필요하다.

이 외에도 환경감수성 등을 키워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2.3.1. 비판적 사고력과 저항력의 약화[편집]


권위주의가 '누가 찍어눌러서 내 할 말을 못하게 되는 것'이라면, 비판적 사고력의 약화는 '아무도 찍어누르지 않아도 내 할말을 안 하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주체성 결여에 따른 판단력의 저하
대한민국 학생들에게 비판적 사고와 의문 제기, 다양한 방법 생각, 다른 관점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 등은 매우 생소하다. 오죽하면 좋은 대학 가고 싶으면 교과서 내용에 의구심 갖지말고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말도 있다.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사회적응 과정에서 스스로의 장래희망과 의사를 수없이 묵살당해왔다. 이에 따라 자발적인 주체의식이 점차 떨어지고 객관적인 자료나 실제사례를 통해서 이야기의 진실성을 판단하려 하지 않고 한번 들은 정보를 쉽게 맹신한다. 이 때문에 아는 지인이나 선생님, 커뮤니티나 집단의 이야기를 주체적 판단도 없이 믿거나 심하면 명문대에 들어가도 주변의 이야기와 달리 나아진 게 없자, 비관하면서 자살을 하는 등, 여러가지 심각한 문제를 낳게 되었다. 물론 졸업을 하게 되어도 상황은 마찬가지인 경우가 있다. 스스로 공부를 해 보고 새로운 지식을 찾으려 해 본 사람들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이것이 정말 믿을 만한 것인지를 꼼꼼히 확인하고 그것을 응용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시험 대비만 한 학생들은 이게 정말 옳은지 따위보다는 그냥 외우는 데 집중하기 때문에 잘못되었거나 편향된 지식에 휩싸일 우려가 매우 크다. 특히 이런 사람들이 잘못된 지식을 접해서 그걸 내재화해버리면 정말 막기 힘들어진다. 실제로 다각도로 생각해 볼 수도 있는 주제에 대해서도 '나는 교과서에서 ~~라고 배웠으니 그게 옳을 것이다' 식으로만 생각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아주 아주 많다.[6] 그나마 고등학교 때까지는 이런 방법이 크게 문제가 없지만, 대학생 쯤만 되어도 발목을 잡히기 쉽다. 다른 방법을 생각하도록, 의문을 갖도록 교육한 것이 아니라 그런 생각은 답을 구하는데 방해되니 무시하고, 시험에서 정답만을 정확하고 빠르게, 효율적으로 맞출 수 있게끔만 교육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사고보다는 획일적이고 효율적인 생각만 정답으로 추켜세우는 바람에, 다양하고 창의적인 생각과 해결책이 필요한 현대 사회에서, 비판적 의식 부족과 획일화된 사고방식은 여러 사회 문제를 방치하게 두고 말았다.[7] 성인이 된 후에도 주입식 교육의 폐단, '정답'과 '오답'의 이분법적 습성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비판'은 할 줄 알지만, '비판적 사고력'을 갖춘 비판은 할 수 없는 인간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한 의견을 맹종하는 것도 문제가 되고, 단순히 반대 의견으로 옮겨가 맹종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비아냥대는 것은 '비판적 사고력'을 지닌 것을 뜻하지 않는다. 어떤 사회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이것이 왜 문제가 되었으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자기가 알고 있는 정보에 오류는 없는지 등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비판적 사고력이 부족해서 자신이 접한 정보는 다 맞는 정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믿어버리고, 자기와 다른 의견은 무조건 틀린 의견으로 치부해 버린다. 세상에는 한 개의 정답이 존재하는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답이 없을 수도 있고, 정답이 여러 개일 수도 있다. 심지어 정답이 있는지 없는지 아직 모르는 문제들도 있다. 그러나 내 답이 정답이고 남의 생각은 틀렸다고 믿는 경우가 허다하고, 이러다 보니 사람들의 비판적 사고력이 떨어져서 선동에 쉽게 휘말릴 수 있다. 일베, 메갈리아, 안아키같은 헛소리와 왜곡이 가득한 곳들이 사회 문제가 될 정도로 영향력이 커진 데에는 이러한 비판적 사고력의 부재가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 인생의 목적이 말살된 획일화된 인간상
획일적인 인생 사이클을 강요하여 학생 당사자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여 결국 그 자신들이 스스로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인간으로 만들고 결국 그들의 삶의 목적이 목숨이 붙어 있으니까 붙어있는 목숨을 유지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결국 이 시스템에 반발하는 지극히 일부의 사람들[8]을 제외한 거의 전부의 사회 구성원들은 죄다 똑같은 인생을 살고 만다.

  • 불합리에 대해 반발하지 못하여 사회 부적응이 생김
탄압 환경에 의한 상황 판단력과 주체성 결여로 사회 부적응 현상이 매우 늘어났다. 이 때문에, 자그마한 갈등에도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거나 용기를 내면서 행동을 해도 오히려 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겪고 혼란이 가중되어, 사회적응 문제를 개선하려는 의지를 쉽게 거두고 사회를 기피하거나 혐오하는 등의 악순환도 생겼다. 이 때문에 사회성의 결여, 소통의 장애, 집단괴롭힘, 히키코모리 등이 되는 피해를 입는 학생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결국 여기서 설명하는 문제들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이런 시대상에 뒤쳐지고 뒤떨어지는 교육인 셈이다. 획일화되고 비판 능력을 상실한 사람이 된다. 불합리하거나 무언가 이상한 점이 있어도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고, 수동적이고 순응적인 사람들이 많다. 나라를 떠받칠 꿈나무들이 무조건 예스맨이 되어가고 있다. 주류에서 벗어난 생각, 답을 구하는데 방해되는 다른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할 필요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수능 개발자 박도순 1대 평가원장 "줄세우기는 비합리적, 비과학적" "다양성이 중요"

2.4. 성인기의 사회적응에 적절하지 않은 교육[편집]


이 관점에 따르면, 학자가 되는 데 필요한 교육이나 직업을 가지는 데 필요한 교육은 '일부에게만 유용하고 일부에게만 필요한 어려운 공부'에 불과해 쓸모가 없다. 바람직한 시민의식을 양성하는 교육 역시 내 권리조차 지키지 못하는 상태에서 추상적인 이야기만 가르치는 것이라 쓸모가 적다. 이런 공부는 자신의 삶 속에서 부딪히는 문제와 관련이 없기 때문에 수능만 끝나면 모두 잊어버리기 쉽다. 이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 개개인이 마주하게 될 성인으로서의 사회 적응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노동법을 가르치지 않는 건 이 관점에서 큰 문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직업을 가지고 노동자가 되는데, 학교에서 주휴수당에 대해 배우지 않기 때문에 자신에게 어떤 권리가 있는지 모르고 착취당한다. 또 착취 당했다 해도 어떻게 이의제기해야 할지, 어떻게 사전 녹음 후 신고해야 할 지 배우지 않기 때문에 자기 힘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이러다 보면 노동자들은 점점 착취당한다. 어떻게 노조 협상을 통해 기업에게서 노동 3권을 지키는지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 사회에서는 계약을 할 일이 많고 사기당할 일도 많은데 그런 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대학교 1학년생들이 대학가에 판치는 불법 토익 강의, 방문판매 학원 강의 계약서에 싸인했다가 몇십만원에 달하는 금액을 내라는 문자를 받는 것은 계약관계와 서명의 법적효력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 토론을 할 일이 많은데도 수행평가에서 토론이나 팀프로젝트를 거의 평가하지 않는다. 리더십, 팀워크, 조직행동론에 대해 교육해야 할 필요가 있다.
  • 성교육
  • 경제교육을 해 줄 필요가 있다. 도박, 보증, 사기꾼 등에 당하지 않게 해 주어야 한다.
  • 범죄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불이익을 불러오는지 잘 가르쳐서 비행청소년을 줄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뒤늦게 범죄자들의 실태를 깨닫고 후회한다.

3. 정부에서 대학/학과 정원의 수요-공급 매칭 실패[편집]


대졸의 경우, 1970년대부터 IMF 직전(1997)까지만 해도 취업이 잘 되었다. 1980년대까지는 대학의 정원 자체가 적었고,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경우도 흔했다. 여성의 경우에는 시집을 잘 가는 게 중요했지,굳이 대학에 갈 필요성은 느끼지도 못했던 시절이고, 남성들도 대학에 가지 않더라도 나름대로 일자리를 구할 수는 있었다. 1980년대 말부터 IMF 직전까지는 대학이 많아지면서 대졸자 비율은 늘긴 했지만, 경제의 성장으로 인한 일자리 수의 증가가 대학 정원의 수 증가보다 더 많았으므로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소위 명문대를 나오면 학점이 어지간히 낮아도 취직이 어렵지 않았고, 명문대가 아니더라도 잘 찾아보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IMF 이후로는 성장 자체가 둔화되면서 일자리는 줄어들고, 안정성이 중시되면서 선호하는 직업이 몇 가지로 한정된 데 비해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은 늘고, 스펙을 마련해야 한다는 개념이 생기면서 대학 입학은 기본적인 스펙 수준이 되어 버렸다. 그 결과 대졸자 수는 지나치게 많아졌는데 정작 그들이 선호하는 직업의 자릿수는 적다. 하지만 눈을 낮추려고 해도 '양질의 일자리'는 부족하고 열악한 일자리 [9]만 많은 상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자유 대학설립 정책이 간접적인 신호탄이 되어. 그 결과 아시아대학교 같은 부실대학이 만들어졌으며 그 외에도 쓸데없이 대학 정원만 늘어나던지, 유명무실하거나 중복된 학과가 개설되던지 하는 문제도 일어났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대학구조개혁평가를 통해 대학 정원을 줄여서 이런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요즘은 평생교육 제도가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정규 주간 4년제 대학의 정원을 줄인다 해도 사이버대, 야간대, 독학사 등을 통해 학위를 따면 그만이라 설득력이 없다.

정부에서는 대졸을 줄이고 고졸을 늘려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2004년 노무현 정부에서 전문계고특별전형의 대폭 확대가 있었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고, 2008년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는 대졸 인플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졸 특채를 늘려서 특성화고에 진학하는 비율을 높이려고 한다. 하지만 이를 악용한 고졸 학력위조 사건이 생기게 되었고, 그 문제가 아니더라도 고졸로 공공기관/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는 사람은 정부가 강제해서 생긴 일부에 불과하다. 나머지 사람들은 저질 일자리에 만족하지 못하고 어차피 대학에 진학해서 대졸 취업에 도전할 것인데 이는 올바른 해결이 아니다.

결국, 구성원들도 이를 인지하여 니트족저출산이 생기게 되었다. 정부에서는 출산 홍보 영상을 찍는 등 '홍보를 통한 의식 변화'를 통해 싸게 문제를 해결해보고 싶어하지만, 양질의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비숙련 구직자는 구직을 포기할 것이고 일자리를 얻었다 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을 것이다. 정부도 정책은 세우지만 강제력을 발휘하기 어려워 탁상행정에 그치고 있다.

정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홍보, 구성원의 인식 변화 촉구' 같은 짓을 하고 있을 게 아니라, 공급이 넘치는 전공의 정원을 줄이고, 불법적으로 부실하게 운영되는 부실대학을 폐교시킬 필요가 있다. 하지만 특정 학과의 정원을 줄일 경우 해당 학과의 교수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까봐 집단반발하기 때문에 그 실현은 쉽지 않다. 특히, '해당 학문의 교수가 줄어들면 국가경쟁력이 망한다'(?)는 이야기는 어느 학문을 줄이려고 들어도 나오는 이야기다.


4. 학교 진로지도의 부족[편집]




4.1. 사회의 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함[편집]


전술한대로 현재의 시험 제도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에도, 시험에 합격하여 얻게 되는 직위,권위가 사람을 복종하게 만들어 변화하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오히려 그 권위를 획득하려 드는 사람들로 인해 사회가 점점 구태의연하게 돌아가게 된다.

앨빈 토플러(2001)는 이와 같이 평하였다. 미래의 환경에 보다 잘 준비된 한국의 학생들은 프로그래밍, 수학, 혹은 과학분야에서 보다 많은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에 더하여 학생들이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비판적 지성을 활용할 방법을 배우는 것, 상징적 모델을 구현하고 조작할 방법을 배우는 것, 그들의 아이디어들을 소통할 방법을 배우는 것,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한 재학습방법들을 익히는 것 등이다. 고도로 경쟁적인 미래 경제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근로자들은 그들의 직무, 그들이 맺고 있는 관계, 그들이 생산하는 제품에 대해 혁신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학생들은 보다 다양한 정보와 지식, 보다 다양한 제품들과 서비스, 사람들, 기술들, 아이디어들, 그리고 기회들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학생들은 이에 대하여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학생이 어떤 일자리에 적성이 맞는 걸 깨달았는데 학부모가 반대할 때에 문제가 된다. 점수에 맞춰서 대학에 가고, 대학에 가서도 적성과 소질을 찾지 못하니까 자아실현의 욕구가 꺾여버리기 때문에 삶의 질이 높아지지 않아서 큰 문제가 된다.초, 중학교 때 적성과 소질을 알게 되고, 특성화고나 예고에 진학하면 좋지만 그런 덴 부모님이 반대하시는 게 문제지? 일반계 고등학교로 가서 적성과 소질을 알게 되면 문제가 된다. 일반계고 진학중이거나 졸업한 위키러는 알 것이다. 일반계 고등학교는 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곳이다. 적성에 맞지도 않는 공부를 하는 것도 괴로워 죽겠는데 담임한테 공부가 안 맞아서 다른 것을 배우겠다고 말해도 그냥 공부나 하라고 잔소리나 할뿐이고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하라고 격려해 주는 사람 한 명도 없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부모님과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도 각오해야 한다. 그러니 결국 포기하게 마련이다.


4.2. 적성과 소질, 흥미에 맞는 진로를 지도하지 않음[편집]


사람은 개인마다 성격이나 자질, 개성등이 각기 다르고 각기 자신이 이미 잘하거나 잘 해낼 수 있는 것이 재각기 다르다. 예컨데 누군가는 혼자 살펴보고, 사색하는 것을 즐기며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식물을 기르거나 심는 것에 특출나거나, 뭔가를 만지거나 조립하는 것에 뛰어나거나, 사람들과 흥정을 하고 수완하는데에 뛰어날 수 있다.

입시 신경썼지 제대로 된 진로교육이 되지 않는 점도 문제이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이 서울대학교에서 가장 비인기 학과에 갈 성적이 어찌어찌 되었다고 치면, 학교와 부모는 적성,전망 같은 거 신경쓰지 않고 본인들의 명예와 실리를 위해 무조건 서울대 등을 보내려 든다.[10][11]

일단 그렇게 해서 학생이 그 학과에 진학하면, 적성에 맞으면 다행이지만 아쉽게도 상당히 많은 경우 이런 학생들은 전공과 적성이 맞지 않아 엄청나게 고생하거나 방황한다. 그렇게 해서 반수나 전과를 통해 다른 학과로 옮기면 다행이지만, 반수나 전과도 쉽지 않고 비용도 만만찮다. 혹은 전공과 전혀 무관한 진로를 선택하든지.

하지만 전공과 무관할 만한 진로라면 대부분의 경우 남들도 다 할 만한 분야라 경쟁이 매우 심하거나, 공무원 시험, 혹은 자영업같이 애초에 비용이 많이 드는 일들 뿐이다. 아니면 사회에서 그다지 안 쳐 주는 궂은 일들.

더구나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학생들 중 대부분은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는데 이들 중 적지 않은 숫자가 당연하다는 듯이 떠밀려 들어왔다는 것이다.[12] 특성화고의 경우에는 인식이 시궁창(...)이라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와 관계없이 그냥 공부만 좀 되고 아예 밑바닥만 아니라면 인문계 고등학교로 떠밀려 오게 되어있다.실제 인문계 고등학교 교실을 보면 그냥 공고나 마이스터를 가는게 더 나았을 학생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물론 최근에는 중학교에서는 특성화고를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조언하는 교사들도 생겨나고 있으나 사회적인 인식은 변하지 않아 큰 도움은 되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적성과 진로를 점수에 맞춘다. 소위 말하는 입결 점수에 맞추려고 하니 비록 과가 맘에 들지 않더라고 해도 무작정 더 입결이 높은 학교를 가려고 하며, 더 입결이 높은 학교에 가기 위해 일부러 낮은 학과를 쓴다. 즉 자신의 적성이 아닌 점수에 과를 맞추게 된다. 심지어는 부모님이나 고등학교 선생님 조차 이걸 권장하기도 한다(...) 특히 지식인에 두 개 이상의 대학을 합격한 인원이 어디 갈지 물어보는 경우가 많은데 많은 숫자가 '맘에 안드는 과여도 어디 학교가 더 좋거나, 입결이 더 높으니 거기를 가라' 등 입결이나 대학교 순위(??)[13]로 결정하라고 권한다.

공부를 잘 하면 무조건 의대, 치대를 보내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 경우 졸업만 하면 세후 월 600만원 정도가 보장되기에 공부가 재미없다 해도 자퇴까지 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피만 봐도 구토가 나오는 수준으로 비위가 약하다거나, 수전증이 있다거나 하면 적성이 맞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자퇴하는 사람도 전체의 0.4% 정도나 된다.관련 신문기사 [14]

수학을 못 하는데 취업에서의 유리함만 고려해서 경제학과, 공대를 가는 어처구니 없는 경우도 발생한다. 수포자 문서 참조바람.

메가스터디, 이투스, 스카이에듀로 대표되는 사교육 업체에도 진로상담이 존재하지만, 결국 이들이 말하는 '진로 상담' 이란 주어진 스탯을 얼마나 잘 조립해서 대학 입학에 골인하기 좋은 전형에 찾아 넣을 수 있느냐의 전략상담이지 학생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의 기회를 주는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웃긴 점은 수능때 까지 주체성이라곤 하나도 없었던[15] 애들을 데려다가 3개월 만에 갑자기 인생계획과 진로를 결정하라고 다그친다는 점이다. 뭐??? 초중고 시기에는 대학 입학 이후의 삶에 관심을 가지려 해도 "쓸데없는 공상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공부나 하라"라고 하고, 대학오면 이 소리 안 들을 줄 알았는데 그 전까지는 대학만 진학하면 인생이 펼쳐질 것처럼 학생들을 속여놓다가 갑자기 "모든 걸 네 스스로 결정해라. 1학년 때부터 학점, 스펙 안 쌓아 놓으면 뒤쳐진다. 어떻게 해야 할 지는 나(어른들을 비롯한 부모님들)도 모른다. 하지만 빨리 안 움직이면 너는 뒤쳐질 거야. 그리고 잘못 판단해도 인생 망한다." 라는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태도로 돌변하는 것이다. 4050대 책임론이 발생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어떻게 해야할지 최소한의 것도 알려주지 못하면서 빨리 움직이라고 하고 또 잘못 판단하면 망한다고 하면 뭐 어쩌라는건데

4.2.1. 전공에 대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전공을 골라야 함[편집]


고등학교에서 배운 과목과 유사한 전공은 어느 정도 상황 파악이 가능하다. (예: 수학과, 경제학과 등) 하지만 고등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는 전공의 경우 점수 맞춰서 대학 간 경우가 아니더라도 진로 교육의 부실함으로 인해 전공에 맞는 적성을 착각하고 대학에 진학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눈치가 빠르고 남들 마음을 잘 파악하는 사람이 심리 파악이 잘 된다는 이유로 막연하게 '나는 심리학과를 가야겠어!'라고 생각했다면, 적어도 심리학개론 정도는 읽어보고 자기와 맞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16] 이과에서는, 생물만 좋아하고 수학, 물리를 싫어하는 사람이 생명공학을 선택하는 케이스를 들 수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이런 고민을 얘기해 봤자 교사도 잘 모르거나, 그런 생각할 시간에 공부나 하라며 핀잔주기 일쑤다. 막상 해당 학과를 가 보면 자기가 생각했던 내용과는 너무 달라 충격을 받는 학생이 한둘이 아니다.

종합대학에는 보통 80~100개 정도의 전공이 있는데, 어떤 과목을 못 하면 해당 전공에 잘 적응할 수 없고 해당 전공에서 취업하려면 어떤 사람이 부적합한지 미리부터 현실 패치를 해 줄 필요가 있다.[17] 대개의 진로 교육은 '어떤 과목을 잘 하면 해당 전공에 잘 적응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한계가 있다.

4.3. 고등교육을 필요로 하지 않는 진로에 대한 지도의 부족[편집]


사회에는 대졸 이상의 학력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도 양질의 일자리인 것이 종종 있다. 그러나 학교 교육에서는 이런 직업에 대해 자세히 가르치지를 않는다.

대졸 이상의 학력을 필요로 하는 직종은 고소득 사무직이나, 연구직, 고위직 공무원이거나 하이테크 및 첨단 기술자등이 대부분인데, 한국에서는 이런 인력이 넘치는 상황이라 현재 구직난인 상황이다. 반대로 저임금 중노동 비숙련직은 분야를 막론하고 산업현장 전반에 걸쳐서 일손 부족과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현재 사무직군을 제외한 산업현장 전반의 인력부족 문제는 사실 경제문제와 사회문제까지 거론해야되는 이야기지만, 입시위주에만 편향되어 사회 각분야에 특화된 인력을 육성하지 못하는 것도 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물론, 교육과정에서 실업계 고등학교나 특성화 고등학교같은 것이 생기고 운영이 된지 오래되었지만, 실상은 학업의 분위기나 사회적인 인식이 그저 공부를 못하고 자질이나 품행이 바르지 못한 학생들이 진학하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운영이 되지 못하고 사회에 필요한 인력을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진로를 잡아주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견해가 많다. 한 마디로, 우수한 인력을 키울 능력이 없다는 것.

그리고, 실업계 고등학교의 진학을 교육부에서는 장려하고 있지만 학부모들은 이와같은 실업계 고등학교나 직업적문 고등학교에 대한 시궁창스러운 현실 때문에 자녀의 특성화 고등학교 진학을 만류하거나 저지하는 경우가 잦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는, 고등학교가 기업과 산학협력을 맺어 적극적으로 취직이나 구직등을 알선 및 중재해주는 등 한국처럼 기업이나 정부에서 일시적으로 특채를 실시하는 것과 다르게 고정적으로 소개와 중개가 이루어지며 취업성과도 꾸준하게 나오는 편이다.

북미와 유럽에서도 굳이 대학진학을 목적으로 두지 않았으면 고교졸업 후 바로 직장이나 직업을 얻어 일을 하는 것이 흔한 편이다. 법규와 사회구조, 인식의 차이가 극심하게 벌어진 탓도 있다. 물론 대개 대졸 임금이 고졸 임금보다 높다.[18]


5. 대입전형의 불공정성 문제[편집]


[19]


5.1.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절차적 공정성 부족[편집]


대학생들의 비판은 주로 철저한 준비 없는 정책 시행, 그리고 그런 정책 시행에 대한 비판이 따르자 조변석개 식으로 이루어지는 정책 변동에 대한 불만이 주를 이루었다. 2008 수능 등급제를 직접 겪은 학생이나 그 바로 다음세대가 수능 등급제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공정한 절차의 필요불가결한 요소는 예측가능성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예측가능성이 사라지면서 결국 입시정책이 학생들의 편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인식을 학생들이 가지게 된 것이다.


5.2. 수시입학전형의 절차적 불공정성[편집]


정량적 측정이 매우 어렵다는 점에서 학생들이 절차적 불공정성을 느낄 우려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고 이것은 인터뷰 자료에서도 그대로 확인되었다.

특히 수시 및 입학사정관제에서 각 대학의 학생선택이 자의적으로 될 수 있다는 면이 많이 지적되었다. 즉, 수치화되지 않은 측정방법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가난해서 그걸 못 하는 애들은 정시로 밖에 갈 수가 없는건데 그건 점점 좁아지고 공교육이 그걸 뒷받침해 주지 못하면서 입시제도만 계속 다양화한다… 선진국화한다…하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건지…"



6. 기타 문제점[편집]



6.1. 부모들의 거짓말[편집]


대학교만 좋은 곳에 들어가. 그러면 돈도 잘 벌고 이성친구도 생겨.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6.2. 충분한 실력이 있는데도 간판이 없으면 무시당하는 경우가 생김[편집]


예를 들면 한 학생이 어느 한쪽 분야에 관심이 많으며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해도 소위 명문대가 아니면 공부를 하지 않은 것이라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상대방이 소위 말하는 지잡대라고 하면 아무리 옳고 맞는 말을 해도 지잡대생 주제에 하면서 순식간에 상종할 가치도 없는 인간으로 낙인찍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조국 민정수석 같은 경우 서울대 법대 박사수료후 26세에 교수에 임용되고, 현재도 활발히 논문을 발표하고 법을 연구하는 법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사시 패스도 못한 주제에 무슨 법학자냐?"는 논리로 인해 무시당할 정도이다. 사실 학문으로써의 법학과 법조인이 되기 위한 실무적인 측면의 사법고시는 방향성이 다른데 말이다.

보통 이렇게 비난하는 사람들의 마인드는, 좋은 대학교에 가지 못했거나 수능 평균이 좋지 못한 학생의 지식 성취 수준은 떨어진다는 식의 판단을 한다. 정보경제학에서 말하는 '통계적 차별'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여러 통계적 차별 기준을 사용할 수 있다. [20]

6.3. 부모 경제력의 지나친 영향[편집]


공부는 선천적 지능과 후천적 환경에 크게 좌우된다.

입시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사람에게만 보상을 하는 것은 선천적 지능과 후천적 환경을 기준으로 보상하는 것이므로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이야기.[21] 사회학에서도 여러번 산출된 결과다. <정의론>의 저자 존 롤스와 하버드 철학과 교수이자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마이클 센델 등 철학자들은 선천적인 지능은 자신의 소유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고등 교육의 의무는 열정을 가진 선천적 영재들과 후천적인 우등생들, 그리고 우리나라의 미래 인재들에게 투자하고, 교육 투자로 이루어낸 성과로 재능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합리적인 수준의 사회적 후원과 교육 기회 제공, 생활 향상을 통해 결과적으로 평등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 좋은 대안점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은 돈만 있으면 높은 질적 교육과 기회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다. 교육의 기회가 돌아가야 할 사람들이 못 가지고 재산있는 사람들이 갖게 되어, 사회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교육의 기회가 부자의 자녀에게만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은 명백히 불공평하다.

애초에 일반교육이 생긴 이유가 무엇이었던가?를 생각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열심히 하면 누구나 극복할 수 있지 않느냐'는 소리도 이치적으로는 맞지만, '효율'을 들먹이면 돈 많은 사람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정보화 사회가 되면서 이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옛날처럼 단순히 책을 뚫어져라 외우는 게 아니라, 좋은 정보를 가지고 양질의 학습을 하는 게 중요해졌기 때문. 물론 정보화와 동시에 인터넷 강의 같은 수단이 생기기는 했지만, 수시가 확대되고 있는 요즘은 오히려 인강보다는 수시에 필요한 활동에 얼마나 투자할 수 있는지가 더 관건이다. 족집게 과외 같은 것도 돈이 있어야 구한다. 그리고 그 인강조차도 가격이 너무 비싸서 저소득층에서는 쉽게 엄두를 낼 수가 없다. 학교의 교육만으로는 한계가 너무 명백하다 보니 공교육 부실과 교육의 빈부격차 문제가 맞물려 큰 문제가 되고 있다.

단, 이것도 어디까지나 학생이 스스로 공부를 한다는 가정하에 효율이 들어가는 것이지, 애초에 공부할 생각이 없는 학생에게 수천만원의 돈을 쏟아봤자 효율은 바닥을 밑돈다.



7. 평가방법의 문제[편집]



7.1. 상대평가의 잔인함[편집]


교육정책연구원 이상명의 연구논문에서 상대평가의 문제를 알 수 있다. [22] 헌법 제31조 제1항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이는 곧 교육의 기회균등을 말하는 것인데, 이상명에 따르면 과연 한국 사회가 부모의 경제력과 거주 지역에 따른 불평등 없이 교육의 기회균등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을 던진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대학 서열화는 학벌사회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었고, 초 중등교육을 입시위주의 경쟁교육으로 왜곡시켜 버렸다. 뿐만 아니라 대학의 서열화로 인해 대학의 교육과 학문 연구의 발달은 정체되고 있다. 상위 서열 대학은 학업 성적이 나은 학생을 선발하는 데만 골몰하고, 대학 간의 협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대학 졸업 이후 학벌사회의 재생산으로 이어지는 현실 속에서 명문대 진학을 위한 사교육비는 천문학적 규모로 증가하고 있다.

상대평가식 교육평가 체제는 보편적 적대관계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러한 체제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 있을 뿐, 나와 너 사이의 공동의 이익과 협력은 없다. 나의 이익은 너의 손해이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상대평가식 교육제도와 학벌체제는 한국의 학생과 학부모 교사들을 탈정치화하는 장치이다. 이 경쟁의 장에서 사람들은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시민적 주체가 아니라 오직 사적 욕망의 대리인으로서만 행동하기 때문이다.

“모든 PISA 프로그램에서 줄곧 5위권에 들었던 우리나라를 살펴보자. 한국은 학생 1인당 약 8,200달러의 비용을 쓴다. GDP 대비 8%로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높은 비율이다. 하지만 한국이 국제 테스트에서 높은 성적을 거두면서 치르고 있는 현실적 대가는 이보다 훨씬 값비싸다. 현재 OECD 국가를 통틀어 중산층의 한국의 교육의 투자하는 사교육비가 가장 높다. 또한 한국의 사교육 시장이 가장 크다.”
교육을 받음으로써 누구나 성공과 행복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이와 꼭 같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학교에 가야 하는 진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학생들은 학교를 생각하면 ‘즐거움’을 떠올리지 못하고 그저 먼 미래를 위해 견뎌내야 하는 ‘인내’의 공간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 대다수의 학교들은 아이들 개개인의 창의성과 잠재력을 살려주는 진정한 의미의 ‘교육’열보다는 좋은 대학에 진학시키기 위한 ‘입시’열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많은 교육학자들[23]에 따르면 과거 산업시대의 산물인 주입식, 입시위주의 경쟁식 교육은 21세기 지식 정보화 사회 및 다양성 사회에서 더이상 의미가 없다고 한다. 교육은 이제 서열 체제에 맞서 평등하고 승자 독식이 아닌 모두의 재능을 키워주는 교육에 주목해야 한다.

이 표준에 의해 시행되는 교육은 획일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결국 모두를 위한 교육이 아니고 표준을 잘 따라오는 학생들을 위한 교육이 되는 것이다.

영국의 교육학자 켄 로빈슨은 “상대평가식 평가방법에 맞설 대안으로 적성위주의 다양성을 살리는 교육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독특한 존재다. 학생들은 저마다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맞춰 재능을 육성하는 방법도 다양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행해왔던 선택된 소수만을 위한 엘리트 위주의 교육제도를 버려야 소외된 학생도 학교가 즐거워질 수 있다.

현재의 상대평가식 교육방법이 공정하고 인재를 길러내는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글로벌 교육 석학 켄 로빈슨의 저서 『학교혁명 (원제: Creative Schools)』(2015)[24]을 읽어보자. 독일과 북유럽 국가들을 제외한 ‘표준화’라는 명목 아래 전세계적으로 행해지는 ‘획일적 교육’의 폐해와, 현재의 표준화 시험이 엘리트 기준에만 치우쳐 권력과 부가 대물림 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7.2. 절대평가의 교육 붕괴[편집]


고등학교의 경우, 2007년도 까지 전국 등수로 입시를 결정하는 절대평가 시절, 수능이나 본고사 같은 것들은 옆자리의 학생이 경쟁자라는 인식을 주기는 어렵기 때문에, 공부를 잘하거나 해도 문제삼지 않는다. 우리 반 1등을 잘못되게 해 봐야, 내 등수가 60만명 중에서 고작 1등이 올라갈 뿐이니까 말이다.
다만, 절대평가를 하면 학교에서 잘 가르치든 못 가르치든 절대적인 학업 성취도만 높으면 되기에 수업을 듣지 않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에 대해 고교 교사들은 매우 실망하였다.

이 때문에 학교 등수로 내신을 크게 반영하는 내신 상대평가를 도입하여 학생들이 사교육 대신 학교 수업을 열심히 듣게 만들고자 했다. 그 결과 수업은 열심히 듣게 되었지만, 다른 아이의 노트를 훔치는 등 부작용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는 경쟁자 숫자의 문제이다. 일례로 한 반에 37명이 있다면 현행 등급제로 1등급이 한 명, 2등급은 세 명이다. 내가 5등이라면 현재는 3등급이겠지만, 한 명이 떨어지면 3등급이 2등급이 되고, 네 명이 떨어지면 1등급이 된다. 수능 점수만으로 평가하는 절대평가로 대입을 가르던 시기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져 버린 셈이다.

이런 폐해로 인해 2014년부터 다시 몇몇 학년부터 절대평가로 바뀌었다고 한다. 사실 절대평가로 바뀌어도 편차,내신등급의 비율등을 보기 때문에 달라진 것은 없다. 그래서, 올 A에다 수상경력, 봉사시간 다 채웠는데도 내신점수는 200점 만점에 195점인 웃지 못 할 사태가 벌어지기도... [25]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학교 교육을 받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답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한 기초'가 초중고 교육 목적의 답이라면, 인터넷 강의를 통한 검정고시로 빠르게 교육과정을 통과하고 일찍 대학에 입학해 다양한 성인들과 인간관계를 형성하면서 사회성을 기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올바른 인성을 갖춘 예의바른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 토론식 수업을 통해 정답을 찾는 것 외에 다양한 사고력을 길러주는 것, 나이 또래 학생들과 친구를 사귈 기회가 늘어난다'는 것이 답이라면 그건 사교육에서 더 잘 한다.

'고등학교 교사의 수업을 열심히 듣는 것은 일찍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통과하고 대학교에 빨리 가서 대학교 교수의 수업을 열심히 듣는 것에 비해 어떤 장점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상대평가 및 교권 유지에는 장점이 별로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이런 의문을 갖지 않고 그저 관행적으로 '교사는 훌륭한 분이고 교권은 높아야 하므로, 수업을 듣지 않는 학생은 나쁜 학생이고, 그런 나쁜 학생을 부추기는 교육제도는 나쁜 제도'라고 해버리면 곤란하다.[26]

비슷한 예를 들자면 연세대학교/학부/의과대학(서울)의 실험을 들 수 있다. 상대평가로 인해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받는 부작용이 심했는데, 그 결과 절대평가를 도입하여 학업성취도가 소폭 상승하고,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을 돕는가 하면 자신만의 가치관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연세대 의대는 절대평가를 도입한 몇 안 되는 의대 중 하나다. 의학 전문지식은 의과대학에서만 배울 수 있고 의학 교육이 학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련의를 통해 이어지기 때문에 절대평가를 도입해도 수업태도가 흐려지거나 교권이 추락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이는 의대라는 특수적인 상황이기에 일반화되기에는 어렵다 볼 수 있다. 의대 그것도 연세대 의대는 우리나라 극상위의 인재들이 들어오는 곳으로 상대평가로 상위 몇 퍼만 의사를 만드려는게 아닌 기본적으로 입학생 전부를 쓸만한 의사로 만드는 것이 최종목표이다. 또한 엄청난 의대 공부량에 비추어봤을때 능력에 큰 차이가 없는 인재들의 등수를 매기는 것은 큰 쓸모가 없다고 볼 수 있다.

7.3. 적성검사의 잔인함 vs. 성실성을 보는 평가의 노오력 강조[편집]


적성검사는 공부해도 성적이 잘 오르지 않는다. 따라서 사교육비를 줄이기 적당한 수단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적성검사는 '아무리 노력해도 타고 태어난 IQ의 문제로 원하는 전공을 택하지 못하는 것이 적절한가? 노력의 가치는 0인가?' 라는 질문에 답할 수 없다.

반대로 성실성을 보는 검사는 똑똑한 학생이라 해도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으면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 그 참상이 야간자율학습으로 대표되는 초중고 과한 공부량.


7.4. 시기별로 비중이 부적절한 평가[편집]


평가라는 것은 '들어올 때', '중간', '나갈 때'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대학의 경우 입학 평가는 중요시하지만 중간중간의 평가나 졸업 평가가 엉망이라는 문제가 크고, 한국 기업의 경우에도 입사 평가는 중요시하지만 중간 평가가 엉망이라는 문제가 크다.


7.4.1. 들어갈 때 평가[편집]


입시위주 교육의 방점은 사실 따지고보면 교육시스템이라는 거시적 차원에 있지만, 현실적 비판의 대상은 교육시스템 중의 일부에 지나지 않은 입시라는 미시적 대상 하나에 쏠려있다.

사회에 진출한 이후의 실무능력과 시험 성적을 비교하자면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일을 하면서 발생하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유연한 대처능력과 업무의 연장선상에 있는 사회성 등은 입시위주 교육을 통해서는 배우기도, 평가하기도 매우 어렵다.

"한국의 학생들은 15시간 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라고 앨빈 토플러가 디스할 정도로 이미 답이 없어진 상황이다.(기사 1 기사 2). 쉽게 말해서 현재 대한민국의 교육제도의 변화속도가 세상의 변화속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한다.

더 심각한 사실은 이들 시험만능주의의 피해자들인 세대들 역시 시간이 지나면 가해자가 된다는 것. 이런 피해자들 상당수는 자신이 시험만능주의로 인해 불합리한 대우를 받아도 나만 당할 수 없지라는 이유로 대학입시의 수시전형이나 기업의 특채같은 시험결과에 의지하지 않는 자유로운 인재 모집을 앞장서서 배격한다. 이로 인해 조직의 역량은 조직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피터의 법칙까지 겹쳐, 시험이라는 공정한 수단을 거친다고 해도 갈수록 조직의 역량은 쇠퇴하게 된다.


7.4.2. 중간 및 종결 평가[편집]


한국의 대학이든, 기업이든 큰 문제로 꼽히는 것이 '중간 및 종결 평가'가 엉망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하기 싫어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는 이미 들어와서 중간에 다니고 있는 사람에게 나쁜 평가를 하거나 쫓아내는 것은 비인간적이라고 매도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실제 사람의 검증에 있어서 시험을 봐서 통과만 하면 할 줄 알거나 능력이 있다고 간주하게 되고, 그 능력을 갈고 닦거나 그 능력이 시대에 뒤떨어져서 도태되는 것에 무관심하게 될 경우가 여백이 부족하여 적을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많다.

현재의 대한민국 교육에서 나타나고 있는 학생들의 창의성 부재 및 학생들이 상급학교로 진학할 수록 학습에 대한 흥미도와 성취도가 떨어지는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시험에 합격했으니까 난 자격이 있고, 공부 따위는 안 해도 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모든 사회구조가 테스트를 통과해서 자격만 취득하면 만사 오케이, 끝이라는 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세상은 하루하루 빠르게 변하고 있고, 현재의 최신지식과 정보가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도태되고 구닥다리가 되어버리는 치열한 정보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이 역시 이미 다니고 있는 사람의 이해관계와 들어가기 전인 사람의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특징이 있다. 이런 우리 나라의 풍습을 '화장실 가기 전 마음과 갔다온 뒤의 마음이 다르다'고 표현한다.

예를 들어 졸업정원제를 시행해봤지만 반발이 워낙 거세서 정부에서 포기를 했다. 그리고 외교관후보자시험에서 1년만에 10%를 잘라내거나 삼성전자에서 매년 5%를 잘라내는 것에 대해 한국에서는 '비인간적인 평가'라고 간주한다. 공공기관에서는 징계만으로 잘라내면 연 0.5% 정도 나가지만, 징계로 잘리기만 해도 '부당하다'며 소송을 내는 경우가 많다. [27]

공무원의 경우에도, 일반 국민에게 물으면 '무능한 공무원, 비리 공무원을 쳐내야 한다'는 데 대개 찬성한다. 특히 공무원의 악행에 크게 데여 본 사람이라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찬성할 것이다. 하지만 공무원에게 물으면 '얼마나 말도 되지 않는 이유로 멀쩡한 공무원을 매도하여 공격하는 일이 많은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최순실 게이트를 예로 들 것이다. 이 때 대통령이 공무원에게 불리한 의견을 택하면 공무원 표 및 그 가족 표 300~500만표가 깎여 나가지만, 공무원에게 유리한 의견을 택했다고 나머지 국민 1500만표 중 300~500만표가 깎여 나가지는 않는다. 따라서 대통령의 입장에서 가급적 공무원에게 유리한 의견을 택하는 것이 이득이다.


7.5. 정량평가의 무의미함 + 정성평가의 불공정[편집]


정량평가를 하려고 들면 무의미한 내용을 평가하는 삽질을 하게 되고, 정성평가를 하려고 들면 어디서 최순실이 튀어나와서 뒷구멍으로 부유층이 들어간다. 우리 나라에서 적은 수의 평가자가 정성평가를 맡게 되면 '내 아이, 내 친구, 내 친구 아이, 나한테 청탁한 높으신 분 자제'에게 좋은 점수를 주려는 강력한 유인이 있다.


7.5.1. 키워야 할 능력과는 무관한 평가[편집]


예를 들어, 학교에 대해 실질적으로 교육이 성과가 있었는지, 전체적인 수준을 올리고 있는지 평가할 때 도움이 될 만한 조사방법이나 수단 판단기준, 근거가 없다. 학생들이 학교교육을 받고 사회에 진출했을때 진로와 성공률, 만족도를 조사해서 교육과정과 내용이 도움이 됐는지, 교수법과 평가시스템은 적절한지, 학교교육이 공부와 진학에 얼마나 도움을 받았고 어떤 능력을 기를수 있게 됐는지를 판단하고 피드백할 유의미한 조사방법론이나 수단을 활용하고 교육과정을 개편시키거나 교육제도를 개혁하기 어려워, 학생들에 대한 고차원적인 수준 평가와 만족도 조사가 어려운 것이다. 관련 교육 연구나 조사방법론 개발이 부족한 탓이다. 이런 연구를 해서 문제가 있다는 결과가 나오면 누군가가 처벌받아야 하는데, 그런 것은 잔인하다는 비판이 나오므로 아무도 그런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학교와 선생은 대학에 가기 위한 내신성적을 위한 존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내신성적만 잘 나오면 그만.

수능 영어의 경우 유튜버들의 '원어민이 수능영어를 풀어보았다' 같은 영상을 보면, 대개 주어진 시간 내에 다 읽지를 못해서 난감해 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영어 회화를 엉망으로 한다고 악명높다. 이는 이 시험이 '영어 회화를 평가하지 않고 영어 듣기 능력을 적게 평가하여 빈부 격차(English divide)를 줄인다'는 목표, 수능 9등급~3등급 사이를 변별한다는 목표, '상위 4% 이내의 최상위권 학생들을 변별한다'는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다 보니 생기는 현상이다. 70분짜리 하나의 시험으로 3가지 목표를 다 잡으려 하다 보니 셋 모두 불만족하는 결과가 나타나고 만다.
9등급~3등급 사이에서는 시험이 너무 어려우니 조금 공부해도 성적이 잘 오르지 않는다. 대학수준의 문이과+예체능에 상식까지 전반을 아우를 정도로 지나치게 방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찌감치 놓아버리고 영포자가 된다. 반대로 1등급 학생들은 실수 하나만 하면 성적이 엉망으로 나오니 스트레스를 받고, 만점자가 무더기로 나오면 교육부에 격한 항의를 하여 변별력을 올려 달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2011년 즈음 교육부가 택한 대책은 EBS영어를 70% 반영하는 것이었다. 일단 문장을 외우면 되니까 9등급~5등급이라도 그냥 영어를 포기하지 않고 문장을 외우게 되고, 그러면 조금이나마 영어를 공부하게 된다. 반대로 70% 암기만 가지고는 1등급을 맞을 수 없으니 1등급 학생들은 EBS 공부 외에 영어 공부를 따로 해야 된다.
이런 의도에도 불구하고 수능 영어에는 한 가지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객관식이며 오답에 대한 감점이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확히 알고서 정답을 알려는 노력 대신 문제유형을 파악하는 스킬을 통해 대충 읽고 잘 찍는 방법이 공부의 주가 되었다. [28] 스킬 중심의 공부와 EBS 암기 중심의 공부는 정량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대학에서 사회에서 쓰게 될 영어 실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시험을 도대체 왜 봐야 되냐'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국제 사회의 대학 평가 지표에 맞추려고 영어 강의를 늘리는 것 역시 정량평가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영어강의를 잘 수강하려면 영어 듣기, 영어 회화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해당 과목에서 주로 나오는 표현에 대해 알아야 하는데, 그냥 초중고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대학 입시 치른 정도로는 그런 회화 실력을 갖지 못한다. 그래서 교수는 형식상 영어로 강의를 진행하지만 실제로는 학생들은 그냥 책 보고 독학해서 시험치러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7.5.2. 뽑아야 할 사람을 뽑는 데 실패하는 경우[편집]


각 선발 주체가 원하는 사람을 시험을 통해 뽑는 게 가능할 지도 생각해볼 문제다. 예를 들어, '그냥 암기만 잘 하고 교과서에 적힌 문제만 잘 풀며 호기심이 별로 없는 김씨'와 '미래의 위대한 경영학자가 될 운명을 타고난 이씨[29]'가 A대학교 경영학과에 지원할 때, 국영수 사회 필기시험 성적을 통해 김씨를 떨어뜨리고 이씨를 합격시키는 것이 가능할까? 새로운 생각을 해내는 능력은 정량평가로 확인할 수 없다. 그 학생의 재능과 적성은 모두 시험으로 평가된다. 만약 국어 시험 점수가 높으면 너는 국어에 재능이 있나보구나~하는 식. 쉬운 암기과목은 이 말도 무의미하다 사실 중등교육 교과의 특징상 이건 대학 공부를 위한 기본기를 가르쳐주는 거지 어떤 재능의 척도 따위는 될 수가 없다. 이러면 문제 잘푸는 기계, 정답출력기 를 '미래의 유망주' 대신 뽑게 된다.

또, '시험을 잘 보는 것' 과 '실제로 그 사람의 지식 성취도가 높은지'는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시험 점수를 잘 받은 사람 중에는 시험에 나오지 않은 지식 중에는 부족한 부분이 있는데 우연히 운이 좋아서 자신이 아는 부분에서만 시험문제가 나와서 고득점을 올렸을 수도 있는 것이고, 객관식의 경우는 찍어서 맞출 확률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시험 점수를 낮게 받은 사람 중에는 다른 부분은 다 열심히 공부했는데, 우연히 미처 공부하지 못한 부분에서 시험문제가 나와서 시험점수를 좋게 받지 못했을 수도 있고, 지극히 사소한 실수로 인해서 시험점수를 낮게 받아서 해당 영역에 대한 이해도가 뒤떨어진다고 평가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멘탈의 문제로 단시간에 많은 문제를 풀어야하는 시험에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즉 시험만으로 그 사람의 학문의 깊이를 측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7.5.3. 정성평가의 불공정성[편집]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1) 빈익빈 부익부 (2) 빽으로 낙하산 (3) 피평가자가 신뢰하지 않음 (4) 정성평가를 불성실하게 수행함

(1) 빈익빈 부익부
국어 시험 점수의 사례에서, 사실 진짜 재능이 있는 학생은 틀에 박힌 시험 성적이 잘 나오는 게 아니라 대외 수상을 해 올 것이다. 문제는 대외 수상 경력을 인정하자니 빈익빈 부익부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점.
다국적 기업 A기업에서는 높은 학점, 대기업 인턴 경력을 가진 학생 위주로 면접 보아서 뽑는다. 이 때 '누구'는 200:1의 경쟁을 뚫고 대기업 인턴을 해야 되고, '누구'는 아버지가 B기업 사람이라서 B대기업 인턴 경력을 쉽게 뚫는다는 게 문제다. 한국에서도 학생부종합전형에 R&E 를 열어놓으니 '누구'는 '우연하게' 박사급이 개입되어 있지 않으면 절대 고등학생이 못 쓸 것 같은 대단한 뭔가를 툭 들고 나와서 명문대에 수시모집으로 합격하기도 한다. 그러다가 끔찍한 아들 사랑이 발각되어 잡혀가기도 한다.

(2) 빽으로 낙하산
한국인이 중심이 되어 진행하는 정성평가 중 낙하산 사고가 터지지 않은 예는 거의 없다.[30] 최순실 게이트에서 하나의 사례가 드러났다. 그 외에도 높은 분들 자녀가 빽으로 여기저기 낙하산 인사로 붙는 것은 흔한 일이다.

(3) 피평가자가 신뢰하지 않음
빈익빈 부익부, 빽으로 낙하산 사례를 지난 수십년간 워낙 많이 보다 보니, 이제는 정량평가를 정성평가로 바꾸겠다고 하면 '어느 높은 분의 자녀가 걸린 일인지'부터 의심한다.

(4) 정성평가의 불성실한 수행
사실 면접만으로도 상당히 적합한 학생을 뽑을 수 있다. 구글 Oxygen project에서 실험한 바에 따르면 1번보다는 2번, 2번보다는 3번 하는 식으로 정확도가 높아져 4~6번 면접을 보면 가장 적합한 지원자를 선발할 수 있었다. 그래서 구글에서는 50분 면접을 4~6회 본다. (300분)
하지만 대개의 한국 대학에서는 20분 정도의 면접으로 학생을 선발한다. 여러 번 면접을 보려면 교수들이 힘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성평가가 불성실하니 아무도 정성평가가 정확하다고 믿지 않고, 그래서 대충 쉽게 시험 성적 순으로 뽑고 치운다.

7.6. 획일적인 평가[편집]


"교육과정이 지나치게 어려운가?" 하는 문제는 교육과정의 질을 평가하는 여러 주체가 각각 서로 다르게 평가하는 부분이다.

가령, 수학 교육과정은 수학교육과 교수들이 짠다. 수학교육과 교수들이나 이공계, 상경계 지망생들이 보기에 한국의 수학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대학에서 미적분학, 경제수학 등의 과목을 수강하기에 적절하다.[31] 비상경계 문과 교수나 대학원생들이 보기에도 나중에 사회통계를 공부해서 논문을 쓰려면 초중고 수학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 따라서, "교육과정이 지나치게 어려운가?" 이공계, 상경계 관련자 및 비상경계 문과 교수와 대학원생들은 아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문제는 '비상경계 문과 고용주, 비상경계 문과 학생 (대학원 예정 없음)'이 보기에 수학을 배우는 것은 전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 중 약 40% 정도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평생 수학과 관계없는 일을 하면서 살게 된다. 이 때 갈등이 발생한다. 학교 교육 현장에서는 '논리력, 사고력을 키워주기 때문에 도움이 된다'고 사탕발림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살면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고력과 논리력을 키울 수 있고 꼭 수학으로만 논리력, 사고력을 키워야 할 이유는 없다. 또한 수리논리적 사고방식이 실생활에서 필요한 논리력과 일치하지도 않는다. 필요도 관심도 없는 공부를 하다 보면 수포자가 되기 쉽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비상경계 대학에 진학할 학생들도 고3때까지 수학을 배우고 대학에 입학할 때도 수학 성적을 본다. 따라서, "교육과정이 지나치게 어려운가?" 질문에 비상경계 문과 고용주, 비상경계 문과 학생 (대학원 예정 없음), 예체능, 고졸 등은 그렇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렇게 대답이 갈리는 것은 절대적으로 교육과정이 어렵거나 어렵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 아니라, 획일적으로 모든 학생에게 특정 과목을 요구하는 평가 제도의 문제에 가깝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7차 교육과정 도입 (2005) 때 획일적인 교육과정을 탈출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그 후로 사과탐 유불리 문제가 등장하면서 입시 위주의 선택을 하는 학생들이 많아져 대학교 저학년 필수과목을 가르치는 교수들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신입생들을 가르치게 되면서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예를 들어 과학탐구에서 물리 선택자가 줄자 물리 교수들이 항의를 했고, 지구과학 선택자가 줄자 지구과학 교수들이 항의를 했다. 이런 중요한 학문을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놓는다면 이런 중요한 학문을 잘 할 수 있는 학생의 수가 줄어들어 우리 산업계가 박살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교육과정에서는 최대한 많은 내용을 다루려고 한다. 그러다 보면 대단히 어려운 수준이 된다. 미성년자에 대한 중등교육과정에 미적분이나 상대성 이론같은 게 들어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서 한국과 일본 뿐이다. 양자역학은? 보통 대학1~2학년때 미적분 등을 전공과 연계하면서 배우는 편. 국어, 영어, 사회탐구 영역의 수준도 미성년자 대상 교육치고는 대단히 깊다. 영어는 아이비리그에 들어갈수 있는 학생조차도 힘든 편이다. 윤리와 사상은 솔직히 대학교 철학과 예비학습 수준 문제는 이 난이도가 학생들의 성취수준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 실제로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진도를 끝까지 나가지 못하고 마지막 단원은 대충대충 넘어가거나 아예 안 배우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다고 해서 교육과정에서 뭔가를 뭉텅뭉텅 뺄 때 관련 학자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있을까? 그것 역시 어려운 이야기다.

마찬가지 이유로, 국영수, 사회, 과학, 직업탐구 할 것 없이 '안 중요하다'고 할 만한 과목은 없다. 심지어,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단 한 마디도 다루지 않는 학문도 삶 속에서는 매우 중요한 것이 많다. 예를 들어 경영학은 성인기 대한민국 국민 대다수에게 영향을 미치는 교과목이다. 교육과정과 평가를 사범대 교수들이 구성하기 때문에 '경영교육과'가 없는 한국에서 교육과정과 입학시험에 포함되지 못할 뿐이다.

8. 공부량과 성적의 상관관계[편집]


우선, 공부량과 성적이 상관관계가 있냐는 것부터 논할 필요가 있다. Stinebrickner and Stinebrickner(2008)에 따르면, 대학교 학점의 경우 실제로 그렇다. 미국 Berea college에서 공부시간, 룸메이트의 게임기 반입 여부를 고려하여 생각해 본 결과 하루 평균 1시간 더 공부하는 것은 0.36/4.0의 학점 상승 효과가 있었다. 내신 위주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이 학점이 높은 것으로 볼 때, 내신의 경우에도 아마 그럴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다만, 그렇게 성적이 후천적으로 올라봤자 한계가 있다는 문제가 있다. 미국에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65%가 부모의 영향을 받고 35% 정도가 후천적이다. [32] 공부에 선천적 재능이 부족한 학생이 공부를 잘 해야 할 수 있는 직업을 목표로 삼아 공부하게 된다면 노력을 많이 하더라도 원하는 바를 이루기 힘든데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학부모들은 공부에 선천적 재능이 부족한 학생까지도 억지로 공부량을 늘리려고 한다. [33]

그리고, 아무리 공부량과 내신성적, 대학 진학 등이 관계가 있더라도 너무 심하게 학생들을 쥐어짜고 있는 것 아닌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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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충분히 쉬고 놀 권리가 있다.

- UN 아동권리협약 31조

대한민국의 학생들의 상당수는 거의 온종일을 학교나 학원에서 보낸다. 반면 외국의 경우에는 훨씬 일찍 끝나는데, 오후 3~4시에 학교를 끝내는 곳의 경우에는 너무 늦다고 항의하는 학부모까지 있을 정도다.학교보다 학원이 더 중요하다[34][35]

한국의 학생들은 대학입시를 지상최고의 목표로 여기고, 대부분의 시간을 학교, 학원, 독서실에서의 일과를 챗바퀴 돌리듯 반복하면서 보낸다. 설령 학원을 안 다니더라도 0교시(미국의 경우 6시 30분) 등교와 야간자율학습 등으로 인해 하루 대부분을 학교에 묶여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집에 다녀오겠습니다" 라는 웃지 못할 말을 하기도 한다.

미국의 '믿거나 말거나'(국내방영편)에서도 이런 현실이 나온 적이 있는데 6시부터 23시까지 학교에 불이 꺼지지 않는 것을 보고 믿기지 않는다는 식으로 방영되었다.

물론 이것이 문제라는 문제제기는 수없이 이어져왔고, 실제로 이를 타파하기 위해 2010년대 학생인권조례가 세워져 이전의 시궁창스러웠던 학생 인권에 대한 시선이 쥐꼬리만큼은 신장되었다. 야간자율학습이 실제로 자율학습으로 돌아간 것이 그 첫 번째. 하지만 학생인권조례는 단위 조례이기 때문에 여전히 야간강제학습과 인권유린에 시달리는 학생들은 수없이 많고, 학생인권조례로 지켜지지 못하는 인권도 수두룩하다.

주부들이 자주 보는 TV 아침마당에 만점 가까이 되는 우등생이 공부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일화의 상담이 나올 정도가 되었다. 딱히 좋은 해답은 안 나왔지만 이런 사연을 아침에 주부들 보는 공중파 프로그램에 내보낸게 대단한걸지도(..)

8.1. '적성과 소질'의 차이[편집]


2014년 국제적으로 저명한 심리학 학술지 'Psychological Science'에 실린 햄브릭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학술 분야에서 노력한 시간이 실력의 차이를 결정짓는 비율은 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음악·스포츠·체스 등의 분야는 실력의 차이에서 차지하는 노력 시간의 비중이 20~25%였다. 어떤 분야든 선천적 재능이 없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대가가 될 수 있는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결론이다. 햄브릭 교수는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이 필수적이지만 선천적 재능과 비교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하는 것만큼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말은 비교육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교육자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너는 노력해도 이 일에서 잘 해나갈 수 없으니 다른 일을 하라'라는 말을 하기는 힘들다. 한다 하더라도 학부모들이 듣지 않을 뿐더러, 굉장히 기분나빠하면서 적극적으로 그런 말을 한 교사에 대해 해코지를 시도한다. 따라서 한국 사회에서 교육자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학생의 적성의 소질이 특정 분야에서 나쁘다는 이야기를 주저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진로상담을 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교사가 어떤 학생을 보면서 "이 학생은 수학, 물리적인 재능이 없어서 이공계 직업을 가지려면 본인이 힘들고, 적은 문과 대기업 TO에 합격할 만한 지능이 뒷받침되는 게 아니라서 문과를 가면 대기업에 뽑히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중소기업 생산직, 영업직 쪽으로 방향을 잡거나 학교 공부가 많이 필요하지 않은 미용, 요리 등의 진로를 잡아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물론 이런 일을 해서 연봉을 높게 받는 것은 어렵고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기도 힘들겠지만 일찍부터 한 분야를 잡고 노력하면 남들보다 유리할 것입니다. 물론 학생이 자기만의 길을 개척해서 유투버, 프로그래머 같은 쪽으로 대성할 가능성도 있으니, 그런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쪽으로 고민해보는 것도 좋습니다."라고 말한다고 생각해보자. 그 자리에서 싸대기나 안 맞으면 다행이다.

따라서 각 학생과 학부모는 '흥미가 맞는 직업'이 '적성이 맞는 직업'과 같다고 착각하고 적성이 맞지 않는 직업에 계속해서 도전하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구인과 구직의 매칭이 이루어지지 않아 일자리를 얻지 못하게 된다. 예를 들어 공무원에 적성이 맞지 않는 학생들까지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다 보니 경쟁률은 100:1 인데 그 중 95명이 합격권에서 10점 이상 벗어나 있거나 과락을 당하는 등 합격 가능성이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대기업에 적성이 맞지 않는 학생들까지 대기업 취업을 원하다 보니 경쟁률이 600:1이 되거나 2년, 3년씩 수백 곳의 대기업에 원서를 넣어도 결국 중소기업에 가게 되는 등 청소년, 청년층의 시간을 허비하고 재능을 낭비하게 되고 있다.

대부분의 학부모 및 많은 학생들이 '성적이 낮거나, 학벌이 낮거나, 수능 점수가 낮거나, 토익 점수가 없거나' 등등의 이유가 있더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전문직(의사, 변호사 등), 공무원, 공공기관 직원, 언론인, 교사, 교직원, 대기업 사무직-기술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햄브릭 교수의 연구에 정면으로 대항하여 도전하고, 결국 떨어진다. 그 결과 고시낭인, 청년실업, 니트족 등 부정적인 사회현상을 낳았다.

8.2. 수면 부족[편집]


청소년 기본 권장 수면시간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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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바로 아래쪽에 아예 의자 2개를 침대삼아 팔짱끼고 자는 용자가 보인다
고등학교를 다녀봤다면 이정도의 대다수가 편안한 침대에서는 못 자고 학교에서 자야 하는 상황을 겪어봤을 것이다.

학계 연구결과에 따르면, 청소년의 권장 수면시간은 8시간 30분으로 알려져 있다.[36] 이러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기상 시간을 오전 6~8시로 가정하더라도, 최소 오후 9시 30분 ~ 오후 11시에는 휴식을 통해 이미 하루의 피로를 모두 해소한 상태로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만약 수면을 통한 피로 해소가 원활하지 않으면 숨어서라도 반드시 놀게 된다. 밤에 늦게 자는 애들이 다음날 학교에서 자는 것도 같은 이유. 문제는 수면시간 단축의 원인이 성적을 올리기 위한 사교육이나 학원, 야자, 위키질 이건 입시위주 교육이랑 관련이 없잖아 등이라는 것.

수능 준비생의 경우 4시간 자면 합격, 5시간 자면 불합격이라는 4당 5락, 또는 3당 4락 등의 신조어들을 들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37] 이렇게 만연한 수면 부족은 각종 신체 및 정신 질환의 원인이 된다. 뿐만아니라 입시위주 교육으로 인한 부작용인, 입시에 대한 압박이 학생들의 정신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어 몸은 쉬어도 정신은 불안하다고 호소하며 수면시간을 줄이는 학생들도 수두룩하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우리의 뇌는 수면을 하는 동안 기억을 정리하므로, 수면시간이 부족하면 공부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쉽사리 망각하게 된다. 실제로 재수학원에서도 잠은 충분히 자라고 권하는 만큼, 입시생이라고 해도 잠은 충분히 잘 것을 권한다. 4당 5락이 아니라 4락 5당이다 예를 들어 밤새도록 달려서 만화책을 완결까지 보거나, RPG게임을 마저 다 깼는데, 다음날 아침에 기억을 곱씹어 보면 결말만 희미하게 남아있고, 중간과정이 다 증발되어 있다.


8.3. 취미를 즐기지 못하게 강요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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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마다 취미는 각양각색으로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이 다르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취미를 가지는 것과는 별개로, 그 취미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입시위주 교육으로 인해 주어지지 않는다. 그나마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축구농구같은 구기종목이라면 상황이 그나마 낫지만, 예술 관련, 특히 문학이나 노래, 그림등을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시간은 없거나 매우 짧은 수준에 그친다.

사회적으로도 입시가 아닌 다른 취미를 갖게 되는 것의 인식은 상당히 나쁘므로 결국 학부모, 선생님, 심지어는 같은 학생에게도 따가운 눈초리를 받으며 입시 공부로 정해져있는 시간에 자신의 취미를 향유하거나, 아니면 취미 활동을 그만둘 수 밖에 없다. 시간표 상에 있는 각종 특별 활동도 강제성을 띠고 있고, 그 특별활동마저도 전문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동아리학생부 전형을 위한 스펙쌓는 도구로 변질되어버린지 오래라 결과적으로 학교에서 취미활동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에 한 두시간, 그나마도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없거나 자습하는 시간이 되어버리는 각종 예체능 시간밖에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의 청소년들의 취미가 게임이나 애니 인터넷 사용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것들은 짧은 시간에 특별한 준비 없이도 쉽게 즐길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임 역시도 미래가 그리 밝지는 않다. 여성가족부의 게임규제가 학부모층으로부터 널리 지지를 받았던 배경에는 애들이 게임에 빠지느라 잠을 안 자서 공부를 못 한다는 주장이 사회적 상식으로 통용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38]'' 게임을 규제할 것이 아니라, 게임중독을 예방하고 치료해 공부에 집중할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것이 먼저일 것 같은데... 게임이 죽는다고 학생들이 공부를 할까? 게임의 자리를 다른 매체가 또 대체할 것이다. 애니! 애니를 보자! 애니도 죽지 않을까..?

그래도 요즘엔 게임, 만화탄압이 그냥 멍청한 짓이란 인식이 퍼졌는지 아직도 게임, 만화탓만 하는 사람은 꼰대, 무식한 사람 취급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결과적으로 입시위주 교육으로 인한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시간적 부재는 건전한 목표의식을 저해하고 사회 혐오와 우울증을 유발할 확률이 매우 크다. 사람은 공부만 하는 기계가 아니다. 삶의 활력이 필요하다.

그나마 최근 들어서는 학교 공부 외의 다양한 활동을 중시하는 수시가 확대되다 보니 일단 책만 펴고 있는 모습에서는 어느 정도 벗어나기는 했는데, 그래 봤자 진정으로 학생이 좋아하는 취미가 아닌 입시용 취미를 생활기록부에 기재할 목적으로 할 뿐이다. 일부 특목고에서는 수시를 목적으로 모든 학생들에게 악기나 체육을 강제로 시키기도 하는데, 사실 그 학생이 음악이나 체육을 즐기지 않는다면 하기 싫은 거 억지로 하는 건 마찬가지다. 그나마도 객관적인 평가를 하지 않다 보니 대충대충 시간만 때우고 글빨로 생기부를 채워 넣는 경우가 비일비재, 아니 수시를 생각하는 거의 모든 학생이 다 그러고 있다. 그런 주제에 진짜로 학생들이 좋아하는 취미지만 어른들 보기에는 쓸모없거나 교양없어 보이는 게임이나 덕질초딩 밀덕은 슬픕니다...같은 취미는 여전히 무시당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다 보니 진짜로 해당 취미를 즐기는 학생과 시간만 때운 학생 사이에 서류상으로는 별 차이가 없어서 결과적으로 또 학업 성적을 갖고 학생을 선발하는 지옥의 악순환이 생겨났다는 점. 누군가가 어떤 독특한 방법으로 입시에 성공하면 입시 관련 사이트에 순식간에 다 퍼지고 모든 학생이 따라하다 보니 그 다음부터는 이런 방식은 전혀 먹히지 않는다는 부작용이 생겨 버렸다.


8.4. 가정내 갈등과 대화단절[편집]


공부로 인한 갈등이 매우매우 많다. 맹목적으로 공부를 해야 성공한다고 강요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의식에 대해서는 설득력과 근거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사실 잘 몰라서그렇다. [39] 공부 공부를 외치다보니 노이로제가 걸릴것 같다는 학생들이 많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한국 학생들이 취미활동이나 고민상담, 멘토링 등으로 정상적으로 스트레스를 풀 기회도 많지 않다. 그저 친구들이랑 떠들고 흉보면서 풀고, PC방에 가거나 한다.

  • 무조건적인 공부 강요와 높은 기대치로 공부 본연의 목적 보다는 성적에 일희일비한다.
  • 주부들 간의 자식자랑과 비교질 - 자식을 닦달하고, 엄친아 엄친딸들에 비교당하다 보면 열등감에 빠진다.[40]
  • 학교-집을 오가는 사이클로 지치고 피곤한 청소년에게 취미와 대화를 같이 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다.
  • 평일엔 씻고 잠자기 바쁘다. 휴일과 주말엔 도서관과 독서실로 공부하러 나가고, 학원을 왔다갔다 하느라 집에서 밥도 같이 잘 안먹는데...
  • 이러다 보니 자연스레 서로에 대해 소홀해지고, 대화거리가 없어 대화가 단절된다.
  • 서로 대화를 안 하다 보니, 크고 작은 갈등과 서운함을 대화로 풀지 못하고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이러다보면, 사실상 부모자식간의 대화는 "공부 안하냐?"같은 잔소리가 되기 쉽다.
  • 이 상태로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해서 사회인이 된다면, 부모에 대한 시선은... 고민이나 갈등이 있어도 잘 말하려 들질 않는다.[41][42]
  • 학생들의 지식 습득능력, 지식의 수준은 지금의 기성세대와 비교했을경우 상당히 높다, 구글링 등의 각종 검색수단으로 필요한 지식을 바로 뽑아내며 현 기성세대들이 학생일때와 비교했을때 상상도 못할 하이테크 기기들(스마트폰과 컴퓨터의 보급은 그리 오래된것이 아니다)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고등,대학교에서 배우는 지식과 성적은 기성세대와 비교했을경우 비교가 미안해지게 높다, 그런상황에서 나때는 사전을 씹어먹네 와 같은 부모세대의 잔소리등을 듣게 되면 자연스럽게 세대갈등이 발발하게 되고 설령 직접적인 충돌은 없어도 앙금이 쌓여 대화가 끈어지게 된다.
  • 대학도 상위권, 수도권 대학으로 진학하는 등 타지로 간다면 그대로 몸마저 멀어지면 대화할 기회는 더더욱 없어짐.


8.5. 대학 가면 다 할 수 있어; 만능대학설[편집]


공부와 무관한 모든 활동을 막아놓고, 대학 가면 다 가능하다는 식으로 무마하려 든다. 취미 활동, 운동, 연애, 미용 등등... 대학 가서 다 되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고, 대학 가도 안 되면 이거대로 문제다. 대학 가서 다 된다면? 상식적으로 10대 시절 동안 꾸준히 대학 이후의 삶을 꿈꾸면서 모든 것들을 참아 왔는데, 이제 대학에 왔으니 엄청나게 방탕하게 놀기 시작하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방탕하게 놀면 이전의 학습능력을 다 잃어버리고 성적은 개판이 된다. 반대로 놀아본 적이 없으니 놀 줄을 몰라 아웃사이더가 되는 경우도 꽤 많이 있다. 이러면 결국에는 엄청난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특히 미용이나 연애 같은 건 경험 여부가 꽤 크다. 해 본적이 없으니 할 줄도 모르고, 계속 모르고 ... 그러다가 부모와 교사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대학 간다고 자유의 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취업을 하고 싶든 학업을 하고 싶든 마찬가지다. 의대를 제외하면 취업이 보장되지 않는다. 입학 직후부터 학점을 관리하고 관련 활동을 만들어 로스쿨에 가는 학생과 그냥 대학교 4학년 다니다가 마지막 학기쯤 되어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 사이의 소득 차이는 크다. 이 때문에 전자처럼 살고 싶으면 공부를 해야 한다. 학문을 탐구하고 싶다면 평생동안 한 인간이 다 알 수 없을만큼 지식을 많이 쌓아야 하기에 하루종일 공부를 해야 한다. 결국, 어느 쪽이든 고등학교보다 결코 더 적을 수가 없다. 그리고 공부 외에도 할 일이 많다. 결국 1년도 안 지나서 고등학교보다 더 안 좋다는 걸 뼈저리게 체험하고 좌절하게 된다.

그래도 한국 대학은 지금도 의대를 제외하면 유급제도가 거의 없고 입시교육이나 외국의 대학에 비해 공부량이나 경쟁이 심하지 않아 공부와 취미활동(동아리활동 등), 를 적절히 분배하여 나름 괜찮은 대학생활을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대학생의 자질과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원인 중에 하나이고, 무분별하게 많은 대학과 진학률때문에 대학에대한 환상만 가진채 이름만 대학인 대학에 진학하면 사실상 제대로 된 학업과 대학생활을 하기 힘들어 현실을 깨닫고 자퇴하거나 방황하는 사례가 아주 많다.

추가로 말하자면 흔히 2년제를 비롯한 전문대의 취직율이 높을 것이라고 알려진 경우가 많고 그렇게 홍보가 되고 있으나 학업으로는 4년 공부할 분량을 2년 안에 다 해야되는 것이기도 하고, 실제 제대로 취업을 하려면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그러고도 제대로된 직장을 구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자격요건이 낮은 기업이라면 손쉽게 들어갈 수 있겠지만, 대체로 입사조건이 까다롭지 않고 쉽게 채용을 결정하는 중소기업들은 기본적인 근로환경이나 근로기준법도 잘 준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전문대에 가서 졸업 후 비교적 좋은 직장을 가지려고 하려면 개인 여가 시간 줄일 수 밖에 없다.

8.6. 운동 부족[편집]


한국의 청소년들은 야외 활동이 제한되어있다. 그 원인은 당연하게도 공부시간. 체육특기생이 아니라면 기본적인 운동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일주일에 한 두번 있는 체육시간과 한 시간 남짓의 점심시간이 거의 유일한 야외 활동의 시간이지만 당연히 일주일에 한 두시간, 점심시간이나 쉬는 시간의 운동으로는 필요한 운동량을 맞출 수 있을 리 없다. 심지어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 체육시간이나 점심시간, 쉬는시간에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주변의 무언의 압박을 받게 된다.

공부 시간이 운동부족의 원인이란 증거를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상대적으로 교육열이 낮은 지역에서 교육열 높은 지역으로 전학을 가 본 적이 있다면 체험해 봤을 것이다. 체육대회 달리기에서 늘 뒤에서 1등을 하던 학생이 교육열 높은 지역으로 이사를 간 이후 계주가 되기도(...) 강남 8학군 지역은 주거지로서 비교적 시설이 좋은 편이라 아파트 단지 등에 어린이용 야외 놀이시설이 충분하지만, 2017년 기준으로 이들 놀이시설을 어린이들이 개인자격으로 이용하는 예[43]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오히려 정년맞은 노인들이 햇볕 쬐러 나와서 앉아있는 실정이다. 이 지역의 초등학생들은 수업이 끝나면 학원가거나 과외받으러 가기 때문에 교정에 남아서 노는 아이들을 거의 볼 수 없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목을 푹 숙인 채 있는 것도 건강에 매우 안 좋은데, 성인이 되어서도 운동 부족이 습관이 되면 비만, 변비, 골다공증등의 각종 건강 질환에 노출되기 매우 쉽다. 도장이나 체육관 등의 일선에서 어린아이들을 가르칠 일이 많은 사람들은 가면 갈수록 학생들의 체력이 나빠진다고 걱정하기도 한다.



8.7. 단위시간당 학습량의 비효율성[편집]


PISA 2006 기준으로 한국의 수학수준은 세계4위권으로 굉장히 대단한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간당으로 계산했을때 57개국 중 48위라는 결과가 나온다.정규수업시간 이후 학습시간이 일주일 간 약 7.14시간으로 집계됐으나 실제로는 그것보다 훨씬 더 많다. 시간 비효율성 외에 이런 결과가 사교육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투입비용 대비로도 비효율적인 셈이다. 정규교육시간도 다른 나라보다 훨씬 길다.

억지로 공부시간을 늘리다 보니 학업에 대한 흥미도 역시 최하위권이다. # 오죽하면 엄청나게 높은 성적을 보고 독일에서 한국교육의 기적을 분석한다며 보낸 조사관을 보냈다가 배울거 없다며 철수한 경우도 있다고 하고, 핀란드 교육부 장관이 한국과 비교되는 것을 매우 불쾌히 여긴 경우도 있다. 결국 주변국가들로부터 시선만 제대로 망가뜨려 쪽박난 샘이다.#

다음 표 출처 확인바람
국가
정규 수업시간
학교 밖 수업시간
혼자 하는 공부시간
공부시간합계
학업성취율
(학업성취율)/(공부시간합계)
핀란드
8
1.8
4
13.8
1,562.30
113.2
한국
12.8
7.1
4.9
24.8[44]]
1,625.60
65.5
OECD 평균
10.6
2.4
4.9
17.9
1,489.50
83.2

[1] 전체 비율에 비하면 극히 드물다.[2] 공무원 수는 102만명(2015), 사립학교 교직원 수 12.5만명 (2014), 316개 공공기관 직원 수는 28만명(2015), 30개 그룹 대기업 직원 수는 128만명(2013) (1682개 코스피-코스닥 상장사 직원 수를 모두 합쳐도 146만명이다(2014)), 소위 전문직이라 불리는 12개 직업은 약 30만명, 국내 은행원 수 13.2만명(2016) 정도다. 이 6개 분류를 합치면 300만명 정도다.[3]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종류의 일'이라면 연예인, 예술가, 체육인, 스트리머 등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사람은 인구의 0.1% 이내라서 일반인들과 관련이 없다.[4] 사실 교육의 엄밀한 정의는 학문마다, 학자마다 의견이 조금 갈린다. 사회학에서도 나름의 정의가 있다. 다만 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교육학자 정범모 선생의 정의를 인용했다.[5] 국회의원 수를 줄이면 견제하는 사람이 줄어들기 때문에 뇌물 먹이기도 쉽고 정부 감시 기능도 약화되어 정부가 더 막장이 되어버린다.[6] 예를 들어, "법이 도덕을 반영하는가?"라는 주제를 생각해 보자. 이에 대해 그렇다고 보는 견해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며 양측이 다 그런대로 일리가 있다. 그런데 한국의 도덕 교과서에는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걸 주입식으로 외워서 현재 한국인들 절대다수가 법은 도덕을 반영한다고 믿고 있다. 이에 대해 근거를 제시해 보라고 하면 교과서에서 그렇게 배웠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이는 명문대생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비슷한 예시로, '불법은 나쁜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문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불법=비도덕'이라는 공식을 갖고 있다 보니, 비도덕적인 행위가 왜 비도덕적인지에 대한 고찰 없이 불법이니깐 나쁘다는 지극히 1차원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경우가 많다.[7] 직장생활 참고.[8] 그래도 서태지가 시도한 도전은 한마디로 자기 인생을 판돈으로 건 도박이다. 어마무지한 위험성이 따른 것이다. 만약 서태지와 아이들이 대박 나지 않았더라면 서태지의 인생도 박살났을 것이다.[9] 연봉, 성장 가능성 등이 아르바이트 수준인 곳.[10] 최근에는 하도 취업이 어렵다 보니 굳이 간판보다는 취업에 유리한 쪽으로 선택하라는 부모가 좀 늘기는 했지만, 아직도 현실 파악이 제대로 안 된, 특히 취업 같은 문제가 그저 노력 때문인 줄 아는 대다수의 어른들은 간판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혹은 그냥 자기들 명예욕 때문이거나 이득을 얻으려는 것이 대부분.[11] 그리고 설령 속으로는 취업에 유리한 쪽으로 선택하는 부모들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박혀 있는 오지랖 문제 때문. 전교 상위권, 명문대, 대기업, 전문직 등이 아니라면 명절날 친척으로부터 자존심 상하는 질문들을 들을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덧붙여 시골 집성촌 문화도 만악의 근원이라고 할만한데, 집성촌 내부에서도 집안끼리 비교가 심한데다가 더 나아가 다른 성씨 집성촌과도 자존심 경쟁이 심하기 때문. 일례로 경상북도 모처에서는 경주 이씨 집성촌과 옆동네 영천 이씨 집성촌이 서로 잘났다고 싸운다고 한다. 그리고 행정고시나 사법시험 패스한 사람의 시골 할머니 댁이나 외갓집이 집성촌인 경우 그 시골 동네에는 높은 확률로 플랜카드가 걸리고, 동네 잔치를 여는데, 이는 그 시골동네 사람들이 그 고시합격자를 빽삼아 온갗 나쁜짓을 할려는 의도라고 한다. # 그리고 학부모들의 동창회에서도 친구들, 특히 개인 사업이나 장사하는 사람들이 "너네 아들(딸) 공부 잘하냐?"고 묻는 경우도 많다. 그 이유는 사업하는 자기 주변에 5급공무원이나 판검사같은 사람 있으면 자신의 빽이 되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12] 그리고 고등학교 교사들 중 일부는 이런 사회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너희들이 선택해서 들어온거야?라고 말하며 입시위주 교육에 대해 순응하라는 강압을 넣기도 한다[13]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대학 순위표(?) 같은 것들. 대학생들은 알겠지만 의미없다.[14] 의대생 18,000여명 중 매년 70여명이 자퇴한다.[15] 적어도 교육의 방향이 그러한[16] 심리학 항목과 대중심리학 문서 참조, 고등학생들이 막연히 생각하는 심리학에 관한 내용의 대부분은 심리학계에서 극히 일부밖에 안 되는 인지심리학이나 아예 유사과학에 가깝고 말만 그럴듯한 내용들이다.[17] 예를 들어, 사람만 대하면 잔뜩 굳어서 심장이 쿵쾅거리고 자신의 의견을 중요한 자리에서 조리있게 발표할 수 없는 사람이며 고등학교 수학이 너무 어려워서 싫고 돈 버는 데는 도통 관심이 없는 사람이 경영학과에 간다면 시간을 많이 낭비하게 될 것이다. 이과의 사례로는 수포자물포자 문서 참조.[18] 고졸 임금이 대졸과 10% 이내 차이나는 국가 있으면 추가바람.[19] 대학입시제도의 공정성에 대한 대학생들의 인식 연구: 근거이론적 접근 (2016) 참조바람. 근거이론의 의미를 알고 싶으면 해당 문서 참조바람.[20] 그 기준이 믿을 만한 기준이면 여러 판단을 하면서 속거나 사기를 당할 확률을 낮출 수 있어서 이득일 것이고, 믿을 만하지 못한 기준이면 자기가 제 발에 걸려 넘어진다. 결국 상대방의 판단이 옳았는지 틀렸는지를 결정하는 기준은 자기 자신의 실력인 셈이다. 또, 근거를 대어 옳은 주장을 하고 있는데 수능이나 대학교만을 이유로 들어 비난하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진지하게 이야기를 경청할 마음이 없는 인간이기에 누가 주장을 하더라도 그 결과는 비슷할 것이며 대화의 시도 자체가 의미 없다는 것도 추측할 수 있다.[21] 물론 이 두가지가 다 받쳐줘도 공부 안 하면 성적 안 나온다.[22] 이상명(2017),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 측면에서 본 대학입시제도의 개선방안, 법과 정책연구[23] 켄 로빈슨 워릭대학교 교수, 김택환 중앙대학교 객원교수, 박도순 고려대학교 명예 교수[24] (ISBN 9788950959272)[25] 다만, 이것은 중학교에서는 아직도 등급도 아닌 과목 석차로 내신 점수를 산출하기에 벌어진 결과이다.[26] 답 있으면 추가바람[27] 넷플릭스에서는 1년에 10%, 맥킨지에서는 1년에 20%를 잘라낸다. 구글에서도 1년의 5%를 잘라내지만 이것이 삼성전자와 비슷비슷하다는 사실은 다들 잘 모른다.[28] 즉, 이는 입시위주 교육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객관식 시험 설계의 문제에 가깝다. 5지선다형이라면 오답에 대해 배점의 20% 이상의 감점이 있으면 해결된다.[29] 예를 들어, 국어(비문학), 영어(독해), 수학을 잘 함과 동시에 왕성한 호기심과 지식욕이 있다면 이런 학생으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30] 있으면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추가바람[31] 대학에 진학한 후 학생들이 수학 연구결과를 잘 내놓지 못하는 것은 대학 교육이 부실한 탓이지 초중고 교육의 문제로 보기 어렵다.[32] Sacerdote(2007). 미국으로 입양된 아이들을 추적하여 연구하였다.[33] 사실 이렇게 된데는 유치원 교사들의 립서비스도 무시할 수 없다. 대부분의 유치원 교사들은 학부모 면담시 아이의 더 많은 단점과 부족한 점을 은폐하고 극소수의 장점만 나열하고 여기에 픽션을 교묘하게 보태 머리좋은 아이라는 식으로 립서비스하는데, 여기에서 많은 학부모들이 함정에 빠진다.[34] 대신 미국은 등교가 7시다.[35] 남동부 기준으로 초등학교의 등교시간이 7시45분으로 이르다. 하지만 중학교로 가면 더 늦다. 문제의 이유는 스쿨버스의 수송량이 초중생들을 모두 같은 시간에 학교로 보낼 만큼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나눠서 보내게 된 것. 대신 1시 45분에 학교가 끝난다. 수요일에는 12시. 북부나 서부는 다를 수도 있음[36] 6시간 30분 ~ 7시간 수면이 건강에 더 좋다는 연구결과도 있지만, 이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수면 분석결과이며, 미국의 청소년들은 더 일찍 잠자리에 들어 푹 쉰다는 걸 유념하자.[37] 이 말은 현 입시체제에 대한 풍자성 말이나, 일부 교사들이 정설로 받아들여 문제가 된 적이 있다.[38] 혹시라도 자세한 정보를 얻고 싶다면 셧다운제, 쿨링오프제, 게임중독법 문서 참조[39] 사실 부모들의 자식들에게 오로지 성공만 강조하며 공부만 하라고 하는 이유 중에 주변 엄마들과의 경쟁이 있다. 한마디로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때문에 아이들을 노예로 부려먹는 셈. 이쯤되면 아동 착취 수준이다.[40] 사실 부풀려서 말하는 경향이 있지만(...) 곧이 곧대로 믿었다간 골룸한 경우가 꽤 된다. 이런경우는 그냥 그거에 신경쓸 관심을 자식 뒷바라지에 쏟는게 나을 것이다. 사실 이런 짓하는 심리는 자기 게임 캐릭터 레벨이 누가 높은지 자랑하는 거랑 별반 다를 게 없다.[41] 농담이 아니라, 사회인이 되는 시점에서 가족간의 사이가 멀어지는 사례도 있으며, 부모 탓으로 돌리고 부모 없이도 잘해낼 수 있었다면서 질책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부모는 '내가 이제까지 너를 먹여주고 재워주기 위해 어떻게 살아왔는데' 하면서 저항하니 결국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셈이다. 이는 부모세대와 자식세대에서 최우선으로 삼는 가치가 다른데 어떻게 다른지는 고사하고 다르다는 사실조차 서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런 세대차이는 충분한 대화와 감정적 유대가 있어도 극복이 쉽지 않은데 하물며...[42] 실제 공부와는 관련이 없어도 우아달의 어떤 에피소드에서 생후 2개월된 딸아이가 원하는 욕구를 정작 부모는 이해하지 못하고 내버려둔 문제가 발생한 적이 있다. 이런 문제가 지속될 경우 가상에서 한 번 보여줬지만 그 딸이 성장했을때 부모에게 어떤 태도로 대할지 상기해보면 쉽게 답이 나온다.[43] 부지 안에 놀이시설을 확보하지 못한 사설 어린이집 등에서 보육교사의 인솔하에 이용하러 오긴 한다.[44] 하루에 25시간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0교시 자율학습과 야간자율학습을 개인 공부시간으로 추산해서 중복된 시간대가 나와서 이런 결과가 도출된 것. 이 24.8이라는 수치가 한국 교육계의 비효율성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대표적인 수치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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