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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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4. 입춘대길 건양다경
5. 여담


1. 개요[편집]


입춘()은 24절기의 첫 번째로[1], 봄의 시작으로 본다. 사주적으로는 '인월'이라고 한다.

태양의 황경이 315˚에 드는 때이며 양력으로 대개 2월 3일~2월 4일이다. 과거에는 2월 5일인 경우도 있었다.

명리학의 다수설에서는 새로운 띠가 입춘의 절입시각부터 시작한다고 여긴다.[2][3]


2. 상세[편집]


아직 추운 겨울이지만 햇빛이 강해지고 밝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동지가 지난 후 태양이 다시 북반구 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북반구 쪽의 지구가 천천히 달구어지는 시차가 존재하여 입춘이 지난 후 한 달 정도 지나야 계절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다. 실제로는 춘분이 되어야 본격적인 봄이라고 할 수 있으며, 보통 3월 6일경인 경칩이 되어야 봄이 시작된다.[4]

대한우수 사이에 있다. 입춘은 음력으로 주로 정월에 드는데, 어떤 해는 정월과 섣달에 거듭 들어 '재봉춘(再逢春)'이라 한다.

봄이 시작하는 날이라 하여 입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즉, 절분. 대개 이 때를 즈음해서 설날이 온다. 그래서 음력에서는 봄이 1, 2, 3월인 것. 하지만 중국 화북지방을 중심으로 정한 명칭이라 우리나라의 기후와는 잘 맞지 않는다.[5]

농가에서는 보리 뿌리를 뽑아 보고 뿌리수를 통해 그해 농사가 잘 될지 어떨지를 점치기도 하였다. 3은 풍작, 2는 평년작, 1이나 없으면 흉작. 은근히 과학적이다.

음력으로 한 해에 양력 절기인 입춘이 두 번 들어 있으면 '쌍춘년'(雙春年)이라고 하여 그해에 결혼하는 것이 길하다고 한다. 즉, 윤달이 든 해로 2014년이 대표적인데, 기원전부터 지금까지 윤달이 12번밖에 없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현재 한국에서 통용되는 시헌력에서는 19년 동안 윤년이 7번 있도록 배치한다. (여기에 황금돼지해 드립까지 낀 게 압권) 예를 들어 당장 2017년2020년이 윤달이 있다. 애초 윤달이 수백 년 만에 한 번 돌아온다면 관련된 풍속이나 속설이 전승되지도 않거나, 있다 해도 흉한 내용이거나, 아예 역법에 반영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입춘날 입춘절식이라 하여 궁중에서는 오신반(五辛盤)을 수라상에 얹고, 민가에서는 세생채(細生菜)를 만들어 먹으며, 함경도에서는 민간에서 명태순대를 만들어 먹는다. 오신반은 겨자와 함께 무치는 생채요리로 매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움파, 산갓, 승검초, 미나리 싹, 무 싹, 파, 마늘, 달래 등 강한 자극을 가진 나물 중 다섯 가지를 골라서 만들었다고 한다. 겨울 동안 결핍되었던 채소를 보충하기 위한 것이다. 또 이것을 본떠 민간에서는 입춘날 눈 밑에 돋아난 햇나물을 뜯어다가 무쳐서 입춘 절식으로 먹는 풍속이 생겨났는데 이를 세생채라 하여 파·겨자·당귀의 어린 싹으로 입춘채(立春菜)를 만들어 이웃간에 나눠먹는 풍속도 있었다.

조선시대 땐 새해 첫 절기인 입춘에 왕이 신하들에게 벽사(辟邪)와 기복(祈福)의 의미를 담은 그림인 세화(歲畫)를 하사하였다. 또한, 민간에선 입춘에 벽이나 문짝, 문지방에 붙이는 글인 입춘방(立春榜)을 대문에 붙였다.

일본에서는 입춘 전날을 세쓰분(세츠분)이라고 하여 을 뿌리고 김밥을 먹는 행사를 한다. 절분 가운데 유일한 명절이라고 한다. 하지만 중국, 한국에서는 옛날처럼 절분을 세는 풍습은 거의 사라졌다. 반면 입춘 당일날은 한국만큼 중요시하지 않는다. 입춘대길 축원문을 써 붙여두는 풍습이 있긴 하나 한국만큼 흔하지 않으며, 그나마도 건양다경이 아니라 '진방화촉'(鎮防火燭: 불씨를 조심하자)라는 말을 곁들인다.


3. 명리학에서의 새해 첫날[편집]


사주가들 한정으로 입춘을 해가 넘어가는 기준점으로 삼는 경우가 많으며[6], 태양의 중심이 황경 315˚에 일치하는 입춘 절입시각을 기준으로 전년도와 금년도를 구분한다.

음력 1월 1일인 설날 다음으로는 한중일의 전통에서 띠가 바뀌는 기준일로 그나마 가장 많이 쓰인다. 이렇게 전통적 새해의 기준이 두 가지인 이유는 시헌력역법 체계가 태음태양력이기 때문이다.(태양력의 새해 첫날인 입춘과 태음력의 새해 첫 날인 설날) 그러함에도 음력 1월 1일이 문화적으로 설날로서 인식되는 이유는 현실적으로는 음력 1월 1일이 입춘보다 측정하기 쉽기 때문일 것이다. 음력은 달의 상과 계절을 아는 것만으로 쉽게 날짜를 파악할 수 있지만, 입춘을 파악하기 위해선 고도의 계산이 필요하기 때문이다.[7]

그 중 한중일 세계관에서의 실질적인 기준은 어디까지나 설날이다. 조선시대의 일반 사회에서도 음력 1월 1일에 새 간지가 시작된다고 여겼는데, 예를 들어 조선왕조실록만 보아도 매년 정월 첫날(음력 1월 1일)에는 본문 위에 새해의 간지를 작게 써두었지만, 입춘에는 적지 않았다. 다만 명리학적 기준인 입춘도 영향력이 비교적 부족했을 뿐 전통인 것은 마찬가지다. 조선시대 때 천문·지리·역수·점산·측후·각루 업무를 담담했던 관청인 관상감(觀象監)에서는 과거시험인 음양과(陰陽科)#에서 명리학의 고전들을 시험 과목으로 배정했을 정도로 명리학은 조선시대의 사회상을 이루는 데에 일부적으로는 영향을 끼쳤다.[8] 한중일에서 띠의 기준이 입춘이 아닌 설날로 통용되는 이유는 그저 한중일의 전통적 세계관이 태양력이 아닌 태음력을 위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전근대 한중일은 태음력이 공식적으로 존재했던 몇 되지 않는 국가들이었고, 애초에 동양을 제외한 국가들은 띠라는 개념에 대해 상당히 둔감한 편이다.

동서양에서 역사적으로 연도 기산과 띠의 기준점으로 애용되던 절기는 동지춘분이다. 입춘은 이 둘 사이의 정확히 가운데에 있음이 특기할 만한 부분이긴 하다. 그렇다고 아주 근거가 없는 건 아닌 게, 한자문화권에선 옛날부터 이 전날을 '해넘이'라 하여 귀신을 쫓을 목적으로 방이나 마당에 콩을 뿌리는 풍습이 있었다. 이것은 한무제가 연도의 기산점을 자월(동짓달: 음력 11월)에서 인월(동짓달로부터 2달 뒤)로 바꾸면서 남은 흔적이다. 그래서 설날을 연도별로 추적해보면 입춘을 기준으로 하여 ±15일 범위 내(대한부터 우수까지)에서 오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일본의 몇몇 지방에서는 정말로 주민들이 입춘이 지나야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것으로 계산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도 일본 대다수 지방에서 볼 수 있는 관습은 아니었다. 게다가 현대 일본은 만 나이를 사용하기 때문에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다.


4. 입춘대길 건양다경[편집]


파일:external/photovil.hani.co.kr/%EC%9E%85%EC%B6%98%20(1).jpg
입춘대길 건양다경( )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합니다'라는 의미.

위의 입춘방 중 입춘대길남인의 거두 미수 허목이 만들었고, 건양다경은 우암 송시열이 만들었다.

한국에서는 이날 '입춘대길'(立春大吉)이라는 입춘방을 대문이나 대들보, 천장에 붙였다. 막이. 이 외에도 소문만복래(웃으면 만복이 온다) 등 축원도 자주 나온다. 맹꽁이 서당에서는 이 축원들을 아주 황당하게 패러디해놔서 훈장을 또 골탕먹였다.

입춘대길 건양다경에 대한 다른 설


5. 여담[편집]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독일계 이민자들로부터 시작하여 매년 2월 2일마다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열리는 성촉절(groundhog day)이 입춘과 시기상 비슷하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이 이것을 소재로 하였다.

싱어송라이터 한로로의 데뷔곡 제목이기도 하다. 20대 청춘의 발화를 기록하기 위해 곡을 썼다고.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5 06:31:06에 나무위키 입춘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한 해 기준으로는 세 번째에 온다.[2] 소수설에서는 동짓날의 절입시각부터 시작한다고 간주한다.[3] 최근에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띠가 바뀌는 기준이 입춘이라는 설을 믿는 분위기인데, 이 설의 근원은 어디까지나 사주가들만의 이론이다.[4] 이는 여름 시작 소만, 가을 시작 추분, 겨울 시작 소설과도 비슷하다.[5] 실제로 우리나라의 겨울은 소한대한을 전후로 12월 말~1월 초나 1월 하순~(입춘이 있는) 2월 초순이 가장 추운 경향이 있다. 물론 입춘 후에는 한반도도 한파 강도가 점차 약해진다.[6] 소수 사주가들은 동지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며, 천문학적으로는 춘분을 띠의 기준점으로 해야한다는 의견도 소수 존재한다.[7] 그나마 대통력의 평기법은 절기간 간격이 15.218425일이라 동지부터 45.655275일을 더하면 입춘일을 얼추 계산할 수 있겠지만, 시헌력의 정기법은 입춘의 기준이 황경 315˚이고 절기간 간격이 14.72~15.73일로 일정치 않기 때문에 계산이 훨씬 복잡하다.[8] 참고로 조선시대 땐 오직 관상감만이 달력 제작의 권한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입춘일을 계산해내는 것도 당연히 관상감의 업무였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