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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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자위대(
일본 제국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하면서 일본군도 결국 해산되었는데, 당초에 미국은 포츠담 선언의 기조에 따라 연합군 최고사령부의 지휘 아래 일본 열도에 비무장 평화주의 국가를 건설하려 했다. 그러나 2차 대전 종전과 동시에 냉전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국공내전에서 마오쩌둥이 이끄는 인민해방군이 승리하고 대륙에 공산 국가가 수립되면서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공산화가 촉진[2] 될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애치슨 라인 역시 이러한 배경에서 설정되었다.
이미 그 시점에는 1947년부터 시행된 일본국 헌법 제9조에 따라 일본의 육해공군 보유가 금지되어 있었지만, 미군은 자세를 180도 바꾸어 존 덜레스(John F. Dulles) 등을 특사로 보내 일본의 재무장을 요구했다. 그러나 시데하라 내각의 외무대신이자 후임 내각총리대신이었던 요시다 시게루는 아예 재무장할 생각이 없었고, 오히려 미군에게 일본의 안보를 맡기면서 경제 성장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요시다 독트린).[3]
요시다 독트린에 따라 일본은 냉전에 뛰어들지 않고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병력만을 보유하겠다고 선언했으며, 결국 6.25 전쟁이 발발하자 경찰예비대(警察予備隊)와 해상경비대(海上警備隊)라는 준군사조직이 창설되었다. 6.25 전쟁에 파병 중이던 미국은 서둘러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미일안전보장조약을 체결하면서 일본의 국권을 회복시켰고 연합군 최고사령부는 일본에서 철수했다. 기존까지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일본에 주둔했던 미군은 '주일미군'으로 전환되어 계속 주둔하게 되었다. 이후 1954년, 경찰 예비대와 해상경비대가 자위대법의 제정에 따라서 통합되면서 자위대가 발족하였다.
2. 명칭[편집]
1954년 7월 1일 시행된 자위대법에 따라 자위대라는 준군사조직이 창설되었다.[4] 한국 국내에서는 일본 문화 개방 이전까지 '방위대'라고도 불렸다.[5] 한일관계가 정식 수교도 없을 정도로 나빴던 1950년대[6] 에 한국 언론들은 자위대에 관한 정보를 얻기 어려웠기 때문에 육상자위대를 육상방위대, 지상방위대라 부르거나 해상자위대를 해상방위대, 해양방위대라 부르고 항공자위대는 공중방위대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1960년대에 가면 이런 명칭은 사라지게 된다.
베트남에서는 자위대를 Tự Vệ Đội(뜨베도이, "자위대")라고 부르지 않고 Lực lượng Phòng vệ Nhật Bản(륵르엉퐁베녓반)[7] 이라고 부르는데 직역하면 "일본방위역량"이지만 이쪽도 자위대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아시아의 일부 공산주의 한자권 국가에선 군 조직을 부르주아의 앞잡이로 취급하며 국방을 담당하는 조직을 'XX무력'이라고 부른다.[8] 대표적으로 북한이 러시아 연방군을 '로씨아련방무력'이라고 부르는 것이 있다.
자위대에서 근무하는 이를 자위관이라고 한다.
3. 군대와의 비교[편집]
일본은 일본국 헌법에 따라 타국으로부터 침략이 있지 않은 한은 먼저 전쟁 선포를 할 수 없다. 즉, 자위권만 있고 교전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자위대라는 애매한 이름이 붙은 것이다. 자위대의 태생은 기본적으로 경찰예비대(육자)와 해상경비대(해자)에서 출발한 형태이며, 적의 침공 등 고강도의 무장을 요하는, 경찰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에만 투입되는 치안 기관이었다. 따라서 자위대의 계급이나 직제에는 '군(軍)', '병(兵)'이 들어가지 않고 '관(官)'[9] 같은 다른 용어로 대체되어 있다. 예를 들면 구 일본제국 육군의 방면군은 방면대로, 보병은 보통과로, 계급명에 소중대가 아닌 숫자를 사용하는 등 군대느낌을 최대한 뺐다.日本國憲法 第九條
日本國民は、正義と秩序を基調とする國際平和を誠實に希求し、國權の發動たる戰爭と、武力による威嚇又は武力の行使は、國際紛爭を解決する手段としては、永久にこれを放棄する。
前項の目的を達するため、陸海空軍その他の戰力は、これを保持しない。國の交戰權は、これを認めない。
일본국 헌법 제9조
일본 국민은 정의와 질서를 기조로 하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망하며, 국권이 발동되는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및 무력 행사는 국제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서 영구히 포기한다.
전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육해공군 및 기타 전력을 보유하지 않는다. 국가 교전권은 인정하지 않는다.
헌법으로 군대가 아님을 명시한 문장.
오늘날 정규군을 두고있는 대부분의 국가는 헌법에 군대의 존재 근거와 국가원수가 군 통수권을 가짐을 명시해놓는다. 그러나 일본국 헌법은 일본이 군대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만을 명문화하였으며 법률인 자위대법에만 자위대의 존재 근거와 내각총리대신이 자위대 최고지휘감독권을 가진다는 것을 명시해두었다.
이 밖에 자위대의 애매한 존재를 확정하는 헌법의 조항은 따로 없다.[10] 즉, 헌법을 문장 그대로 해석하여 육해공'군'은 없지만 육해공의 경비 및 치안 유지를 위한 '무력'은 있는 것이며, '국가 교전권'도 없지만 자위적 '전투권'은 있는 것이다. 그나마도 아직 요시다 독트린이 유효하던 1960-70년대 당시에는 '경제 성장을 위해 최소한의 국방비만 투자한다'는 철학이 있었으나, 고도성장기 이후 전공투 등 사회 운동이 사라지고 일본의 외교적 입지가 커짐에 따라 점점 적극적인 군비 확충 시도가 이어졌다. 소련이 붕괴되고 냉전이 종식된 이후에는 아예 일본의 보통국가화 목소리도 커졌다.
오늘날 자위대가 헌법에 근거를 두지 않고 존재하는 것은, 일본 내에서는 진보와 보수 모두에게서 논란이다. 진보계의 경우 '자위대가 헌법 9조를 무시하고 운용된다. 자위대는 초법적인 기관인가?'하는 비판이, 보수계의 경우 '헌법 9조의 애매한 정의 때문에 자위대가 무슨 활동을 하려고 해도 항상 논란이 생긴다! 이러다가 일본의 안보에 중대사가 터지면 어떻게 대처하려고 그러나?'하는 불만이 있다. 이에 집권당인 자유민주당의 아베 신조 전 총리는 개헌을 통해 헌법에 자위대의 존재 근거를 명문화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이런 어중간한 지위 때문에 엄연히 쿠데타인 삼무사건 적발도 경시청에서 했으며, 벨렌코 중위 미그기 귀순 사건 때도 준전시상태인데 자위대가 경찰로부터 통제를 당하고 사건 현장에 출입도 못 하는 등 다른 국가 입장에서 보면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11] 이 때문에 실제로 경찰과 자위대 간의 알력은 의외로 강하며 자위대 월급의 기준은 경찰 월급 기준으로 받는다. 카리브해나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들은 별도로 군을 운용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자위대처럼 경찰 형태의 조직이 국방 업무를 맡거나, 경찰 내에 특수부대의 형태로 육상 병력을 두거나, 해안경비대가 해군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일본은 매우 큰 섬나라라서 단순 비교는 어렵다.
사실 자위대가 준군사조직이라기보다 정규 군대로서의 성격이 더 강하다는 주장 역시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 일본 국내의 법적 지위에 한정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본다면, 자위대는 많은 군사력 통계에서 타국의 군대와 동등하게 취급된다. 세계의 어떤 정보기관이나 외교기관도 일본에 공권력만 있고 군사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는 일본의 자위대가 다른 준군사조직과는 차원이 다른 규모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타국에 국방을 위탁하면서 자국의 기술로 스텔스기와 초음속 미사일을 연구하는 나라는 일본 말고는 없다. 서방 국가(제1세계)의 경우 자위대를 우호 전력의 하나로 계산하며, 반대로 구 공산권 국가의 경우 잠재적 위협으로 분석한다.
국제법으로 가면 더욱 널널해서, 준군사조직도 교전권자로 인정받으며 상비군과 다른 어떠한 제한이 없고, 결과적으로는 일본의 흔한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처럼 간판만 그렇게 단 군대나 다름없다. 미국 등 타국에서도 공식적인 문서가 아닌 일반 서적이나 방송 등에서는 '일본군(Japanese military)'이라는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며 군사조직의 일부로 본다. 그렇기에 일본에서는 일본국 헌법을 개정하여 자위대를 '방위군'이나 '국방군' 등으로 개칭하여 일본의 정식 군대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2012년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은 재집권에 성공하면 보통의 군에 가깝도록 법제를 고치고 명칭도 '국방군'으로 바꾸겠다고 공약하기도 했다.[12] 자민당이 재집권한 2013년 이후 선제 공격용 무기 보유까지 재추진하기 시작하기도 하였다. # 그러나 일본 대다수의 여론은 자위대를 일반 군대로 바꾸는 것에 부정적이다. 2013년에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을 밀어내고 자민당이 압승한 이후로도 아직 개헌에 필요한 2/3선을 확보하는 것은 난망한 상황이었다. 2013년 3월에는 여론의 압도적인 반대로 인해 흐지부지 된 상태로 논점 자체가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닌 주일미군을 얼마나 더 유치할까로 전환됐다. 자민당의 국방군 전환, 즉 군대 재건 시도는 과거사 문제를 둘러싸고 주변국들(한국, 중국)은 물론 일본 국내 여론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해 사실상 무산되었다.
그러나 명칭 변경만 무산되었을 뿐, 공격용 무기 개발 및 도입 예산은 전부 집행되어 장거리 스탠드 오프 대지 미사일 도입과 더불어 자국산 장거리 순항 미사일관련기사, 심지어 사실상의 탄도 미사일인 도서 방위용 고속 활공탄의 개발까지 추진되고 있다. 현재 일본 자위대는 전수방위 원칙에 따라 대지공격용 순항 미사일을 운용하지 않고 있는데, 보유 시도 자체는 몇 번인가 있었지만 일본 공산당과 공명당, 민주당 등 진보 진영의 반대로 전부 무산되어 왔었다. 하지만 중국의 팽창과 북핵 문제로 인한 아베 신조 정권의 적 기지 공격 능력 확보 방침에 따라 다시 도입이 추진되고 있으며 미국의 JASSM-ER, 노르웨이의 JSM 등이 구입되었고 아예 이즈모급을 개조한 항공모함 보유까지 결정되었다.
민주당의 경우엔 헌법은 그대로 두고 해외에 파병할 수 있는 별도의 군 사령부를 만들자는 방침을 내세웠다. 공명당도 이와 비슷한데 일본국 헌법을 고치지 않고 자위대의 다국적 피스키퍼에 관한 법적 근거만을 추가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이는 자유민주당의 견해와 달라서 2014년에 문제가 되기도 했다. 일본 공산당은 초기에 자위대 해산을 주장했지만 현재는 자위대의 군대 전환 반대 및 자위대 축소 정도의 온건한 주장으로 선회한 상태이다.
한국군과 자위대의 탄생 과정은 아주 비슷했다. 한국군의 경우엔 소련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병력 전개에 소극적이던 미군정에 의해 경찰의 보조부대인 경찰예비대로 창설됐다. 줄여서 '경비대'라 하며 조선경비대나 조선해안경비대가 이에 해당한다. 조선경비대의 경우엔 초반에 무장폭동 등에 대응하는 훈련을 했다. 이후 소련과 관계가 완전히 틀어지면서 미국은 한국군을 정식 창설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꿨다.
자위대의 경우엔 본래 미국은 경찰 외에는 따로 일본에 무장조직을 두지 않을 생각이었으나 냉전의 시작과 함께 소련과의 관계가 틀어지면서 일본의 재무장을 검토하게 되고, 1949년 중국 대륙의 중화민국이 중화인민공화국에게 밀려 대만으로 옮겨 가면서 위기 의식이 커지자 본격적인 입안에 들어가고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공식적으로 경찰예비대 창설로 이어진다. 일본의 경찰예비대 역시 한국의 조선경비대와 마찬가지로 경찰을 보조하는 무장집단으로 출발했지만 일본의 전술적 역할이 커지면서 사실상 군이 되었다. 심지어 일본군(한국의 경우엔 만주군까지) 출신들이 초기에 대거 입대했단 점도 비슷하다. 심지어 구성원조차도 한국군의 경우엔 뒤에 한국광복군 출신들이 일부 입대하긴 하지만 장교들의 가장 큰 파벌은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들이었고, 자위대에도 '내무군벌'이라 하여 경찰 계통의 인원들이 입대하지만 주류는 구 일본군 출신들이었다. 다만 다른 점도 많은데 한국군은 장교단을 구성한 뒤에 사병을 모병한 데 비해 자위대는 사병을 모집하고 소대장, 중대장 등의 초급 지휘관을 배치한 뒤에 총감과 연대장 등의 고위 장교를 모집했다. 서로 반대로 모병한 셈. 그리고 결정적으로 한국군은 정식 군대로 출범하였지만 자위대는 끝내 정식 군대는 되지 못하였다. 이는 일본은 전범, 한국은 피지배국이라는 역사적인 장치가 작용한 덕.[13]
해상자위대를 대표적인 예시로 든다면 냉전이 가시화되면서 동아시아 해역에서 미군을 보조할 전력으로 창설되었기에 미국의 입김이 많이 들어갔는데 여기서 큰 역할을 했던 사람이 알레이 버크. 알레이 버크 제독과 절친했던 백선엽 장군이 2000년 해상자위대의 관함식에 참가해 야마모토 야스마사(山本安正) 전 해상막료장에게 "당신들은 버크 제독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내에는 비공개였지만 이것을 번역한 사람의 글이 있으니 시간이 되면 찾아보자.
최근 안보법제 개정이나 전력 팽창을 이유로 들어 이러한 일본의 기조가 바뀌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또한 중국 해군력의 팽창에 따라 미국의 묵인 하에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사실상 일본 자위대는 여전히 미국의 보조 개념으로 돌아가고 있다고 봐도 된다.
자위대 기념일은 11월 1일이다. 자위대가 설립된 건 1954년 7월 1일인데 정작 기념일은 11월 1일이다. 그 이유는 태풍 오는 여름에 기념식을 치르면 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서 그나마 괜찮은 가을로 날짜를 옮겼기 때문이다. 참고로 1년에 1회씩 돌아가면서 육자대가 주최한 "중앙관열식(中央観閲式)"[14] , 해자대가 주최한 "관함식(観艦式)", 항자대가 주최한 "항공관열식 겸 햐쿠리기지 항공제(航空観閲式·百里基地航空祭)"[15] 를 치른다.
2014년 7월 1일에는 일본 자위대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각료회의에서 의결이 났다. 이로써 자위대는 해석에 따라 타국의 전쟁에도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게 된 셈이라 귀추가 주목된다. 중국 정부를 비롯한 인근 국가들은 일제히 자위대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한 신중한 결정을 요청했으며, 해당 국가의 요청이 없는 경우엔 결코 자위대의 해외 활동을 용납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물론 아베 내각도 중국 정부 및 인근 국가들의 요청을 우선시한다며 선을 그은 부분이다.
2015년 4월 미국 정부는 사실상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는 방향으로 외교 정책 기조를 바꾸었다. 2015년 4월 27일 미국의 존 케리 국무장관과 애슈턴 카터 국방장관, 일본의 나카타니 겐 방위대신과 기시다 후미오 외무대신은 2+2회담을 통해 미일방위협력지침을 수정했다. 미국과 일본의 연합작전범위가 전 세계로 확장되는 게 해당 수정의 주요 골자인데 이에 따르면 한국 정부의 동의 없이도 미군이 필요로 할 경우 자위대가 한국으로 파견될 수 있다고 한다. 실질적으로는 좀 더 얘기가 진척되어야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 부분은 사실이 아니다. 한국 정부와 국방부에서는 한국의 동의가 없으면 절대 자위대는 한국 상륙이 불가능하며, 미국과 일본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한국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것으로 밝혔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자위대를 극도로 싫어하는 한국 국민들이 미-일 맘대로 자위대를 한국에 상륙시킨다고 하면 그 뒤에 일어날 일은 뻔할 뻔자다.관련기사 2015년 9월 19일에 관련 법안이 통과됨에 따라서 자위대는 1945년 이후 70년 만에 사실상의 군대로 거듭났다. 이 법은 2016년 3월 29일 0시를 기해 발효되었다.
2022년 12월 16일에는 안보 3문서를 개정해 반격능력 보유를 명기하고, 5조엔을 들여 극초음속 무기 및 순항미사일 등 공격용 무기를 대거 개발하거나 도입하기로 하면서 전수방위의 원칙 역시 사실상 무력화시켜버렸다. 이로써 자위대는 자위대라는 명칭만 걸어놓고 완전히 보통 군대화되었다.#
3.1. 수뇌부[편집]
최고 통수권자는 내각총리대신이다. 총리대신은 최고지휘감독권(最高指揮監督権)을 가지는데 이는 통수권에 해당한다. 역대 내각총리대신은 역대 내각총리대신을 역대 방위대신은 역대 방위대신을 역대 막료장들은 자위대/역대 막료장을 참고할 것.
보통 입헌군주제 국가의 경우 명목상의 통수권은 군주가 가지고, 실질적인 통수권은 정부수반이 가지나, 일본의 천황의 경우 명목상의 통수권도 소유하지 않는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군부의 폭주를 겪었고 이에 대한 반성으로 문민통제를 중시한다. 미국이 시스템을 이식한 것도 있고. 일단 문민통제가 중시되는 일본의 특성상 이들은 서열상 통합막료장보다 위에 있다.
3.1.1. 지휘부 및 주임원사단[편집]
더 자세한 정보는 장성급 장교들은 자위대/장성급 장교 문서를 참고할 것.
본래 자위대는 1954년 창설 이후 육해공 자위대의 막료장들이 각자 작전권을 행사하는 3군 병립제를 채택했고, 막료장들로 구성되는 통합막료회의를 운영해 왔다. 그 수장인 통합막료의장은 지휘권은 없이 육해공 자위대의 의사조율 역할만 수행했다.
하지만 2006년부터는 통합막료회의를 일종의 상설 합참본부인 통합막료감부로 바꾸었고, 통합막료의장도 총괄적 지휘권을 행사하는 통합막료장으로 바뀌면서 지위 및 권한이 강화되었다. 이는 1990년부터 실시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행 합동군 체제와 유사하다. 다만 육군 출신이 전통적으로 합참 주요 직위를 독식해 온 대한민국군과는 달리, 자위대는 육해공 출신의 비율이 균형적인 편이다. 요시다 요시히데까지 역대 통합막료의장과 통합막료장 31인 가운데 16명이 육자대, 9명이 해자대, 7명이 공자대 출신이다. 육자대가 절반 정도이긴 하지만 애초에 자위관 인원 비중이 3:1:1 수준에 예산도 5:3:3 수준으로 육자대의 비중이 높은 걸 생각하면 골고루인 편이다.[21]
일본의 자위관들은 정치적 중립이 상당히 중시되므로 정치적 성향이라든가 헌법에 대한 의견을 드러내는 일이 아주 드물다. 많은 이들의 생각과 달리, 현대 일본에서는 적어도 자위대 자체는 군국주의적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며 무관에 대한 문민통제가 제대로 이뤄지는 편이고, 자위대 내부에서 누군가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순간 자위대 전체가 뒤집어지기도 한다. 오히려 당사자인 자위대보다는 일본 정치권에서 자위대의 정식 군대화를 밀어붙이며 여러 잡음을 만들어내는 편이다.
육상/해상/항공막료장은 대장급이며, 최선임계급이름과 보직 이름이 동일하다.
해상자위대만 해군 원사에 해당하는 해조장 계급의 자위관이 주임원사를 맡으며, 다른 곳은 준위가 맡는다. 일본의 주임원사는 21세기에 도입됐으며 해상자위대가 2003년으로 가장 빨랐고 육자대와 공자대는 2006년에 도입했다. 통합막료감부의 경우에는 2012년에 합참주임원사에 상당하는 최선임하사관을 설치했다.
3.2. 일본군과의 연계[편집]
1950년에 경찰예비대를 모집했을 때 일본군 장교 출신(종전 당시 사관생도는 민간인으로 구분)은 공직추방령에 따라 배제했다. 징병으로 끌려간 일본군 사병의 경우에는 배제하면 민간에서 인원 유입 자체가 힘들어서 추방령에서 제외됐다. 민간에서 800명, 관공서에서 200명을 추천받아 이등병으로 입대시킨 뒤에 간부교육을 하였다. 그러나 내무성 출신의 경찰 출신들은 지휘운용 등에서 단점을 보였고 6.25 전쟁에서 군경력자 지휘관들이 전쟁을 잘 지휘하자 미국은 방침을 바꿔 1951년부터 종전 당시 위관급과 영관급(일본으로 치면 좌관급 장교)은 중령까지 입대를 허용했다. 1951년에 405명의 영관급과 407명의 위관급 구 일본군 장교 출신들이 채용되었다. 1952년 7월에는 대령급 11명이 특별입대하기도 하였다. 초기 인원은 분명히 군 경력이 없는 경찰 내무관료들이 주축을 이뤘지만 1950년대 후반까지 조직을 확대해가면서 육자대의 장교는 일본군 장교 출신의 비율이 절반 이상을 넘게 되었다.
1954년 7월 1일에 육상자위대의 중장은 11명이었는데 하야시 게이조를 중심으로 한 내무군벌, 즉 내무성(조선총독부 출신 포함) 출신이 7명, 일본육군사관학교 출신이 4명이었다. 그러던 것이 1961년 육자대 중장 진급에서 육사가 4명, 일반이 1명으로 비중이 줄어들었다. 1962년부터 1968년까지의 중장 진급자를 살펴보면 32명 가운데 내무각료 출신이 1명, 육사가 5명, 육사가 26명일 정도로 육사 출신들이 강세를 보이게 된다. 1970년대부터는 일반간부후보생의 비중도 좀 늘어나게 되는데 이는 내무군벌 출신들이 군에서 거의 전역했기 때문이었다. 1980년대에 가면 거의 일반간부후보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육사 출신도 나이 문제로 거의 없게 된다. 1980년대 말에 가면 방위대학교 출신들이 예전 사관학교 출신들의 위상을 차지한다. 출처
해상자위대의 경우 해상보안청에서 해상경비대를 분리해냈을 때 장교의 98%, 부사관의 99%가 일본군 해군 출신이었다. 이는 초기의 해상보안청 자체가 일본제국 해군의 소해부대를 분리해낸 것이기 때문이었다.
항공자위대의 경우에는 주로 일본제국 육군 항공대 출신들이 주를 이뤘다. 해군 항공대 출신도 참여하긴 했지만 육군 출신들이 많았고 그때문에 해군보단 육군에 가까운 문화가 되었다.[22]
전후에 미국식 군 체계를 받아들이면서도 자위대/계급에선 일본군/계급의 특성이 드러난다.
- 장성급 장교가 대장-중장-소장-준장의 미국식 체계가 아닌 대장(4성)-중장(3성)-소장(2성)의 일본군 체계를 따른다. 일본군에 원수가 있긴 했지만 그냥 직책이었을 뿐 공식적인 계급은 대장이었다. 천황이 맡은 대원수는 제외. 2010년대 들어서 카운터파트 격으로 준장을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는 하고 있지만 실제로 도입하진 않고 있으며 대신 대령의 일부 보직에게 장성기나 성판 등에서 1성 장성 표식을 쓸 수 있도록 한다.
- 부사관의 경우 조(曹)란 표현을 쓰는데 이는 구 일본군 계급인 군조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일본군 부사관의 최선임을 가리키던 표현인 조장 역시 그대로 흡수되었다. 준위가 별도의 준사관이 아닌 부사관이 진급해 그대로 올라가는 형태 역시 대한민국 국군이나 미군과는 다르다. 영연방 국가에서 준사관이 상급부사관으로 나타난다. 단 준사관 계급 신설은 1970년으로 좀 늦었고 부사관도 3단계에서 4단계로 변한 것은 1980년이었다.[23]
- 경찰예비대나 해상경비대, 보안대, 경비대 시절에는 계급 구조는 군대와 비슷해도 경찰과 비슷한 계급명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1954년 자위대에 이르면 장관, 좌관, 위관급을 부활시켜 쓰게 된다. 단 대-중-소를 1-2-3으로 바꾸었다. 부사관이나 병의 경우에는 일본군 시절에도 1-2 용법을 쓰긴 했다. 일등병과 이등병, 일등병조와 이등병조 등. 이미 이런 용법으로 60년을 썼기 때문에 국방군이 되더라도 계급 명칭을 대-중-소로 돌릴지는 의문이다.
- '○' 안에 육·해·공을 붙여넣으면 각각 육상·해상·항공자위대의 계급명이 된다.
- 구 일본군의 정신을 이어받아 가르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게 해자대의 5성, 3S정신(일단 내용 자체만 놓고 보면 교훈적인 내용이다. 구 일본 해군의 해군병학교 시절부터 있었던 거라 영 거시기해서 문제지(...). 자세한 건 해상자위대 문서 참고). 그리고 일본의 "계간 전쟁책임 연구 제65호 2009년 가을호" 에서는 "자위대와 역사 문제" 특집 기사에서 자위대 예산으로 설치 및 운영되고 있는 여러 자위대 주둔지 내부의 박물관들이 구 일본군 관계자들의 전쟁사 기술, 유물, 유서 등의 유품을 무비판적으로 전시하고 있기에 사실상 자위대가 일본군의 정신적 후계자들임을 간접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 없는 실태를 비판하기도 했다. (<자위대 관련 군사박물관 자료집> - 1 2 3 4 5 6 7 8 9 10)
- 자위대/병과에서 병과 명칭을 바꿨다. 민간의 밀덕들은 일본군이 호칭하던 형태가 더 익숙하다. 자위대는 징병제가 아니라서 일본 밀덕 내에서 군이나 자위대에 다녀오는 사람은 극소수이다보니 자위대의 정식 호칭보다 민간에서 계속 입에 붙던 옛말이 쓰이는 경향이 있다.
- 이래저래 구 일본군과의 관계를 지울 수는 없지만, 이는 제로 베이스에서 군대를 뚝딱 만들어 낼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에 가깝다. 하다못해 동네 식당도 운영노하우를 배워서 창업하는 마당에 수십만명의 거대조직인 군대는...실제로 한국군조차도 창군초기는 만주군이나 일본군 출신 자원이 절대다수였는데 하물며 본국인 일본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도 군사적으로 미국의 극동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일본이고 직접적으로 미국이 창설에 관계하다보니 최대한 구 일본군과 선을 그으려 노력은 하는 조직이다. 위에 설명된 계급명칭이나 병과명을 굳이 한자문화권에서 통용되는 기존 계급명이 아닌 1, 2, 3좌로 칭하는 것도 그렇고. 당장 옛날처럼 굴려고 했다간 그 땅에 주둔하는 미군이 가만히 있지를 않을 테니 지금의 공무원화되어 빠진 군기도 그런 배경 하에서 생기는 해프닝. 육자대의 경우 구일본군시절 군가는 암묵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해자대에서 3S정신을 가르칠 때도 구일본군의 것이라 꺼림칙하지만 좋은 것은 좋은 것이라고 굳이 먼저 선을 긋는 등. 간부 교육때도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는 등(이 부분은 한국보다 훨씬 선진적인 것이, 국군은 당장 병사들에게 노태우 찍으라고 강요하고 표 조작해서 바치던 간부들이 아직 현역일 정도로 정치적 중립은 물말아먹은 것은 군필자라면 다 알 것이다) 여튼 한국내에서 왠지 안 좋은 이미지와는 다르게 오히려 우익세력과는 선을 긋고 있는 조직. 사실 안그랬다간 미국한테 박살날 수밖에 없다.
4. 예산 규모[편집]
일본은 아베노믹스의 양적완화 영향으로 2013년부터 달러환산 경제규모(명목 GDP)가 축소되는 중이다.
방위성의 예산은 2012년에 4조 6,453억엔이었다. 2013년은 달러로 593억 달러 수준으로 일본 GDP의 1% 수준이다. 한국은 2013년 예산 규모가 317억 달러로 GDP의 2.7% 수준이다. 일본이 한국 수준으로 방위비를 지출할 경우 1,601억 달러로 중국의 1,660억 달러(GDP 대비 2.0%)와 비슷해진다. 일본 정부의 재정적자가 워낙에 심해서 그렇지만 요즘 다시 방위예산을 증가시키고 있다.
자위대 군종별 예산은 4:3:3 수준이다. 육자대가 예산이 제일 많긴 하지만 인원은 타 자위대의 3배에 달하다 보니 꾸리기가 쉽지 않다. 예산의 40%가 급여와 식비, 피복비로 들어간다. 한국군도 41% 수준으로 비슷하다.
일본의 자위대가 2014년 예산으로 3% 늘어난 4.8조엔(460억 달러)을 의회에 요청했다. 전년도 방위예산은 4.6조엔이었다. 현재 일본의 대 중국관계와 엔화 약세를 감안하면 일본 정부의 방위예산 요구 증가분이 생각외로 상당히 적다.
일본과 중국은 현재 일본이 점유 중인 센카쿠섬을 둘러산 영유권 주장으로 팽팽한 긴장관계에 있다. 이 역학관계가 일본 자위대의 2014년 전력증강에 크게 반영된다. 따라서 예산의 상당부분은 항공력 투자에 집중된다.
그러므로 예산증가의 가장 큰 수혜자는 항공자위대이다. 자위대 예산안을 보면 항공자위대는 전년보다 7.8% 늘어난 1.9조 엔의 예산을 배정받았다. 2.4% 늘어난 해상자위대와 4.7% 늘어난 육상자위대와 큰 대조를 이룬다.
일본 자위대는 8가지 예산증가 요소 중 3곳에 예산을 주로 투자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3곳은 감청, 감시, 정찰(Intelligence, Surveillance And Reconnaissance, ISR)부분과 탄도탄 방어(BMD), 원거리 섬들에 대한 공격에 즉시 대응하는 전력투자 부분을 의미한다.
감청, 감시, 정찰(Intelligence, Surveillance And Reconnaissance, ISR) 강화를 위해 일본 측은 지상 정밀 감시를 위해 글로벌 호크 3기를 도입하는 한편, 해상을 더욱 정밀 감시할 수 있는 P-1 초계기를 대량 확보하고 있으며, C-2 수송기를 원거리 전파 정보 수집기로 개조하였고, E-767을 개량하여 조기경보통제기의 감시 능력을 더욱 향상 시키고 있다. 우주 부문에서는 내각 조사실 소속의 정찰위성 이외에도 민간 기구인 JAXA의 지구 감시 위성 및 World View와 같은 외국의 상업용 광학 위성의 운용권을 획득하고 있기도 하며, 여러가지 대공 레이더를 배치하는 한편, 적성국의 위성과 파편을 감시하는 미국 주도의 우주 감시 체제(SSA:Space Situational Awareness)에도 가입해 초장거리 심우주 감시 레이더 및 광학 센서도 설치할 예정이다.
탄도탄 방어 부문에서는 미국과 공동개발한 SM-3 Block 2A와 최신형 이지스 체계를 탑재한 새로운 이지스함 2척과 기존 이지스 레이더보다 몇 배의 탐지 능력을 가진 레이더를 탑재한 이지스 어쇼어 등을 도입해 BMD를 더욱 강화하고, 이와 연계하여 다른 어떤 나라들보다도 빠르게 미 해군의 해상 네트워크 원격 교전 시스템인 CEC를 도입하고 있으며, E-2D와 SM-6도 도입하고, 더불어 03식 지대공 미사일과 그 파생형 함대공 미사일에도 자국산 방공 미사일에도 비슷한 네트워크 원격 교전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는 등 막강한 방공 네트워크전 능력을 구축하고 있는 중이다. 또한 24개 포대를 보유한 패트리어트들을 모두 새로운 버전으로 리노베이션하고 사정거리가 연장된 MSE탄 역시 도입하고 있다.
원거리 섬들에 대한 공격에 대비하는 전력 투자에는 우선 보잉의 V-22 틸트로터기 확보에 예산 투입이 시작될 전망이라고 한다. V-22 확보 노력은 방어위주의 자위대가 공격으로 변모하는 상징하는 사업이라 할 수 있다. V-22확보는 일본의 해병대 창설 계획 논란과도 크게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항공자위대 역시 F-2에 JDAM과 Sniper 통합 타게팅 포드를 통합하여 대지 공격 능력을 강화하였고, 이후에는 F-35에 내부 무장할 수 있으며 대지 공격 능력이 있는 JSM의 취득을 확정 지은데다 F-15J와 F-2를 추가 개량하여 JASSM-ER과 LRASM 등의 장거리 스탠드 오프 미사일을 운용할 수 있도록 만들 예정이다. 거기에 더 해 자국산 장거리 스텔스 순항미사일과 더불어 사실상의 탄도 미사일인 도서 방위용 고속 활공탄까지 개발 중이다.
일본의 GDP 순위는 3위고 , 방위비 예산으로 GDP의 1%만 쓰고 있는데도 8위를 하고있다. 참고로 일본이 이렇게 GDP의 1%만 방위비로 사용하는 건, 과거 미키 다케오 총리가 일본의 군사 대국화에 제동을 걸기 위해 일본의 방위비 수준을 국내총생산의 1% 내로 제안하겠다고 밝힌 기준인 '방위비 1% 원칙'의 준수를 위해서다.기사
2022년 12월, 일본은 중국과 북한의 군사력 증강에 대응키 위해 방위비를 현재의 2배인 GDP의 2%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2023년부터 20% 이상 씩 증가시켜 2027년까지 10조 엔을 찍을 예정이다.
5. 인적 구성[편집]
자위대의 신분별 구성. 기준은 2013년 3월이며 방위성 홈페이지에서 참고하였다.
자위대의 군종별 구성.
자위대의 신분별 인원 충족 수준.
자위대에서 근무하는 인원은 자위관과 자위대원으로 불린다. 자위관의 경우엔 계급을 지닌 군인에 해당하며 자위대원은 자위대와 관련된 기관에서 근무하는 군무원이나 민간인에 해당한다. 가령 방위대학교 교장은 자위관은 아니지만 자위대원이다. 여기서 인적 선발은 자위관에 한하여 설명한다. 더 자세한 설명은 자위관을 참고할 것.
5.1. 지나치게 많은 장성급 간부[편집]
자위대의 장성급 간부의 숫자는 261명 정도로 세계적 기준으로 볼 때 많은 수준이다.[28] 그래서 중장에 해당하는 장(将) 계급이 사단장을 맡는 기괴한 구조라 장에서 계급 인플레이션이 심하단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장과 소장에 해당하는 1종 장보(将補)를 비교하면 장이 더 많다. 그 반면 준장에 해당하는 계급이 없어 장보 중 일부(이른바 2종 장보)가 준장 역할도 맡는데 그래도 모자랐는지 대령급인 일좌에도 1종을 두어 준장급 보직을 맡긴다. 대장급에 해당하는 막료장(幕僚長)은 4명이다(통합막료장, 육상막료장, 해상막료장, 항공막료장). 아래의 자료는 2010년과 2014년 자료 등이 좀 짬뽕 되었다. 다시 방위성 자료를 기반으로 정리하였다. 또한 1종 일좌는 별 하나짜리 성판을 붙일 수 있는데 만약에 이들까지 장성급으로 본다면 자위대의 장성 숫자는 500명 수준으로 한국군보다 더 많다.
출처: 해상자위대 장성, 2010년 장성, 방위성 출처
그나마도 1980년대에 봉급 개정을 하면서 장 40명을 장보로, 장보 70명을 일좌로 깎아서 이 정도이다.
5.2. 방위대학교의 장성급 독점[편집]
한국군도 사관학교 출신들의 장성급 독과점이 심한 편이긴 하지만, 자위대는 그 이상으로 심하다. 얼마나 심하냐면 무려 90% 수준이다.
방위대학교들이 고급 장교급을 독점하는데, 보통 이들은 대위급인 일위까지 진급이 보장된다는 점에서 소령이나 중령(자위대의 이, 삼좌에 해당)까지는 거의 보장되는 한국군보다 떨어져 보인다. 한국군은 해사나 공사의 경우 소령까진 보장이며 중령부턴 확신할 순 없다. 공군의 경우엔 소령 때 전역하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그렇기도 하다. 또 중령의 경우 육사 동기의 60%가 대령까지 가며 15%가 준장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일단 자위대는 소위급인 삼위만 되어도 54세까지 정년이 보장된다. 방대 출신들은 이르면 40대 초반에 대령급인 일좌를 다는 등 진급에서 상당히 유리하다. 방대33기(1985년 입학, 1989년 입대, 1990년 임관)[29] 의 경우 한국의 육사 45기, 해사 43기, 공사 37기(1985년 입학, 1989년 임관)에 상당하는데 2014년에 장성급에 진출했다. 한국의 경우 육사 44기(1988년 임관)가 2014년에 준장을 달았다.[30] 중장급의 경우 방위대는 2014년에 27기(1979년 입학, 1983년 입대, 1984년 임관)가 중장급인 장(将)을 달았는데 한국으로 치면 육사 39기, 해사 37기, 공사 31기(1979년 입학, 1983년 임관)에 해당한다. 한국도 육사 39기가 2014년에 처음 중장에 진출했다.
대장(계급)급인 막료장은 1991년 7월 1일부터 2014년까지의 막료장 41명(육자대 13명, 해자대 14명, 공자대 14명) 전원이 방위대학교 출신이다.
일본 내에서도 비판이 나오는지, 2013년부터는 중장급에서 의전은 높되 실권은 별로 없는 자리에 일반간부후보생 출신들을 배치하고 있다. 2013년 한국의 합동참모차장에 상당하는 통합막료부장에 마쓰무라 고로 육장이 일반간부후보생 출신으론 최초로 보임됐고 육군참모차장에 상당하는 육상막료부장에도 야마시타 유우키 육장이 임명됐다.[31] 2014년에는 한국의 해군작전사령관에 상당하는 자위함대사령관[32] 에 일반간부후보생 출신으론 25년만에 후나타 에이이치를 임명했다. 해당 자리들은 방대가 주요 장성급 자리를 점령한 1990년대 이후 죄다 방대 일색이었으나, 2010년대 들어서 처음으로 일반간부후보생 출신들에게 다시 개방되었다.
2015년 1월 기준이다.
장성급 장교 265명 가운데 육자대가 130명(49%), 해자대가 68명(26%), 공자대가 67명(25%)이다.
방대와 방위의대를 제외한 일반간부후보생 출신에게 가장 개방된 곳은 해자대로 장성급의 12%(68명 중 8명)를 일반간부 출신이 차지한다. 육자대는 10%(130명 중 13명) 수준이고 공자대는 6%(67명 중 4명)이다. 장(중장급)에서 살펴보면 육자대는 27명 중 3명으로 11%, 해자대는 15명 중 2명으로 13%, 공자대는 16명 중 1명으로 6% 수준이다. 장보(소·준장급)에서 살펴보면 육자대는 102명 중 10명으로 10%, 해자대는 51명 중 6명으로 12%, 공자대는 50명 중 3명으로 6% 수준이다. 전반적으로 공자대의 방위대/방위의대 독점이 높은 편이다.
장성급 장교 265명 가운데 방위대학교 출신이 223명(84%), 방위의과대학교 출신이 17명(6%), 그 외 간부후보생[33] 과정이 25명(10%)이다. 간부후보생 가운데 도쿄대학 출신이 7명으로 가장 많다. 그 외에는 가고시마대학, 가쿠슈인대학, 고쿠가쿠인대학, 교토대학, 규슈치과대학, 니가타대학, 니쇼가쿠샤대학, 일본대학, 도시샤대학, 도쿄학예대학, 센슈대학, 에히메대학, 오카야마대학, 와세다대학, 요코하마대학, 일본문리대학, 주오대학, 홋카이도대학이 각각 1명이 있다.
그나마 자위대에 ROTC 제도가 없어서 이 정도 선에서 끝났지 만약 자위대에도 ROTC가 존재한다면 진급경쟁은 이와는 비교도 안 되게 빡세졌을 것이며 저 병력 수에 장성만 한국군과 동일한 인원이 되는 무시무시한 비율을 자랑했을 것이다.
5.3. 간부 및 조의 강화[편집]
출처
1991년(헤이세이 3년)의 자위대 인적 구성은 아래와 같았다.
2010년(헤이세이 22년)의 자위대 인적 구성은 아래처럼 변화했다.
일반조후보생 등 조 진급을 전제로 한 장기복무자원의 입대를 늘리고 대신 임기제인 자위관후보생을 줄였다. 조를 두텁게 하며 전군 간부화까지는 아니지만 7할 이상을 간부나 조로 채운다. 그 때문에 평균연령이 1991년 32.2세에서 2010년 35.1세로 증가했다.
6. 인적 선발[편집]
자위대는 모병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법으로 징병제가 금지된 것은 아니다. 다만 군대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국 헌법에서 징병제를 실시하면 당연히 위헌 논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거기에 일본에선 국가에 의한 노역을 금지한 헌법 18조가 있는데, 이 부분 또한 일본제국 시절 국가의 무분별한 징병으로 인한 폐해를 경험하고 나온 조문이다.
결론적으로 징병제를 금지시키는 법이 없는 것은 애초 위헌이기 때문이며, 자위관도 군인이 아닌 민간인 신분이기에 모병제라고 하는 것도 사실 이상한 용어가 된다. 그냥 자위관은 법적으로는 경찰관이나 비슷한 신분이다.
그러나, 만약 일본이 헌법개정을 통해 보통국가가 되고, 만약에 한국과 같은 수준으로 일본남성 대상 18개월 이상의 징병제를 적용한다면 100만명이 가까운 병력을 운용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엔 기술집약적 군이 아니라 병력집약적 군으로 바뀌게 될 것이고 물론 일본의 사정상 당장 징병제를 적용하여 병력을 급속도로 늘리긴 힘들다. 애초에 막장이던 일본제국 시절의 경험, 전후 경제성장으로 인한 임금격차 등으로 인해 전후 세대에서는 군인에 대한 비하가 사실 심해진 때문도 크다.
자위관 모집 사이트
위의 표의 해는 1989년(헤이세이 1년)부터 2012년(헤이세이 24년)까지이다. 막대그래프는 연간 자위관 채용인원이며 꺾인 선 그래프는 18세에서 26세의 인구를 가리키는데 저출산으로 인해 1994년(헤이세이 6년)에 18-26세 인구가 1,700만으로 최대에 달했다가 2012년엔 1,100만까지 감소했다. 연간 자위관 채용은 1989년 2만 5천명 수준에서 2009년(헤이세이 21년)에는 1만 명 이하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1년에 신임 장교가 7천 명, 부사관이 1만 3천 명 이상, 병은 20만 이상이 입대하는 한국과는 다른 상황이다. 인구절벽에 다다른 현재는 자위대 충원율이 60%에 그칠 정도로 자원모집에 엄청나게 어려움을 겪도 있다. 지속적으로 지원자가 줄어들자 일본 정부에서는 자위대 지원가능 최대연령을 26세에서 32세로 파격적으로 올리기도 했다.
자위대는 경찰[34] 과 지위가 비슷하지만 능력만 있다면 말단부터 최고까지 신분 전환 없이 스트레이트로 올라갈 수 있는 단일계급 구조는 아니다. 준/부사관에서 장교로 진급하는 건 가능하지만 군번이 바뀌고 신분도 바뀌고 양성교육도 새로 받는다. 다만 경위처럼 30-40대 준/부사관들(간부후보생학교 입학일 기준으로 최대 50세까지 가능)이 소위로 진급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이런 경우 20대 후반의 방위대학교나 일반 대학 나온 간부후보생 중대장 밑에 40대 소대장이 근무하는 일도 생기는 것이다. 장교가 말이다. 미군의 경우에도 병부터 시작하여 부사관이 된 후 야간대학이나 온라인 대학, 학점은행제-미국이 원조임-를 통해 학사 학위를 취득하여 늦깎이 장교로 신분전환하는 경우가 꽤 되는 편이다. 미군 역시 민간 과정에서 장교 지원시 27세 정도로 연령 제한을 두지만, 앞에 서술한 바와 같이 병-부사관을 거친 자원들은 복무 기간만큼 장교 지원 연령을 연장해준다. 단 이것도 어느 정도 상한선이 있고 그 상한성은 장교 병력의 필요에 따라 고무줄처럼 변해왔기 때문에 딱 단정짓기는 힘들다.
한국의 공군항공과학고등학교와 비슷한 현장 실무형 간부 양성학교인 자위대생도 과정은 2010년 무렵 육상자위대의 고등공과학교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고등공과학교 졸업생의 경우 병과 부사관을 거쳐 매우 많은 사람이 장교로 진출하고 있으며, 방위대학교와 항공학생 진학을 통한 장교 진출 역시 고등공과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장려하고 있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고등공과학교 홈페이지에서 안내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07년(헤이세이 19년)의 자위대 입대자 수는 아래와 같다.
또한 자위대는 일본국적자만 입대가 가능하다.
6.1. 간부과정[편집]
자위대는 정식 군대가 아니므로 장교를 '간부'라고 칭한다. 통합 사관학교 격인 방위대학교에서 4년간 교육을 받은 뒤 각 군 간부후보생학교를 거쳐 임관하는 방대 과정과 민간 사회에서 대학교 학사 졸업 이상의 학력을 마친 뒤에 각 군 간부후보생학교를 거쳐 임관하는 간부후보생 과정이 있다. 모든 과정의 간부들이 결국엔 간부후보생학교를 거친다. 한국처럼 사관학교 졸업 후에 바로 임관하지 않는다. 자위대대비학생이라 하여 자위대에서 학비를 대준 사람들도 간부후보생학교에서 교육받는다. 보통은 삼등위(소위에 해당)로 임관하지만 군의관은 이등위(중위에 해당)로 임관하기도 한다. 조사(부사관, 병) 중에서도 요건을 갖추면 시험을 통해 간부로 진급한다. 물론 이들도 예외없이 간부후보생학교에서 교육받는다.
준위는 한국에서처럼 통번역준사관이나 헬기준사관처럼 준사관후보생을 민간에서 취득하는 경우는 없으며, 조장(원사에 해당)에서 진급한다.
6.2. 조사(曹士)과정[편집]
부사관에 해당하는 조(曹)와 병에 해당하는 사(士)는 모두 이사(이등병 해당)부터 시작한다. 다만 과정에서 일반조후보생과 자위관후보생이 다른데 일반조후보생은 처음부터 장기복무자원으로 구분되어 이사부터 시작해서 조가 되며 자위관후보생은 임기제 계약으로 사장(상등병~병장 해당)까지 진급한 가운데 시험을 통과한 일부만이 삼조(하사 해당)로 진급할 수 있다. 다만 부적격이다 싶은 일반조후보생은 사장에서 전역을 권유받는다. 일반조후보생 출신이라도 실제 삼조까지 진급하는 인원은 6할에서 7할 수준이라고 한다.
한국의 공군항공과학고등학교와 비슷한 고등공과학교 졸업생 역시 일반조후보생처럼 사 과정을 거친 뒤에 조로 승진한다. 다만 고등공과학교 졸업생의 신분은 원래 훈련병에 해당하던 계급인 삼사였는데 이 계급이 폐지되면서 그냥 공무원인 방위성 직원에 해당한다.
간호나 군악 등의 일부 기술조(기술부사관)들은 바로 조로 임용된다.
7. 교육훈련[편집]
자세한 내용은 자위대/교육훈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역사[편집]
자세한 내용은 자위대/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현황[편집]
해상자위대는 전 세계의 전문가들이 인정할 정도의 전투력을 가졌으며 해상자위대의 특징이라면 수상함 전력에 비해 잠수함과 대잠 초계기에 전력이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소련/러시아 해군의 잠수함 세력 견제라는 미국 측의 전략적 요구가 반영된 것이기라는 설도 있다. 그리고 해자대의 소해 능력 또한 우수하다고 평가받는데 , 이건 정말로 2차 대전 때 B-29가 뿌린 기뢰에 거의 모든 항구가 봉쇄되었던 뼈아픈 경험이였던 기아작전의 산물이다. 그 때의 기뢰가 얼마나 많이 뿌려졌고, 제거가 힘들었는지 원자폭탄이 투하되지 않았더라도 기뢰에 의한 해상봉쇄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항복했을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실제로 아직도 그때 뿌린 기뢰가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미 해군이 힘들고 손 많이 가고 귀찮은 분야인 대잠작전 및 기뢰 소해 작전을 해상자위대에 대부분 떠넘기려는 의도까지 더해졌다.
야전급수차나 샤워시설, 야전 엠뷸런스등 장병복지는 선진국형 군대 수준이다. 자위대가 모병제를 채택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다른 징병제 국가보다도 심각하게 뒤떨어진 한국군의 열악한 장병복지를 비교해 봤을 때 부러울 수밖에 없다.
특수부대로는 해자대 특별경비대, 호위함 입입검사대와 육자대 특수작전군이라는 부대가 있는데, 종군기자 태상호 씨의 말에 따르면 자위대 특수부대원들의 소질은 국내 특수부대원들과 비교했을 때 좀 더 낫다고 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실제로 자위대 레인저 코스에 지원하는 자들 상당수가 사회에서 스쿠버다이버 면허를 따거나 록클라이밍협회 회원 자격을 얻고 오는 등 처음부터 열성적인 자원들이 많기 때문이다. 육상자위대 특수작전군, 소위 'JSOG'를 예로 들자면, 창설 초기에 인원들을 선발하는 방식이 매우 독특했는데, 선발기준에 부합하는 실력을 가진 지원자들 중 부대에 뼈를 묻을 사람들만 골랐다. 가족이 없거나, 있어도 가족관계에 연연하지 않거나, 집이 너무 가난해 부대를 집으로 삼을 사람들이나, 남부러울 것 없는 환경이지만 이런 모험을 꼭 해봐야겠다는 의지가 굳은 사람만 골라 선발했다고. 이들 중에서도 소수만을 선발해 부대를 편성했으며, 그랬기에 부대를 가정처럼 여기고 열의가 뛰어났다고 한다. 다시 이들 중에서도 인원들을 따로 골라낸 후 델타 포스의 한 스쿼드런에 파견시켜 한바탕 굴린 인원들을 중심으로 부대를 창설한 뒤, 전술교관계의 스타강사라고 할 수 있을 래리 빅커스나 켄 해커손에게 전술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훈련경험은 웬만한 특수부대에도 꿀리지 않는 수준인듯.
2011년 도호쿠 대지진으로 인한 신속한 피해복구, 실종자 수색과 활발한 대민지원 활동으로 자위대의 대외이미지가 상당히 높아졌다.# 하지만 4월 13일 3등 삼등육조 M씨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에 배치되자 원전에 대한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민간인 차량을 탈취해 도주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M씨는 경무대에 체포된 상황이고 면직처분된 상황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일본에서는 엄청 까댔지만 해외에서는 대개 "'나라도 저 상황되면 탈영하겠다."'며 이해해 주는 분위기다. 언론에는 안 알려졌을 뿐이지 M씨와 같은 이유로 탈영하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고 한다.
최근에는 자위대의 재무장도 점점 속도가 붙고 있다. 특히 2013년 8월 이후에는 이런 움직임이 눈에 띄게 잦아졌는데, 이즈모 호위함이 진수되었고, 9월에는 ICBM 전용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는 엡실론 로켓이 시험발사되었다. 앱실론은 고체연료를 사용하여 발사준비 준비 기간이 상당히 짧다. 군사적으로 전용될 경우, 액체연료를 사용하여 발사 준비기간이 며칠씩 걸리는 북한의 대포동/은하 로켓보다 오히려 더 위협적일 수 있다는 뜻. 아베 총리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합헌으로 바꾸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으며, 심지어 수륙양용 장갑차와 강습상륙함, MV-22 오스프리까지 도입할 예정임을 발표, 사실상 공격용 부대와 다름없는 해병대(육전대)를 만들 작정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일본이 2013년 연말을 목표로 준비 중인 방위계획대강 중간 검토 보고서에 '해병대와 유사한 성격의 부대'라는 내용을 명시했다. 또한 F-2 개량과 F-35 도입 등으로 항공자위대의 대지타격능력도 강화할 예정이다. 일본은 유사시 중국과 분쟁 중인 센카쿠 열도를 비롯한 도서지역 탈환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는 상황. 그동안은 육상자위대의 일부 병력을 대상으로 상륙훈련을 실시해 왔다. 명칭은 수륙기동단이며 규모는 1개 여단급인 약 3천명 정도이다.
9.1. 해외파병[편집]
자위대의 전신인 해상보안청의 소해부대를 포함하면 1950년 6.25 전쟁이 벌어지던 당시에 한국 연해에 소해 부대를 파견한 것이 최초이다. 이들은 특별소해대(特別掃海隊)라고 불렸으며 연합군의 요청에 따라 한반도 연해에 왔다. 1950년 9월 11일 미합중국 해군 7함대 사령관은 한반도 근해의 기뢰 제거를 지시했는데 UN군 소속 내에 소해부대는 소수였다. 10월 6일에 미 극동 해군사령관은 일본 소해정을 사용할 것을 지시했다. 법적근거는 1945년 9월 2일에 공포된 연합국최고사령관 지령2호였다. 당시 지령에선 일본군 해군이 태평양 전쟁 동안 엄청나게 깔아놨던 기뢰를 대본영 하의 소해부대가 한반도와 일본 근처의 수역에서 제거하도록 했다.
다만 한반도가 전쟁 중인 걸 감안할 때 군사조직이 아닌 해상보안청의 소해부대가 군사적 성격의 임무를 맡는 게 옳냐는 문제가 제기됐다. 해상보안청법 25조는 비군사적 성격의 임무만을 맡도록 규정했다. 그래서 특별소해대는 일장기를 걸지 않고 국제신호기(E타입으로)를 걸었다. 내각총리대신인 요시다 시게루의 승인을 얻어 10월 16일에 해상보안청은 소해대를 파견했다. 지휘관은 일본군 해군 대령 출신이었던 타무라 큐조(田村久三) 항로개폐본부장이었으며 1소해대부터 5소해대까지로 구성됐다. 12월 15일까지 특별소해대는 46척의 소해정을 동원하여 27개의 기뢰를 제거했으며 원산 소해 작업에선 소해정 MS14호가 기뢰 제거 중 폭발하여 한 명이 실종되고 18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를 두고 당시 북한의 외무상이었던 박헌영은 1950년 10월에 성명을 내어 일본군이 참전했다고 비난했고 한국의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1951년 4월에 왜관에서 발언하길 일본이 전쟁에 참전하면 총부리가 일본으로 향할 것이라고 했다. 특별소해대는 반일감정을 고려하여 최대한 상륙하지 않는 방침을 취했으나 원산시에 가끔 상륙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군에 종사했던 병이나 부사관, 장교 대부분이 일제 치하를 겪었기 때문에 이들은 금세 특별소해대원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그 와중에 한국군인들과 한잔한 겁 없는 일본인도 있었다고 한다. 의외의 일이지만 재일 한국인들이 전쟁 당시에 한국군을 지원하기 위해 의용병을 모집할 때 재일 한국인이 647명 지원해 641명이 파병됐는데 일본인 150명 정도도 지원을 했다고 한다. 다만 대일감정 때문에 일본인들을 한국군 지원에 보내는 일은 없었다. 지원한 일본인들은 한일혼혈로 추정된다. 별도로 일본인 민간인 수천 명이 연합국에 의해 하역노동자로 한국의 주요 항구에 와서 일했다. 사실상 일본 정부가 NO라고 할 순 없어서 징용명령이었다. 1950년 11월 15일엔 원산 앞바다에서 예인선 LT636호가 침몰해 일본인 선원 22명이 사망하기도 하는 등 1950년에만 일본인 56명이 6.25 전쟁으로 사망했다. 그 후 자위대로 재편된 뒤에는 해외에 병력을 보내지 않았다. 베트남 전쟁에 특수부대를 파견했다는 주장(#, #2, #3)이 심심지 않게 나오나 확인된 바는 없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상황이 달라진다. 1980년대에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가 긴밀해지면서 일본은 환태평양에서 벌어진 미 해군 작전에 동참하게 된다. 버블 등의 호황과 더불어 일본의 국제적 위상이 커지면서 자위대는 헌법 9조의 말을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는 식으로 해외 파병을 정당화하게 된다. 1991년에 걸프전이 일어나자 6.25 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해상자위대 소속의 소해대가 페르시아 만에 파견된다. 일본에선 파병이란 말을 쓰지 않으며 파견이란 말을 사용한다. 주로 병참이나 소해임무와 관련되며 전투병력이 파병된 일은 없다. 1991년 6월부터 9월에 걸쳐 기뢰 소해 임무를 맡은 뒤 해상자위대는 철수했다.
그 후 피스키퍼 활동으로 참여하게 된다. 최근엔 필리핀에서 태풍이 발생하자 구호를 이유로 자위대를 파병했고 2013년 12월에 철수했다. 남수단에도 평화유지군으로 들어가있다. 남수단 재건지원단에 탄약을 지원한 일이 생기기도 했다. 2014년 1월 기준으로 현재 해외에 파병된 자위대는 남수단과 소말리아 근처의 해역에 있다. (자세한 내용은 일본어 위키백과 참조.)
정말 의외지만 육상자위대의 화학무기담당관이 수시로 중국에 파견되기도 한다. 부대가 가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 일본군이 버리고 간 무기 가운데 화학무기를 처리하는 일로 가는 것이니 파병이라 보긴 어렵고 속죄(?)라고 봐야 할 듯.
이라크에 있던 한국군과 자위대 장병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이라크와 쿠웨이트에 파병됐던 자위대원 중 25명(16명은 현역으로 자살) 정도가 자살했는데 방위성은 PTSD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들은 교전을 겪진 않았지만 기지로 로켓 공격을 받았다. 음모론 중에 이라크와 쿠웨이트에 갔던 자위관들이 자살이 아니라 실은 교전 중 전사했다는 설이 있다. 자위대의 파병 당시에 이라크 무장단체는 자위대의 철수를 요구하며 2004년에 일본인 코다 쇼세이를 살해하였다.
10. 한국과 자위대[편집]
1950년대에는 육상자위대를 지상자위대(地上自衛隊)라고 표기하고 항공자위대는 공중자위대(空中自衛隊)라고 표기하는 등 정보가 불확실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심지어 지상방위대(地上防衛隊)라고 표기한 기사도 있다.[35]
일본이 한국의 우방국인데다 자위대가 아직까진 한국에 딱히 해코지한 건 없지만 일제강점기의 기억이 남아있는데다 지금도 군기로 욱일기를 쓰고 있기에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자위대의 인식은 그리 좋지 않다.[36] 사실상 구 일본군을 보는 시선과 다를 게 없는편. 언론에서도 간혹 가다가 자위대의 재무장, 헌법 9조 어쩌고 하면서 경계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다. 사실 일본의 우경화가 계속 진행되면 아시아에서 자위대의 군사적 영향력이 커질지 모르니 남의 일이 아니긴 하다. 이래서인지 웬만한 밀리터리 사이트나 네이버 지식인에서 대한민국 국군과 싸우면 누가 이기냐는 vs성 IF 뻘글이 북한군 버금가게 많은 조직이기도 하다.[37] 다만 신냉전 시대가 도래한 이후로는 한일관계가 어느 정도 개선되면서 인식이 나아진 편이긴 하다.
일단 한국군과 자위대는 연합 훈련을 많이 하는 편이다. 한일합동해상구난훈련의 경우 1999년부터 시작해 2011년까지 7차례나 했고 한일 합동 대테러 훈련도 여러 번 했다. 이건 대한민국 해양경찰청과 해상보안청이 한 거라 군대간의 군사 교류라 보긴 어렵고 준군사조직간의 군사 교류라 봐야 한다. 그 밖에 군사 교류의 일환으로 서로 옵저버를 파견하기도 하고 각 군의 사관학교와 일본 방위대학교 간에 교환 유학을 하기도 한다. 물론 본격적인 합동 군사 훈련은 국민 정서상 하지 않지만 미국은 어떻게든 함께 훈련하자고 종용하는 중이다. 링크 미국 입장에서는 현재 경제 문제 때문에 국방비를 줄이고 있는 실정인데 어떻게든 북한, 중국, 러시아 견제는 해야 하고 동북아시아의 한국과 일본이 서로 긴밀히 협력해주면 그만큼 자기들 부담이 줄어들 테니 참 좋겠지만 이 두 나라가 경제, 외교 문제는 별개로 정치나 역사 등의 문제로 갈등이 잦다 보니 미국 입장에선 답답할 수밖에 없다. 다만 앞에서 설명했듯이 신냉전 이후로는 한미일이 더욱 끈끈하게 뭉치면서 한일관계가 개선되길 바라는 미국의 소망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2013년 8월에는 미국 알래스카에서 미 공군과 우방국들이 참가하는 '레드 플래그' 다국적 공군 기동훈련에서 한국 공군의 F-15K가 일본 항공자위대의 C-130 수송기를 호위하는 임무를 수행했는데, 일부 언론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허용 움직임과 연관시켜 이를 비판하는 보도를 했다. 이에 공군은 '다국적 훈련에 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확대 해석'이라는 취지로 즉각 유감을 표시했다. #
교육 과정에선 서로 꽤 교류를 하는 편이다. 해상자위대 간부학교(한국의 해군대학에 해당) 학생이 천안함 묘역을 참배하거나 항공자위대 간부학교(한국의 공군대학에 해당) 학생이 현충원을 참배하기도 했다. 원래 해외를 공식적으로 방문한 군인들은 그 나라의 국립묘지를 참배하는 게 보편적이지만 한일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꽤 고무적인 일이다. 다만 한국군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거긴 공식적인 추모공원이 아니다. 다만 일본 일각에서 A급 전범 합사 등의 문제를 일으키는 야스쿠니와는 달리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을 알링턴 묘지처럼 국립묘지로 쓰자는 의견도 있는데 미래에 어찌될진 알 수 없다.
2013년 12월 23일엔 남수단에 파병된 한국군 남수단 재건지원단을 위해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실탄 1만 발을 요청했고 일본 방위대신인 오노데라와 통합막료장인 이와사키 시게루는 PKO 협력법에 따라 실탄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근처에 주둔한 육상자위대 주둔지에서 실탄 1만 발을 전달하였다. 관련기사 하지만 이후 이 사건이 외교적 논란이 되자 이 1만 발은 다시 자위대에 되돌아갔다.#
2014년 7월 11일에 롯데호텔에서 자위대 창설 60주년 행사를 일본 대사관 측에서 진행하려고 했으나 여론을 부담스러워한 롯데호텔이 행사 하루 전 일방적으로 행사장 예약 취소를 통보했다. 그 때문에 일본 대사관에서 개최하기로 변경되었다. 자위대는 일찍이 2009년과 2010년, 2012년, 2013년에도 밀레니엄 힐튼 호텔, 그랜드 하얏트 호텔, 롯데호텔 등에서 행사를 진행해왔다. 그리고 한국에서 자위대 기념 행사를 치를 때마다 강한 반일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이렇듯 민간에서는 자위대에 대해 부정적이나 그것과는 별개로 교류를 많이하다보니 자위대에 대한 한국의 인식은 곱게본다면 애증관계라고도 볼수 있다.
11. 예비 자위관[편집]
한국인, 특히 군대 제대 이후 예비군 훈련을 받는 남성들은 한일 전쟁시 일본도 한국처럼 다수의 예비군이 나오거나 징병된 청년들이 훈련을 받고 바로 전장에 투입되는 상상을 하는데, 일본 자위대도 예비군 제도가 있긴 하지만 이런 상상과는 차이가 크다.
일본 자위대에는 즉응 예비 자위관, 예비 자위관, 예비 자위관보라는 3종류의 예비역이 있다. 하지만 이들 중 예비 자위관 및 예비 자위관보을 제외한 즉응예비자위관은 모조리 육상자위대 소속으로서 창설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인원이 적은 수준이다.
즉응 예비 자위관은 한국으로 따지면 동원 예비군에 해당되며 1년에 50일간의 훈련을 받으며 유사시 현역에 준하는 임무를 담당하게 되며 이들을 관리하는 곳은 부대들 중 지정되어 있는 부대인 코어부대나 준 코어부대라고 호칭되는 소수의 부대이며 총 수는 8,400명 내외고 7,000명까지 줄인다고 한다. 아무래도 현역과 유사한 월급을 받는다는 특징때문에 부담이 큰 모양이다. 또 예비 자위관은 전역한 자위관들을 대상으로 지원제로서 육/해/공 모두 존재하고 있으나 유사시 전투 임무가 아닌 후방 지원이나 주둔지 경비와 같은 전투와 거리가 먼 임무를 맡게 되며 1년에 5일으로서 2일은 관련 행정 업무때문에 사실상 훈련은 3일인데 훈련은 특기별 교육, 사격, 제식교육이 전부이다. 인원 수는 미상. 참고로 관리는 지방 협력본부라는 조직에서 관리. 여기까지 총리가 선포할 수 있는 자위대 관련 명령인 방위 출동 및 치안 출동 명령과 재해 출동 명령, 국민 보호 출동 명령을 받으면 바로 소집해야 하는 의무가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예비 자위관보는 앞서 언급한 자위관들과 달리 전직 자위관이 아니라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간단한 훈련을 거쳐서 적용되는 것으로서 간단히 말하면 민방위와 유사한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과 기능으로 나뉘어서 교육을 받으며 유사시 방위 출동 명령이 내려오면 후방 지원 업무를 보게 된다. '방위 출동 명령' 정도가 아닌 치안 출동 명령까지는 관계 없다. 추가하면 2005년 기준 총 인원은 1,371명의 일반 대원과 기능 244명 가량으로 적은 편이다.
이들의 총 수는 확인할 수 없으나 현재 자위대의 총 인원에 비해 현저히 적다는 것는 언급으로 보아 유사시 현역 포함 40만 명을 넘는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는 주적이 있기에 대놓고 전쟁을 대비하는 한국에 비하면 상당히 적을 뿐더러 자위대라는 한계 때문에 총 조차도 부족하기에 설령 징집이나 예비역 소집을 하더라도 사실상 장비나 총기가 없는 상태에서 그냥 아예 모집하지 않다가 총기 생산이 일정 궤도에 오르면 그때 징병해야 하는 상황이라 다른 나라의 예비군처럼 바로 엄청난 사람을 동원할 수 있는건 아니다. 물론 자위대는 일단 헌법으로 군사력을 포기한 국가의 준군사조직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저 정도만 하더라도 필요 이상으로 상당히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자위대가 정말 준군사조직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주변국에 대비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전력상으로나 예산으로보나 이름만 군대만 아니지 실상 강력한 전력의 군대나 다름없기 때문에) 별 의미는 없다.
12. 계급[편집]
자세한 내용은 자위대/계급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장교에 해당하는 간부 자위관은 방위대학교에서 교육한다. 한국의 육군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 공군사관학교를 통합한 느낌. 한국군도 툭하면 통합사관학교 얘기가 나오는데 이래저래 폐해도 많아 미지수다.
자위대의 인적 선발은 자위관을 참고할 것.
13. 자위대 제복[편집]
자세한 내용은 제복/자위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4. 편성[편집]
자세한 내용은 자위대/편성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5. 병과[편집]
자세한 내용은 자위대/병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6. 비판 및 문제점[편집]
자세한 내용은 자위대/비판 및 문제점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7. 사건 사고[편집]
자세한 내용은 자위대/사건 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8. 자위대[편집]
18.1. 육상자위대[편집]
자세한 내용은 육상자위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8.2. 해상자위대[편집]
자세한 내용은 해상자위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8.3. 항공자위대[편집]
자세한 내용은 항공자위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9. 핵개발 문제[편집]
핵무기 및 운반체 기술은 거의 모두 갖추고 있다.[38]
일본은 이미 우라늄 농축시설과 플루토늄 추출이 가능한 핵연료 재처리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사전에 보유하고 있는 플루토늄의 양도 2015년 기준으로 이미 40톤을 넘고 있다.
순수한 원자력 발전을 위한 플루토늄이라 하기에는 많은 양이라서 국제사회에선 일본의 의도를 크게 의심하고 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발생했을 당시 미국의 지원을 거부한 이유로 일본이 플루토늄의 양을 은폐하기 위함이 아니냐는 의혹도 있었으나 일본 정부는 이를 부인했다. 또한 민간 우주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우주발사체 개발도 꾸준히 하고 있으며 실제로 이미 개발되어 시험발사에 성공한 엡실론 로켓이 있다. 고체추진로켓이며 민간 우주발사체로 사용중이지만 전시에는 ICBM으로 전용할 가능성이 매우높다.
다만 핵무기는 그 특성상 정치적인 요소가 더욱 강하며 이 점이 일본의 핵무기 보유를 막는 큰 요소이다. 아직까지 일본 국내의 여론은 전세계에서 유일한 실전에서의 핵무기 사용 사례라고 할 수 있는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의 트라우마로 인해 핵무기 보유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상당히 큰 편이며, 무엇보다 미국은 일본의 핵개발에 대단히 부정적이다. 일본의 핵보유는 대한민국, 대만 등의 핵개발로 이어지는 '핵 도미노 현상'으로 이어져서 종국에는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균형이 깨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0. 장비[편집]
참고로 아래의 장비 목록 중에는 왠지 모르게 "~식" 표기 없이 부르는 명칭만 달랑 있는 장비(주로 차량)가 있는데, 이런 이름이 나오게 된 이유는 관료제 때문이다. 장비 하나가 "제식(制式)" 이 되면 "형상변경" 이다 "제원변경" 이다 뭐다 해서 서류작업만 열나게 늘어나고, 이게 싫으면 그냥 차종과 수리부속을 처음 정해진 그대로 고정해야 하기에 장비 하나를 개량하는게 정말 힘든 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렇게 "~식" 이 붙지 않은 장비는 부대사용승인(部隊使用承認)만 받고 제식으로 정해지지 않은 장비들이다.[39]
20.1. 육상자위대[편집]
20.1.1. 보병화기[편집]
- SCK/미네베아 9mm 권총(9mm拳銃、P9) [40]
- H&K USP
- 64식 소총
- 64식 총검(64式銃剣) [41]
- 89식 소총
- 89식 다용도 총검(89式多用途銃剣)[42]
- 06식 총류탄(06式小銃てき弾)
- 7.62mm 소총 M1(7.62mm小銃 M1)[43]
- M1 총검
- M1 기병총(M1騎銃)[44]
- 62식 기관총(Sumitomo NTK-62)[46]
- 74식 차재 7.62mm 기관총(74式車載7.62mm機関銃)[45]
- 미네베아 PM-9
- FN 미니미 [47]
- M1918 브라우닝[48]
- M2 브라우닝 중기관총 (12.7mm重機関銃 M2)
- M1917 브라우닝[49]
- M1919A4 기관총[50]
- M24 SWS (제식명: 대인 저격총(対人狙撃銃))
- 호와 84mm 무반동포(84mm無反動砲(84RR))[51]
- 호와 84mm 무반동포(B)(84mm無反動砲(B))
- 96식 40mm 자동척탄총(96式40mm自動てき弾銃)[52]
- M203A2
- Mk.19 고속유탄기관총[53]
- M4 카빈[54]
- H&K HK416[55]
- H&K MP7[56]
- M3 기관단총[57]
- M1911[58]
- 9.65mm 권총(9.65mm拳銃) [59]
- 톰슨 기관단총(11.4mm短機関銃 M1A1) [60]
- M31 HEAT 총류탄(M31対戦車小銃てき弾) [61]
- 110mm 개인 휴대용 대전차탄(110mm個人携帯対戦車弾)
- 79식 대주정 대전차유도탄(79式対舟艇対戦車誘導弾)[62]
- 87식 대전차유도탄(87式対戦車誘導弾)
- 91식 지대공유도탄
- 스팅어 휴대용 지대공유도탄[63]
- 01식 경대전차유도탄(01式軽対戦車誘導弾)
- 64식 대전차유도탄(64式対戦車誘導弾)[64]
- 로켓 발사통 M9(ロケット発射筒 M9)[65]
- 89mm 로켓 발사통 M20 개량 4형(슈퍼 바주카. 89mmロケット発射筒 M20 改4型)[66]
- 21.5mm 신호 권총(21.5mm信号けん銃)[67]
- 55식 신호 권총(55式信号拳銃)
- 81mm 박격포 L16(81mm迫撃砲 L16) [68]
- 120mm 박격포 RT(120mm迫撃砲 RT) [69]
- M1 60mm 박격포 [70]
- M2 81mm 박격포[71]
- 64식 81mm 박격포(64式81mm迫撃砲) [72]
- 107mm 박격포 [73]
20.1.2. 기갑 및 차량[편집]
- 장갑차
- 96식 8륜 장갑차(장륜장갑차. 96式装輪装甲車)
- 차기 8x8 장륜장갑차
- 60식 장갑차(60式装甲車)[79]
- 73식 장갑차(73式装甲車)
- 82식 지휘통신차(82式指揮通信車、CCV)
- 화학방호차(化学防護車)
- 87식 정찰경계차(87式偵察警戒車、RCV、87RCV)
- 89식 보병전투차(89式装甲戦闘車)
- 16식 기동전투차(16式機動戦闘車)
- 87식 포측탄약차(砲側弾薬車)[80]
- 99식 탄약운반장갑차(99式弾薬給弾車、ASV)
- AAV-7A1(水陸両用車(AAV7))[81]
- NBC정찰차(NBC偵察車)
- 수송방호차(輸送防護車)[82]
- M3 하프트랙(M3A1装甲車)[83]
- M8 그레이하운드(M8装甲車)[84]
- 곡사포(견인포)
- 155mm 곡사포 FH-70(155mmりゅう弾砲 FH-70)[85]
- M114 견인 곡사포(155mmりゅう弾砲 M1 (58式))[86]
- 105mm 견인곡사포 M2A1 (58식)(105mmりゅう弾砲 M2A1 (58式))[87]
- 자주포(자주곡사포)
- 기타
- 60식 자주무반동포[94]
- 94식 기뢰 부설차(수륙양용차량)[95]
- 83식 지뢰부설장치(트레일러 형)
- 87식 지뢰살포장치(헬기장착 형)
- 92식 지뢰밭파괴차(92式地雷原処理車)
- 81식 자주가주교(81式自走架柱橋)
- 07식 기동지원교(07式機動支援橋)
- 91식 가교전차(91式戦車橋)
- 92식 부교(92式浮橋)
- 75식 도저(75式ドーザ)[96]
- 트럭 크레인(トラッククレーン)
- 도로 장애물 작업차(道路障害作業車)
- 엄체굴삭기(백호 掩体掘削機)
- 갱도굴착장치(坑道掘削装置)
- 78식 설상차
- 10식 설상차
- 경설상차(스노우 모빌)[97]
- 87식 자주고사기관포
- 35mm 2연장 고사기관포 L-90(35mm2連装高射機関砲 L-90)[98]
- M42 더스터(M42自走高射機関砲)[99]
- 96식 120mm 자주박격포
- 60식 자주 81mm 박격포
- 60식 자주 107mm 박격포
- MLRS(多連装ロケットシステム 自走発射機M270 MLRS)
- 75식 자주 다연장 103mm 로켓탄 발사대(75式自走多連装103mmロケット弾発射機)[100]
- 75식 자주 지상 풍향•풍속 측정 장치(75式自走地上風測定装置)[101]
- M5 고속 포병 트랙터(M5 High-Speed Tractor 13tけん引車 M5)[102]
- 88식 지대함 미사일
- 12식 지대함 유도탄
- 81식 단거리 지대공유도탄
- 11식 단거리 지대공유도탄
- 03식 중거리 지대공유도탄
- 중거리 다목적 미사일(中距離多目的誘導弾)[103]
- 96식 다목적 미사일 시스템(96式多目的誘導弾システム)[104]
- 93식 근거리 지대공 미사일(93式近距離地対空誘導弾、近SAM)[105] .
- 지대공유도탄 "개량형 호크"(地対空誘導弾「改良ホーク」)
- MIM-3(나이키 에이잭스 ナイキ・アジャックス)[106]
- 야외 입욕 세트 2형(野外入浴セット2型)[107]
- 야외 수술 시스템과 구호용 에어돔(野外手術シス テムと救護エアドーム)[108]
- 야생 지원차(野外支援車)[109]
- 야외 취사 도구 1호 (개량)(野外炊具1号(改))[110]
- 차량
- 미츠비시 73식 경트럭
- 1/4t 트레일러[111]
- 윌리스 MB 지프(ジープ(1/4トントラック))[112]
- M37 닷지 트럭(ダッジWC 3/4tトラック(3/4トントラック))[113]
- 토요타 73식 중형트럭[114]
- 1 1/2t 구급차
- 이스즈 73식 중트럭[115]
- 미쓰비시 74식 특대형트럭[116]
- 업무트럭(業務トラック)[117]
- GMC 2.5t 트럭(GMC 2.5tトラック(2トン半トラック))[118]
- 자재운반차(資材運搬車)
- 고기동 경장갑차량(軽装甲機動車、LAV)[119]
- 고기동차(高機動車、HMV)[120]
- 정찰용 오토바이(약칭 "오토". 偵察用オートバイ)[121]
20.1.3. 항공기[편집]
- 헬리콥터(회전익기)
20.2. 항공자위대[편집]
「初鷹」中等練習機)[131]
- T.55[132]
- 미쓰비시 F-1 지원전투기[133]
- 미쓰비시 T-2 초음속 고등 훈련기 [134]
- F-2A/B 지원전투기(支援戦闘機、FS)[135]
- F-4EJ KAI(F-4EJ改)
- F-4EJ
- F-15J/DJ 요격전투기(要撃戦闘機)[136]
- F-104J/DJ(에이코 栄光)[137]
- F-35A
- F-3(ATD-X)
- 후지 T-7 초등훈련기(富士 T-7 初等練習機)
- 가와사키 T-4
- T-400 다발기승무원훈련기(T-400 多発機乗員練習機)
- T-6D/F/G 텍산(마츠카제 まつかぜ)[138]
- T-34A 멘토 또는 하츠카제(T-34A Mentor T-34A メンター(はつかぜ))[139]
- E-2C
- E-2D
- E-767: 세계에서 가장 큰 조기경보기로 4대를 소유하고 있다.
- RF-4E 정찰기(RF-4E 偵察機)
- RF-4EJ 정찰기(RF-4EJ 偵察機)
- RF-86F 정찰기(RF-86F 偵察機)[140]
- 글로벌호크(RQ-4B)
- KC-767
- KC-46A
- C-2
- C-130H
- NAMC YS-11P
- 일본정부전용기
- C-46D(Curtiss C-46 Commando カーチス C-46D コマンドー)[141]
- CH-47J/J(LR)
- U-125A 구난수색기(U-125A 捜索救難機)
- UH-60J 수색 및 구난 헬리콥터(UH-60J 捜索・救難ヘリコブター)
- U-125 비행점검기(U-125 飛行点検機)
- U-4 다용도지원기(U-4 多用途支援機)
- 20mm 기관포 M61[142]
- AAM-4
- AAM-5
- ASM-1(80식 공대함 미사일)
- ASM-1C(91식 공대함 미사일)
- ASM-2(93식 공대함 미사일)
- XASM-3(신공대함유도탄 (新空対艦誘導弾))
- 사이드와인더(AIM-9B/E/P/L/M)
- 스패로우(AIM-7E/F/M)
- AIM-120B/C-5
- JDAM(GBU-38)
- JM-117 / 750파운드 보통폭탄
- Mk. 82 / 500파운드 보통폭탄
- GCS-1 Mk. 82 / 500파운드 유도폭탄
- MIM-104 PAC-2 패트리어트(地対空誘導弾ペトリオット)
- MIM-104 PAC-3 패트리어트(地対空誘導弾ペトリオット PAC-3)
- 81식 단거리 지대공유도탄
- 기지방공용 지대공유도탄
- 93식 근거리 지대공 미사일(93式近距離地対空誘導弾、近SAM)
- 03식 중거리 지대공유도탄
- 미츠비시 73식 경트럭
- 토요타 73식 중형트럭 [143]
- 이스즈 73식 중트럭 [144]
- 산림 다목적차(山林多目的車)
- 고기동 경장갑차량(軽装甲機動車、LAV)[145]
- MIM-3(나이키 에이잭스 ナイキ・アジャックス)[146]
- MIM-14(나이키 허큘리스 ナイキ・ハーキュリーズ)[147]
- 지대공유도탄 나이키J(地対空誘導弾 ナイキJ)[148]
20.3. 해상자위대[편집]
- 해상자위대의 편제에 관해서는 해상자위대/편제 참조.
자위대의 전투함은 함급에 관련 없이 호위함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실제 함급이 '호위함'이라는 것이 아니고, '전투함' 대신 사용되는 범칭에 가깝다. 실제 영문 번역시는 Destroyer를 사용중. 우리나라와 중국같은 경우에는 예전에 된통 당한 게 있어서 항상 일본의 군사력을 경계하는지라 이를 '눈가리고 아웅하며 군사력을 증강하려는 일본의 영악한 음모' 쯤으로 생각하지만 실은 군대가 아니면서 군대 노릇을 해야 하는 자위대의 모호한 정체성 때문에 '군대 냄새'가 나는 용어를 철저히 배제하는 경향에서 비롯된 것일 뿐. 다만 일본은 과거 일본 제국 시절에도 함급과 명칭을 속여가며 같이 군비 경쟁하는 경쟁국들 몰래 더 배수량 많고 큰 군함들을 건조한 전과가 있다. 이런 역사적 사실 때문에 비단 한국이나 중국만 딴지거는게 아니라 서양 밀리터리 관련 커뮤니티 등지에서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시선들이 있다.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 명칭에 대한 논란을 참고할 것.
21. 자위대 출신 인물[편집]
자위대/역대 막료장 등을 참고할 것.
21.1. 육상자위대[편집]
- 구리스 히로오미
- 기누가사 하야오
- 기미쓰카 에이지
- 나가노 시게토
- 나카무라 류헤이
- 나카무라 모리오
- 나카타니 마사히로
- 니시모토 데쓰야
- 다카시나 다케히코
- 데라시마 다이조
- 도미자와 히카루
- 마가리 도시로
- 마쓰무라 고로
- 맛사키 하지메
- 모리 쓰토무
- 무라이 스미오
- 무라이 요시히로
- 미요시 히데오
- 스기야마 시게루
- 스기타 이치지
- 스즈키 도시미치
- 시마 아쓰시
- 쓰쓰이 다케오
- 아마노 요시후사
- 야마구치 노보루[155]
- 야마다 마사오
- 오리키 료이치
- 오모리 간
- 와타나베 게이타로
- 와타나베 노부토시
- 요시에 세이이치
- 이소지마 쓰네오
- 이시이 마사오
- 이와타 기요후미
- 이타가키 케이스케[156]
- 유아사 고로
- 하야시 게이조
- 후지나와 유지
- 히바코 요시후미
- 이시다 레이몬, 나카쿠키 류지[157]
21.2. 해상자위대[편집]
- 가와노 가쓰토시
- 나가사와 히로시
- 나가타 히로시
- 나쓰카와 가즈야
- 나카무라 데이지
- 나카야마 사다요시
- 니시무라 도모하루
- 마에다 마사루
- 사메시마 히로이치
- 사이토 다카시
- 사쿠마 마코토
- 스기모토 마사히코
- 스기에 이치조
- 아카호시 게이지
- 야다 쓰기오
- 야마가미 데쓰야[158]
- 야마모토 야스마사
- 야마자키 고고로
- 야마무라 히로시
- 오가 료헤이
- 오카베 후미오
- 요시다 마나부
- 요시카와 에이지
- 우치다 가즈토미
- 이시다 스테오
- 이시카와 도루
- 이타야 류이치
- 이하라 미쓰구
- 하야시자키 지아키
- 후루쇼 고이치
- 후지타 고세이
- 후쿠다 다케오
- 히가시야마 슈이치로
21.3. 항공자위대[편집]
- 가타오카 하루히코
- 겐다 미노루
- 나마타메 오사무
- 다모가미 도시오
- 다케고치 쇼지
- 다케다 고로
- 도타케 이쿠오
- 마쓰다 다케시
- 모리 시게히로
- 모토미야 히로시[159]
- 무라키 고지
- 무타 히로쿠니
- 부론손[160]
- 사나기 사다무
- 사이토 하루카즈
- 스기야마 시게루
- 스기야마 요시유키
- 스즈키 아키오
- 시라카와 모토하루
- 쓰노다 요시타카
- 쓰마가리 요시미쓰
- 야마다 료이치
- 오가타 가게토시
- 오무라 히토시
- 오무로 쓰토무
- 요네카와 다다요시
- 요시다 다다시
- 우라 시게루
- 우에다 야스히로
- 우에무라 겐타로
- 이시즈카 이사오
- 이시카와 간시
- 이와사키 시게루
- 호카조노 겐이치로
- 히라노 아키라
- 히라오카 유지
22. 관련 문서[편집]
22.1. 자위대 관련 문서[편집]
- 고등공과학교[161]
- 국민보호 [162]
- 기술조
- 내무군벌
- 방위기념장[163]
- 방위대학교
- 방위의과대학교
- 육조항공조종학생
- 일반조후보생
- 자위관
- 자위관후보생
- 자위대가
- 자위대/간부후보생
- 자위대병원
- 자위대생도
- 자위대/생활
- 항공학생
- 편제
22.2. 기타 관련 문서[편집]
23. 홍보와 모집[편집]
24. 창작물 속의 자위대[편집]
怪獣対策においては世界各国の中で最も経験豊富であり、その技量は世界トップクラスであるといわれている。しかし、未だかつて勝てた試しはない
괴수 대책에 있어서는 세계에서 가장 작전 경험이 풍부하며, 대응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승리한 적은 없다.
백괴사전 일본어판
자위대 창설은 1954년, 그리고 그해 겨울, 괴수 고지라가 동경만에 상륙했다. 그 후 신 고질라에 이르기까지 자위대는 100년 가까이 고지라에게 박살나왔다. 재미있는 점은 자위대가 박살난다는 내용임에도 고지라 시리즈가 방위성의 제작 지원을 꾸준히 받고 있다는 것. 고지라는 인간의 기술력으로 어쩔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공감대가 일본을 넘어 전세계에 퍼져있기 때문에 자위대가 패배하는 것이 딱히 이미지 실추가 아니라 오히려 졌지만 잘 싸웠다로 비춰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필이면 일본만을 노리는 취향이 괴상한 수많은 우주괴수를 비롯한 거대괴수가 일본에서 난리를 치는 것을 막기 위해 전차 등을 동원해 맞서기도 하지만, 괴수 영화라서 언제나 작살난다. 뭐, 자위대가 아니더라도 깨지긴 매한가지겠지만(…)
2015년에는 네르프를 습격함으로써 제레의 인류 멸망계획에 일조하는 등 뻘짓의 정수를 보여주었다.[166]
가면라이더 아기토의 극장판 가면라이더 아기토 PROJECT G4에서는 육상자위대가 초능력자의 육성 · 연구와 G4 시스템의 시작·운용 추진을 실시한다. 사람들의 휴대전화에 랜덤으로 "ESP 퀴즈"란 메일을 보내서, 퀴즈를 통해 초능력자를 판별해 낸 다음, 몰래 납치해서 보호(사실상 감금)하고 있었다.
애니메이션 카미츄의 한 에피소드에서는 주인공인 히토츠바시 유리에가 일본 총리대신의 음모로 화성의 외계인을 다시 화성으로 돌려보내주려고 하는 도중 자위대가 나오는데 우습게도 유리에가 외국에 의해 무력으로 침략당했을 때에만 무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하자 그 즉시 자위대원들은 아무말도 못하고 비켜주어야 했다. 자위대의 무력함을 비꼬는 이러한 묘사는 애니메이션/만화 등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헤이세이 가메라에서도 상당히 비중있게 다루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비꼼은 잘 생각해 보면, 자위대가 생긴 이유에 관련된 현실을 까는 것이다. 참고로 비슷한 에피소드는 지구방위기업 다이가드에서도 나온다. 그리고 해당 애니의 감독이 나중에 만든 로봇물은 강대한 무력이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한다.
최종병기 그녀(만화)에서 외국 연합군에 맞선다. 연약했던 치세를 대량살상무기로 만든 세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이 적으로 맞아 싸운 국가들은 자신들과는 비교도 안될 수준의 장비를 갖춘 서구 군대였다. 결국 치세 없이 전투를 치루면 대원들의 70%이상이 전사할 정도이며 국토를 거의 다 빼앗기고 홋카이도로 후퇴한다. [167] [168] 자위대원들의 인간적인 모습들이 꽤 많이 나오지만 결코 자위대를 미화하는 작품은 아니다.
건 슈팅 게임 세이기노 히로의 최종 스테이지에서는 관동방면대 제8보통과연대가 2005년에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설정에 의해 적으로 나온다. 근데 쿠데타라고 하기도 뭐한게, 그냥 국회의사당 한 곳에 틀어박혀서 관계자들만 인질로 잡고 히키코모리 농성. 우습게도 경시청 소속의 경찰들이 탱크에 로켓 런처까지 들고 온 놈들 진압하는데 투입되었다. 근데 반란군들은 탱크까지 끌고 온 주제에 쪽도 못 써보고 경시청에 탈탈탈 털렸다. 참고로 직접 이들을 제압한 것은 고작 권총 한 자루와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극장판 2에서는 일본 정부에게 환멸을 느낀 츠게 유키히토라는 인물이 자위대와 경찰 간의 알력싸움이 일어나는 상황을 이용해 자위대인 척 위장해 테러를 일으킨다.
망국의 이지스, 전국자위대 시리즈 등의 영화에서도 자위대가 맹활약(?) 한다.
여신전생 시리즈 세계관 중 대파괴 시나리오에선 자위대가 개발한 파워드슈츠를 장착한 부대가 악마와 교전해서 전멸했다.
소드 아트 온라인의 등장인물인 키쿠오카 세이지로가 3부까지는 등장인물 대다수가 '총무성에 근무하는 좌천당한 공무원'이라고 알고 있었지만,[169] 4부 앨리시제이션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사실 자위대 이등육좌이다.[170]
용자경찰 제이데커에서 작중 방위군(防衛軍)이라는 이름으로 육상자위대가 등장. 작중 유일한 군인인 오노우에 세이아는 동북방면대 제9사단을 이끄는 1등육좌이다. 다만 작품 내에서 방위군이라는 이름의 자위대의 활약상은 처참하기 그지 없다.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마냥 경시청의 브레이브 폴리스들이 지구까지 지켜내는 판. 초장부터 항공자위대가 범죄자가 타국에서 탈취한 항공부대에게 털렸다(...) 이들은 합체한 제이데커 혼자 다 격추시켰다(...) 우주인의 침공당시에도 손도 못 써보고 탈탈 털렸다. 사실 이때 제1목표가 우주인을 몰아내는 게 아닌 브레이브 폴리스가 돌아올 때까지 버텨라!!였다. 그 우주인들도 브레이브 폴리스 이외의 지구 군사력은 전력 취급도 안했다. 바락 성인 왈: 그래. 지구 침략에 제일 성가신 브레이브 폴리스를 밖으로 끌어내는 것이었지! 그러더니 작중 최종보스가 등장한 시점에서는 아예 자위대의 기능이 정지된다! 한국에서 방영될때는 "수도경비대"라는 명칭으로 나왔다.
이외 자위대가 판타지세계로 넘어간다면~식의 가상전기소설도 여럿이다.
도서관 전쟁으로 유명한 아리카와 히로가 자위대원의 연애를 소재로 쓴 고래 남친이라는 작품도 있다. 과장이 다소 있긴 하지만 군인과 일반인의 연애, 그리고 달달한 연애이야기에 흥미가 있다면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만한 책.
메탈기어 시리즈의 카즈히라 밀러(훗날의 마스터 밀러)는 메탈기어 솔리드 피스 워커에서 육상자위대 출신이라는 설정이 추가되었는데, 본인은 전수방위에 얽매여서 나가지도 못하는 자위대의 처지와 미시마 사건 때의 미시마 유키오의 연설을 듣고는 자기하고 맞지 않는다고 때려쳤다. 오해할 까봐 추가하자면 카즈는 미시마가 말한 자위대의 한계만 공감한 거지 미시마의 극우 사상에 동의한 건 아니다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 2기반의 모드 멘탈 오메가에서는 태평양 전선이라는 진영의 핵심 세력으로 등장한다. 이 세계관의 대한민국과 일본은 사이좋게 미국의 식민지배를 오래동안 겪어서 대한민국의 보라매 전폭기에 일본의 카네가와 군수산업 대한민국 지부에서 개발한 냉동폭탄을 쓰는 등 미국의 빅 픽처대로 사이좋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위대원이 직접 자위대가 나오는 라이트 노벨을 쓰기도 했다. 그런데 내용이(…).
중국 인민해방군 난징군구에서 제작을 지원한 FPS 광영사명은 자위대가 적으로 등장하는 흔치 않은 FPS 게임이다. 우선 군용 보급판의 캠페인 미션에 등장하는 적성군 보병 대다수가 도조 히데키 얼굴의 육상자위대원이며(나머지 소수는 필리핀이나 미군 짝퉁), 민간용 온라인 버전에서는 훈련 모드와 현대 배경 코옵 모드 맵(센카쿠 열도, 타임 어택) 의 주요 적으로써 등장하는데 정말 흔치 않게도 해상자위대의 호위함 입입검사대(89식, 최하급)와 특별경비대(MP5, 중급)까지 구현했다. 군용 버전의 도조 육상자위대는 옵션 떡바른 89식의 정예병으로 등장한다.
워게임 시리즈의 최신작인 워게임 레드 드래곤에 90년대 까지의 장비를 가진 자위대가 출연한다. 블루드래곤이라는 연합명으로 한국과 일본을 연합하여 덱을 구성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비싼 유닛들이 많은편이지만 어딘가 하나씩 나사가 빠져있다. 예를 들면 90식 전차는 공격력 방어력 모두 준수하지만 항속거리가 3세대전차들중 가장 짧은식, 2세대 전차인 74식의 가성비가 좋은편이다. 한국군 M48은 기동간 사격이 안 돼서 연합덱의경우 74식을 자주 쓴다. 하지만 포병,공군에 있어서는 한국에 밀린다. K-9까지 보유한 한국군에비해 일본은 구형 자주포밖에 없고 공군도 미사일이 스페로우라서 암람을 잔뜩 보유한 한국공군에 밀리고 지상공격수단도 몇개 없다.
24.1. 대한민국 미디어에서의 등장[편집]
- 데프콘 2부 한일전쟁편에서 자위대가 등장한다. 정확하게는 1부 한중전쟁편에서도 등장하여 독도를 무력점령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의 자위대 병력이 대대적으로 증강되어있는 모양새를 볼 수 있다. 그러나 2부에서 대한민국 국군에게 엄청나게 밀리지만 나중에 북부방면대로 대한민국 국군을 몰아내는 역할을 한다. 물론 해상자위대의 호위대군 전멸과 항공자위대의 전력 50% 피해 육상자위대역시도 30%이상의 피해를 입는 형태가 된다.
- 작전명 충무에서도 등장하며 그야말로 압도적으로 상대를 이기는 침략자 대한민국 국군과 이에 맞서 싸우는 자위대의 고군분투가 드러나는 소설. 일본 소설이 아니냐는 비아냥까지 듣지만, 이제까지 대한민국 밀리터리에서의 구일본군의 망령에 씌인 자위대가 아닌 현 자위대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묘사해 냈다는 점에서 수작이라 할 수 있다.
- 독도왜란에서는 대한민국 해군과 해상자위대 간 해전이 벌어지는 데, 중간에 제한전의 특성상 해전 하다 말고 일본 해자대 호위함의 입입검사대가 진주함에 들이닥쳐 권총과 구닥다리 기관단총만으로 깽판을 치는 모습이 인상적.
평행세계인 작전명 충무에서 털린 육자대의 복수?
- 한반도(영화)에서도 해상자위대가 등장하며 대한민국 해군 함대와 대치하다가 물러난다.
- 더 킹: 영원의 군주에서는 평행세계의 일본이라 해상자위대가 아닌 일본 해군이 등장하여 대한제국 함대와 대치한다.
- 강철비에 등장한다. 강철비에서는 항공자위대의 F-15J가 미 공군의 B-52 폭격기를 홋카이도 상공에서부터 동해까지 호위하며 등장하고 해상자위대의 공고급 호위함은 북한의 ICBM을 요격하려다가 핵폭풍에 휘말린다.
- 강철비2에서도 등장한다. 여기서는 자위대는 독도에서 국지전이 발생하게 함으로서 대한민국을 공격하려고 하는 일본 야마토 제단의 음모에 휘말린다. 북한의 SSBN이 일본을 배신하고 도쿄를 핵공격하려 하자 해상자위대 잠수함대의 오야시오급 잠수함과 소류급 잠수함, P-1 대잠초계기를 동원해 북한 SSBN을 격침시키려 시도하나 대한민국 해군 잠수함사령부 소속 잠수함들이 다가오자 물러난다. [172]
- 파이어 데이 일본의 국력이 정점에 달했던 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새해 첫날에 일어난 신사 폭탄 테러 사건으로 충격에 빠진 일본은 테러에 대한 일본인들의 공포를 명분삼아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전환하고 징병제를 실시, 막강한 전력으로 테러 배후 세력이라 간주된 대한민국을 침공한다. 독도 해전에서 대한민국 해군을 궤멸시키고 목포에 상륙한 자위대는 전라남도 일대를 거쳐 단숨에 금강까지 치고 올라온다. 그러나 금강에서 대한민국 국군의 방어선에 틀어막히고, 자위대는 전열을 정비하며 금강방어선 돌파를 노린다. 금강 방어선에서 자위대의 발을 묶는데 성공한 대한민국 국군은 북한과의 협정을 통해 북한군 전력과 전방의 정예 사단들까지 끌어오고 반격을 위해 고곤분투한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일본과 자위대는 대한민국 국군 따위는 비교도 안 될 근미래에 도달한 국가로 묘사될 정도이며 마찬가지로 일본의 기술도 미국을 훨씬 상회하는 현대과학의 정수로 묘사된다.
- 한일전쟁 김병욱의 작품으로, 대한민국 국군과 자위대가 사이좋게 병림픽을 벌이는 내용이다.
- 굿모닝 프레지던트
24.2. 관련 작품[편집]
- 가면라이더 아기토: 육상자위대 소속인 후카미 리사가 등장하며, 가면라이더 G4의 설계도 데이터를 탈취해 제작하고 자위대의 연구에 의해 초능력자의 능력과 연동해서 적의 공격을 완전히 예측하는 "ESP 시스템"이 추가로 탑재되었다. 이 ESP 시스템을 사용하기 위해 초능력자를 납치하려 했으며, 카자야 마나가 납치, 자위대 기지에 나포되어 이용당한다.
- 걸즈 앤 판처: 잠깐씩 방위대신 직할부대 소속 대위인 초노 아미가 심판으로 등장한다.
- 게이트 - 자위대. 그의 땅에서, 이처럼 싸우며: 원제는 "ゲート 自衛隊 彼の地にて、斯く戦えり". 원작 소설은 본편 5권과 외전 2권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코믹스화, 애니화도 된 작품. 소설판 작가는
전직 자위관이 아니고 자위관을 경험했다는야나이 타쿠미, 코믹스판 작가는 편의점 DMZ의 작가 사오 사토루다. 갑자기 도쿄 한복판에 열린 "게이트"를 통해 쳐들어온 이세계의 군대가 일본을 공격하지만 자위대와 경찰에게 개박살나고 총리의 문 너머를 특별지구로 칭해 일본 영토로 생각해도 좋겠다는 개드립으로 육상자위대 3개 사단이 파견되어서 전투를 벌인다는 전개를 보여준다. 즉 판타지 세계에서 자위대의 활약을 그리고 있다. 근데 원작가가 전직 자위대원....이라 자칭하고 있지만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닌자위물극우 미디어물이면서 양판소다. 애니판은 잔인하고 에로스런 장면은 줄였어도 여전히 원작의 개판 고증 같은 문제점을 안고 가며 만화판은 셋 중 그나마 봐줄 만 하지만 잔인함과 외설적인 장면이 노골적이고, 원작 재현과 현실성 맞추기 두가지에서 갈팡질팡 하는 듯한 묘한 느낌. 자세한 건 해당 문서 참고. - 고지라 시리즈: 거의 다 나오지만 나오는 족족 패배.
- 괴수 자위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거대 파충류 속칭 '오로치'에 맞서서 자위대 내부에 괴수 대책의 수립, 정보수집, 대응기관 간의 조율을 담당하는 '특수 재해 대책실'(TaPs)라는 전담 조직을 설립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리는 만화다.[173]
- 광영사명: 원래는 중국 인민해방군 관련 작품이지만 상기했듯 PvE 형식 모드의 적으로써 비중이 크다.
- 도미네이션즈: 원자력 시대의 일본 고유 유닛으로 나온다.
- 도쿄 매그니튜드 8.0: 육상자위대가 이재민을 지원한다. 구체적으로 자위관 사람들이 야외 취사 도구 1호(개량), 야외 취사 도구 2호(개량)으로 취사하여 이재민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거나, 위생과(의무대) 사람들이 지역 민간 병원과 연계하여 부상당한 이재민을 지원한다. 거기에서 오노자와 미라이, 오노자와 유키 남매가 그들이 살던 동네를 갈 수 있다고 부상자 후송용 73식 대형트럭을 얻어 탄다.[스포]
- 돌격! 제2소년공과학교: 가상의 육상자위대 군사학교를 무대로 한 병영생활 만화.[174]
- 되살아나는 하늘 -RESCUE WINGS-: 항공자위대 소속 항공구조단을 무대로 한 애니메이션. 다만 현재는 자위대가 전시 항공구조를 할 일이 없어 대신 일반적인 구조대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 데이트 어 라이브: AST가 자위대 소속 특수부대로 나온다.
- 우향 좌: 자위대 신병훈련소를 무대로 한 병영생활 만화.
- 아인: 사토는 SAT를 상대하기 전, 자위대를 한 번도 실전을 겪어보지 않은 부대는 최고의 부대가 될수 없다는 짧고 굵은 디스를 날렸다. 하지만 사토가 항자대 기지를 탈취하려는 것을 파악하고는 지휘관이 항자대 경비 병력들에게 '우리의 생명은 스스로가 아닌 사회 공익을 위해서 존재한다. 스스로 희생을 하는 것에 두려워하지 말고 사선에 아군이랑 적이 같이 있어도 쏴버리도록'이라고 강령을 내리고 사토를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사토 본인도 자위대에 강단이 있다며 너무 얕봤다 극찬한다. 결국 저지하는데에는 실패하고 전멸하지만 작중에서 매우 드물게 사토를 밀어붙여 지치게 만들기까지 한다.
- 워게임: 레드 드래곤: 등장 진영 중 하나. 유닛의 성능은 괜찮지만 연비가 별로라든지 2% 부족한 점이 있어 조금 애매한 상급자용 진영이다. 한국과 연합 덱인 청룡 덱을 만들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다. 캠페인에선 나로드나야 산을 오르라에서 적으로 나오며, 제2차 한국 전쟁에서 해상자위대와 제1공정단이 등장한다.
- 아웃브레이크 컴퍼니: 게이트 자위대처럼 이세계에 들어가는 것과 공통점이지만, 실상은 정반대. 게이트는 학살, 국뽕물에 군뽕에 자기들은 평화롭고 질서다운 집단에 평화를 실컷 치켜세운 것인 반면 아웃브레이크는 문화 침략을 통한 시간이 해결해 줄 완전 지배를 꿈꾸다 엘던트 제국과 주인공 측의 활약으로 일본이 패하는 독특한 이야기에 문화 침략에 대한 진중한 내용과 침략 자체에 대한 비판을 한다.
- 전국자위대 시리즈: "자위대가 전국시대로 가서 싸운다면?"이라는 상상에 기반한 타임슬립 영화 및 드라마들.
- 지팡구: 해상자위대 이지스함이 태평양 전쟁 당시로 타임슬립한다는 내용의 만화. 해당 문서 참조.
- 청공소녀대: 가상의 항공자위대 여성 곡예비행대를 소재로 한 애니메이션.
- 택티컬 로어: 해상자위대의 협조를 얻어 제작되었다. 주인공들의 배 파스칼 메이지의 모델도 무라사메급 호위함 중의 하나인 하루사메.
- 하늘을 나는 홍보실: 항공자위대 홍보실을 소재로 한 아리카와 히로의 소설. 드라마화도 되었다.
- 신 연예인지옥: 외전인 족구 에피소드와 모나크 부대전투 에피소드에서 등장했다.
- Re:CREATORS: 5화에서 등장했으며 미즈시노 소타일행을 제압하려고 했지만 메테오라 외스터라이히의 제안으로 아무런 일 없이 소타 일행을 정부로 끌고 간다.
- 우드잡(영화): 주인공 히라노가 대학입시에 떨어진후 여러 모집광고물 앞에서 눈을 감고 껌을 뱉어 선택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마침 껌이 자위대 모집 홍보물에 붙는다. 그러자 인상을 찌프리며 "이건 아니다(マジで)"라고 말한다.일본 젊은이들의 자위대에 대한 인상을 알 수 있는 장면. 자위대 대신에 선택한 직업이 바로 산림연수원. 즉, 벌목공이다.
25. 기타[편집]
- 해상자위대 관함식에서 수기 신호를 보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사실은 이때 신호원이 보내는 내용은 "배고프다", "지친다", "졸리다" 같은 잡담이 대부분.
- 대한민국 국군에 국군도수체조가 있는 것처럼 자위대에도 자위대 체조라는 것이 있다. 다만 육해공 3군이 공통된 체조를 사용하는 국군과 달리, 자위대는 육상자위대와 항공자위대는 공통된 체조를 사용하지만 해상자위대만 별도의 체조를 사용한다. 육상자위대와 항공자위대의 체조는 동작이 매우 크고 역동적이며 고난도 동작이 다수 포함되어 있지만, 해상자위대의 체조는 공간이 협소한 함내에서도 체조를 할 수 있도록 동작이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육상자위대/항공자위대 체조 해상자위대 체조
- 삿포로 눈 축제에서 맹활약한다. 삿포로를 관할하는 육자대 북부방면대 소속 11여단(2008년에 사단에서 여단이 됨)에서 직접 군용 트럭으로 눈축제에 필요한 눈을 운반해주고 직접 눈 조각까지 크게 만든다. 행사마다 가장 크고 아름다운 눈 조각은 자위대 장병들의 작품이다. 이하 자세한 사항은 삿포로 눈 축제 문서를 참고.
- 자위대에서는 대중들이 접하기 쉬운 만화,애니메이션을 통해 이것을 이용한 모에 캐릭터를 동원하는 등 젊은이들을 입영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일본의 청년들 사이에서 자위대의 이미지는 영 좋지가 않은데... 2사단의 가혹행위 등 잇따른 사건사고로 인해 '자위대 = 3D직업'이라는 이미지가 붙어버렸고, 여기에 지속적으로 자위대 내부에서 군기 해이라고 볼수밖에 없는 황당한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뇌까지 근육인 멍청이들밖에 없는 집단'이라는 편견까지 더해져서 자위대에 대한 인식은 심각한 수준이다. 물론 자위대에서 벌어지는 일은 실상 전 세계 어느 나라 군대에서나 일어날수도 있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군은 물론이거니와 한때 미군도 해병대 중심으로 가혹행위가 있었을 정도. 그러나 미국과 한국처럼 군대 비중이 크고 문화적으로도 군대가 친숙(?)한 국가들에서는 군내 가혹행위가 벌어진다는 것을 국민적으로 잘 알고 있는 상태[175] 이며, 그 덕에 군 안팎으로 그런 관행을 줄이고 단속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반면 자위대는 일단은 실질적인 일본의 방위를 당담한다 해도 헌법상 군대가 없는 나라인 일본의 특성상 대중에게도 잘 드러나지도 않았으며 딱히 자위대가 일본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도 그리 유명하지도 않아 대중의 뇌리에 깊숙이 자리잡지 못하여 대중매체의 관심이 적다. 관심을 가져야 정부 혹은 자위대 내부의 행정기관에서나마 이에 대한 부조리나 가혹행위 등의 악습 척결 등을 보여주기식이라도 개선할 기회의 여지라도 있는데. 놀랄만큼 일본 국민들이 자위대에 관심이 없다보니 이렇게 가혹행위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나 악습 척결과 관련된 정부나 자위대 외부로의 압력 등이 적기 때문. 일본 자위대의 가혹행위와 부조리의 개선은 지지부진하다. 점점 자위대에 자원입대하는 일본 청년들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일본의 청년들 사이에서는 자위대의 입대는 야쿠자 조직원이 되는 것 다음으로 인생 막장이라는 인식이 강한 편이다. 한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는 사람들이 조폭 다음으로 막장 취급을 받고 있다는 소리. 결국 해병문학에서 제대로 패러디 되었다.
- 사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원인 중 하나가 자위대라는 설도 있다. 사고 당시 원자력 발전기 1호기에 냉각수 공급을 위한 배터리 수송을 담당했는데 늦었다. 그 때문에 노심용융이 발생해서 사고가 났다는 설이 있다.
- 면세가 안 된다. 그래서 PX물건이 사제보다 가격이 싼 한국군과 달리 자위대는 가격 차이가 없다. 다만 사제가 들어오기에 품질은 문제 없는 편. 제빵 회사로 유명한 야마자키빵이 운영하는 편의점을 영내로 옮겨와 피엑스로 활용하고 있기도 하며, 전투복이나 체육복의 경우 고가 스포츠 브랜드에서 다양한 제품을 시중보다 싸게 판다. 각 주둔지의 유명 토산품을 생산자 연결 방식으로 싸게 파는 경우도 있다. 유연하고 폭넓은 사고와 인적자원의 투입을 통해 면세품은 아니지만 자위대원들이 복지를 누릴 수 있도록 노력은 하는 편이다.
- 자위대 소속 음악대들의 공연은 일본의 문화적 특성인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공연이 매우 많다. 특히 해상자위대의 경우 설정이 설정인 만큼 우주전함 야마토 시리즈의 OP는 필수이며, 주로 은하철도 999와 함께 연주한다. 육상자위대 중앙 음악대의 경우는 날아라! 건담이나 Utauyo!! MIRACLE, 천본앵 등을 연주한적도 있다. 프리큐어나 가면라이더, 슈퍼전대, NHK 대하드라마 시리즈를 비롯한 각종 드라마와 AKB48, EXILE등의 유명한 가수들의 곡들도 연주한다.[176] 그에 비해 항공자위대의 음악대는 얌전한 편인데, 아무래도 항자대는 곡예비행을 하는 블루 임펄스쪽이 더 먹히기 때문인 듯하다. 드라퀘, 몬헌, 야마토, 코난, 천본앵, 미쿠미쿠하게 해줄게 등. 그러나 자위대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음악은 역시 고지라 시리즈.
- 자위대 모집 CF를 보면 자위대는 스스로를 전대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자위대 모집 CF 보기
- 미국은 집단자위권에 대해 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한국과 중국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해당기사
- 2014년에 한국에서 자위대 창설 60주년 행사를 행한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나오자 이를 진행하려 했던 롯데호텔 서울이 곤란함을 이유로 취소하였다. 창설 행사 자체는 매년 기념일에 행해지며, 우리나라도 해외 공관에서 건군일에 행하고 있듯이 외교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 상기했듯이 자위관들은 정치적 중립이 상당히 중시되는데, 구체적인 사례로는 2016년 2월 20일에 올라온 자위대원을 정말로 곤란하게 하는 넷 우익형 군 오타쿠(自衛隊員が本当に困っている「ネトウヨ型軍オタ」)라는 기사를 예로 들 수 있다. 그야말로 가관이다.[177] 제목 그대로 자위대에게 민폐나 끼치는 일본 넷 우익들에 대한 내용(...)인데, 한국 및 중국에 대한 사상 입장을 물어 보고는 자위대원이 얼버무리자 정신이 썩었다면서 모자를 훔쳐가는 경우, 공명당이 여당에 당선되면 좋은가 하는 질문을 얼버무리니 "너 스파이냐" 하고 화를 내는 경우, 자위대의 센카쿠 및 독도 "탈환" 주장을 1시간 동안 들어야 했던 육자대 3사단 3등육좌 등의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참고로 저 주장을 들어야 했던 당사자 왈, "마치 만화같은 이야기지만, 납세자인 국민의 의견입니다.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제 근무 사정도 좀 이해해주셨으면 좋겠는데...(まるで漫画のような話でしたが、納税者である国民のご意見です。聞かないわけにはまいりません。ただ私の勤務の都合もご理解いただければありがたいのです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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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えい'가 [エー\] 비슷하게 장음으로 발음되긴 하나, 이를 표기에 반영하지는 않는다. 헵번식 로마자 표기법으로도 'ei'로 표기하며, 'ē'로 쓰지 않는다.[2] 이는 즉, 과거 진주만 공습을 당했던 하와이에서부터 시작하여 미국이 새로운 위협에 직면하는 것을 의미했다.[3] 이는 자민당 내에서 이른바 보수본류에 해당한다. 자위대의 국군화를 주장하는 쪽은 보수방류이다. 원래는 본류가 전후부터 오랫동안 주류였으나 본류의 오부치 게이조가 과로사하고 방류의 모리 요시로를 시작으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가 장기집권하면서부터는 오히려 방류가 당내에서 더 주류가 되었다. 그러다가 다시 본류 계파의 기시다 후미오가 집권하고 아베 신조가 암살당하자 방류의 세가 다시 줄고 있다.[4] 그 이전인 1945년에도 한반도에서 자위대라는 명칭이 쓰인 적이 있다. 북한 지역의 민족주의계열 지도자였던 조만식이 치안유지단체로 인민자위대(人民自衛隊)를 세운 바 있다. 그러나 1945년 10월에 소련파 공산당계 군사단체인 적위대(赤衛隊)가 북한에 있던 치안유지단체를 통합하며 조만식이 주축이 됐던 자위대는 사라졌다. 물론 일본의 자위대와는 전혀 관계없다. 흥미로운 건, 적위대가 군사단체를 통합하면서 이름을 보안대(이후 1948년엔 조선인민군으로 바꾼다.)로 개칭했다는 것이다. 보안대는 우연의 일치로 육상자위대의 예전 이름이기도 하다. 사실 자위대란 표현 자체가 Defense Force의 여러 번역어 중 하나로 쓰였기 때문에 1920년대에도 자위대란 표현을 볼 수 있다. 대한독립군자위대란 집단도 있었다. 소설 '꺼삐딴 리'에서도 자위대가 언급되기도 한다.[5] Defense Force, 즉 방위군이나 국방군은 여러 국군의 명칭으로 쓰이지만 "Self-Defense Forces"는 일본의 경우만 존재한다. JSDF, SDF라고도 한다. 물론 SDF로는 State Defence Force, 즉 미국의 경우와 같은 주방위군, 주방위대의 경우도 있을 수는 있으나 자위대라는 조직을 가진 나라는 일본이 유일하다.[6] 대표부 같은 대체기관이 있긴 했지만 정식 외교와 비할 바는 아니었다.[7] 한자로는 力量防衛日本(역량방위일본)[8] 실제 사례. RSOI 연습에 참여한 대한민국 국군을 "남선군 무력"이라 칭하고 있다.[9] 다만 일본 제국군 시절에도 군인을 무관이라고 불렀다.[10] 자위대 자체가 현행 헌법이 만들어지고 나서 한국전쟁이라는 비상사태에 미군의 재무장 요구를 타협하면서 창설되었기 때문이다. 일본국 헌법은 1947년 시행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개정된 적이 없다.[11] 따라서 후술할 기동경찰 패트레이버나 세이기노 히로 등의 매체에서 쿠데타를 일으킨 자위대 병력을 경찰이 막으려 드는 심히 어이없는 상황도 일본 입장에선 일어나지 말란 보장이 없다.[12] 참고로 국방군이란 표현은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그냥 국군(國軍)과 동의어다. 한국에서 국방군이 나치 독일 시기의 독일군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제한된 것과는 다르다.[13] 한편으로는 독일군의 설립 과정과도 똑같다. 독일 역시 전후 나치의 국방군이 해체되고 점령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의 군대를 보조할 목적으로 경찰대로 시작했지만, 결국 소련을 경계한 미영프 서방 3국이 서독의 경찰대를 군대로 격상시켰고 소련도 동독의 경찰대를 군대로 격상시켰다. 다만 독일의 경우 그 군사적 커리어와 소련과 그 친구들이라는 공산 국가의 최정예, 주력군과 직접 국경을 맞대고 전면전을 준비하는 살벌한 곳이라 군대가 재건되었지만 일본은 한국이 공산 국가와 국경을 맞댔고 미국이 필요한 것도 주로 일본 해군의 그 노하우였기 때문에 군대가 되진 못했다.[14] 도쿄도 네리마구에 소재한 육자대 동부방면대 소속 제1사단의 "아사카 주둔지(朝霞駐屯地)"에서 육해공 합동으로 참여하여 방위대학교의 학생들 · 방위의과대학교의 학생들 · 고등공과학교의 생도들 · 각 육해공 자위대 부대별 보병행진, 육해공 소속 항공기의 관열비행, 병기 및 차량행진 등으로 치르는 대민친선 이벤트이다.[15] 이바라키현 오미타마시(小美玉市)에 소재한 햐쿠리 비행장(百里飛行場. 중부항공방면대 소속 제7항공단의 햐쿠리 기지 겸 햐쿠리 공항)에서 육해공 소속 항공기와 블루임펄스가 참여하는 에어쇼 형식의 대민친선 이벤트다.[16] 중의원의원[17] 중의원의원[18] 방위성 내부승진으로 올라오는 문관 측 최고 직급자이다. 자위관 중에서는 통합막료장이며, 사무차관은 통합막료장보다 의전상 위에 있다.[19] 중의원의원[20] 중의원의원[21] 대한민국 국군의 경우 김명수합참의장까지 총 43명의 합참의장 가운데 육군 37명 그 중 김종오합참의장이 총 3번 연임했기에 육군 출신은 37명이 아니라 36명이며, 해군 2명, 공군 3명로 육군의 비율이 상당히 높다. 다만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자위대도 육자대의 힘이 센 편이다. 국방 예산을 가장 많이 배정받는 곳도 해자대가 아니라 육자대다. 이는 육자대에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라기보단, 원래 어느 군대나 사람 수가 곧 전력인 보병의 존재로 인해 육군 및 유사 조직이 사람 수가 제일 많아 인건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22] 이는 세계 대부분의 공군이 육군 항공대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어디나 비슷하긴 하다. 대한민국 공군도 대한민국 육군에서 독립한 형태이다.[23] 참고로 구 일본군 시절에는 준사관 계급이 일찍이 존재했었다.[24] 준장 설치 떡밥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만약 설치가 된다면 규정대로 준장급은 2종 ○장보, 소장급은 1종 ○장보라 칭할 듯 하다.[25] 준위를 폐지하고 상급조장을 설치하자는 주장이 있다.[26] 정식 자위관은 아니고 자위대생도나 고등공과학교 생도에게 3등O사 계급을 부여한 적이 있다. 2011년에 폐지.[27] 한국으로 치면 처음부터 장기복무로 선발한 병. 일반조후보생 코스로 선발한다.[28] 총 56만 명 정도인 한국군의 장성 숫자가 약 400명이다. 총 병력 수는 한국이 2.4배 정도인데도 총 장성 수는 약 1.5배 정도다. 그리고 국군의 장성 숫자도 미군이나 서유럽 군대에 비하면 너무 많다고 수시로 까이고 있다. 이 때문에 매 정권마다 장성 감축안을 들고 나오는게 현실인데, 일본은 우리보다 훨씬 심각한 것이다.[29] 방위대는 졸업 후 바로 임관이 아니라 간부후보생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소위급인 삼위로 임관한다.[30] 단 2014년 장성 인사에서 육사 출신으로 군의관으로 전환해 쾌속진급한 육사 47기(1991년 임관)가 있긴 하다.[31] 육자대는 2010년에도 도쿄대학-일반간부후보생 출신의 와타나베 요시카즈를 육상막료부장에 임명한 적이 있다.[32] 이름과 달리 실세들은 휘하의 호위함대사령관, 잠수함대사령관, 항공집단사령관들이다.[33] 한국으로 치면 특수사관, 학사사관, 간부사관을 통틀으는 과정이다.[34] 일본 경찰은 단일 계급 체계이긴 하지만 신분제가 공고해서 절대 순사 출신은 진급만으로는 고위 간부로 진급할 수 없다. 정작 자위대는 진급의 제한은 있을지언정 항공학생 같이 이등병부터 시작해서 대령까진 진급만으로 올라갈 수 있는 코스도 있고, 원사나 준위까지 달고도 중년 나이대에 소위로 신분 전환할 수 있는 내부자 선발 과정도 있다.[35] 시간 상으로 추정해 볼 때 삼무사건에 대한 기사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만 삼무사건의 쿠데타 모의가 발각된 것은 61년 12월이고 해당기사의 날짜는 61년 6월인 것을 감안하면 다른 사건에 대해 다룬 기사일 가능성도 있다.[36] 물론 욱일기는 국제법상 하등 문제가 없기는 하다. 일본과 가장 피흘리며 싸웠던 미국도 전통문양이라며 주일미군 마크와 병용해서 사용할 정도이니... 자세한 사항은 욱일기 문서로.[37] 현재 일본은 일방적인 독도에 대한 영토 분쟁을 시전중이다. 실제로 방위백서에는 독도가 일본 땅임을 명시해 놓고 유사시 독도에 자위대를 파견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 들어갔다고 한다. 기사 보기 이런 상황에서 한국인이 자위대에 부정적인 시각을 갖지 않는 게 더 이상한 상황이다.[38] 한국과 더불어 일본은 '준핵보유국'으로 간주되고 있다. 쉽게 설명하자면 현재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는 않지만, 개발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단시간 내에 핵무기를 개발해서 실전배치까지 시킬 수 있는 국가라고 보면 된다.[39] 실제로 경장갑 기동차나 고기동차 같은 이런 류의 차량들이 이러한 것으로 도입한 까닭에 각 부대별로 사용 부품이 미묘하게 달라지는 편이라서 자기가 운전하던 경장갑 기동차가 일때문에 근처를 주행하다가 갑자기 고장으로 퍼지자 하는 수 없이 근처에 있던 같은 사단의 다른 부대로 들어가 그곳에서 차량 정비를 하려고 복귀하려고 했는데 분명 같은 차량을 배치받은 부대임에도 불구하고 고장난 부품에 맞는 부품이 해당 부대에 없어서(!!) 할 수 없이 그 고장난 부품을 들고 근처 차량 정비소에 가서는 그 부품과 최대한 유사한 걸 가지고 와서 부대에 돌아갈 정도까지 억지로 고친 다음 부대로 복귀해서 완벽하게 정비했다는 이야기가 있었을 정도이며 이러한 문제 덕분에 민간 정비소에서도 공유 부품이 꽤 많아서 타 부대로 가더라도 별 다른 문제없이 정비가 가능한 73식 소형 트럭에 대한 자위대 운전병들의 선호도가 높아진 것도 바로 이런 허점때문이다.[40] 정확히는 라이선스 생산하여 일본인 체형에 맞춘 거라고 하는데 기존 총기와 별반 차이점이 없다고...[41] 해당 총검은 전체 길이 41cm/칼날 길이 29cm 정도라고 한다.[42] 전체 길이 27cm의 총검. 총검날과 깡통 따개처럼 생긴 총검 칼집 끝을 합체하면 '철조망 절단기'가 된다. 그리고 다른 한쪽 날에 톱날이 있다.[43] 경찰예비대와 보안대 시절부터 64식 소총 도입 시기까지 썼지만,지금도 육상자위대의 특별의장대인 '제302 경무 보안 중대'와 해상자위대•항공자위대의 곡예시범대(ファンシードリル隊)가 쓰고 있다.[44] 1950년 공여되어 경찰예비대 주력 소총으로서 1960년대까지 사용한 후, 교보재로서도 사용하여 1990년대 들어 순차적으로 퇴역하였다. 일부 장비는 현재 예비 장비로서 보관 중이다.[45] 참고로 이 기관총은 원형인 62식 기관총보다 성능이 준수한 편이라서 자위대 소속의 각종 장갑차나 전차의 동축 기관총 외에도 헬기 기총으로도 사용되고 있다.[46] 전후 일본이 만든 무기 중에서 가장 잔고장 등이 심한 것으로 악명이 높은 무기 체계로도 유명하다. 오죽하면 미니미의 시험 발사를 본 자위관들이 이구동성으로 무고장 총이라는 과거 일본군이 체코제 기관총을 노획했을 때랑 동일한 명칭을 부여했을 정도. 그 후 두고두고 킹 오브 바보총(キング·オブ·バカ銃)이라고 까였다! 자세한 것은 자위대/문제점 '62식 기관총의 사연'편 참조[47] 일본 스미토모 중기계공업(住友重機械工業)이 1993년부터 라이선스 생산하여 5.56mm 기관총 MINIMI(5.56mm機関銃 MINIMI)라는 이름으로 채용한 상태로서 당연히 대체하는 기관총은 자위대 내에서 악명이 높은 구 일본군 기관총의 습성을 그대로 카피했다고 하는 62식 기관총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라이선스 생산하면서 고장률이 높아져서 비리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실제로 부실하게 만들어졌다는 게 드러나기도 했다. 어쩐지 호무호무가 M249를 주워 쓴 것이 이해 가네[48] 경찰예비대 시절에 미군한테 공여받아 1960년대 62식 기관총으로 대체될 때까지 사용하였다. 현재는 방출하지 않고 치장 물품으로서 보관 중이다.[49] 경찰예비대 시절(1950년)부터 1950년대 후반까지 사용하였다.[50] 마찬가지로 경찰예비대부터 1960년대까지 사용하였지만, 1980년대 후반 장갑차량 탑재용으로 사용된 적도 있다.[51] 칼 구스타프 M2형이며 2013년부터 칼 구스타프 M3형을 84mm 무반동총(B)이라는 이름으로 도입하고 있는 상태임.[52] 일본판 Mk.19 고속 유탄 발사기[53] 육자대에서 새로 도입한 AAV-7A1의 신형 포탑 탑재용으로 쓰임.[54] 해당 소총은 일본 중앙즉응집단 소속 특수작전군에서 2007년과 2008년 소수를 M203A2 유탄발사기와 같이 도입한 소총[55] 해당 총기는 특수소총(A)(特殊小銃(A))와 (B)이라는 이름으로 HK417 소총과 함께 연구용으로 소수가 도입된 것으로 알려졌다.[56] 4.6mm 단기관총(B)(4.6mm短機関銃(B) MP7)로 소수 도입. 연구용으로 도입한 것으로 알려졌다.[57] 통칭 11.4mm 기관단총(11.4mm短機関銃 M3/M3A1)으로 불리는 것으로서 자국산 9mm 기관단총에 대체되어 퇴역하였으나 여전히 나이든 자위관들은 해당 기관단총을 그리워한다는 듯...[58] 11.4mm 권총(11.4mm拳銃)으로 불리며 예비용으로 다수가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59] 경찰 예비대 창설(1950년)하면서 미국이 공여하여 1980년 대까지 사용한 리볼버.[60] 경찰예비대 발족시 미군으로부터 공여된 것으로 70년경에는 대부분 퇴역했으나 해상자위대에서는 70년대 이후까지 사용한 것이 확인된 바 있다.[61] 64식 소총에서 사용하기 위해 도입된 미국제 총류탄(M31 HEAT rifle grenade)으로서 06식 총류탄 배치 이후에는 훈련용과 예비용으로 사용 중이라고 한다. 참고로 해당 총류탄은 64식 소총 및 89식 소총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다고 한다.[62] 이 미사일은 말 그대로 상륙하려는 상륙 주정을 격침시키거나, BTR-50, AAV7와 같은 수륙 양용 차량이나적 전차를 격파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장비이다. 단독으로 거치형 미사일 발사기로 발사하지만, 다른 하나는 89식보병전투차의 35mm 기관포탑 양쪽 옆에 발사기를 달아 발사하는 경우도 있다.[63] 국산화한 91식 휴대용 지대공유도탄 등장으로 인해 2006년 퇴역. 하지만 AH-64D 아파치 롱보우의 폭장용 날개 끝에 달아 현역으로서 여전히 활약한다![64] 형식명: ATM-1, 통칭: MAT. 2000년 대 말 79식 대주정 대전차유도탄과 87식 대전차유도탄과 배턴 터치하고 퇴역한 1세대형 수동지령조준선일치(手動指令照準線一致 MCLOS, Manual Command to Line Of Sight) 방식의 대전차 미사일.[65] 경찰예비대 시절부터 1960 전반 즈음까지 사용하였다.[66] 1951년 도입하여 호화 84mm 무반동포(칼 구스타프) 도입하여 퇴역할 때까지 사용하였다.[67] 53식 신호 권총(53式信号拳銃)이라고 부르는 물건이기도 함.[68] 영국의 로열 오드넌스사 L16 박격포를 라이선스 생산한 것으로 90년대 초부터 호와 공업에서 라이선스 생산. 최대 사거리: 약 5.6km, 최대 발사 속도: 분당 30발[69] 프랑스의 TDA사 MO-120-RT-61 견인 방식의 중박격포를 1992년부터 호와 공업에서 라이선스 생산하였으며 이후 107mm 박격포를 대체했다. 최대 사거리: 약 8km, 최대 발사 속도: 분당 15~20발[70] 미군 공여품으로 90년대초 완전 퇴역한 장비로서 대체품은 60mm가 아니라 81mm 박격포인지라 사실상 일본 자위대에는 60mm 박격포는 없다.[71] 미군 공여품으로 70년대까지 사용후 퇴역한 장비로서 대체품은 L16 81mm 박격포이다.[72] 90년대부터 L16의 도입으로 퇴역한 미국 M29 박격포의 카피[73] 1992년부터 프랑스제 120mm 박격포 RT로 교체가 시작되어 2010년경 완전 퇴역한 장비이다. 참고로 해당 박격포는 한국군에서 4.2인치 박격포라고 부르는 것과 동일한 물건이다.[74] 2000년 전 차량 퇴역.[75] 2011년부터 점차적으로 퇴역 진행 중이며 대체 차량은 10식 전차 혹은 기동전투차라고 한다.[76] MSA협정에 의해 M4A3E8를 공여해, 1954년부터 1972년 까지 사용한 장비(경찰예비대•보안대 시절에는 전차를 '특차(特車)'라고 불리운다). 그 당시 공여받은 M4A3에는 일본인 체형이 안맞는 경우가 있어 조종할 때 클러치 조작에는 다리를 쭉 힘껏 밟으라고 할 정도[77] 1952년 부터 1974년 까지 미국으로 공여받은 장비로 사용하였다.[78] 1960년 부터 1983년 까지 사용하였다.[79] 2006년 퇴역,해당 장갑차의 대체 차량은 73식이나 89식이 아니라 96식이나 경장갑 기동차였다.[80] M110 203mm 자주포와 함께 움직이는 장비로서 K-10 탄약보급장갑차와 동일 목적의 차량.단,해당 장비는 만들어진 게 오래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크레인을 이용해서 차내에서 탄약을 꺼내서 자주포 옆에다가 놔두는 간접 탄약 보급 방식을 사용 중이다.[81] 2015년부터 미국으로부터 도입 시작. 일본의 법령에 의해 뒤에서도 볼 수 있도록 길게 늘어 뜨린 깜박이(방향지시등), 사이드 미러, 항해등을 정면부에다 추가로 개조시켰다[82] 2013년 1월 16일 일본인 10명 희생당한 알제리 인질사건 계기로 인질구출 및 안전하게 수송하기 위해 지뢰 방호가 가능한 호주산 "부시마스터 장갑수송차(Bushmaster Protected Mobility Vehicle)"를 4대 주문했으며 2014년 4월부터 중앙즉응집단 소속 중앙 즉응 연대에 배치하였다.[83] 1950년부터 1981년까지 공여받은 M3A1으로 기갑과 부대와 특과(포병) 부대의 지휘차량으로 사용하였다.[84] 1950년 부터 1967년 까지 사용하였다. 그런데 대한민국 육군 전신인 조선경비대에 비해, 육상자위대 전신 격인 경찰예비대는 적은 양으로 공여받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는다![85] 독일(서독 FH 155-1), 영국(FH70), 이탈리아(155mm FH70)가 개발하고, 1983년 일본이 도입하면서 라이센스 생산(일본제강소, 후지중공업(스바루엔진의 보조동력장치))한 곡사포.105mm 견인곡사포와 155mm 견인곡사포 M1(M114)의 후계모델. 고생한 선배 자위관 덕에 그나마 꿀을 빨은 셈[86] 1952년 공여 개시하여 1998년 FH-70(1982년 도입)에게 바톤 터치하고 퇴역한 특과 장비. 일본에도 허리분쇄기가 있군[87] 경찰예비대 시절(1952년)부터 1998년까지 썼지만, 지금도 예포로서 현역으로 활약 중이다. 특히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에서 "승리의 코럴" 대포를 쏘는 파트 역할.[88] 1999년 전차량 퇴역.[89] 2016년 완전 퇴역.[90] 해당 장비는 M110A2 버전으로 원본과 달리 구경장이 다소 커진 것이 특징.[91] 사격 및 진지 변경 신속화나 전술 및 전략 기동화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프랑스의 카이사르(CAESAR, CAmion Equipé d'un Système d'ARtillerie), 체코의 ShKH vz.77 Dana, 스웨덴 • 노르웨이의 FH-77 BW L52 아처와 같은 개발 중인 차륜형 자주포. 예산절감 하기위해 99식 155mm 자주포의 포와 중장륜회수차(重装輪回収車. 장륜장갑차를 구난 및 견인하기 위한 장비)의 차대를 합쳐서 설계하기로 채택함. FH-70을 대체하기 위함이다[92] 1965년에 도입하여, 1980년대 국산인 75식 155mm 자주곡사포로 교체되어 순차적으로 퇴여하였다. 1986년 전 차량 용도폐지되었다.[93] 1966년에 도입하여, 1977년 국산인 74식 105mm 자주곡사포로 교체되어 순차적 퇴역하였다. 그리고 1984년 전 차량 용도 폐지하였다.[94] 2008년 완전 퇴역[95] 자주부교차량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하천도하 방지목적의 기뢰를 부설하는 차량이다.[96] 미군의 M9 ACE와 국군의 KM-9ACE(M9ACE을 라이센스 생산하며 한국 지형에 맞게 만들어 놓았음.)의 일본형의 시설과(공병) 장비. 단, 덤프트럭에 의존하지 않고 흙을 담는 기능은 없음.[97] 軽雪上車. 해당 장비는 동북부 지역부터 홋카이도 같은 곳에 동절기에만 운영하는 장비로 육상자위대 정찰대가 보유한 정찰용 오토바이 대용으로서 사용된다.참고로 이 장비는 민간 스노우모빌을 사용해서 부대마다 사용 장비가 각자 다르다고 한다.[98] GDF-001 35mm 연장기관포 시스템을 포부분은 일본제강소(日本製鋼所), 레이더 제어 사격통제장치는 미쓰비시 전기(三菱電機), 각 부분은 스위스의 오리콘 사와 함께 공동개발에 의해 일본 자위대 실정에 맞게 개량하여 1969년 도입하였다. 그리고 기술이전 및 라이센스 생산하여 국산화하였다. 2009년 퇴역[99] 1960년 도입(공여)하여, 1994년 전차량 퇴역하였다.[100] 2003년 퇴역. 육상자위대가 MLRS 도입 이전에 쓰던 다연장 로켓 발사대[101] 포병의 풍향,풍속 측정용 장비로서 주로 다연장 로켓부대에서 이용하고 있다.[102] 155mm M114 견인 곡사포를 견인하는 무한궤도식 특과 장비. 1953년에 공여한 것 부터 시작하여 1970년 대 73식 견인차(73式けん引車)에게 바톤 터치하여 퇴역할 때 까지 사용하였다.[103] HMV의 파생형 (3), 79식 대주정 대전차유도탄과 87식 대전차유도탄을 대체 목적으로 만들어진 장비.[104] 유도탄 발사장치와 지상유도장치가전부 HMV의 파생형 (1).[105] HMV의 파생형 (2). 91식 지대공유도탄 문서 하단 참조[106] 1962년 제2차방위력정비계획에 의해 육자대의 2개 대대가 도입 및 장비하기로 시작부터 1964년 항공자위대에게 이관하기까지 사용하였다.[107] 일본인답게 목욕이 뗄레야 뗄 수 없어서, 야전 및 숙영시에 이런 장비가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방수포와 철골(틀)로 된 조립식 욕조와 전용 천막, 샤워 시설,탈의실(천막), 에어돔 형식의 저수 탱크, 보일러•양수 펌프•발전기가 탑재된 트레일러로 구성되어 있으며,조금 쓸데없어 보이는 물건이지만 고베 대지진과 동일본 대지진 등 지진에 의하여 수도망이 파괴된 상태에서 목욕 등의 애로를 겪는 이재민들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고마운 장비이며 이 장비는 일본 자위대원들 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참고로 이 장비는 유사시 인체제독용으로 쓸 수 있는 모양. 물론 입욕 세트 설치가 불가능하거나 부족한 경우에는 이재민들에게 자위대의 시설을 개방하기도 했다. #[108] 구성요소는 수술차 2대, 멸균실(차량), 자가 발전기 트레일러이다. 원활한 수술하기 위해 각 차량에 연결통로를 마련한다. 완전히 종합병원급 수술실이다! 전시에 야전 병원 역할 충실히 뿐만 아니라 재난 발생시에도 이재민 구호 지원을 하고 있다.과거 영화 일본침몰에서도 그 사용장면이 나오기도 했다.[109] 해당 차량은 쉽게 말하면 화장실 트럭이다.소변기 5개와 화장실 5개가 트럭 내에 있다.해당 장비도 재난 발생시에 이재민들의 위생을 지키는 데 큰 공헌을 한다고 알려지고 있다. 참고로 야생은 '야외위생'의 준말[110] 트레일러에 각종 취사장비를 연결한 형태, 참고로 야외 취사도구 2호와 2호 개량형이 있는 데 이건 트레일러와 별개로 사용되는 취사도구들을 의미한다.참고로 항자대에서는 이런 것이 없고 그냥 취사용 트럭(炊事車)을 굴리고 있다.[111] 1/2t(73식) 트럭 뒤에 연결시켜 견인하는 짐칸이다. 주로 분해된 81mm 박격포 L16과 박격포탄이나 그 밖에 물건을 실어 나르는 역할을 함[112] 1950년 포드 GPW와 함께 공여 개시하여, 1980년 전량 용도폐지[113] 1950년에 경찰예비대 발족 당시 미군에서 공여하여, 1970년대 후기에 전차량 용도폐지 및 퇴역. 이후 후속 모델이 토요타 73식 중형트럭이다.[114] 2001년 이후 신형은 "1 1/2t 트럭(1 1/2tトラック)"[115] 2001년 이후 신형은 "3 1/2t 트럭(3 1/2tトラック)"[116] 2001년 이후 명칭 "7t 트럭"[117] 73식 중트럭과 73식 중형트럭의 유지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저렴하게 민수용 트럭을 부대사용승인하여 자위대에다 납품하여 쓴다. 각 부대마다 이스즈 포워드, 히노 레인저, UD트럭 콘도르가 쓰고 있다.[118] 1950년 경찰예비대 발족 동시에 공여하여, 1978년 전량 용도폐지[119] 해당 장비는 2002년부터 도입한 차량으로서 부대마다 부품등이 달라서 제식명이 부여되지 않고 있음.일단 HMV보다는 경량화가 이루어졌다.영어위키[120] 하야테(疾風)라는 애칭과, 고기(高機コウキ)라는 약칭, 혹은 재패니즈 험비라고 불리는 고기동차로서 해당 차량 등장 이후에 나온 고기동 경장갑차량보다는 비교적 고가라서 배치된 부대는 그렇게 많지 않다. 참고로 민수용으로 생산된 "도요타 메가크루저"가 있다.(2001년 8월에 단종)[121] 민수용 가와사키 KLX250 오프로드 바이크를 정찰 및 연락 목적으로 만들어진 군용버젼. 원래는 혼다 XLR250R과 함께 운용했지만, 배기가스 규제로 단종되어 "가와사키 KLX250"만 운용되고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출처[122] 이전에 1969년에 도입하여 오랫동안 운용한 OH-6J형은 1980년대 들어 순차적으로 용도폐지 하여 퇴역하였다. 그 후속모델은 개량형인 OH-6D임 셈이다.[123] 그 이전 모델인 1962년에서 1972년까지 걸쳐 도입하면서 라이센스 생산한 UH-1B(히요도리 ひよどり)형은 퇴역하였고, UH-1H형은 2015년 전기 퇴역할 예정이다.[124] 일본 UH-X 사업에 의해 Bell 412EPI의 개량형을 UH-1H/J의 후속모델로서 2021년도 도입 예정. 원래는 가와사키가 순국산 다목적헬기를 개발할 계획이었지만 감사에서 방산비리가 드러나 무산되어, 가와사키 / 에어버스 헬리콥터의 H160와 후지중공업 / 벨 에어로스페이스의 Bell 412EPI 경합하기로 돌렸다. 그 결과 벨 에어로스페이스 사제 Bell 412EPI를 후지중공업이 기술이전 및 라이센스 생산하면서, 조달 예정 갯수는 150대이다.[125] 일본수상이나 외국 국빈과 같은 중요 요인들을 태울 때 사용하는 헬기로서 해당 헬기는 항공 자위대가 아니라 육상자위대 소속이다. 참고로 해당 헬기 이전의 헬기는 동일 회사에서 만든 슈퍼 퓨마.[126] 1965년 V-107 도입 및 가와사키가 라이센스 생산하여 1997년 전기 퇴역될 때 까지 사용한 기체[127] 민간 터보프롭 비지니스기로서 만들어진 "미쓰비시 MU-2"를 육상자위대가 채용한 것으로서 LR-2 연락 및 정찰기의 등장으로 곧바로 대체되었다.[128] 민간 터보프롭 비지니스 기 "비치크래프트(현 레이시온 비치크래프트 사) 슈퍼킹에어 350"를 개조 및 채용한 것으로 짧은 이착륙 거리를 자랑해서 육상자위대가 기존에 보유하던 자국산 LR-1 연락 및 정찰기를 완전히 대체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129] 1982년 전기 퇴역. 일부 기종은 초대 블루임펄스 소속기로서 활약했었다.[130] 1954년 항공자위대 창설 당초부터 F-86F와 함께 68대 미국에서 공여받았고, 다음해인 1955년 가와사키에게 210대를 기술이전 및 라이센스 생산하였다. 1980년대 후반 후속 훈련기 가와사키 T-4에게 자리를 넘기고 순차적으로 퇴역하였다. 당초 2000년까지 조금 더 사용할 예정이지만 1999년 11월 22일 발생한 추락사고 계기로 잔존기체들을 2000년 6월 강제로 전기 용도폐지되었다.[131] 일본 전후 최초 국산 제트훈련기로서 T-1A형은 1958년 도입하여 2001년 퇴역, T-1B형은 1960년 도입하여 2006년 3월 퇴역하였다.[132] T-1A/B를 연구 및 개발 목적으로, 1956년 드 해빌랜드 뱀파이어(T.55) 병렬복좌형 훈련기 1대를 구입하였다. 1960년 퇴역. 현재는 하마마츠 항공자위대 홍보관(浜松広報館)에서 전시중[133] 2006년 전기 퇴역한 기종으로서 일본에서는 전후 최초로 자체개발한 것으로도 유명한 기종임.[134] 상기 F-1 전투기의 모체가 되면서, 동시에 2006년 퇴역한 기체. 그리고 2대째 블루임펄스 소속기로서 활약했었다.[135] 한국에선 치면 "전투폭격기(전폭기)"이다. 이런 독특한 명칭이 생기는 배경은 일본헌법전문 및 일본헌법 제9조(평화헌법)를 구축한 자위대가 어차피 정식군대가 아니어서 전수 방위만 하겠고, 국내 여론 및 주변국들을 의식하여 호전적이고 위협적인 이미지를 피하려 하기 때문이다. 2005년도 이후 방위대강(防衛大綱)에서 폐지하여 지원전투기•요격전투기로 구분하지 않고 '전투기'라는 명칭으로 통일하였다[136] 이것도 마찬가지로 2005년도 이후 방위대강에 의해 전투기로 통일하였다.[137] 1986년 전기 퇴역. 일부는 무인표적기로 개조되었지만 결국 1997년에 모두 퇴역한 기종으로서 F-104 운영국들 중에서 추락사고가 가장 적은 횟수를 자랑하고 있었다. 안 떨어지고, 잘 날아서 영광(栄光)이라 카더라[138] 1955년 1월부터 자위대에 공여 개시하여 T-6G형 중심으로 항공자위대에게 167대, 해군형 SNJ를 해상자위대에게 양도하였다. 중등훈련기인 G형 중에 24대가 항공구난단에서 구난 포드를 장비하여 수색구난기로서 활약한 적 있다. 1970년 전기 퇴역하였다.[139] 1954년 보안대에서 이관된 기체 10대, 이어서 해상자위대에서 이관된 기체 8대, 후지중공업에서 라이센스 생산한 기체 124대, 수입한 기체 1대까지 총 143대 도입한 초등훈련기이다. T-6G과 마찬가지 수색구난기로서 활약했었다. 1982년 8월 전기 퇴역.[140] F-86F를 개조하여 파생한 정찰기. 1961년 도입하여, 1979년 10월 전기퇴역하였다.[141] 1954년 미국이 C-46D형 수송기를 36대 공여하였다. 그리고 1962년에는 모자란 기체수를 벌충하기 위해 대만군의 공군에게 폐기예정인 C-46A형 9대와 C-46F형 3대를 싼 값에 사서 추가 도입했었다. 1977년 2월에 퇴역하였다.[142] 미국 표준 기관포로서 F-1, F-2, F-4EJ, F-15J에 장착 및 탑재된 상태임.[143] 2001년 이후 신형은 "1 1/2t 트럭(1 1/2tトラック)"[144] 2001년 이후 신형은 "3 1/2t 트럭(3 1/2tトラック)"[145] 항공자위대의 기지경비대가 기지, 분둔기지(分屯基地), 레이더 사이트(레이더 기지)와 같은 시설 내에 경계 및 순찰 근무용으로 쓰이고, 육자대와 달리 위장무늬가 없고 올리브그린으로 한 단색의 도장으로 사용한다[146] 1964년 육상자위대에서 항공자위대로 이관하여 사용하기로 시작 부터 1967년 6월 일본형 '나이키J'에게 바톤 터치할 때 까지 사용하였다.[147] 1973년 오키나와 주둔한 미 육군 제30 방공포병여단(30th Air Defense Artillery Brigade)에서 항공자위대 제5고사군(第5高射群)에게 이관한 것 시점 부터 1994년 패트리어트 미사일에게 바톤 터치할 때 까지 사용한 광역방공용 지대공미사일[148] 나이키 허큘리스를 미쓰비시 중공업이 라이센스 생산 및 국산화한 장비. 초기의 진공관을 쓴 전자기기에서 트랜지스터를 쓰는 전자기기로 변환하여 내장유도장치를 더욱 향상시켰다. 이것도 역시 1994년 패트리어트 미사일에게 바톤 터치하여 퇴역하였다.[149] 2010년 완전 퇴역.[150] 미국제 LCAC 공기부양정을 의미한다.[151] 문부과학성의 자금 지원을 받아서 만들어진 쇄빙선으로서 1983년부터 2008년까지 운영한 바 있다.해당 함정은 당시 해상자위대가 보유한 가장 대형 함정이라고 한다. 퇴역 후 전시목적으로 보관 중이다. 해당 쇄빙선의 함명은 구 육군 취중병 중위이자 일본 최초 남극 탐험가인 "시라세 노부(白瀬 矗)"를 기리기 위해 명명했다는 설이 있지만 이는 일본 해상자위대 함명 명명법에는 인명을 넣으라는 규정이 없는데다가 남극에는 시라세 빙하라는 지명이 있다보니 이 빙하를 본따서 함명으로 했다.고 하는 게 해상자위대측의 이야기다.실제로 지금까지 일본 자위대함정들은 인명을 사용한 함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152] 앞서 시라세함과 같은 방식으로 건조되고 운영되고 있는 쇄빙함으로서 전대 시라세함을 대체하기 위하여 2008년부터 운영을 시작한 쇄빙선.해당 함정의 일반 공모 때는 유키하라라는 명칭이 압도적이였으나 시라세의 고향측에서 항의를 하자 자위대측은 기존 함정이 퇴역하는 만큼 써도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공모 당시 언급조차 안 된 시라세를 다시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해당 함정에 배치된 헬기는 퇴역한 SH-3 헬기가 아니라 CH-101 헬기.[153] 문부과학성은 "남극관측선"이라고 함[154] 2017년 마지막 비행을 기해 퇴역하였다.[155] 중장 전역.[156] 육상자위대의 엘리트부대인 제1공정대에 근무했으나 간염으로 제대했다.[157] 캄보디아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피의자.[158] 아베 신조 피살 사건 범인. 최종 퇴관(전역) 계급은 해사장(海士長)#, 자위대의 士長 계급은 한국군의 상등병 내지 병장에 해당.[159] 항공자위대 자위대생도로 교육받던 중에 자퇴했다.[160] 항공자위대 자위대생도로 교육받던 중에 자퇴했다.[161] 한국의 공군항공과학고등학교와 비슷한 육상자위대의 부사관양성학교.[162] 민방위와 똑같은 일본의 전시구호단체[163] 대한민국 국군의 약장에 해당한다.[164] 자위대의 모집 모에만화도 있다.번역 2편 3편[165] 실제로 일본은 자위대의 이미지를 일반적인 인식을 개선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며, 모바일 게임 등으로 홍보하는 등 색다른 전략도 많이 쓰이고 있다.[166] 다만 이건 더 윗선 그러니까 제레 가 틀어놔서 그렇지, 실제로는 잔인하기는 해도 매우 효율적으로 인류멸망을 막을뻔했다, 일단 제레의 계획에 알맞게 정신을 잘근잘근 다져놓은 에바 파일럿들을 사살하는데 성공했으면 제레의 계획은 더이상 진행이 불가능해진다, 심지어 제레의 계획에서 있어서 필요한 에반게리온을 대놓고 만들수도 없어지는데다가 사도까지 죄다 사살된탓에 카츠라기 미사토 의 적절한 개입이 없었으면 정말 제레 입장에선 죽을맛이었을듯[167] 후반부에선 전차와 전투기도 거의 남아있지 않을 정도이다.[168] 결국 지구가 종말하기 직전까지 끔찍한 전쟁을 치루는 인간들을 치세가 모두 고통스럽지 않게 죽여준다.[169] 물론 키리토나 아스나처럼 뭔가 숨겨진 구석이 있는거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인물들도 있긴 있었다.[170] 우리나라의 육군 중령에 해당한다.[171] 일본군은 계정 생성시의 첫 트레이닝에서도 잠깐 나온다.[172] 작중 일본 야마토재단이 악역인 것과는 별개로, 자위대원들은 이런 음모를 모른 채 단순히 북한이 일본을 공격하려는 시도로 이해하고 이를 방어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으로 연출된다.[173] 평범한 생물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겠지만 18화까지 성체 1마리, 성장중인 유체 2마리 총 3마리가 확인됐는데(성체 1마리, 유체 1마리는 토벌됐음) 이 3마리에게 잡아먹힌 것으로 확인되거나 추정되는 사람이 최소 60명, 자위대 토벌 작전 중에 사망한 사람이 약 200명이다. 작중에서 구체적으로 묘사되진 않았지만 중국 해경선 3척에 타고있다가 죽은 사람들이 최소 수십명, 성체가 마리아나 해구에서 튀어나올 때 발생한 해저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로 사망한 사람도 엄청나게 많으며, 부상자들도 상당하다. 이것도 가능성이 높은 사례만 추린 것이고, 향후 본격적인 피해자 조사가 시작되거나 괴수가 더 출현하면 피해자도 더 생길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니 국가에서 전담 조직을 설치해서 대응에 나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스포] 사실 얻어 탄 건 미라이 혼자인 듯 하다.[174] 실제 고등공과학교(구 명칭: 소년공과학교)를 모델로 삼아 만들었다.[175] 징병제 국가인 한국은 국민의 거의 절반 정도가 군대를 다녀와 직접 겪었으니 더욱 잘 알 수 밖에 없다.[176] 한국군의 경우도 군악대에 입대한 오덕들에 의해 애니송이 가끔 연주되는 경우가 있다.[177] 해당 사이트의 다른 기사를 보면 여성 자위관들의 훈련광경, 근무광경, 기타 인권침해 여지가 있는 광경 등을 도촬해서 성인사이트에 팔아먹는 밀덕도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