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위더르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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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자위더르 해전.jpg

1. 개요
2. 배경
3. 양측의 전력
3.1. 스페인 해군
3.2. 바다의 거지들
4. 전투 경과
5. 결과



1. 개요[편집]


네덜란드 독립전쟁 시기인 1573년 10월 11일 자위더르해에서 스페인 해군과 '바다의 거지들(Geuzen)'이 맞붙은 해전. 네덜란드 독립전쟁 사상 첫번째 대규모 해전이다.


2. 배경[편집]


1566년 4월 5일, 빌럼 판 오라녜를 비롯한 네덜란드 귀족들 400명이 종교재판 금지, 가혹한 과세 완화, 정치 간섭 축소 등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펠리페 2세의 이복 누이이자 네덜란드의 대리 통치인인 마르게리타(Margherita di Parma, 1522~1586)에게 바쳤다. 이때 수많은 시민들이 귀족들에게 호응하는 시위를 벌이고, 귀족들이 궁궐을 기세등등하게 활보하자, 마르게리타는 두려운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 이때 옆에 있던 신하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저들은 거지들일 뿐입니다."라고 속삭였다. 나중에 이 말을 전해들은 네덜란드 귀족들은 처음엔 자신들을 무시하는 작태에 분개했지만, 이내 "거지라고 부르겠다면, 아예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거지가 되겠다"며 화려한 장식을 모조리 떼어내고 '거지들(Geuzen)'을 자처했다.

이후 네덜란드 독립전쟁이 발발했을 때, '거지들'은 유격 전술을 적극 활용해 스페인군을 괴롭혔다. 이들은 특히 바다에서 상당히 활약했다. 본래 탁월한 해양술을 갖췄던 네덜란드인들은 네덜란드 해안가에 출몰하며 스페인 함대를 공격하고, 스페인군이 장악한 항구를 습격했다. 당시 스페인군은 전적으로 바다를 통한 보급에 의존해야 했기에, '바다의 거지들'이 해안가에 출몰하는 상황은 실로 위협적이었다. 당시 반란 진압을 도맡고 있던 알바 공은 이들을 토벌할 군사 작전을 기획했다.

1573년 7월 13일 7개월간 이어지던 하를렘 공방전을 끝낸 뒤, 알바 공은 암스테르담을 위협하는 '바다의 거지들'을 본격적으로 토벌하기로 하고 암스테르담에서 12척의 배와 6척의 요트로 구성된 함대 건조 작업을 시작해 9월 12일에 마무리했다. 제독의 기함엔 '인퀴지티(Inquisitie: 종교재판)'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으며, 각 함선의 크기는 네덜란드 선박보다 훨씬 컸다. 전체 함대는 제3대 보슈 백작 막시밀리앵 데 헤닝이 지휘했다. 1573년 9월 14일, 보슈 백작은 함대를 이끌고 암스테르담 인근의 해안 마을인 셸링우데(Schellingwoude)를 포격했다. 마을은 곧 함락되었지만, '바다의 거지들'이 배를 타고 달아나는 걸 막지 못했다.

그 후 스페인 해군은 자위더르해에서 바다의 거지들을 몰아내려 했지만, 악천후로 인해 몇주간 계획을 연기해야 했다. 거지들은 그 사이에 전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10월 3일, 30척의 전함과 1,300명의 병사를 실은 스페인 해군이 자위더르해로 출발했다. 10월 5일, 스페인 해군은 자위더르해에서 바다의 거지들과 처음 맞붙었다. 바다의 거지들은 탄약이 훨씬 적어서 정면 대결은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스페인 선박에 승선하여 배를 빼앗기로 했다. 그러나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거지들의 배들이 스페인 배로 가까이 접근하는 걸 방해했기 때문에, 이들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다. 하지만 스페인 해군 역시 대서양의 거친 파도에 적응하기 힘들어해서, 양측 모두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했다.

10월 6일까지 전투를 치렀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한 바다의 거지들은 북쪽으로 후퇴하여 호른에 정박하여 기회를 노렸다. 그러던 10월 11일,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스페인 함대 쪽으로 맹렬하게 불기 시작했다. 바다의 거지들의 지휘관 코르넬리스 디르크스존(Cornelis Dirkszoon)은 지금이 기회라고 판단하여 적을 향해 접근했다. 이리하여 자위더르해 해상권을 둘러싼 해전이 막을 열었다.


3. 양측의 전력[편집]



3.1. 스페인 해군[편집]


  • 지휘관: 제3대 보슈 백작 막시밀리앵 데 헤닝
  • 전력: 함선 30척, 병사 1,700명


3.2. 바다의 거지들[편집]


  • 지휘관: 코르넬리스 디르크스존
  • 전력: 선박 24척, 선원 700명


4. 전투 경과[편집]


1573년 10월 11일, 바다의 거지들은 바람을 타고 스페인 함선을 향해 돌진했다. 당시 대서양의 거친 풍랑에 적응하지 못한 수많은 스페인 장병이 배멀미로 고통받고 있어서, 이들의 습격을 제대로 막아내지 못했다. 바다의 거지들은 적선에 달라붙은 뒤 낙줄을 던져 선루에 걸어놓고, 그걸 타고 올라가서 적군을 제압하고 함선의 지배권을 탈취했다.

그러던 중 스페인 기함 '인퀴지티'에 네덜란드 선박 여러 척이 달라붙었고, 이내 깃대에 꽂혀 있던 제독기가 절단되었다. 이걸 본 스페인 함선들은 전의를 완전히 상실하고 암스테르담으로 달아났다. 스페인 함대 지휘관인 보슈 백작은 그와 부하들이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항복하여 호른에 수감되었다. 이리하여 자위더르 해전은 '바다의 거지들'의 완승으로 종결되었다.


5. 결과[편집]


스페인 해군은 자위더르 해전에서 전함 6척이 탈취당하고 수 척이 파손되었으며, 지휘관 보슈 백작과 300명이 체포되는 등 큰 타격을 입었다. 반면 바다의 거지들의 피해는 선박 1척이 침몰하고 선원 25명이 전사 또는 실종되는 정도로 국한되었다. 이 패배는 알바 공에게 있어 치명적이었다. 당시 그는 알크마르 공방전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위신이 떨어진 상태였는데, 자위더르 해전 마저 실패하면서 바다의 거지들이 계속 날뛰는 걸 막지 못했다.

급기야 10월 23일 2천 명 이상의 용병들이 2개월 동안 체납된 급료를 지급하라고 요구하며 파업을 선언했다. 알바 공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10월 28일 암스테르담에서 빠져나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펠리페 2세의 소환 명령을 받고 스페인으로 돌아갔다. 스페인군은 새 총독인 루이스 데 레퀴상스가 올 때까지 군사 작전을 펼치지 않았고, 빌럼 판 오라녜는 그 사이에 네덜란드 지도자들과 협의하여 홀란트, 제일란트, 위트레흐트, 프리슬란트 4개 주가 연합한 군사 동맹을 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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