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크라이나 연합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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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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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은 450석이지만 크림 자치 공화국, 도네츠크주, 루한스크주를 실효 지배하지 못하기 때문에 424석만 선출한다.
재적

421석
공석

29석

[신뢰] A B 신뢰 교섭단체 소속으로 활동한다.[미래] 미래를 위하여 교섭단체 소속으로 활동한다.



[ 원내 교섭단체 ]
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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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de00 인민의 종

240석
]]
신임 공급
[[인생과 평화를 위한 연단|파일:인생과 평화를 위한 연단 로고.png
{{{#1c3e99 인생과 평화를 위한 연단

25석
]][야]
[[미래를 위하여|파일:미래를 위하여 로고.svg
{{{#5b018d 미래를 위하여

21석
]]
[[신뢰(정당)|파일:신뢰 흰색 로고.svg
{{{#fff 신뢰

20석
]]
[[우크라이나의 회복|파일:우크라이나의 회복 로고.png
{{{#fff 우크라이나의 회복

18석
]][야]
야당
[[유럽연대|파일:유럽연대 로고.svg
{{{#225faf 유럽연대

27석
]]
[[전우크라이나 연합 "조국"|파일:바티키우시나 로고.png
{{{#ec0928 전우크라이나 연합 "조국"

24석
]]
[[공정(정당)|파일:공정 로고.png
{{{#223673 공정

11석
]][1]
[[목소리(정당)|파일:목소리(정당) 흰색 로고.svg
{{{#fff 목소리

9석
]]
[[무소속|{{{#fff 무소속

29석
]]
정원은 450석이지만 크림 자치 공화국, 도네츠크주, 루한스크주를 실효 지배하지 못하기 때문에 424석만 선출한다.
재적

421석
공석

29석

[야] A B 2022년 4월 14일, 인생을 위한 야권연단이 해산된 이후 야권연단 출신 무소속 의원들이 만든 교섭단체[1] 목소리에서 제명된 7명의 의원들과 탈당한 4명의 의원들이 만든 교섭단체이다.




파일:자유당(우크라이나) 로고.svg
Всеукраїнське об'єднання «Свобода»
약칭
Свобода(스보보다)
한글명칭
전우크라이나 연합 «자유»
상징색
다크 블루
대표
올레흐 탸흐니보크
(Оле́г Яросла́вович Тягнибо́к)
창당일
1995년 10월 16일
이념
경제적 자유주의
사회보수주의
우크라이나 내셔널리즘
울트라내셔널리즘
정치적 스펙트럼
우익 ~ 극우
당사
вул. Богдана Хмельницького 59-в, 키이우
유럽 정당
없음
최고 라다

1석 / 424석

지방 의회

890석 / 43,122석

웹사이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
2. 상세
3. 역사




1. 개요[편집]


우크라이나의 극우 민족주의 정당. 약칭은 '자유(Свобода)'이며, 이 때문에 그냥 '자유당'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2. 상세[편집]


네오나치즘 정당으로 출발해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극우 정당으로 변모하였다. 현재 당 로고로 문서 상단의 세 손가락 문양을 쓰고 있으나, 창당 초창기에는 대놓고 나치의 상징인 '볼프스앙겔(Wolfsangel)' 문양을 로고에 떡하니 박아놓았다.

우크라이나 민족국가의 정체성 및 생존권 사수를 최대 목표로 설정하고 있으며, 이 목표를 위협하는 최대 세력으로 러시아를 꼽고 있기에 당연히 러시아와 친러파가 국내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무척 경계하고 있다. 때로는 이 경계심을 과하게 드러내면서 폭언과 폭행을 공공연하게 일삼기도 했으며, 이로 인해 우크라이나 정부의 대표적인 골칫거리였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내부의 친러파가 사실상 소멸되고 거의 모든 우크라이나인들이 반러 투쟁에 합류하거나 지지 의사를 밝히게 되었는데, 러시아에 대항하고 친러 세력을 몰아낸다는 목표 달성이 얼떨결에 매우 빨리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다만 전쟁이 종결되면 누가 승리해도 당의 존립이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가 승리하면 국내에서 러시아와 친러파의 영향력이 완전히 소멸할 것이므로 예전처럼 강력한 민족주의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며, 러시아가 승리하면 국내에서 이적단체로 규정될 것이 뻔하기 때문.


3. 역사[편집]


네오 나치 성향의 우크라이나 사회민족당이라는 이름으로 창당하였다. 창당 초기 지지세가 매우 약했으나 2000년대 후반부터 인기를 얻어 지방선거에서 점차 성장세를 보였고, 2012년 총선에서 10.4%를 득표해 원내 제4당으로 등극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르비우주와 이바노프란키우스크주 등 일부 서부 도시[1]에서는 각각 38%와 33.8%를 얻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친러 성향이 짙은 빅토르 야누코비치 정권의 권위주의 정치에 반발하며 전국적으로 일어난 유로마이단 혁명 때 반러 시위에 적극 동참했으며, 시위에 앞장선 당원들이 폭력사태를 촉발하기도 했다. 유로마이단 이후 혼란스러운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구성된 우크라이나 과도정부에 참여했다. 친러 정부가 퇴진하자마자 과도정부 내에서 가장 격렬하게 반러를 외쳤고, 특히 러시아어의 국내 공용어 자격을 박탈하는 법안을 밀어붙이며 다른 정당들과 갈등을 빚었다. 결과적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 움직임을 주시하기 시작했다는 걸 감안하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내정에 개입할 명분을 만들어준 셈이다.

2014년 러시아크림반도를 강제로 합병하자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부당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며 격렬히 반발하였고, 그해 3월 18일 이 합병 조약 체결 장면을 중계해 송출했다는 이유로 국영방송국에 쳐들어간 당원들이 해당 방송사 사장에게 사퇴를 요구하며 그를 폭행하는 사태를 일으켜 물의를 빚었다. 그러나 친러 주민들이 다수인 크림반도 내에서 지지세가 미약했기에 큰 호응을 얻진 못했으며, 크림 공화국 의회의 의결로 크림반도 내 정치 활동을 금지당하며 사실상 퇴출됐다.

동년 10월 26일에 치러진 총선 과정에서 지지율이 절반 이하로 급락했고, 30% 이상이 표를 몰아주며 든든한 지지 기반이 되어주었던 르비우 등 서부 일대에서도 한 자릿수 득표율을 기록하며 총 450석 중 6석 확보라는 저조한 성적표를 받았다. 러시아계 주민이 대다수인 동부에서는 안 그래도 당세가 미약한데, 서부의 민심도 놓치면서 거대 정당들에게 패배한 것. 순식간에 군소정당으로 전락하면서 내각에 참여했던 장관들은 모두 사퇴했다.

그래도 같은 계열의 극우 민족주의 정당 '프라비 섹토르'에 비하면 현실 감각이 조금이라도 있는지, 의석수가 급감하고 난 뒤로 표면적으로나마 극단주의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신경을 쓴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웬걸. 2015년 우크라이나 정부가 자국 동부 일대에 자치권을 부여하는 내용으로 헌법 개정을 시도하자, 이에 격렬히 반대하는 폭력 시위를 벌였다. # 이 시위에서 경찰에게 무려 수류탄을 투척(...)하는 등 대단히 폭력적인 충돌을 벌였고, 수류탄 파편에 맞아 중상을 입은 경찰관 1명이 사망했으며 총 125명이 부상을 당했다. 반러-친서방 성향인 아르세니 야체뉴크 총리와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까지 비판 대열에 합류할 정도로 사태가 심각했다. 야체뉴크 총리는 "친우크라이나 정치 세력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국내에서 두 번째 전선을 열려 하고 있다"고, 포로셴코 대통령은 "폭력 시위는 배반 행위"라고 언급하며 이를 비판했다.

아무튼 프라비 섹토르나 이 정당이 돈바스 전쟁에서 러시아의 침략 및 전쟁 개입에 비관적인 미국과 다른 유럽 나라들이 이 전쟁에 끼어드는 것을 주저하게 하고 거기서도 반러 세력에 지원을 반대하는 이유가 되었다. 대놓고 나치 경례를 하며 히틀러를 숭배하는 모습을 보이니 반러파라고 친나치 세력을 지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방의회에서는 의석이 꽤 남아있으나, 시간이 갈수록 나치와 손절했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계기로 인민의 종이 인지도가 급상승하면서 끼어들 틈이 없으므로 미래는 불투명하다.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23 08:00:08에 나무위키 전우크라이나 연합 «자유»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이 두 지역은 1939년까지 단 한 번도 소련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은 우크라이나 영토인데다 우크라이나-그리스 가톨릭교이 강한 지역으로 러시아 정교회와 종교적 결이 다른 곳이다. 이 때문에 반러 성향과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의식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