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평화·재건 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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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이라크 평화·재건 사단
{{{#ffffff 大韓民國 伊拉克 平和·再建 師團
ROK Joint Support Group for the Iraq
파일:이라크 평화·재건사단.jpg

창설일
2004년 2월 23일
해체일
2008년 12월 20일
상징명칭
자이툰부대(Zaytun Division/Tîpa Zeytûnê)
소속
대한민국 육군
상급부대
대한민국 육군본부
육군특수전사령부
규모
사단
지휘관
소장
역할
이라크 평화 유지 및 재건
초대 사단장
예) 대장 황의돈(육사 31기)
해체 전 사단장
예) 대장 박선우(육사 35기)
위치
이라크 쿠르드 자치구 아르빌





1. 개요
2. 상세
3. 예하부대
3.1. 사단직할대
3.2. 제11민사여단
3.3. 제12민사여단
3.4. 제320의료지원단 제마
3.5. 제1100건설공병지원단 서희
3.6. 경비대대
4. 지원부대
5. 출신 인물
5.2. 장교/부사관
5.3. 병사
6. 기타
6.1. 근무환경
6.2. 파병현황
6.3. 사단가
7. 사건사고
8. 여담

파일:sfsniper.jpg
이라크에서 저격 훈련 중인 자이툰 소속 특전사 대원들


1. 개요[편집]



[다큐3일] 우리는 이라크로 간다 - 자이툰 부대 병력교대 72시간 (2007)
파일:노무현자이툰.jpg
한 병사를 끌어안은 노무현 전 대통령[1]

자이툰 부대(Zaytun 部隊, 영어: Zaytun Division) 또는 대한민국 이라크 평화·재건 사단2004년 2월 23일에 창설된 대한민국 육군본부 소속 사단으로 2008년 12월 20일까지 이라크를 근거지로 활동하고, 해체되었다.

2. 상세[편집]


미국에서 벌어진 9.11 테러 사태로 촉발된 이라크 전쟁에 한국이 연합군의 일원으로 참전을 결정하며 창설한 부대. 명칭인 '자이툰'(زيتون)은 아랍어올리브를 뜻하며, 평화를 상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문서에서 담고 있지 않은 파병 당시 국내외와 파병 현지의 배경상황은 이라크 전쟁/한국군 문서를 참고 바란다.

대한민국 국회2003년 4월 2일 국군부대의 이라크전쟁 파견 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대한민국 국군은 의료지원단인 제마부대와 건설지원단인 서희부대를 파병했으나, 미국 정부는 한국에 2003년 9월, 전쟁으로 파괴된 국가를 재건한다는 목적하에 더 많은 전력을 파병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요청을 받아들인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2월 23일에 평화 유지와 재건을 임무로 하는 자이툰 부대를 8,000여명 가량의 사단으로서 창설하여 이라크 다국적군의 일원으로서 파병하였다.

대한민국에 적대적인 아랍 저항단체에서는 이 부대를 이라크에서 철수할 것을 요구했으며 2004년 6월 한국인 김선일유일신과 성전이라는 테러단체에 납치되어 피살되었음에도 당시 정부는 이라크 철군을 거부했다. 한편으로 당시 미국 국방부 장관 도널드 럼즈펠드2004년 10월 10일 이 부대를 방문하여 격려하였고, 노무현 대통령12월 8일 이 부대를 전격 방문하였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여러분의 존재가 대한민국 외교에 큰 힘이 된다."는 입장을 내놨다.[2]

2007년 12월 28일, 국군부대의 이라크 파견 연장 및 임무종결계획 동의안에 따라 1년 더 파병이 연장되면서 사령부 부서인 민사처가 민사협조본부로, 재건지원대대에 경비대대가 통합되었다. 병력 감축에 의해 650여명으로 줄어들었으나, 독자적인 활동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소장 계급의 지휘관의 지휘를 받았다. 초대 사단장은 정보병과 출신의 육군소장 황의돈 장군이었다.

2008년 12월 20일 자이툰 부대는 쿠르드인들에게 부지와 대부분의 건설 장비 등을 넘겨주고 쿠르드 자치구 아르빌에서 철수하였다.

3. 예하부대[편집]


파일:sfshoot.jpg
파일:sfshoot2.jpg
이라크에서 기동사격 훈련 중인 자이툰 소속 특전사 대원들

초기에는 사단 사령부와 사령부 직할대, 육군 제1100건설공병지원단 "서희"(2003년 4월 15일 창설)와 제320의료지원단 "제마", 그리고 각각 특전사 인원이 주축인 2개 민사(또는 재건지원)대대와 각 특공대에서 차출된 대원들로 구성된 1개 경비 대대, 그리고 장갑차 중대가 편성된 11민사여단(111, 112 재건지원대대, 113경비대대)과 12민사여단(121, 122 재건지원대대, 123경비대대)으로 구성되었다. 사단 사령부의 경비는 해병대 지원병으로 구성된 1개 경비중대가 맡았다. 해군의무 병과UDT/SEAL 인원을 보냈다. 부대의 총 규모는 약 3,600여명이었다. 공군은 자이툰 부대와 독립된 제58항공수송단 "다이만" 부대를 편성, 자이툰 부대에 군수 및 병력을 공수하여 지원하였다.

3.1. 사단직할대[편집]


  • 본부대
  • 경비중대[3]
  • 공병대대
  • 헌병대

3.2. 제11민사여단[편집]


  • 제111재건지원대대(육군 특전사)
  • 제112재건지원대대(육군 특전사)
  • 제113경비대대(육군 특공대)

3.3. 제12민사여단[편집]


  • 제121재건지원대대(육군 특전사)
  • 제122재건지원대대(육군 특전사)
  • 제123경비대대(육군 특공대)

3.4. 제320의료지원단 제마[편집]


파일:제320의료지원단 부대기.jpg

3.5. 제1100건설공병지원단 서희[편집]


파일:제1100건설공병지원단 부대기.jpg
2003년 4월 15일 창설되었다.

3.6. 경비대대[편집]


특공대 대원들로 구성되었다. 2군작전사령부 예하 특공여단 201, 203, 205의 특공대대가 한 대대씩 돌아가며 각기 6개월간 이라크 자이툰사단의 경비대대로 임무수행을 하였다.이 경비대대는 11민사여단, 12민사여단에 각각 1개 대대씩 존재하였고 육군 특전사의 재건지원대대와 함께 각 민사여단의 핵심적인 임무수행을 하는 중요부대였다. (113경비대대, 123경비대대)

4. 지원부대[편집]



  • 대한민국 공군
    • 제58항공수송단(다이만)[4]
파일:external/www.mookas.com/58sky.jpg
2대의 C-130 수송기를 사용하여 대한민국-필리핀-태국-인도를 경유하여 쿠웨이트 알리 알 살렘 공군기지까지 왕복하며 수송지원을 시행하였다. 2004년 8월 자이툰 부대 파병과 함께 창설되어 2008년 12월 19일 마지막 귀국 비행을 끝으로 4년 3개월간의 임무를 마치고 해산되었으며, 임무 기간동안 병력 4만3천여명과 군수물자 4천600여t을 수송했으며 지구 86바퀴에 해당하는 총 340만km를 비행했다.


5. 출신 인물[편집]



5.1. 사단장[편집]


볼드체대장 진급이 된 사단장.

역대 이라크 평화·재건 사단장
역대
이름
계급
임관
비고
기타
초대
황의돈
예) 대장
육사 31기
육군참모총장,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2대
정승조
예) 대장
육사 32기
합동참모의장,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제1야전군사령관

3대
황중선
예) 중장
육사 32기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4대
윤영범
예) 소장
육사 33기
前 청와대 국방비서관

5대
박선우
예) 대장
육사 35기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5.2. 장교/부사관[편집]


11민사여단 민사참모직을 역임했다.

의무대대 간호과장 역임.

사단 참모장 역임.

작전부사단장직을 역임했다.

11민사여단 참모장을 역임했다.

12민사여단 연락장교를 역임했다.

참모장교로 근무하여 합참의장 표창장을 받았다.

5.3. 병사[편집]


이라크 자이툰 부대 3진 2차 병력으로 자원해서 갔다왔다고 한다. 보병을 단 한 명 뽑는 치열한 경쟁률이었다고 한다.



6. 기타[편집]



6.1. 근무환경[편집]



6.2. 파병현황[편집]


  • 파병기간/파병부대현황 :'04.9 ~ '08.12, 9개진 23개 대대 임무수행
    • 1진: '04.8 ~ '05.6 / 1여단 5대대, 7여단 33대대, 13여단 71 * 72대대
    • 2진: '05.2 ~ '05.12 / 3여단 13대대, 9여단 51대대, 특임단 21대대, 11여단 65대대
    • 3진: '05.8 ~ '06.6 / 3여단 12대대, 7여단 32대대, 1여단 2대대, 9여단 55대대
    • 4진: '06.2 ~ '06.12 / 11여단 63대대, 13여단 73대대, 11여단 61대대, 특임단 23대대
    • 5진: '06.8 ~ '07.7 / 3여단 15대대, 1여단 3대대, 특임단 23대대
    • 6진: '07.3 ~ '07.11 / 1여단 11대대
    • 7진: '07.9 ~ '08.5 / 9여단 53대대
    • 8진: '08.3 ~ '08.9 / 7여단 31대대
    • 9진: '08.5 ~ '08.12 / 7여단 35대대


6.3. 사단가[편집]


사막의 모래폭풍 앞을 막아도
평화와 재건위해 일어선 우리
내일처럼 땀흘리며 아픔도 함께
쿠리 쿠리 넘버원 넘버원 꽃피는 우정
우리들은 자랑스런 대한의 건아
세계 평화 선봉에 선 자이툰 사단

숨 막히는 사막열기 온몸 태워도
평화와 재건 위해 오늘도 뛰네
사랑으로 실천하며 기쁨도 함께
쿠리 쿠리 넘버원 넘버원 희망의 등불
우리들은 자랑스런 대한의 건아
세계 평화 선봉에 선 자이툰 사단

7. 사건사고[편집]


  • 노무현 대통령 방문 겨우 10시간 전, 홍모 상병(당시 22세)이 경계근무 도중 오발사고로 같이 경계를 서던 쿠르드족 민병대의 헤멘 바카르를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헤멘 바카르는 복부에 총상을 입고 나흘 만에 사망했으며, 군은 유가족에게 1만 달러의 보상금과 배우자의 취업, 기타 지원을 해 주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석연치 않은 점이 많이 있는데, 처음 브리핑 때는 총기점검 중 오발사고가 발생했다고 하다가 나중에는 경계근무 중 장난을 치다 사고가 발생했다고 말을 바꾸었다. 또한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긴 하나 사실은 현지인과 말다툼을 하던 도중 실랑이를 벌이다가 오발 사고가 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게다가 사고 발생 후 5개월이 지나서야 발표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이 일었다. 국방부의 주장에 따르면 헤멘 바카르는 홍 상병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고 하며, 유가족들도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탄원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홍 상병은 과실치사로 1년 6개월의 금고형을 선고받은 후 항소 상태라고 하나, 그 이후의 내용은 언론상에 밝혀진 바 없다.
파일:external/dimg.donga.com/34098905.1.jpg
  • 2005년도에 이라크에 파병한 일본 육상자위대[5]들과 자이툰부대 육군 장병이 우정을 과시하며 사진을 찍었는데 이 사진 때문에 소동이 빚어졌다. 한글을 읽을 줄 모르는 육자대원들이 자이툰부대원이 든 "독도는 大韓民國 땅입니다."라는 팻말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웃으면서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인데 누가 보면 영락없이 육자대가 독도가 한국땅임을 인정하는 듯한 모양새가 되는 셈이었다. 인터넷에서는 이 사진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언론에도 언급되었으며 이 때문에 한일간 외교문제로 비화되기까지 했다. 이후 사진을 찍은 두 명의 육자대원은 본국으로 소환되어 조사받았는데 자신들은 한글을 몰라서 팻말의 내용이 뭔지 이해하지 못했다고 필사적으로 강변했다고 한다. 한편 한국군에서도 이런 문제는 외교 갈등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에 비슷한 시기에 파병을 다녀온 부대원들에게 간부들이 이 소동을 전파하면서 이런 짓 하지 말라고 교육하기도 했다.

  • 대한민국 시간으로 2007년 5월 19일 오후 6시 45분경(오후 1시45분 현지시간) 자이툰 부대 오모 육군 중위가 영내에 있는 자이툰병원 의무대 이발소에서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그리고 국방부 조사본부는 2007년 6월 4일 타살이 아닌 자살로 결론을 내렸다.

8. 여담[편집]


  • 자이툰 부대 소속 군인 중 일부는 이슬람에 입교하기도 했다.

  • 만화가 김보현의 작품 'One day in iraq'는 이 시절 자이툰 부대원들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일단 만화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작중 에피소드는 단 두개이며 절반이상은 전역자들의 인터뷰와 쿠르드족에 대한 설명등으로 채워져있다.

  • 이뿐만 아니라 한국군 자체가 이때 파병으로 준비한다고 방탄복과 방탄모와 관련해서의 성능문제와 급하게 준비하느라 두돈반의 방탄화 그리고 작전차량에 대한 병력의 작전수행에서의 복지기능 제공이 미비로 몸살을 앓아야 했다. 특히 방탄복과 방탄모는 MBC와의 보도 논쟁으로 매우 시끄러웠고 거기서 보여준 국방부의 아마추어급 대응태도는 군의 폐쇄성과 군의 개인장비 사업에 대한 문제점을 다시 한번 드러낼 수 밖에 없었다.[6] 게다가 차후에 자이툰 부대가 운영하는 기동차량인 두돈반 등의 작전차량 장비운영에서 전투수행도 안함에도 불구하고 작전효율성을 포함한 복지기능 미비로 작전효율이 심각하게 떨어졌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등 전반적으로 한국군이 보병전투 관련 사항에 대해서 준비가 부족했는지 다시 한번 드러나기도 했다. 이라크에 파병되는 자이툰 부대를 위해 개발된 속칭 '자이툰 방탄복'의 수량도 부족해 구형 방탄복을 착용하고 작전에 나서기도 했다. #

  • 당시 일반 사병으로 의무복무를 하던 젊은이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선발을 위해서는 부모 동의서도 받아야 했지만 선발되면 현지 부대 임무에 대한 교육을 받고 6개월간 파병을 갔다온 후 24박 25일의 장기 휴가와 1200만원을 넘는 파병수당[7]을 받을 수 있어 치열한 경쟁률을 기록했다. 물론 현지에서는 빡빡한 인력과 더운 기후 환경으로 매우 힘든 복무환경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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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확히는 병사가 노무현 대통령을 안은 채 '들어올린' 순간을 포착한 사진이다.[2] 당시는 북핵문제가 심각하게 흐르던 무렵인데 노무현 대통령은 대화를 통한 해결을, 조지 워커 부시 미국 대통령은 강경책을 구사해 한미간에 다소 갈등의 긴장이 흐르던 시기였다. 이후 노무현 10주기 추도식에 참여한 조지 워커 부시가 추도사에서 자이툰 부대 파병 건을 술회하면서 사의를 표하기도 했다.[3] 해병대 지원병으로 구성되었다.[4] 자이툰 부대에 대한 병력 및 군수지원을 위해 공군에서 제5전술공수비행단 예하 제58항공수송을 창설하였으며, 다이만 부대는 제58항공수송단의 별칭이다.[5] 사진속 육자대원들은 모두 수염을 기르고 있는데, 일본 정부가 남성들 대부분이 수염을 기르는 현지 풍습을 감안해 현지인들과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 파병되는 남성 자위관들에게 수염을 기를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6] 하지만 이 당시 방탄모 관련은 당시 이상호 기자 항목에 나와있듯 오히려 의혹이 많다.[7] 2진 기준